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잘 챙겨주는 건 허울이 아냐
~01. 태풍이 몰아친 다음 날.
……어느 날 밤. 모항에는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쳤다.
내일 아침은 태풍 피해를 복구하느라 엄청 바쁘겠구나…… 하면서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날이 밝은 뒤, 바깥을 둘러봤다.
눈앞에 있는 건물에서 낯익은 아이가 나왔다.
시구레: 아, 지휘관이네. 이런 데서 시간 때우다니 너무 느긋한 거 아냐?
시구레: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그렇다기엔 그냥 멍때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확실히 생각에 잠겨서 여기가 중앵 숙소 앞이라는 것도 모르고 걷고 있었다…….
숙소 건물에 피해는 없나 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세상에나, 놀랍게도 흠집 하나 없었다!
시구레: 흐흥! 이 시구레 님이 있는 숙소라구? 웬만한 태풍 정도로 피해 입을 확률은 제로야 제로!
역시 행운함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이 숙소에는 또 한 명, 행운함 유키카제도 있다.
시구레: …야! 너 방금 유키카제 생각하고 있었지! 숙소가 무사한 건 이 시구레 님의 가호 덕분이니까!
시구레: 유키카제하고는 요만큼도 관계없으니까 착각하지 말라고!
시구레: 흥! 이걸로 유키카제한테는 지지 않아… 아니, 무승부? …아냐, 내가 이길 게 뻔해!
아무래도 시구레 안에서 묘하게 경쟁심이 불타오르는 것 같지만, 내버려두자….
시구레: …맞다! 혹시 괜찮으면 지휘관도 좀 따라와! 야마시로 언니가 있는 신사는 무사할지 확인해 보려고.
확실히 숙소와는 달리 중앵 신사는 구조가 튼튼하다고 하긴 힘들다. …상황을 보러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신사 주변에는 수풀이 우거진 신성한 숲이 있다. 태풍의 영향으로 황폐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시구레: 그 표정을 보아하니 같이 가주는 거지? 그럼 바로 출발할 거야!
이렇게 해서 시구레와 함께 신사로 향하게 되었다.
~02. 야마시로 언니를 위해서라면
시구레: 우와……. 생각보다 훨씬 난장판이네…….
시구레 말대로 본전까지 이어진 참배길은 나뭇가지와 낙엽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부러진 나무가 길을 막거나 하진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시구레: 야마시로 언니-! 후소 언니-!
참배길을 보고 걱정이 되었는지 시구레가 앞서서 본전으로 달려갔다.
야마시로: ――시구레!? 그리고…… 나리까지!?
야마시로가 경내 밖에 비를 들고 서 있었다. 아마도 낙엽아니 가지를 청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구레: 무사해서 다행이다……. 후소 언니는?
야마시로: 본전 쪽까지 쓰레기가 날아와서 언니는 그쪽을 청소하고 있어요. 나리는 어떻게 오신 거예요?
모항의 피해를 확인하던 중 시구레와 만나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야마시로: 그렇다는 건…… 나리께서도 신사 청소를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이세요?
시구레: 물론이지, 야마시로 언니! 이 시구레 님의 부탁을 지휘관이 거절할 리가 없잖아! 그치, 지휘관?
일손도 모자라 보이고, 여기선 스스로 도우러 왔다고 하자.
야마시로: 와아……! 그럼 나리. 그리고 시구레도, 오늘은 같이 잘 부탁드립니다!!
시구레: 그럼 어디부터 시작하면 돼?
야마시로: 본전 쪽은 저하고 언니가 정리할 테니까 ……두 분은 참배길을 청소해 주세요.
야마시로: 그럼 저는 본전으로 돌아갈 테니 잘 부탁 드려…… 꺄악!
돌아가려고 뒤를 돌아본 순간 야마시로는 자신의 옷자락을 밟고 말았다.
시구레: 위험해――!
넘어지기 전에 시구레는 재빨리 야마시로를 붙잡았다. 마치 넘어질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시구레: 야마시로 언니, 괜찮아?
야마시로: 고, 고마워 시구레……. 나도 모르게 그만….
시구레: ……응? 뭐야 지휘관. 방금은 야마시로 언니의 평소 행동을 예상하고 행동한 것뿐이야.
역시 오래 알고 지낸 탓인지 야마시로에 대한 케어가 완벽하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둘이서 비를 들고 청소를 시작하기로 했다.
~03. 청소 시작!
유다치: 와우! 시구레가 부탁해서 왔어!
야마시로를 보낸 뒤에 사람을 더 불러 모으자 해서 시구레가 유다치를 불러왔다.
다른 자매함들은 다른 곳을 점검하느라 바쁘고, 시라츠유는 여기까지 잘 찾아올지 불안하다고 해서 참배길 청소는 우리 셋이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구레: 그럼 지휘관은 본전 쪽에서 차례대로 첫 번째 토리이까지 쓸어줄래?
시구레: 유다치하고 나는 토리이에서 본전까지 쓸면서 갈게. 협공 같은 거야!
유다치: 저기 저기, 이거 끝나면 뭐라도 먹을 거 주는 거야? 그냥 몸 쓰는 건 싫어!
시구레: 알겠어 알겠어. 제대로 도와주면 말이지만. …그럼 지휘관, 이따가 봐.
시구레하고 유다치가 떠났으니, 나도 비를 들고 청소를 시작하기로 했다.
……꽤나 열심히 쓸었는데 아직 시구레와 유다치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슬슬 만날 법도 한데…….
시구레: 바보 유다치-! 어디 간 거야!!
갑자기 시구레의 목소리가 들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어째서인지 시구레는 참배길이 아니라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구레: 아! 지휘관. 유다치 못봤어?
시구레: 걔도 참, 도중에 갑자기 “맛있는 냄새다!”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 말도 안 돼 진짜!
시구레: 오늘은 특별히 이 시구레 님이 요리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청소 중이긴 하지만 지휘관도 같이 찾아줄래?
시구레가 손수 만든 요리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유다치라면 다른 곳에 눈이 돌아갈 법도 하다.
그런 고로 시구레와 분담해서 찾아보려고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시구레: 자, 잠깐만! 마, 맘대로 혼자 가지 마! 같이 찾자고 했잖아!
시구레: 따로따로 찾는 게 효율이 좋다고…? 설마 유다치를 혼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시구레: 만약 시라츠유처럼 미아가 되면 찾아야 할 상대가 두 명이 되잖아!
과도한 걱정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시구레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시구레: 응 응. 얌전하게 이 시구레 님과 “같이” 유다치를 찾는 거야. 이 바보 지휘관!
시구레 말대로 둘이서 나란히 걸으면서 원래 있었던 장소까지 되돌아갔다.
~04. 녹색을 조심해
유다치의 모습은 털 끝 하나 발견하지 못한 채로 경내에 이르니, 사무실 안에서 야마시로와 후소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후소: 지휘관님, 시구레. 마침 차를 우려냈사오니 괜찮으시면 잠시 쉬었다 가시지 않겠사옵니까?
시구레: 야마시로 언니, 후소 언니. 유다치 못 봤어? 청소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사라져 버려서…….
후소: 유다치? 아뇨, 이곳에는 오지 않았습니다만…….
시구레: 정말……. 걔는 진짜…. 오늘은 간식 반만 줄 거야…!
야마시로: 자 자, 나리도 시구레도 조금 쉬세요. 여기 차요~
시키는 대로 잠시 쉬기로 했다. 문득 사무실 안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부적이나 제령구 같은 것들이 많이 보였다.
후소: 이 신사에는 중앵 사람들뿐만 아니라 타 진영 분들도 참배하러 오시는 일이 많사옵니다.
시구레: 후소 언니. 거기 있는 육각형 통은 뭐야?
후소: ……아아. 이건 오미쿠지랍니다. 흔들면 안에서 번호가 적힌 막대가 나오지요.
호기심이 동한 시구레가 통을 흔들었다. 그러자 나온 번호의 점괘는 보기 좋게 대길이었다.
시구레: 훗훗후. 이거 봐, 지휘관! 역시 이 시구레 님의 행운은 모항 제일이야!!
그러면서 계속해서 뽑은 번호의 점괘도 대길. ……최종적으로 5연속 대길을 뽑아보였다.
시구레: 야마시로 언니도 한번 뽑아볼래?
시구레: 이 시구레 님이 있으니까 야마시로 언니도 분명 길이 나올 거야!
야마시로: 어, 글쎄~……. 그치만 저 이런 거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이 없는데에….
그렇게 말하면서 야마시로가 뽑은 점괘의 결과는…… 길이었다.
시구레: 어디……. “녹색을 조심하라”라고 써 있네.
시구레: 낙엽도 녹색이니까 밟고 안 미끄러지게 조심하면 되려나?
시구레: ………앗.
문득 시구레가 야마시로가 들고 있던 찻잔을 바라보았다.
시구레: 야마시로 언니, 지금 차 마시면……
야마시로: ??? …앗 뜨거!!
고개를 갸우뚱하며 찻잔에 입을 대던 야마시로가 순간 혀를 날름 내밀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야마시로: 우으으~…… 차에 혀를 데었어요~……. 녹차……. 이거, 녹차예요…….
시구레: ……역시 시구레 님의 운으로도 한계가 있네….
아무래도 그녀의 강운이 듣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05. 남을 잘 챙겨주는 이유
시구레: ――그럼 지휘관. 슬슬 다시 바보 유다치를 찾으러 가자!
슬슬 찾아내지 않으면 해가 저물어 버린다. 야마시로와 후소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다시 참배길로 돌아가 찾아보기로 했다.
시구레: 하아~……. 야마시로 언니가 끓여 준 차, 맛있었는데.
시구레는 참배길을 걸으며 조용히 말했다.
시구레: …뭐야. 지휘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존경하고 있는 게 당연하잖아!
시구레: 야마시로 언니는 말이지. 항상 다른 사람 걱정만으로 머릿속이 한가득이라 자기 주변까지 살피지 못하는 것뿐이야!
시구레: 그리고 모가미 씨나 미치시오네도, 다들 동료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시구레는 기쁜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시구레: 그러니까 이 시구레 님도 언니들을 본받아서 다른 애들을 챙겨주는 거야.
시구레: 물론 지휘관한테도 그러고 있고. 혼자 있으면 외롭지? 순순히 이 시구레 님이 같이 있어주는 것에 감사하도록 해!
솔직하게 감사의 말을 전하자, 시구레는 만족했다는 듯 다시 앞을 향해 착착 걷기 시작했다.
시구레: 그럼 다음은 저쪽 토리이를 찾아보자! 혹시 중간에 걷다가 지치면 사양하지 말고 말해. 알겠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고, 문득 아까 전 나눠서 찾아보자는 말을 거절했던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언제나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네…….)
방금 전 대화에서 살짝 엿보였던, 시구레의 본심을 아주 조금 알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06. 문 너머의 불온
결국 유다치가 사라졌다는 토리이까지 되돌아왔지만, 역시 거기에도 유다치의 모습은 없었다.
시구레: 이만큼이나 찾아도 없다는 건 설마 질려서 돌아간 걸지도 모르겠네….
시구레: 조난? 말도 안 돼. 누가 조난당하던 유다치만은 절대 조난 안 당해.
시구레: 배고프면 직감만으로 숙소로 돌아갈 수 있는 애니까. 걱정이라면 그쪽이 아니라 숙소로 돌아간 뒤에 고기를 못 먹어서 날뛰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 정도야.
시구레: 그럼, 청소 도와주는 것도 있으니 얼른 정리하고 끝내자.
――그리고 나서 둘이서 청소를 시작한지 조금 지났는데….
시구레: 아……. 이만큼이나 치웠으면 이제 괜찮겠지….
시구레: 정말. 숙소는 유키카제한테 맡기고 이 시구레 님은 신사 쪽으로 와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마지막 창고를 청소하러 가던 중에 시구레가 그렇게 말했다.
시구레: 좋아 도착! 문은 열려 있으니까 청소하고 그대로 두면 되겠지.
그렇게 말하며 시구레가 창고 문에 손을 댄 순간
――덜컹덜컹!!
시구레: 히이익!! 뭐, 뭐야 방금!?
소리는 창고 안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시구레: 바, 방금 설마 귀신 같은 건 아니겠지!? 쥐……라던가 그건 그거대로 싫어!!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 들은 건 아닐 텐데.
방금 전 소리를 듣고 숨을 헐떡이는 시구레를 안심시키려, 손을 꼭 잡아줬다.
시구레: !!!――바보 지휘관! 갑자기 뭐하는 거야!
이러고 있으면 불안감이 조금은 덜해질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데…… 화나게 한 건가?
시구레: ……뭐어, 그래도 이러고 있으면 떨어질 염려는 없고, 지금은 겁쟁이 지휘관을 위해서 계속 잡고 있어 줄게!
시구레: ……아무튼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하나 둘 셋!”하면 같이 문을 여는 거야!
한 손은 마주 잡고, 다른 한 손은 함께 미닫이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시구레: 간다…… 하나, 둘, 셋!
힘차게 열린 그 앞에 있었던 건 귀신……이 아니라
유다치: ……쿨~ 음냐음냐……. 이렇게 많은 고기는 다 못 먹어…… Zzz~…….
시구레: 바, 바보 유다치!? 이런 데 있었어!?
유다치: 음냐음냐…… 으응~? 뭐야 시구레~? 벌써 저녁시간이야? 후아아암…….
유다치: 창고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잠들어 버렸어….
시구레: 아, 기가 막혀서 화낼 마음도 안 드네……. 하아…… 너란 애는 정말…….
정체를 알고 안심한 듯 시구레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더니 큰 한숨을 내쉬었다.
~07. 시구레 님과 오래도록
시구레: 하아…… 어쩐지 급피곤하네…….
유다치와 합류해 간신히 경내까지 돌아오던 중 시구레가 어깨를 늘어트린 채 말했다.
정말로 피곤하긴 하다. 무엇보다 마지막 창고에서 계속 손을 놓지 않았던 점에서 시구레가 정말로 무서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구레: 아. 잠깐, 지휘관! 엄청 피곤해 보이잖아. 옷깃도 다 늘어져서 너덜너덜하고.
시구레: 그렇게 녹초가 되었는데도 아까는 이 시구레 님을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무리한 거야?
시구레: 정말. 어울리지도 않는데 무모한 짓이나 하고!
유다치: ……뭐냐 시구레? 너 귀 엄청 빨갛다?
시구레: 시끄러! 넌 가만히 있어!
유다치: 왜 유다치가 혼나는 거야……?
야마시로: ――나리! 드디어 오셨네요! 나리~, 시구레~, 유다치~!
모항. 집무실.
시구레: ……저기, 지휘관. 그러니까….
두툼한 자료를 휙휙 넘기며 시구레가 말을 건넸다.
시구레: 그게…… 사실 지휘관이 비서함을 찾고 있다는 말을 전에 중앵 숙소에서 들었는데. 어, 어쩌다가 들은 거지만.
시구레: 마, 만약에! 만약이지만! 이 시구레 님이 비서함을 맡는다면 엄청 의지가 될 거라고 생각해!
시구레: 자기가 피곤해도 옆에 있는 아이 걱정만 하는…… 그런 바보 지휘관한테는 아까울 정도로 말야!
시구레: 그러니까…… 그게……. 거, 검토해보는 게 어때?
……실은 그거 때문에 그녀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한 거지만.
시구레: ……으윽!!
수줍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얼굴을 살짝 가려도, 빨갛게 달아오른 건 숨길 수 없는 것 같다.
기쁘다는 마음이 똑똑히 전해져,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 넘치고 만다.
시구레: 흐, 흥!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평소처럼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돌아온 시구레는 다시 한 번 이쪽을 향해 수줍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구레: 그럼, 앞으로도 쭉 곁에 있어줄 테니까! 잘 부탁해 지휘관♪
……여유부리는 말투지만, 남을 잘 챙겨주는 착한 아이.
그녀가 비서함이 되어주다니, 나는 어쩌면 행운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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