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이음
~01. 리드해줘
동물원. 입구
잇따른 서류나 회의의 격무에서 벗어나 오랜만의 휴일을 맞이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생각이었지만, 차파예프의 권유로 동물원에 왔다.
지휘관: (아직 마무리 못한 서류가 있으니까… 밤에 돌아간 다음…….)
차파예프: 지휘관: 설마 지금 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문득 고개를 들자 주변 경치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있는 차파예프의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지휘관: 아비니, 그게….
차파예프: 그래? 꽤 심각한 모습이었는데? 후후후. 맞혀 볼게.
차파예프: 지휘관이 생각했던 건…… 시간에 대해서야? 아니면 휴일을 사용해서 업무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
지휘관: 미안. 나도 모르게…….
차파예프: 나도 모르게, 구나……. 그러면 안 돼, 지휘관. 오늘은 내가 지휘관의 시간을 빌렸으니까 건성건성 하지 말라구.
그렇게 말하며 차파예프는 망설임 없이 내 손에서 지도를 집어 들고 잠시 훑어본 후, 다시 접었다.
차파예프: 코스는 내게 맡겨.
차파예프: 아예 오늘 하루…… 내가 리드해 줄까?
지휘관: 부탁할게.
차파예프: 어머. 그렇게 쉽게 승낙하는 거야? 못 믿겠는데.
차파예프: 후후후. 끈질기게 조르면 지휘관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수도 있다구?
지휘관: 어흠. 난 괜찮아. 차파예프를 믿고 있으니까.
차파예프: 그래? 좀 실망이야. 지휘관이 졸라 대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차파예프: 그럼 오늘은 전력으로 나와의 데이트를 즐기는 거야.
차파예프: 만약 또 일에 대해 생각하거나 한다면 살짝 '강제적'인 수단을 사용할 거니까.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차파예프는 손가락을 내 옷깃에 가볍게 걸었다. 마치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힘 조절이었다.
→ 기대하고 있을게
지휘관: 그래. 일은 잠시 잊고 차파예프와 노는 것만 생각할게.
차파예프는 미소가 담긴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내 대답을 예상이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차파예프: 후후후. 착하네.
→ '강제적'인 수단…?
지휘관: '강제적'인 수단…?
차파예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차파예프: 예를 들면… 내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하는 거? 물리적으로 말야……. 후후후.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지만, 무심코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휘관: 설마 지금 상황을 노리고 있었던 거야…?
차파예프: 후후후. 귀중한 휴일을 나한테 맡긴 거니까 그 정도는 진작에 각오하고 있던 거 아냐?
지휘관: 주도권을 맡겼으니까. 그래서 이제부터 어디로 가는 거야?
차파예프는 고개를 숙이고 진지하게 지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은 평소보다 부드러워 보였다.
잠시 후, 차파예프는 귀여운 펭귄 그림이 그려져 있는 '빙설 구역'을 가리켰다.
차파예프: 빙설 구역은 어때? 북방연합이라면 친숙한 경치니까.
지휘관: 펭귄 좋아해?
차파예프: 펭귄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펭귄을 쓰다듬는 게 좋아.
차파예프: 펭귄은 정말 정이 깊은 동물이야. 한번 반려를 정하면 절대 저버리지 않아. 대단하지?
차파예프: 지휘관은 어때?
차파예프는 시선을 멈췄다가 다시 떼며 대담하게 웃었다.
대답할 새도 없이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차파예프: 조급해 하지 마. 데이트는 이제 막 시작했으니까♪
~02. 충성심과 독점욕
동물원. 빙설 구역
빙설 구역에 발을 들이자 서늘한 공기가 피부를 어루만졌다.
유리창 너머로 펭귄 무리가 보였다. 펭귄들은 한가로이 몸을 흔들며 뒤뚱뒤뚱 걸으면서 눈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특히 번식 구역은 북적거렸다. 알을 품는 펭귄 부부도 있었고, 부모에게 기대어 있는 아기 펭귄의 모습도 보였다.
차파예프: 꽤 재밌네. 언제나 둘이 딱 붙어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아….
지휘관: 마치 서로를 독점하는 느낌이네…. 차파예프는 혹시 저런 모습을 동경하는 거야?
서로에게 달라붙은 펭귄들을 바라보며 일부러 차파예프에게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차파예프는 천천히 시선을 이쪽으로 돌렸다. 차가온 공기에 두드러진 푸른 눈동자는 한층 더 깊어 보였다.
차파예프: 그럴지도 몰라. 누구라도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싶지 않아?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라든가…….
어딘가 떠보는 듯한, 문득 새어나온 한숨 같은 종잡을 수 없는 말투였다.
→ 뭔가 더 할 말 있어…?
지휘관: 뭔가 더 할 말 있어…?
차파예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차파예프: 글쎄? 솔직하게 들어줬으니까 솔직하게 대답할까?
→ '사랑하는 사람'…?
지휘관: '사랑하는 사람'…?
차파예프는 쿡쿡 웃더니 다시 서로에게 달라붙은 펭귄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차파예프: 그냥 떠오른 걸 말했을 뿐이야. 지휘관도 그럴 때가 있지?
잠깐의 침묵 후, 노닥거리는 펭귄 커플을 바라보던 차파예프는 그대로 내게 몸을 기댔다.
일련의 행동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를 끌어안는 자세가 되어 있었다.
차파예프: 있지, 지휘관? 지금 우리들…… 저 펭귄들하고 비슷하지 않아?
지휘관: 펭귄 흉내라도 내는 거야?
차파예프: 응♪ 이렇게 딱 붙어 있으면 안심이 되거든.
차파예프: 동물의 본능일까? 누구에게 전해 듣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안심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는 거야.
차파예프: 지휘관의 품속이야말로 내가 안심할 수 있는 곳… 일지도 몰라♪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흡족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흐름에 몸을 맡기고 차파예프와 이 달콤하고 평온한 한때를 즐기기로 했다.
차파예프: 펭귄은 사람 말을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있어.
차파예프: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후후후. 지휘관에게는 좀 무거울까?
→ 오히려 좋다고 보는데
지휘관: 감정은 함께하며 커 가는 거야. 난 오히려 좋다고 보는데.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차파예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차파예프: 후후…. 그 말, 기억해 둘게.
→ 사람과 펭귄은 다르니까…
지휘관: 사람과 펭귄은 다르니까….
차파예프는 내 대답을 듣고 오히려 흥이 오른 것 같았다.
차파예프: 그래…? 사람도 펭귄처럼 단순했다면 좋았을 텐데.
차파예프는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서서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내 가까운 안내판으로 몸을 돌렸다.
차파예프: 자. 휴식은 여기까지. 계속 데이트를 즐겨 보자.
내 품속에서 빠져나온 차파예프는 한 걸음 나아가 나를 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차파예프: '만남존'은 더 즐거울 거야…. 지휘관. 이 귀여운 아이들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가 볼래?
펭귄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03. 펭귄의 선물
동물원. 빙설 구역
빙설 구역의 '만남존'은 두꺼운 유리창이 없어서 펭귄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구조였다.
펭귄 몇 마리가 뒤뚱뒤뚱 몸을 흔들며 다가와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새 손님을 올려다봤다.
차파예프: 지휘관이 궁금한 거 같은데?
지휘관: 먹이 주는 줄 알고 기대하는 거 아냐?
차파예프는 장갑을 끼고 작은 생선이 든 양동이를 집어들었다.
차파예프: 장난꾸러기를 길들이는 건 특기니까♪
펭귄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그러나 차파예프는 먹이를 주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양동이를 들어올렸다.
차파예프: 먹이를 원한다면 우선은 조르는 법부터 배워야지.
지휘관: 펭귄한테 그래봤자 못 알아들을 텐데….
차파예프: 지휘관은 알아들었잖아? 후후후. 훌륭한 주인으로서 모두에게 시범을 보여줘.
차파예프는 양동이를 내밀며 받으라는 듯 신호를 줬다.
펭귄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앞다투어 내게 다가왔다. 일단은 그중 한 마리의 입에 먹이를 던져줬다.
차파예프: 너무 응석부리게 두는 건 좋지 않아. 누가 주인인지 제대로 인식시켜줘야지.
차파예프도 양동이에서 생선 한 마리를 꺼내 멀리 던졌다. 그러자 펭귄들은 우당탕탕 생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중 한 마리가 고개를 뻗어 먹이를 삼키고는 만족스러운 듯 머리를 흔들었다.
차파예프: 착하지♪
먹이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수컷 펭귄 한 마리가 아랑곳하지 않고 암컷 펭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수컷 펭귄은 매끄러운 조약돌을 부리에 물고 암컷 펭귄 앞에 살짝 놓았다.
지휘관: 응……?
차파예프: 후후후. 보기 드문 광경을 봤네.
차파예프: 저건 펭귄의 구애 사인이야.
차파예프: 골라낸 돌을 특별한 선물로 맘에 드는 상대에게 주는 펭귄도 있어.
차파예프: 꽤 로맨틱하지 않아?
지휘관: 그러네. 마음이 상대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는데.
말하는 순간 암컷 펭귄이 쓱 돌을 물고 자신의 둥지로 가져갔다.
지휘관: 이건…… 받아들인 건가?
차파예프: 응. 믿을 수 있는 파트너라고 판단한 모양이야.
차파예프: 조금 부럽네.
차파예프: …언제쯤이면 나도 '돌'을 받을 수 있을까?
차파예프: 응? 지휘관?
가벼운 투로 말했지만,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듯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돌'만으로는 좀…
지휘관: 아무리 그래도 '돌'만으로는 좀 성의 없지….
차파예프: 그럴 리가. 신도 마음도 디테일에 깃든다고 하잖아.
차파예프: 네가 돌을 준다면 난 반드시 소중히 간직할 거야.
→ '돌' 받고 싶어…?
지휘관: '돌' 받고 싶어…?
차파예프: 어머, 지휘관.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여?
차파예프: 특별한 사람이 주는 선물…… 당연히 받고 싶은걸.
차파예프: 지휘관이 부끄럽다면 내가 적극적으로 나갈까?
지휘관: 적극적? 차파예프가 돌을 주는 거야…?
차파예프: 후후후. '돌'……?
차파예프는 천천히 검지를 내 입술에 대고 그대로 가슴께까지 쓰다듬었다.
차파예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차파예프: 지휘관에게 줄 건…… 영원히 기억될 만한 거야.
차파예프: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뤄 두는 게… 더 기대되지 않아?
지휘관: 그렇긴 한데… 너무 심한 건 하지 마.
차파예프: 후후후. 원하고 기대하는 그 감촉, 꽤 자극적이지?
차파예프: 기대란 멋진 감정이야.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기대라면 더더욱.
차파예프: 지휘관은 뭘 원할까? 뭐, 맞추기는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04. 붙잡힌 지휘관
동물원. 빙설 구역
먹이 주기 시간이 끝나고 빙설 구역을 다 둘러봤을 무렵에는 펭귄들도 그다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뒤돌아서 가려고 할 때, 펭귄 한 마리가 놀랄 만큼 단호한 눈빛으로 내 옷 가장자리를 꼭 물었다.
지휘관: ……?
지휘관: 음. 얘가 헤어지기 싫나 봐.
차파예프: 지휘관을 여기 붙잡아 두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네.
차파예프: 후후. 펭귄도 지휘관의 매력에는 저항할 수 없는 걸까♪
펭귄은 떨어지기는커녕 날개로 나를 두들겼다. 마치 경솔한 행동은 삼가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주변의 펭귄들도 이를 눈치채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관망하는가 하면, 동료의 행동을 지원하는 아이도 있었다.
지휘관: 큰일났네. 펭귄한테 둘러싸여 버렸어.
차파예프: 그냥 지휘관을 초대하는 걸 수도 있어.
차파예프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도와줄 마음은 전혀 없어 보였다.
지휘관: 좀 도와줄래?
차파예프: 후후후. 지금이 바로 지휘관의 교섭력을 보여줄 때 아냐?
지휘관: 심술쟁이….
어쩔 수 없이 쪼그려 앉아 완고한 펭귄과 대화를 시도했다.
지휘관: 난 이제 가야 돼. 너희가 이러면 못 떠나.
→ 생선 줄게
지휘관: 생선 줄게.
펭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득실을 가늠하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 날개만 퍼덕일 뿐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쉽게 타협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차파예프: 매수하기에는 성의가 부족했나 봐. 후후후.
→ 그래도 안 놔줄 거라면…
지휘관: 그래도 안 놔줄 거라면…
으름장을 놓았지만 펭귄은 떨어지기는커녕 부리에 힘을 줬다. 아무래도 결심이 굳은 것 같았다.
차파예프: 강제로 떨어뜨려 놔도 되지만… 옷이 찢어지지 않게 조심해?
교착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차파예프는 갑자기 몸을 숙이고 손을 뻗어 펭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파예프: 아이 착해라~ 지휘관을 괴롭히지 말아줘~
무척이다 다정한 목소리로 기운찬 펭귄을 달랬다.
그러자 펭귄은 부리를 떼고 차파예프를 올려다보며 작게 울더니, 이내 천천히 한 발짝 물러섰다.
지휘관: 차파예프의 말은 듣는 거냐…….
차파예프: 아까 밥을 줘서 그런가 봐.
겨우 풀려나서 일어나려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펭귄이 근처 수조에 힘차게 뛰어들었고, 덕분에 내 옷은 흠뻑 젖고 말았다.
지휘관: 에엑……….
차파예프: 풀어는 줬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나 봐♪
지휘관: 참 씩씩한 펭귄이네….
지휘관: 갈아입을 옷을 찾아야겠어.
차파예프: 어디… 지도에 따르면 여기 옆에 기념품 가게가 있나 봐.
차파예프: 기념 옷도 팔고 있을 거 같은데?
차파예프: 설마 평소와 다른 모습의 지휘관을 보게 되다니… 이득이네.
차파예프: 아까 펭귄한테 고마워해야겠어♪
차파예프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지금부터 있을 '환복' 시간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고 기념품 가게로 향했다. 차파예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왔다. 방금의 명백한 '사고'에 만족한 모습이었다.
~05. 갈아입기 난제
기념품 가게에는 다양한 동물 상품이 선반에 진열되어 있었다.
차파예프: 북극곰 원피스 파자마… 상어 파카…. 어느 쪽이 좋아?
지휘관: 귀여운 옷 말고는 없어……?
차파예프: 동물원이잖아. 밀리터리 계열 셔츠가 놓여 있으면 이상하겠지?
지휘관: 적어도 좀 더 차분한 건 없나…….
차파예프: 귀여운 건 안 돼? 휴일 분위기도 내고… 무엇보다 신선하잖아♪
지휘관: 아무리 그래도 이걸 입고 돌아다니기는 좀…….
차파예프: 그래. 지휘관은 '수수하고 딱딱한' 걸 좋아한다는 거지?
지휘관: 아니, 평소 이미지하고 별로 어긋나지 않는 걸로…….
차파예프: 평소 이미지라……. 누구의 이미지? 모항 사람들? 아니면 특정한 누군가?
지휘관: 아무튼 평범한 옷이 좋아.
최종적으로 검은 바탕에 흰 펭귄 모양이 그려진 옷을 선택했다. 이 정도면 너무 눈에 띄지는 않겠지.
차파예프: 진짜로 수수한 걸 골랐네.
지휘관: 이거면 됐어. 나답고.
차파예프: 그래? 뭐가 지휘관다운 건지 스스로도 모르는 거 어냐?
지휘관: 그래?
차파예프: 후후후. 조만간 증명해 줄게.
계산을 마치고 옷을 챙겨 탈의실로 가 펭귄의 장난으로 흠뻑 젖은 상의를 갈아입었다.
탈의실을 나서자 차파예프가 이미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머니가 살짝 부풀어 있는 걸 보면 뭔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지휘관: 차파예프는 뭘 샀어?
차파예프: 비밀.
지휘관: 좀 궁금한데…….
차파예프: 후후후. 그렇게 궁금하면… 돌아갈 때까지 참아~
지휘관: 애태우기는…….
차파예프: 아니야. 난 그저…….
차파예프: 깜짝 선물은 좋은 타이밍에 하는 게 즐거우니까♪
지휘관: 알겠어. 일단 그건 나 주려고 산 거란 말이지?
차파예프: 아. 지휘관의 목덜미가…….
차파예프는 내 목덜미에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이 목덜미를 쓰다듬자 피부에 달콤한 소름이 일었다.
지휘관: 방금 일부러 화제 돌린 거지…….
차파예프: 그렇게 알고 싶어?
차파예프: 그럼…… 후후후. 소지품 검사 해볼래?
차파예프: 지휘관이 하고 싶다고 하면 기꺼이 허락할게.
차파예프는 내 손을 잡아 가슴에 대고 눌렀다. 나는 부드러운 감촉과 고동을 느끼며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손을 거뒀다.
지휘관: 역시 돌아가서 하자.
차파예프: 약속이야♪
~06. 밤의 송별
모항. 부두
동물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차파예프와 함께 모항으로 돌아왔다.
눅눅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차파예프는 천천히 걸었다. 마치 시간을 끄는 것 같았다.
지휘관: 오늘은 유난히 거리가 가깝네….
차파예프: 어머. 지휘관은 싫어?
지휘관: 그냥 왠지 평소의 차파예프하고 좀 다른 거 같아서.
차파예프: 지휘관이야말로 너무 일에만 몰두하느라 '평소의 차파예프'가 어떤 느낌인지 잊어 버린 거 아냐?
지휘관: 그런가…….
차파예프: 그래. 아까 지휘관이 눈썹을 찡그렸을 때의 표정도 말야.
차파예프: 돌아가면 어떤 일부터 할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어. 그러면 안 돼.
지휘관: 미안해. 못 끝낸 일은 없나 하고 나도 모르게 생각해 버려서….
차파예프: 바로 그거야. 지휘관은 서류 작업에 길들여져 있으니까.
차파예프: 이렇게 배웅해 주지 않으면 또 일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걸.
지휘관: 하하하…. 여기까지로도 충분해. 차파예프도 이만 숙소로 돌아가.
차파예프: 어머? 찔렸어? 일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차파예프: 아니면 집무실까지 배웅하면…… 뜻밖의 일이 생길까봐 걱정해 주는 거야?
지휘관: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는데….
차파예프: '돌아가면 소지품 검사 하겠다'고 아까 그랬었지?
차파예프: 설마 이대로 돌아가게 할 셈이야?
지휘관: 이런. 기억하고 있었구나….
차파예프: 약속이니까 잊을 리가 없지.
차파예프: 아무튼 집무실까지 바래다줄게. …약속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차파예프에게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집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차파예프: 흐흥. 이렇게 빨리 순응하다니…. 사실 이런 전개를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
지휘관: 그럴 리가….
차파예프: 무리하는 것도 아니지?
지휘관: ………….
차파예프: 수줍어하다니 너답지 않은걸.
차파예프는 경치를 즐기는 것 같으면서도 가끔 이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한가로이 걸었다.
차파예프: 오늘은 즐거웠어?
지휘관: 응. 적어도 서류 작업보다는 압도적으로.
차파예프: 그럼 반쯤은 성공한 셈이네?
지휘관: 반쯤?
차파예프: 나한테 시간을 더 내줄 수 있도록. 지휘관이 내게 익숙해지게 하려고 한 거니까.
→ 익숙해지면 더는 못 돌아갈 거 같아…
지휘관: 익숙해지면 더는 못 돌아갈 거 같아….
차파예프: 바라던 바야. 한번 익숙해지면 도망치고 싶어도 더는 도망칠 수 없는걸.
→ 그냥 평범하게 알려 줄래…?
지휘관: 그냥 평범하게 알려 줄래…?
차파예프: 후후후. 지휘관을 어디까지 초조하게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서♪
----
모항. 집무실
지휘관: 다 왔네.
차파예프: 배웅은 여기까지. 다음은…….
차파예프는 집무실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문고리를 잠시 응시한 뒤, 천천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휘관: 뭐하려고…?
차파예프: 지휘관을 위해 준비한 '선물', 기억하고 있지?
~07. 독점의 증명
모항. 집무실
차파예프는 책상에 기대어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지휘관: 그래서 '선물'이 뭔데…?
차파예프: 갑자기 적극적이네?
차파예프: 참는 것도 슬슬 한계지?
지휘관: 역시 소지품 검사구나…….
차파예프: 후후후. 약속한 거니까.
차파예프: 자. 어떻게 검사할 거야? 우선 어디부터?
망설임을 거두고 그녀의 옷 주머니에 손을 넣자 복슬복슬한 털이 달린 목줄을 찾아냈다.
금속 자물쇠가 불빛에 비춰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 이걸 채우고 싶어……?
지휘관: 이걸 채우고 싶어……?
차파예프: 후후후. 지휘관도 참 눈치가 빠르다니까.
→ 이건 좀 예상 밖인데
지휘관: 이건 좀 예상 밖인데.
차파예프: 어머. 지휘관의 '예상'은 어떤 거였는데?
차파예프: 그래도 전혀 싫다는 기색은 아니네~
차파예프는 목줄을 받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녀는 조용하게 내 목덜미로 시선을 돌렸다.
차파예프: 저기, 지휘관. 차고 싶어?
지휘관: 뭔가 대담하네….
차파예프: 소중한 거니까 대담해지는 것도 당연하지. 자,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녀의 손끝이 목덜미에 닿았다. 이어서 시원한 감촉이 느껴지더니―― 찰칵하고 금속 자물쇠가 채워졌다.
차파예프: 됐다. ……음.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
지휘관: 어울린다니… 무슨 의미야?
차파예프: 기대했던 광경과 같다는 의미야.
내 목덜미에서 가슴팍으로 시선을 내리며 차파예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지휘관: 나 참. 보기 좋게 당했네.
차파예프: 거절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녀는 내게 몸을 기대고 귓가에 숨결을 뱉으며 속삭이는 듯한 부드러운 감촉을 남겼다.
차파예프: 이제 익숙해졌으니…… 좀 더 가까이 가도 되지?
나를 쓰다듬던 손가락이 목줄의 자물쇠에서 멈췄다. 그녀는 좀 더 힘을 줘 목줄을 조였다.
지휘관: ……차파예프.
차파예프: 왜?
지휘관: 이이상 계속하면 나도 반격할 거야.
차파예프: 그래? 어떻게 반격할지…… 기대되네♡
'스토리 및 관련 글 > 캐릭터 스토리&메모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가도르 캐릭터 스토리 ~폭풍 속의 온기 (0) | 2025.03.14 |
---|---|
메모리즈 ~하얼빈, 임플래커블 (0) | 2025.01.26 |
롱우 캐릭터 스토리 ~가자! 미식 농장! (0) | 2025.01.04 |
메모리즈 ~브레머튼, 시만토 (1) | 2024.12.31 |
뤼초 캐릭터 스토리 ~스위트 드림을 되찾아라 (0) | 2024.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