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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휘의 마르티리움 上

킹루클린 2024. 5. 27. 17:42

 ~01. 불청객

“조수. …그거 알아?”
“나는 죽는 게 너무나도 무서워.”
“할 수만 있다면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굳이 고르자면 가장 무서운 건 ‘갑작스러운 죽음’이야.”
“1초 전의 생각과 1초 후의 기대를 품은 채 갑자기 멈추어 버리는 ‘지금’.”
“그래서 말야.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면 내가 원하는 시간과 원하는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고 싶어.”
“……당연하지. 난 너처럼 용감하지 않으니까.”
“죽음을 받아들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야.”

“하지만 정말 그날이 온다면 슬퍼하지 않아도 돼.”
“분명 나는 충분히 죽을 준비를 끝마쳤을 테니까.”
“다만…… 내가 떠난 후에 내 ‘이상’은 너에게 맡길게.”

“하아? 안쥬의 이상은 너무 많아서 받기가 힘들다고?!”
“저기 말야. 분위기 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난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거야.”
“안쥬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된다고…?”
“너 죽은 사람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냐?”
“……그래 그래. 어떻게든 해볼게.”
“…나의 이상, 나의 길, 내가 지키는 모든 걸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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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문을 지나자 곧 부드러운 조명이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피로로 인한 어지럼증이 몰려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리스 회의장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지휘관: (지금까지는 통신 공간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외부에서는 찰나의 시간만 지나 있었어.)

지휘관: (그런데 이번에는 내외부의 시간이 동일하게 흐른 것 같아.)

지휘관: (아까의 피로가 이런 현상과 관련이 있는 걸까…?)

지휘관: (회의장의 재밍원도 걱정이지만 우선은 안으로 들어가 좀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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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 비밀 조수! 늦었잖아!

???: 돌아오는 게 너무 늦어!

객실 문을 열자 어둑어둑한 방에 후드를 쓴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어린 소녀는 침대에 누워 손바닥으로 침대를 팡팡 두드리고 있었다.

???: 늦어! 늦어! 늦어!

???: 회의장에서 돌아오는 시간, 너무 늦어!

지휘관: (……허어?)

 

→ 대체 뭐야?
???: 보면 몰라! 기다리고 있었다구!

→ 누구세요?
???: 미스 D!

→ 불법 침입?!
???: 그냥 들어왔어! 보안이 너무 허술해서 침입할 필요도 없었어!

 

 

???: 나한테 고마워해! 여기 들어오면서 덤으로 보안 취약점을 하나 고쳐줬으니까!

???: ‘천외 공간’에서 누가 널 훔쳐보고 있었어! 알아? 바보!

→ ‘천외 공간’?

지휘관: (혹시 헬레나가 타워의 힘을 빌려서 구축한 통신 공간을 말하는 건가……?)

지휘관: (헬레나가 통신 말미에 ‘재밍원’과 ‘객실’을 언급했었는데…….)

지휘관: (설마…… 얘가 보안 취약점을 수정한 탓에 내가 그 공간에 갇혔던 건가…?)

지휘관: ………….

→ 네가 원흉이었구나!
→ 보안 취약점에 대해 자세히 알려줘…

미스 D: 어?! 너 갇혀 있었어? 그래서 늦은 거야?

미스 D: 알았다! 그건 네가 데이트용으로 만든 공간이구나! 방해해서 미안!

지휘관: (……하아?)

미스 D: 하지만 난 연결 통로를 끊었을 뿐이야. 로컬은 안 건드렸어!

미스 D: 너, 들어갈 수는 있는데 왜 못 나왔어?

→ ……어쩌다 보니 못 나왔어
→ ……나가는 방법을 몰라서

미스 D: ……너 못 나와?

미스 D: 못 나오면 왜 들어갔어?

→ ……어쩌다 보니 들어갔어
→ ……나도 들어가고 싶어서 매번 들어간 게 아닌데

미스 D: ……너가 스스로 들어간 게 아냐?

미스 D: 으으. ……모르겠어!

미스 D: 됐어! 암튼 왔으니까 얼른 출발하자! 더는 못 기다려!

→ 뭘 못 기다려?

미스 D: ‘고래 사냥’!

지휘관: (……고래 사냥…? 그게 뭐야?)

지휘관: (아니 잠깐만. 중요한 걸 잊어버릴 뻔했어!)

→ 비밀 조수는 대체 누구야?
미스 D: 너잖아! 오스타의 비밀 조수!

→ 왜 날 조수라고 부르는 거야?
미스 D: 오스타의 비밀 조수! 너 아냐?

지휘관: (…?!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건가?)

지휘관: (그동안 만났던,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은 전부 나에 대해 희미한 기억만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내 신상에 대해 명확하게 말한 건 이 아이뿐이야.)

지휘관: (미스 D……. 일단 적당히 맞춰 주자.)

→ 너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거야?
미스 D: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 왜 다들 나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미스 D: 다 바보들이니까! 너만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기억 못해!

미스 D: 질문은 이상! 더 궁금한 게 있으면 고래를 잡은 뒤에 다시 물어봐!

미스 D: 얼른 출발! 얼른 얼른 얼른 얼른!

눈 깜짝할 사이에 미스 D가 내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는 가녀린 체구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힘으로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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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나는 소매를 잡아끄는 소녀와 함께 아이리스의 거리를 걸었다.
악의는 없어 보였고, 일단은 맞춰 주자고 마음먹었으니 굳이 저항하지 않았다.

지휘관: (미스 D…. 대체 누군지, 뭘 하려는 건지 봐야겠어….)

미스 D: 고래 사냥이다! 고래를 잡으러 간다~!

미스 D: 이번엔 꼭 성공할 테다! 랄랄라~ 랄랄라~

방을 나선 뒤로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것 같은 미스 D는 콧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활보했다.
……무언가 이상하다.

지휘관: (나도 그렇고 미스 D도 여기서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야.)

지휘관: (주변에 순찰을 돌거나 일을 하는 아이들이 아직 있는데 아무도 우릴 신경 쓰지 않아.)

지휘관: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 왜 다들 우릴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야…?
미스 D: 들키면 널 몰래 데리고 나갈 수 없잖아! 바보야!

→ 무슨 위장이라도 한 거야…?
미스 D: 흐흥~ 고래를 잡으면 알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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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주 희의장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 도착했다.
미스 D는 여전히 흥겨운 발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지휘관: (……역시 물어봐야겠어.)

→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미스 D: 아발론의 문!

지휘관: 아발론의 문…… 뭐?

지휘관: 아이리스 성도에서 스캐퍼 플로까지 걸어가겠다고?!

미스 D: 맞아!

리슐리외: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가 아닐까요? 미스 D.

리슐리외: 걱정 마세요. 이동수단을 마련해 놓았으니까요.

예상치 못한 만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스 D: 그래! 열차! 엘리자베스의 열차를 타고 가자!

지휘관: ……‘열차’…?

지휘관: 리슐리외는 왜 여기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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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슐리외: …지휘관님. 이런 비상수단으로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리슐리외: 지휘관님의 행동은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회의장을 벗어나려면 미스 D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휘관: (조금 심상치 않은 분위기지만… 리슐리외라면 분명 중요한 일 때문에 그런 거겠지.)

지휘관: 성도에서 이렇게까지 할 정도라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밀이겠지?

리슐리외: 네.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리슐리외: 지휘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가지’를 노리는 존재가 아직 암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휘관: (……허어.)

리슐리외: 실은 로열과 아이리스는 비밀리에 연합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리슐리외: 이번 작전의 목표지는 우리 가지에 있지는 않지만….

리슐리외: 그렇다고 방치한다면 언젠가 우리 세계, 우리가 지키려는 모든 것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지휘관: 그래서 나도 참가해 달라고?

리슐리외: 네. 다만… 이곳은 안전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장소를 바꾼 다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리슐리외: 괜찮으시다면 스캐퍼 플로에 있는 아발론의 문까지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리슐리외: 그곳에서 엘리자베스 폐하가 다시 자세히 설명해 드릴 겁니다.

리슐리외: 이번 작전은 상층부와는 무관하지만, 매우 위험한 작전이니까….

리슐리외: 참가 여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들으신 후 결정하셔도 괜찮습니다.

리슐리외: 만약 참가하지 않겠다면 즉시 귀가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자세히 보니 리슐리외의 뒤에는 벨파스트와 셰필드가 서 있었다.

지휘관: (로열과 아이리스는 의견 차이가 더 커지기 전에 이미 모종의 협정을 맺은 것 같군.)

지휘관: (서로 간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뭐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지.)

리슐리외: 우선은 아이리스 쪽 참가 병력을 소개하겠습니다.

리슐리외가 신호하자 주변 그늘에서 아이리스 함선들이 나왔다.

알자스: ……하나된 아이리스의 기적, 인류가 감히 꿈꿀 수 없는 환상. 성좌 수호자 전함 알자스, 인사드립니다.

모가도르: 심판정 소속 심판관 모가도르야. …구헤헤헤♥

브렌누스: 아이리스 호교 기사단 소속 브렌누스. 우리의 집검자에게 인사를 바친다.

플뢰레: 아이리스의 호교 기사 플뢰레야! 잘 부탁해, 지휘관!

에페: 에, 에페야……. 잘 부탁해….

리슐리외: …여기까지가 아이리스가 이번 작전을 위해 준비한 함대입니다.

리슐리외: 보안상 현재 대중 앞에 드러나 있는 구성원들은 이번 작전에 참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휘관님께서 이들을 모르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리슐리외: 하지만 신뢰할 만한 전력임을 보증합니다.

지휘관: (성좌 수호자…. 엘리자베스의 근위 기사처럼 리슐리외를 밀착 경호하는 직책이었지.)

지휘관: (심판정 소속 재판관도 포함된 걸 보면 클레망소도 이 자리에 있어도 이상하진 않을 테지만….)

지휘관: (리슐리외에게 맡기고 뒤로 빠졌나 보군. 클레망소답네.)

리슐리외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벨파스트는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셰필드는 아무 말 말고 따라오라는 눈짓을 보냈다.

지휘관: (엘리자베스, 리슐리외, 클레망소가 모두 얽힌 비밀 작전.)

지휘관: (이 세 명이 이렇게까지 신중을 기하는 걸 보면 절대 보통 일은 아닐 거야.)

지휘관: (그리고 미스 D 역시 연관되어 있고.)

지휘관: (참가 여부는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 결정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아무튼 이 일 자체에 대해서는 더 캐 볼 필요가 있겠어.)

→ 안내해줘

내 대답을 들은 미스 D가 환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호화롭게 장식된 열차 한 대가 나타났다.

미스 D: 얼른 타! 아발론으로 가자! 고래 잡으러 가자~!



 ~02. 두 폐하

열차는 보이지 않는 선로를 따라 하늘을 달렸다.
구름 사이를 헤치며 순조롭게 목적지인 스캐퍼 플로에 도착했다.

로열 소속 스캐퍼 플로 정박지
경면해역 ‘카멜롯’. ‘아발론의 문’

 

열차 문을 열자 시야에 휘황찬란한 금빛이 쏟아졌다.
새벽인데도 아발론의 문은 대낮처럼 환했다.

퀸 엘리자베스: 아발론의 문에 어서 와. 하인.

퀸 엘리자베스: 어때? 이 ‘가지’조차 뛰어넘을 수 있는 인공 특이점이. 장관이지?

‘아발론의 문’. 로열이 장악한 경면해역에 있던 인공 특이점을 개수해서 만든 시설.
컴파일러와의 싸움이 끝난 후 엘리자베스가 보낸 자료로 그 존재는 파악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자료는 자료일 뿐. 실물을 보니 그야말로 박력이 전혀 달랐다.

퀸 엘리자베스(META): 후후. 원하던 반응이 나와서 기쁜가봐?

지휘관: 원하던 반응…?

퀸 엘리자베스(META): 그래. 너는 여기 처음 오는 거니까 이쪽의 ‘엘리자베스’가 자랑하려고 일부러 조명을 이렇게 밝게 해놓은 거야.

퀸 엘리자베스: 너,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무슨 말이라니. 사실이잖아?

퀸 엘리자베스: 어흠! ……난 그냥 이번 작전의 중대함을 강조하고 싶었을 뿐이야.

퀸 엘리자베스: 그보다 하인은 처음이겠구나.

퀸 엘리자베스: 얘는 META 퀸 엘리자베스야.

퀸 엘리자베스: 지금은 어느 조직을 이끌고 내 지원군으로서 이곳에 머물고 있어.

퀸 엘리자베스: 미스 D도, 네가 타고 온 열차도 모두 얘가 가지고 온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반가워… ‘지휘관’. 나름대로 지켜보고 있었어.

지휘관: 열차는 네가 운전한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맞아. ‘퀸즈 라이트호’는 나만이 운전할 수 있으니까. 너를 위해 내가 직접 움직인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아무튼 내 정체는 엘리자베스가 말한 대로야. 사실은 좀 더 제대로 된 자기소개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퀸 엘리자베스(META): 아무튼 지켜본 결과… 너도 미스 D도 비슷한 상황이네.

퀸 엘리자베스(META): 한마디로 말하면… ‘불완전’해.

지휘관: 불완전?

퀸 엘리자베스: 우선 앉아, 하인.

퀸 엘리자베스: 먼저 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에 참가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고 리슐리외가 말했었지?

퀸 엘리자베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건 로열의 최고 기밀이야. 만약 네가 참가하지 않겠다고 해도 지금 들은 건 상층부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비밀로 해줘.

지휘관: 알겠어.

퀸 엘리자베스: 좋아.

퀸 엘리자베스: 어흠…. 세이렌의 시스템에 따르면 β라고 이름 붙여진 이 실험장은 현재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어.

퀸 엘리자베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세이렌에게는 ‘안티 엑스’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어.

퀸 엘리자베스: ‘인공해상작전기구·자기진화형지능 X섬멸기구’, 통칭 ANTI-X는 말 그대로 X에 대항하기 위한 병기야.

퀸 엘리자베스: 하지만 정작 그 ‘X(엑스)’가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

퀸 엘리자베스: 그것이 실재하는 위협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안티 엑스도 잔불도 뾰족한 수를 가지고 있지 않아.

퀸 엘리자베스: 우리가 속한 실험장β, 그리고 그 밖의 무수한 실험장들은 모두 세이렌이 ‘엑스’에 대항하기 위한 실험을 하는 곳이야.

퀸 엘리자베스: 세이렌은 실험장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할 때에 거리낌없이 처분해 버릴 수도 있어.

퀸 엘리자베스: 그래서 이론적으로 보면 세이렌과 우리는 공통의 ‘엑스’라는 적에게 대항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세이렌은 없애야 할 적임에는 변함이 없어.

퀸 엘리자베스: 그런데 여기서 문제야. 만약 우리가 세이렌을 쓰러트린다고 해도, 그 다음엔?

퀸 엘리자베스: 여전히 ‘엑스’라는 적이 남아 있어. 그 대처법을 모르면 결국 멸망당하는 건 똑같지.

퀸 엘리자베스: 그래서 이번 작전을 생각해 낸 거야.

퀸 엘리자베스: 너도 어렴풋이 눈치는 챘겠지?

퀸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 META는 미스 D가 안티 엑스의 상위 개체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퀸 엘리자베스: 저 아이는 지금 ‘고래’라는 거대한 활공 의장을 잃은 상태야. 그래서인지 자원도 기억도 불완전한 것 같아.

퀸 엘리자베스: 만약 우리가 저 아이를 ‘완전’한 상태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퀸 엘리자베스: 안티 엑스가 가지고 있는 ‘엑스’에 대한 연구 자료, 교전 기록, 나아가 ‘엑스’의 침공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퀸 엘리자베스(META): 맞아. 나도 미스 D를 발견하고 나서 계속 사람을 파견해서 고래를 사냥하려고 했어.

퀸 엘리자베스(META):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지. …저번에는 거의 다 잡았었는데 말야.

퀸 엘리자베스(META): 그런데 며칠 전에 미스 D가 다시 고래의 흔적을 포착했기 때문에 이렇게 사냥을 준비하고 있는 거야.

퀸 엘리자베스: 미스 D는 자기가 간헐적으로 고래의 움직임을 감지 수 있다고 그랬어.

퀸 엘리자베스: 그럼 이제 네가 참가해줬으면 하는 이유를 설명할게. 

퀸 엘리자베스: 미스 D가 감지한 이번 고래가 향한 곳은 앞서 강력한 ‘공간 충격’ 현상이 발생한 곳이야.

퀸 엘리자베스: 우리는 고래가 공간 충격을 일으킨 어떤 존재에 이끌렸을 거라고 생각해.

퀸 엘리자베스: 공간 충격 현상은 보통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로 싸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부지리를 취하면 작전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질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공간 충격 현상은 보통 세이렌의 멘탈 큐브 실험 과정에서 자주 발생해.

퀸 엘리자베스(META): 네 유일무이한 큐브 적성이 있다면 이번 작전에 만일의 사태가 벌어져도 대응할 수 있을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그리고 미스 D도 네가 꼭 참가했으면 좋겠다고 야단을 떨고 있어.

퀸 엘리자베스(META): 외모도 성격도 어린애 그 자체지만… 엄연히 세이렌이니까 촉은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좋아.

퀸 엘리자베스: 너 저번에 ‘리얼리티 렌즈’에서 겪은 일을 공유할 때 나한테 조사를 부탁했던 정보들 몇 가지 있잖아.

퀸 엘리자베스: 공교롭게도 미스 D는 그 정보들에 모두 반응했어. 우리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문제지만.

퀸 엘리자베스: 지금 내가 아는 건 네가 제공한 정보가 잔불과 안티 엑스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는 것뿐이야.

퀸 엘리자베스: 참고로 안티 엑스와 함선이 최초로 탄생한 곳을 세이렌은 ‘세계α’라고 부르고 있어.

퀸 엘리자베스: 난 세계α에 대한 정보가 모든 의문을 푸는 열쇠라고 생각해.

퀸 엘리자베스(META): 안타깝지만 나는 세계α 출신이 아냐.

퀸 엘리자베스(META): 세계α 출신이라고 추정되는 애들은 모두 자기 ‘가지’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지.

퀸 엘리자베스(META): 어쩌면 기억이 일부 누락되어서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걸지도 모르고.

퀸 엘리자베스: 저번에 ‘문’을 통해서 데려온 리나운 META와 리펄스 META도 마찬가지야.

퀸 엘리자베스: 같은 일을 떠올리다가 서로 기억이 엇갈리는데도 내가 지적하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어.

퀸 엘리자베스: 이런 식이면 세계α에 대해 조사하려고 해도 힘들겠지.

퀸 엘리자베스: 하지만 너는 달라. 미스 D는 분명 너한테 뭔가를 털어놓으려고 하는 걸 거야.

퀸 엘리자베스: 만약 네가 함께 고래 사냥에 나서 준다면… 그동안 네가 해왔던 조사에도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게 분명해.

두 엘리자베스가 말해준 내용은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정보보다 충격적이었다.

지휘관: (엘리자베스가 말한 ‘세계α’…. 나보다 더 적임자가 있을 리가 없어….)

지휘관: (안쥬, 오스타, 그리고 은여우까지. 모두 세계α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지휘관: (나 역시 마찬가지야. 비록 기록 속 세계였지만, 그들은 분명히 나를 알고 있었어…….)

지휘관: (기억이 안 나는 건… 나 역시 기억이 누락돼서일까? ‘불완전’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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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레이어: “드디어 용골의 비밀을 알아차린 모양이구나.”
리플레이어: “과거 내가 남겼던 기록과의 정합성은 1% 미만이지만 이 파장은 틀림없이 ‘너’야.”
리플레이어: “무엇보다 이 기록을 성공적으로 재생하고 있다는 게 바로 ‘너’라는 증거지.”
리플레이어: “그래. 내가 마지막에 박은 쐐기가 잘 작동하는구나.”
리플레이어: “알고 있어. ‘네’가 언제,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리플레이어: “그녀들을 내버려두진 않을 거라는 사실을.”
리플레이어: “‘보험’을, ‘네’게 맡기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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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그때 그 안쥬처럼 보이는 리플레이어는… 그런 거였나…….)

퀸 엘리자베스: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니 내가 이렇게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지?

퀸 엘리자베스: 후후.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너를 의심하고 있었어.

퀸 엘리자베스: 그래서 내가 거리낌 없이 내게 정보를 공유할 때도 나는 가만히 있었지.

퀸 엘리자베스: 믿지 않았거든. 유니온 상층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아주르 레인의 지휘관이, 각 진영을 진정으로 결속시켜 안티 엑스와 잔불마저도 속수무책인 적과 맞서 싸울 의지가 있다는 걸.

퀸 엘리자베스: ……그런 중책을 맡을 수 있다는 걸.

퀸 엘리자베스: 하지만 남극 사태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퀸 엘리자베스: 유니온은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고, 상층부는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너는 행동하기로 결정했어.

퀸 엘리자베스: 독자적으로 각 진영을 아우르는 데 성공했고, 전세가 급변했을 때도 자신의 능력으로 함대를 지휘해 승리했지.

퀸 엘리자베스: 너는 유능할 뿐만 아니라 내 기대에 부응하는 진정한 지휘관이야.

퀸 엘리자베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정보를 너하고 공유하고,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네게 제공하기로 마음먹었어.

퀸 엘리자베스: 그러니까…… 이번 작전에 참가해 줄 수 있을까…?

→ 솔직히 위험한 작전이야……

퀸 엘리자베스: 그건 그래. 하지만 이런 귀중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

→ 좋아. 나도 끼겠어.
→ 도저히 내버려둘 수 없겠군

퀸 엘리자베스(META): 후후후. 말은 잘해.

퀸 엘리자베스: 전에 말했지? 내가 직접 눈여겨본 하인이라니까!

지휘관: 그런데 내가 갑자기 회의장에서 사라진 걸 알면 다들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퀸 엘리자베스: 그것도 물론 생각해 놨어.

퀸 엘리자베스: 물론 나도 이번 사냥을 고대하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가지 않는 게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거든.

퀸 엘리자베스(META): 우리가 향할 곳은 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에, ‘퀸즈 라이트호’의 개념 방어력을 안정시키기 위해선 현장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 명만 있는 게 좋아.

퀸 엘리자베스: 으으으……. 반박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납득한 건 아니니까!

퀸 엘리자베스: 아무튼 그래서 내가 남아서 리슐리외와 함께 적당히 얼버무릴 거야.

리슐리외: 네. “여왕 폐하의 깜짝 방문에 따른 연회와 일련의 협의로 인해 지휘관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라는 식으로 속이면 며칠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퀸 엘리자베스(META):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 내가 직접 가니까 이틀 정도면 충분해.

미스 D: 엘리자베스! 넌 오지 말라고 했잖아!

미스 D: META는 필요 없어! META는 필요 없어! META는 필요 없어!

퀸 엘리자베스(META): 그래서 병력은 이 ‘실험장β’ 사람들로 채웠잖아?

퀸 엘리자베스(META): 나까지 여기 남으면 퀸즈 라이트호는 누가 운전하지?

미스 D: 아. 하긴. 운전할 사람이 없으면 곤란해. ……그럼 됐어! 조심해!

퀸 엘리자베스(META): 네 네….

리슐리외: 아이리스 함대가 목숨을 걸고 지켜드릴 테니 안심하세요, 지휘관님.

미스 D: 응! META가 아닌 게 좋아. 도움이 돼!

지휘관: (이상하다. META화한 함선은 위험성도 있긴 하지만 그 힘 자체는 정상적인 함선을 크게 능가하니까 전력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지휘관: (미스 D는 왜 필요 없다고 하는 거지? ……혹시 이번 작전에 뭔가 불리한 요소라도 있나?)

지휘관: (…당장은 생각해 봤자 소용 없나.)

지휘관: 그럼 그곳까지는 이 퀸즈 라이트호를 타고 가는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그래도 되지만 이번에는 안전을 위해 여기 전송 장치를 사용할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만일의 경우 귀환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아발론의 문’을 통과하는 게 좋겠지.

퀸 엘리자베스(META): 실험장β에 대한 세이렌의 감시는 평범한 실험장을 훨씬 능가하지만 보수된 카멜롯과 내 힘이 있다면 ‘가지’를 넘나드는 건 쉬워.

퀸 엘리자베스(META): 더 궁금한 거 있어?

지휘관: 당장은 없어.

퀸 엘리자베스(META): 좋아. 그럼 나는 출발 준비를 할게.

퀸 엘리자베스: 그럼 나도 아이리스로 갈 준비를 해야겠어.

퀸 엘리자베스: ‘고래 사냥’, 조심히 다녀와!

엘리자베스는 벨파스트와 셰필드를 데리고 카멜롯을 떠났다.

지휘관: (이번 작전은 설비는 로열이 제공했지만 참가 함선은 모두 아이리스 소속이고, 로열은 메이드 한 명조차 동행시키지 않았어.)

지휘관: (로열은 통일 아이리스의 현주소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협력 관계를 맺으려는 건가? ……뭐 좋은 일이네.)

리슐리외: 존귀하신 아이리스의 이름으로, 어느 때나 맹세를 잊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휘관님을 지키십시오.

알자스: 지휘관을 지키는 검으로서 이 목숨 붙어 있는 한 어떤 위해에서도 지켜 내리라.

모가도르: 심판정의 요원으로서 성좌의 명을 다할게.

리슐리외: 아이리스의 가호가 있기를…….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리슐리외: 그리고 지휘관님. 이번 작전에서는 이 통신 시스템을 사용해 주십시오.

리슐리외: 심판정이 자체 개발한 최신 시스템입니다. 아주르 레인의 현행 버전보다 안정성과 보안성이 뛰어납니다.

리슐리외: 이번 아이리스 함대도 같은 통신 시스템을 사용하니까 평소대로 지휘하시면 됩니다.

지휘관: (심판정 기술도 들어간 건가. 이번에는 전투 중에 통신이 두절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지휘관: 고마워, 리슐리외.

리슐리외: 지휘관님께 아이리스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부디 조심하십시오.

축복의 말을 남기고 리슐리외도 카멜롯을 떠났다.
곧 아발론의 문. 거대한 금빛 고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휘관: 자, 고래를 잡으러 가 볼까…!



 ~03. 고래 사냥!
고리가 회전하면서 주변 풍경도 바뀌기 시작했다.
‘카멜롯’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은데…… 내부에서는 전혀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퀸 엘리자베스(META): ‘문’의 작동 방식은 두 가지야. 하나는 자체 동력으로 비행하는 것, 다른 하나는 좌표를 조정해서 전송하는 것.

퀸 엘리자베스(META): 지금 우리는 좌표 조정 방식을 쓰고 있어.

퀸 엘리자베스(META): 좌표가 바뀔 때 오는 충격은 3개의 고리로 구성된 외부 장벽이 모두 흡수하기 때문에 어떤 흔들림도 느끼지 못하는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정말 훌륭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

퀸 엘리자베스(META): 기초 설계도 탄탄하고, 확장성도 좋고, 거기에 쾌적하기까지.

퀸 엘리자베스(META): 참. 우리 동선이 추적당하는 걸 막기 위해 상당히 우회하면서 이동할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까지는 3시간 정도 더 걸릴 테니까, 그 사이에 다과회라도 하는 건 어때?

퀸 엘리자베스(META): 너희 엘리자베스의 메이드대가 떠나기 전에 전부 준비해 주고 갔거든.

퀸 엘리자베스(META): ……나는 여기 앉을 테니 너희도 편한 대로 즐겨.

 

잠시 후. 정원 잔디밭.

브렌누스: 홍차와 다과가 준비되었다. 맛도 봤다. 달콤하고 혀에 감기는 느낌이 아주 좋아. 물론 독은 없다.

플뢰레: 후우……. 로열의 디저트는 여전히 맛있네.

플뢰레: 디저트는 이렇게 잘 만드는데 왜 요리는…… 아니, 오늘은 됐다!

플뢰레: 너희도 빨리 와서 먹어봐! 갓 만든 거라 아주 좋아! 지휘관도 사양하지 말고!

알자스: …알자스. 아이스티…가 아니라 냉각제 섭취 중.

지휘관: 냉각제……?

지휘관: 흐음. 가스코뉴처럼 모듈 냉각이 필요한 타입인가.

알자스: 으, 응…! 가스코뉴, 강력한 지원 기체로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아군!

에페: 하아아아아아…….

지휘관: 왜 그래, 에페? 과자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에페: 아, 아니! 에페는 접시를 깨트릴까봐…. 지금까지 많이 그랬거든……. 하아아아….

지휘관: 에페는 힘 조절이 힘든 타입인가 보네.

→ 마음껏 깨먹어도 괜찮아!
에페: 지, 지휘관……. 역시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지휘관: 엘리자베스는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미스 D: 응! 엘리자베스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 내가 먹여 줄까…?
에페: 흐, 흐에에에!? 지, 지휘관 그러면 안 돼…!

플뢰레: 그럼 나한테 해줘~ 지휘관, 아~

알자스: 아, 알자스도…… 머머머먹여줬으면……!

미스 D: 나도 먹을래! 나도 먹여줘!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일행은 느긋하게 다과회를 즐겼다.

지휘관: 그런데 모가도르는? 아까부터 안 보이는데….

브렌누스: …내가 근거리에서 경계하듯이, 모가도르는 지금 원거리에서 경계하고 있다.,

브렌누스: 저기, 성의 탑 위에.

브렌누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확실히 탑 위에 희미하게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지휘관: 지금은 안전할 텐데…. 오라고 해서 같이 먹을까?

브렌누스: 저건 직업 버릇 같은 거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브렌누스: 그녀 몫의 다과만 조금 남겨 두면 돼.

지휘관: 그래,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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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과회를 통해서 아이리스 동료들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
다 같이 뒷정리를 하던 도중 방금 전까지 놀다가 지쳐 잔디밭에 누워 있던 미스 D가 갑자기 펄쩍 뛰어올랐다.

미스 D: 고래! 고래 냄새다!

미스 D: 가까워 가까워 가까워!

미스 D: 엘리자베스! 얼른 열차 꺼내! 고래 잡으러 가자!

알자스: ‘고래’ 사냥이 본 작전의 목표임을 인식. 하지만 알자스, 고래의 모습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어….

브렌누스: 아아. ……나도 전혀 모르겠다.

미스 D: 음. 이상해. 고래가 안 나와. 몸을 숨긴 건가?!

미스 D: 어떻게 고래가 그 장비를……. 자동 방어 시스템의 호출 제안을 초과했어!

미스 D: 야! 고래! 빨리 나와!

미스 D: 야~~~! 나와 나와 나와!

잔뜩 화가 난 미스 D는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향해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갑자기 정말로 ‘고래’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아발론의 문’ 고리 바깥쪽에서 미미한 파동이 일어났다.
곧이어 가장 바깥쪽에 있는 고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고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플뢰레: 저게… 우리가 잡을 고래야?

에페: 크다…….

브렌누스: 거리와 크기로 미루어 볼 때… 신장은 대략 1,100에서 1,300미터 사이겠군.

브렌누스: 정말로 거대해…….

미스 D: 응! 저게 내 고래야! 엘리자베스! 빨리 잡으러 가자!

퀸 엘리자베스(META): ………….

지휘관: 뭔가 이상해. 저 고래는 미스 D의 목소리를 듣고 나타난 거야?

지휘관: 그렇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모가도르: 고래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예감이 좋지 않아…….

지휘관: 그게 무슨――엘리자베스!

퀸 엘리자베스(META): ‘제1 고리’, 능동 방어 개시!

 

카멜롯의 방벽에서 눈부신 금빛이 솟구쳤다. 고래가 내뿜은 에너지가 장벽에 부딪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지휘관: 우릴 공격했어…!

미스 D: 마, 말도 안 돼! 먼저 공격한 것도 아닌데 왜 자동 방어 시스템이 작동하지?

미스 D: 애초에 고래가 왜 날 공격하는 거야!

미스 D: 어째서…… 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공격이 막힌 것을 알았는지 고래는 살짝 머리를 젓더니, 미스 D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공에 나타난 파문 속으로 사라졌다.

미스 D: 고래…… 내 고래…… 히에에에엥…대체 왜…….

모가도르: 기습이라도 하려던 거 같았어.

퀸 엘리자베스(META): 그럴지도 몰라. 저번에 헌터가 팀을 이끌고 사냥에 나섰다가 실패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퀸 엘리자베스(META): 몰아붙인 순간 갑자기 고래가 ‘지능’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병장을 사용했거든….

미스 D: 거짓말! 말도 안 돼!

미스 D: 고래는 내 말만 들어! 나만 조종할 수 있어!

퀸 엘리자베스(META): 그래 그래. 뭐 직접 보면 알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지금은 고래가 어디로 숨었는지, 어떻게 끌어낼지 생각하는 데에 집중해줘.



 ~04. 개념 고정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고래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가도르: 기습에 실패했다는 걸 깨닫고 숨은 걸까~?

플뢰레: 그럼 일부러 방어를 약하게 해서 고래를 다시 유인하는 건 어때?

알자스: 에엣…?! 이, 일리는 있지만 역시 너무 위험한 게 아닐까…?

브렌누스: 그래.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게 좋다. 고래의 전력은 아직 미지수. 약점을 보이면 단번에 뚫릴 가능성이 있어.

모가도르: 그리고 저쪽이 덤비기만을 기다리는 건 너무 수동적이야.

모가도르: 고래의 목적은 안 잡히는 거지 우리를 이기려는 게 아니잖아? 이대로 계속 숨어버릴 수도 있어….

에페: 그, 그럼 어떡해…….

퀸 엘리자베스(META): 음…. 고래가 갑자기 숨은 건 저번에 그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지휘관: 여기 오기 전에 말했던 ‘공간 충격’ 현상을 말하는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응. 애초에 이번 작전은 고래가 공간 충격으로 인한 파동에 이끌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서 시작된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다만… 공간 충격이 내 생각보다 훨씬 화려했던 모양이야.

퀸 엘리자베스(META): 봐봐. 공간 충격의 정중앙은 바로 여기야. 고래도 여기 있고.

퀸 엘리자베스(META):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는 건… 공간 충격의 강도가 너무 강해서 여기 있어야 할 세이렌 실험장 자체를 현실 세계에서 지워버린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현실 세계와의 연결이 끊겨 소멸한 개념은 말려져 접히면서 고차원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형성해.

퀸 엘리자베스(META): 가령 여기도 고래가 헤엄치는 바다였지만, ‘바다’가 없어졌기 때문에 고래도 바다의 개념과 함께 사라진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한번 이렇게 고차원으로 도망치면 외부에서 어떻게 간섭하기가 어려워. …내 실책이야.

미스 D: 뭐야. 물리적 기반이 없다면 다시 만들어내면 되잖아!

미스 D: 개념 고정으로 실체화!

미스 D: 만약 또 고래가 도망치면 다음에는 언제 만날지 몰라!

퀸 엘리자베스(META): ……그래. 이번에도 고차원으로 도망치면 답이 없어.

퀸 엘리자베스(META): 이대로면 지금 고래를 조종하고 있는 누군가가 정말로 고래를 완전히 손아귀에 넣을지도 몰라.

퀸 엘리자베스(META): 어쩌면 이번이 정말 마지막 사냥이 될 수도 있겠어.

미스 D: 말했잖아! 고래는 나만 조종할 수 있어! 그렇다면 그런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그 누군가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면?

퀸 엘리자베스(META): 지금 너는 ‘불완전’하다는 걸 잊지 마. 그 결손 부분은 지금 어디 있지? 만약 저쪽도 너의 일부였다면?

미스 D: 아.

미스 D: 아아아아아아아!!

미스 D: 그랬지 그랬지 그랬지! 그럴 가능성도 있어!

미스 D: 나는 바보야! 이러다 정말로 고래를 빼앗겨 버려!

퀸 엘리자베스(META): 하아……. 알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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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스: ……지휘관. 두 사람은 계속 다투다가 결국 합의를 본 것 같아….

알자스: 그런데…… 알자스는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지휘관: 괜찮아. 나도 못 알아들었으니까…. 혹시 이해한 사람 있어?

플뢰레: 플뢰레도 하나도 모르겠어~!

에페: 에, 에페도…….

브렌누스: 나도다. 집검자.

모가도르: 조금 알 것 같기는 한데…… 으으응. 확신이 안 가네…….

퀸 엘리자베스(META): 설명하자면 복잡하니까 원리는 몰라도 돼.

퀸 엘리자베스(META): 아무튼 고래를 유인할 방법을 생각해 냈어.

퀸 엘리자베스(META): 기존에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방법이긴 하지만.

퀸 엘리자베스(META): 왜냐면 이 방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공간 충격을 유발한 ‘강적’과 싸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야.

퀸 엘리자베스(META):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 적이 고래와 싸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부지리를 취하려고 했어.

퀸 엘리자베스(META): 하지만 둘이 적대하는 것 같지도 않고, 어쩌면 양쪽 다 상대해야 될지도 몰라.

퀸 엘리자베스(META):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너희는 카멜롯을 써서 원래 ‘가지’로 돌아가. 뒷일은 나하고 미스 D가 어떻게든 할게.

미스 D: 조수는 가면 안 돼!

퀸 엘리자베스(META): 왜?

미스 D: 몰라! 아무튼 가면 안 돼!

퀸 엘리자베스(META): …지금까진 계속 봐줬지만 더 이상은 네 멋대로 굴면 안 돼.

퀸 엘리자베스(META): 이번 작전은 예측이 어려워. 명확한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무조건 지휘관을 돌려보낼 거야.

미스 D: 으아앙! 어쨌든 안 돼><!

미스 D: 조수도 뭐라고 해줘! 내가 지켜줄 테니까 돌아가지 마~!

퀸 엘리자베스(META): 적당히 해! 저쪽의 나한테 모두 무사히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고!

미스 D: 으아아아앙――!

→ 일단 내 말도 좀 들어 봐
→ 둘 다 진정해……

퀸 엘리자베스(META): …그래. 네 의견을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래서 어때?

미스 D: 조수우~!ㅠㅠ

지휘관: 지금은 이런 일로 다투고 있을 때가 아냐.

지휘관: 출발하기 전에 이번 작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었어.

지휘관: 만약 정말로 안전을 고려했다면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작전이야.

지휘관: 그리고 이번엔 나도 개인적으로 조사하고 싶은 게 있고.

지휘관: 이런 귀중한 기회를 눈앞에서 놓칠 수는 없지.

지휘관: 그리고 나는 전장의 지휘관으로서 모두와 함께 수많은 싸움에 참가했고 몇 번이고 위기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모두 극복해 왔어.

지휘관: …나를 지켜주는 너희를 믿어. 그러니 내 각오를 이해해줘.

미스 D: 응응! 내가 지켜줄게, 비밀 조수!

알자스: 지휘관이 그렇게 말한다면… 알자스, 어떤 적이든 맞서 싸울 각오가 되어 있어.

모가도르: 에헤헤~ 누구도 지휘관에게는 손 못 대게 할 거야♥

지휘관: (그래. 여기에는 동료들이 있어.)

지휘관: (그리고 헬레나 META도 있지…… 지금은 보이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되지만.)

지휘관: (하지만 내가 회의장을 떠났을 때와 카멜롯이 기동했을 때 그녀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어.)

지휘관: (분명 암암리에 무슨 조치를 취해 놨을 거야.)

지휘관: (뭐, 지금은 말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퀸 엘리자베스(META): 하아. 넌 그 녀석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런 말이 쉽게 나오는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그렇게나 큰 공간 충격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는 나도 상대하고 싶지 않아.

알자스: …그 정도야?

퀸 엘리자베스(META): 하긴. 너희는 내 힘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구나.

모가도르: 우리는 지휘관을 믿어. 그리고 지휘관은 너를 믿고 있고….

퀸 엘리자베스(META): ……그래, 알겠어. 그럼 철수는 없었던 걸로.

퀸 엘리자베스(META): 그럼 이제 세부 사항을 논의해야 하는데….

퀸 엘리자베스(META): 실험장β에서는 개념 닻인가 뭔가를 사용했었지. 그럼 우리는….

미스 D: 엘리자베스! 차량! 열차 차량 하나면 충분해!

퀸 엘리자베스(META): 하아. 역시 그래야 하나.

미스 D: 당연하지! 네 열차는 강도도 좋고 밀도도 높아! 그리고 원래부터 독립된 공간이라 ‘기반’으로 삼기엔 딱 좋아!

퀸 엘리자베스(META): 으으……내 열차… 어떻게 준비한 건데…….

지휘관: (저렇게 아까워하는 걸 보면 만드는 데 천문학적인 액수라도 들었나 봐.)

미스 D: 고래를 잡고 나면 다시 천천히 ‘차량’으로 되돌리면 돼!

퀸 엘리자베스(META): …………………………………………알았어.

퀸 엘리자베스(META): 그럼 구체적인 개념은 뭘로 할까?

퀸 엘리자베스(META): ‘다리’는 어때?

퀸 엘리자베스(META): 이미지상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연결되어 있는 거니까 고래가 숨은 곳으로 가려는 우리 의도하고도 통하는 거 같은데.

지휘관: (개념을 고르는 건가….)

지휘관: 일단 한번 정리해 볼게.

지휘관: 고래는 고차원적으로 접힌 공간에 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있는 우리는 간섭할 수가 없어.

지휘관: 그래서 이 접힌 부분을 현실 세계로 끌어와서 다시 펼 필요가 있어.

지휘관: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물질을 대량으로 투입해서 기반으로 삼고, 그 기반에 인위적으로 개념을 부여해.

지휘관: 그런 다음 개념 고정을 통해 기반을 고차원 공간과 연결해서 기반에 부착한 다음, 현실 세계에서 다시 펼치는 거야.

지휘관: 그러면 고래가 숨은 곳에 우리도 들어가서 탐색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지. 맞아?

퀸 엘리자베스(META): 흐응…. 이해력이 꽤 좋네?

퀸 엘리자베스(META): 뭐 거의 맞았어.

퀸 엘리자베스(META): 그럼 지휘관은 무슨 개념이 좋을 거 같아? 고래가 있는 공간에 이어질 만한 뭐 좋은 거 없어?

지휘관: ‘문’은 어때?

지휘관: 문 역시 다른 쪽으로 가는 걸 상징하고, 개념적으로도 고차원 공간과 얽혀 있는 듯한 느낌이거든.

지휘관: (몇 번이고 환상을 통과할 때 봤었던 것도 ‘문’이었으니까…….)

퀸 엘리자베스(META): 문도 괜찮네. 그런 것도 알고 있을 줄이야.

미스 D: 아냐 아냐 아냐! 문이랑 다리 둘 다 아냐!

미스 D: ‘죽음’이다! ‘죽음’만이 고래를 잡을 수 있어!

지휘관: (죽음? 역시 미스 D의 ‘D’는 그런 뜻이었나?)

지휘관: (타로 카드의 ‘데스’…. 저 아이와 고래와 아비터 데스 사이에는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퀸 엘리자베스(META): 그렇게 막 내뱉은 걸로 되겠어?

지휘관: 아니, 믿어. 조금 무섭긴 하지만 고래에 대해서는 미스 D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알자스: 알자스… 지휘관이 설명해줬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브렌누스: 우리가 평소에 접했던 것과 지금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의 간극이 너무 크다. 도저히 우리가 끼어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모가도르: 우리 임무는 지휘관을 지키는 거니까 그것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

퀸 엘리자베스(META): 마지막으로 개념을 고정할 인선을 정해야 하는데….

퀸 엘리자베스(META): 열차 조종도 내가 했으니까 역시 내 ‘죽음’을 바탕으로 고정을…….

미스 D: META는 안 돼!

지휘관: 그럼 내가…….

미스 D: 조수도 안 돼! 개념이 결핍된 존재는 개념에서 떨어져!

미스 D: 이번에 온 사람들 중에 골라야 돼! 그게 최고야!

미스 D: …알자스! 네가 해!

알자스: 어? 아, 알자스가……?

알자스: 하지만 알자스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퀸 엘리자베스(META): 괜찮아, 간단하니까. 내가 가르쳐 줄게.

퀸 엘리자베스(META): 우선은 마음을 편하게 먹어.

알자스: 알자스, 진정해. 알자스, 긴장하지 마….

알자스: 알자스, 감정 모듈 가동으로 인해 텐션 하락 속도가 예상보다….

플뢰레: 알자스, 대기 모드!

알자스: 핫! 알자스, 명령 확인! 대기 모드로 이행――

퀸 엘리자베스(META): ………우와.

퀸 엘리자베스(META): 어흠. 그거면 됐어. 이제 ‘죽음’이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려 봐.

퀸 엘리자베스(META): 누가 죽는 걸 상상하라는 게 아니라, 죽음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장소로 구현되면 어떤 곳이 될 것인가를 상상해.

알자스: ‘죽음’이라는 개념, 장소, 구현, 상상…….

퀸 엘리자베스(META): 좋아, 그대로 생각해. 구체적일수록 좋아.

퀸 엘리자베스(META): 그리고 모두 열차에 타. 이제 출발해야 되니까.



 ~05. 죽음의 해석

 

‘카멜롯’의 위장을 마치고 우리는 열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행선지는 아득한 별의 바다가 아니다. 다만 허무였다.

퀸 엘리자베스(META): 거의 다 왔어. 알자스, 준비됐어?

알자스: 아……아마도! 알자스, 거의 준비 완료――

퀸 엘리자베스(META): 괜찮아. 긴장하지 말고, 이 다음은 나한테 맡겨.

순간 시간이 멈췄다.
열차 내 모든 것이 멈췄다. 소리도 멎었다.
‘엘리자베스’만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알자스를 향해 나아갈 때마다 희미하게 뒤에 잔상이 남았다.
마침내 알자스 앞에 다다른 그녀는, 그대로 알자스를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남긴 잔상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알자스를 뚫고 지나가 다시 엘리자베스의 몸에 녹아들었다.

퀸 엘리자베스(META): ――‘검시’는 끝났어.

퀸 엘리자베스(META): 수고했어. 이제 그만 상상해도 돼.

알자스: …벌써 끝났어…? 알자스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퀸 엘리자베스(META): ……아니, 잘했어.

퀸 엘리자베스(META): 설마 ‘죽음’을 그렇게나 잘 이해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플뢰레: 으아아아 호러다 호러…!

플뢰레: 엘리자베스가 순식간에 알자스의 등을 뚫고 지나갔어… 마치 유령처럼…!

에페: 에, 에페는 아무것도 못 봤어… 못 봤어…….

브렌누스: 무서울 정도로 빠른 이동, 나조차도 놓쳐 버렸어.

모가도르: ……흐음.

미스 D: 하하하, 대단하지!

미스 D: 고래만 잡으면 엘리자베스보다 내가 더 대단해!

지휘관: (어? 방금 순간은 나하고 미스 D만 본 건가…?)

지휘관: (잔상을 남기면서 상대를 뚫고 지나간다…. 지중해에서 하이어로팬트도 비슷한 행동을 했었어.)

지휘관: (방금 기술의 이름이 ‘검시’인가…? 나중에 헬레나한테 물어봐야지.)

플뢰레: 근데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플뢰레: 끝났다고는 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에페: 응…. 아무것도 없어…….

퀸 엘리자베스(META): 서두르지 마. 아직 내가 조작을 시작하지 않아서 그래.

퀸 엘리자베스(META): 음… 이런 아름다운 해석이라면 내 차량 한 대 정도는 기반으로 삼아도 좋을 거 같네….

퀸 엘리자베스(META): 개념 전환. 7호차, ‘죽음’의 기반이 되어 보이지 않는 것을 고정시키고 그 모습을 구현하라!



 ~06. 마르티리움

 

허무 속에서 빛이 폭발했다.
금빛 아치, 순백의 가도.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둥근 고리 모양의 도시가 허무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에페: ……예쁘다…….

브렌누스: 손쉽게 도시를 만들었어.

브렌누스: 여기는 경면해역도 아니고, 대형 투영 장치도 없는데…….

모가도르: 흐응…. 개념이 고정되는 순간은 모가도르도 처음 봤어~

모가도르: 베아른의 개념 닻도 조작은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

플뢰레: 베아른의… ‘개념 닻’?

모가도르: 응. 공간 안정화를 위해 성당 시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술이야♪

모가도르: 뭐, 이 도시는 ‘죽음’의 개념을 담고 있고, ‘개념 닻’이 보강하는 개념은 여러 가지가 있어.

모가도르: 이번에 베아른이 같이 왔으면 엄청 흥분했을 텐데… 아쉽네에….

지휘관: (‘죽음’의 개념을 구현한 곳이 이렇게나 빛나고 신성한 곳이라니….)

지휘관: (알자스 마음속의 죽음에 대한 해석은 이런 느낌인가…?)

플뢰레: 알자스. 이 도시 이름 같은 거 있어?

알자스: 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브렌누스: 아이리스의 축복이 임한 백금색 성. 마치 천국과도 같아.

브렌누스: 생각해 본 적 없으면 ‘마르티리움’이라고 하는 건 어떤가…?

알자스: ‘마르티리움’…. 성당이라는 뜻이지? 좋아!

퀸 엘리자베스(META): 좋은 이름이고, 좋은 습관이야.

퀸 엘리자베스(META): 별로 의식한 적은 없겠지만 자신의 개념으로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건 올바른 일이야.

퀸 엘리자베스(META): 만약 다른 사람들도 이 개념을 받아들였다면, 너도……. 아니, 됐어.

퀸 엘리자베스(META): 조금 문제가 있네.

퀸 엘리자베스(META): 개념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았어. 고래가 있는 공간이 현실 세계에 완전히 펼쳐지지 않았어.

퀸 엘리자베스(META): 공간 충격 현상이 강했던 만큼 접힌 공간의 정보량도 상당해…. 차량 한 대를 통째로 사용했는데 이 정도밖에 끌어낼 수 없다니….

 

의문의 소리: ――――!!

굉음과 함께 마르티리움 상공에 고래가 나타났다.

미스 D: 고래다! 내 고래!!

퀸 엘리자베스(META): 이 정도로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나 보네?

미스 D: 엘리자베스! 빨리 열차를 꺼내! 내가 고래를 잡을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조급해 하지 마. 마르티리움은 경면해역 같은 독립된 공간이라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어. 먼저 도시 안으로 들어가야만 상공으로 갈 수 있어.

미스 D: 그럼 빨리 도시로 가! 열차 꺼내! 빨리!

퀸 엘리자베스(META): 진짜 시끄럽네……. 그래 그래, 지금――

퀸 엘리자베스(META): ……잠깐만. 또 누가 있어.

지휘관: 누구……?

퀸 엘리자베스(META): 두 그룹이야. 한쪽은… 뭐, 따로 숨지도 않았네. META 위치타하고 킴벌리야.

퀸 엘리자베스(META): …구성원을 보니 ‘잔불’이네.

지휘관: 설마 여기서 잔불을 만날 줄이야….

지휘관: (엔터프라이즈, 히류…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퀸 엘리자베스(META): 다른 한쪽은 잘 위장하고 있어. 이 거리에서는 파악할 수 없어.

퀸 엘리자베스(META): 고래의 존재는 우리밖에 모를 테니까…. 저들은 아마 공간 충격 현상을 조사하러 왔겠지.

퀸 엘리자베스(META): ……휴. 오늘은 정말 소란스럽네….

미스 D: 지금까진 몰랐다고 해도 지금은 위를 보면 다 알잖아!

미스 D: 얼른 열차 출발해! 뺏기면 안 돼!

퀸 엘리자베스(META): 조급해 하지 말라고 했지? 애초에 저쪽은 우리를 눈치채지 못했어. 지금은 먼저 움직이는 쪽이 지는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일단 너희는 열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어. 내가 먼저 상황을 보고 올게.

퀸 엘리자베스(META): ‘퀸즈 라이트호’의 방어력은 누구도 당해내지 못해. 누가 습격하더라도 너희가 열차 안에 있는 동안은 안전할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지휘관 너 애들 보는 것도 잘한다고 들었어. 미스 D는 너한테 맡길게. 뛰쳐나가지 않게 잘 감시해!

지휘관: 응. 알았어.

미스 D: 내가 조수를 놔두고 뛰쳐나갈 거 같아!? 빨리 가! 그리고 빨리 돌아와!



 ~07. 잔불의 논의

 

얼마 전.

위치타(META): 킴벌리. ‘공간 충격’이 발생한 좌표가 여기야?

킴벌리(META): 좀 더 가야 해요. 이론상으로는 대량의 잔해들이 레이더에 포착되어야 하는데….

킴벌리(META): 아무것도 없네요.

위치타(META): 내 쪽도 그래. 여기 있어야 할 ‘가지’ 자체가 소멸됐어.

위치타(META): 그렇담 결론은 하나군.

위치타(META): 너무도 격렬한 충격으로 인해 공간 안정성이 상실되었다.

위치타(META): 그래서 실험장을 포함한 가지 자체의 현실 세계의 기반이 소멸되면서 고차원으로 접혀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외부에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킴벌리(META): ……간단한 일입니다. 다시 한 번 공간 충격을 일으켜 통로를 만들면 됩니다.

위치타(META): 나도 같은 생각이야. 마침 이번에 출격할 때 자재를 좀 가져왔지.

위치타(META): 킴벌리, 안내해줘. 이따가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여줄 테니까.

잔불 일행은 계획을 준비하던 도중 저 멀리서 마르티리움이 내뿜은 빛을 목격했다.

킴벌리(META): ……위치타.

위치타(META): 아아. 봤어.

위치타(META): 저 도시는…… 과연. 개념 고정으로 기반을 다시 만들어서 접힌 공간을 펼치는 방법도 있었구나.

킴벌리(META): 정작 장본인은 정체를 감추고 있어요.

위치타(META): 나도 못 찼겠군. 어디 잘 숨은 모양이야.

위치타(META): 그보다 도시 상공에 떠다니는 ‘고래’ 말야.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

킴벌리(META): ……아비터 XIII, 데스….

킴벌리(META): 꽤 까다로운 상대가 왔네요. 놈의 목표도 우리하고 같을까요?

위치타(META): 아무튼 서두르자. 녀석이 먼저 표적을 해치우면 우린 헛수고한 게 돼.

킴벌리(META): 이 도시를 만든 사람은 그냥 놔둬도 괜찮나요?

위치타(META): 내버려둬. 어차피 다시 만날 거야.

위치타(META): 말이 통하면 좋은 거고, 아니면 날려버리면 돼.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어!



 ~08. 제삼자
같은 시각. 어딘가.

하타카제(META): 이것 참. 오자마자 좋은 걸 보게 됐군.

하타카제(META): 개념 고정이라니 꽤 똑똑하구만. 누구 짓인지 자네는 짐작이 가나?

아비터 데빌XV: 아니. 완벽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어.

아비터 데빌XV: 하나 확실하게 아는 건――‘실험장β’와 관련이 있다는 거야.

하타카제(META): 실험장β…. 파먀티가 호되게 당한 가지인가……. 그렇군.

하타카제(META):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지?

아비터 데빌XV: 아비터의 비밀이야.

하타카제(META): ……그럼 고래는? 저 날아다니는 고래는 대체 뭐지?

아비터 데빌XV: …어머, 몰라?

하타카제(META): 나는 천신만고 끝에 ‘그곳’에서 겨우 탈출했네. 지금 할 수 있는 건 ‘염탐’밖에 없어.

하타카제(META):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일세.

아비터 데빌XV: 아하하. 그럼 알려줄게. 저 고래는 좋은 거야.

아비터 데빌XV: 참 다행이야. 저것만 손에 넣으면 큰 돈벌이가 되겠어.

하타카제(META): 하아……. 그래서 알려줄 생각은 있는 겐가?

아비터 데빌XV: 네가 모른다는데 굳이 알려줄 이유는 없지.

아비터 데빌XV: 하지만 만약 저걸 ‘그 녀석’한테 돌려주고 강림의 제물로 쓸 수 있다면….

하타카제(META): 뭐라고……?! 그럼 반드시 손에 넣어야지!

하타카제(META):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저 성이 담고 있는 개념을 조사해 봐야겠어. 무턱대고 돌입하면 위험해.

아비터 데빌XV: 개념이라면 이미 알고 있어.

아비터 데빌XV: ‘죽음’이야. 뻔하잖아?



 ~09. 다가오는 위협
퀸즈 라이트호.
5호차.
현재.

 

엘리자베스가 열차에서 내린 지 15분이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열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미스 D는 한동안 낑낑대다가 지금은 얌전히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하늘의 마르티리움을 바라봤다.

브렌누스: 마르티리움…. 상상을 바탕으로 구현한 도시….

브렌누스: 설마 이런 기적을 목도하게 될 줄이야….

플뢰레: 우리 사진 찍을까?

플뢰레: 으음… 카메라를 어디다 뒀었지….

알자스: 기록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 알자스가 이미 로그에 다 정리했으니까. 나중에 보고서로 정리해서 리슐리외 님께 드릴――

플뢰레: 그런 게 아니라 기념 사진 말하는 거야!

알자스: ……알자스, 그런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한데….

플뢰레: 모두한테 자랑할 수 있잖아? 그치, 지휘관?

플뢰레: 여기 와본 건 우리들 뿐이고, 그리고 얘길 들어보면 여기는 볼일이 다 끝나면 사라지는 거 같으니까….

알자스: 응……. 알자스, 사고 모듈 회전율이 급속도로 상승 중…….

에페: 프, 플뢰레. 알자스를 너무 놀리지 마….

플뢰레: 난 진심인데? 에페는 테메하고 피이가 부러워하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

에페: 에페는 돌아가면 그냥 혼자 있고 싶어…….

플뢰레: 정말… 어쩔 수 없다니까~

미스 D: (오들오들 덜덜덜)

플뢰레: 미스 D? 왜 그래?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미스 D는 갑자기 벌벌 떨기 시작했다.

미스 D: 추워……. 갑자기 너무 추워! 너희는 안 추워? 추워 추워 추워!

플뢰레: ……춥다고? 딱히?

알자스: 알자스도 기체 온도는 정상인데….

에페: 저, 저기…. 담요 갖다 줄까…?

미스 D: 아냐…… 침입자야! 누가 열차에 탑승했어!

미스 D: 이 추위는 침입자가 가져온 거야! 추워 추워 추워!

모가도르: 킁킁……. 응? 확실히 이상한 냄새가 섞여 있어….

모가도르: 창백하고, 서늘하고, 음울한 죽음의 냄새…….

알자스: 알자스의 후각 모듈은 아무것도 포착하지 못했어…! 혹시 모듈이 망가진 건가?!

모가도르: 음… 냄새라기 보단 낌새를 말하는 거야…. 모가도르는 심판정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니까 이런 거에 민감해서 그런 걸지도…?

지휘관: 엘리자베스가 떠나기 전에 열차 안은 무조건 안전하다고 그랬었는데…….

지휘관: 미스 D도 그렇고 모가도르도 뭔가를 감지했다면 기분 탓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

지휘관: 일단 다들 진정해. 엘리자베스한테 연락해서 대책을 세워 보자.

미스 D: 응! 조수가 하자는 대로 할게!

----

퀸 엘리자베스(META): 두 번이나 확인했지만 침입 흔적 같은 건 없었어.

미스 D: 침입당했어!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미스 D: 이미 차량 하나를 통과했어! 차량 장벽도 소용없었어! 으아아아!

퀸 엘리자베스(META): 네 직감이 그렇다면 믿을게.

퀸 엘리자베스(META): 다만 문제는 흔적 하나 없이 어떻게 방어를 뚫고 침입했냐는 건데….

퀸 엘리자베스(META): …아무튼 모두를 한 차량에 모으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퀸 엘리자베스(META): 참고로 이곳에 있다는 두 그룹 중 다른 쪽도 누군지 알아냈어. 총 두 명이고, 하나는 아비터 데빌XV야. 뭐, 너희라면 잘 알고 있지?

퀸 엘리자베스(META): 다른 쪽은 아무래도 META 같아. 정확히 누군지까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퀸 엘리자베스(META): 아무튼 잘 버티고 있어. 이따 봐.

 

지휘관: (데빌도 왔다고…? 게다가 정체불명의 META까지…….)

지휘관: (아니, 지금은 방어 태세를 갖추는 게 우선이야.)

모가도르: 응? 지휘관~? 방어 준비 할까?

지휘관: 모가도르. 너는 침입자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거야?

모가도르: 당연하지♥

모가도르는 앞 차량의 연걸부를 가리켰다.

모가도르: 에헤헤♥ 모가도르랑 알자스, 브렌누스가 앞칸으로 가서 요격하고, 지휘관하고 다른 사람들은 지금 칸에 남아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지휘관: (전력이 분산되긴 하지만 그 편이 퇴로를 확보하기에도 좋을 것 같군.)

지휘관: 그럼 그렇게 하자. 다들 조심해.



 ~10. 가짜
알자스, 모가도르, 브렌누스는 통신 상황을 확인하며 다가오는 위협에 맞설 준비를 했다.
방금 전까지는 어렴풋하게만 느껴졌던 기척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모가도르: 지휘관~ 목표가 3호차에 진입했어. …여기서도 모습이 보여.

모가도르: 음… 검은 안개를 두른 창백한 그림자? 같은데….

모가도르: 그런데 압박감이 엄청나… 미스 D가 왜 무서워했는지도 알겠어….

모가도르: 모가도르도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브렌누스: 고요하게, 그러나 더없이 요란하게 다가오는 죽음의 소리….

알자스: 알자스, 감정 모듈 가동을 일시 중단! 이러면 덜 무서워질 거야…!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5호차의 상황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무언의 압박감이 문틈으로 스며들어와 마치 실체를 가진 듯 내 심신을 짓눌렀다.

지휘관: (창백하고 서늘하고 음울한 죽음의 냄새……. 딱 모가도르 말대로야.)

미스 D: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미스 D: 으아아아앙! 왜 이런 놈이 열차에 올라탄 거야!

에페: 아, 안 무섭다… 안 무섭다…. 울지 마…….

에페: 우리가 있으니까… 안 무섭다… 안 무섭다…….

미스 D: 너도 부들부들 떨고 있잖아!

에페: 그, 그치만…… 실은 에페도 정말 무서운걸… 흐에에에엥…….

미스 D: 으아아아아앙…!

플뢰레: ……이거 만만치 않은 느낌이네….

플뢰레: 나도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해볼 수밖에 없지.

플뢰레: 지휘관은 6호차로 물러나. 여긴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지휘관: (어쩔까…….)

모가도르: 지휘과안~ 표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왔어. 공격할까?

지휘관: (…먼저 공격할 것인가. 실력 차가 너무 크면 탐색전만 해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지휘관: (그렇다고 후퇴하려고 해도 남은 차량이 별로 없는데…….)

모가도르: 벌써 4호차 중간쯤까지 왔어.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선수는 놓칠 거야.

유리창 너머로 4호차 허공에 떠 있는 무언가가 알자스 팀이 매복한 지점으로 천천히 접근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XIII: 후우―――

지휘관: (어쩔 수 없지.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보단 기습이라도 하는 게 나아.)

지휘관: 모가도르, 공격――

미스 D: 잠깐만! 잠깐 잠깐 잠깐!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 갑자기 미스 D가 달려들어 말을 가로막았다.

미스 D: 알았어! 으으으…… 나 드디어 알았어!

미스 D: 저건 가짜야! 가짜!

미스 D: 가짜 가짜 가짜!

미스 D: 으으… 이 가짜 녀석!!

지휘관: ……가짜?

미스 D: 내가 고래 사냥에 계속 실패한 건 저 가짜 때문이야! 여기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가짜라서 그래!

미스 D: 열차의 방어를 뚫고 침입한 게 아니야! 내 모습으로 당당하게 들어왔어!

모가도르: …너하고 저게 개념적으로 같은 존재라는 거야?

모가도르: 넌 대체 누구야…?

미스 D: 지금 생각해 봤자 소용없어! 알아도 못 이겨!

미스 D: 얼른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

브렌누스: 아니, 그러면 집검자의 작전을 망치게 된다. 그리고 후퇴한다고 해도….

에페: 더 도망칠 곳이 없어…….

미스 D: 아니 아니! 열차를 버리고 마르티리움으로 가면 돼!

플뢰레: 지,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리고 어떻게 가는 건데?

알자스: 열차에서 뛰어내릴 거야?! 알자스, 날개가 있긴 하지만 이 날개는 날 수 없어…!

알자스: 그리고 바깥은 산소가 없어 보이는데… 알자스는 둘째 치고 지휘관의 목숨이…….

미스 D: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미스 D: 마르티리움은 7호차가 전환된 거야. 그러니까 6호차하고 연결되어 있어!

미스 D: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 6호차만 통과하면 마르티리움으로 들어갈 수 있어!

플뢰레: ……그런 거야!?

알자스: 알자스의 사고 모듈이 터질 거 같아…….

모가도르: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된다는 거지?

미스 D: 망설일 시간 없어! 조수도 빨리 후퇴 명령 내려! 빨리 빨리 빨리!

지휘관: 마지막으로 하나만. 그 방법으로 마르티리움에 갈 수 있다면 엘리자베스는 왜 그렇게 가지 않은 거야?

미스 D: 엘리자베스는 바보니까!

→ ………
→ …좋아!

지휘관: 플뢰레는 4호차로 가서 알자스 팀의 후퇴를 엄호해! 모두 합류하면 6호차에서 마르티리움으로 철수한다!

미스 D: 오오오! 도망쳐라! 도망!



 ~11. 도피행
미스 D의 손을 잡고 7호차 연결부에 발을 들여놓자, 갑자기 이상한 공간으로 날아갔다.
시간도, 공간도, 내 존재조차 모호해지고, 거대한 힘에 당겨져 부서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모호한 의식이 조금씩, 이 끝을 모르고 계속되는 허무 속에서 천천히 사라졌다.

 

미스 D?: "넌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녀'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고 해탈도 아니야."

의식이 사라질 때쯤… 귓가에 어쩐지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미스 D?: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한번 붙여진 이름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미스 D?: "우리와 달리 죽음은 그녀들에겐 일방통행이 아냐."

미스 D?: "삶과 죽음은 그녀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단계의 하나일 뿐이야."

미스 D?: "살아가면서 그 이름에 더 많은 경험을 부여하고, 죽으면서 그 이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

미스 D?: "변증법적으로 그녀들에게 삶과 죽음은 반드시 좋지도,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닌 중성적 개념이야."

미스 D?: "기억해. 그녀들은 개체가 되기 전에는 무수한 정보의 조각들로 구성된 집합체일 뿐이야."


미스 D?: "그리고 그 집합체의 분할 재현이 바로 내가 '데스'에게 준 힘이야."

→ 미스 D?
→ 안쥬 박사?
→ 오스타 박사?
→ 누구지?

 

미스 D: ……야! 뭘 멍하니 서 있는 거야!

지휘관: (방금 그건 미스 D의 목소리였는데….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 못하는 건가…?)

미스 D: 어이! 정~신~차~려~! 너만 혼자 떨어졌다고! 깜짝 놀랐잖아!

지휘관: …네가 날 이리로 데려온 거야?

미스 D: 나 아냐! 너야말로 왜 여기 있어? 여기 오래 있다간 산산조각 날 거라고!

미스 D: 빨리 내 손 잡아! 꺼내줄 테니까!

----

 

미스 D의 손을 잡자 허무 속에서 금빛이 솟구쳤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허공의 도시, 찬란한 금빛 아치, 아이리스의 향기, 그리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웅장한 성당 음악――

지휘관: (이게 바로 알자스의 상상에서 탄생한 마르티리움…….)

알자스: ……지휘관, 무사했구나! 계속 안 오길래 알자스는 그만…….

미스 D: 그만 뭐!? 내가 직접 나섰는데 못 구했을 리가 없잖아!

브렌누스: 집검자. 다친 곳은 없어?

지휘관: 괜찮아. 그냥… 길을 좀 잃었을 뿐이야.

미스 D: 조수만 혼자 길을 잃었어! 바보다 바보!

알자스: 지휘관은 바보가 아니야! 알자스가 듣기로는 남을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이 진짜 바보라고 그랬어!

미스 D: 바보! 바보! 바보!

알자스: 바보 아니야! 바보 아니야! 바보 아니야!

플뢰레: 하아……. 애들 싸움은 골치 아프네. 그치, 지휘관?

지휘관: 하하… 그냥 놔두자. 그보다 추격이 붙지는 않았어?

플뢰레: 어떻게 잘 뿌리친 거 같아.

모가도르: 에헤헤♥ 적한테서 무사히 도망쳤나 봐~

모가도르: 그래도 대단한 경험이었어……. 개념을 통하면 공간 거리를 무시한 채 이동이 가능하다니.

지휘관: (…혹시 세이렌의 전송 장치하고 '해무'도 비슷한 원리를 이용하는 건가?)

미스 D: 하아…하아… 지쳤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조수가 바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조금만 인정해 주겠어!

알자스: 알자스, 승리!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알자스는 당당하게 전술적 승리를 자랑했다.

지휘관: 그래서 미스 D. 아까 그 적은 계속 우리를 쫓을 거 같아?

미스 D: '아까 그 적'이라니……. 머리 아프니까 이름부터 지을래!

미스 D: 음……. '데스 섀도우"!

미스 D: 정했어! 녀석이 스스로 뭐라고 말하든 나는 데스 섀도우라고 부를 거야! 좋아!

지휘관: 그래 그래. 데스 섀도우라고 하자.

지휘관: 아무튼 그래서 데스 섀도우가 우리를 계속 쫓을 거 같아?

미스 D: 몰라! 그래도 쫓기로 마음먹었으면 쫓아올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그 녀석도 할 수 있으니까! 바보가 아니라면!

미스 D: 근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마르티리움에 왔잖아!

미스 D: 고래 잡으러 가자! 고래 사냥이다!

미스 D는 깡총거리며 하늘을 헤엄치고 있는 고래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 전에…….

퀸 엘리자베스(META): ……미스 D하고 동일한 존재라서 열차의 방어 시스템을 돌파했다고?!

퀸 엘리자베스(META): 그래서 나도 침입을 감지하지 못했던 거구나…. 그리고 지금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어딘가로 이동했을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참고로 나는 지금 막 열차로 돌아왔어. 물론 여기도 적…… 데스 섀도우의 흔적은 없어.

알자스: 그런데 엘리자베스! 미스 D가 엘리자베스는 바보라서 열차에서 내린 거라고 말했어…!

퀸 엘리자베스(META): …그래. 다음 달 간식은 없다고 전해줘.

미스 D: 어째서!?

퀸 엘리자베스(META): 내가 열차가 역추적 당하는 걸 피하려고 일부러 추적하기 어려운 방법을 택했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미스 D: 그, 그렇구나…….

퀸 엘리자베스(META): 하아……. 아무튼 거기서 기다려. 바로 합류할 테니까.

미스 D: 아니, 오지 마! 애초에 너는 오지 말았어야 했어

퀸 엘리자베스(META): 내가 안 왔음 어쨌을 건데! 데빌 같은 적을 너희가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아?

미스 D: 상대 안 해! 안 싸워! 고래만 뺏고 바로 도망갈 거야!

미스 D: 고래가 또 다른 공간으로 도망가면 곤란해! 그러니까 엘리자베스는 거기서 기다려!

미스 D: 마르티리움의 개념을 계속 전환시켜서 고래가 여기 있게 해줘!

퀸 엘리자베스(META): 계속 전환하라고?

퀸 엘리자베스(META): …설마 내 열차를 더 쓰라는 소리야?!

미스 D: 차량은 다시 원래대로 돌릴 수 있어! 고래는 도망가면 언제 잡을 수 있을지 몰라!

퀸 엘리자베스(META): 으으…. 뭐 좋아.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해보자고!

지휘관: 잘은 모르겠지만 결정된 것 같네. 부탁해, '폐하'.

퀸 엘리자베스(META): 흥, 알겠어. 지금부터는 열차에서 원격으로 지원할게.

퀸 엘리자베스(META): 정말로 위험에 처하면 달려갈 테니까 걱정 말고 마르티리움을 탐색해 봐.

미스 D: 응응! 그럼 고래 잡으러 가자~!



 ~12. 설득
엘리자베스와 통신을 마치고 우리는 고래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보로 이동했지만, 도시 곳곳에 있는 구름이 수면과 같은 성질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어 의장을 전개하여 이동하기로 했다.
어떻게 구름을 타고 잘 오르기만 하면 그대로 하늘에 있는 고래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모가도르: 킁킁. 지휘관. 우리 포위당했어.

알자스: 어?! 알자스의 탐지 모듈에는 아무 반응도 없었는데…….

모가도르: 왜냐면 저 사람들은 우리 탐지를 피할 방법이 있거든….

지휘관: '잔불'인가?

알자스: 전방에 반응이 있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어…. 지시를 내려줘.

지휘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냥 우리와 대화 하러 왔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네.)

지휘관: 어쩌면 대화로 충돌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몰라. 경계는 유지하지만 선제 공격은 금지야.

지휘관: 여긴 내가 맡을게.

우리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잔불 일행도 위장을 해제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위치타(META): 잔불의 위치타와 킴벌리다. 보아하니 별로 안 놀랐나 봐?

지휘관: 마르티리움에 들어오기 전부터 너희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

위치타(META): '마르티리움'? 그게 이 도시 이름인가? 너희가 한 거야?

지휘관: 그래.

위치타(META): 누가 했는지 알고 싶어. 알려줄 수 있나?

지휘관: 그건 힘들 거 같아…. 하지만 굳이 서로에게 총칼을 겨눌 필요는 없잖아? 대화로 해결하자.

위치타(META): ……왜?

지휘관: 우리는 그쪽의 히류, 아크 로열과 함께 싸운 적이 있어. 그리고 우리 쪽 프리드리히가 지금 너희 잔불에 협력하고 있을 거야.

 

킴벌리(META): ……과연. 실험장β에서 오셨군요.

위치타(META): 실험장β? 그럼 이런 걸 만들어 낸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

위치타(META): 전에 그쪽 '가지'에서 터트린 화려한 불꽃 말야. 우리도 다 봤다고.

지휘관: (화려한 불꽃…? 거짓 신 사건을 말하는 건가? 거기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지휘관: (좀처럼 얻기 힘든 기회야. 프리드리히 일행에 대한 정보를 더 캐내 보자. 저들과 이번 작전에서 동맹을 맺을 수 있다면 더욱 좋고.)

지휘관: 프리드리히는 잘 지내?

위치타(META): 걱정 마. 잘 지내고 있으니까. 지금은 우리 은신처에서 중요한 일을 준비하고 있어.

위치타(META): ……나도 하나 물어보자. 네가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지휘관'인가?

지휘관: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맞아.

위치타(META): 역시나. 히류 말대로 뭔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느껴진단 말야.

위치타(META): 킴벌리. 너도 그래?

킴벌리(META): 네. ……맞아요.

위치타(META): 엔터프라이즈도 너를 만나고 나서 많이 달라졌어. 그래서 그런지 이상한 결정을 자주 내린단 말야. 너희 프리드리히를 받아들인 것도 그렇고.

위치타(META): 뭐, 솔직히 인정하지. 녀석은 꽤 잘 하고 있어.

위치타(META): 아무튼…… 너는 대체 누구지?

지휘관: 그건 나도 궁금해…….

지휘관: 솔직히 여기 온 것도 '나'는 대체 누구인지 그 단서를 찾기 위해서야.

미스 D: 내가 말했잖아! 조수야! 비밀 조수!

위치타(META): ……비밀 조수? …뭐야 그건? 킴벌리, 들어본 적 있어?

킴벌리(META): ……어쩌면 기억에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위치타(META): 돌아가면 엔터프라이즈한테 물어보자. 그보다 넌 누구고 왜 지휘관 보고 ‘조수’라는 거야?

미스 D: 나는… 미스 D야!

위치타(META): 들어 본 적 없는데…. 무슨 코드 네임이야?

미스 D: 아무튼 나는 미스 D야! 미스 D! 그게 이름이야!

위치타(META): 수상한데…. 너 아무리 봐도 안티 엑스잖아! 실험장β에 잠입한 스파이웨어냐?

미스 D: 너야말로 스파이잖아!

위치타(META): 하! 안티 엑스라는 건 부정하지 않는군!

지휘관: 어쩌면… 미스 D가 아비터 XIII ‘데스’일지도 몰라.

위치타(META):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우리가 데스하고 얼마나 많이 싸워 봤는지 알아?

위치타(META): 하늘에 저 고래 봤지? 저게 데스야. 아무리 본체가 다르다고 해도 이 꼬맹이가 도저히 데스 같지는 않은데.

미스 D: 하아!? 바보바보바보! 가짜에 속은 바보!

위치타(META): 누가 바보라고? 맞고 싶냐?

미스 D: 히익?! (부들부들)

킴벌리(META): 위치타. 아이 상대로 그러지 마세요.

위치타(META): 그냥 장난 좀 친 거야.

위치타(META): 아무튼 네가 실험장β 놈들하고 같이 행동하고 있다면 더 따지진 않겠어. 안티 엑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 한 우리가 먼저 손대지는 않을 거야.

위치타(META): 우리는 어디까지나 공간 충격 현상을 처리하기 위해 온 거야. 서로 간에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어.

위치타(META): 어차피 너희도 공간 충격 때문에 온 거 아냐?

지휘관: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고래 포획이 최우선이야. 공간 충격 조사는 내친김에 불과해.

위치타(META): 그래? 우린 여기 올 때까지 고래 같은 건 있는 지도 몰랐는데…. 너흰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가?

위치타(META): 대단한 정보 수집력이군.

지휘관: 서로 목적은 다르지만 기왕이면 협력하지 않겠어?

지휘관: 지금 이 공간에는 아비터 데빌이 이끄는 또 다른 세력이 있어. 너희도 아비터와는 적대 관계잖아?

위치타(META): 데빌…. 확실히 우리도 이곳에 들어왔을 때 녀석의 존재를 파악했지.

위치타(META): ……그래도 우리는 단독 행동이 더 익숙해서 말야.

위치타(META): 서로 간섭하지 않는 선에서 합의하자고.

지휘관: (잔불은 다 단독 행동을 좋아하나. ……어쩔 수 없지.)

지휘관: 그래. 행운을 빌게.

위치타(META): 아아. 너희도.



 ~13. 두 번째 고리
잔불과 헤어진 후 우리는 계속 고래를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우리보다 빨리 고래에 접근한 존재가 있었다.

――――!!!

알자스: 고래가 드론 같은 비행체한테 공격받고 있어!

브렌누스: 수가 상당해…. 고래를 잡으려고 그물 모양으로 진형을 짜는 것 같다.

모가도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저건 데빌의 드론이야!

미스 D: 아아아아! 데빌 바보! 적당히 해! 내 고래를 괴롭히지 마!

미스 D: …이러다 고래가 도망치겠어!

미스 D: 봐봐! 벌써 준비하고 있잖아!

미스 D: 큭!? 그 가짜 녀석, 벌써 새로운 병장의 통제권을 얻은 건가!?

드론에 둘러싸여 있는 고래에게서 갑자기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에 닿은 드론은 차례로 제어를 상실하고 떨어졌다. 그 틈에 고래는 속도를 높여 마르티리움의 중앙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마르티리움의 고리의 경계에 닿으려는 순간 공간 파동과 함께 고래는 다시 다른 공간으로 도망쳤다.

지휘관: 이런. 또 다른 공간으로 도망친 건가.

미스 D: 엘리자베스! 들려!? 엘리자베스!

미스 D: 엘리자베스! 빨리 마르티리움을 펼쳐! 남은 부분도 다 꺼내!

퀸 엘리자베스(META): 하아…………….

퀸 엘리자베스(META): 개념 전환. 6호차, ‘죽음’의 기반이 되어 보이지 않는 것을 고정시키고 그 모습을 구현하라!

----

 

다시 허무 속에서 빛이 폭발했다.
금빛 아치, 순백의 가도. 그 빛 속에서 찬란한 고리 모양의 도시가 안쪽으로 확장되어 새로운 두 번째 고리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고리 위에서 고래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에페: 마르티리움이…… 넓어졌어. 예쁘다…!

플뢰레: 에헤헤. 더는 도망 못 가겠지~

퀸 엘리자베스(META): 세상에…. 여기까지 했는데도 아직 모든 숨겨진 공간을 펼치지 못하다니….

퀸 엘리자베스(META): 공간 충격을 일으킨 녀석은 대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일까…….

미스 D: 아무튼 이번에는 꼭 고래를 잡아야 돼!

미스 D: 으으. 만약 또 도망치면….

퀸 엘리자베스(META): 내가 말했잖아. 이번엔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미스 D: 엘리자베스, 착해!

미스 D: 조수! 얼른 고래 잡으러 가자!

알자스: 새로 나타난 고리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고리와 연결되어 있지 않아…. 어떻게 건너가지?

알자스: 섬을 건너가는 식으로는 안 되겠지……?

퀸 엘리자베스(META): 개념은 같아도 각각의 차량이 독립된 공간을 이루고 있으니까 그렇게는 힘들어.

퀸 엘리자베스(META): 특수한 출입 규칙이 있는 경면해역이 두 개 있다고 생각하면 돼.

퀸 엘리자베스(META): 즉 공간 자체의 규칙에 따라 일정한 방법에 의해서만 출입할 수 있다는 말이야.

미스 D: 괜찮아! 방금 알아봤는데 차량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어! 아까 했던 식으로 또 하면 돼!

미스 D: 아까처럼 나를 따라와! 공간 규칙 같은 건 무시해도 돼!

지휘관: …아까부터 말하는 ‘공간 규칙’은 대체 뭐야?

미스 D: 당연히 ‘죽음’이지! 이 공간은 ‘죽음’을 구현한 거니까!

미스 D: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빨리 빨리 빨리!

미스 D: 고래 사냥이다~!



 ~14. 공간 규칙
마르티리움. 어느 곳.

――――!!

 

하타카제(META): 대단하군. 쓰러질 때마다 몸의 강도를 올리고 있는데도 계속 당하다니.

하타카제(META): 자네들은 보통 ‘잔불’이 아니라 최초의 잔불들이지?

위치타(META): ‘죽음의 공포 무효화’, ‘초고속 재생’……. 결국 다 눈속임일 뿐이야.

위치타(META): 그 정도 속임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겪어 봤어.

위치타(META): 하지만 다들 이성을 잃은 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지.

위치타(META): 넌 어떻게 아직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거지?

위치타(META): 넌 대체 누구냐?

――――!!

하타카제(META):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경험이 많아 보이는군.

하타카제(META): 하지만 내 비밀을 쉬이 알릴 생각은 없네.

하타카제(META): 저기 새로 생긴 고리를 보게. 개념 고정이 두 번이나 이루어졌지만 아직 숨겨진 것이 완전히 들어나지 않았어.

하타카제(META): 이번 ‘공간 충격’을 일으킨 놈은 여간내기가 아닌 모양이야. 후후.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군.

――――!!

위치타(META): 우리와 싸우면서 한눈을 팔다니 대단한 자신감이군.

위치타(META): 그런 속임수는 많이 봤다고 했지? 우리가 애먹기라도 할 줄 알았나?

하타카제(META): 글쎄. 어차피 ‘죽음’은 다음 구역으로 가는 길일 뿐이야.

하타카제(META): 자네들은 이 공간의 개념과 규칙을 알아차리지 못한 겐가?

위치타(META): 아하하하! 인정하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

위치타(META): 솔직히 ‘죽음’을 그렇게 해석하는 존재를 본 것도 오랜만이야. 안티 엑스는 실험장β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네.

하타카제(META): 나를 무시하든 말든 다음 구역으로 가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네만?

하타카제(META): 죽음은 이 공간의 유일한 결말이야.

하타카제(META): 무엇보다 죽음의 개념 자체가 여기서 이미 ‘재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자네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진정으로 죽일 수는 없다네.

위치타(META): 흥. 죽이진 못해도 산산조각 낼 수는 있겠지.

위치타(META): 죽음의 개념이 얼마나 재구성되더라도 소모된 힘, 누적된 피해는 사라지지 않아.

위치타(META): 너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을지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지.

――――!!

킴벌리(META):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여. 소멸하라.

하타카제(META):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그건 누가 정의하지? 자네들의 오만함인가?

하타카제(META): 자네들의 그 정의 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숙청당했나?

하타카제(META): 그래서 그 결과는? 자네들의 뜻대로 되었나?

위치타(META): 몰라. 적어도 너 같은 존재가 사라질 때마다 문제도 하나씩 줄어드는 거야.

위치타(META): 네 힘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놈과 결탁했는지, 뭘 꾸미고 있는지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

위치타(META): 하물며 잘난 듯 설교나 늘어놔? 웃기는 것도 정도가 있지.

――――!!

하타카제(META): 유감이군. 자네들이 조금은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었으면 했는데.

하타카제(META): 기왕 이렇게 됐으니 이제 자네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하타카제(META): 나와 자네들의 결말은 똑같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이 손으로 등을 밀어주지.

----

마르티리움. 어느 곳.

 

아비터 데빌XV: 두 번째…고리?

아비터 데빌XV: 어머. 새로운 구역이 나왔을 줄이야.

아비터 데빌XV: ……저기로 통하는 길의 대가가 ‘죽음’이라면――

아비터 데빌XV: 죽으면 되지.

아비터 데빌XV: ――――!!

----

마르티리움 외부. 카멜롯과 퀸즈 라이트호에서 많이 떨어진 어느 곳.

 

544845544F574552: 45 78 65 63 75 74 65 74 72 61 6E 73 70 6F 72 74 70 72 6F 74 6F 63 6F 6C 2E
 역주) THE TOWER: Execute transport protocol.

거대한 전함 속에서 푸른 머리의 소녀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헬레나(META): 방해하는 상대의 힘이 이렇게나 강할 줄이야.

헬레나(META): ‘타워’의 힘을 이용해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헬레나(META): 갑자기 방해가 완전히 사라졌어.

헬레나(META): 이 이상 다가갈 용기가 없는 걸까? 그러면 좋겠는데.

헬레나(META): 나를 방해하고 지휘관을 노리는 ‘적’….

헬레나(META): 조만간 반드시 잡아내 주겠어……!

파란색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넓은 공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헬레나(META): ……….

헬레나(META): 공간 충격으로 접힌 부분은 70% 정도 다시 펼쳐졌고, 또 두 공간으로 인위적으로 나눠져 있어…….

헬레나(META): 늦긴 했지만, 아직 많이 늦지는 않은 것 같아.

헬레나(META): 지휘관은…… 여기구나.

헬레나(META): 위치타, 그리고 킴벌리까지……?

헬레나(META): ………….

헬레나(META): 계획 변경이야. 리사이클 프로세스를 중지하고 ‘오버라이트’로 이행. 플랜E 실행.

헬레나(META): 헬레나, 지금부터 이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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