무효한 에너지 절약
~01. 인도미터블의 계획
모항. 집무실
인도미터블은 책상에 엎드린 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태블릿을 만지며 가끔씩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은 것 같다.
내가 펜을 놓는 찰나의 소리를 듣자, 인도미터블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크게 하품했다.
인도미터블: 하암……. 지휘관님. 드디어 업무가 끝나셨군요.
지휘관: 응. 오늘 작업은 일단 이걸로 끝이야.
인도미터블: 저도 일단은 끝났어요. 내일 데이트 계획을 짰거든요.
지휘관: 본래 일은 어떻게 된 거야? 제대로 하고 있어?
인도미터블: 데이트 계획 짜는 것도 저한테는 어엿한 일이에요.
지휘관: 그래그래…….
인도미터블: 한번 보시겠어요?
지휘관: 그래. 성과는 제대로 확인해야지.
나는 인도미터블 앞에 있는 태블릿을 집어 들고 그녀가 짠 계획을 확인했다.
지휘관: 2인승 자전거, 보트에서 피크닉, 공원 마켓…… 밤에는 진수성찬…….
지휘관: 계획 자체는 가능해 보이는데, 하는 사람이 인도미터블이면 좀 힘들지도 모르겠네.
인도미터블: 후훗. 그런가요? 분명 저는 유유자적하는 걸 좋아하죠. 하지만…….
인도미터블: 이건 제가 '몸을 던져' 간신히 얻은 것들이에요.
지휘관: ……그냥 서류 처리 좀 도왔을 뿐이잖아? 몸을 던졌다는 건 너무 과장 아냐?
인도미터블: 어머. 비슷하지 않나요? 아무튼 좀처럼 없는 귀중한 데이트니까 저는 지금 의욕이 넘쳐요.
인도미터블: 네. 아마도요…….
인도미터블: 그리고 이번 계획은 비교적 느긋한 편이에요. 지휘관님. 제 깊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셨나요?
→ 전혀 모르겠어
지휘관: 설명이 너무 심플해서 뭐가 깊은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인도미터블: 후후. 심플한 게 바로 제 방식이랍니다~
→ 알아챘어
지휘관: 알아챘어. 결국 머리 쓰기 귀찮아서 대충 결정한 거잖아?
인도미터블: 그렇게 알기 쉬웠나요……? 아니, 아니에요!
인도미터블: 제대로 궁리하고 골랐다구요!
인도미터블: 이래봬도 조금 어지러울 정도로 머리를 혹사시켰답니다…….
지휘관: 자세히 들려줘 봐.
인도미터블: 가령 보트에서의 피크닉 메뉴는 모두 케이터링.
인도미터블: 저희는 그냥 즐기기만 하면 돼요.
지휘관: 그래. 그럼 다른 거는?
지휘관: 2인승 자전거는? 인도미터블이 스스로 운동을 선택한 건 기쁘긴 한데…….
지휘관: 금방 싫증 낼 거 같아서 걱정이네.
인도미터블: 저를 잘 알고 계시네요.
인도미터블: 하지만 아직 전부 아신다고 할 수는 없겠군요.
지휘관: 무슨 말이야?
인도미터블: 음…. 설명하기는 좀 귀찮은데…….
인도미터블: 지휘관님이라면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인도미터블: 나중을 위한 즐거움으로 남겨두도록 하죠.
인도미터블: 어쩌면…… 이번 기회에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인도미터블: 어떠세요? 제 데이트 신청, 받아 주시겠어요?
지휘관: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인도미터블: 후후. 많이 기대해 주세요. 지휘관님!
힘차게 말한 뒤 인도미터블은 다시 책상에 엎어졌다.
인도미터블: 하아… 말을 좀 많이 했네요…….
인도미터블: 조금만 쉴게요…. 으응… 조금만…….
~02. 사이클링 대작전
모항 공원. 인공 호숫가
다음 날 오전. 아직 햇살이 강해지기 전, 인도미터블과 함께 공원에 왔다.
인도미터블: 음…… 정말 완벽한 날씨네요. 느긋한 액티비티 하기에 딱이네요.
지휘관: 자전거 타고 호수 한 바퀴 돌 셈이야? 이 호수 의외로 큰데?
인도미터블: 읏……. 네에, 괜찮아요.
인도미터블: 가장 짧고, 가장 경치가 좋은 코스로 골랐으니까요.
지휘관: …'에너지 절약' 전문가니까 그 부분은 신용할 수 있겠지.
인도미터블: 바로 그거예요. 그럼 출발할까요? ……조금만 힘내야지. 하아…….
인도미터블: 그럼 지휘관님은 앞에 타서 '동력'을 담당하세요.
인도미터블: 저는 뒤에 탈게요. 지도 보면서 길안내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랍니다?
지휘관: 지도 앱이나 내비 같은 거 안 써?
인도미터블: 이 주변은 갈림길이 많아서 내비는 표준 루트밖에 안 알려줘요.
인도미터블: 제가 직접 확인하면서 안내하는 게 좋아요. 믿어주세요…… 지휘관님.
인도미터블: 머리 쓰는 건 좀 귀찮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죠.
인도미터블: 하아……. 열심히 할게요~
지휘관: ……그러니까 자전거는 내가 끌고 너는 그냥 타고만 있겠다고?
인도미터블: 정확하게는 지휘관님은 체력을 사용하고 저는 두뇌를 사용하는 거죠.
인도미터블: 힘든 법이에요. 둘 다.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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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도미터블의 제안대로 2인승 자전거를 타게 됐다.
공원 호숫가를 따라 난 자전거 길을 천천히 나아갔다. 햇살이 호수면을 비춰 물결이 반짝거렸다.
인도미터블: 이 길로 쭉 가시면 돼요.
지휘관: 그래서 그 다음은?
인도미터블: 다음이요? 갈림길까지 다 가면 그때 생각할게요.
인도미터블: 조금 눈을 쉬게 해줘야죠.
인도미터블: 산들바람은 기분 좋지만 눈이 좀 말라서요…….
뒤에 타고 있는 인도미터블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지휘관: 인도미터블? 너 자니?
지휘관: 어디로 가야 되는데?
인도미터블: 음…….
지휘관: 또 멍때린 거야?
인도미터블: 아, 아뇨. 기운을 회복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인도미터블: 지휘관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지휘관: 이 갈림길에선 어느 쪽으로 가야 돼?
인도미터블: 그게…….
인도미터블: 오른쪽이에요. 다리를 건너가죠.
지휘관: 오늘은 '노동과 휴식의 균형'이라고 하더니 완전 휴식 모드잖아….
인도미터블: 후후. 제가 원하는 데이트가 바로 이런 느낌이거든요. 기분 너무 좋네요.
인도미터블: 지휘관님은 피곤하세요? ……체온이 조금 높아지셨네요. 음…… 잠깐 등에 실례할게요…….
등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도미터블이 내 등에 귀를 대고 있는 것 같았다.
인도미터블: 으음……. 심장이 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인도미터블: 지휘관님께는 이 정도 운동은 아무것도 아니신가 봐요.
→ 너 뭐 꾸미고 있지?
지휘관: 갑자기 웬 칭찬이야? 너 뭐 꾸미고 있지?
지휘관: 말해 두지만 아무리 치켜세워도 속도는 더 안 낼 거야.
인도미터블: 후후. 지금 페이스로 충분해요.
인도미터블: 역시 지휘관 동력 시스템은 든든하네요.
→ 인도미터블이 고른 최단 코스 덕분이겠지
지휘관: 인도미터블이 고른 최단 코스 덕분이겠지. 고마워.
인도미터블: 저, 정말요?
인도미터블: 필사적으로 머리를 쓴 보람이 있네요…….
마치 세계의 고민 따위는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인도미터블은 쿡쿡 웃었다.
그녀의 느긋한 생활 방식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03. 사이클링 중의 해프닝
모항 공원. 인공 호숫가
인도미터블: 으응~ 기분 좋아~ 이대로 계속 달리면 참 좋을 텐데….
지휘관: 잠깐만, 인도미터블. 뭔가 이상한데…….
나는 전방의 계단을 발견하고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다.
인도미터블: 아야얏…… 코가…… 아으으….
멍하니 있던 인도미터블은 급제동 때문에 내 등에 코를 박고 말았다.
지휘관: 미안. 괜찮아?
인도미터블: 괜찮아요……. 왜 갑자기 멈추신 거예요?
지휘관: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거 같아.
지휘관: 이 앞은 계단이야. 자전거를 들고 갈 계획이었어?
인도미터블: 네? 그럴 리가 없는데…….
인도미터블: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하나…….
지휘관: 일단 지도를 확인해 보자.
우리는 자전거를 세우고, 갓길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지도를 들여다 봤다.
인도미터블: 갈림길이 많아서 엄청 까다롭네요…….
인도미터블: 길을 잘못 든 건 확실한 거 같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인도미터블: 여긴가? 아니면 여기? 아니면…….
지도상의 경로가 복잡하게 엉켜 있는 탓에 인도미터블의 미간에도 주름이 졌다.
지휘관: 어느 시점에서 잘못됐든 지금 진로는 다음 목적지와는 완전 반대 방향이야.
지휘관: 왔던 길로 되돌아갈 것인가, 다른 갈림길로 조금 돌아갈 것인가……. 어느 쪽이든 가능은 해.
인도미터블: 그치만…… 어느 코스가 좋을지…….
인도미터블: 코스 중에서 가장 편하고 짧은 길은…….
인도미터블: 으음. 역시 결정하는 건 힘드네요…….
인도미터블은 내 얼굴을 보자 갑자기 손을 꼭 잡았다.
인도미터블: 지휘관님……. 지금부터 길안내는 지휘관님께 부탁드려도 될까요?
→ 맡겨줘
지휘관: 그래. 맡겨줘.
지휘관: 다만 그 대신 인도미터블이 '동력 시스템'을 담당해 줄래?
→ 힘들 거 같은데
지휘관: 길안내야 가능하지만 지도 보면서 자전거 타는 건 힘들 거 같은데.
지휘관: 그럼 인도미터블이 '동력 시스템'을 담당해 줄래?
인도미터블: 아…… 그건…….
지휘관: 농담이야.
지휘관: 둘이서 열심히 하자.
인도미터블: 정말…… 진심이신 줄 알았잖아요. 지휘관님은 심술쟁이야.
인도미터블: 다음 목적지는 보트 선착장이니까 무조건 가장 짧은 길로 부탁드려요…….
지휘관: 알았어. 도중에 인도미터블이 지치지 않도록 최단 코스로 갈게.
이렇게 다시 자전거에 오른 우리는 새로 고른 코스를 따라갔다.
인도미터블: 하아……하아……. 지휘관님. 저, 제대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인도미터블: 아아…… 힘들어……. 슬슬 쉬는 게 어떠세요……?
지휘관: 아직 100미터 정도밖에 못 왔는데?
지휘관: 조금만 더 힘내자.
인도미터블: 어쩔 수 없네요……. 제 실수 때문이기도 하고…….
인도미터블: 원래라면 좀 더 느긋한 일정이었을 텐데……. 왜 이런 운동을…….
인도미터블의 칭얼거림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처음 상상했던 편안한 사이클링과는 다르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04. 호수에서 먹는 점심
모항 공원. 인공 호숫가
인도미터블: 후우……. 드디어 도착했네요…….
인도미터블: 왠지 다리가 제 다리가 아닌 거 같아요…….
우당탕탕 사이클링을 거쳐 드디어 보트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작은 유람 보트가 정박해 있었다. 선내 좌석에는 부드러운 쿠션이 깔려 있어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테이블 위에는 주스, 샌드위치, 샐러드, 과일 같은 피크닉 느낌의 식사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인도미터블: 보트와 점심을 예약해 두길 잘했네요.
인도미터블: 동력은 전기니까 친환경이고요.
인도미터블: 앞으로의 일정은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푹 쉬고 싶어요. 응.
인도미터블: 자, 지휘관님. 빨리 가죠~
배에 올라 동력을 넣자 배는 천천히 호수 중앙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주변은 점차 조용해졌고, 수면은 거울처럼 잔잔했다. 멀리 보이는 나무들의 모습이 수면에 하늘하늘 드리웠다.
인도미터블: 이런 게 좋다니까요. 후후후.
인도미터블: 느긋하게 보트에 타서 느긋하게 점심을 즐긴다…. 정말 최고예요~
인도미터블: 지휘관님. 그럼 드실까요?
지휘관: 그래.
인도미터블은 포크로 딸기를 하나 찔러 내 입가에 내밀었다.
인도미터블: 드셔 보실래요?
지휘관: 음…… 달콤하네.
인도미터블: 좋아요. 미션 완료네요. 그럼 다음은 지휘관님이 저한테 "아~" 해주세요.
지휘관: 직접 먹는 것도 귀찮아?
인도미터블: 아뇨. 저는 그냥…… 지휘관님과 좀 더 친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네, 그래요.
어쩔 수 없이 샌드위치를 집어 인도미터블의 입가에 내밀었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 입 깨물었다.
인도미터블: 지휘관님은 정말 배려가 깊으신 분이세요~
인도미터블: 아, 잠시만요. 더 먹고 싶으니까 그대로…….
그때 보트가 흔들리는 바람에 인도미터블이 내 쪽으로 쓰러졌다.
인도미터블: 꺅…….
지휘관: 괜찮아?
인도미터블: 에헤헤……. 지휘관님의 품은 의외로 기분 좋네요.
인도미터블: 이대로 있으면 먹기 더 편하겠죠……?
그렇게 말하며 인도미터블은 내 팔을 끌어당겨 샌드위치를 한 입 먹었다.
내 품속에서 완전히 응석받이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인도미터블: 지휘관님은 안 드세요?
→ 우선은 누군가부터 든든하게 먹여야겠는걸
지휘관: 우선은 누군가부터 든든하게 먹여야겠는걸.
인도미터블: 지휘관님이 자청하신 거예요?
인도미터블: 이런 사치스러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듬뿍 즐겨야겠어요.
→ 아~ 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야
지휘관: 아~ 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야
인도미터블: 네? 그러셨군요…….
인도미터블: 그렇다면… 자. 아~ ……체력을 많이 썼으니까 앞으로는 많이 쉬게 해주세요.
~05. 상부상조
모항 공원. 인공 호숫가
점심 식사 후. 보트는 호수 위에서 천천히 호를 그리며 유람하고 있었다. 햇빛이 따스해서 졸음이 쏟아졌다.
인도미터블: 후우……. 그야말로 이상적인…… 쉬는 방법이네요…….
지휘관: 응. 가끔은 이렇게 여유롭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
호수의 경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인도미터블은 잠들어 버렸다.
지휘관: 인도미터블?
내게 기댄 인도미터블의 잔잔한 숨소리가 들렸다. 의식이 완전히 끊긴 것 같았다.
지휘관: 오전 중의 사이클링으로 많이 피곤했나 보구나.
지휘관: 조금은 자게 해주자…….
나도 점점 눈꺼풀이 감겨, 서로 어깨를 맞대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전동 모터가 희미한 소리를 내며 보트는 완전히 동력을 잃었다.
인도미터블: 하암……. 잘 잤네요….
인도미터블: 지휘관님? 설마 지휘관님도 주무셨던 거예요?
지휘관: 으음…… 그랬나 봐.
인도미터블: 아. 지휘관님, 큰일 났어요……. 엔진이… 꺼졌나 봐요!
지휘관: 잠깐 볼게…….
지휘관: 나쁜 소식이야. 배터리가 다 됐나 봐.
지휘관: 그래도 좋은 소식도 있어. 이 보트는 페달 조종 모드도 있는 거 같아.
인도미터블: 페달 조종 모드!?
인도미터블: 으으……. 지휘관님. 제가 다리가 좀 아파서…….
→ 안내 부탁해
지휘관: 인도미터블이 안내를 맡으면 내가 동력 시스템을 담당할게.
인도미터블: 호수 위에서 안내가 뭐가 필요해요…….
인도미터블: 설마 제가 또 게으름피울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 같이 열심히 하자
지휘관: 자전거 탈 때처럼 힘을 합쳐서 물가까지 가는 거야.
인도미터블: 지휘관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인도미터블: 하아…… 어쩔 수 없죠. 열심히 해볼게요.
지휘관: 그야말로 상부상조네.
페달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인도미터블과 힘을 합쳐 물가로 향했다.
인도미터블: 힘들어…. 다음에는…… 절대로… 배터리 체크를 잊지 말 것…….
인도미터블: 아니, 다음 따위는 절대 없어요!
인도미터블: 역시 외출보다는 방에서 차를 마시거나 꽃을 구경하는 게 나아요…….
지휘관: 확실히 완벽한 계획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도미터블과 함께 나와서 즐거워.
인도미터블: 정말……. 항상 그렇게 듣기 좋은 말씀을 하신다니까요.
인도미터블: 달콤한 말로 제 피로를 날려 버리시려는 거예요?
지휘관: 효과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호흡을 맞추며 페달을 계속 밟는 사이 어느새 보트는 상당한 거리를 나아가 있었다.
인도미터블: 이제 한계예요……. 지휘관님. 슬슬 다 왔나요…?
지휘관: 고개 들어 봐. 바로 저기야.
인도미터블: 아……. 아직 엄청 멀어 보이는데요…….
인도미터블: 왠지 이대로 계속 지휘관님과 호수를 떠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
~06. 예상 밖의 결단
모항 공원. 인공 호숫가
인도미터블: 겨우…… 물가에 도착했네요…….
지휘관: 다음은 공원 마켓이었나?
인도미터블: 네에? 너무 계획을 착실하게 따를 필요는 없어요…….
인도미터블: 저기, 여기서 잠시 쉬어도 좋을 거 같은데요….
지휘관: 가면 편히 쉴 수 있는 데라도 찾을까? 여기서 바람 쐬는 것보단 낫겠지.
인도미터블: 네……. 그럼 지휘관님이 안내해 주시겠어요?
지휘관: 상관은 없는데, 너 아까부터 걷는 속도가 느리지 않아?
인도미터블: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스스로를 북돋아주는 것만 해도 상당한 기력이 필요하니까요……. 정말, 이제 그만 놀리세요.
인도미터블은 자신이 세운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말끝마다 '더는 움직이고 싶지 않다'라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었다.
지휘관: 먼저 걸을 테니까 느긋하게라도 따라와 줘.
지휘관: 지도로 볼 때 아무래도 바로 근처 같아.
지휘관: ……아니, 벌써 도착했네.
인도미터블: 여기가… 마켓이에요?
인도미터블: 생각보다 훨씬 작네요.
지휘관: 노점이 두세 개 정도 있을 뿐이네.
길가에 덩그러니 노점 몇 개가 늘어서 있었다. 아무래도 손님의 지갑을 열게 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인도미터블: 뭐, 애초에 큰 기대도 안 했지만…….
인도미터블: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네요. 몇 걸음만 걸으면 다 둘러볼 수 있으니까요.
지휘관: 안도감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인도미터블: 어머. 저기 벤치가 있어요. 지휘관님, 일단 가서 앉죠!
인도미터블: 으응……. 이제야 앉네…. 죽다 살아났어요…….
지휘관: 앞으로의 일정을 물어봐도 돼?
인도미터블: 원래대로라면 노점을 돌아본 다음에는 호화로운 디너라는 흐름이었지만.
지휘관: 시간을 볼 때 저녁 먹기에는 아직 이르지.
인도미터블: 네. 그리고 아직 배도 안 고프고요.
인도미터블: 그리고 디너라면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니까… 왠지 귀찮아지기 시작했어요…….
→ 공원에서 산책하는 건 어때?
지휘관: 그럼 잠깐 공원에서 산책할까?
인도미터블: 산책이라고요?!
인도미터블: 더, 더는 한 발짝도 못 걸어요…….
→ 그럼 모항으로 돌아갈까?
지휘관: 그럼 일단 모항으로 돌아갈까?
인도미터블: 아아……. 확실히 제 방하고 침대가 그립긴 하네요….
인도미터블: 하지만 지금 돌아가면 또 저녁 식사를 위해 나가야 하잖아요?
인도미터블: 어떡하면 좋지…….
인도미터블: 온몸의 세포들이 파업을 하고 있어서 더는 생각할 수가 없어요…….
인도미터블은 내 어깨에 기댔다.
인도미터블: 조금 쉬었다가 생각해 보도록 할게요…….
지휘관: 모항으로 돌아가서 그대로 안 나가는 방법도 있는데.
지휘관: 저녁은 배달시켜서 방에서 먹을 수도 있잖아. 그게 편하지?
인도미터블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내 제안에 마음속으로 만족한 것 같았다.
인도미터블: 그걸로 해요!
인도미터블: 역시 지휘관님이세요. 결단이 빠르시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인도미터블은 여전히 내게 기댄 채 전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인도미터블: ……더는 한 발짝도 못 걷겠어요… 으으…….
인도미터블: 지휘관님. 제발 모항까지…… 데려다 주세요…….
~07. 어디까지나 인도미터블
우여곡절 끝에 집무실로 돌아왔다. 소파에 축 늘어진 인도미터블은 왠지 침울해 보였다.
그녀는 오늘 외출로 쌓인 피로를 풀려는 것인지 양손으로 이마를 살짝 문지르고 있었다.
인도미터블: 하아…. 오늘 게획은 역시 좀 실패였네요…….
인도미터블: 느긋하고 편하게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벌써 녹초예요…….
인도미터블: 머리도, 팔도 그렇고 다리까지 아파요…… 으으…….
지휘관: 마사지 해줄까?
인도미터블: 그건…… 거절할 이유가 없네요. 부탁드릴게요.
인도미터블은 다리를 내 무릎에 올렸다. 나는 적당한 세기로 그녀의 종아리를 주물렀다.
인도미터블: …흐아앙…… 극락이에요…….
인도미터블: 지휘관님, 죄송해요…. 이런 시간까지 챙겨 주시고…….
인도미터블은 다리를 살짝 움츠리고 자세를 바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손을 자신의 어깨에 얹었다.
인도미터블: 이쪽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인도미터블: 후우…… 네, 거기요…….
인도미터블: 기분 좋아요오…….
이렇게 잠시 마사지를 받고 난 인도미터블은 비로소 말을 꺼낼 기운을 되찾았다.
인도미터블: 지휘관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당연히 즐거워요.
인도미터블: 단지… 운동만 없다면 더욱 이상적일 테지만요…….
지휘관: 여러 가지 예상 밖의 전개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정말 즐거웠어.
인도미터블은 머리를 살짝 기울이고 눈을 감은 채, 기분 좋은 마사지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지휘관: ……정말로 피곤했나 보네.
인도미터블: 네에……. 그러니까 실패라고 했잖아요오…….
인도미터블: 지휘관님은 계획 잘 짜시죠?
인도미터블: 하아……. 처음부터 지휘관님께 부탁할 걸 그랬어요…….
인도미터블: 이번에는 무리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인도미터블은 내게 몸을 찰싹 붙였다. 투정 부리는 듯한 그녀의 응석에 나는 패배하고 말았다.
→ 다음에는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계획을 세워 볼게
지휘관: 알겠어. 다음에는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계획을 세워 볼게.
인도미터블: 역시 지휘관님. 저에 대해 잘 알고 계시네요~
→ 다음에는 지옥의 특훈 계획을 세워 볼게
지휘관: 알겠어. 다음에는 지옥의 특훈 계획을 세워 볼게.
인도미터블: 특훈은 지휘관님 혼자여도 충분하잖아요? 저는 뒹굴기 전술 고문 역할로 참가할래요.
지휘관: 뭐, 훗날의 얘기지만. 오늘은 아직 저녁도 안 먹었고.
인도미터블: ……또 머리 써야 돼요…? 아으으…….
인도미터블은 축 늘어진 채 가늘게 중얼거렸다.
인도미터블: 어차피 다음 계획을 세우는 건 지휘관님이니까, 지금은 이걸로 무승부로 하지 않으실래요?
인도미터블: ……그러니까 저녁 메뉴는 지휘관님이 정해 주세요.
인도미터블: 괜찮아요…. 따로 바라는 건 없으니까, 뭐든지 마음대로 정하셔도 돼요.
지휘관: 떠맡기는 게 능숙하네.
인도미터블: 유능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일을 맡아야죠.
인도미터블: 답례로…… 이번에는 제가 지휘관님께 마사지를 해 드릴게요.
마사지라고는 했지만 인도미터블은 손가락으로 적당히 조물거릴 뿐이었다.
인도미터블: ……기분 좋으세요?
지휘관: 으음…….
인도미터블: 지휘관님은 항상 믿음직스럽고 모두를 안심시켜 주시니까…….
인도미터블: 뒷일은… 전부…… 맡길게요…… Zzzz…….
말하는 도중임에도 인도미터블은 잠이 들었다.
하루의 피로가 부드러운 정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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