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새로운 취미? ①
그동안 내비에게 현재의 인지와 사고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듣게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지식'을 배우는 것은 그녀의 성격에 별 영향을 미치치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지혜'가 더욱 많이 늘었다.
거실 소파에서 다리를 흔들며 과자를 먹고 있는 내비를 힐끗 보고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지휘관: (지금 단게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적절한 순간에 그녀를 이끈다.
우선은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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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의 의견을 들은 후, 함께 상가 장난감 가게에 왔다.
내비: 있지, 아빠! 이거… 아, 저게 더 좋아 보여!? 아, 정말 다~ 갖고 싶어!
지휘관: 진짜 저걸 다……?
내비: 하아? 아빠는 장난감 하나로 날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싱겁기는~
내비: 아! 혹시…….
내비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비: 아빠. 이 정도 돈도 없어?
지휘관: …….
내비: 어쩔 수 없네~ 아빠가 불쌍하니까 조금만 덜어 줄게.
내비: 내 배려심에 감사하도록 해~!
도발하는 내비를 무시하고, 방금 전 그녀가 마음에 들어했던 장난감을 몇 개 집어 눈앞에 놔뒀다.
지휘관: 하나만 골라.
내비: 하나만!? 아빠 진~~~~짜 쪼잔해! 난 다 갖고 싶다고 말했어!
지휘관: 하나만이야.
내가 강하게 나서자 내비는 바로 타협했다.
내비: 칫……. 알겠어. 고르면 되잖아!
내비: 이제 보니까 다른 건 별로 재미없어 보여서 그런 거야! 알겠지!
그러면서 내비는 처음부터 계속 눈독 들이던 장난감을 얼른 집어 내 품에 밀어 넣었다.
내비: 자, 빨리 가서 계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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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자마자 내비는 서둘러 새 장난감을 뜯었다.
내비: 적기 출현! 전탄 발사! 두다다다다!
입으로 기총 소리를 내며 장난감을 공중에서 이리저리 휘젓는 내비.
내비: 응? 잠깐만……. 이런 것도 되겠다!
내비: 변형 합체! 새 모드 기동! 에헤헤~♪
그녀는 양손에 힘을 주어 장난감을 두 동강 냈다.
망가진 장난감을 손에 들고 노는 내비의 얼굴은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비: 흥! 아빠, 잘 봐! 이게 내가 생각한 궁극 오의――분열 공격 모드야!
지휘관: …….
정말이지, 아무래도 또 새 장난감을 사줘야 될 것 같다.
~09. 아웃도어 활동! ①
지휘관: "아웃도어 활동은 교육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활동 중 하나이다. 밖에서의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균형 감각, 협조성을 단련할 수 있으며……."
도서관 안쪽에서 찾은 교육 관련 서적을 덮고 나는 미간을 가볍게 눌렀다.
현재 내비의 개성으로 볼 때, '밖에서 노는' 걸 딱히 거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휘관: 아웃도어 활동……. 확실히 좋은 선택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다시 단말기를 착용했다.
낯익은 하얀 빛이 번쩍이고 나는 버추얼 타운의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준비를 마친 뒤, 내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결승선 직전. 내비는 배턴을 꼭 쥐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어딘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내비: 봤지, 아빠! 압도적인 차이로 이겼다고!
지휘관: 잘했어, 내비.
내비: 흥. 이 정도는 나한테 식은 죽 먹기지~♪
내비는 배턴을 휘두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내비: 내가 이기는 게 당연하지~! 아빠의 폐급 체력으로는 절대 못 이길걸?
지휘관: 도발하는 거니?
내비: 도발이고 뭐고,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내비: 아빠는 매일 앉아서 일만 하니까 체력 같은 건 0일 게 뻔하잖아? 허접 허~접♪
지휘관: ……그럼 한번 해볼래?
내비: 어? 나한테 도전하는 거야?
내비: 흐흥~ 친절하게 조언하는데 지금 미리 기권하는 게 나을걸?
내비와 장난을 치면서 집까지 경주를 했다.
~11. 과외 활동? ①
요즘 내비는 공부에 매우 열심인 듯, 방과 후에도 자습하겠다고 우겨 학교에 남는 일이 많아졌다.
지휘관: (수업량이 그렇게 많은가……?)
지휘관: (나중에 아카시하고 TB랑 얘기하면서 커리큘럼을 재검토 해봐야겠어.)
한숨을 쉬다 문득 벽시계를 바라봤다.
내비가 돌아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오늘은 그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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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약간 우회해서 오락실 앞을 지났다.
지휘관: (아카시는 오락실 같은 건 언제 추가한 거야……?)
호기심에 안을 둘러보니 교복을 입고 있는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휘관: (……내비? 학교에서 자습하는 거 아니었어?)
→ 들어가서 확인한다
지휘관: (……여기서 머뭇거리느니 그냥 들어가 보는 게 낫겠어.)
→ 그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방해하지 않고 다 놀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유리창 너머로 내비가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휘관: (왠지 감시하는 느낌이네……. 역시 그냥 들어가자.)
문을 열자 요란한 전자음과 게임 BGM이 귀에 쏟아졌다.
리듬 게임기 앞에서 내비는 화면의 지시에 따라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지휘관: 내비야?
방금 전까지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내비는 엉겁결에 이쪽으로 돌아섰다.
깜짝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빈 음료수 캔을 무심코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내비: 우왓!?
내비: 아빠!? 왜, 왜 여기 있어!?
지휘관: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
지휘관: ……너 요즘 자습한다더니 계속 오락실 다녔던 거야?
내비: 아, 저기…… 실은…….
내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교복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내비: 수업 내용 같은 건 벌써 다 익혔으니까…… 조금만 놀고 싶어서…….
지휘관: 그러면 왜 그냥 집으로 안 온 거야?
내비: 그, 그게……. 아빠, 요즘 엄청 바빠 보였으니까…….
내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내비: 집에 가면 아빠 일 안 하고 나랑 놀아주잖아……. 그래서…….
지휘관: (그랬구나…….)
지휘관: 내비.
지휘관: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일에 부담되거나 그런 건 전혀 없으니까.
내비: ……정말?
지휘관: 물론이지. 오늘은 같이 집에 갈까? 돌아가면 내비가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 줄게.
내비: 그치만…… 일은?
지휘관: 일은 걱정하지 마. 아무리 바빠도 내비를 위해서라면 시간을 낼 테니까.
내 대답을 듣고 내비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평소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돌아와 있었다.
내비: 그, 그럼… 약속한 거야! 나중에 무르기 절대 없어!
지휘관: 그래. 약속이야.
내비의 손을 잡고 함께 오락실을 나섰다.
석양빛이 우리의 귀로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13. 둘만의 시간 ①
오락실에서 우연히 내비와 만난 후, 시간이 꽤 흘렀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약속했지만, 정작 내비는 웬일로 방에만 틀어박혀 멍하니 있었다.
지휘관: (계속 방에만 있는 것도 좀 그러네…….)
지휘관: (어디 밖에라도 좀 나가자고 해야겠다.)
지휘관: 내비야. 날씨도 좋은데…… 수영하러 갈래?
내비: 어…? 갑자기 왜?
지휘관: 전에 오락실에서 춤출 때 동작이 좀 어색하더라고.
지휘관: 균형 감각하고 유연성을 키우려면 수영이 최고거든.
내비: 하아? 아빠, 나 깔보는 거야?
내비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비: 자기도 운동 신경 없으면서! 그리고 수영보다 리듬 게임이 훨씬 재밌거든!
지휘관: 그래? 그럼 내기할래?
지휘관: 만약 내비가 수영에서 이기면 일주일 동안 같이 리듬 게임 해줄게. 어때?
내비: 뭐야, 겨우 일주일? 적어도 2주 정도는 해줘야지!
지휘관: 좋아. 내비가 이겼을 때 얘기지만.
내비: 그야 당연하잖아? 반드시 이겨 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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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비를 수영장에 데려갔다.
내비의 수영 자세는 놀라울 정도로 깔끔했고 동작도 매끄러웠지만, 결국 체격에서 앞선 나를 이기지 못했다.
수영장에서 나오자 내비는 곧바로 그 자리에 납작 엎어졌다.
어딜 봐도 지친 모습이었지만, 내비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들고 마치 승자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내비: 졌어……. 그래도 아빠, 같이 리듬 게임 해줄 거지?
지휘관: 뭐… 그럴까?
내비: 흐흥♪ 퇴물 아빠니까 결국 그래줄 줄 알았어!
내비는 나를 올려다보며 "역시 내 예상대로"라는 듯 씩 웃어 보였다.
지휘관: ……그냥 안 할래.
내비: 어?! 안 돼 안 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건방진 태도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이번에는 불쌍한 표정이 된 내비였다.
이후 옷을 갈아입고, 내비와 함께 오락실에 가서 마음껏 놀았다.
~15. 밸런스 마스터?
요즘 내비는 운동에 열중하고 있다.
아니, 운동이라기보다는 균형 감각이나 몸의 통제를 필요로 하는 트레이닝에 열을 올리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유산소 운동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코어와 밸런스 위주 종목에는 꽤 열심이다.
오늘 오후에도 내비에게 이끌려 근처 헬스장에 왔다.
지금 내비는 짐 볼 위에 앉아 다리를 들고 코어 힘만으로 균형을 잡고 있다.
내비: 아빠! 시간 얼마나 지났어?
지휘관: 48초야.
내비: 흐흥~! 이번에야말로 지난번 기록을 꼭 깨고 말겠어!
내비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랑하듯 몸을 흔들었다.
지휘관: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내비: 괜찮다니까! 나는…… 앗!
지휘관: 내비!
작은 비명과 함께 내비는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받아주려고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내비: 으으…… 아파라…….
지휘관: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손을 뻗어 내비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그녀는 내 손을 밀어냈다.
내비: 괜찮아! 애초에 아빠가 말 시켜서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런 거잖아!
내비: 흥! 방금은 노 카운트야! 다시 할래! 이번에야말로 신기록을 세우고 말 거야!
그럭저럭 한 시간 정도 헬스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도 다음에는 반드시 기록을 경신할 거라며 몇 번이고 얘기하는 내비였다.
~17. 테니스 시합
또다시 내비에게 운동하자고 '끌려간' 날이었다.
여전히 말투는 거칠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나를 향한 배려심이 느껴졌다.
테니스장에 도착해 준비 운동을 마친 후, 우리는 바로 시합을 시작했다.
30분 정도 격렬한 랠리를 이어갔을 쯤 내비의 호흡이 점차 가빠지기 시작했다.
테니스복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어 내비의 몸에 착 달라붙었다.
내비는 옷자락을 잡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지휘관: 좀 쉴까?
내비: 하아……하아……. 벌써 약한 소리 하는 거야?
내비: 역시 평소에 운동이 부족했던 모양이지~?
지휘관: 너야말로 헐떡거리고 있잖아….
내비: 흥! 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내비는 땀에 젖은 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여유로운 척을 했다.
내비: 휴식 끝! 계속해!
테니스 코트에서 땀을 흘리는 사이 오후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해가 질 무렵, 우리는 장비를 챙기고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피곤할 텐데도 어딘가 만족스러운 표정의 내비. 그런 그녀를 보고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19. 미래의 진로 ①
어느새 내비가 진학할 시기가 왔다.
내비가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그녀의 성장을 이끄는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고민이 된다.
오늘은 이번 학기의 마지막 날이다. 하교 시간은 이미 지났는데 내비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지휘관: (설마 또 오락실에……?)
그러나 오락실에 가 봤지만 내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휘관: (학교에 가 보자.)
석양의 잔광이 창문을 통해 교실을 비추고 있었다.
내비는 자리에 앉아 펜촉을 물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앞에 놓인 노트는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지만, 간신히 '진로 제출'이라는 글자는 알아볼 수 있었다.
지휘관: 여기 있었구나.
내비: 꺅!? 여, 여긴 왜 왔어?
지휘관: 시간이 늦었는데 안 오길래 데리러 왔지.
지휘관: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비: 딱히….
내비: 그냥 수업 시간에 배운 거. 미래나, 이상이라든가…….
내비는 무의식적으로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내비: ……잘 모르겠어.
지휘관: 서두르지 마. 천천히 하면 돼.
지휘관: 네가 뭘 선택하든,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지휘관: 자신의 길을 찾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야. 지금은 막막할 수밖에 없지.
지휘관: 계속 곁에서, 내비가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봐 줄게.
지휘관: 언젠가 분명 너만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내비: ……정말?
지휘관: 물론. 약속이야.
내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미소 지었다.
내비: 그럼 빨리 가서 밥먹자! 나 배고파!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미래가 어떻게 되든, 내비가 자신의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곁에 있어 주자.
~21. 새로운 시작
진학 후. 내비는 생각보다 빠르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그렇게 학교 운동회를 맞게 되었다.
비록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방과 후가 되면 곧바로 운동장으로 뛰쳐나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운동회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것 같았다.
그리고 운동회 당일. 내비는 예상대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시작부터 줄곧 선두를 유지하다가 마지막에는 큰 차이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넘었다.
시상대 위에 오른 내비는 한 손을 허리에 짚고, 다른 손으로는 신나게 금메달을 내걸고 있었다.
내비: 봤어, 아빠? 이게 실력의 증명이라는 거야.
그 눈동자에는 승리의 기쁨이 반짝이고 있었다.
지휘관: 잘했어.
내비: 이건 시작에 불과해!
내비: 앞으로도 계속 이길 거니까!
태양 아래 의기양양한 내비의 모습은 마치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역시 내비는 이래야지.
~22. 드링크 액시던트
오늘은 특별히 일을 일찍 끝내고 내비를 데리러 갔다.
뭐, '데리러 갔다'고는 해도 실제로는 조금 앞을 걷고 있는 내비의 뒤를 따라가는 형태지만.
내비: ……♪
앞에 보이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벌써 이렇게 컸구나 하고 감회가 새로워져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졌다.
내비: 아빠아~!
내비: 느리잖아! 설마 아빠, 옛날처럼 손잡고 걷고 싶은 건 아니겠지?
지휘관: …어?
반박할 새도 없이 그녀는 잇달아 입을 열었다.
내비: 어른인데 아직도 손잡고 가고 싶다니……. 아빠는 정말 어쩔 수 없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그녀는 자판기 앞에 멈춰섰다.
내비: 목마르니까 마실 것 좀 사야지.
그녀가 음료수를 고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멍하니 남은 업무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통통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리자 내비가 갑자기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보였다.
내비는 오른다리를 살짝 들어 무릎을 구부렸다.
그리고 마치 축구공을 차듯 자판기에 날카로운 킥을 날렸다.
교복 치마가 두둥실 휘날리며 하얀 니삭스와 절대영역이 드러났다.
쾅――!
소리와 함께 캔이 떨어지는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내비: 이 자판기, 최악이야! 음료수가 걸리다니!
내비: 어라~? 아빠, 혹시 쫄았어? 진짜 안 되겠네♪
고개를 갸웃한 내비는 마치 장난에 성공한 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지휘관: …….
나는 한숨을 쉬며 다가가 자판기를 확인했다.
기계가 망가지지 않은 것을 보고 안심하며 내비에게 설교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음료수를 한 손에 들고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내비: 퇴물 아빠, 빨리 와! 해가 저물어 버린다고!
활기찬 발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등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제멋대로 하게 놔두면 안 되는데…….
……아마도.
~24. 비밀 레시피
놀랍게도 내비가 요리를 하겠다고 나섰다.
내비: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특별히 내가 음식을 만들어 줄게!
내비: 후후후. 아빠는 얌전히 내 음식의 포로가 될 준비나 하고 있어♪ 뭐, 당연하지만~
웬일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비와 함께 필요한 식재료를 구입한 후 귀가하자마자 나는 부엌에서 내쫓기고 말았다.
내비: 절대 훔쳐보면 안 돼! 만약 훔쳐본다면…… 후후후♪
어쩔 수 없이 거실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달콤한 향기가 풍겨 오기 시작했다.
지휘관: ……뭔가 이상한 거 같은데…?
불안해진 나는 내비의 '금지령'을 무시하고 부엌문을 열었다.
내비는 분홍색으로 빛나는 섬뜩한 액체가 담긴 병을 손에 들고 여유롭게 싱크대 위에 앉아 있었다.
내비: 어? 벌써 냄새가 났나?
냄비에서는 분홍색 거품이 일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게 바로 달콤한 향기의 원인인 것 같았다.
지휘관: 이게 뭐야……?
내비: 내가 만든 특제 비밀 양념♪
내비: 가정 과목 선생님이 알려준 비밀 레시피야♪
내비는 시험관 속 마지막 한 방울까지 냄비에 털어 넣고 위험한 미소를 지었다.
내비: 아빠. 전~부 다 먹어야 돼?
내비: 이건 아빠만을 위해 준비한 거니까♪
그때 비밀 양념을 더한 냄비의 내용물이 갑자기 굳어지며 정체불명의 물질이 되었다.
내비: 아, 아쉽네~ 아빠가 입에 넣었을 때 표정이 보고 싶었는데~
살짝 실망한 내비의 모습을 보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무와 기타 식재료를 이용해서 서둘러 비건 카레를 만들어 간신히 식사를 해결했다.
~26. 심야의 노력
밤이 깊었는데도 서재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노크를 하고 문 너머로 내비에게 말을 걸었다.
지휘관: 내비. 아직 안 자니?
내비: 응? 아빠하곤 별 상관없잖아? 정말….
지휘관: 하아…….
별수 없이 나는 서재 문을 열었다.
방안에는 스탠드만 켜져 있었다. 따스한 빛이 내비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앞에 있는 작업대에는 정체불명의 설계도가 펼쳐져 있었다.
부품 등 일부 디자인은 투박해 보였지만, 내비가 진지하게 그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내비는 헐렁한 차림으로 한 손에 펜을 쥐고 있었다.
내비: 아빠는 참견쟁이니까 당연히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어♪
내비: 온 김에 이것 좀 봐 줄래?
내비: …아니, 아빠는 퇴물이니까 봐도 소용없잖아! 역시 나가!
말로는 나가라고 했지만 정말로 쫓아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지휘관: 열심히 그린 거 같은데… 이게 대체 뭐야…?
내비: 흐흥~ 알고 싶어? 부탁하면 알려줄지도 몰라~
→ 내비한테 부탁한다:
내비: 흐응~ 아빠도 부탁할 줄 아는구나~? 별일이네~
내비: 그치마안~ 그렇게 건성으로 하면 안 되지? 좀 더 성의를 보여 봐~
지휘관: …….
내비: 아, 뭐 됐어. 그냥 알려줄게.
→ 떠난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내비: ……흥! 그냥 가는 거야? 퇴물! 겁쟁이!
나는 두 걸음 나아갔다.
내비: 윽……. 나를 무시하다니…! 기다려!
내비: 이, 이리 오라구! 진짜!
지휘관: ……뭐? 자동 샌드위치 제조기 Ver3.0?
내비: 흐흥! 맞아. 어떤 퇴물 아저씨를 완전히 대신할 수 있는 완벽한 발명품이야!
내비: 아빠, 매일 새벽 일찍부터 내 아침밥 만들고 있잖아? 너무 비참해서 눈에 거슬리거든~
지휘관: 그래서 이걸 발명해서 어쩔 건데?
지휘관: 난 내가 좋아서 내비의 아침밥을 만들고 있는 거야.
내비: 하아? 아빠, 내 발명을 우습게 보는 거야? 완전 짜증나―!
내비: 어떻게든 내 아침밥을 만들고 싶다면 기회를 주지 못할 것도 없지.
내비: 그럼 내일 샌드위치 부탁해. 나한테 감사하라고~
내비: 치즈는 두 장. 네 조각으로 잘라서. 모양까지 완벽한 대칭으로!
내비: 만약 못한다면…… 흐흥. 아빠가 꾸벅꾸벅 졸 때 못생긴 사진 많이 찍었거든? 어떻게 할까~?
내비는 의기양양하게 책상을 치우고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가 일부러 세게 문을 닫았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문이 다시 살짝 열렸다.
내비: 잘 자. 바보 아빠.
내비: 내일 아침에 샌드위치 안 만들어져 있으면 어떻게 돼도 난 몰라~?
~28. 네가 있는 미래 ①
어느덧 내비가 졸업하는 날이 되었다.
그녀의 졸업 파티에는 참석했지만 이후로도 평소 일상 그대로, 특별한 변화가 없는 날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는 내비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뜻을 존중해 그녀에게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내비는 중요한 얘기가 있다며 나를 카페로 초대했다.
내비: 그… 장소를 카페로 정한 건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내비: 집에서 얘기하면 역시 너무 대충인 거 같아서.
내비: 요즘 계속 생각했었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비: 대단한 사람? 이성적인 사람? 아니면 아직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
내비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듯 눈앞의 커피를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비: ……그러는 동안 이게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
내비: 왜냐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더라도 아빠는 곁에 있어 주고, 항상 응원해 줄 거잖아?
내비: 그러니까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보다…… 당신이 곁에 있어 주고, 응원해 주는 게 훨씬 중요해.
내비: 그걸 깨닫고 나니까 갑자기 고민이 사라졌어.
그렿게 말하며 내비는 의자를 살짝 뒤로 뺐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어디선가 빨간 종이봉투를 꺼냈다.
입고 있는 검은색 원피스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내비: 저, 저기…. 이거 받아!
내비: 용돈 모아서 산 선물….
내비는 얼굴이 빨개진 채 내게 선물을 내밀었다.
내비: 별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꼭 받아줘!
내비: 앞으로의 인생도 나, 열심히 할 테니까!
지휘관: 고마워.
햇살이 우리를 비추며 이 따스한 순간을 영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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