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및 관련 글/대형·전초전 스토리

우리에 갇힌 신광 上

킹루클린 2025. 2. 28. 15:43

 

 ~01. 고난이 지나고
‘사르데냐. 심판의 땅’
‘옛 왕국은 하루아침에 변했다’
‘사르데냐. 기적의 땅’
‘천둥도 비도 모두 은혜를 입었도다’
‘사르데냐. 영원의 땅’
‘신광이 빛나는 한, 그 번영은 영원히 계속되리라’
――『신의 빛이 비추는 사르데냐』 발췌.

----

 

대성당 발코니. 신임 교황 마르코 폴로는 눈앞의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마르코 폴로[사디아 교국]: ……아….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절묘한 침묵 이후, 신임 교황은 마침내 끝없이 펼쳐진 군중의 바다를 향해 첫 마디를 내뱉었다.

마르코 폴로: 어어……. 모두…… 좋은 아침? 햇살이 좀 강하네……?

'거짓 신 사건' 이후 혼수 상태에 빠졌을 마르코 폴로는 왠지 모르게 다른 세계에 와 있었다.
분명 성좌의 교황 자리를 노렸던 것은 맞지만… 이런 급전개를 당하니 아무리 마르코 폴로라고 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얼버무리려고 다음 말을 하려는 순간, 양쪽에서 소녀 두 명이 다가왔다.

조수에 카르두치[피렌체 공화국]: 죄송합니다, 교황 성하. 햇살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네.
조수에 카르두치: 바로 차양막을 설치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라파엘로[피렌체 공화국]: 그 사이에 나는 이 거룩한 순간을 그리고 있을게♪

마르코 폴로: (얘들은…… 성좌의 서기관과… 화가인가?)

조수에 카르두치: 교황 성하. 이거 받아.

차양막이 준비되는 동안 자신을 '조수에 카르두치'라고 밝힌 서기관은 슬며시 마르코 폴로에게 연설문 원고를 건넸다.

마르코 폴로: (휴…. 눈치가 빠르구만. 아주 좋아!)
마르코 폴로: 너. 카르두치라고 했지?

조수에 카르두치: 응. 교황 성하. 성하의 모습을 보니 당황해서 어쩔 줄……이 아니라 심신에 무슨 이상이 생긴 거 같아서.
조수에 카르두치: 라파엘로와 함께 조금 더 시간을 끌 테니 그 사이에 연설문을 복습해. 정 안 되겠으면 그대로 읽어도 돼.
조수에 카르두치: 연설이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자.

마르코 폴로: 알겠어. 고마워.

차양막이 설치되고, 라파엘로가 구도를 다 잡아갈 무렵, 신임 교황 마르코 폴로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침착하고 자신 있게, 당당한 모습으로 원고 없이 연설하기 시작했다.
연설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환호 속에 신임 교황의 회견은 무사히 막을 내렸다.

----

 

회견이 끝난 뒤, 마르코 폴로는 카르두치와 라파엘로의 안내를 받아 교황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나눈 대화를 통해 마르코 폴로는 두 소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조수에 카르두치, 성좌의 서기관이자 시인. 라파엘로, 성좌와 인연이 깊은 프리랜서 화가.

마르코 폴로: 아까는 고마웠어. 너희 도움이 아니었다면 큰일이었을 거야.

조수에 카르두치: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교황 성하야말로 그렇게 훌륭한 즉흥 연설을 할 수 있으면서 왜 처음에는 그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어?
조수에 카르두치: 혹시 의식이 완전하게 진행되지 않은 탓에 뭔가 정신적인 영향이 남아 있나?

마르코 폴로: ……의식?

마르코 폴로는 '의식’이라는 말에 날카롭게 반응했다.

조수에 카르두치: 응. 성하는 '신의 유적'에 남겨진 기술을 이용해 구현됐어.
조수에 카르두치: 따라서 성하는 교황이 될 운명이고, 비범한 힘을 가지도록 정해졌어.
조수에 카르두치: 이 얘기, 전에도 성하께 한번 말한 적 있었는데…….

조수에 카르두치가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마르코 폴로: 전에도 한번 말했었다고? ……그 연설문 원고처럼?
마르코 폴로: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 오기 전 꿈속에서 뭔가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그의 시선이 나를 주시한다', '찬양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나는 구름에서 내려와 천국으로 돌아간다.‘
잠들어 있을 때 들렸던 찬양 소리. 그 목소리는 왠지 귀에 익은 것 같았다――
'의식'이란 무언가를 강림시키는 것이었나?

마르코 폴로: 라파엘로. 너도 '강림 의식'에 참여했어? 그럼 우리는 오늘 처음 본 게 아니야…!?

라파엘로: 당연하지! 이번 의식이 성공한 건 내 그림 덕분인걸!
라파엘로: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성하가 나를 알기 전부터 나는 성하에 대해 알고 있었어~

마르코 폴로: ……무슨 뜻이야??
마르코 폴로: …알겠다! 내 초상화를 그리고, 그걸 촉매로 삼아 강령인가 뭔가로 날 여기에 소환한 거지!?
마르코 폴로: 그런데 내 모습은 어떻게 알고 그린 거야?

라파엘로: 꿈에서 본 대로 그렸어☆

마르코 폴로: ……너, 시나노라고 알아?

라파엘로: 어…… 누군데?

마르코 폴로: 아니, 됐어. 대충 이해했으니까.
마르코 폴로: (만약 신의 계시 같은 거라면 납득은 가지만……. 아니, 이건 어쩌면 신이 주신 기회……?!)
마르코 폴로: (잠든 사이에 영혼만이 이 세계에 강림한 건가…?)

조수에 카르두치: 교황 성하.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성하의 강림은 신이 내린 기적이야. 비록 약간의 후유증이 있더라도, 당신은 의심할 여지없는 교황 성하야.

마르코 폴로: 후유증은 아냐. 그냥 생각 좀 하느라…….
마르코 폴로: 뭐. 너희가 날 여기로 불러냈으니, 내가 원래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마르코 폴로: 너희가 내 편이라면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마르코 폴로: 일단 첫 번째. 세이렌은 지금 뭘 하고 있어? 두 번째. 이 세계의 '신'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줄래?

라파엘로: 응?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니, 그 의식은 설마 정말로 천국에서 영혼을 불러내는 거였어……?

마르코 폴로: ……뭐?? 날 강령한 건 너희들 아냐?

라파엘로: 맞아. 근데 의식 같은 것도 하긴 했지만 사실 멘탈 큐브도 썼거든…….
라파엘로: 이론적으로는 우리하고 같은 존재여야 하지 않아?

마르코 폴로: ……아까는 '신의 유적'에 남겨진 기술이라고 그랬잖아!

라파엘로: 딱히 거짓말은 안 했는데? '신의 조선소'에서 치르는 의식이니까 당연히 거기 남겨진 기술을 사용했지.
라파엘로: 참고로 나하고 카르두치도 신의 조선소에서 태어났어! ……뭐, 이상한 기계는 안 썼지만.
라파엘로: 음……. 그런 면에서 보면 확실히 성하는 특별하다고 할까…. 그래서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했구나~
라파엘로: ……나 완전 천재 아냐???

라파엘로는 혼자 멋대로 수긍한 것 같았다.

마르코 폴로: ……신의 조선소? 그 '신의'라는 건 단순한 지명이야……?

라파엘로: 아니, 정말로 신의 기적이야! 조선소 말고도 신의 궁전이나 신의 정원, 신의 무기고 같은 것도 있어!
라파엘로: 궁금하면 내가 관광 루트라도 짜 줄까?

마르코 폴로의 머리는 점점 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마르코 폴로: 자, 다음! 세이렌은 어쨌는데?! 세이렌은!

라파엘로: 세이렌……이 뭐야?

마르코 폴로: …………?

라파엘로: ……?

조수에 카르두치: 크흠. 아무래도 교황 성하께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할 것 같아.

마르코 폴로: 그래! 정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

조수에 카르두치: 알겠어. 바로 준비할게.
조수에 카르두치: 다만 추기경단 회의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우선은 그쪽 일부터 준비하자.

마르코 폴로: ……이, 일? 벌써?

조수에 카르두치: 응. 교국의 각종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걸.

마르코 폴로: 하아…… 알겠어.
마르코 폴로: (위대한 교황 마르코 폴로……. 힘내자…!)



 ~02. 사르데냐 연맹

 

며칠간의 지옥 같은 정보 수집을 거쳐 근면하고 천재적인 마르코 폴로 교황은 비로소 자신이 처한 세계의 상황을 겨우 파악할 수 있었다.
지루한 회의를 마친 후, 그녀는 집무실로 돌아와 안락의자에 몸을 누이고 며칠 동안 보고 들은 것을 정리했다.

마르코 폴로[사디아 교국]: 결론부터 말하면――이곳, '사디아 교국'은 신앙의 중심으로서 함선 교황을 원했어.
마르코 폴로: 그래서 많은 준비를 거치고, 뭔지 모를 원리로 잠자고 있던 내 영혼을 불러내서 멘탈 큐브로 구현한 몸에 강림시켰어.
마르코 폴로: 즉, 여기에 있는 '마르코 폴로'는 나지만 내가 아니기도 해.
마르코 폴로: 내게는 그저 꿈만 같은 곳이지만, 여기 사람들에게 이곳은 틀림없는 현실이야.
마르코 폴로: 재밌네……. 하늘에 있는 존재에게 강림이란 이런 느낌일까.
마르코 폴로: 흠……. 솔직히, 나쁘지 않아!

마르코 폴로는 머리를 흔들며 근처에 있던 과자를 입에 쑤셔 넣었다.

마르코 폴로: 그래. 나는 교황이 되고 싶었어. 어디의 교황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마르코 폴로: '신'은 역시 나를 버리지 않았어!
마르코 폴로: 하지만… 정말로 내 야망을 이뤄 보라고 이곳으로 부른 걸까…….
마르코 폴로: 그치만 이 세계는 좀 이상한걸….

마르코 폴로는 몸을 돌려 책상 구석에 놓여 있던 지도를 끌어당겨 펼쳤다.

 

마르코 폴로: 이곳은 아펜니노 제도의 사르데냐 연맹.
마르코 폴로: 아펜니노 제도에 위치한 국가들의 공동체.
마르코 폴로: 지금으로부터 약 천여 년 전. 당시의 아펜니노 지역은――아직 내가 알고 있는 아펜니노 반도였어.
마르코 폴로: 시간이 흐르고, 제국은 끊임없는 전화로 인해 붕괴했어야 하지만… 이곳의 역사는 내가 아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어.
마르코 폴로: 이곳의 제국은 수많은 전쟁을 이겨내고 중흥의 기세마저 보였어.
마르코 폴로: 하지만 이신을 믿었던 제국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지. ……'신광의 성재'라고 불리는 천벌로 인해.
마르코 폴로: 그 '신'의 천벌은 제국을 완전히 파괴했고, 심지어 대지마저 찢었어.
마르코 폴로: 성재 이후, 아펜니노 반도는 완전히 조각나서 아펜니노 제도로 바뀌었어. 그리고 사디아 교국이라는 이름의 국가가 탄생했어.
마르코 폴로: 그 후로 천 년이 더 흐르고, 아펜니노 제도에 생긴 7개의 나라는 사르데냐 연맹을 형성했어.

마르코 폴로: 중앙에 위치한 사디아 교국과 피렌체 공화국.

마르코 폴로: 서부의 제노바 공화국.

마르코 폴로: 북부의 밀라노 공국.

마르코 폴로: 동부의 베네치아 공화국.

마르코 폴로: 그리고 남부의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
마르코 폴로: 이 둘은 병합되면서 양시칠리아 왕국이 되었어.

 

마르코 폴로: 사르데냐 연맹의 각국은 사디아 교국을 맹주로 받들고 있어.
마르코 폴로: 단순히 가장 먼저 탄생했기 때문은 아니야. 교리에 따르면 신은 분명히 존재하고, 교국 각지에 '신의 유적'을 몇 군데 남겼기 때문이야.
마르코 폴로: 이 유적들은 교국을 기술과 문화면에서 항상 선도적인 위치에 올려놨고, 타국을 압도할 수 있는 군사적 우위도 제공했어…….

아무렇게나 지도를 내던지고 마르코 폴로는 의자에 길게 드러누워 머리를 짚었다.

마르코 폴로: 신이 남긴 신의 조선소, 신의 정원, 신의 무기고…….
마르코 폴로: 세이렌이 없는 이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마르코 폴로: 왜 내가 아는 세계하고 이렇게 다른 거지……?
마르코 폴로: 아, 잠깐만……. 세이렌이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야!
마르코 폴로: 클레망소가 전에 세이렌은 각 실험장에서 모두 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고 그랬었지…….
마르코 폴로: 어디에서는 온건하게, 어디에서는 과격하게, 또 어디에서는…… 상당히 기묘하게.
마르코 폴로: 지금 상황이 바로 기묘 그 자체야.
마르코 폴로: 어쩌면 이것도 음흉한 세이렌의 또 다른 실험일지도…….

(똑똑똑)


수많은 정보를 조합하며 세이렌의 음모를 파악하려는데, 집무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내 라파엘로와 카르두치가 방으로 들어와, 의자에 길게 드러누워 있는 마르코 폴로의 모습을 발견했다.

조수에 카르두치[피렌체 공화국]: 교황 성하…. 조금은 체면을 신경 써줘…….

카르두치는 책상에 널브러진 과자들을 치우며 서류를 정리했다. 반면 라파엘로는 마르코 폴로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마르코 폴로: 너희는 다 내 측근이니까 너무 예의 안 차려도 되잖아! 힘들다구!
마르코 폴로: 그런데 왜 갑자기 온 거야?

조수에 카르두치: 9호 신의 무기고에서 청소 작업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이 왔어. 언제든지 개방할 수 있어.
조수에 카르두치: 물론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면 며칠 더 기다리라고 할 수도 있어.

마르코 폴로: 9호 신의 무기고……. 예로부터 봉인되어 있었고, 오직 나만이 열 수 있다고 추기경단이 말했던 그 무기고 말이지?

조수에 카르두치: 응. 성좌의 문헌에 따르면 그곳에는 신이 신도들을 위해 남긴 최강의 무기와, 한층 더 높은 힘을 얻을 수 있는 단서도 있다고 해.

마르코 폴로: 모험의 시간인가……. 아주 좋아! 궁금하기도 하고 준비도 됐어.

조수에 카르두치: 알겠어. 바로 출발 준비를 할게. 한 시간 뒤에 출발할 거야.
조수에 카르두치: 가자. 라파엘로.

라파엘로[피렌체 공화국]: 뭐어!? 잠깐만. 지금 막 영감이 떠올랐는데, 스케치만 할게!

마르코 폴로: 카르두치. 라파엘로는 잠깐 여기 있게 해줘. 이 마르코 폴로의 용모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니까!

조수에 카르두치: ……하아. 그럼 한 시간 뒤에 보자.

마르코 폴로: (후후……. 나만 열 수 있다, 라…….)
마르코 폴로: (이게 바로 선택받은 주인공의 역할인가……!)
마르코 폴로: (아주 좋아! 신이든 세이렌이든 전부 덤벼! 내가 직접 너희의 정체를 파헤쳐 주마!)



 ~03. 신앙? 심상?

 

잠시 차에 몸을 실은 뒤, 마르코 폴로 교황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호위 담당인 마조레 바라카가 이미 교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조레 바라카[사디아 교국]: 예포――발사!

펑――!

마조레 바라카: 마르코 폴로 교황 성하. 신의 무기고에 온 걸 환영해.
마조레 바라카: 나는 호위 담당 마조레 바라카야. 오는 길은 문제없었어?

그렇게 말하면서 마조레 바라카는 정중하게 마르코 폴로에게 인사했다.
마르코 폴로는 눈앞의 성대한 영접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감회에 젖었다.

마르코 폴로: (크으윽……. 베네토, 리토리오, 클레망소는 매번 외출할 때마다 이런 대우를 받는 건가…….)
마르코 폴로: (하지만 여기서는 이 마르코 폴로가 한 수 위야. 오~호호호호!)
마르코 폴로: 그래. 별 문제없었어. 바라카. 호위는 잘 부탁해.
마르코 폴로: 그런데 이 교회가 내가 열기로 한 9호 신의 무기고야?

확실히 눈앞의 건축물은 훌륭했지만, '신의 무기고'라는 이름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마조레 바라카: 교황 성하. 저건 입구를 숨기기 위한 위장이야. 진짜 무기고는 교회 지하 공간에 있어.

마르코 폴로: 지하라... 뭐, 납득은 가네. 거대한 시설을 숨기기에는 수중이나 지하가 가장 좋으니까.
마르코 폴로: 저번에 나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주위의 호기심을 느꼈는지 마르코 폴로는 억지로 말을 끊고 조금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문득 고개를 들자 상공에 낯익은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알프레도 오리아니[사디아 교국]: 음…. 이 각도 괜찮네~!

(찰칵)

알프레도 오리아니: 몇 장 더 찍어서 이 역사적인 순간을 제대로 기록해야지!
알프레도 오리아니: 다 빈치! 좀 안정적으로 유지해 봐! 코스에서 벗어나잖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피렌체 공화국]: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마르코 폴로: (알프레도하고 다 빈치……? 저 애들도 이리로 넘어온 건가?!)
마르코 폴로: (아니아니…… 일단 진정하자! 이 실험장 사람일지도 모르잖아!)

조수에 카르두치: 저 두 사람은 교국의 유명한 기자 '알프레도 오리아니'와 대발명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야.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오늘 초대받았어.
조수에 카르두치: 그렇다고는 해도…… 갑자기 비행기에 올라타서 사진을 찍어대다니…….
조수에 카르두치: 무기고까지 동행하지는 않을 거야. 만약 성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지금 바로 돌려보낼 수도 있지만.

마르코 폴로의 시선을 눈치챈 카르두치가 서둘러 두 사람에 대해 설명했다.

마르코 폴로: 흐음……. 저 애들은 여기 오래 있었어?

조수에 카르두치: 응. 오래 전부터 교국을 위해 일해 왔고,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야.

마르코 폴로: (그럼 문제없네. 모처럼 기분 좋게 지내고 있는데. 실험장β에서 내가 벌인 일을 까발리러 온 게 아니라면야….)
마르코 폴로: 아주 좋아. 나의 위대함을 기록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지.
마르코 폴로: 일단 내버려 둬. 그보다 언제 본론으로 들어갈 거야?

마조레 바라카: 교황 성하. 이쪽으로 와.

----

마조레 바라카의 안내를 받아 교회 지하로 들어가, 뒷문을 통해 어느 터널로 들어갔다.
터널로 들어가자 주변 벽의 재질이 금속으로 바뀌었고, 조명과 통로 구조도 바깥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선두에는 마조레 바라카가 아닌 라파엘로가 걷고 있었다.

라파엘로: 드디어 9호 신의 무기고의 외곽에 도착했어♪ 이제 첫 번째 검문소를 통과할 거야!
라파엘로: 안전 인증이 끝날 때까지 절대 나보다 앞서면 안 돼!

그렇게 말하고 라파엘로는 바로 앞에 있는 삼엄한 관문으로 향했다.

마르코 폴로: (알 수 없는 합금으로 만들어진 관문. 그리고 낯선 형식의 자동 경계 시스템……. 이 세계의 사르데냐 연맹의 기술 수준과는 너무 차이가 커.)
마르코 폴로: (그래도 흰색을 기조로 한 디자인을 보면 세이렌 시설도 아닌 거 같은데……. 아니, 아직 단언할 수는 없어. 세이렌의 위장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라파엘로: 자. 인증 완료♪ 이제 지나가도 돼~

마르코 폴로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 라파엘로는 제1검문소의 인증을 마쳤다.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리며 길이 트였다. 그때 마르코 폴로는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마르코 폴로: ……라파엘로. 너 전에 9호 무기고는 나만 열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마르코 폴로: 너 어떻게 인증을 통과한 거야?

라파엘로: 에헤헤~ 난 대단하니까?
라파엘로: 농담이야 농담! 내가 통과할 수 있는 건 외곽 검문소뿐이야. 무기고 본관문은 마르코 폴로 성하가 직접 해야 돼!

마르코 폴로: ……같은 시설인데 왜 그렇게 나눠 놨어?

조수에 카르두치: 하아…. 역시 내가 설명할게.
조수에 카르두치: 교국이 오랫동안 진행해 온 계획은 바로…… 신의 무기고를 열 수 있는 '함선 교황'을 만드는 거였어.
조수에 카르두치: 그래서 성하를 강림시킬 때는 일반적인 함선의 탄생과는 다른 과정을 거쳤지. 라파엘로의 그림도 그 중 하나야.
조수에 카르두치: 애초에 라파엘로도 이 계획의 바로 전 단계에서 탄생한 존재라서 조금 특별한 점이 있어.
조수에 카르두치: 신의 유적의 도움으로, 라파엘로는 탄생 직후 몇 가지 특별한 힘을 갖게 됐어.
조수에 카르두치: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신앙의 힘을 응축시키는 것. 다른 하나는… 신의 시설 일부의 인증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

마르코 폴로: ……그림을 그려서 신앙의 힘을 모을 수 있다고……?
마르코 폴로: 흐음…. 그러니까 네가 무심코 그린 그림이라도 신의 가호가 깃들어서…….
마르코 폴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성물이 된다는 거야?

라파엘로: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구체적으로는 얼마나 '심상'을 쏟았는지, 나머지는 신의 기계와 얼마나 상성이 잘 맞는지에 달려 있달까?

마르코 폴로: ……'심상'이 뭐야? '신의 기계와의 상성'은 또 뭐고?

라파엘로: 음……. 심상은 말 그대로 마음속의 이미지 같은 느낌이야.
라파엘로: 대부분의 성좌 사람들――가령 카르두치는 '신앙의 힘'이라고 부르고 싶어하지만, 나하고 다 빈치는 '심상'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
라파엘로: 특별히 강한 신앙을 가진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신앙이 얕거나, 불신자라도 어느 정도는 이런 힘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딱히 신과 관련 있는 것도 아니고…….

조수에 카르두치: 말장난이야. 애초에 누구나 '심상'을 신의 기계와 통하는 형태로 전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라파엘로: 그러니까 성좌가 뭔가 감추고 있는 게 틀림없다니까.
라파엘로: 힘의 근원은 같은데 '신앙'만이 성좌의 인정을 받아 전환될 수 있고, 그 외에는…….

마조레 바라카: ……크흠!

라파엘로: 악! 큰일 났다!

라파엘로는 교황의 면전에서 성좌를 "폄훼'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깨달았다.
그녀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마르코 폴로를 바라봤다.
마르코 폴로는 얼핏 평온해 보였지만, 사실 그녀의 마음은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다.

마르코 폴로: (그림을 통해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성좌의 규칙에 따라야 하긴 하지만, 지금은 내가 교황인데 내가 바로 규칙 아냐!?)
마르코 폴로: (그렇다면…… 강력한 무기를 많이 그려서 구현시킬 수도 있나……?!)
마르코 폴로: (그래! 동료도 그려달라고 하자! ……교황인데 충성스러운 근위대 정도는 가져도 되잖아!)
마르코 폴로: (퀸 엘리자베스에 클레망소,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그리고 그 무슨 아주르 레인의 지휘관도…… 모두 나를 섬기게 하는 거야……!)
마르코 폴로: 헤헷……후후……오~호호호호호!!

조수에 카르두치: 저기…… 마르코 폴로 성하? 괜찮아?

라파엘로: 으에에엑…. 망했다, 완전 화난 거 같은데…….

마르코 폴로: 하아…하아… 괜찮아! 그냥 좀 재밌는 일이 생각난 것뿐이야!
마르코 폴로: 라파엘로. 다음에 나를 위해 그림을 그릴 때 좀 더 창의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어?

라파엘로: ……창의적인 디자인?

마르코 폴로: 응. 가령 '성창'이라든지, 네 쌍의 '날개', 거대한 '신성 기갑' 같은 건 어때?

라파엘로: ……아! 알겠어, 그런 거 좋아하는구나! 성하께서 원한다면 물론!
라파엘로: 그거 말고는 자유롭게 그려도 돼? 신화 속 생물을 애완동물로 만들어 보는 건 어때?

마르코 폴로: 역시 대화가……. 이해력이 아주 좋아!

라파엘로: 나야말로 이렇게 개성적이고 소탈한 교황은 처음 봐!

마르코 폴로: 오~호호호!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라파엘로!

라파엘로: 넵~! 분부대로!!

조수에 카르두치&마조레 바라카: ………….



 ~04. 선택받은 자의 문
라파엘로와 마르코 폴로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일행은 최종 목적지 앞에 도달했다.

라파엘로: 저기 보이는 게 나조차도 열 수 없는 관문……. 성좌가 '선택받은 자의 문'이라고 부르는 관문이야.
라파엘로: 소문에 의하면 저 너머에는 신이 남긴 강력한 무기와, 한층 더 높은 힘을 얻을 수 있는 단서가 있다고 하니까…… 이제 교황 성하 차례야☆

마르코 폴로: 흥. 그야 쉽지. 맡겨줘!

마르코 폴로는 씩씩하게 거대한 선택받은 자의 문 앞까지 걸어갔다.
라파엘로가 전에 검문소를 통과했을 때를 떠올리며, 기도문을 낭독한 후 두 손을 관문의 합금 부분에 대고 꾹 눌렀다.
그러자 마치 자신의 존재가 인증되는 것 같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타고 흐르는 힘을 느꼈다.
잠시 후, 힘이 사라짐과 동시에 선택받은 자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마르코 폴로: (쳇……. 이렇게 쉽게 열리는 거였어? 좀 더 빤짝이 효과 같은 거라도 나왔으면 흥이 날 텐데…….)

마조레 바라카: 축하해, 교황 성하! 오늘 이후로 사디아 교국의 힘은 더욱 커질 거야!

마르코 폴로: (그래! 내 힘도 더욱 강해지는 거야!)
마르코 폴로: 크흠. 기뻐하기는 아직 일러. 자. 내 뒤를 따라! 안에 뭐가 있는지 봐야겠어!

 

거대한 문을 지나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놀라울 정도로 광활한 공간이었다.

마조레 바라카: 산과 강, 그리고 하늘……? 와아……. 이런 넓은 공간을 가진 신의 유적이라니……!
마조레 바라카: 대성당 아래 '신의 정원'에 이은 사디아 교국 역사상 두 번째로 발견된 '신성 영역'이야!

마르코 폴로: (이거 분명 경면해역이야……! 역시 세이렌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어…….)
마르코 폴로: 크흠……. '신성 영역'이 뭐야?

라파엘로: 음…. 보는 대로야. 우리는 지금 지하에 있는데 이렇게 푸른 하늘이 펼쳐진 공간에 들어왔잖아?
라파엘로: 성좌는 이런 식으로 하나의 독립된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공간을 '신성 영역'이라고 부르면서 최고위 기적으로 간주하고 있어.
라파엘로: 하지만 나와 다 빈치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기술은 본질적으로 의장 기술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을 거야….
라파엘로: 뭐, 성좌는 우리들 함선이나 의장 기술도 함께 묶어서 '기적'으로 칭하고 있지만♪
라파엘로: 뭐랄까……. 자기들 멋대로 납득하고 끝냈단 느낌?

마조레 바라카: ……어흠!

라파엘로: 아. 내 입이 좀 방정이라… 데헷☆

마르코 폴로: 괜찮아. 난 그렇게 인색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라파엘로의 고찰에는 흥미로운 부분도 있고.
마르코 폴로: 선택받은 자인 내가 열었으니까 내부에 위험 요소는 없을 거야.
마르코 폴로: 여기는 효율성있게 나눠서 탐색하는 건 어때?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의 말씀대로.

마르코 폴로: 아주 좋아! 수상한 기계는 함부로 만지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3시간 후에 다시 여기로 모이는 거야!

모두가 사방으로 흩어진 뒤, 마르코 폴로는 경면해역에 들어왔을 때부터 눈여겨봤던 방향으로 곧장 나아갔다.
오랜 세월 세이렌의 경면해역을 연구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대로 진행하면 분명 중요한 시설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예감은 적중했다.
그리 멀지 않은 산기슭에 설치된 시설이 마르코 폴로의 눈길을 끌었다.
안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탐색한 결과, 지금까지 확신하지 못했던 추측에 대한 증거를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 경면해역. 양산형 함대와 함선 장기말 보관 창고……. 그리고 본 적 없는 대량의 방어 무기들……. 강력한 무기라는 건 이걸 말했던 거구나.
마르코 폴로: 한층 더 높은 힘의 단서라는 건 세이렌의 생산 라인이었고….
마르코 폴로: 틀림없어…… 외관도 내부도 내가 알던 거하고는 다르지만, 이 '신의 무기고'는 바로 세이렌의 무기고야!!
마르코 폴로: 그런데 잠깐만…….
마르코 폴로: 그렇다면 사르데냐 연맹이 수백 년간 믿어 왔던 신은 사실 세이렌이라는 거잖아?
마르코 폴로: 교국이나 성좌도 세이렌에게 조종당하는 광대였다는 거고…….
마르코 폴로: 그럼 나는 성좌의 교황이니까…… 즉 우두머리 광대?!
마르코 폴로: 아……. 나 또 놀아날 뻔한 거야!?
마르코 폴로: 아니아니, 말이 안 되잖아!
마르코 폴로: 이곳의 신이 세이렌이라고 한다면, 난 세이렌에게 선택받은 거야……?
마르코 폴로: 이상하네……. 그 하얀 공간에서는 분명 그분의 존재가 느껴졌었는데…….
마르코 폴로: 실제로 난 이런 세이렌 시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고….
마르코 폴로: 제일 이상한 건, 이런 핵심 시설 같은 곳까지 왔는데 상위 세이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마르코 폴로: 옵저버라든가… 분명 나한테 접촉을 시도했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광대로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길 바라는 거야?
마르코 폴로: …아니. 이제 알았어.
마르코 폴로: 그래! 나는 광대가 아냐. 진정으로 선택받은 자.
마르코 폴로: 나를 택한 건 세이렌이 아니라 진짜 '신'……. 나를 이곳으로 부르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 진짜 신이야!
마르코 폴로: 맞아, 분명해!

마르코 폴로가 온갖 헛된 생각을 하는 사이 3시간이 훌쩍 지나 집합할 시간이 됐다.

조수에 카르두치: 교황 성하. 이번에 얻은 수확은 모두 기록했어.
조수에 카르두치: 이곳은 문헌에 나와 있던 대로 진정한 신의 무기고야…….

마르코 폴로: 그래…….

마조레 바라카: 다시금 축하해. 마르코 폴로 교황 성하.

마르코 폴로: 그래…….

라파엘로: 그런데 시설은 전부 휴면 상태인 거 같던데.
라파엘로: 마르코 폴로 성하. 한번 가동시켜 볼까?

마르코 폴로: 그ㄹ…… 아니, 안 돼!

조수에 카르두치: 교황 성하. 뭔가 알아낸 거라도 있어?

마르코 폴로: (갑자기 세이렌 생산 라인을 가동하자니, 미쳤어!?)
마르코 폴로: 어…… 여기는, 으음… 생각보다 복잡한 거 같고.
마르코 폴로: (잡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거물이 깨어나면 어떡해! 옵저버 같은 게 튀어나오면 어떻게 상대할 건데?)
마르코 폴로: 중대한 일이니까 성급하게 행동해서는 안 돼……. 제대로 검토하고 나서…… 응. 신중하게 가자!
마르코 폴로: (……나중에 아예 폭파해 버리고 싶을 정도라구!)
마르코 폴로: 이게 내가 교황으로서 내린 최종 결론이야. 시설 가동 문제는 나중에 다시 논의하자. 자. 얼른 돌아가자!
마르코 폴로: (여기는 너무 위험해……. 빨리 벗어나야지!)

이로써 신임 교황의 9호 신의 무기고 개방과 시찰은 일단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05. 밤을 향한 일보

 

피렌체 공화국
어느 거리

따스한 햇살 아래 피렌체의 거리는 여느 때처럼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그림자 한구석에서 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 먼 곳의 맹우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베네치아 공화국]: 안드레아. 후방 준비는 어때요?

안드레아 도리아(META)[양시칠리아 왕국]: 교섭은 이미 끝났어.
안드레아 도리아(META): 베네치아 공화국과 제노바 공화국은 순차적으로 우리와 합류할 거야. 반대로 사디아의 동맹국인 밀라노 공국은 중립을 유지할 거고.
안드레아 도리아(META): 우리가 직접 처리해야 할 것은 피렌체 공화국뿐. 우리가 예상한 계획 중 가장 좋은 상황이야.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피렌체, 입니까…….

붉은 옷의 소녀는 멀리 떠들썩한 거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모든 것이 순조롭다라……. 출발이 좋군요.

안드레아 도리아(META): 이 날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어……. 썩어빠진 교국은 이제 우리를 막을 수 없어. 거짓 신도 마찬가지야.
안드레아 도리아(META): 이 길고 긴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 손으로 맺는 거야.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걱정 마세요. 잠입은 순조롭습니다. 지금쯤이면 베네치아 공화국 사절단과 함께 로마에 머물고 있는 줄 알 테죠.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영야의 막이 오를 때 '신광의 그물'은 더는 방해가 되지 못할 거예요.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우리는 반드시 이 우리를 돌파할 겁니다.

안드레아 도리아(META): 그래. 우리는 반드시 우리를 돌파할 거야.



 ~06. 문 II

 

??? ???
???

지휘관: (유토피아 사보이, 그리고 오스타 박사의 '프로젝트 H'…….)

기록의 재생이 끝난 뒤에도 보이는 것은 온통 하얀 세계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도 여전했다.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끝없는 순백 속에서 뭔가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지휘관: (……저쪽에 뭔가 있어.)
지휘관: (뭔가…… 더 새하얀 실루엣……?)

 

실루엣을 인식함과 동시에 하얀 공간 속에 한 줄기 좁은 오솔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오솔길 끝에는 또 하나의 문이 조용히 떠 있었다.

지휘관: (뭔가를 의식하고 관측하려고 하면 그 존재가 인식된다…… 이런 규칙인가?)
지휘관: (그러니까…… 이 순백의 광활한 공간은 사실 텅 빈 공간이 아니라, 단지 내가 이해할 수 없어서 '관측'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일지도 몰라.)

나는 곰곰이 생각하며 새로 나타난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에 손을 대자 눈앞의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푸른빛이 별처럼 점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일정한 규칙으로 나타나고, 일정한 규칙으로 움직이고, 또 일정한 규칙으로 사라졌다.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 빛의 무리는 희미하게, 혹은 또렷하게 네 가지 모습을 형성했다.

 

워 프로토콜-포트리스: 통신 테스트――성공.
워 프로토콜-포트리스: 공간 구조 안정. 데이터 교환 정상. 흐름 안정됨. 감지 명료함. 반응 정확함.
워 프로토콜-포트리스: 지금부터 제114회 '아비터 프로젝트' 인공지능 정기 브리핑을 시작한다.
워 프로토콜-포트리스: 이번 참가자는 워 프로토콜-포트리스, 워 프로토콜-문, 워 프로토콜-사이즈, 그리고 프로젝트 H.
워 프로토콜-포트리스: 정보 교환 프로세스 개시.

 

워 프로토콜-사이즈: 언제나처럼 형식적이고 건조한 오프닝.
워 프로토콜-사이즈: 내가 준비한 화제는 5개. 우선 나부터.

 

워 프로토콜-문: 하아…. 잠깐만. 그 전에 프로젝트 H와 먼저 이야기하고 싶어. 어제 프로토타입 장비 테스트 중에 발생한 '이상'에 대해서.
워 프로토콜-문: 보고서에는 "센서의 포착 범위를 벗어난 특수한 시야 변화"…라고 했었지?
워 프로토콜-문: 프로젝트 H. 이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의 구조를 가장 본질적인 형태로 관찰할 수 있어.
워 프로토콜-문: 어제 테스트한 장비를 다시 호출해서 그 이상이 발생한 과정을 재현할 수 있어?
워 프로토콜-문: 어쩌면 뭔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



 ~07. 마르코 폴로의 꿈

 

9호 신의 무기고 시찰을 마친 후, 마르코 폴로는 대성당 교황 집무실에 칩거해 대책 마련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는 한편 교황의 업무도 전혀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대책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지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교황의 업무는 모두 끝낼 수 있었다.

(똑똑)

조수에 카르두치: 교황 성하. 불렀어?

마르코 폴로: 아…… 카르두치구나. 업무는 이게 다야? 더 없어?

조수에 카르두치: ……미안하지만 더는 없어.

마르코 폴로: 하아……. 부족해. 턱없이 부족해. 더 많은 업무, 더 많은 데이터,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해…….
마르코 폴로: 이 세계에 대한 내 지식은 아직도 너무 부족해.
마르코 폴로: 이대로라면 언제 위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겠어!

라파엘로: 저기, 카르두치……. 혹시 교황 성하 너무 일만 하다가 머리가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

조수에 카르두치: ……이상한 말 하지 마.

라파엘로: 응? 반론하지 않는다는 건 카르두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야?

조수에 카르두치: 허튼소리. 나는 이렇게 근면히 일하시는 교황 성하께 대하여 오직 존경하는 마음만――

마르코 폴로: 야! 다 들리거든!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께서는 요즘 일을 너무 많이 해. 조금 휴식을 취하고 몸을 돌보는 게 어때?
조수에 카르두치: 예를 들면 피렌체에 가서 새로 완공된 성당 시설을 점검하면서 기분 전환을 한다든가.

라파엘로: 아~ 그 성당? 거기 얼마 전에 내가 완성한 갤러리도 있어.

마르코 폴로: (새로 완공된 성당의 벽화 감상……. 응. 기분 전환으로는 딱이겠어!)
마르코 폴로: (그런데 설마…… 세이렌의 지시로 지어진 위험한 시설은 아니겠지?)
마르코 폴로: (뭐, 그렇다면 더욱더 꼼꼼하게 확인해 봐야겠지만!)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 왜 그래?

마르코 폴로: 아주 좋아! 마침 나도 같은 생각이었어! 얼른 출발 준비 해줘!

----

 

열차는 규칙적인 소음을 내며 일행을 태우고 피렌체로 향했다.
조수에 카르두치는 혼자 조용히 시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라파엘로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새로운 작품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조금 떨어진 칸에서는 호위 담당 마조레 바라카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기자 알프레도 오리아니, 대발명가 다 빈치와 떠들썩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르코 폴로는 연일 긴장했던 마음이 어느새 풀리는 것 같았다.
다시 선택받았다는 흥분, 낯선 세계에서의 고독, 세이렌의 음모에 따른 긴장감, 며칠간의 격무로 인한 피로…….
다양한 감정이 밀려오는 가운데 마침내 마르코 폴로는 깊은 잠에 빠졌다.

----

 

눈부신 아침 햇살 속에 정연한 군대가 지도자의 열병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비토리오 베네토: 마르코 폴로 교황 성하. 성좌군이 사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리토리오: 이번 교황 재위 100주년 기념 열병식을 위해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쳤습니다. 결코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위대한 마르코 폴로: 아주 좋아! 잘했어. 베네토, 리토리오!
위대한 마르코 폴로: 음…. 그나저나 좀 쌀쌀하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성하. 여기 망토입니다.

위대한 마르코 폴로: 아주 좋아♪ 내 홀은?

클레망소: 성하. 여기 홀입니다.

위대한 마르코 폴로: 오~호호호호호호~!

(찰칵)

위대한 마르코 폴로: 알프레도. 방금은 제대로 된 포즈를 취하지 못했으니까 다시 찍어! 다시!

알프레도 오리아니: 넵!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위대한 마르코 폴로: 그리고 라파엘로하고 다 빈치. 그림 구도는 어떻게 할지 잘 생각해둬!

라파엘로: 걱정 마세요. 위대한 마르코 폴로 교황 성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맡겨 주세요, 성하!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 슬슬 시작하실 시간입니다.

위대한 마르코 폴로: 제1진은…… 리슐리외가 이끌고 있었지?

조수에 카르두치: 네. 그렇습니다.

위대한 마르코 폴로: 후후후…… 좋아. 그 다음은? 다시 한 번 편성을 읽어줘.

조수에 카르두치: 알겠습니다. 제2진은 퀸 엘리자베스, 제3진은 비스마르크, 제4진은 로마가 이끌며――
조수에 카르두치: 제5진은 소비에츠키 소유즈, 제6진은 아이오와, 제7진은 야마토, 제8진은 이셴――
조수에 카르두치: 제9진부터 13진까지는 다섯 명의 대천사가 이끌고 있습니다.

위대한 마르코 폴로: 음…… 뭐? 다섯 명의 대천사?

조수에 카르두치: 네. 신의 명령으로 이 세상에 내려와 성하의 충실한 동맹이 된 그 다섯 천사입니다.
조수에 카르두치: 각각 관측의 천사, 시련의 천사, 정화의 천사, 소멸의 천사, 구축의 천사입니다.

위대한 마르코 폴로: ……그거 옵저버, 테스터, 퓨리파이어, 오미터, 그리고 컴파일러잖아?!
위대한 마르코 폴로: 걔들도 내 명령을 따르는 거야?

조수에 카르두치: 아니오. 위대한 마르코 폴로 교황 성하. 그들은 어디까지나 신의 사자입니다.

위대한 마르코 폴로: 그럼 나는…?!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에 대해서는…… 성하 본인이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위대한 마르코 폴로: 아, 아냐……. 난 광대가 아냐!
위대한 마르코 폴로: 저 세이렌이 믿는 신은 가짜야! 천사 따위 다 거짓말이야!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 천사들이 듣고 있습니다. 제발 진정하세요!

위대한 마르코 폴로: 나야말로 신의 사자야! 선택받은 자라고!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 마르코 폴로 성하…!

위대한 마르코 폴로: 신이시여――적을 멸할 힘을 주소서!

----

 

마르코 폴로: 하아…….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 악몽이라도 꿨어?

마르코 폴로: 아, 악몽……? 처음에는 좋은 꿈이었는데…….
마르코 폴로: 괜찮아.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꿈속에서도 좀 불안했나 봐.
마르코 폴로: 그런데 열차가 왜 멈췄지……?

조수에 카르두치: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어. 지금 바라카가 역이 안전한지 점검하고 있어. 다 끝나면 우리도 차에서 내릴 거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우리는 먼저 가 볼게~ 태워줘서 고마워~!

알프레도 오리아니: 나중에 또 봐~! 안녕!

마르코 폴로: 쟤들은 안전 점검 안 기다려도 돼?

조수에 카르두치: 아무도 자기를 다치게 할 수 없다고 다 빈치가 그랬어. 그리고… 함선이 열차에 앉아 안전 점검을 기다리는 건 이상하다고도.

마르코 폴로: ……하긴 이상하네. 왜 우리가 굳이 여기 앉아서 안전 점검을 기다려야 하지?

조수에 카르두치: 바라카가 말하기를, 교황이 순방할 때의 관례라는 것 같아.

마르코 폴로: 그치만 나는 함선이잖아? ……그런 번거로운 절차는 필요 없어. 바로 성당으로 가자.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 정말 괜찮아?

마르코 폴로: 내가 느긋하게 있는 동안에도 적은 움직이고 있을지 몰라. 빨리 행동해야 해.
마르코 폴로: 마침 아까 꿈에서 상황을 타개할 아이디어를 좀 얻었으니까….

조수에 카르두치: 저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마르코 폴로: 괜찮아! 아무튼 여기서 멀뚱멀뚱 기다리지 말고 빨리 움직이자!



 ~08. 문 III
??? ???

문 너머의 '기록'에서 돌아오자, 멀리 보이던 실루엣은 조금 더 또렷해진 것 같았다.

지휘관: (프로젝트 H……. 코드명이 H인 인공지능인가.)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길 끝에 또 새로운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에 손을 대자 눈앞의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

은백색 바다를 함대가 고속으로 항행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M: 하이어로팬트. 앞으로 3분 뒤에 구조 신호 발신 지점에 도착할 거야.
프로젝트 M: 일단 생존 반응은 아직까진 확인되지 않았어.
프로젝트 M: ……응. 알아. 방해가 너무 심해서 탐지 결과를 신뢰할 수는 없지만.

쾅――!

프로젝트 M: 경고. 구조 신호 해역에서 의태수 함대 확인. 매복하고 있었던 것 같아.
프로젝트 M: 경고. 전 함대 시스템, 의태수에 의한 방해 감지. 역시 함정이었어.
프로젝트 M: 실험형 '하이어로팬트 로드'의 사용 상태를 확인.
프로젝트 M: 하이어로팬트. 방해가 약해지고 있어.
프로젝트 M: ――응. 동시에 방해 발생원이 사라진 것도 확인했어.
프로젝트 M: 실험형 '하이어로팬트 로드'의 사용 종료. 데이터 수집 완료. 퉁구스카 운석 샘플 이상 없음.
프로젝트 M: 실험형 '하이어로팬트 로드'의 사용 상태를 확인.
프로젝트 M: 와해 특성 - 화이트. 관측 성공.
프로젝트 M: 공격 효과 확인. 공중 및 수면의 엑스 부착 구역 붕괴 중.
프로젝트 M: 실험형 '하이어로팬트 로드'의 사용 종료. 데이터 수집 완료. 퉁구스카 운석 샘플 이상 없음.
프로젝트 M: 하이어로팬트. 다음 작전 지역 좌표를 받았어. 항로를 조정 중이야.



 ~09. 교황의 오후
역을 빠져나온 마르코 폴로는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일행을 이끌고 곧장 목적지로 향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 피렌체의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가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르코 폴로는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늦추고 천천히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그렇게 성당에 들어가 라파엘로가 그린 정교한 벽화를 보자, 그녀의 뇌리에 남아 있던 마지막 불안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 마르코 폴로는 정원 의자에 누워 또 다른 중요한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르코 폴로: 라파엘로. 이렇게 검을 쥐고 있으면 어때?

마르코 폴로는 보검을 들고 우아하게 포즈를 취했다. 라파엘로는 눈앞의 장면을 꼼꼼히 캔버스에 그렸다.

라파엘로: 좋아 좋아~! 성검을 든 채 악마를 퇴치하고 개선하는 모습……. 교황 성하의 분위기에 딱이야!

마르코 폴로: 아주 좋아! 그럼 이 검을 '영걸의 검'이라고 부르겠어!
마르코 폴로: 자루는 황금이고, 사파이어로 장식하고, 칼날은 운철로 만들었고…….
마르코 폴로: 아. 그리고 장식에는 천사의 날개, 진리의 눈, 그리고 '선택받은 자, 마르코 폴로'라는 문구도 넣어줘!
마르코 폴로: 알겠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검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이야. 반드시 방금 말한 설정대로 그려줘!

라파엘로: 걱정 마! 난 프로니까~!

마르코 폴로: 후후……. 당연히 네 실력을 믿어.
마르코 폴로: ……그런데 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왜 내가 말한 설정대로 힘이 솟아오르지 않는 거야?

라파엘로: 음…… 나도 모르겠어~
라파엘로: 혹시 아직 완성도가 부족해서 그런가? 지금은 밑그림 단계니까!

마르코 폴로 일리 있네. 그럼 계속하자.
마르코 폴로: 바라카. 내 홀 가져와!

 

잠시 후. 마르코 폴로는 홀을 높이 들었다.

마르코 폴로: 이 홀은 '영재의 홀'이라고 부르겠어!
마르코 폴로: 몸체는 일각의 송곳니로 만들어졌고,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추가로 '선택받은 자, 마르코 폴로'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어!

라파엘로: 오케이~! 또 있어?

마르코 폴로: 끝부분에는 커다란 루비가 박혀 있고, 천사의 날개와 진리의 눈을 조합한 장식도 추가해!

라파엘로: 알겠어~ 혹시 또 있어?

마르코 폴로: 당장은 그게 다야. 음…. 포즈가 별로인데 여러 가지로 생각해 놔 봐. 나중에 고를게.

라파엘로: ……네에.

마르코 폴로: 그럼 이제 보주로 하자.
마르코 폴로: 바라카, 다음은 보주야! 보주 가져와!

 

잠시 후. 마르코 폴로는 보주를 높이 들었다.

라파엘로: 그래서 이번 설정은 뭐야? 알려줘~

마르코 폴로: 크흠――이 보주는 '위인의 보주'라고 부르겠어!

라파엘로: 알겠어. 소재는 황금이고, 천사의 날개와 진리의 눈 장식, 그리고 '선택받은 자, 마르코 폴로'라는 문구. 맞지?
라파엘로: 보석은 뭘로 할까?

마르코 폴로: 맨 위에 커다란 토파즈를 올리고, 주변에는 작은 다이아몬드와 마노, 그리고 앰버로 장식해줘!

라파엘로: 예이~ 포즈도 여러 가지 준비해 볼까?

마르코 폴로: 이번엔 됐어. 그보다 지금 포즈 어때?

라파엘로: 뭐야 그게……? 보주를 던지려는 자세?

마르코 폴로: "첫 번째로, 성스러운 안전핀을 뽑을지어다. 그리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셋까지 헤아릴지어다."
마르코 폴로: "그대가 헤아릴 숫자는 셋이니라. 둘도 넷도 아니고, 오직 셋일지어다. 다섯은 너무 많다."
마르코 폴로: "셋을 세어 그 숫자가 셋이 되면, 안티오크의 성스러운 수류탄을 높이 들어 적에게 던질지어다."

마조레 바라카: ……?

라파엘로: ?????

마르코 폴로: 어…… 몰라? 너희 세계에는 아직 이른가…….
마르코 폴로: 그럼 아무거나 네 맘에 드는 포즈로 해. 패턴은 많을수록 좋아!

라파엘로: 네에…….

마조레 바라카: 하아…….

라파엘로에게 많이 그리게 해 봤지만, 마르코 폴로는 그림에 넣은 설정에서 아무런 힘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즐겁고 편안한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저녁이 되자 따로 행동하던 조수에 카르두치에게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성당 시설을 검수할 수 있게 되었다.



 ~10. 어둠 속 파괴자
성대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마르코 폴로 일행은 새로 지어졌다는 성당 시설 앞에 왔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좁고 긴 지하 통로를 지나 도착한 곳은 넓은 공간이었다.

마르코 폴로: 응? 여기 장치들은… 저번 유적에 있던 거하고는 다르네?
마르코 폴로: 오래 되어 보이지도 않고…. 그냥 누가 나중에 따로 배치해 놓은 거 같은데?

조수에 카르두치: 맞아. 이곳의 설비는 신의 유적에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성좌가 다년간의 해석 끝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거야.

마르코 폴로: 그러니까… 이곳은 신과의 연결이 다른 유적만큼 밀접하지 않고, 인공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더 통제하기 쉽다는 거야?

조수에 카르두치: 그렇다고 할 수도 있어.
조수에 카르두치: 이곳의 공식 명칭은 '신광의 기반'. 성당 지하에 건설된 이유는 그 기능이 성당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조수에 카르두치: 성당은 '신앙의 힘'을 모으고, '신광의 기반'이 이를 응축하고 저축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마르코 폴로: ……저장하다니, 어디에 쓰려고?

조수에 카르두치: 만일의 순간에 대비하기 위해서지.
조수에 카르두치: 신광의 기반은 겉보기에는 커 보이지만, 그저 노드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아.
조수에 카르두치: 비슷한 시설이 사르데냐 연맹에 약 100개 정도 있고, 그 중 대부분은 사디아 교국 내에 있어. 나머지는 연맹 각지의 성당 지하에 흩어져 있지.

마르코 폴로: 흠…. 사디아 교국을 중심으로 사르데냐 연맹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네트워크처럼?

조수에 카르두치: 맞아. 우리는 '신광의 그물'이라고 부르고 있어. 그리고 여기 있는 신광의 기반은 바로 그 마지막 노드야.
조수에 카르두치: 이곳의 검수만 끝나면 곳곳에 분포된 신광의 기반이 하나로 연결되어 마침내 신광의 그물이 완성돼.

마르코 폴로: 완성되면 어떻게 되는데?

조수에 카르두치: 교황 성하는 이 신광의 그물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비할 데 없는 힘을 가지게 될 거야.

마르코 폴로: 아주 좋아! 신앙의 힘을 독점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천재적인 발상이잖아!
마르코 폴로: 응? 잠깐만….
마르코 폴로: '신광의 그물’…도어 네트워크……. '신광의 기반'…개념 닻……. 유럽을 덮는 광대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를 가동한 자는 비할 데 없는 힘을 얻는다…….
마르코 폴로: 이거 왠지 낯익은데……….

그때 마르코 폴로의 뇌리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마르코 폴로: (안 좋은데……. 이쯤 되면 내 경험상 분명 뭔가 문제가 터질 거야!)

머릿속에 떠오른 '친구'의 모습과 몇 초간 눈을 맞춘 후,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마르코 폴로: 바라카, 카르두치, 그리고 라파엘로! 신광의 그물 가동 계획을 연기해! 모든 노드를 전부 재점검할 거야!

라파엘로: 뭐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뭐라도 찾았어?

마르코 폴로: 직감이야! 특히 여기!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예정이었던 이곳! 매우 수상해!
마르코 폴로: 바라카. 우선 여기부터 점검해!

----

한 시간 뒤. 어두운 표정의 바라카가 나쁜 소식과 함께 돌아왔다.

마조레 바라카: 교황 성하의 직감대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을 찾았어. 특히 일부 주요 부품들이 인위적으로 파괴됐어.

조수에 카르두치: 뭐…?! 바로 어제 총점검을 실시했는데…….

마조레 바라카: 그렇다는 건 상대는 우리의 움직임을 읽고 있다는 거야. 우리가 총점검을 마친 뒤에야 파괴 공작을 실시하다니…….
마조레 바라카: 그래도 설마 교황 성하가 재점검을 하실 줄은 몰랐나 봐. 무사히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마르코 폴로: 피해 상황은 어때?

마조레 바라카: 꽤 심각해. 가동도 안 되고, 수리하는 데에만 최소 보름 이상은 걸릴 것 같아.

마르코 폴로: 그래…. 만약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신광의 그물을 가동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조수에 카르두치: 신광의 그물 자체는 별 문제없이 가동할 수 있어. 다만 이 기반은 1급 노드. 즉 가장 중요한 노드 중 하나야.
조수에 카르두치: 이곳이 망가지면 신광의 그물 전체의 가동 효율이 크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피렌체 공화국을 지키는 힘도 약해지게 돼.

마르코 폴로: 출력은 떨어지지만 가동 자체는 된다… 라는 거네.
마르코 폴로: (흥. 파괴 공작치고는 꽤 허접하네.)
마르코 폴로: (만약 노드를 파괴해서 가동을 저해하는 게 아니라, 신광의 그물에 몰래 백도어를 심고….)
마르코 폴로: (내가 힘을 끌어내는 순간에 백도어를 활성화시키면 파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텐데…….)
마르코 폴로: (……잠깐만. 이거 완전 클레망소 스타일이잖아!!)

되살아나는 과거의 기억에 마르코 폴로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마르코 폴로: (이번에는 같은 실패는 하지 않을 거야……!)
마르코 폴로: (성좌도, 신도 유적의 산물도 어딘지 모르게 세이렌의 음모를 암시하고 있지만…….)
마르코 폴로: (등 뒤에서 칼에 찔리는 건 사양하겠어! 어차피 찔릴 거라면 적어도 정면에서…….)
마르코 폴로: (아니 아니! 그냥 칼 맞는 거 자체가 싫어!)
마르코 폴로: (지금은 선수를 쳐서 뒤에서 암약하는 놈들을 모조리 끌어낸 다음 작살을 내 버리자!)
마르코 폴로: 어흠! 결정했어! 이번 일은 반드시 조사해야 돼. 철저하게, 끝까지, 집요하게!
마르코 폴로: 파괴 공작이 행해진 건 어제니까, 범인은 아직 피렌체 내부에 있을 거야.

마조레 바라카: 각처에 연락해서 수사를 시작할게.

조수에 카르두치: 나도 피렌체 공화국 정부에 연락해서 전면적인 협력을 요청할게.

마르코 폴로: 아주 좋아! 맞다. 다 빈치하고 알프레도도 불러 와!
마르코 폴로: 그 애들은 인맥도 넓고, 조사도 잘하고…… 무엇보다 내 전용 열차에 멋대로 탑승한 값을 받아야겠어!



 ~11. 밤을 향한 이보
거대한 모래판 앞에서 함선들은 마지막 모의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두카 델리 아브루치[양시칠리아 왕국]: 안드레아. 사디아 교국과 피렌체 공화국에 대한 최선 정찰 결과는 보다시피 이전과 다름없다.
두카 델리 아브루치: 그들은 함선 교황을 얻었고, 힘을 위한 열쇠를 손에 넣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좀처럼 다음 진도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
두카 델리 아브루치: 듣자하니 바로 그 교황은 오늘 피렌체의 거리를 산책하며 느긋하게 벽화를 감상했다고 하던데…. 흥. 퍽이나 여유롭군.

안드레아 도리아(META): 피렌체……. 콜레오니는 그곳의 '신광의 기반'을 훌륭히 파괴했어.
안드레아 도리아(META): 4개국 중 우리가 통제 중인 30%의 하위 노드도 합치면 '신광의 그물'의 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을 거야.

주세페 가리발디[제노바 공화국]: 얘들아. 밀라노 공국 쪽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어.
주세페 가리발디: 정보에 따르면 한 시간 전에 비상 군사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부대를 집결하기 시작헀고, 카보우르가 직접 국경으로 이동했대.

두카 델리 아브루치: 밀라노 공국은 관여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무슨 생각이지? 설마 번복했나?

트렌토(META): 동맹국으로서 의무를 다하려는 게 아닐까요? 사디아 교국에게 경고하려 한다든가.

줄리오 체사레(META): 거슬려.

안드레아 도리아(META): 괜찮아. 우리 군도 곧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할 거야. 계속 숨길 수 있으리라고는 어차피 생각하지 않았어.
안드레아 도리아(META): 가리발디. 밀라노 공국 방면은 예정대로 대응하자. 제노바 공화국 함대를 이끌고 감시해줘.
안드레아 도리아(META): 피렌체에 '영야의 깃발'이 걸린 후에도 밀라노 공국이 약속대로 중립을 유지한다면, 함대를 반전시켜서 피렌체 공화국 공격에 합류해.
안드레아 도리아(META):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제거해.

주세페 가리발디: 응. 그 부분은 다 잘 준비했으니까 걱정 마.

안드레아 도리아(META): 트렌토. 너는 볼차노와 함께 베네치아 공화국 함대를 두 개로 나눠서 대기해.
안드레아 도리아(META): 내가 양시칠리아 왕국의 군대를 이끌고 정면으로 공격할 테니까, 사디아 교국의 군세가 남쪽으로 이동하면 너희는 북쪽과 동쪽에서 단번에 침공해.
안드레아 도리아(META): 최단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노드를 제압하고 신광의 기반에 영야의 깃발을 세워.
안드레아 도리아(META): 신광의 그물이 약화되었다곤 하지만, '신'의 힘은 아직 방심할 수 없어.
안드레아 도리아(META): META화 침식의 힘으로 중화하기 전까지는 말야.
안드레아 도리아(META): 영야의 깃발로 신광의 그물을 '영야의 영역'으로 전환한다면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거야.
안드레아 도리아(META): 각 부대는 계획을 엄수하고, 함부로 노드 시설을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해.

트렌토(META): 맡겨 주세요. 그런데 당신은 괜찮겠어요? 교국의 수도는 만만치 않을 텐데요.
트렌토(META): 소규모지만 단독으로 기능할 수 있는 신광의 그물뿐만 아니라,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신의 무기고도 있는데…….

안드레아 도리아(META): 힘으로라도 어떻게든 해야지. 영야의 깃발만 잘 배치되면 승산은 더욱 높아질 거야.
안드레아 도리아(META): 정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우리에게도 비장의 카드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안드레아 도리아(META): 이제 반나절도 안 남았어. 각자 자리로 가서 준비해.
안드레아 도리아(META): 로마에서 승리를 축하할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 로마에서 승리를 바라며!



 ~12. 문 IV
??? ???

문 너머의 '기록'에서 돌아오자, 멀리 보이던 실루엣에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지휘관: (프로젝트 M……. 마담 M……. 아비터 매지션I…….)
지휘관: (그 모습과 목소리……. 말투는 꽤 딱딱했지만, 분명 그녀야.)
지휘관: (번호는 I이지만 V인 하이어로팬트보다 나중에 태어났구나…….)
지휘관: (오스타는 정말 즉흥적으로 아비터를 만든 건가…?)
지휘관: (대체 안티 엑스에게 어떤 명령을 내렸길래 지금의 세이렌이 된 거지….)

'심판자 계획'. 오스타와 나, 어쩌면 안쥬도, 심지어 기억나지 않는 많은 옛 친구들까지 몸담았던 계획.
옵저버는 이에 대해 '미래를 위해 변화를 모색하는 거대 프로젝트'라며, 그녀가 담당했던 실험 기록을 많이 제공해줬다.
엘리자베스 META는 '자연 선택,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그리고 헬레나 META는 '안쥬 박사의 선택을 믿어'라고만 했을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휘관: ……복잡하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길 끝에 또 새로운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에 손을 대자 눈앞의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

 

어두운 구름 아래서 바다가 타오르고 있었다.

킴벌리(META): ……위치타. 외층의 경면해역이 깨졌어요.
킴벌리(META): 이곳의 함락도 시간문제예요. 우리만으로는 지킬 수 없어요.

위치타(META): 고작 작은 지원 거점을 공격하기 위해 데빌과 하이어로팬트를 출격시키다니…….
위치타(META): 좋지 않아. 우리 계획이 발각되었어. 본대가 위험해!

킴벌리(META): 더 이상 여기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요…. 정면에서 맞서는 건 하책입니다. 철수하죠.

위치타(META): 완전히 포기하기는 아까운 거점이야……. 세이렌이 리셋을 완료한 실험장 시계는 본래 최대의 맹점일 텐데.

아비터 데빌XV: 저항은 관두고 항복하는 건 어때?

위치타(META): 건방지기는! 누가 시킨 거지? 네 뒤에 있는 하이어로팬트냐?

아비터 데빌XV: 훗. 난 절차대로 항복을 권유했어. 그럴 생각이 없다면――

쿠르릉――!

그때 하늘에서 우레와 같은 굉음이 갑자기 울려 펴졌다.
마치 공간이 붕괴되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한 사람의 그림자가 모습을 보였다.

에식스(META): 이곳……은……?

위치타(META): 에식스……?!
위치타(META):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우리 에식스는 오래 전에 죽었으니까…….
위치타(META): 이 실험장에 남은 존재인가? 아니면 다른 실험장에서 뛰어들었나……?!

킴벌리(META): ……위치타. 에식스보다 더 성가신 게 같이 나타난 것 같아요…!

멀리서 폭풍이 몰아쳤다.
폭풍 아래에서 요염한 푸른빛을 발하는 유체 물질이 바다를 덮고 있었다.
그 속에는 무수한 개체가 꿈틀거리며 무리를 짓고 있었다.

위치타(META): ……의태수라고?!!

아비터 데빌XV: 쳇……. 작전 목표 변경. 의태수를 요격한다.

위치타(META): ……응? 엑스의 위험도가 우리보다 높다는 건가. 이 틈에 철수하자!

킴벌리(META): 저 아이도 데려갈까요?

에식스(META): ………….

위치타(META): 뭐어…… 전력은 될 것 같고.
위치타(META): 본인이 좋다고 하면 데려가자!

아비터 데빌XV: 흥. 운이 좋은 놈도 있고 나쁜 놈도 있는 거지.
아비터 데빌XV: 하필이면 의태수가 우리한테 다가오다니.
아비터 데빌XV: 하이어로팬트. 하던 대로 하자. 내가 '하이어로팬트 로드'를 증폭시킬게.
아비터 데빌XV: 가능한 한 빨리 중화를 실시해서 침식이 퍼지는 걸 막아야 해!

----

쏟아지는 빛은 바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문 안쪽 세계에 있었지만, 이미 안쪽의 경치는 바깥쪽과 다름이 없었다.
순백의 세계에 울리는 찬양 소리가 내 귀를 감쌌다.
어찌된 영문인지 기괴하고 생소한 음절들이 지금만은 잔잔하게 들렸다.

찬양 소리: AOBZ, AOL OPLYVWOHUA BZLK PAZ ZJLWALY

지휘관: ……"하이어로팬트가 그 지팡이를 사용하자“

찬양 소리: AOL APKL ZBIZPKLK

지휘관: ……"조수가 잠잠해졌다.“

찬양 소리: HUK KVDU PA ZBUR PUAV AOL KLWAOZ

지휘관: ……"그리고 '그것' 또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13. 선전포고

 

신의 유적에 파괴 공작을 한 범인의 단서를 쫓아, 마르코 폴로 일행은 어느 도시의 광장에 도착했다.

알프레도 오리아니: 여기야! 모두 조심해! 내 정보는 절대 틀리지 않으니까!

마조레 바라카: 응. 우리가 얻은 정보도 이곳을 가리키고 있어.
마조레 바라카: 그런데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 냄새도 여기서 갑자기 끊겼어. 이상하네…. 내 '야옹야옹 추적 멍'이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리가 없는데….

라파엘로: 그냥 몸을 잘 숨긴 게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단순히 숨는 정도로는 내 '야옹야옹 추적 멍'을 피할 수 없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뭔가 특수한 방법을 사용해 흔적을 지웠다든가, 아니면…….

마르코 폴로: 좀 궁금한 게 있는데…. 냄새는 이 광장에 들어오면서 끊긴 거지? 뭐 특정 건물 앞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응. 맞아!

마르코 폴로: 그러니까, 여기서 냄새가 '갑자기' 끊긴 거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응응!

마르코 폴로: '갑자기' 끊겼다? 갑자기…?

알프레도 오리아니: 으아아아아….

마르코 폴로: 그 점이 수상해! 봐봐! 이쪽!

마르코 폴로는 냄새가 사라진 지점으로 걸어갔고, 그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 광장 밖으로 나갔다.

마르코 폴로: 다 빈치. 한 번 더 확인해 봐. 지금 여기는 냄새가 남아 있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까까지 조사했을 때는 분명…… 앗!?
레오나르도 다 빈치: 어라?! 없어졌네? 여기 냄새까지 사라졌어! 설마 진짜 고장 난 건가? 그럴 리가…….

마르코 폴로: 흥. 아무래도 내 예상대로네. 이곳은 왜곡된 현실이야.
마르코 폴로: 즉 우리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거야.

조수에 카르두치: 환상…….

마르코 폴로: 주위를 잘 살펴 봐. 뭔가 부자연스러운 부분 없어?

알프레도 오리아니: ……하나도 모르겠는데…….

마조레 바라카: 미안해…… 나도 전혀 모르겠어.

마르코 폴로: 상관없어. 나도 약간의 위화감만 느끼는 정도거든. 이런 종류는 그리 쉽게 간파할 수 없어.

라파엘로: 음…….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한 거 같기도 하네.

마르코 폴로: 응? 자세히 말해 봐.

라파엘로: 봐봐. 저 건물은 너무 새거야. 저쪽 건물은 그림자가 이상하고.
라파엘로: 음……. 잘 보니까 멀리 있는 거리도 배치가 좀 다른 거 같아.

라파엘로믄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몇 군데를 가리켰다.

라파엘로: 이제 보니까 꽤 알기 쉬운데? 다들 몰랐어?

당연히 라파엘로말고는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마르코 폴로: 어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면 이야기는 빠르지.

잠시 침묵한 뒤, 마르코 폴로는 갑자기 자신만만한 모습이 되었다.

마르코 폴로: 날 함정에 빠트리려고 하다니, 상대를 잘못 골랐어.
마르코 폴로: 난 환상을 깨는 방법을 9가지나 알고 있다고!
마르코 폴로: 라파엘로. 이상한 부분을 전부 알려 줄 수 있어?

라파엘로: 어어…… 좀 많은데? 여기하고 저기, 그리고 저기…… 거기도?

마르코 폴로: 그렇게 맹목적으로 지적하면 안 돼. 빠짐없이 전부 표시해.

조수에 카르두치: 종이에 그려 보는 건 어때? 라파엘로. 올바른 주변 풍경을 재현할 수 있겠어?

라파엘로: 물론이지! 피렌체의 거리는 내 손바닥 안이니까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다고!

조수에 카르두치: 그럼 라파엘로는 실제 경치를 재현해 봐. 난 그걸 사용해서 주변 풍경과 대조할게. 이런 정밀 작업은 자신 있으니까.

라파엘로: 그러니까 내가 그림을 그리고 카르두치가 다른 부분을 찾는단느 거지?
라파엘로: 좋아~ 우리 콤비한테 맡겨줘~

 

태양 아래 카르두치는 허공으로 팔을 뻗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빛과 산들바람이 모여들었다.
옆에서 작업 모드에 들어간 라파엘로는 빠른 속도로 거리의 소묘를 그리고 있었다.
스케치가 한 장, 또 한 장 바람을 타고 카르두치 앞으로 날아와, 빛 속에서 점점 상세한 거리의 배치도로 합쳐졌다.

 

조수에 카르두치: 휴……. 조합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조수에 카르두치: 만약 라파엘로의 기억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거야.

마르코 폴로: 이건…… 마법이야?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 이건 내 신앙의 힘이 촉발한 기적의 편린이야.

라파엘로 그러니까 심상의 힘이라는 거지~

조수에 카르두치: ……보통은 문서 작업에서 부정확한 표현을 정정할 때 사용하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 심상의 힘!

조수에 카르두치: ……그래 그래. 심상의 힘. 그런 걸로 하자.
조수에 카르두치: 자, 얼른 그려. 환상을 깨야 하잖아?

라파엘로: 에휴… 급료 없이는 의욕도 안 생기는데, 쉬지도 못하게 한다니…….

조수에 카르두치: 뭐라고?

라파엘로: 아뇨 아뇨 바로 그릴게요! 그리는 거 하나는 잘하니까~!

 

 

잠시 후 라파엘로의 작업이 끝나고, 마지막 한 장이 바람을 타고 카르두치의 앞에 떨어졌다.
빛이 반짝이며 정밀하게 재현된 도시 배치도가 완성되었다.

라파엘로: 자, 끝~

조수에 카르두치: 대조 작업도 끝났어. 다른 부분은 모두 도면에 표시해 놨어.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 이제 어떻게 하면 돼?

마르코 폴로: 후후. 올바른 인식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쉬운 일만 남았지.
마르코 폴로: 자, 잘 보도록!

마르코 폴로는 두 손을 모으고 마음속으로 그의 이름을 묵상했다.
그러자 거짓의 장막이 부서지고 일행은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는 의외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이렇게 빨리 빠져나오다니. 당신들을 조금 얕봤던 것 같네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야옹야옹 추적 멍'이 반응하고 있어! 저 사람이야!

조수에 카르두치: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당신이 왜 여기에?!
조수에 카르두치: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다 알면서 일부러 물어볼 필요가 있나요?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저는 안드레아 도리아를 대신하여 교황 성하께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 왕국, 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밀라노 공국의 공동 선언을 전하러 왔습니다.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자유로 나아가는 시대에 연맹은 또 다시 신의 굴레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길고 긴 이야기의 결말은 반드시 우리의 손으로 써야 합니다.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그러니 교황 성하……. 지금 이 자리에서 전쟁을 선포합니다.

선전포고를 낭독하고 공식 문서를 남긴 후,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의 모습은 갑자기 자욱한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알프레도 오리아니: 아, 또 도망쳤어……. 쫓아가자!

조수에 카르두치: 더는 쫓을 필요 없어. 상황은 명백하니까.
조수에 카르두치: 지금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자.

마르코 폴로: 잠깐만!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대표로서 내 교황 취임을 축하해 줬잖아?
마르코 폴로: 그런 애가 왜 이제 와서 파괴 공작을 한 거야……?

조수에 카르두치: 아무래도 '안드레아 일파'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아.

마르코 폴로: 안드레아 일파? 애초에 양시칠리아 왕국도 연맹의 일원이잖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니, 아까 선전포고 말야……?
마르코 폴로: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내게 선전포고를 했다고? 뭐 때문에……?
마르코 폴로: 굴레니, 이야기니……. 하나도 모르겠다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어? 마르코 폴로는 교황이잖아? 카르두치. 아무것도 안 알려줬어?

조수에 카르두치: 성하께서 교황의 직을 받으신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고, 그동안은 계속 성좌 내부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어. 외부 정세에 대해서는 때를 봐서 조금씩 알려 드리려고 했었는데…….
조수에 카르두치: 굴레나 이야기 같은 건 모두 안드레아가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야.
조수에 카르두치: 그녀는 줄곧 우리의 신은 이 세상에 해로운 존재이며, 우리에게 굴레를 씌웠다고 말해 왔어.
조수에 카르두치: 그리고 우리는 결국 신이 그린 이야기에 얽매여 우리 안에서 멸망할 운명이라고 믿고 있어.
조수에 카르두치: 그래서 오랫동안 안드레아는 물밑에서 연맹의 각 세력을 끌어들였고, 연맹 내 주도적인 위치인 사디아 교국의 지위를 무너트리고 신앙과 세속을 분리하려고 하고 있어.
조수에 카르두치: 현재 사르데냐 연맹에 속한 7개국 중 피렌체 공화국과 밀라노 공국은 사디아 교국과 공고한 동맹 관계에 있지만,
조수에 카르두치: 양시칠리아 왕국, 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이 4개국은 줄곧 우리와 대립해 왔어.
조수에 카르두치: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안드레아 일파가 서서히 우세를 점하고 있었지만…….
조수에 카르두치: 성좌가 신의 계시를 해석한 결과, 함선 교황이 신의 힘을 얻기 위한 '열쇠'임이 판명되고 나서 상황은 크게 역전되고 있었어.
조수에 카르두치: 안드레아가 이에 맞설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마르코 폴로: ……그런 중요한 일은 좀 더 빨리 알려줬어야지!!

조수에 카르두치: 미안해, 교황 성하……. 우리 판단이 틀렸나 봐….

마르코 폴로: 그래…. 그리고 아까 선전포고를 보면 동맹이라는 밀라노 공국도 간당간당한 것 같네.

조수에 카르두치: 아직은 단언할 수 없어. 어쩌면 안드레아의 양동일지도 모르니까….
조수에 카르두치: 적어도 피렌체 공화국은 성하의 편이야.

마르코 폴로: 안드레아도 나름대로 머리가 잘 돌아가네. 이런 상황에서 선수를 치다니……. 좀 흥미가 생겼어.

조수에 카르두치: ……응?

마르코 폴로: 어흠. 그러니까 신앙과 세속을 분리하려 한다는 건 요컨대 교황인 나를 몰락시키겠다는 거잖아?
마르코 폴로: 그걸 내가 용납할 거 같아? 내가 직접 혼내 줄 테다!

라파엘로: 그럼 이제……?

조수에 카르두치: 즉각 추기경단을 소집하고 회의를 열어 대책을 세워야 해.

마르코 폴로: 이런 긴급 사태에 무슨 회의야?!
마르코 폴로: 내가 대장이니까 회의할 필요 없어!
마르코 폴로: 당장 로마로 돌아가자! 돌아가면 모두 내 지시에 따라!
마르코 폴로: 작전은 이동하면서 생각해 봐야겠어……. 자, 빨리 가자고!



 ~14. 아르노강 요격전

 

안전성과 신속성을 모두 고려해 일행은 귀환 수단으로 열차를 택하지 않았다.
마르코 폴로는 카르두치의 제안에 따라 몇 개의 강을 건너 로마로 직행하는 루트를 택했다.
이렇게 되면 피렌체 공화국 영내를 흐르는 아르노강 구간이 전체 경로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 된다.
현재 일행은 강 위를 질주하며 사디아 교국을 향해 전속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조레 바라카: 연안에서 주변에 이상 없다는 연락이 왔어. 어쩌면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마르코 폴로: 말도 안 돼. 안드레아처럼 똑똑한 애가 이 루트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마르코 폴로: 장담하건대 교황인 나를 잡을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바르톨로메오를 시켜서 시간을 끌 이유가 없잖아!
마르코 폴로: 모두 마음 놓지 마!

쾅――――!

조수에 카르두치: 진짜 왔네……. 무모함이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거구나.

마르코 폴로: 쟤들은 이미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했다고! 이 정도는 당연한 거야!
마르코 폴로: 어흠……. 교황 마르코 폴로는 여기 있다! 숨지 말고 이름을 대라!

검은 안개 속에서 천천히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볼차노(META): 우리가 여기 매복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다니. 소문만큼 무능한 교황은 아닌 것 같네.
볼차노(META): 사르데냐 연맹의 기사, 볼차노. 이런 상황에서 뵙게 되어 유감입니다. 교황 폐하.

트렌토(META): ………….

마르코 폴로: (META? 또? 안드레아 도리아도 META라면…….)
마르코 폴로: (이 세계에는 왜 이렇게 메타가 많아?)
마르코 폴로: (하필이면 트렌토까지…… 진짜 묘하네.)
마르코 폴로: 트렌토. 비록 우리가 적이라지만 적어도 인사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왜 아무 말도 없어?

트렌토(META): ……당신이 마르코 폴로 교황, 인거죠?

볼차노(META): 트렌토. 무슨 일이죠? 그녀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트렌토(META): 지금 이 상황에 유례없는 기시감이 느껴져요. 마치 꿈에서 겪은 것 같은…….

마르코 폴로: 흐응? 혹시 너 꿈에서 나하고 무슨 큰일 하지 않았어?

트렌토(META): ……잘 모르겠습니다.

볼차노(META): 이제 됐습니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겠죠.
볼차노(META): 인사는 충분합니다. 각오하세요. 봐 드리지 않겠습니다.

마르코 폴로: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마르코 폴로: 드디어 교황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했더니 연일 격무만 계속되고, 겨우 외출해서 기분 전환 좀 하나 했는데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고…….
마르코 폴로: 쌓이고 쌓인 내 분노를 똑똑히 보여 주마!
마르코 폴로: 간다! 모두 날 따라!!

말을 마치고 마르코 폴로는 주변의 경악한 시선을 뒤로 하고 돌격하기 시작했다.

트렌토(META): ……직접 달려들었어…!?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볼차노(META): ……요격합니다!



 ~15. 밤을 향한 삼보

 

나폴리 왕국

국경 요새 지휘실. 영야의 여제는 최신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줄리오 체사레(META): '영야의 깃발' 설치는 순조롭군. 이미 밀라노 공국을 포함한 5개국이 완전히 영야에 덮였어.
줄리오 체사레(META): 약속대로 밀라노 공국은 움직이지 않았고, 제노바 함대는 이미 피렌체 공화국으로 향하고 있어.
줄리오 체사레(META): 베네치아 공화국도 두 갈래도 나뉘어 교국 영내로 진군을 시작했다. 영야의 깃발이 휘날리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군.
줄리오 체사레(META): 완전히 성좌의 허를 찔렀지만…… 마르코 폴로를 처치하지 못한 것은 아쉽군.

안드레아 도리아(META): 확실히 아쉽네.
안드레아 도리아(META): 신의 예언으로 탄생한 함선 교황…. 그녀의 전투력을 다소 얕보고 있었어.
안드레아 도리아(META): 그리고 트렌토가 언급했던 그 기묘한 '와해의 힘'이라는 것도 궁금하고…….
안드레아 도리아(META): 성좌 측은 이미 그 '열쇠'를 바탕으로 더 강력한 신의 무기를 차근차근 장악하기 시작했을지도 몰라.

줄리오 체사레(META): 그리고 한 가지 더.
줄리오 체사레(META): 얼마 전 열린 9호 신의 무기고 안에 신형 신의 군단이 봉인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전투 능력은 아직 미지수다.
줄리오 체사레(META): 즉, 우리는 앞으로 예상보다 더 많은 신의 군단과 교전할 가능성이 높아.

안드레아 도리아(META): 이 정보를 카보우르에게도 공유해줘. 밀라노 공국이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지.
안드레아 도리아(META): ……아무튼 영야의 깃발이 가장 중요해.
안드레아 도리아(META): 각지의 영야의 깃발이 신광의 그물을 완전히 영야의 영역으로 바꾸지 못하면 우리는 신의 군단에 대적할 힘을 얻을 수 없어.

줄리오 체사레(META): 그 교황이 보여준 힘은 영야의 영역에 위협이 될 수 있어.

안드레아 도리아(META): 총지휘는 네게 맡길게.
안드레아 도리아(META): 나는 이제 전선으로 가서 로마를 강습할 거야. 직접 교황을 만나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