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기억 스파이럴
안개처럼 물결치는 먼지 속을 거함 한 척이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양산함 아카기
지휘 갑판
귀환 도중
멤피스: 바깥은 먼지투성이인데 정말로 배로 이동할 수 있구나….
지휘관: 출항으로부터 3시간. 지금까지는 대체로 순조롭군. 이대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카기: 지휘관님,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까요…?
지휘관: 옵저버의 계산에 따르면… 이 아카기급 양산함의 속력으로는 앞으로 7시간은 걸릴 거야.
멤피스: 7시간… 그러면 다 합쳐서 10시간은 되겠네….
멤피스: 세계 단편에 들어갈 때는 한순간이었는데.
지휘관: 빙 돌아가는 길이니까 어쩔 수 없지.
지휘관: 중앵 본섬에서 NA 해역 중심까지 10시간 만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느리지는 않아.
멤피스: 생각해 보니 그러네……!
아카기: 그런데 NA 해역의 시간대 기준으로는 얼마나 지났을까요?
지휘관: 7시간 이상은 지났겠지. 옵저버도 수식만 보내왔지,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았어.
지휘관: 아카기도 직접 봐 볼래?
아카기: 아뇨, 괜찮아요.
아카기: 당신이야말로 꽤 피곤하지 않나요?
아카기: 여긴 제가 있을 테니 먼저 들어가서 좀 쉬세요.
지휘관: 아직 괜찮아. 그리고 아카기의 양산함에는 처음 타 봤으니까.
지휘관: 원래는 네가 시나노의 양산함을 고를 줄 알았어.
아카기: 확실히 거주성은 시나노 쪽이 뛰어나죠.
아카기: 하지만…… 시나노급 양산함에 타는 것은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있어서요.
지휘관: 옵저버도 똑같은 말을 했어.
지휘관: 뭔가 신경 쓰이는 점이라도 있어…?
아카기: 아뇨. 그냥 미신 같은 거랍니다.
의문의 소리: ――
갑자기 귓가에 카드를 섞는 소리가 들렸다.
공간이 붉은 안개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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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방. 칠판 앞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안쥬: 이봐, 조수군? 내 말 잘 듣고 있어?!
안쥬: 지금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안쥬: 아…! 아직 자면 안 돼! 조금만 더 버텨 봐!
안쥬: 조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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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사무실 안. 조금 흐리터분한 인상의 여성이 명함을 내밀었다.
콜레트: OXS(오시스) 상업 연합의 콜레트야.
콜레트: 앞으로 잘 부탁해. ‘지휘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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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공간 속. 모니터에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 드디어 실험에 성공했어요!
???: 후후. 역시 괜히 오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아니네요.
???: 네. 이 연구로…… 그 완고한 놈들한테 한 방 먹여 주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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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회의실. 원탁을 둘러싸고 수많은 그림자가 앉아 있었다.
노인의 목소리: 회의는 이것으로 끝이다. 유감이지만 우리의 수정안은 ‘이사회’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노인의 목소리: 따라서 계획은 원래의 방안대로 추진될 것이다.
노인의 목소리: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지휘관’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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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소녀가 앞에 있는 스케치북을 보여줬다.
앵커리지: ……선생님…… 앵커리지…… 잘 그렸어……?
앵커리지: ……선생님…… 내일…… 돌아가는구나…….
앵커리지: ……선생님……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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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백색 바다에서 소녀들이 싸우고 있었다.
렉싱턴: 지휘관……?!
렉싱턴: 왜 아직 여기 있는 거야……?
렉싱턴: 새러토가, 빨리 지휘관을 데리고 가…!
――――!!!
???: 지…휘…관……. 지휘관…!
수많은 광경이 눈앞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 ……들려…….
뇌가 마치 고속으로 회전하는 원심분리기에 던져진 것 같았다.
???: 들려……!?
의식이 나선 속에서 끊기고, 분해되고,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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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지휘관……!
지휘관: …큭…….
지휘관: 방금은……?
겨우 회전이 멈췄다.
이곳은 양산함 아카기의 지휘 갑판. 눈앞에 있는 것은 초조해하는 멤피스였다.
멤피스: ……정말. 깜짝 놀랐잖아.
멤피스: 너 눈을 뜬 채로 의식을 잃었었어! 계속 불러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지휘관: 의식을 잃었다고…? 어, 얼마나…?
멤피스: 한 1분쯤! …지휘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지휘관: 1분쯤……?
지휘관: (그렇게 수많은 광경이 흘러갔는데 현실에서는 1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휘관: 괜찮아. 좀 피곤해서 정신이 나갔나 봐.
멤피스: 그럼 다행이지만….
아카기: 제가 뭐랬어요. 그냥 잔걱정이라고 했잖아요.
아카기: 세 번째로 불렀는데 당신이 반응이 없자 멤피스가 전 함에 경보를 울리려고 했던 거 알아요?
아카기: 제가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거예요.
멤피스: ……신중한 게 뭐가 나빠.
아카기: 지휘관님은 일단 쉬는 게 좋겠어요.
지휘관: 그래. 알겠어.
지휘관: (왜 그런 일을 겪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지금은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어….)
아카기: 즈이카쿠에게 휴게실에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 놓으라고 시켰어요. 아직 갈 길이 머니 요기라도 하세요.
지휘관: 신경 써줘서 고마워.
멤피스: 그럼 지휘관. 휴게실로 안내해 줄게.
휴게실이 어디였는지 생각하고 있을 때 멤피스가 다가와 내 어깨를 부축했다.
멤피스: 무리하지 마. 이쪽이야.
아카기: 잠깐만. 지휘관님이 쉬러 간다는데 왜 너도 따라가지?
멤피스: 당연하잖아. 이것도 업무의 일환이니까.
아카기: 업무? 하아…. 기왕 갈 거면 이 과일도 함께 가져가렴.
아카기는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과일 쟁반을 가리켰다.
멤피스: ……과일…?
아카기: 까서 지휘관님 먹여드리란 말야. 그런 것도 몰라?
멤피스: ……어?
아카기: 자. 일단 받아.
멤피스: 아아…….
순간 당황한 멤피스는 멍한 표정으로 과일 쟁반을 받아들었다.
멤피스: 잠깐……. 저 여자가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멤피스: 후우……. 말려들면 안 돼.
멤피스: 지휘관. 빨리 휴게실로 가자!
~02. 금빛 여우의 책략
‘나락’ 의식의 중심이었던 용궁은 다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푸른색, 금색, 보라색이 교차하는 환상적인 하늘 아래 중앵 함선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와타라세: 여러분. 의식과 함께 나타난 적은 모두 소탕되었습니다.
와타라세: 이제 용궁 내부는 안전합니다.
이부키: 피해 확인도 모두 끝났습니다.
이부키: 외층의 손상은 35&, 중간층은 24%, 내층은 16%입니다.
다이센: 생각보다 많이 심각하네요….
이부키: 네. 다행히 비축된 물자는 충분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자원을 조달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수복 가능합니다.
다이센: 다행이네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이부키: 약 3일 정도입니다.
다이센: 3일인가요…. ‘대결계’도 나락의 침식으로 인해 심한 피해를 입었는데,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시만토: 그럼 슬슬 요석을 설치할까?
시만토: 지금부터 시작하면 이부키가 수복을 마칠 때쯤 동시에 끝날 거야.
시만토: 그러면 함께 의식을 거행하고, 용궁의 힘으로 대결계를 복원할 수 있어.
다이센: 네. 그렇게 하죠.
그때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쏟아졌다. 이윽고 빛은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시만토: 운젠?!
운젠: 수고 많으십니다, 여러분.
운젠: 야마토 님의 전언이 있습니다.
금빛이 번쩍였다. 운젠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달라졌다.
운젠: “용궁은 어떠한가?”
다이센: 예상보다 손상이 심각합니다. 대결계의 수복은 3일 뒤에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운젠: “좋다.”
운젠: “그럼, 예의 그 건은?”
다이센: 그쪽은 순조롭게 회수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운젠: “결합이 끝나면 오로치와 함께 ‘반혼식’의 요석에 놓거라.”
다이센: 알겠습니다.
운젠: 야마토 님은 이미 반혼식의 준비에 착수하셨습니다. 그럼 저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운젠은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모습은 빛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이센: 휴……. 반혼식을 무사히 거행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빨리 대결계를 복원해야 해요.
다이센: 그럼 여러분. 다시 일하러 갑시다~
~03. 해리
양산함 아카기
휴게실
귀환 도중
휴게실 탁자 위에는 아카기 말대로 중앵 과자 몇 종류가 놓여 있었다.
멤피스: 흐응~ 꽤 아기자기한 과자네.
과일 쟁반을 내려놓고 멤피스는 중앵 과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멤피스: 유럽이나 동황하고도 달라…….
멤피스: 중앵의 과자는 무슨 맛일까? 지휘관, 먹어 볼래?
멤피스는 경단을 집어 내게 건넸다.
지휘관: 경단?
멤피스: 응! 중앵의 경단이야. 아마 멥쌀을 빻아서 만드는 거였을걸?
멤피스: 맛은…… 빨간색이니까 단팥이려나?
멤피스: 저기, 지휘관. 이거… 나 하나 먹어 봐도 돼…?
지휘관: 그래. 많이 있으니까.
안내 방송: ――!!
멤피스: 이건…… 전 함 경보?!
멤피스: …?! 지휘관, 조심해――
선내가 갑자기 크게 흔들리며 나는 균형을 잃었다.
지휘관: (아냐……. 이건 몸의 균형이 아니라… 의식이…?!)
의문의 소리: ――
지휘관: (종이…? 카드를 섞는 소리…?)
삐――――
커다란 이명 속에 겨우 의식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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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이번에는…… 어느 고속으로 이동 중인 기계 안인가……?)
눈앞에는 께름칙한 푸른 빛이 펼쳐져 있었다.
지휘관: (몸이 움직이지 않아……. 관절과 근육이 말을 안 들어…….)
지휘관: (하지만 가위눌림하고는 느낌이 달라…….)
먼 곳의 소리: ……이렇게 빨리 쫓아올 줄이야.
지휘관: (이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또 다른 소리: 계획의 본질이 발각되었나?
또 다른 소리: 아니면 ‘적’의 봉쇄가 우리 예상보다 더 철저했나?
먼 곳의 소리: 계속 디코이를 뿌리세요. 추격자를 분산시켜 다른 좌표로 유도하세요.
먼 곳의 소리: 이 ‘세기’를 벗어나면 안전할 겁니다.
또 다른 소리: 알겠어.
목소리는 사라졌다.
지휘관: (두 개의 목소리…. 한쪽은 들은 적 있는 거 같은데 다른 쪽은 전혀 모르겠어.)
지휘관: (그 이전에 목소리에 노이즈가 많아서 알아듣기도 힘들어….)
지휘관: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는 게 먼저야.)
어째서인지 손발은 굳어 있었지만, 눈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정신을 집중해 일단 주변을 살피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지휘관: (어라? 내 코가 안 보여……?)
지휘관: (보통은 의식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안 보이진 않을 텐데…….)
지휘관: (아니,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지휘관: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건 가위 같은 게 아니라 몸 자체가…….)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 감정에 호응하듯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의식은 점점 격렬한 떨림 속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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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진동이 잦아들고, 이내 완전히 멈추었다.
의식이 몽롱한 가운데 푸른 꽃의 바다와……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에 푸른 꽃잎이 춤을 추고, 바람에 은빛 머리칼이 휘날렸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하얀 빛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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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라지자, 눈앞에는 ‘멤피스’가 있었다.
멤피스(META): 어서 와, 지휘관.
지휘관: ……멤피스?
멤피스(META): 그래, 나야. 하지만 방금 전까지 너와 얘기하던 멤피스는 아니야.
멤피스(META): 그 아이는 함체가 손상된 곳은 없는지 조사하라고 보냈어.
멤피스(META): 뭐 이 정도 흔들림으로 손상을 입을 리는 없지만.
지휘관: …너까지 그 아이를 괴롭히는 거야?
멤피스(META): 그야 재미있잖아?
멤피스(META): 그보다 몸은 어때? 아픈 곳은 없어?
지휘관: 괜찮아.
지휘관: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야?
멤피스(META): 당연히 도와주러 왔지.
멤피스(META): ……드디어 너를 도울 수 있게 됐어.
멤피스(META): 다 헬레나가 세운 계획 때문이야. 너희가 우회하지 않았다면 내가 나설 차례도 없었을 텐데.
지휘관: 헬레나의 계획…?
멤피스(META): 아, 아무것도 아냐. 그냥 말실수.
지휘관: …그래. 그런데 아까 경보하고 흔들림은 대체 뭐였어?
지휘관: 그리고 아까 또 의식을 잃었었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멤피스(META): 우선 경보가 울린 건, 나락의 ‘역랑(逆浪)’ 현상으로 인해 나락의 먼지가 불안정해졌기 때문이야.
지휘관: 역랑?
멤피스(META): 응. 나락 안에서 부정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야.
멤피스(META): 역랑에 휘말려 그 중심부로 빨려 들어가 버리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멤피스(META): 네가 갑자기 의식을 잃은 것도… 역랑의 영향 때문일 거야.
멤피스(META): 그래도 괜찮아. 이미 위험 지역을 벗어났으니까.
지휘관: …역시 특이점 속에서는 방심할 수 없군.
지휘관: 맞다. 이번에는 얼마나 의식을 잃었었지?
멤피스(META): 7분 정도? 8분은 안 됐어.
지휘관: (아까는 멍해졌던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의식을 잃었어. …게다가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어…?)
멤피스(META):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좀 쉬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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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어느 특수 공간.
옵저버: 벌써 두 번째야. 설마 이 경로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있는 거야?
헬레나(META): ‘타워’의 리소스를 더욱 가용해서 안정시키겠어. 내비게이션은 너한테 맡길게.
헬레나(META): 그리고 이 권한도 줄 테니까 잘 활용해.
옵저버의 눈동자에 푸른 빛이 반짝였다.
옵저버: 이건… 타워의 권한?!
옵저버: 인증 프로세스가 다르지만 않았으면 완전 ‘자연 연산 시스템’으로 착각할 뻔했어!
옵저버: 전부터 말도 안 되는 능력이라고 들었었는데 확실히 대단하네. 게다가 기능도 많고….
옵저버: 타워의 힘만 있으면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겠어.
옵저버: …타워는 대체 무슨 존재야?
헬레나(META): 너 말이 너무 많아. 지금은 닥친 일에 집중해.
옵저버: 흐흥. 당연하지! 나 지금 완전 의욕 넘치니까 안심해♪
~04. 피안의 조력
수면 위에서 어호(御狐)가 봉헌의 춤을 바치고 있었다.
하늘에 있는 별들의 궤적은 흐르는 빛과 함께 계속 변했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달이 차고, 기울고, 이내 흐르는 빛의 일부가 되어 간다.
……드디어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남았다.
의식이 끝나고, 빛나는 별들은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하타카제(META): ……반혼식 준비?
하타카제(META): 오자마자 터무니없는 걸 봤군…….
하타카제(META): 힘을 빌려주는 건 둘째 치고 이렇게까지 도와줄 필요가 있나…?
나가토(META): 그대는 큰 손해를 입었지. 이 정도쯤이야 당연하다.
하타카제(META): ………….
나가토(META): 그래, 이번 '염탐'의 결과는 어떠한가?
하타카제(META): 이번엔 나가토 님이 옳았다고 치지.
하타카제(META): 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그들은 결국 세이렌 실험장의 존재일 뿐이야…….
나가토(META): 그대와 같은 예외는 될 수 없다?
하타카제(META): 그래. 인정하든 말든, 우리와 그 아이들은…… 이미 존재의 개념부터가 다르네.
나가토(META):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하타카제(META): 신에게도 강약의 우열이 존재한다는 뜻이야.
하타카제(META): 아무튼. 복수는 포기하지. 하지만 자네의 계획을 지지할 생각은 없네.
하타카제(META): 잠시 떠나 있겠네.
나가토(META): 좋다. 그대가 해야 할 일을 하거라.
나가토(META): 우리의 목표는 일치하니 비록 길이 달라도 결국 그 끝에서는 만나게 될 것이야.
하타카제(META): 그럼 나가토 님. 몸조심하시길.
호쇼(META): …….
호쇼(META): 감시하는 게 좋을까요?
나가토(META): 됐다. 그에게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나가토(META): 나는 그대들을 구속할 수 없다. 그러니 그대들도 꼭 나를 따를 필요는 없다.
호쇼(META): 나가토 님…….
나가토(META):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신경 쓰지 말거라.
나가토(META): 하타카제의 계획보다 이쪽의 일이 더 중요하다.
나가토(META): 나는 이미 결단을 내렸으니 이제는 진력만이 있을 뿐이다.
나가토(META): ……호쇼. 실험장β의 상황은 그대도 보았겠지. 신중하게 행동하거라.
호쇼(META): 네. 물론입니다.
호쇼(META): 그런데… 그 '지휘관'이라는 분은 어떻게 할까요?
나가토(META): ……그대도 나와 마찬가지로 '지휘관'에 관한 기억이 없나 보군.
호쇼(META):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매우 이상한 기분입니다.
나가토(META): 그러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
나가토(META): 그것이 '이사회'의 비밀 계획과 연관이 있다면…….
나가토(META):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호쇼(META): 알겠습니다.
~05. 세 번째 가압
양산함 아카기
휴게실
귀환 도중
안내 방송: 애애앵―――
경보 소리가 선잠을 깨웠다.
통신: ―――!
멤피스: 지휘관. 긴급 상황이야! 바로 휴게실로 갈게!
지휘관: 왜 경보가 울리는 거야? 무슨 일 있어?
멤피스: 함대 후방에 적이 나타났어!
멤피스: META 애들의 정보에 따르면 전에 세계 단편에서 조우했던 '부정'의 기운과 유사한 존재 같아!
멤피스: 우리가 양산함 아카기에 타고 있으니까 적들도 배의 형태를 취했나 봐.
멤피스: 아무튼 아카기하고 옵저버가 적을 떨어트려 놓으려고 가속하고 있는 중이야!
멤피스: 다른 사람들은…….
쾅――!
멤피스: 싸우고 있는 것 같아! 큭… 벌써 따라잡혔어…!
지휘관: 휴게실로 올 필요 없어! 함교로 가!
지휘관: 나도 바로 그리로 갈 테니까!
멤피스: 알겠어!
지휘관: ('역랑' 다음은 적습인가……. 기분 탓이 아냐. 점점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어.)
지휘관: (이걸 이겨낸다고 해도 언제 나갈 수 있을런지――)
의문의 소리: ――
지휘관: (……?! 카드 섞는 소리…. 또…!?)
지휘관: (안 돼, 하필 이런 때에……!)
의식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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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지휘관: (……여기서도 전투가……?)
오로라처럼, 은하처럼, 바다를 나아가는 푸른 항로처럼.
어둠 속에서 빛의 궤적이 한 줄기씩 나타났다.
거대한 배들이 강철의 급류가 되어 힘차게 진격했다.
지휘관: (전장 1km는 되어 보이는 전함하고…… 그보다 더 거대한 적…….)
지휘관: (……저건 대체 뭐야……?)
막 내린 눈처럼 하얗고, 악몽에 나올 것 같은 일그러진 외관을 가진 이형의 적.
그것들은 무수한 촉수와 손톱을 휘두르며 강철의 급류를 막고, 그들의 전력을 천천히 깎아내고 있었다.
지휘관: (이대로는 못 버틸 거야…….)
아비터 엠프레스III: 이대로는 못 버틸 거야.
옵저버 제로: 앞으로 3시스템 시간 이후에 이 '시간축'에서 이탈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도 손을 쓰지 못할 겁니다.
지휘관: (저 아이는…… 제로?!)
지휘관: (설마 이 함대는…… 안티 엑스의 함대인가?!)
지휘관: (……크윽. 안 돼. 저번처럼 몸도 움직일 수 없고, 목소리도 안 나와…….)
아비터 문XVIII: 외부 이질의 결정체 상대로는 워 프로토콜 유형의 전력이 유효합니다.
아비터 문XVIII: 문과 스타는 해당 유형의 전력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적의 발을 묶기에는 최적입니다.
옵저버 제로: 허가합니다.
문과 엠프레스의 홀로그램이 차례로 사라졌다.
옵저버 제로: ………….
지휘관: (……? 제로가… 방금 내 쪽을 바라본 건가?)
내 감정에 호응하듯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휘관: (……이런?!)
의식은 점점 격렬한 떨림 속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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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이 잦아들고, 이내 완전히 멈추었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미리 대비를 해 놓은 것처럼 진동이 더욱 빨리 잦아들었다.
눈앞에 다시 푸른 꽃바다와 은발의 여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지휘관: 너는……?!
요크타운(META): …….
지휘관: ……기다려!
은발의 여성은 꽃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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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라지고 휴게실로 돌아왔다. 눈앞에는 여전히 멤피스가 있었다.
지휘관: 바깥 전황은 어때?
멤피스(META): 눈뜨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그거야?
멤피스(META): ……걱정 마. 무사히 도망쳤으니까.
멤피스(META): 그보다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는 너야.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면 너도 이미 눈치챘지?
지휘관: 응. 아까부터 몇 번이나 의식을 잃었으니까…….
지휘관: 이번엔 얼마나 걸렸어?
멤피스(META): 20분 정도. 점점 길어지고 있네….
지휘관: 원인은 뭔지 알겠어?
멤피스(META): 나락에서 일어나는 이변의 영향…… 이라는 것까지밖에 모르겠어.
멤피스(META): 일단은 헬레나가 어떻게든 해본다고 그랬어.
지휘관: 음……. 그러면 일단 기다릴 수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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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어느 특수 공간
헬레나(META): 벌써 세 번째……. 네가 와줘서 정말 다행이야…….
요크타운(META): 헬레나. 나락의 이상 현상은 자연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거야.
요크타운(META): …누군가가 너희의 탈출 경로의 안정성을 훼손하고 있어.
헬레나(META): 누군지 알겠어?
요크타운(META): 거기까진 모르겠어.
요크타운(META): 어쩌면…… '마르티리움'에서 너를 방해한 존재와 같을지도 몰라.
헬레나(META): ……같은 존재?
헬레나(META): 하지만 타워가 수집한 데이터는 전혀 달라. 강약도 그렇고 에너지의 파동도 완전히 다른걸…. 같은 체계의 힘은 아닐 거야.
요크타운(META): 헬레나, 생각해 봐. 나락에서 수집한 데이터는 매번 달라져.
헬레나(META): 그러니까 내가 특이점의 불안정에 따른 우발적인 이상 현상이라고…….
헬레나(META): ………….
헬레나(META): 설마… 적은 복수의 공격 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게 전부 우리를 상회한다고…?
요크타운(META): 직감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
헬레나(META): ……어쨌든 이 루트는 너무 위험해.
헬레나(META): 그래도 괜찮아. 마침 시나노가 이 배에 있으니, 그 아이를 '열쇠'로 삼아 봉쇄된 경로를 열면…….
요크타운(META): 안 돼! 그렇게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야! 샘플이 아니라, 진짜로…….
헬레나(META): 아무래도 상관 없잖아?
요크타운(META): …지휘관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
헬레나(META): …….
헬레나(META): 말하지만 않으면 돼…….
요크타운(META): 정말로 그럴 거라면…… 내가 지휘관에게 알릴 거야.
헬레나(META): 그럼 이대로 계속 위험을 감수하라는 거야…?!
요크타운(META): 모든 일에는 위험이 따라. 네 계산 밖의 일도 충분히 일어날 거야.
헬레나(META): 그런 건… 싫어……….
요크타운(META): 괜찮아, 헬레나. 적어도 아직은 버틸 수 있어. 지휘관은 분명 무사할 거야.
헬레나(META): ……요크타운. 그럼 여기는 부탁해.
요크타운(META): 뭘 할 생각이니…?
헬레나(META): 내비게이션에 집중할 거야. 한시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여정을 끝내야지…….
~06. 마담 M
빛이 사라지자 밝은 교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휘관: (이 느낌은…… 헬레나가 나를 부를 때 애용하는 비밀 회선 같은데….)
지휘관: (그런데 평소처럼 푸른 우주가 아니라 교실이네……?)
지휘관: (헬레나는 어디 있는 거지….)
???: 누구 기다려?
예상했던 헬레나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양복 차림의 보라색 머리 여성이 말을 걸었다.
마담 M: 후후후. 만나서 반가워. 나는 마담 M이야.
→ 마담 M……?
지휘관: 아, 혹시 로열 정보 기관의 요원인…….
마담 M: 아니. 그쪽은 그냥 'M'이고, 나는 '마담 M'이야. 업무 분야가 달라.
→ 혹시 미스 D라고 알아?
마담 M: 음…… 안다고도 할 수 있고, 모른다고도 할 수 있지.
마담 M: 지금 그 아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지휘관: 헬레나는 어디 있어?
마담 M: 그 아이는…… 후후후. 혹시 모를 네 번째 '습격'에 대비하고 있을걸?
마담 M: 널 초대한 건 헬레나가 아니라 나야.
지휘관: 그럼 설마 지금까지 의식을 잃었던 것도 모두 네가…….
마담 M: 일부는 관련이 있지만, 나머지는 없어.
지휘관: …….
지휘관: 어디가 관련 있고, 어디가 관련 없는 거지?
마담 M: 확실하게 알고 싶어? 그럼 재미없을 텐데.
지휘관: 처음부터 재미는 없었는데…….
마담 M: 그래? '미지'를 탐구하는 건 재밌지 않아?
마담 M: 그렇게 많은 기묘한 일을 겪었는데, 넌 궁금하지 않아?
마담 M: "나는 누구인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지휘관: 그야 궁금하지. 근데 어차피 안 알려 줄 거잖아?
마담 M: 맞아. 스스로 탐색해야 재미있지.
지휘관: ……그럼 왜 부른 거야?
지휘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을 거면 이만 돌려보내줘.
??: ……벌써……가?
지휘관: ……?!
어느새 옆자리에 있던 어린 여자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소녀는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지휘관: (……아까까지는 나하고 마담 M밖에 없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지휘관: 너는…… 제로?
많이 어리긴 했지만 인상을 보면 제로의 축소판이었다.
마담 M: 아, …이 아이는 그냥 견학하고 있을 뿐이니까 신경 쓰지 마.
지휘관: 견학…?
마담 M: 관찰하고, 이해하고, 학습하고…. 교실이란 원래 그런 거잖아?
지휘관: 하지만…….
지휘관: 어? 사라졌네?
돌아보니 아까까지 있었던 작은 소녀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마담 M: 네 얘기로 돌아가자.
마담 M: 네 말대로, 나는 네게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을 거야.
마담 M: 하지만 대신 네게 탐색과 선택의 권한을 보장해 주겠어.
마담 M: 궁금하면 그 눈으로 보고, 자신의 의지로 탐색해 봐.
마담 M: ……별로 나쁘진 않은 얘기지?
지휘관: 아니, 전혀 모르겠는데…….
마담 M: 언젠가는 이해할 거야.
마담 M: 그럼 슬슬 끝내자. 너도.
지휘관: 드디어 특이점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거야?
지휘관: 설마…. 아직 적어도 세 시간은 더 걸릴 텐데…….
마담 M: 너 여기서 세 시간 넘게 있었어. 후후후.
---
빛이 사라지자 휴게실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휘관: (시간은…….)
지휘관: (……정말로 세 시간이나 지났네?!)
지휘관: (생각해 보면 놀랄 일도 아니구나…. 애초에 자고 있었고…….)
멤피스: 지휘관. 잘 잤어?
지휘관: 멤피스…. 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
멤피스: 아니. 교대로 지휘관의 상태를 보고 있었거든. 난 온지 한 시간도 안 됐어.
지휘관: 나는 그냥 자고만 있었어…?
멤피스: 그런데?
멤피스: 서, 설마 또 무슨 이상 현상이라도 겪은 거야……?!
지휘관: 아니, 그건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
지휘관: (어라? 그러고 보니 아까 꿈속에서 뭔가 본 거 같은데….)
지휘관: (헬레나한테 뭔가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지휘관: (분명 보라색 머리가…… 큭. 아무것도 생각 안 나.)
지휘관: (그냥 단순한 꿈이었을지도…….)
지휘관: 그나저나 특이점은 탈출했어?
멤피스: 아직. 나락의 영향권에선 벗어났지만, 지금은 NA 해역 중심부 특이점 안에 있어.
멤피스: 아마 30분 정도 더 있으면 완전히 나갈 수 있을 거야.
멤피스: 그나저나 나락을 빠져나오자마자 시나노도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지휘관: 음. 진짜로 사라진 건가.
지휘관: 우리와 동행한 시나노는 정말로 나락에서만 존재하는 허영에 불과했나 보네….
지휘관: 아니, 와타츠미와 시나노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냥 '꿈' 속에서 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군.
멤피스: 그럼… 진짜 시나노는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지휘관: 아마 아이리스 대사관의 이불 속에서 막 눈을 떴겠지.
멤피스: 우리가 한 모든 고생이 시나노한테는 그냥 꿈에 불과했던 거야?!
멤피스: 치사해. 아니… 치사하다기 보단 부럽네….
지휘관: 아하하하. 아무튼 이번 일도 어떻게든 성공했네.
멤피스: 그러게.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으니까~
~07. 한없는 불꽃
나락의 먼지 속. 검붉은 그림자가 지휘관 일행이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카기(META): …….
아카기(META): "슬픔이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계속 바꾸어 나가면 돼."
----
콰앙―――!
불길에 휩싸인 기억 속 전장. 밤바다 가운데서 몇몇 희미한 그림자가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카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스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
아마기: 적들은 상당히 용의주도해요.
아마기: 스콜 속으로 철수한다고 해도 무사히 탈출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카가: ……큭!
아마기: 정말로 어이가 없네요…. 이런 전력을 갖춰 놓고 '훈련'이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겠죠.
아마기: 이번에는 어떤 변명으로 은폐할지…….
카가: 아마기 씨. 지금은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냐.
카가: 적은 일찍이 여기 매복하고 있었어. 우리 계획은 아마 들통났을 거야.
카가: 그럼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진영 함선들도 분명 공격당하고 있겠지.
아마기: 카가.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기: 우리 쪽에 '높으신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마기: 적의 화력으로 볼 때 우리는 분명 특별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기: 하지만 비록 우리가 합류하지 못하더라도 '횃불'은 반드시 세워질 것입니다.
아마기: 타오르는 불꽃을 볼 수 없는 것은… 조금 유감이지만요.
아카기: 후후후, 후후후후후…….
아카기: 우리를 창조하고… 병기로 간주하고…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두려워하고….
아카기: 이제는 멋대로 죽이려고 하다니….
아카기: 후후후…….
아카기: 진심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결말인 거야?
아카기: 그렇다면…… 이렇게 할 수밖에…!!!
불꽃이 타오르고 핏빛 피안화가 활짝 피었다.
아카기(META): 후후후… 후후후후…… 아하하하하하하!!
아카기(META): 죽어버려…….
아카기(META): 다 죽어버려…….
아카기(META): 전부 길동무로 삼아 주겠어!!
아카기(META): 아하하하하하하하!!!
----
아카기(META):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카기(META): 그녀들의 비극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아카기(META): 당신은 단지…… 막을 수 없었을 뿐이에요.
아카기(META): 죽어 마땅한 자들은 많지만… 그 중에 당신은 포함되지 않아요.
아카기(META): ……"슬픔이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계속 바꾸어 나가면 돼."
아카기(META): 당신이 그러길 바란다면….
아카기(META):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지켜보겠어요.
'아카기'의 손에 풍경 하나가 나타났다.
딸랑. 잔잔한 풍경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잠시 후. 소리와 함께 그녀의 그림자는 사라졌다.
관측자를 모두 잃은 나락은 뒤틀리고 접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소멸했다.
~08. 부적합의 징조
실험장β
NA 해역
해역 중심부 특이점 외부
특이점에서 귀환하기 전에 이미 NA 해역에서의 전투는 끝나 있었다.
히류 META에 따르면 '잔불'이 데려온 원군이 어떻게든 해줬다고 하는데, 그 원군이 누구인지는 그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가 특이점에서 탈출했다는 연락을 받고 각 진영의 함대들이 곧바로 마중을 나왔다.
물론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달려온 시나노까지 포함해서.
그리고 지금. 모두가 양산함 뉴저지에 모여서 위로회를 즐기고 있었다.
양산함 뉴저지. 임시 연회장
리토리오: 지휘관의 위대한 승리에, 건배!
킹 조지 5세: 자, 건배하자!
뉴저지: 허니. 건배 선창해줘~
→ 어어… 건배~
→ 건배!!
동료들의 열기에 힘입어 조촐했던 위로회는 호화로운 연회로 탈바꿈했다.
티르피츠: 지휘관. 특이점 나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에게도 알려줘.
시마카제: 맞아요! 지휘관공이 어떻게 아마기 공과 카가 공을 무사히 데려오셨는지 다들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지휘관: 으음… 어디부터 말해야 되지…?
클레망소: 잠깐만~ 우리 그 전에 이거부터 얘기해 볼까?
클레망소는 작은 브로치를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클레망소: 지휘관. 이 브로치 기억해?
지휘관: 아… 전에 나한테 줬었던 브로치….
클레망소: 어머, 잘 기억하고 있네~
클레망소: 자, 여기. 잘 챙기고 다시는 잃어버리지 마~
클레망소는 미소를 지으며 브로치를…… 멤피스에게 건넸다.
클레망소: ……왜 그래? 갑자기 우두커니 서 있고.
멤피스: 어? 나?
클레망소: 그래, 너. 다시는 잃어버리지 마.
멤피스가 가만히 서 있자 클레망소는 그녀를 향해 브로치를 던졌다.
멤피스: 우왓!?
클레망소: 반사 신경 좋네~
멤피스: (잠깐만. 어떻게 된 거야?)
멤피스: (이 브로치는…… 지휘관한테 주려고 했던 거잖아?)
멤피스: (왜 나한테……?)
멤피스: (혹시… 나보고 전해달라는 건가…?)
멤피스: (바로 옆에 지휘관이 있는데 왜 굳이 그런 짓을…….)
멤피스: 지휘관. 이 브로치…… 어?!
어느새 옆에 있던 지휘관이 사라졌다.
멤피스: 지, 지휘관……?!
멤피스: 헬레나. 지휘관 어디 갔어……?
헬레나: 모르겠어…. 정신차려보니 지휘관이 아무데도 보이질 않아서…….
리토리오: ……'지휘관'?
리토리오: 우리쪽 연합 함대의 지휘관을 말하는 건가?
뉴저지: ……어? 내 얘기였어?
멤피스: ……?
아마기(항모): ……상황이 이상하네요.
지휘관: 어라? 다들 왜 그래?
클레망소: ……어머. 멤피스가 내 브로치가 맘에 들었나 보네?
클레망소: 하지만 이 기묘한 브로치는 지휘관하고 나 말고는 누구도 싫다나 봐.
클레망소: 지휘관. 잘 간직하고 있어~
멤피스: (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멤피스: 지휘관. 아까 어디 갔었어…?
지휘관: ….그냥 계속 여기 서 있었는데……?
멤피스: 뭐?! 그랬어……?
지휘관: 너 표정이 좀 이상한데. 어디 안 좋아…?
멤피스: 아무것도 아냐! 그, 그냥 술을 좀 많이 마셨나 봐….
멤피스: (아냐…. 분명 뭔가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어…!)
멤피스: (설마 지휘관 본인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줄이야….)
멤피스: 어흠. 클레망소 말이 맞아. 이 브로치는 네가 가지고 있어!
멤피스는 브로치를 파란 손수건으로 감싸 내게 건네줬다.
지휘관: 이 손수건 멤피스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브로치만 받을게….
멤피스: 괜찮아 괜찮아. 소중한 브로치에 흠집이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일단 그걸로 싸매고 있어.
멤피스: 빌려주는 거니까 나중에 다시 돌려줘!
멤피스: (나도 참, 뭐하는 거야!?)
멤피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파악하는 게 우선인데…!)
멤피스: (지금부터는 계속 지휘관을 지켜보고 있어야겠어….)
리토리오: 후후후. 잠시 귀여운 소란이 있었군.
리토리오: 그럼 이야기도 끝난 것 같으니 모두 다시 건배하자!
----
연회 도중. 지휘과은 다시 아무런 전조도 없이 사라졌다.
아마기(항모): 아까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휘관님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기(항모): 게다가 지휘관님의 흔적 또한 함께 지워졌습니다.
아마기(항모): 쉽게 말하면 지휘관님의 존재에 대한 식 자체가 차단된 것 같습니다.
아마기(항모): 심지어 이 연회의 목적 자체도 저의 복귀를 환영하는 것으로 바뀌었죠.
아마기(항모): 마치… 온 세상이 지휘관님을 배제하고, 그에 따른 부정합을 억지로 인식을 왜곡시켜 합리화한 것 같습니다…….
멤피스: 나… 녹화하고 있었는데……. 지휘관이 어떻게 사라진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멤피스: 대체 뭐야…. 어떻게 해야 돼…?!
아카기: 진정해. 지금은 침착하게 대처 방법을 생각해야 해.
아마기(항모): 네. 아카기 말이 맞아요. 지금은 일단 진정합시다.
아마기(항모): 우리 말고도 지휘관님의 기억이 남아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습니다. 적어도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에요.
아마기(항모):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정말로 사라진 게 아니라, 인지에 영향을 주는 일종의 정신 간섭일지도…….
멤피스&헬레나&즈이카쿠: ………….
아카기: ……왜 그런 눈으로 저를 보는 거죠?
아카기: ……저하고는 관계없어요!
아마기(항모): 네. 아카기는 계속 저희와 함께 있었으니까요.
아마기(항모): 다만… 지금 정신 간섭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카기밖에 없으니까 의견을 묻고 싶네요.
아카기: 아마기 언니……. 확실히 이 현상은 정신 간섭과 비슷해요.
아카기: 그런데… 계속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 우리는 영향을 받지 않았죠.
아카기: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예요.
아카기: 첫째. 이 상황을 조성한 자는 근처에 있으며, 간섭의 영향을 받을 상대를 정밀하게 조작할 수 있다.
아카기: 하지만 이것으로는 왜 우리에게는 간섭하지 않았는지 설명이 안 돼요.
아카기: 둘째. 우리의 몸이나 정신에 어떤 특수한 인자가 있고, 그 덕분에 정신 간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카기: 정확하게는 일부지만요.
아카기: 지휘관님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만, 시각적으로 지휘관님을 인식할 수 없게 됐으니까요.
아카기: 즉 저희는 부분적으로만 정신 간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카기: 하지만 우리에게 무슨 특수한 인자가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아카기: 우리 사이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나락에서 돌아왔다’라는 것밖에는 없는데.
아카기: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나락에서 무언가를 묻히고 돌아온 걸까요……?
아카기: ……시나노. 당신 생각은 어때요?
시나노: ……그대와 달리, 나는… 이 회장에서 정신 간섭의 흔적을 느끼지 못했다….
시나노: 현재의 이변은… 단지 정신 간섭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 같구나…….
아카기: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시나노: 그래……. 야마토도 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류호: 잠깐만요 시나노님. ……야마토 님 말씀이십니까?!
류호: 야마토 님도 지금 여기 계시는 겁니까?!
시나노: 아니. 없다….
아카기: 시나노. 당신… 야마토와 계속 연락하고 있나요?
시나노: 나도, 여기서는 야마토와 직접 연락할 수 없다…….
시나노: 허나…… 방금 전, 야마토가 먼저 나에게 연락을 했다…….
시나노: “진정하거라. 이 일이 알려져서는 아니 된다.”
시나노: “세계 박람회, 사디아 회장… 중앵 파빌리온의 정원으로 향하거라.”
시나노: “그리하면 이번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
시나노: “지휘관뿐만 아니라, 그대들 자신을 위해서도….”
아카기: 야마토가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시나노: 우리까지 지휘관을 잊을 수는 없다…….
시나노: 이 세계에서, 지휘관이 지워진 채로 둘 수는 없어…….
아카기: ……네. 그건 절대 안 되죠.
아카기: 다들! 지금 당장 출발해요!
~09. 지향성 구축
별하늘 아래 삐걱거리는 강철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곳으로 날려진 이후,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 번째. 이곳의 전투는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초연 냄새로 알 수 있다.
두 번째. 나는 지휘관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하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애써 기억을 더듬었지만 마치 안개에 덮여 있는 것처럼 희미했다.
어떤 것은 확실하고, 어떤 것은 애매하며,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도 많았다.
지휘관: 나는 지휘관. 이건 확실해.
지휘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군의 고위 장교 제복이니까.
지휘관: 어느 군 소속이었는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휘관: 전술 지휘와 무기 장비에 관한 지식은 다 기억하고 있어.
지휘관: 함선, 세이렌, 엑스와 안티 엑스… 이것도 다 기억나.
지휘관: 실험장α, 안쥬, 오스타, 제로……. 음. 일단은 기억하고 있네.
지휘관: 이 브로치하고 손수건은…… 모르겠군.
지휘관: 흠……. 아무래도 일부 기억이 날아간 것 같아.
지휘관: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지휘관: 전에 만났던 그 보라색 머리 여자하고 관련이 있나…?
지휘관: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지휘관: 애초에 왜 갑자기 떠오른 거지……?
알고 있는 것, 떠오른 것들을 메모장에 적으면서 기억의 미로를 탐색했다.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그럭저럭 흩어진 기억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
나는 ‘지휘관’. 실험장α라는 세계 출신.
안쥬의 조수이자 오스타의 조력자.
함선 및 안티 엑스에 관한 다수의 연구 계획에 참가.
지금까지 연구원, 교사, 그리고 군 고위 장교를 역임.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그리고… META와 엑스와의 싸움에 투신하고 있다.
……이 정도인가.
지휘관: ……그런데 여기가 어딘지는 아직도 모르겠네.
지휘관: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되는데…….
지휘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네.
주머니에 있던 통신기를 꺼내 만져 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어떤 소녀가 불길을 가르며 뛰쳐나왔다.
어드미럴 히퍼(META): ……?
어드미럴 히퍼(META): 어떻게 여기에 사람이……?
→ ……어드미럴 히퍼?
→ 히퍼!?
어드미럴 히퍼(META): 응? 나 알아?
어드미럴 히퍼(META):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어?
지휘관: 그게… 잘 모르겠어…….
어드미럴 히퍼(META): 그럼 나는 어떻게 아는 거야?
지휘관: 실은 그것도…….
어드미럴 히퍼(META): 하아?! 그럼 너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지휘관: 모르겠어…. 기억을 잃었나 봐…….
어드미럴 히퍼(META): ……그래그래.
지휘관: 미안해. 여기가 어딘지 알아?
어드미럴 히퍼(META): 기억을 잃었다며? 말해도 넌 몰라.
어드미럴 히퍼(META): 아무튼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 누가 널 도우러 올 거야.
지휘관: 도와? 누가?
어드미럴 히퍼(META): 말해도 넌 몰라.
지휘관: 미안, 히퍼. 근데 나 정말로 기억을 잃었어….
어드미럴 히퍼(META): ……하아….
어드미럴 히퍼(META): 그 정도는 알아. 날 보고 겁먹지 않은 건 네가 처음인걸.
지휘관: 왜 겁을 먹어야 돼…? “말해도 넌 몰라”는 금지.
어드미럴 히퍼(META): 말해도 넌 몰라!
어드미럴 히퍼(META): 난 갈게.
히퍼는 힘차게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지휘관: 진짜 갔네…….
지휘관: 어쩔 수 없지. 계속 기다릴 수밖에.
지휘관: 일단은 다시 한 번 머릿속의 정보를 정리해 보자.
지휘관: ……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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