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및 관련 글/대형·전초전 스토리

별 내리는 석양의 잔광 上

킹루클린 2024. 12. 24. 14:59

 

 ~01. 만남
실험장???
‘잔해의 바다’ 주변
‘철혈 레지스탕스’ 샐비지 함대

밤하늘 아래 세 척의 함선으로 구성된 소규모 함대는 사주 경계하며 바다를 나아갔다.

뒤스부르크: 슬슬 ‘상승 조류’에 가까워지니까 다들 조심해.

Z52: 벌써 잔해가 밀려오고 있어…!
Z52: ……클래스 V 상승 조류라 그런지 역대급 스케일이네!

Z9: 확실히 대단하지만…… 올해 들어 처음 관측된 상승 조류죠…?
Z9: 이제 안 올지도 모르니까…… 뭐라도 좀 좋은 걸 회수했으면 좋겠어요…….

뒤스부르크: 응. 루메이도 기대하고 있고.
뒤스부르크: 큰 수확이 없으면 내년은 더 힘들어질지도 몰라….
뒤스부르크: 그래도 너무 걱정 마, Z9. 기록상 클래스 V 상승 조류 때는 항상 수확이 쏠쏠했으니까.
뒤스부르크: 지금은 ‘어떤 서프라이즈가 있을까’를 기대하는 게 더 좋을걸?
뒤스부르크: 어…? 전투 흔적이 있네…. 그것도 얼마 안 된 거 같아.
뒤스부르크: 설마 ‘그녀’가 먼저 온 걸까…?

Z9: 그래서 오는 길에 괴물들이 한 마리도 없었군요…….
Z9: 으으…… 장비하고 부품들을 많이 빼앗겼을 거 같은데…….

Z52: 걔는 계속 혼자 밖에 있고 조력자도 없으니까 당연히 상승 조류를 노리겠지?

뒤스부르크: 뺏겼든 아니든 클래스 V니까 모두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거야.

Z9: 훌쩍…… 죄송해요. ……생각이 그만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려서…….
Z9: 우리는 그 사람을 막을 수 없죠. ……애초에 막을 생각도 없지만요….

뒤스부르크: 그래. 오히려 걔가 자기가 원하는 걸 찾았으면 좋겠는데.
뒤스부르크: ……응? 저쪽 잔해에 누가 있는데……?

Z52: 어? 상승 조류 안에 사람이 있다고?!
Z52: 진짜다!!
Z52: ……근데 왜 안 움직여? 살아 있는 거야?

Z9: 히이익…… 히에에에에…… 아아아아….

Z52: 아! 움직였다! 살아 있어!

뒤스부르크: 바로 상승 조류가 데려온 서프라이즈가 나타났네. 얼른 구하러 가자!

----

"뜻밖의 여정“
"설계된 만남“
"석양이 사라지기 전에“
"별빛 아래에서 마음껏 찾도록 하라“
"낮의 태양 속에 숨겨진 세세한 부분을 찾고“
"밤의 어둠 속에 숨겨진 진정한 비밀을 발견하라“

 

----

 

잠시 후. 상승 조류 어느 곳.

뒤스부르크: 으으음――――

Z9: 훌쩍……. 으응―…….

Z52: 흐으으음――!!

지휘관: ……….

→ 저기, 안녕…?

Z52: 우와아아악! 말했어어어――!?
Z52: 게다가 알아들을 수도 있어! 대단해!!

지휘관: (어어……?)

뒤스부르크: 어흠. 아직 정신없을 텐데 미안해. 그래도 어떻게든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뒤스부르크: 넌 어디서 왔어? 왜 상승 조류 가운데 있던 거야?

지휘관: 나야말로 미안. 사실 기억을 좀 잃었거든….
지휘관: 너희가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 있었어…….

뒤스부르크: 그러니까… 기억 상실?

지휘관: 전부는 아니지만….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여기는 '실험장α’야?

뒤스부르크: 실험장…α? 너희들 실험장α라는 말 들어 봤어?

Z52: 아니?

Z9: 죄송해요…. 저도…….

뒤스부르크: 갑자기 나타난 데다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기억 상실증까지….
뒤스부르크: 혹시 너 외부의 손님이야?

지휘관: '외부의 손님'……?

뒤스부르크: 응.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 말야.

지휘관: 뭐?!
지휘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네…? 진짠가?)

뒤스부르크: '이세계인'이라고 하면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세계는 옛날부터 외부의 손님이 적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어.
뒤스부르크: 그들은 친절하고, 우리 세계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지.
뒤스부르크: 그런데 정말로 다른 세계 사람을 보게 되다니…….

지휘관: (다른 세계 사람의 방문에 익숙한 건가…? 뭐랄까 대단한 세계네….)

뒤스부르크: 후후. 아직 어리둥절한 표정이네.

지휘관: …너희도 놀라긴 마찬가지인 거 같은데.

뒤스부르크: 우리는 다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들은 거니까. 실제로 보는 건 저 '외부의 짐승'들 뿐이지만.

지휘관: '외부의 짐승'?

뒤스부르크: 아, 아냐. 이 얘기는 나중에 하자.

소녀는 강제로 화제를 돌렸다.

뒤스부르크: 나는 뒤스부르크. 여기 활발한 애는 Z52. 저기 귀여운 애는 Z9야.
뒤스부르크: 모두 철혈 공국 소속 레지스탕스야. 잘 부탁해.

뒤스부르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휘관: (보아하니 철혈 함선 같은데……. 철혈 '공국'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네….)
지휘관: 나는 실험장α에서 온 '지휘관'이야. 소속은…… 미안해. 기억이 안 나.
지휘관: 그래도 아마 군에서 복무했었고, 함대를 이끌고 싸웠던 적도 많을 거야…….

Z52: 어!? 그러니까 함대 지휘관이라고!?
Z52: 야호! 루메이가 알면 펄쩍 뛸 정도로 기뻐할 거야!
Z52: 지휘관. 우리하고 같이 갈래?

지휘관: 그래도 돼? 아까 "누가 도우러 올 거야"라는 말을 듣긴 했었는데….

Z9: ……저희가 온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지휘관: 응. 너희가 오기 전에 먼저 히퍼를 만났거든.
지휘관: "얌전히 기다려. 누가 널 도우러 올 거야'라고 했어.

뒤스부르크: ……히퍼? 너 히퍼하고 얘기한 거야?

Z52: 말도 안 돼……. 이세계인 너무 대단하지 않아!?

지휘관: 같은 철혈 동료 아냐?

뒤스부르크: 음… 뭐랄까. 걔는 별로 우리를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뒤스부르크: 평행선을 달리는 마음? 같은 거.

가벼운 말투였지만 뒤스부르크의 눈에서 복잡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지휘관: 외부의 짐승, META, 그리고 철혈 레지스탕스…. 이거 녹록치 않겠네.)

뒤스부르크: 아무튼 Z52. 양산함 한 척 꺼내줘. 지휘관하고 같이 돌아가자.

Z52: 상관없긴 한데 양산함을 꺼내면 노려지기 쉬워질걸?

뒤스부르크: 그럼 네가 지휘관을 업고 갈래?

Z52: 안 되는 것도 아니지 재밌을 거 같고♪

뒤스부르크: 재밌을 거 같지만 안 돼.

Z9: 맞아요…. 만약 지휘관님을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으으….

Z52: 그래…. 근데 아직 물자 회수 안 했잖아?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

뒤스부르크: 아니. 이미 본부에 상황을 보고하고 연락을 받았어.
뒤스부르크: 기존 임무는 폐기하고 대신 대형 설비 몇 개를 회수해 오라는 내용이야.

Z52: 응! 보기 드문 상승 조류니까 닥치는 대로 보물을 주워야지!

→ 임무?

뒤스부르크: 상승 조류 정찰, 안전한 항로 개척, 병참부의 대규모 회수를 위한 선행 준비 정도?
뒤스부르크: 고가치 목표 회수는 원래 임무에는 없었지만, 양산함까지 꺼냈으니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뒤스부르크: Z52말대로 상승 조류는 확실하게 이용해 먹어야 한다구.
뒤스부르크: 따라서 이제부터 기지에 부족한 고가치 설비를 회수하러 갈 거야.
뒤스부르크: 임무 시간은 길어지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지휘관: 난 괜찮아. 가서 일 봐.
지휘관: (잔해가 '보물'로 취급되는 세계라…….)



 ~02. 이해 증진
세 사람은 Z52가 꺼낸 양산함을 중심으로 상승 조류 안을 오가며 자재 회수에 나섰다.
동쪽 하늘이 밝아질 무렵, 전리품을 가득 채운 양산함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Z9: 휴우……. 정말 많이 회수했네요…….

Z52: 오랜만에 만선이네♪ 루메이도 엄청 좋아할 거야!

뒤스부르크: 흐흥. 이번에 회수 못한 것들 중에도 좋은 게 많이 있었어.
뒤스부르크: 다 체크해 놨으니까 나중에 오는 애들은 바빠지겠네~

밤새 애쓴 모두와 함께 양산함 휴게실에 모였다.
뒤스부르크는 식빵 같은 것과 병 7~8개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Z52: 음식을 이렇게나 많이? 오늘 화끈한데~♪

뒤스부르크: 이번엔 수확이 많았으니까 이 정도는 해 줘야지♪

Z9: ……기, 기대돼요…!

지휘관: (…음식이 많다고…?)
지휘관: (설마 저 병 안에 든 게 음식이야…?)
지휘관: (내 기억 속의 뒤풀이하고는 많이 다른 거 같은데….)

뒤스부르크: 지휘관도 사양하지 말고 같이 먹자~

뒤스부르크는 식빵을 한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병을 기울여 페이스트 형태의 무언가를 빵에 바르기 시작했다.

뒤스부르크: 슈바인스학세야. 어때? 먹어볼래?

지휘관: 슈바인스학세…? 이게…?

기억에 있는 단어임에도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지휘관: (백 번 양보해서 냄새는 슈바인스학세 같아. 병은 뭐 병조림이라고 치면 되고…….)
지휘관: (그럼 이 페이스트 같은 뭔가가… 음식이라는 거야……?)

Z52: 오! 표정을 보니… 푸드 튜브를 본 적이 없구나!

뒤스부르크: 후후후. 무슨 생각 하는지 대충 알겠네. 그런데 여기는 그런 '진짜'는 없어.
뒤스부르크: 비주얼하고 식감은 달라도 맛은 진짜 슈바인스학세라구?

병을 내려놓고 뒤스부르크는 손에 들고 있는 식빵을 물어뜯었다.

뒤스부르크: 맛있다~ 후후후, 진짜로 맛있어!

내 동요하는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다른 식빵 한 조각에 슈바인스학세를 발라 내게 내밀었다.

지휘관: 그, 그러면….

빵을 받아 그대로 입에 넣었다.
뒤스부르크 말대로 처음에는 빵과 의문의 페이스트만 느껴졌지만, 점차 고기의 식감과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뒤스부르크: 후후. 맛있지?
뒤스부르크: 대량 생산하는 합성 식품이지만 맛은 아주 좋아.
뒤스부르크: 그리고 이 빵도 평범한 식빵이 아냐.
뒤스부르크: 이렇게 특제 페이스트와 조합하면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다구.
뒤스부르크: 그래도 한 장당 하나만 바르는 걸 추천해. 안 그러면…….

뒤스부르크는 웃으며 테이블 위의 병을 하나씩 열었다. 이상하게도 정말로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뒤스부르크: 궁금한 게 많지? 먹으면서 얘기하자.

지휘관: ………….


→ 레지스탕스에 대하여
뒤스부르크: 그럼 우리의 상황을 가르쳐줘야겠네.
뒤스부르크: 지금 철혈 레지스탕스는 '외부의 짐승'이라는 적과 싸우고 있어.
뒤스부르크: ……150년쯤 전인가? 이 세계에 운석이 떨어졌어.
뒤스부르크: 처음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곧 그 하얀 적들이 바닷속에서 나타났지.
뒤스부르크: 너무나 갑작스러운 습격이라 각 진영은 거의 하루아침에 와해됐어.
뒤스부르크: 그 뒤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 녀석들과 싸워 왔지.
뒤스부르크: 우리 레지스탕스는 철혈 공국 소속 세력 중 하나야.
뒤스부르크: 우리말고도 많은 저항군들이 있어. …물론 정부 조직도 존재하고.
뒤스부르크: 어떤 곳은 내륙 깊숙이, 어떤 곳은 우리처럼 섬에 숨어 있지.

지휘관: 섬…? 바다에서 나타난 적인데 내륙하고 비교하면 방어하지 더 어렵지 않아?

뒤스부르크: 그건 그래. 그래도 함선은 바다에서 싸우는 게 유리하잖아?
뒤스부르크: 그리고 거점으로 선정된 섬들은 보통 섬이 아니라 과거에 사용되었던 군사 기지들이야.
뒤스부르크: 지금은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는 대형 무기들이 많이 있고, 경면해역처럼 은폐와 수비를 양립할 수 있는 방어 시설도 있어.
뒤스부르크: 뭐, 우리 기지에 와 보면 다 알 거야♪

→ 상승 조류에 대하여
뒤스부르크: 백 년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축적된 잔해들이 떠오르는 현상이야.

지휘관: 이렇게 많은 양의 잔해들이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을 줄이야….

뒤스부르크: 그야 오랫동안 싸워 왔으니 당연하지.
뒤스부르크: 떠오르는 잔해는 대부분 옛날 것들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거점을 빼앗기고 바다를 잃어가면서 점점 더 전력 차가 벌어졌거든.
뒤스부르크: ……운석이 데려온 외부 침략자는 이미 이 바다를 거점으로 삼았어.
뒤스부르크: 그 영향으로 바다도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
뒤스부르크: 상승 조류도 그 중 하나고.
뒤스부르크: 전쟁 중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잔해들이 어제처럼 대량으로 떠오르는 거야.
뒤스부르크: 이번에 회수한 것들은 기술 수준으로 볼 때 전쟁 초기에 만들어진 것 같아.
뒤스부르크: 덕분에 좋은 걸 많이 회수할 수 있었어.

지휘관: 설마 너희의 과학 기술은…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어…?

뒤스부르크: 하늘과 땅 수준이지. 그래서 우리한테 상승 조류는 거점 부근에서 발생하지 않는 한, 굉장히 고마운 존재야.
뒤스부르크: 오늘도 이렇게 상승 조류 덕분에 지휘관을 구했잖아♪

→ 루메이에 대하여
뒤스부르크: 아, 그러고 보니 루메이 얘기하고 있었지.
뒤스부르크: 이름은 프리츠 루메이. 우리 레지스탕스의 리더야.

지휘관: 너희처럼 함선이야?

뒤스부르크: 당연하지. 레지스탕스는 최전선에서 싸워야만 하니까, 리더의 책무도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뒤스부르크: 지금 저항하고 있는 각 진영의 리더들도 대부분 함선이야.
뒤스부르크: 그리고 루메이는――

Z52: 멋지고 강해!

뒤스부르크: 맞아, 그런 느낌~ 네 소식도 이미 전달했으니까 조만간 만날 수 있을 거야.
뒤스부르크: 기대해♪

----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별 탈 없이 양산형 구축함 한 척이 항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중에 드넓은 바다에 떠 있는 기이한 빛을 발하는 황량한 섬들이 여럿 보였다.
뒤스부르크에 따르면 저 섬들은 원래 레지스탕스의 거점이었지만,
적의 공격을 받아 토지가 반영구적으로 오염되었다고 한다.
인간은 물론 함선도 오래 머물 수 없다.
원래 레지스탕스는 오염을 정화하는 설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20년 전에 마지막 설비가 부품 노후화로 작동을 멈추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후 오염된 섬들은 모두 진입 금지 구역이 되었고, '외부의 짐승'들에게 함락된 지역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항해한지 몇 시간. 석양이 질 무렵, 문득 배 전방의 공기가 약간 뒤틀린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허공에 거대한 십자형 구조체가 몇 개 나타났다.

Z52: 방금 경면해역에 들어왔어!
Z52: 저기 떠 있는 건 레지스탕스의 외곽 방어 시설이야! 어때? 대단하지?

거대한 십자형 구조체는 소리 하나 없이 그저 조용히 석양 속에 떠 있었다.
그 조형은 기억 속 어느 시설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그 기능도 전혀 상상히 가지 않았다.

뒤스부르크: 우리는 저걸 '이터널 스타'라고 불러.
뒤스부르크: 여기 경면해역과 마찬가지로 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옛 유산이야. 신기하게 지금까지도 잘 작동하고 있어.
뒤스부르크: 방어력도 좋고 은폐 효과도 탁월하지.
뒤스부르크: 그래서 루메이가 여기를 본거지로 삼은 거야♪
뒤스부르크: 아, 그래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는 마.
뒤스부르크: 저건 어디까지나 과거에 설정된 프로그램대로만 움직이고 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순 점검뿐이고.
뒤스부르크: 점검 권한 없이 무단으로 접근했다가 만약 적으로 식별되기라도 하면…….
뒤스부르크: ……어흠. 그리고 저기 건물 보이지?

앞쪽에 거대한 섬이 나타났다.
섬 중앙에 이터널 스타만큼은 아니지만, 장관을 이루는 건물들이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뒤스부르크: 저게 레지스탕스 본부야.

Z52: 휴우……. 드디어 랜드마크가 보인다! 겨우 집에 가는구나….



 ~03. 레지스탕스
이튿날

레지스탕스 기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객실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오늘 점심시간에 레지스탕스의 리더 프리츠 루메이와 만나기로 했었는데…… 새벽에 갑자기 통신기에서 뒤스부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스부르크: 안녕, 지휘관. 뒤스부르크야.
뒤스부르크: 몇 가지 발견한 게 있어서 지휘관한테도 알려주려고.
뒤스부르크: 엔지니어링 부서가 어제 전리품 중에서 귀중한 장비 모듈을 발견했어. 덕분에 드디어 정화 장치를 수리할 수 있게 됐어.
뒤스부르크: 그리고 과학 연구선이 남긴 데이터 코어에서 장치 업그레이드 계획도 해석할 수 있었어.
뒤스부르크: 평가 결과…… 굉장히 쓸 만한 계획인 거 같아.
뒤스부르크: 루메이는 정화 장치가 수리되는 대로 기지 외곽 거점을 탈환할 생각이었던 거 같아.
뒤스부르크: 그래서 밤새 계획을 수정한 거 같은데….
뒤스부르크: 오늘 정오에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발표한다고 하니까, 지휘관도 괜찮다면 한번 들러줘.
뒤스부르크: 발표가 끝나면 루메이의 집무실로 안내할 테니까, 비밀 얘기는 그때 하자♪

----

정오

인산인해를 이룬 중앙 광장에는 깃발이 하늘 높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단상 위에, 철혈 군복을 입은 여성이 늠름한 모습을 드러냈다.

 

프리츠 루메이: 동포들이여!
프리츠 루메이: 클래스 V 상승 조류가 출현한 것은 모두 익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프리츠 루메이: 바로 어제, 귀환한 선발대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왔다.
프리츠 루메이: 그들이 회수한 장비로 인해 우리가 소지한 3대의 정화 장치를 모두 수리할 수 있게 되었다!
프리츠 루메이: 우리는 드디어― 기지 외곽 거점을 탈환할 수 있게 되었다!

레지스탕스 일원: 오오오오!!

마치 뜨거운 기름 솥에 물 한 바가지를 부은 듯, 군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루메이는 곧 손을 흔들어 군중을 진정시켰다.

프리츠 루메이: 기뻐하기는 아직 이르다.
프리츠 루메이: 회수한 데이터 코어에서 우리는 정화 장치의 업그레이드 계획, 그리고 생산 설비의 제조법도 해석할 수 있었다.
프리츠 루메이: 즉, 우리는 잃어버린 땅을 탈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륙의 함락된 지역을 공략할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레지스탕스 일원: 오오오오!!

아까보다 더욱 맹렬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프리츠 루메이: 따라서 3일 후에, 첫 실지 탈환 작전을 개시한다!
프리츠 루메이: 대상은 IB-AX-104 해역, 과거 '은별'이라고 불렸던 질버슈테른 섬이다.
프리츠 루메이: 작전 목표는 섬을 공략해 거점 기능을 회복하고, 기지와의 수송로를 구축하는 것이다.
프리츠 루메이: 이 섬을 되찾으면 정화 장치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광물 자원을 얻을 수 있다.
프리츠 루메이: 그리고 향후 반격 작전의 교두보가 될 것이다.

루메이의 연설은 계속됐다.
전과 보고는 어느덧 작전 계획 발표로, 그리고 구체적인 임무 할당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다소 의외였지만, 잘 생각해 보니 오히려 매우 합리적인 처사였다.

지휘관: (레지스탕스의 전선 기지니까…….)

----

 

연설이 끝나자 뒤스부르크는 약속대로 루메이의 집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방금 전까지 늠름하게 연설한 레지스탕스 리더와의 첫 만남이었다.

프리츠 루메이: 외부에서 온 손님. '지휘관'… 틀림없지?
프리츠 루메이: 이야기는 들었다. 어때? 하룻밤 쉬고 나니 기억은 좀 돌아왔나?

고개를 가로젓자, 루메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프리츠 루메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리 레지스탕스에 들어오지 않겠나?
프리츠 루메이: 레지스탕스의 현황은 보다시피 이렇다. 우리는 어떤 도움의 손길도 거절할 상황이 못 돼.
프리츠 루메이: 너는 외부의 손님이니… 우리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어.
프리츠 루메이: 네가 가지고 있는 지식, 정보……. 유감스럽게도 그것과 거래할 수 있을 정도의 물적 자원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프리츠 루메이: 만약 우리에게 협력해 준다면, 레지스탕스의 전우로서 당신과 함께 싸울 것을 약속하지.
프리츠 루메이: 너는 뛰어난 지휘관이라고 들었다.
프리츠 루메이: 우리는 너를 최대한 믿고, 네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전술 지휘 권환도 제공하지.
프리츠 루메이: 물론 네가 다른 세력으로 가겠다면 막지 않겠다.
프리츠 루메이: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네가 여기 남아서 우리를 돕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프리츠 루메이: 부탁한다. 지휘관.

지휘관: (간결하고 솔직한 부탁이군.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거절하기 힘들겠어…….)
지휘관: (프리츠 루메이…. 흥미롭군….)



 ~04. 석양에 물드는 기지
프리츠 루메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정식으로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되었다.
이 세계에서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별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래도 그녀와의 대화에서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프리츠 루메이: 기록에 따르면 너 같은 '손님'이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례가 몇 가지 있다.
프리츠 루메이: 당시의 주류적인 견해는, '당사자는 원래 세계로 귀환했다'는 것이었다.
프리츠 루메이: 그런 전례가 있으니 일단은 안심해도 좋아.
프리츠 루메이: 이후의 일은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도록 하자.

----

그 외에도 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적인 외부의 짐승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외부의 짐승의 성질은――'엑스'를 연상시켰다.
외형은 다르지만…… 이 일은 향후 싸워 보면서 탐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은 '안티 엑스'…… 세이렌에 관한 것이었다.

----

프리츠 루메이: ……안티 엑스? 들어본 적 없다. 세이렌에게 그런 별명이 있을 줄은 몰랐군.
프리츠 루메이: 물론 세이렌에 관한 정보는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프리츠 루메이: 결국 이 세계의 발전, 심지어 '나'의 탄생도 따지고 보면 세이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까.

----

루메이의 말에 따르면 이 세계의 세이렌은 약 200년 전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하지만 외부의 짐승과는 달리 세이렌은 우호적인 상대였다.
각 진영은 모두 세이렌의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인류 전체의 기술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 진영간의 대립은 세이렌 내부로도 파급되어 때때로 소규모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급속도로 발전한 문명의 황금시대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라 믿었다.
――외부의 짐승이 침공한 그날 전까지는.
외부의 짐승의 존재가 확인되자마자 당시 세계의 모든 진영은 세이렌의 깃발 아래 뭉쳐 무수한 격전을 펼쳤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세이렌이 패배한 이후, 외부의 짐승은 더 이상 공격해 오지 않았고, 그 기세도 잠잠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로 인해 인류의 저항 조직은 오늘날까지 존속할 수 있었다…….

(똑똑똑)

Z11: 싯키! 있어?

방밖에서 뒤스부르크 일행과 마찬가지로 레지스탕스의 일원, Z11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휘관: 무슨 일이야?

Z11: 싯키 아직 저녁 안 먹었지?

지휘관: 응.

아무리 그래도 오후 4시에 저녁은 아직 이르지.

Z11: 그럼 딱 좋네~ 뒤스부르크가 환영회를 준비했다고 싯키를 데려오라고 했거든!

지휘관: 환영회?

Z11: 당연히 레지스탕스 가입 축하 환영회지. 주역인 싯키가 빠지면 애들이 슬퍼할걸?
Z11: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지휘관: 그럼 가야지. 안내해줘, Z11.

Z11: !? 아…… 저기, 지, 지휘관. 우리 아지트는…….

지휘관: 당연히 모르는데?

Z11: 그렇겠지……. 그, 그럼 내가 안내해야겠지…….
Z11: 한달음에 갈 수밖에 없겠네……!

지휘관: ……?

Z11: 스읍 하아 스읍 하아……. 좋아, 준비됐어♪ 출발하자, 싯키!

갑자기 폭발한 Z11의 강렬한 기세에 휩쓸려 우리는 날아갈 듯한 속도로 휴게실을 뛰쳐나갔다.

----

 

잠시 후.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은 해변에서 뒤스부르크 일행은 석양이 지는 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Z52: 오, 지휘관. 그리고 Z11! 드디어 왔네!

Z11: 후우……후우……. 임무 완료…. 이제 돌아가도 되나요오…!?

Z52: 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렇게 왔으니까 당연히 같이 파티 해야지!

Z11: 아… 아하하하……. 역시 또 그거 하는 건가요….
Z11: ……Z9도 가나요…?

Z9: 지휘관의 환영회니까…….

Z11: ……어, 어쩔 수 없네……. 가면 되잖아요!

Z52: 야호!

→ ……파티?
→ ……그거?

뒤스부르크: 후후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네. 내가 설명해 줄게♪
뒤스부르크: 저쪽 봐봐. 뭐가 보여?

뒤스부르크의 손가락은 레지스탕스 기지 주변 해역의 조금 큰 섬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지 섬과는 철교로 연결되어 있었고, 섬 중심에는 본부와 버금가는 대형 시설이 우뚝 서 있었다.

뒤스부르크: 저건 에너지 타워야. 기지뿐만 아니라 경면해역과 주변 이터널 스타에도 에너지를 공급하는 우리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지.
뒤스부르크: 안에는 비밀도 많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해명하지 못해서 지금은 그냥 방치되어 있는 느낌이야.

지휘관: 에너지 타워……. 저기가 아지트야?

뒤스부르크: 아니야. 하지만 지금부터 할 일과 좀 관계가 있어.
뒤스부르크: 몰래 알려 주자면, 저기에는 작은 '어류 양식 시설'이 있어.

지휘관: ……어류 양식 시설?

뒤스부르크: 응. 푸드 튜브에 익숙하지 않은 거 같아서, 생선을 조금 '빌려서' 구워 줄까 하고.

지휘관: ……빌려?

뒤스부르크: 응. 그냥 빌리는 거야!

뒤스부르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지휘관: 그래? 그럼 어떻게 돌려줄 생각인데?
지휘관: (먹어버리면 끝이잖아….)

뒤스부르크: 어차피 줄어들지는 않을 거야.

뒤스부르크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Z52: 어차피 며칠 뒤면 다시 태어날 거잖아? 후후후♪

지휘관: ………….

Z52: 어때? 지휘관도 같이 '빌리러' 갈래?

지휘관: 재밌을 거 같으니까 해볼까. 이 세계의 사회 체험의 일환으로.

Z52: 그래야지! 다들, 출발하자!

Z11: 추, 출발……!

----

 

잠시 후.

Z9: 휴우……. 수고하셨어요. 커피 드세요…!
Z9: 생선구이도 곧 완성될 거예요♪

뒤스부르크: 네 옷도 이제 다 말랐어. 후후후, 오늘 생선은 싱싱하네.

지휘관: (생선 빌리기 작전…… 정말 재밌었어…….)
지휘관: (마지막으로 이런 재밌는 일을 한 게 언제였을까…….)
지휘관: (큭……. 기억 상실 때문에 생각이 안 나.)

Z52: 아앗―! 큰일 났다아아아!! 아무나 도와줘!

Z11: 꺄악!? 뭐, 뭐야!?

Z52: 불이 약해서 휘발유를 좀 넣었는데…… 탄 거 같아!

뒤스부르크: ……아아~ 이래서 너 말고 다른 사람이 구우라고 한 건데….
뒤스부르크: 지휘관, 잠깐만…. 좀 보고 올게!

이렇게 레지스탕스의 아지트에서 즐거운 하룻밤을 보냈다.



 ~05. 바다에 가라앉다
눈 깜짝할 사이에 3일이 지나, 드디어 출격할 때가 되었다.

뒤스부르크: 지휘관. 이 함대는 네가 지휘를 맡는다고 루메이한테 들었어.
뒤스부르크: 첫 작전인데 내가 부관으로 도와줘도 돼?

지휘관: 당연히 괜찮지. 고마워.

뒤스부르크는 이곳의 바다나 외부의 짐승에 대해서도 나보다 몇 배는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첫 작전에서 이런 부관이 곁에서 보조해 주면 정말로 큰 도움이 된다.

뒤스부르크: 후후. 최선을 다할게.
뒤스부르크: 현재 Z52의 정찰함대는 IB-AX-108에서 110으로 향하고 있어. 루메이의 본대도 기지에서 출격했고.
뒤스부르크: 상륙함대와 호위함대는 아직 대기 중이야.
뒤스부르크: 우리 소탕함대의 임무는 104 해역의 수송로를 확보 및 적을 남김없이 격파하여 샘플을 회수하는 거야.
뒤스부르크: …그나저나 외부 짐승의 샘플이 정화 장치 업그레이드의 재료라니….
뒤스부르크: 104 해역은 넓지만, 지금까지는 별다른 일 없이 안전했어.
뒤스부르크: 8시간 전에 실시한 정찰에서도 이상은 없었어.

지휘관: 그런가….
지휘관: (주변 해역이 안전하다면 전력을 분산시키는 편이 더 효율적이야. 하지만….)

뒤스부르크: 지휘관. 슬슬 출발하자.

----

함대가 103 해역까지 진출했을 때, 갑자기 외부의 짐승과 조우했다.

콰앙――――!!!!

 

외부의 짐승 무리: 쿠오오―――!!!!

지휘관: 엄청난 규모다…! 이 정도 규모도 정상 범위 내야…?

뒤스부르크: 아니. 오히려 몇 년 동안 이 정도 대군은 본 적도 없어!
뒤스부르크: 왜 하필 오늘…….
뒤스부르크: 지휘관, 빨리 철수하자!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야!

지휘관: 그래. 각 함은 엄호하면서 즉시 철수해. 그리고 아군 함대와 기지에 연락해서 루메이에게 작전을 중지하라고 전해!

뒤스부르크: 응!

콰앙――――!!!!

외부의 짐승 무리: 쿠오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부의 짐승 무리는 점점 수가 불어났다.
전황은 순식간에 절망에 빠졌다.
최선을 다했지만, 통신 채널 속 동료들의 목소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는 철수조차 불가능하다.

뒤스부르크: 말도 안 돼……. 왜 하필 작전 결행일에 이런 규모의 적이…….
뒤스부르크: 어째서…….

필승을 기한 작전은 이렇게 참패로 끝났다.
통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뒤스부르크의 목소리는 슬픔과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뒤스부르크: 지휘관……. 더는 피할 수 없나 봐…….
뒤스부르크: 너까지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 나는…….

쾅――――!!!!

통신 채널이 죽은 듯 조용해졌다.

지휘관: ………….
지휘관: 나는…… 죽는 건가?
지휘관: ……이렇게 허망하게……?
지휘관: 아직 아무것도 못했는데……. 기억도 되찾지 못했고…….
지휘관: 이런 결말을 맞다니…….

쾅――――!!!!

양산함이 폭발하는 충격과 함께 의식은 점점 가라앉았다.

의문의 소리: ――――

귓가에 카드를 섞는 소리가 들렸다.



 ~06. 머나먼 대국

 

???? ????
???

거함 안에서 푸른 머리 소녀는 눈앞에 펼쳐진 은하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헬레나(META): ……나락은 NA 해역의 특이점과 연결되어 있었어. 그건 확실해.
헬레나(META): 그런데…… NA 해역 특이점의 출구에 누군가가 손을 썼어.
헬레나(META): 멤피스는 지금 다른 실험장에 가 있는 것 같고, 지휘관은 행방불명…….
헬레나(META): ……아니. 실험장β 전체가 환상으로 변했어.
헬레나(META): ……찾아봐도 안 나와. 진짜 실험장β는 어디에 있지?

헬레나의 안색에 고뇌의 빛이 더해졌다.

헬레나(META): 수동 관측, 정기 스캔 모두 이상 없음. 수동 방어 경보 없음. 능동 방어 반응 없음.
헬레나(META): 타워의 리소스로 능동 관측을 하지 않았다면 실험장β에 깔린 위장을 간파할 수 없었을 거야.
헬레나(META): 진짜 실험장β……는 어디론가 옮겨졌어.
헬레나(META): 좌표 변경, '가지' 규모의 환상, 타워의 관측을 재밍할 수 있는 수단…….
헬레나(META): ……틀림없어.
헬레나(META): 아비터 엠프레스, 그리고 매지션…….
헬레나(META): 여왕과 마술사가 손을 잡았구나.

그녀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헬레나(META): 지휘관을 노리며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영혼 없는 것들…….
헬레나(META): 그동안의 원한에 새 원한까지……. 좋아, 해보자.

통신: ――

헬레나(META): 진츠. 나야.



 ~07. 중앵 파빌리온

 

사디아 제국
구 세계 박람회 회장
중앵 파빌리온

야마토의 연락을 받은 아카기는, 아마기는 아직 요양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며 나락에서 탈출한 함선들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나 사디아 제국으로 향했다.
박람회 기간 동안 큰 인기를 끌었던 중앵 파빌리온은 폐막 이후에도 헐리지 않고 남아 있었다.
무사시가 시나노에게 맡긴 이 장소에는 다른 파빌리온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아카기: 곳곳에 결계가 있네…….
아카기: 설마 정원의 꽃조차 결계의 힘으로 보살핌을 받고 있다니.
아카기: 고작 박람회용 시설에 이런 장치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아카기: 방호력도 괜찮고…….
아카기: 공중에서 지하까지 겹겹이 쌓여 있네요.
아카기: 시나노. 이건 '종말의 벙커'를 기준 삼아 만든 건가요?

시나노: 나는 건축가이지… 설계자가 아니다…….

아카기: 그랬겠죠.
아카기: 아무튼 도착했는데 야마토에게서 뭔가 새로운 연락은 없었나요?

시나노: 잠시만…….
시나노: 관에 있는 장치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구나….
시나노: 정신 간섭을 막는 효능도 있으니 안심하고 준비하도록 하여라, 고….
시나노: 그리고 '반혼식'은 이틀 뒤에 거행된다고 하는구나….
시나노: 의식의 일환으로 쓰러진 동료들을 부활시키고, 이번 전투로 중앵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대중의 잠재의식을 지워야 한다…….
시나노: 또한 이번 의식을 통해 지휘관을 겨냥한 전 세계적 정신 간섭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나노: 그러나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지휘관이 소실된 이후의 '구멍'을 찾아야 한다….
시나노: 그리고 우리들의 올바른 기억을 바탕으로, 이러한 구멍이 원래 어떠하였는지를 기록하면…….
시나노: 승산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아마기(항모): 중앵 동료들의 부활과 지휘관님의 구출……. 일석이조를 노리는 전략이군요.
아마기(항모): 하지만 반혼식이 이틀 뒤라면…. 그 사이에 '구멍'을 메꾸는 기록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멤피스: 그건 나하고 헬레나한테 맡겨. 이런 정보 처리는 특기니까.

헬레나: 응. 지휘관을 위해서라면……!

아마기(항모): 네. 지휘관님에 관한 정보에서 확실히 두 분은 일일지장이 있으니까요.

멤피스: 뭐어… 그렇지?

즈이카쿠: 나하고 류호도 도울게!

류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마기(항모): 후후후. 지휘관님을 위해 모두 협력하도록 해요.

시나노: 아. 만약 지휘관이 사라지기 전에 무언가 인연이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면 좋을 것이라고 야마토가…….

멤피스: 인연이 있는……? 아!
멤피스: 지휘관이 사라지기 전에 내가 손수건을 줬었어!

시나노: 손수건……! 승산이 또 오르는구나….

아카기: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았군요…….

시나노: 그리고… 상황이 복잡하니 카가는 가능한 한 빨리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좋다고 하는구나…….
시나노: 네 현재 자아를 바탕으로 지난 20년간의 기억과 변화를 융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카가(전함):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네….

시나노: ……허면 야마토가 보낸 의식의 요람대로… 준비에 착수하자꾸나…….

아카기: 좋아. 모두 제자리로 움직이세요!



 ~08. 오랜 친구?

 

빛이 사라지자 밝은 교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휘관: 하아……하아……하아…….

죽음의 냉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따스한 햇살마저 눈부실 정도였다.

지휘관: ……어떻게 된 거지?
지휘관: 방금은 환상이었나? 아니면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환상……?

 

마담 M: 후후후. 죽음의 감촉은 절대 좋은 느낌이 아니지. 천천히 익숙해지면 돼.

교단 쪽에서 보라색 머리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걸어왔다.

지휘관: 생각났다. 너하고 이 교실…….
지휘관: 전에 만난 적 있었지……. 맞지? 마담 M.

마담 M: 기억이 조금 돌아왔나 보네.

지휘관: 그 이상은 생각 안 나. ……이 기억 상실증은 너하고 관계가 있는 건가?

마담 M: ……오랜 친구를 만나면 자극으로 인해 기억이 일부 돌아오는 일이 있다고도 하지.

지휘관: 내가 너하고 옛날에 친했었다고…? 그런 느낌은 없는데.

마담 M: 그래? 아쉽네.

그러면서도 마담 M의 얼굴에 아쉬움은 추호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담 M: 자. 우선 네가 가진 의문에 대해 얘기해 볼까?

지휘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마담 M: '탐색할 권한'과 '선택할 기회'를 준다고 했잖아.
마담 M: 어때? 이번 탐색은 그런대로 즐거웠어?

지휘관: 여전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내가 누구인지'를 찾는 거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데?

마담 M: 그건 네가 이번 탐색에서 어떤 결론을 얻느냐에 달려있어.
마담 M: 가령――세이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지휘관: 세이렌…….
지휘관: 세이렌의 등장은 저 세계의 기술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어. 외부의 짐승과의 싸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했지.
지휘관: 저항은 실패로 끝났지만, 세이렌이 남긴 시설은 인류가 계속 저항할 수 있는 바탕이 됐어.
지휘관: …너 설마 그 외부의 짐승이 세이렌의 천적이어서 그렇게 쉽게 패배한 거라고 암시하는 거야?

마담 M: 별로 암시한 적 없어. 그냥 네가 스스로 사고하는 게 멋지다고 생각할 뿐이야.

지휘관: ……결국 전부 네가 준비한 환상이었다는 건가?

마담 M: 그건 네가 생각하기 나름이야. 네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면 진실이 되고, 거짓이라고 생각하면 거짓이 돼.

무표정인 채로 마담 M은 여전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담담히 내뱉고 있었다.

마담 M: 그리고 사실 이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지휘관: 뭐?

마담 M: 나한테도 너한테도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마담 M: 네가 정말로 신경 쓰고 있는 건 진실이냐 거짓이냐가 아니잖아?
마담 M: 이번 탐색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만약 그 모든 일들이 진실이었다고 한다면 네 생각은 어때?

지휘관: 그렇다면 정말로 처참한 패배였지. 네가 아니었다면 나도 끔찍한 일을 당했을 거야.
지휘관: 만약 적에 대한 자료를 좀 더 자세히 조사하고, 루메이에게 더 의견을 내고 전력을 신중하게 배치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몰라.

마담 M: 그럼 만약 그 모든 일들이 환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면 네 생각은 바뀔까?

지휘관: 아니. 하지만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야.
지휘관: 만약 현실이라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지.
지휘관: 하지만 환상이라면 오히려 매우 가치있는 시뮬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어.
지휘관: 만약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이 경험 덕분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마담 M: 그건 '똑같은 거'야.
마담 M: 네가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면 다시 선택하면 돼. 왜 나중까지 기다려야 하지?

지휘관: …그 환상을 다시 겪고 더 나은 선택을 하라고?

마담 M: 내가 환상이라고 말했나?

지휘관: 하지만 그 일들이 모두 현실이라면…… 다시 선택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마담 M: 그건 내 문제야. 네가 고려해야 할 문제는…… 만약 다시 선택할 기회가 생겼을 때, 그걸 잡을지 말지야.

지휘관: ……당연하잖아. 슬픔이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계속 바꾸어 나갈 거야.

마담 M: 그럼 그렇게 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점점 밝아져 시야의 모든 것을 흰색으로 바꾸었다.

마담 M: 넌 언제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마담 M: 뭘 골라야 할지 고민될 때에는…….
마담 M: 확신이 생길 때까지 전부 시험해 보면 돼.



 ~09. 두 번째 기회
T=T-82

눈부신 빛이 사라지자 의식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다시 눈을 뜨자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휴게실 천장이 보였다.
침대맡에 놓인 통신기가 깜빡이고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뒤스부르크가 보낸 메시지가 재생됐다.

뒤스부르크: 몇 가지 발견한 게 있어서 지휘관한테도 알려주려고.
뒤스부르크: 엔지니어링 부서가 어제 전리품 중에서 귀중한 장비 모듈을 발견했어.
뒤스부르크: 덕분에 드디어 정화 장치를 수리할 수 있게 됐어.
뒤스부르크: 그리고――

뒤스부르크는 전리품에서 얻은 성과에 대해 다소 흥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마치 3일 전처럼.

지휘관: 아침 6시. ……정말로 돌아왔구나.
지휘관: ……그렇다면 기회를 잡아야지.
지휘관: (루메이의 연설까지 앞으로 6시간. 거기서 작전 계획과 임무가 발표되면 같은 결말이 되어버려.)
지휘관: (편성을 바꿀 타이밍은 지금 이 순간밖에 없어.)
지휘관: (시간은 촉박한데 할 일은 산더미야. …우선은 새 작전 계획부터 짜 보자.)

이미 생각을 끝내 놨기에 작전 계획 수정에는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후 곧바로 뒤스부르크에게 연락해 루메이와의 면담을 좀 더 빠른 시간으로 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뒤스부르크는 놀라면서도 역시 궁금해서 그런지 루메이에게 말을 전해 주었다.

----

약 30분 후.

프리츠 루메이: ……작전 계획을?

루메이의 성격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간단한 인사만 하고 바로 준비한 작전 계획을 내밀었다.

프리츠 루메이: 흠……. 꽤 흥미로운 내용이군.

이전 계획에 비해 병력 분산 축소, 구역 정찰 강화, 샘플 수집 임무 등 세 가지에 초점을 맞췄다.
즉 주요 목표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작전 중에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부차적인 이익은 포기하는 방향이다.

프리츠 루메이: 뒤스부르크에게 들은 정보만으로 여기까지 생각한 건가?
프리츠 루메이: 기억을 잃기 전에는…… 상당히 우수한 지휘관이었겠군.

당연히 루메이는 이 계획의 뒷이야기를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자.

프리츠 루메이: ……하지만 네 계획은 마치 작전 중에 적의 매복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군,
프리츠 루메이: 왜 그렇게 생각했지.

지휘관: 신중해서 나쁠 건 없어. 그리고 반격 작전의 초전은 특히 더 중요해.
루메이의 수상쩍은 시선에 나는 미리 준비한 대답을 꺼냈다.

지휘관: (……3일 뒤의 참패를 미리 겪고 왔다…고는 말 못하지.)
지휘관: (기억 상실만으로도 충분히 수상한데 더 이상 의혹을 늘릴 수는 없어.)

프리츠 루메이: ……그런가.

결국 외부의 손님이라는 후광 아래 루메이는 이 계획을 받아들였다.

프리츠 루메이: 매우 가치 있는 계획이야. 현행 작전을 수정하지.
프리츠 루메이: 그리고… 3일 뒤 작전에서 네게 주력함대의 지휘를 맡기고 싶다. 맡아 주겠나?

지휘관: 물론이지. 맡겨줘.

프리츠 루메이: 그래. 철혈 레지스탕스를 선택해 줘서 고맙다.
프리츠 루메이: 이제 연설문을 수정해야겠어.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도록 하지.

지휘관: 그래. 그런데 하나만 더 상의하고 싶은 게 있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는 이터널 스타를 조사해서 세이렌과 외부의 짐승에 관한 정보를 더 찾아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뜻밖에도 루메이는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지휘관: (기억에는 없지만 안티 엑스 시스템과 나 사이에는 복잡한 관계가 있을 거야.)
지휘관: (그들이 남긴 무기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면, 전황에 강력한 보험이 될 거야.)
지휘관: (남은 3일 동안 이터널 스타에서 얼마나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겠군.)



 ~10. 이터널 스타 복구 작전

 

루메이의 연설이 끝난 뒤, 나는 뒤스부르크와 Z52에게 가장 상태가 좋은 이터널 스타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양산함을 타고 잠시 후, 우리는 무사히 구조물 바로 아래에 도착했다.
이터널 스타는 수면에서 10m 가량 떨어진 허공에 조용히 떠 있었다.

지휘관: (부유 기술……. 이사회의 부유 함대와 비슷해….)
지휘관: (아니,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을 안정적으로 띄우고 있는 걸 보면 이쪽 기술이 더 대단하군…….)

뒤스부르크: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이터널 스타 1호기야.
뒤스부르크: 우리가 여길 접수하고 나서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성과는 미미했어.
뒤스부르크: 하지만 너는 신비한 지휘관이니까 혹시 모를지도♪

뒤스부르크는 미소를 지으며 갑판 위의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

뒤스부르크: 자, 지휘관, 들어와.

지휘관: 이 컨테이너는 뭐야…?

뒤스부르크: 이터널 스타는 떠 있잖아?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하늘을 날 수는 없다구.

뒤스부르크는 멋지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익룡을 닮은 모습의 드론 몇 대가 날아와 컨테이너 네 귀퉁이에 훅을 걸었다.

지휘관: 드론으로 컨테이너를 들어올리는 거였어? 그나저나 이 드론들은 뭐야?

뒤스부르크: 정식 명칭은 오니솝터 모델 IB-50 '프테라'. 의장 기술을 응용한 드론이야.
뒤스부르크: 그냥 프테라라고 부르면 돼.

지휘관: (오니솝터……. 뭐, 고정익하고 운용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네.)

Z52: 빨리 가자! 지휘관!

----

잠시 후.

구조체에 들어서자 너비 3m, 높이 5m의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통로 끝에는 중앙 홀까지 직행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 외에는 갈림길도, 계단도, 문도 없었다.

뒤스부르크: 밖에서 볼 때는 그렇게 큰데 생각보다 구조도 단순하고 내부 공간도 좁지?

지휘관: 응. 사흘이 꼬박 걸릴 줄 알았는데 이러면 반나절이면 끝나겠네.

뒤스부르크: 세이렌 시설은 원래 이래. 폐쇄적이고 지극히 단순. 거기에 고도의 자동화.
뒤스부르크: 우리와 협력하는 걸 고려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 홀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지휘관: 그렇구나.

뒤스부르크: 저기 보이는 단상 7개가 모두 조작 콘솔이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건 하나뿐.
뒤스부르크: 입구와 통로 개폐, 출입 입원의 권한 관리, 경계 범위 수정, 전망대 모드 온 오프 정도만 가능해.
뒤스부르크: 일단 내가 한번 보여줄게.

뒤스부르크는 가는 손가락으로 콘솔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벽과 바닥이 순식간에 투명해졌다. 사방에서 태양빛이 들어오고, 발밑에는 바다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뒤스부르크: 후후후. 이게 전망대 모드야. 대단하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공중에서 사방을 한눈에 관측할 수 있었다.

지휘관: 전망보다는 오히려 전술 지휘에 적합한 시야를 얻기 위한 기능 같은데…?

뒤스부르크: 음… 그럴지도?
뒤스부르크: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이터널 스타를 전투용으로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결국 전망대에 지나지 않지.

지휘관: (그런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고 첫 번째 콘솔에 아무렇게나 손을 올렸다.

1번 콘솔: "조작 권한이 확인되었습니다.“

홀 전체에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마치 잠에서 깬 듯 두 번째 콘솔도 빛나기 시작했다.

지휘관: (역시 나와 안티 엑스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나 보군.)

뒤스부르크: 우와……. 역시 외부의 손님. 대단해!
뒤스부르크: 지금까지 이런 건 본 적도 없어…! 빨리 루메이한테 연락해야지!

Z52: 지휘관! 뭐 새로운 기능은 없는지 빨리 확인해 봐!

Z52는 나를 두 번째 콘솔로 떠밀었다. 콘솔 앞에 서자 바로 기능과 조작법이 생각났다.

지휘관: 이 콘솔에서는… 시스템 로그 확인, 자가 진단, 물자 반입 통로 개방…….
지휘관: 각 무장 상태 확인, 요격 모드 조정, 개별 무장의 정밀 조작도 할 수 있어…….

Z52: 그러면…앞으로 이터널 스타를 조종해서 싸울 수 있는 거야!?
Z52: 장난 아니잖아, 이거!

지휘관: 통로가 열리면 주변 이터널 스타도 복구할 수 있겠어.
지휘관: 에너지와 물자 부족으로 기능이 상실된 구조체에도 안전하게 보급할 수 있겠지.
지휘관: 어쨌든 앞으로 레지스탕스 기지의 작전 능력은 비약적으로 강화될 거야.

Z52: 지휘관을 숭배하고 싶어졌어!

프리츠 루메이: 지휘관. 정말 엄청난 깜짝 선물이로군.
프리츠 루메이: 그런데 이터널 스타에 이동 기능도 있나?
프리츠 루메이: 만약 이동 포대로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면 더 많은 해역을 탈환할 수 있을 거다.

지휘관: …그건 안 되겠는데.
지휘관: 시스템 로그를 보면 이터널 스타는 뭔가 더 거대한 장치의 부품 같아. 단독 이동 기능은 없어.

프리츠 루메이: 장치? 그건 금시초문이군.

지휘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경면해역과 에너지 타워도 이 장치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지휘관: 하지만 아쉽게도 부품은 일부만 갖추어져 있고, 장치는 끝내 완성되지 못한 것 같아.

프리츠 루메이: 그런가. …아쉽군.
프리츠 루메이: 아무튼 지금 우리에게 그 장치를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리츠 루메이: 그래도 이는 큰 발견임이 틀림없다.
프리츠 루메이: ……여기서도 1호기가 변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벌써 유지 보수를 시작한 건가?

지휘관: 응. 여기 보존 상태가 제일 좋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자가 진단 해보니까 문제가 많이 검출됐더라.
지휘관: 그래도 다 작은 문제들이니까 금방 끝날 거야.

프리츠 루메이: ………….

루메이는 말을 삼킨 채 감정을 억누르는 것 같았다.

프리츠 루메이: 지휘관……. 남은 것도 잘 부탁한다.

지휘관: 그래. 되는 데까지 해볼게.
지휘관: (3일 뒤 작전 결행일까지 기지 주변의 이터널 스타를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자!)

 

 

 

 ~11. 에너지 미네랄
사흘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마침내 출격의 때가 찾아왔다.
수정된 작전 계획 덕분에 신속하게 '외부의 짐승'의 주력을 발견하고 무사히 섬멸할 수 있었다.
뜻밖에도 대량의 샘플도 입수할 수 있어서, 연기됐던 임무까지 한꺼번에 달성됐다.

 

주력함대는 순조롭게 질버슈테른 섬으로 진격했다.
전력 집중을 위해 상륙함대와 호위함대를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섬 완전 제압과 채굴 기지 설치는 이번 작전 목표에서 제외됐다.
섬 주변의 위협을 소탕한 뒤, 주력함대원들이 자동 채굴 장치를 설치하고 정화 장치 보수 및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양만 채굴한다.
이 역시 지난 작전 계획에서 수정된 점이다.

Z52: 다들 주목~! 채굴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어!

Z52가 섬 가장가리에 있는 높은 산을 가리켰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척박한 땅. 무수한 잔해가 퇴적되어 있어, 산 전체가 금속 광택을 발하고 있었다.

프리츠 루메이: 광물이니까 광산이나 채굴장일 줄 알았나?
프리츠 루메이: 이번에 채굴할 것은 '에너지 미네랄'이라고 불리는 금속 잔해에서 나는 특수 광물이다. 에너지 큐브를 생산하는 주요 재료이기도 하지.
프리츠 루메이: 과거 각 진영은 인공적으로 대량 배양한 고순도 에너지 미네랄을 이용해 무수한 에너지 큐브를 생산했다.
프리츠 루메이: 그 무궁무진한 에너지야말로 문명의 황금시대를 지탱해 주었지……. 그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는 석양의 전광에 불과해.

루메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휘관: (……에너지 큐브? 낯익은 이름인데…….)

시야 끝 대양 속에서 갑자기 한 줄기 비늘이 번쩍였고, 머릿속으로 정보가 일제히 쏟아져 들어왔다.

----

큐브 표준 기술 컨퍼런스는 금일 마지막 날 일정을 마치고 논의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컨퍼런스에서는 큐브의 정식 명칭을 '에너지 큐브(ε-cube)'로 규정했습니다.
동시에 에너지 큐브의 생산과 응용에 관한 일련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기존의 에너지원과 달리 에너지 큐브 생산에 가장 중요한 프로세스는 복잡한 성분을 가진 특수 조재 용기를 제조하는 것이다.
……용기 제조 공정에서의 다양한 매개 변수는 생산되는 에너지 큐브의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 팀은 에너지 큐브의 재료 구조 연구에서 비약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에너지 큐브는 구성 재료의 특성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변화한다.
에너지 큐브를 구성하는 재료 = 에너지 큐브인 것이 아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종이와 강철 모두 에너지 큐브를 만드는 데 적합한 소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에너지 큐브의 외각 물질에 관한 실험은 또 다시 무수한 가능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

지휘관: (이건…… 잃어버린 기억?)
지휘관: (에너지 큐브……. 그렇구나. 이 세계 사람들은 이 광물을 사용해서 에너지 큐브를 생산했던 건가?)
지휘관: (그나저나 '에너지 미네랄'은 뭐지……? 기억에 있는 정보하고 다른데.)
지휘관: (에너지 큐브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분명 극히 복잡한 성분의 합성 재료였을 거야…….)
지휘관: (그게 이 광물의 가공품이라는 건가?)

그 후로 새로운 정보는 나오지 않았고, 사고도 유의미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 사이 루메이 일행은 지정 구역에 채굴 장치를 설치했고, 채굴 로봇들이 다급하게 작업을 개시했다.

지휘관: 전략 물자를 얻었으니 레지스탕스의 반격 작전도 좋은 출발을 끊었다고 할 수 있겠지.
지휘관: 일단 한고비는 넘겼나.

통신: ――

Z11: 기, 기기긴급 사태예요! 들리세요!?

프리츠 루메이: 무슨 일이냐! 보고해!

Z11: 큰일 났어요! 외부의 짐승이 갑자기 기지를 향해서 대규모로…….

통신: ――!

Z11: 대규모로 공격을 가하고 있어요!

프리츠 루메이: …바로 귀환하마.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라!

Z11: 아, 알겠습니다…!

통신: 콰앙――!

지휘관: ………….

프리츠 루메이: ……들은 대로다.
프리츠 루메이: 임무는 중지다. 전원 즉시 귀환한다!



 ~12. 죽음의 사냥
함대는 기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뒤스부르크: 루메이. 지휘관. 이대로 직진하면 위험 해역으로 진입하게 돼.

지휘관: (……위험 해역?)
지휘관: 위험 해역은 우리 주력함대에 얼마나 위험한 거야?

프리츠 루메이: 어느 정도 위협은 있지만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뒤스부르크: 그럼…….

프리츠 루메이: 한시가 급박하다. …항로는 변함없다.

뒤스부르크: ……알겠어!

----

쾅――!

외부의 짐승 무리: 쿠오오――!!!

Z52: 으으…….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데 또 따라잡히다니!

지휘관: ……저번보다 확연하게 강해졌어.
지휘관: 루메이. 적은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 것 같아.
지휘관: 기지를 공격함과 동시에 귀환하는 함대를 요격……. 어쩌면 지휘를 맡는 상위 개체가 나타난 걸지도 몰라.
지휘관: 이대로 전진하는 건 위험해. 루메이, 항로를 바꾸는 게 좋겠어.

프리츠 루메이: 치프 클래스인가. 세이렌이 사라진 이후 이런 유형의 적의 출현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는데.
프리츠 루메이: 마지막 출현 정보는 수십 년 전이다.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무 생각이 많은 것 같군.
프리츠 루메이: 실제로 벌써 항로의 절반을 지났지만 함대의 손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프리츠 루메이: 네가 신중하다는 건 알지만…… 주력함대가 자리를 비운 지금 기지는 텅 빈 거나 마찬가지야.
프리츠 루메이: 둘을 비교하면 더 높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 ……계속 전진한다!

----

쾅――!

뒤스부르크: 루메이! 지쉬관! 측면에서의 공세가 너무 강력해서 진형이 붕괴되기 시작했어!

프리츠 루메이: 내가 후미를 맡겠다! 전 함, 30해리 앞에서 집결하여 진형을 재정비한다!

뒤스부르크: 응! 바로 전달할게!

프리츠 루메이: 지휘관은 지휘함과 함께 선행해서 함대 재편성을 부탁한다! 끝나는 대로 즉시 기지로 향해줘!

지휘관: 함대 운용이 모두 읽히고 있어……. 그렇다면 적의 다음 수는…….
지휘관: 루메이. 과거에 외부의 짐승이 자폭 공격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

프리츠 루메이: 놈들은 전투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짐승들이다. 자신의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싸우지는 않아.
프리츠 루메이: 필사의 국면을 맞으면 도망가지, 끝까지 계속 싸우는 일은 드물어. 만약 정말로 자폭하는 개체가 있다고 해도…….

지휘관: ……상위 개체가 명령을 내린다면…….

프리츠 루메이: 설마…! 하지만, 그럴 리가――

쾅――――!!!!

양산함이 폭발하는 충격과 함께 의식은 점점 가라앉았다.

――――

귓가에 카드를 섞는 소리가 들렸다.



 ~13. 간접 위치 특정

 

???? ????
???

헬레나(META): 진츠, 들려?

헬레나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진츠(META): 헬레나? 문제는 해결되었나요?

헬레나(META): 우선 너희 문제부터 처리하자.
헬레나(META): 상황은 어때?

진츠(META): 실험장β의 나가토와 히에이는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다만 저희는 여전히 카멜롯에 갇혀 있습니다.

헬레나(META): 이유는 간단해. 실험장β가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이야.

진츠(META): '사라졌다', 고요?

헬레나(META): 엠프레스 짓이야. 분명 사전에 준비했던 게 틀림없어.
헬레나(META): 너희들 밖에는 지금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못 나가는 게 정상이지.

진츠(META): …당신도 실험장β를 놓쳤나요?

헬레나(META): 맞아. 감쪽같이 당했어. 그래도 이번엔 'D'에게 감사해야겠네.
헬레나(META): D의 그 이상한 통신기를 키고 실험장β와의 통신 상태를 계속 유지해. 나하고 통신도 끊지 말고.

진츠(META): 역해석하려는 건가요?

헬레나(META): 72시스템 시간 이내로 끝낼 거야.
헬레나(META): 그리고 실험장β의 엘리자베스한테도 말 좀 전해줘. '고래 사냥'하러 간 두 사람에게 지금 당장 상황을 공유해서,
헬레나(META): "돌아갈 집이 사라져 있는 꼴을 보기 싫으면 지금 당장 해석을 시작해", 라고 했다고.

진츠(META): 이번에는 정말 친절하시군요.

헬레나(META): ……빚을 갚는 것뿐이야.
헬레나(META): 일단 이 정도로 하자. 너도 조심해.

헬레나는 통신 채널을 음소거하고 새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헬레나(META): 환상 실험장의 핵심 장치……. 옵저버의 새 거처로 딱이야.
헬레나(META): 후후후…… 깜짝 선물을 줘야겠어.

헬레나(META): 목표 추적 완료. 캡처 모드로 이행.
헬레나(META): ……포획 개시.



 ~14. 지휘관에 대해서

 

사디아 제국
구 세계 박람회 회장
중앵 파빌리온

아카기 일행이 중앵 파빌리온에 도착한 지 하루가 지났다.
모두의 합심으로 '구멍' 기록과 수정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카가를 위한 결계의 설치도 완료되었고, 카가는 홀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일행은 잠깐의 휴식 시간을 즐겼다.

멤피스: 내가 아는 지휘관에 대한 이야기는 이상이야.

아마기(항모): 롱아일랜드 방어선, 버뮤다 해역, NA 해역 반격 작전…….
아마기(항모): 세계 박람회, 그리고 이번 나락에서의 싸움…….
아마기(항모): 지난 몇 년 간 여러분은 지휘관님과 함께 정말 많은 곳을 다녔군요.

멤피스: 뭐, 그런 셈이지.
멤피스: 헬레나도 계속 함께였지만, 사실 지휘관하고 같이 있었던 시간은 내가 좀 더 길걸?

아카기: 어머. 지휘관님 껌딱지한테도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아카기: 부럽다고 해줄까?

멤피스: 너 정말…….
멤피스: 숙적이었던 너보다는 훨씬 낫지. 계속 허세 부리다가 한번 크게 터트린 뒤에는 울며불며 지휘관한테 매달렸던 주제에.

아카기: 그래. 확실히 나와 지휘관님은 지난 몇 년 간 계속 대립했었지.
아카기: 부임하자마자 공습을 받았던 기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걸?
아카기: 후후후…. 어때, 껌딱지?

멤피스: ……그게 자랑할 일이야?

아카기: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니 누가 알겠어?

멤피스: 하아…….

어이없다는 듯 멤피스는 아카기에게 눈총을 주었다.

운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군요.

목소리와 함께 한 줄기 빛이 파빌리온 안으로 떨어졌다. 빛은 이내 소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멤피스: 너는……?

아카기: 운젠…? 여기는 무슨 일이죠?

운젠: 지휘관님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저도 옛날이야기 하나 들려드리려고 왔습니다.

시나노: 그대도… 지휘관과 만난 적이 있나……?

운젠: 네. 옛날에 사관학교 분들이 중앵을 방문하셨을 때…….
운젠: 길을 잃었음에도 수많은 결계과 통로를 뚫고 운젠을 찾아오신 분이 계셨죠…….



 ~15. 사고와 논의

 

빛이 사라지자 밝은 교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휘관: 마담 M의 교실……. 다시 돌아왔구나.

아직도 생생한 죽음의 감각을 억누르며 나는 주변을 살폈다.
아니나다를까 보라색 머리 여성은 교단에 서서 흥미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담 M: 그래서 이번 탐색은 즐거웠어?

지휘관: 만전을 다했지만 마지막에 가서 반전을 얻어맞고 말았네.

마담 M: 후후후. 역시 정보 부족이었지?

지휘관: 레지스탕스가 반격을 준비했던 것처럼 외부의 짐승도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어…….
지휘관: 분명 배후에서 상위 개체가 지휘를 맡고 있을 거야. …대체 누구야?

마담 M: 알려 주지 않을 거라는 거 알잖아?

지휘관: 역시나.

마담 M의 태도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문득 책상에 앉아 있는 흰 옷의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 뭔가…… 생각났어?

흰 옷의 소녀가 질문을 던졌다.
그 아이의 존재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처음부터 계속 거기에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지휘관: 뭐…… 조금은.

??: 다행이야…….

흰 옷의 소녀는 아주 잠깐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마담 M: 그럼 이제 네 얘기를 해볼까?

지휘관: 질문이 있어.

마담 M: 내가 뭐라고 대답할지 이미 알 텐데?

지휘관: 답을 구하려는 게 아냐. 그냥 너와 논의하고 싶어.

마담 M: 흠. 그러면 좋아. 뭐에 대해서 얘기할까?

지휘관: 만약 내가 겪은 모든 것이 진실이라면…….
지휘관: 내가 다시 선택하고 과거로 돌아갔을 때, 내가 떠난 그 순간의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야?

마담 M: 그대로 하나의 가능성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허무하게 사라질 것인가.

지휘관: 완전 다르네. …설마 이것도 '똑같다'고 말할 셈은 아니겠지?

마담 M: 후후. 똑같아.
마담 M: 너는 선택을 했어. 그러니 네게 진실은 '선택을 한 후'의 세계뿐이야.
마담 M: 다른 분기는 그저 가능성에 불과하지.
마담 M: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계속될 수도 있고, 그 시점에서 정체될 수도 있지.
마담 M: '확정' 속에 사는 네게 그것들이 어떤 차이가 있다는 거야?

지휘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지휘관: 내 선택으로 인해 원래 세계는 관측할 수 없는 다른 분기로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지?

마담 M: 다른 사람? 예를 들면?

지휘관: 철혈 레지스탕스 같은 사람들.

마담 M: 그들은 그 자체로 가능성의 일부라서 논의할 의미가 없어.

지휘관: 가능성의 일부… 라고? 그럼 너는?
지휘관: 외부 관측자만이 논의의 의미가 있다면…… 너도 계속 관측하고 있었잖아.

마담 M: 내가 보고 있는 건 너뿐이야. 즉 네가 있는 곳만을 관측하고 있는 거야.

지휘관: ……그럼 과거를 다시 관측하고 싶다면?

마담 M: 그럼 그냥 그렇게 하는 거지.
마담 M: 하지만 내가 무엇을 보든 네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마담 M: 확정된 '진실'에 대해 '가능성'은 무의미하니까.

지휘관: 의미에 관한 문제가 아냐. 너는 무수한 세계… 무수한 가능성을 관측할 수 있는데 왜 나는 못하는 거지?
지휘관: 나는 확정된 하나의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건가?

마담 M: ……과연. 처음부터 이걸 노렸구나. 내가 널 너무 얕봤네.

지휘관: 역시 그랬군.
지휘관: 네 능력의 비밀은 너희 안티 엑스 시스템에 있어.
지휘관: 그 세계는 안티 엑스의 실험장이니까 네가 관측할 수 있는 거야. 맞지?

마담 M은 입을 다물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지휘관: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서 예측할 수 없어. 하지만 외부 관측자가 있으면…… 그 가능성은 수렴되어 '확정'되고, 의미를 가지지.
지휘관: 안티 엑스가 실험장을 만든 건 그 때문이야.
지휘관: 모든 실험장은 안티 엑스의 특정 시점 개입으로 시스템에 등록되지.
지휘관: 그리고 실험장에 존재하는 안티 엑스의 창조물로 인해 끊임없이 외부 시스템에게 관측되고…….
지휘관: 평행선이었던 세계들은 너희 안티 엑스의 실험장이 되면서 확정되고, 현실이 되고, 의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서로 연결되는 거야.
지휘관: 그렇지?

마담 M: ………….
마담 M: 불완전해.

지휘관: 불완전…?
지휘관: …네가 나를 관측한 것처럼, 실험장이 아니라 그 외의 존재도 관측하고 있는 건가…?
지휘관: 외부의 존재를 관측해 확정시킨 실험장도 있을 수 있다…… 라는 거야?

마담 M: 거봐…….
마담 M: 생각할 환경만 주어진다면 이렇게 하나씩 발견을 쌓아갈 수 있겠지?
마담 M: 논의 시간은 이걸로 끝.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야.
마담 M: 계속할 거야?

지휘관: …….

→ 당연하지



 ~16. 준비
T=T-8

 

질버슈테른 섬 곳곳에서 채굴 로봇들이 한창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지휘관: (이번에는…… 레지스탕스 기지 습격 직전인가? 그럼 약 8시간 전이군….)
지휘관: (큭…. 시간이 너무 부족해……. 어떻게 하지….)
지휘관: (기지에 미리 대비하라고 경고할까?)
지휘관: (핑계가 필요하겠지만 그걸로 시간은 벌 수 있겠지. 하지만 루메이에게 위험 해역에 돌입하면 안 된다고 설득도 해야 하는데…….)
지휘관: (역시 부족해.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해….)
지휘관: (……더 많은 전력?)

시야 끝 대양 속에서 갑자기 한 줄기 비늘이 번쩍였고, 머릿속으로 정보가 일제히 쏟아져 들어왔다.

----

드디어 실험에 성공했어!
재료 개량을 통한 에너지 큐브의 새로운 파생 모델 생성에 성공!
이름은…… 응! '멘탈 큐브'라고 부르자!
좋아, 결정!

…오늘의 의제는 'META 현상'에 관한 것이다.
META 자체는 '변화'를 의미하는 고대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목적에 한하자면 '어떤 성질이 변화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나타내는 총칭'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과정을 'META화'로 호칭한다.
멘탈 큐브는 META화가 가능하다.
또한 함선도 META화가 가능하다.

----

지휘관: (또 기억이 떠올랐어……. 마침 잘됐군.)
지휘관: (에너지 큐브의 파생 모델, '멘탈 큐브'…….)
지휘관: (그래…. 왜 이 세계에는 멘탈 큐브가 없지?)
지휘관: (멘탈 큐브로 함대를 확장할 수 있었다면 레지스탕스도 이런 소규모에 머물지 않았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지휘관: (큐브가 없다면… 히퍼 META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어.)

----

잠시 후. 채굴을 감독하고 있는 루메이를 찾았다.

프리츠 루메이: 지휘관, 무슨 일이지? 심각한 표정인데….

→ 멘탈 큐브 말인데…


프리츠 루메이: ……멘탈 큐브?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군.
프리츠 루메이: 네 말대로 우리는 멘탈 큐브에서 태어난 존재다.
프리츠 루메이: 하지만 세이렌의 멸망과 함께 큐브 채굴 기술도 소실되어 버렸지. 각 진영의 비축분도 이미 다 떨어졌다.

지휘관: (멘탈 큐브를…… 채굴한다고?)
지휘관: 그럼 큐브는 어디에서 채굴했어?

프리츠 루메이: 심해 해저에 묻혀 있는 특수 광물이다. 채굴 방법은 세이렌만 알고 있지.
프리츠 루메이: 설령 우리가 채굴 기술을 되찾았다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채굴 시설을 건설하는 건 꿈만 같은 이야기다.

루메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휘관: (아까 기억하고 다른데. 멘탈 큐브는 분명 에너지 큐브의 개량형이었어.)
지휘관: (세이렌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통제한 건가…?)
지휘관: (아니, 지금은 그런 걸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냐.)

→ 히퍼 META에 대해서


프리츠 루메이: 히퍼……?
프리츠 루메이: 그래. 너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그녀였다고 하더군. 뭐 궁금한 거라도 있나?

지휘관: 뒤스부르크한테서 살짝 들었는데, 너희하고 관계가 좀 복잡하다고….

프리츠 루메이: 아아, 복잡하지.
프리츠 루메이: 엄밀히 말하면 그 아이는 아직도 철혈 공국의 지명 수배 명단에 올라 있다. … 뭐, 실제로 잡으러 다니지는 않지만.

지휘관: 히퍼가 META가 된건 철혈 공국하고 관련이 있는 거야?

프리츠 루메이: ……일찍이 우리는 전투에서 패배했다.
프리츠 루메이: 작전도, 명령도 모두 옳았다. 음모나 내분도 없었지.
프리츠 루메이: 우리는 패배라는 결과를 받아들였어. …하지만 히퍼는 달랐다.

지휘관: 그래서 철혈 공국을 공격해서 지명 수배 당했다는 거야?

프리츠 루메이: ……이미 옛날이야기다.

지휘관: 그래…. 혹시 그 후로도 히퍼하고 충돌이 있었어?

프리츠 루메이: 아니. 그 후로 히퍼는 우리를 적대하기는커녕, 때때로 상승 조류 때 우리를 은밀히 돕기도 했다.
프리츠 루메이: 그 아이는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분명 솔직하지 못할 뿐이겠지.
프리츠 루메이: 이 일은 뒤스부르크가 더 잘 알고 있다. 지금 부르도록 하지.

지휘관: 아니. 시간이 없으니까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들을게.

프리츠 루메이: 시간이 없다고……?

방금 전까지 추억에 잠겼던 루메이는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프리츠 루메이: 무슨 뜻이지? 시간이 없다니?

지휘관: 상황이 변했어.
지휘관: 외부의 짐승을 지휘하는 상위 개체가 우리의 반격 작전을 틈타 무언가를 꾸미고 있어.
지휘관: 우리보다는 기지가 더 위험하니까 당장 경계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리고 조속히 귀환해야만 해.

프리츠 루메이: 상위 개체…. 치프 클래스 말인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큰 위협이 되겠지.
프리츠 루메이: 하지만 세이렌이 사라진 이후 그런 유형의 적의 출현 정보는 수십 년 동안이나 보고되지 않았어.
프리츠 루메이: 경보는커녕 전조조차 없었는데 왜 너는 그렇게 추측한 거지?


→ 적당히 둘러댄다
지휘관: 방금 적의 매복과 매치는 이미 짐승의 수준을 벗어났어. 분명 뒤에서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을 거야.
지휘관: 그리고 주력함대가 모두 떠나 있으니 기지의 방비가 허술한 것도 사실이고.
지휘관: 게다가 요 며칠 간 이터널 스타가 복구되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마음도 해이해져 있어, 그 틈을 공략당하기 쉬운 상황이야.

프리츠 루메이: …설득력이 있군. 이터널 스타가 재기동했을 때, 확실히 나도 매우 흥분했으니.

→ 감정에 호소한다
지휘관: '외부의 손님'… 아니, 지휘관으로서의 내 직감을 믿어줘.

프리츠 루메이: 단순히 그 정도로는 곤란해. 네 직감의 신뢰도는 몇 퍼센트지?

지휘관: 100%야.

프리츠 루메이: 알겠다. 너를 믿어 보지.

 

 

프리츠 루메이: 지금 바로 기지에 연락하마.

한 시간 뒤. 예정대로 통신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통신: ――

Z11: 기, 기기긴급 사태예요! 들리세요!?

프리츠 루메이: 무슨 일이냐! 보고해!

Z11: 외, 외부의 짐승 대군이 기지를 습격했어요!
Z11: 다행히 기지는 최고경계태세에 돌입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췄어요!
Z11: 적의 공세는 좀 대단하지만 방어 시설도 가동 중이라서 착실히 막아내고 있어요!
Z11: 정말 훌륭한 수읽기예요!

프리츠 루메이: …적의 습격을 예측한 것은 내가 아니라 지휘관이다.
프리츠 루메이: 그대로 방어를 견고히 다져라! 주력함대가 귀환하면 협공으로 짐승들을 섬멸한다!

Z11: 네! 알겠습니다!

통신을 끊고 루메이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프리츠 루메이: 네 예측대로다. 지휘관. 이제 뭘 하면 되지?

지휘관: (……사실 다음에 일어날 일은 나도 몰라.)
지휘관: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만회할 기회가 있어…!)
지휘관: 현재 기지는 동료들하고 이터널 스타가 두텁게 방어하고 있어.
지휘관: 기습은 실패했으니 적이 단시간에 기지를 집어삼키지는 못할 거야.
지휘관: 그렇다면 빈손으로 돌아가기보다 당초의 작전 목표를 조금이라도 달성하는 게 좋겠지.
지휘관: 뒤스부르크. 광물 채굴 진도는 어때?

뒤스부르크: 예상 목표의 30% 정도야.

프리츠 루메이: 채굴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시간이 너무 촉박해.

지휘관: 그래. 정화 장치 한 개분으로 만족하자.
지휘관: 그래도 최소한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지?

프리츠 루메이: 좋아. 한 개 분량의 소재를 채굴하는 즉시 장비를 회수하고 철수한다.

뒤스부르크: 응! 알겠어!

지휘관: 적은 원군인 우리를 노릴 가능성이 있어.
지휘관: 가능한 한 빠르고 안전한 항로를 선택해 귀환해야 해.

프리츠 루메이: Z52. 지휘관과 협력하여 항로를 계획해라. 아무 생각 없이 내달리는 건 금지다.

Z52: 맡겨줘!

지휘관: 마지막으로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해.

프리츠 루메이: ……현재 주변의 유일한 무장 세력은 우리뿐이다.

지휘관: 히퍼 META가 있잖아. 평문이라도 좋으니 협력 요청을 보내줘.
지휘관: 히퍼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행동을 생각하면 분명 도와줄 거야. 지금은 그 아이의 힘이 필요해.

프리츠 루메이: 보장은 할 수 없지만…… 원군은 많을수록 좋지. 알겠다.

지휘관: 고마워, 루메이. 준비되면 바로 출발하자!



 ~17. 기지 방어

 

함대는 안전을 확보하면서 신속하게 기지 주변으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뒤스부르크 등이 히퍼 META를 계속 호출했지만,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Z52: 휴우……. 드디어 돌아왔네~!
Z52: 하하! 수리된 이터널 스타 생각보다 강하잖아! 적을 전부 외곽 방어선에서 막아내고 있어!

뒤스부르크: 그래. 지금이 딱 안팎으로 협공하기 좋은 때야.

통신: ――

프리츠 루메이: Z11. 기지 주변 해역에 도착했다. 적의 배치를 보고하라.

Z11: 헉……?! 지, 지금 도착하신 거예요?

프리츠 루메이: ……무슨 말이지?

Z11: 한 시간쯤 전에 적 함대가 방어선 외부에서 공격을 받았었거든요…….
Z11: 전 그게 아군 주력함대인 줄 알았어요. 통신 상태가 나빠서 기지와 연락하지 않는 건가? 그랬었는데…….

프리츠 루메이: 공격이라고……? 어느 쪽이냐? 우리도 확인하겠다!

루메이의 정찰기는 곧 결과를 가져왔다.
외부의 짐승 무리를 홀로 상대하고 있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평탄한 소녀였다.

쾅――――!

 

어드미럴 히퍼(META):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줄게.
어드미럴 히퍼(META): 어드미럴 히퍼급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진혼곡을 들려 주겠어!

――――!

Z52: ……히퍼?!
Z52: 어쩐지 아무리 연락해도 응답이 없더라니… 미리 기지에 와 있었구나!

뒤스부르크: 후후후. 역시 쟤가 우리를 외면할 리가 없지.

프리츠 루메이: ……오랜만이군. 전투력은 저번보다 더욱 높아졌어.
프리츠 루메이: 싸우는 방식은 여전한 것 같지만…….

뒤스부르크: 합류할까?

프리츠 루메이: 지휘관은 어떻게 생각하지?

지휘관: 히퍼가 우리 작전에 협조할 가능성이 얼마라고 생각해?

프리츠 루메이: 모르겠군. 현재 전황으로 볼 때 아마 협조할 가능성은 없겠지.

지휘관: 그럼 무리하지 말고 히퍼가 원하는 대로 적을 교란하게 놔두자.

Z9: 루메이 씨, 지휘관님. 여, 여기 적의 배치도예요….

지휘관: (생각보다 적의 전력이 약해……. 히퍼가 꽤 줄여줘서 그런 걸까.)

프리츠 루메이: 좋아. 우선 여기서 동쪽으로 60도 방향의 적을 정리하고, 그 후 히퍼와 합류해 95도 방향의 적을 함께 친다. 그 다음은 순차적으로 소탕해 나가는 건 어떤가?

지휘관: 문제없어. 기지에 연락해서 화력 지원도 요청해줘. 전원, 전투 준비!



 ~18. 별하늘의 지배자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모니터상에 적을 나타나는 빛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고, 승리는 코앞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변은 그 순간에 찾아왔다.

 

하늘의 별 하나가 갑자기 눈부시게 퍼져나가 순식간의 하늘의 절반을 뒤덮었다.
그 하얀 공간 속에 무수한 푸른빛들이 어른거렸다. 마치 밤하늘이 반전된 것처럼 보였다.
뒤이어 공명이라도 하듯 기이한 소리가 파도치듯 울려 영혼마저 전율케 했다.

뒤스부르크: 이건…… 전설의 로드 클래스?!

지휘관: ……로드 클래스?

프리츠 루메이: 치프 클래스 그 이상의 존재……. 외부의 짐승의 진정한 지배자…….
프리츠 루메이: 개체명은 '별의 짐승'……. 역사상 출현 기록은 단 세 번뿐이다.
프리츠 루메이: ……나타날 때마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

지휘관: 오늘까지 포함하면 네 번인가….
지휘관: 이전의 세 번은 어떻게 대응했어?

프리츠 루메이: 첫 번째는 인류 황금시대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두 번째는 세이렌이 마지막 빛을 발했지.
프리츠 루메이: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는 단지 그 기승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지휘관: ………….
지휘관: ……답이 없군.

수많은 촉수가 하늘과 바다의 간극을 봉합하려는 듯 꿈틀거렸다.
점점 더 거세지는 파도처럼 공포가 함선들을 덮쳤다.

어드미럴 히퍼(META): 별의 짐승…….
어드미럴 히퍼(META): 그래…! 네가 바로 그때의……!
어드미럴 히퍼(META): 아하하하하……. 드디어 만났어!
어드미럴 히퍼(META): 좋아… 아주 좋아!
어드미럴 히퍼(META): 동생들의 원수…… 내가 갚아주마!
어드미럴 히퍼(META): 더 이상 그때의 나약한 내가 아냐……!
어드미럴 히퍼(META): 어드미럴 히퍼급…… 최고의 전과로 삼아주지!!

드넓은 별하늘을 향해 히퍼는 선전포고를 했다.

Z52: 히퍼! 진정해!!

뒤스부르크: ……소용없어. 이제 우리 말은 안 들릴 테니까.

지휘관: 들리지 않아도 지금 히퍼는 우리의 최고의 전력이야. 내버려둘 수는 없어.

프리츠 루메이: 전 함, 전력으로 히퍼를 엄호하라!

----

 

쾅――――!

무수한 포탄이 반딧불처럼 드넓은 별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별의 짐승: 주제를 모르는군.
별의 짐승: 반디의 빛은,
별의 짐승: 하늘의 별에 지지 않는다.
별의 짐승: 나는 별의 짐승.
별의 짐승: 별을 이끌고 나타나,
별의 짐승: 별을 품고 사라진다.
별의 짐승: 나에게 복종하라.
별의 짐승: 나의 이름을 찬양하라.
별의 짐승: 나의 명령에 따르라.

어드미럴 히퍼(META): 후후…….
어드미럴 히퍼(META): 잘도 지껄이는군…!

별의 짐승: 그렇다면,
별의 짐승: 이전처럼,
별의 짐승: 멸망하라.
별의 짐승: 이전처럼.

 

별의 짐승: 나는 별의 짐승.
별의 짐승: 별을 이끌고 나타나,
별의 짐승: 별을 품고 사라진다.
별의 짐승: 천지가 더럽혀졌으니,
별의 짐승: 부서지고 다시 태어나라.

눈부시게 하얀 빛 속에 모든 것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

귓가에 카드를 섞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