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에 가려진 것
~01. 실수 없이, 효율적으로
모항. 집무실.
리슐리외의 추천으로 클레망소가 비서함을 맡게 되었다.
아이리스의 배후의 추기경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가 비서함이라니 도통 이미지가 매치되지 않았지만.
지금 그녀가 건넨 서류를 훑어보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클레망소: 어머. 서류를 너무 오래 들여다보는 거 아니니?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걸까?
클레망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분석이든 설명이든 해줄게.
지휘관: 그런 거 아냐. 오히려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놀란 거야.
클레망소: 후후후. 칭찬으로 생각할게.
리슐리외: 사무 능력에 관해서는 클레망소가 저보다 위랍니다, 지휘관님.
리슐리외: 성좌의 잡다한 사무들은 그녀가 분담하는 덕에 해낼 수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클레망소: 나는 어디까지나 걱정 많은 우리 언니――리슐리외 님을 위해 그냥 가볍게 거들고 있을 뿐이야.
리슐리외: 너무 겸손해 할 필요 없습니다. 클레망소가 우수하기 때문에 지휘관님께 비서함으로 추천드린 것이니까요.
리슐리외: 아이리스의 영광에 부끄럽지 않게 확실히 지휘관님의 보좌를 행하도록 하세요.
클레망소: 그야 물론이지.
인사를 마친 리슐리외가 집무실을 나가자 클레망소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재개했다.
가끔씩 보이는 씨익 웃는 표정. 그리고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지휘관: (클레망소, 혹시 기분 좋은 건가…?)
(똑똑)
???: 지휘관. 들어가도 되나?
지휘관: 장 바르?
지휘관: 괜찮아. 무슨 일이야?
장 바르: ……아.
방에 들어서자마자 장 바르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보고 서 있지만 눈은 클레망소를 향해 있었다.
클레망소: 어머. 혹시 나를 찾아온 거니?
장 바르: 아냐. 됭케르크가 과자를 만들어서…. 언니가 집무실에 가져다 주라고 했을 뿐이다.
장 바르: 점심 때 식후 디저트로 먹도록 해.
지휘관: (리슐리외가…? 방금 집무실에서 나갔는데 왜 장 바르를 시켰지…?)
클레망소: 흐응~ 그래. 됭케르크의 마음은 잘 받을게.
장 바르: 아아. …나는 이만 가보겠다.
지휘관: (……아무래도 장 바르의 모습이 이상한데.)
클레망소: ♪~
지휘관: (……클레망소도.)
지휘관: (아침에 업무를 시작했을 때는 평소와 다름없는 느낌이었는데.)
지휘관: (아무래도 리슐리외가 장 바르가 집무실에 들른 이후로 기분이 더 좋아진 것 같아.)
지휘관: (설마…….)
지휘관: 리슐리외가 장 바르가 챙겨줘서 기분 좋은 거야…?
클레망소: 글쎄. 무슨 말씀이신지 도무지 모르겠는걸?
클레망소: 그나저나 꽤 입맛을 돋우는 향기네. 지휘관은 됭케르크의 과자를 먹어본 적 있어?
클레망소: 흔한 아이리스 과자지만, 간은 조금 담백하게.
클레망소: 이 산뜻한 우아함. 한 번만 먹어봐도 기억에 남지.
클레망소: 설탕을 잔뜩 넣은 과자는 시시하다고 느끼게 될 정도야.
클레망소: 후후후. 지휘관 생각은 어때?
지휘관: (어물쩍 화제를 돌린 것 같은데….)
클레망소: 어머. 그런데 우리 얘기하느라 작업 예정 시간이 많이 밀린 것 같아.
클레망소: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점심이 늦어질지도 모르겠는걸?
~02. 부드럽게, 치밀하게
모항. 집무실 복도.
급한 회의 때문에 집무실 도착이 조금 늦었다.
클레망소가 비서함을 맡은 지도 꽤 지났다. 우수한 그녀 덕분이지 요즘 퇴근 시간도 꽤 빨라진 것 같다.
그렇지만 역시 업무 대행을 맡긴 건 불안하긴 하다. 뭐 문제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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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항. 집무실.
됭케르크: 클레망소. 이번 파티의 과자 조합은 크렘 브륄레와 마카롱이 좋을까? 아니면 몽블랑과 초코 머핀?
됭케르크: 크림 케이크하고 무스 케이크 조합도 버리기 힘드네. …그 다음은… 마들렌과 트러플 초코 케이크가 좋으려나?
됭케르크: 으음. 전부 맛있어 보여서 결정하기가 힘드네.
클레망소: 그건 음료 라인업에 맞추는 게 좋지 않을까?
클레망소: 홍차와 녹차라면 조금 달콤한 과자 쪽이 좋겠지만….
클레망소: 메인이 커피라면 차라리 커피 종류와 제조법에 맞추는 게 좋겠지?
클레망소: 뭐 참가자 수를 생각하면 취향은 수만 가지로 갈릴 테니까 조합을 여러 개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됭케르크: 그래…. 고마워 클레망소. 그럼 그렇게 준비할게.
로피니아트르: 클레망소 씨. 파티 공연은 어떻게 할까요?
클레망소: 폭발하지 않는 걸로 부탁해. 다과회를 불꽃놀이로 만들고 싶지는 않지?
로피니아트르: 폭발은 괜찮아요! 누군가가 매직 아이템을 만지거나 하지만 않으면…….
클레망소: 글쎄……. 아카시에게 더 안전한 건 없냐고 물어봐 줄래?
보클랭: 나, 나도 회장 준비 도와주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로피니아트르: 장난치지 말고 그냥 얌전히 기다리면 돼요.
보클랭: 장난 안 쳐! 진짜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클레망소: 어머. 그럼…… 르 말랭과 함께 음료 준비를 부탁할게.
클레망소: 테리블처럼 뜨거운 걸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해 차가운 물 준비도 잊지 말고.
보클랭: 알겠어! 아, 리슐리외 님 와인도 준비하는 게 좋을까?
클레망소: 글쎄…. 리슐리외는 바빠서 못 올지도 모르지만――뭐 한 병 정도 챙겨놔도 괜찮겠지.
보클랭: 응! 맡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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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 들어서자 아이리스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클레망소의 모습이 보였다.
인파의 중심에서 차례차례 질문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서류를 확인하는 손을 늦추지 않았다.
→ 무섭도다…
→ 대단해!
클레망소: 어머, 지휘관. 치켜세워도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클레망소: 뭐, 업무 외 시간이라면――
클레망소: 후후후. 농담이야. 이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니까 비서함 업무에 지장은 없어.
클레망소: 그리고 동료들의 귀여운 고민을 해결할 수 있어서 오히려 영광인걸.
지휘관: 귀여운 고민……?
클레망소: 그래. 이번 파티 준비 말야. 디저트, 음료, 공연 목록에 대한 사소한 고민…. 귀엽지 않아?
지휘관: 그런가….
클레망소: 애초에 며칠 뒤에 중요한 합동 훈련을 앞두고 있잖니? 고민을 안은 채 참가해서 온전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아쉽지 않겠어?
클레망소: 아이리스가 우승할 수 있을지 어떨지, 나도 나름대로 신경 쓰고 있으니까.
지휘관: 의외로 경쟁심 있구나….
클레망소: 아니. 그냥 기대하고 있을 뿐이야.
클레망소: 그나저나 합동 훈련 개막식에 함께 참가해 주겠어?
~03. 의외의 경쟁심
클레망소: 이번 합동 훈련의 목적은 각 진영 간의 연계를 더욱 견고히 다지는 거야.
클레망소: 또한 훈련 과정에서 수집되는 데이터가 미래의 양식이 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실제 전장을 가정하여 전력으로 임하기 바라.
클레망소: 지휘관.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겠어?
지휘관: 클레망소 말대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해줘,
지휘관: 그럼 건투를 기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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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 훈련은 저녁에 종료되었다.
클레망소가 보고서를 정리해 내게 건넸다.
지휘관: 대단한데. 벌써 보고서가 완성된 거야?
지휘관: (음. 각 진영 대부분 전력을 다해 임했군. 대성공이라고 해도 좋은 결과야.)
지휘관: (클레망소가 첨부한 개선안도 몇 가지 붙어 있네.)
지휘관: (특히 아이리스 함대에 대해서는――그야말로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군.)
지휘관: 망설임이 많고 과감함이 부족하다. 작전은 보수적인 데다가 예비책도 충분하지 않다.
지휘관: 한번 열세로 접어들면 회복하기 어렵다. 따라서 패배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지휘관: (집무실로 돌아왔을 때부터 느껴진 압박감의 정체는 이거였나?)
→ 아이리스의 성적이 맘에 안 들었어…?
클레망소: 딱히?
클레망소: 훈련 결과는 어찌 되든 상관없어. ……다만, 그 아이들이 취한 전술이 너무 유약했다는 점이 맘에 안 드네.
지휘관: 확실히 훈련이라 그런지 적당히 한 것 같기는 해.
클레망소: 맞아. 실전이었다면 이래서는 안 돼.
클레망소: 기회를 잡는 것은 승리로 이어질 뿐 아니라 자신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기도 해.
클레망소: 훈련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다면 실전에서 위험에 빠지게 될 지도 몰라.
지휘관: 그걸 알 수 있었던 것도 훈련의 성과지.
클레망소: 그래. 네 말이 맞아. 다만…….
클레망소: ……역시 심판정 아이들을 참가시켰어야 했나.
클레망소: 마음가짐은 제쳐두더라도 훈련을 게을리 했다는 건 알았으니까. 리슐리외와 의논해서 수정해야지.
지휘관: (……역시 경쟁심 맞네….)
(똑똑)
로피니아트르: 클레망소 씨. 파티 준비가 끝났습니다. 지휘관님도 참석하시겠어요?
클레망소: 당연하지. 금방 갈 테니까 다들 수고 많았다고 전해줘.
클레망소: 오늘 공연 기대할게~
클레망소가 평소 같은 아름다운 미소를 보이자 로피니아트르는 무심코 자세를 바로잡았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후 발길을 돌려 집무실을 나갔다.
방금 전까지 훈련 결과에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었던 클레망소는 대체 뭐였지? 라고 생각될 정도로 무서운 태도 전환이었다.
클레망소: 그래. 지휘관이 아니라면 몰랐을 테지.
클레망소: 하지만 훈련 결과에 신경 쓰지 않는 건 사실이야.
클레망소: 훈련 방침에는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의 노력을 부정할 생각은 없어.
클레망소: 모두 전력을 다해 싸웠어. 그러니 확실히 휴식을 주어야겠지.
클레망소: 그게 바로 워라밸 아니겠어?
클레망소: 뭐, 노력에 따른 휴식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아직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클레망소: 후후후. 파티를 위해 조금만 참자? 지휘관?
~04. 노력한 후의 휴식
업무를 마치고 클레망소와 함께 파티장으로 향했다.
도중에 어디서 꺼냈는지 그녀에게 초대장을 받았다.
파티 초대는 구두로 전했으면서 초대장은 확실히 아이리스의 인으로 봉랍된 봉투에 담겨 있었다.
얼핏 봐도 상당히 격식 있어 보인다….
클레망소: 지휘관을 초대하는 거니까 평범한 사교 파티라고 해도 예를 갖춰야지.
클레망소: 어머. 혹시 댄스 파티를 기대하고 있었던 거야?
클레망소: 아쉽지만 그냥 뒤풀이야. 그런 쪽은 나중에 제대로 메꿔 줄게.
→ 딱히 아쉬운 건 아닌데…
→ 부디!
클레망소: 쉿. 슬슬 회장이야. 그런 얘기는 나중에 둘이 있을 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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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피니아트르: 비적이 아닌 ‘마법’의 기적을 보여드리겠습…….
로피니아트르: 어, 어라? 왜 안 나오지…?
됭케르크: 클레망소. 지휘관. 오늘 만든 과자는 어때?
클레망소: 맛있어. 됭케르크는 과자 만드는 솜씨가 또 늘었네.
르 테리블: 차…… 뜨겁네요…….
보클랭: 와와왓! 테리블 미안! 이쪽이 네 거야! 아마 적당한 온도일 거야!
르 테리블: 앗 뜨…. 후 후……. 아직 뜨겁네요….
보클랭: 피이. 이거 혹시 안 되는 거야?
로피니아트르: 어디요…? 좀 보여주세요…….
(펑)
보클랭: 콜록콜록!
로피니아트르: 콜록콜록……. 왜 폭발한 거죠…?
로피니아트르: 보클랭. 혹시나 했는데….
보클랭: 이번에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됭케르크 씨하고 같이 파티 준비를 했을 뿐인데!
됭케르크: 보클랭은 계속 나하고 같이 있었어. 아무것도 안 했다는 건 내가 보증할게.
르 테리블: 그러면 초기 불량일까요…….
로피니아트르: 으으……하아…. 내일 아카시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됭케르크: 그나저나 클레망소. 장 바르와 리슐리외 님은 파티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클레망소: 알겠어. 이 와인은 나중에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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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정신없는 파티였지만 회장에 넘치는 동료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무래도 다들 이 경쾌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클레망소: 표정이 왜 그래? 뭐 이상한 거라도 먹었니?
지휘관: 그런 거 아냐. 음식도 다 맛있고. 다만….
클레망소: 파티 분위기가 좀 의외인가?
클레망소: 후후후. 아이리스의 파티도 이런 소동이 벌어질 때가 있어. 가끔이지만 말야.
클레망소: 꽤 개성적인 아이들도 있고 하니까.
클레망소: 그리고 피로를 확실하게 풀어야 좋은 컨디션으로 새 훈련을 시작할 수 있지.
클레망소: 그렇지 않아? 후후후.
~05 날카로운 눈빛
어느 비번 날 클레망소와 함께 서점에 왔다.
클레망소: ………….
클레망소: ………호오?
클레망소: ………….
지휘관: 클레망소.
클레망소: 어머 지휘관. 미안해. 책에 너무 집중하느라.
클레망소가 읽고 있는 책은――『연극의 구조와 탈구축에 대하여』라는 제목이었다.
연극에도 관심이 있다니 조금 뜻밖이다.
클레망소: 후후후. 이런 종류의 예술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어?
지휘관: 꼭 그런 건 아닌데….
지휘관: 평소 이미지를 생각하면 연극이나 오페라 같은 건 잘 안 볼 줄 알았지.
클레망소: 그건 평소엔 바빠서 그래. 그래도 뭐, 아이리스 아이들에게 매일 휴식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는 몸으로서――
클레망소: 나도 가끔은 모범을 보여야겠지.
지휘관: ……그게 연극 감상이라는 거야?
클레망소: 맞아. 지휘관도 괜찮다면 다음에 같이 어때?
클레망소: 뭐,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이 아이로 즐겨 볼까.
클레망소는 미소 지으며 책장에서 새로운 ‘아이’ 한 권을 뽑아들었다.
지휘관: 추리소설?
클레망소: 그래. 추리소설을 절반까지만 읽은 다음 캐릭터의 관계를 정리해 직접 고찰해 보고, 진범과 그 동기를 추리한다.
클레망소: 그게 끝나면 나머지 반을 읽고 추리가 맞는지 확인한다――
클레망소: 난 한가할 때 이런 식으로 쉬어.
지휘관: 꽤 독특하게 쉬네. 그럼…….
→ 추리가 맞았다면?
클레망소: 내 사고가 명확하며 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가 되겠지?
→ 추리가 틀렸다면?
클레망소: 글쎄. 그 소설의 작가가 트릭 설치에 미숙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클레망소: 후후후. 농담이야.
클레망소: 연극이든 추리든 솔직히 어떤 형태든 다르지 않아.
클레망소: 새로운 정보로 두뇌를 자극받고 사고가 명확해지는 느낌이 좋은걸.
클레망소: 재밌고, 무엇보다 영감을 얻기도 하니까.
지휘관: 영감?
클레망소: 그래. 이 이상 말하면 길어지니까 일단은 오늘 상대를 정해 볼까?
클레망소: ……어디. 나는 이걸로 할게. 지휘관은?
지휘관: (아뿔싸. 잡담하느라 무슨 책을 살지 하나도 못 정했다….)
클레망소: 아무래도 아직 고민 중인가봐? 후후후.
클레망소: 그럼 주제넘지만 내가 한 권 추천해 줄게.
씨익 웃으며 그녀는 책장에서 한 권을 더 뽑았다.
지휘관: (『나일강의 죽음』……. 꽤 유명한 추리소설이었지?)
지휘관: (자신이 쉬는 방식대로 나도 한번 따라해 보라는 건가.)
지휘관: 고마워. 읽어볼게.
클레망소: 그래. 감상을 기대하고 있을게. 후후후♪
~06. 고양이와 사냥꾼
클레망소의 협력 덕분에 오늘도 제시간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숲속을 걷고 있는데 전방에서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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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바르: 하아…. 이런 꼴이 되어버렸는데도 도울 생각은 없는 건가?
클레망소: 그래? 목소리가 조금 떨려서 고양이들하고 재밌게 놀고 있는 줄만 알았지.
장 바르: 하아……!?
리슐리외: 아, 장 바르. 너무 움직이지 마세요. 고양이가 떨어져 버립니다.
장 바르: 네 네…….
리슐리외: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열심히 올라가고 있네요…. 후후. 이 아이들은 정말 장 바르를 좋아하는군요.
클레망소: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 장 바르는 개다래나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네. 후후, 부러워라~
장 바르: 부럽기는 무슨!
리슐리외: 귀여운 동물들이 따르는 것은 아이리스의 축복입니다. 감사드려야 할 일이죠.
장 바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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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따라가니 온몸이 고양이에게 점령당해 마치 캣 타워처럼 되어 있는 장 바르의 모습이 보였다.
옆에 강아지풀을 들고 있는 리슐리외의 모습과――
‘제대로 먹혔네’라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방관만 하고 있는 클레망소도 있었다….
리슐리외: 안녕하세요, 지휘관님.
장 바르: 지휘관. 얼른 이 녀석들을 데리고 가줘!
클레망소: 모처럼 집무실에서 같이 안 나왔는데 결국 여기서 만나게 되네. 후후후.
장 바르: 모처럼……?
클레망소: 후후후. 지휘관은 산책 중이야?
지휘관: 그냥 발 가는 대로 걷고 있었어. …근데 장 바르는 왜 이렇게 된 거야? 게임 벌칙?
아무리 봐도 벌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광경이었다. 장 바르는 작은 동물을 다루는 데 서투르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클레망소: 벌칙이라니 그럴 리가~ 리슐리외가 고양이 카페를 뛰쳐나간 미아들을 찾자고 했거든.
클레망소: 그래서 이렇게 장 바르의 도움을 받고 있었지.
클레망소: 덕분에 미아들도 찾고 우리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지휘관: 장 바르의 체질을 이용하여 미아가 된 고양이들을 찾아낸다…. 작전으로서는 훌륭하군.
클레망소: 어머. 칭찬 고마워.
지휘관: 고양이들은 다 찾았으니 이제 그만 장 바르를 놔줘도 되는 거 아냐……?
클레망소: 글쎄…. 그래도 장 바르도 아직 기운이 남아 있고. 리슐리외의 미소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버텨 주었으면 하는데♪
~07. 백에 가려진 것
잠시 후 클레망소는 강아지풀을 꺼내 장 바르의 몸에 매달려 있는 고양이들을 떼어줬다.
이후 리슐리외가 고양이들을 고양이 카페로 데려갔고, 자매함이 달랜 끝에 장 바르도 아이리스 숙소로 돌아갔다.
지휘관: 클레망소는 고양이 좋아해? 길들이는 건 잘하는 거 같은데….
클레망소: 딱히 좋아하진 않아. 애초에 나 애완동물 키우는 데 적합하지 않기도 하고.
지휘관: 적합하지 않아…?
클레망소: 그래. 중요한 것이 다른 누군가와 공유되는 게 싫은 느낌이라고 할까?
클레망소: 내 애완동물은 모두 나만의 것.
클레망소: 다른 누군가에게 애교 부리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만지는 꼴도 난 못 봐.
클레망소: 모든 사랑을 쏟고 있는 건 나인데 당연히 나에게만 모든 사랑으로 보답해야 하지 않겠어?
클레망소: (뭐, 만약 지휘관이 내 애완동물이 된다고 해도, 독점할 수 없다는 건 잘 알지만.)
클레망소: 후후후. 애완동물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클레망소: 벌써 어두워졌으니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
지휘관: 너는 일정 괜찮아?
클레망소: 물론이지. 예정이 있어도 지휘관의 권유라면 우선할 거야.
클레망소: 이미 유명한 가게에 예약 잡아뒀어. 지휘관하고 함께 가보고 싶어서.
지휘관: 어느 틈에 예약을…….
클레망소: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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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클레망소와 함께 연극도 즐겼다.
극장에서 나오자 이미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요즘 일이 많은데도 근무 시간 외에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 건 모두 클레망소 덕분이다.
어쩌면 그녀가 말했던 워라밸을 정말로 실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점에서 책을 읽고, 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고양이 카페도 가고, 상점가도 가고, 그리고――
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시간들 모두 클레망소와 함께 보내고 있는 거 같은데…….
클레망소: 서점에서 추천했던 추리소설은 단순히 지휘관이 편히 쉬었으면 해서 그런 건 아냐.
클레망소: 일정을 엄수했던 건 비서함 권한을 이용해 지휘관의 예정을 조정해서 둘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고….
클레망소: 여자들이 가득한 모항에서 지휘관을 독점하려면 나름대로 머리를 써야지.
그녀의 책략에 감쪽같이 빠져버렸다고 한탄할 새도 없이, 클레망소는 내 쪽으로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클레망소: 내일 일은 대부분 정리해놨어.
클레망소: 밤은 이제부터인걸……. 지금부터는 둘이서 어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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