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지휘관의 우군
“트러플로 속을 채운 영계구이, 여린 채소와 양 등심, 보헤미안 꿩 꼬치구이”
“작은 새우 칸넬로니, 거북 수프, 크림 오이”
“푸아그라와 식힌 수플레, 딸기 타르트, 펀치”
“이 정도면 됐을까♪”
“멋진 연회가 곧 시작되니 내빈 여러분은 자리에 앉아 주세요”
“접대에 만족하셨으면……”
“영원히 여기 머물러줘――”
아이리스. 성도
아주르 레인 임시 시설
소유즈 일행이 남극에 상륙했을 즈음
헬레나: 지휘관. 방금 북방연합 함대가 남극 과학 연구소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어!
헬레나: 그런데 클레망소가 남극 현지에 있는 정보원과 연락이 두절됐다고도 했어….
지휘관: 연락이 두절됐다고……?
헬레나: 응. 남극에 있는 탐지기가 한두 개가 아닌데 동시에 연락이 끊긴 걸 보면 단순한 고장은 아닌 것 같대.
헬레나: 아마도 남극의 정보를 얻지 못하게 하려고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재밍을 시도한 것 같아.
지휘관: ……알겠어.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
헬레나: 응.
지휘관: 이미 남극으로 각 진영이 출발했어….
지휘관: 통신도 안 되는 상황에서 현지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대처할 방법이 없어. 어떻게든 그녀와 연락을 취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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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앞에 은빛 찬란한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지휘관: ……정말로 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나 보네.
지휘관: 안전한 방법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좀 부끄러운걸.
헬레나(META): 움직이기 시작했구나, 지휘관.
지휘관: 역시 남극에서 벌어지는 일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지휘관: 그런데 어떤 문제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어….
헬레나(META): 남극 대륙과 외부와의 통신 두절 말야?
지휘관: 맞아. 이것도 옵저버가 꾸민 짓이야?
헬레나(META): 아니, 이건 옵저버가 한 게 아니야.
헬레나(META): 그래도 내가 처리할 수 있어. 조금만 기다려줘.
지휘관: 옵저버 짓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헬레나(META): 곧 알게 될 거야.
지휘관: ……혹시나 해서 묻는데 너는 처음부터 배후가 누군지 알고 있었지?
헬레나(META): …누군지도 알고, 앞으로 무얼 할지도 알고 있어.
헬레나(META): 하지만…….
지휘관: 아직 내게는 말해줄 수 없다고?
헬레나(META): 응. 미안해.
지휘관: 그럼 렉싱턴을 치료할 방법 좀 알려줘.
지휘관: 그것만 있으면 새러토가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이유도 없게 돼.
지휘관: 새러토가를 말릴 수만 있다면 이번 사건도 한결 수월하게 풀릴 거야.
헬레나(META): ……안 돼.
헬레나(META): 새러토가는 렉싱턴을 생각해서 그렇게 나서는 거잖아.
지휘관: ……어?
헬레나(META): 지휘관은 렉싱턴을 구하고 싶은 거지?
지휘관: ………그래, 맞아.
지휘관: 이건 ‘지휘관’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야.
헬레나(META): ……그래.
헬레나(META): 남극 전역에 전장 지휘 시스템을 배치했어.
헬레나(META): 이제 그만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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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아무튼 당장 닥친 일은 해결됐군.
지휘관: 전장 지휘 시스템이라….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볼까?
지휘관: 헬레나, 멤피스. 이제 남극 전역의 각 진영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지휘관: 다들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겠어?
헬레나: 응. 정보가 막 들어오고 있어!
헬레나: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전술 지도에… 각 진영의 함대별 최근 2주 간의 행동 이력까지….
멤피스: 각 진영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됐어…!
멤피스: 이러면 현지에 있는 것처럼 지휘할 수 있을 거야!
멤피스: (작게) 지휘관. 이거 혹시 ‘헬레나’가 도와준 거야?
지휘관: (작게) 맞아. 이번 작전에선 우리 편에 설 거야.
지휘관: 우선 각 진영의 상황을 정리해 보자.
멤피스: 응. 바로 지휘관의 모니터에 피드백 할게.
멤피스: 우선 북방연합 함대는 ‘융설 구역’에 진입해 있어. 아까부터 신호가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현지에서 계속 조사 중인 것으로 보여.
멤피스: 유니온은…… 새러토가의 함대가 현재 융설 구역으로 향하는 중이야.
멤피스: 결국 소유즈보단 한 발 늦었네.
멤피스: 시드니에서 출발한 로열 함대는 현재 남극 해역에 진입했어.
멤피스: 비스마르크해에서 출발한 철혈 함대는 상륙하지 않고 남극 외곽을 배회하고만 있어.
멤피스: 그리고 철혈의 남극 기지에서 “정체불명의 적과 조우했다‘는 경고를 발신한 적이 있었어.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걸까?
지휘관: 정체불명의 적? 다른 정보는 없어?
멤피스: 모르겠어. 철혈도 아직 정보가 없나봐.
지휘관: 좋아. 계속 모니터링 해줘. 움직이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모아야 돼.
~16. 연회
남극 대륙
융설 구역. 현자의 고리 입구
현재
오그네보이: 휴우……. 무사히 지상으로 돌아왔네요…….
오그네보이: 그치만 지상으로 바로 향하는 비상 통로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폴타바: 비상 통로가 빙빙 꼬여 있으면 제 역할을 할 수 없잖아.
스비레피: 그럼 처음부터 비상 통로를 쓰지 그랬어.
폴타바: 이 통로는 보안 문제 때문에 내부에서만 사용할 수 있거든.
스비레피: 쳇. 그럼 이제 어떡해? 일단 탈린한테 돌아가?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그런 다음――
소비에츠키 소유즈: ……!
소비에츠키 소유즈: (또예요….)
폴타바: 소유즈?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뇨, 괜찬습니다. 상황이 급박하긴 하지만 신중하게 이동합시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우선은 과학 연구소로 돌아가고, 그 다음은――
소비에츠키 소유즈: 철수를…….
파먀티 메르쿠리야: 아하하♪ 이 트리플 넣은 영계구이 먹어 볼래?
파먀티 메르쿠리야: 내가 제국 연회 메뉴에서 좋아했던 건데.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건……?
소유즈는 어느새 긴 테이블의 한쪽 끝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고급진 요리가 많이 있었다. 주변 장식들은 촛불 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궁중 연회입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는 분명 철수하던 길이었는데… 왜 이곳에…….)
소비에츠키 소유즈: (응? 철수? 어디로 철수하는 거였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한 것 같아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안 돼…… 도저히 기억이 안 나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응? 왜 그래? 맛없어?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럼 이 거북 수프는 어때? 깔끔해서 입에도 잘 맞을걸?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렇군요.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잠시 생각한 후, 소유즈는 환각에 순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녀는 숟가락을 들어 수프 한 모금을 떠먹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맛이 나네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감각이 느껴지는 걸 보니 단순한 환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 흐흥~ 표정을 보니 맘에 들었나 보네?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맛있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파먀티’. 여기는 어디죠? 그리고 이 연회는 뭐죠?
파먀티 메르쿠리야: 여긴 쿠우의 성이야~ 그리고 소유즈를 환영하기 위한 연회지~
파먀티 메르쿠리야: 어때? 나름 괜찮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좀처럼…… 본 적 없는 환영 인사군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응! 여기는 말이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연회 말고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어!
파먀티 메르쿠리야: 꽃밭을 거닐거나, 빙판에서 사냥하거나, 바닷가에서 놀거나~
파먀티 메르쿠리야: 어때? 여기 머무르고 싶지 않아?
어째서인지 머릿속의 안개가 점점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곳이 ‘현실’이고, 방금 전까지 있었던 빙원이야말로 ‘환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머물러도, 좋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런데 다른 동료들은… 어디 있습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 네가 원한다면 다 불러올 수 있어. 내 영원한 낙원으로.
소비에츠키 소유즈: 영원한 낙원…….
낙원…. 안심을 주는 천상의 목소리.
어느덧 소유즈는 하나의 세계를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진영을 가리지 않고 한자리에 모이며, 꽃과 술이 끊이지 않는 멋진 세계.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토록 느긋한 세계. 무심코 빠져들기 쉬운 세계. 제국의 성에서 영원한 연회를 즐기는 세계….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렇기에 더욱 경계해야만 합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 ……경계?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런 낙원은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사람을 도피하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들고,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할 뿐인 허상…….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에 현혹되지 않게 경계해야만 합니다.
환상의 세계――‘그녀’가 원하는 유토피아에 금이 갔다.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치만 소유즈가 노력하는 건 바로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럼 현실이 아니어도 되잖아! 도망쳐도 되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적어도 너, 그리고 네가 아끼는 사람들은 여기서 싸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 소비에츠키 소유즈는 허상에 젖어 스스로의 이상과 사명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 배신이 아냐! 그냥 결승점에 먼저 도착했을 뿐이야!
파먀티 메르쿠리야: 너희들의 이상과 사명은 바로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잖아!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래 몰라! 한 번도 이해한 적 없어.
파먀티 메르쿠리야: 이상이니 사명이니… 다들 그렇게 말하면서 스스로 희생하고…….
파먀티 메르쿠리야: 결국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면서.
소비에츠키 소유즈: 희생으로 인해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그것이 모여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법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런 미래를 위해서라면… 희생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 너희가 꼭 희생할 필요는 없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정말. 어느 시대든 너희는 항상 그랬어…….
파먀티 메르쿠리야: ……나만을 위해 살고, 나와 소중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미래가 뭐가 나쁜 건데…….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은 제가 아는 ‘파먀티 메르쿠리야’가 아닙니다. 그렇죠?
파먀티 메르쿠리야: ………….
파먀티 메르쿠리야: 어머~ 역시 들킨 거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은 누구입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 아하하하! 벌써 알고 있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내 정체를――
~17. 한 줄기 눈보라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은 누구입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 아하하하! 벌써 알고 있잖아~
금색의 방에서 테이블 너머의 소녀가 선언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 나는 ‘파먀티 메르쿠리야’, 먼 옛날이야기에서 내려온 파먀티 메르쿠리야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원래의 파먀티 씨는 어디 있습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 응? 아직 간섭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나봐?
파먀티 메르쿠리야: 이렇게 된 이상 더는 위장을 유지할 필요는 없지♪
파먀티 메르쿠리야: 궁전 안은 좀 답답하니까 바람이나 쐬러 갈까?
순식간에 황금 궁전이 사라지고 새하얀 빙원이 나타났다.
싸늘한 바람에 안개가 걷히자, 소유즈의 머릿속도 맑아졌다.
소유즈는 그동안 벌어졌던 일을 되짚었다.
그리고 위화감의 원인――‘있을 수 없는 존재’를 찾아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파먀티 씨는 처음부터 유럽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은 잠수함이 남극 해역에 도달하는 순간 갑자기 나타났죠.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응! 너희하고 계속 같이 있었던 건 바로 나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하하핫♪ 정말 재밌었어~ 너희와의 우정 놀이♪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는 하나도 재밌지 않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대체 목적이 뭐죠? 제 동료들을 어떻게 했습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에이, 흥분하지 마~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넌 동료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차갑다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적’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대답하세요. 잡담할 기분 아닙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에엥~ ‘적’??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난 네가 아는 ‘파먀티 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아니라구~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소유즈는 참 걱정도 많다니까! 네 동료들은 모두 무사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난 어디까지나 너만을 내 성에 초대했을 뿐이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무튼 목적 말인데…. 에헤헷, 내 목적은 3가지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하나는 주목적! 나머지 둘은 겸사겸사!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하지만 직접 가르쳐 주면 재미없으니까 한번 맞춰봐~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는 볼일이 있으니까 이 이상 쓸데없는 시간 낭비는 하지 않겠습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잠깐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까 ‘화랑’에 있던 그림들을 보고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과연. 그것도 당신이 설치해둔 것이었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옵저버의 본체를 노린 것도 당신이겠죠?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맞아♪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옵저버를 미끼로 던졌는데 생각보다 많이들 낚이더라고~ 뭐 쿠우가 들여보낸 건 너뿐이지만.
소비에츠키 소유즈: ……왜 저뿐이죠?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궁금하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까 네 이상과 신념에 대해 듣긴 했지만, 그건 폐쇄된 환경 속에서 내린 결론이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하지만 내가 알려준다면? 그 그림 속 내용이 전부 진실이라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전부 쿠우가 직접 보고, 직접 들은 내용이야. 어때? 뭐 느껴지는 거 없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꽤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신 것 같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이 있었던 세계가 어땠는지 조금은 궁금하긴 합니다만….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제야 당신의 의도가 이해가 되는군요.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정말? 그럼 대답은?
소비에츠키 소유즈: ……대답은 변하지 않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역사의 거센 물결은 앞으로 나아가는 법입니다. 새로운 세계가 찾아올 때마다, 낡은 세계는 씻겨 나가는 것이 필연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이 생각하는 것들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역사의 물결이 앞으로 나아가는 건 물은 스스로 움직일 방향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하지만 만약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면?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럼 강을 거슬러 올라갈 겁니까? 시대를 역행하고 과거의 잘못을 반복한다고요?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적어도 과거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야. 잘못이 있더라도, 그 앞의 영광도 있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뇨. 과거에 매달리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래그래그래~ “미래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쿠우의 '숙적'하고 똑같은 말을 하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하지만 정해진 과거가 뭐가 나쁜데?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미래를 버리는 건 알 수 없는 일을 버리는 것뿐이야. 미래에 항상 희망이 있지는 않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쿠우는 긴 여정 동안 많은 걸 알게 됐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러시아 제국, 북방연합, 전진전선……. 모두 한때는 강성했지만 결국 쇠락하여 미래의 티끌이 됐지.
파먀티 메르쿠리야: 너도 알잖아? 어떤 세력이나 진영, 왕조도, ‘미래’가 있는 한 영원하지 않아.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는 북방연합을 선택했습니다. 북방연합의 일원으로서 모두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너도 네 신념이 있다는 건 알아.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하지만 나는 봤어. 네가 열심히 노력한 그 끝, 그 ‘미래’에는 아무것도 없다는걸.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이 아득한 대지처럼… 아무것도 없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렇다면 정해진 과거를 선택하면 안 되는 거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과거의 영광에, 기분 좋았던 시간에 기대는 게 왜 안 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동료들과 계속 그 순간을… ‘낙원’을 영원히 즐기는 게 뭐가 나빠?
소비에츠키 소유즈: …‘낙원’?
소비에츠키 소유즈: 우리에 갇힌 실험용 쥐 같은 삶을 말하는 겁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는 거절하겠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동안 정해진 노선만을 달리던 우리들은, 이제 막 스스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비록 이 길 끝에 멸망이 있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노력하여 스스로 선택한 ‘미래’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타인이 주는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이 과거에 살았던 세계도 우리 세계와 같이 세이렌의 실험장이었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실험 쥐는 아무리 행복해도 결국 실험용 쥐일 뿐입니다.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정해진 노선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잘난 듯이 큰소리치지 마!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우린 최선을 다해 싸웠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보다시피 나만 남았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동료들에게 보호받으면서, 못다 이룬 소망을 짊어지고 나 혼자만 살아남았다고!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내게 그런 말할 자격 따윈 없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한낱 존재가 아무리 싸워봤자 인과는 이길 수 없다고!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게 당신이 겪은 과거군요.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래. 그래서 한 번 더 선택할 기회를 얻은 나는…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나의 고향, 나의 동료들을 되살리는 걸 택했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내가 모든 걸 지배하는 낙원에서, 영원히――
소비에츠키 소유즈: 낙원, 신, 영광, 지배…….
소비에츠키 소유즈: 최근에 몇 번 들어본 말이라 조금 걸리긴 했지만… 역시 당신은…….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후후. 그럼 이제 내 첫 번째 목적이 뭔지 알겠지?
~18. 낙원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후후. 그럼 이제 내 첫 번째 목적이 뭔지 알겠지?
빙원에서의 대치는 계속되고 있었다.
소유즈가 자신의 목적을 알아차렸다고 판단해서인지, 검은 옷의 소녀는 대범하게 자신의 진짜 노림수를 밝혔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럼――
빙하가 깨지고 굉음과 함께 거대한 기계가 도처에 나타났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드로이드’…….
소비에츠키 소유즈: 역시 당신의 목적은 ‘신의 나라’의 강림입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런 이름이 아냐~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낙원’, ‘엘리시온’, ‘유토피아’……. 몇 가지 이름을 생각해 봤지만 하나도 맘에 안 들어서.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소유즈는 뭐가 좋을 거 같아?
갑자기 화냈다가 갑자기 웃었다가. 소유즈는 눈앞의 소녀의 정서를 종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언행도 태도도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더 이상 그녀의 페이스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포기하세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름이 무엇이든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매정하네~ 이제 나하고 수다 떨 생각은 없나봐?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역시 싸울 수밖에 없구나. 우리들♪
소녀의 선언과 함께 대치는 끝을 알렸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럼 난 준비 좀 해야 되니까 먼저 가볼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얘들하고 잘 놀아주고 있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힘내~ 파카(Пок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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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테이블, 검은 옷의 소녀, 목전에 있었던 드로이드가 모두 사라졌다.
멀지 않은 곳에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보아하니 방금 일어난 일은 현실에서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폴타바: 바로 연구소로 돌아가서 철수하는 거 맞지?
폴타바: ……소유즈?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소비에츠키 소유즈: 철혈을 포함한 모든 진영에 적성 세력의 존재를 경고하고 즉시 철수하라고 전해주십시오.
폴타바: 알겠어. 그런데 구체적으로 뭘 경고해야 되지?
환상을 경험하지 못한 동료들이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며 소유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드로이드. 남극은 곧 드로이드에게 습격당합니다.
스비레피: 드로이드!? 그거 지중해에 나타났던 놈들이잖――
――――!!!
사방에서 굉음이 울렸다. 쏟아지는 얼음 덩어리와 함께 드로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그네보이: 정말 드로이드에요!!
스비레피: 숫자가 장난이 아냐…. 설마 얼음 밑에 숨어 있었나…!?
소비에츠키 소유즈: …꽤나 빨리 왔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폴타바. 연락은 약식 평문으로 타전하세요. 지금 당장 철수합니다!
모두: 네!
~19. 연합 작전
아이리스. 성도
아주르 레인 임시 시설
같은 시각
적의 반응을 나타내는 붉은 빛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평온했던 남극 대륙의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멤피스: 지휘관. 식별 결과 남극 대륙 곳곳에 나타난 적은… 드로이드야!
지휘관: 드로이드? ‘거짓 신’ 사건 때 하이어로팬트가 조종했었던 그 기계들…?
지휘관: 설마 다시 침공해 올 줄이야….
멤피스: 설마 남극을 제2의 ‘신의 나라’로 만들 셈일까…?
멤피스: 그런데 만약 같은 방식으로 침공하는 거라면, 마르코 폴로가 그랬던 것처럼 ‘신의 흔적’을 퍼트릴 매개체가 있어야만 해.
멤피스: 이번에는 대체 누구길래…….
멤피스: 설마…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휘관: 그럴 리는 없어.
지휘관: 마르코 폴로 때를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을 일으키려면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해. 남극에 막 도착한 소유즈 함대는 그럴 시간이 없었어.
지휘관: 분명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가 있을 거야.
헬레나: 새러토가와 ‘프로즌 엔젤’ 함대가 드로이드와 교전에 들어갔어.
헬레나: 속도는 다소 줄었지만, 아직도 ‘융설 구역’을 향해 전진하는 것 같아.
헬레나: 북방연합 함대는 반대로 융설 구역에서 해안선으로 향하고 있어.
멤피스: 새러토가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멤피스: 지휘관. 상황이 너무 위험해! 얼른 새러토가를 막아야 돼!
지휘관: 그래. 하지만 맹목적으로 행동하진 마. 우린 아직 정보가 더 필요해.
지휘관: …우선은 소유즈와 통신을 연결해줘.
----
남극 대륙. 융설 구역
――――!!!
소비에츠키 소유즈: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동지들이여, 나를 따르라!
소비에츠키 소유즈: 부상을 입었어도 속도를 유지하세요! 잠수함이 있는 지점까지 직행합니다!
모두: 네!
통신: ――――
소비에츠키 소유즈: ……통신 연락?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건…… 지휘관 동지!?
폴타바: 이런 타이밍에!?
폴타바: 쾨니히스베르크가 외부로 나가는 통신은 재밍당하고 있다고 그러지 않았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휘관 동지니까 분명 뭔가 방법이 있었겠죠. 그나저나 이런 때에 연락이 왔다는 것은….
소비에츠키 소유즈: 역시 지휘관 동지가 남극의 전황을 모니터링하며 대비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금 연락은 아마 최전선의 정보가 필요해서 그런 것이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후후후. 그럼… 함께 싸웁시다. 지휘관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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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성도
아주르 레인 임시 시설
잠시 후
지휘관: ……가짜 광물. 옵저버의 SOS 신호….
지휘관: 북방연합의 지하 벙커… 또 하나의 ‘파먀티 메르쿠리야’….
지휘관: 단서가 모두 이어졌어.
지휘관: 옵저버의 본체는 남극 대륙의 빙하 밑에 있었어.
지휘관: 그리고 북방연합의 벙커인 ‘현자의 고리’는 우연히도 본체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
지휘관: 하이어로팬트를 등에 업은 ‘파먀티 메르쿠리야 META’는 벙커에 잠입해 옵저버의 본체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녀를 가뒀어.
지휘관: 궁지에 몰린 옵저버는 저항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고…
지휘관: 어쩔 수 없이 특수 광물을 만든 다음, 그걸 미끼로 각 진영의 함대를 끌어들였어.
지휘관: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새러토가는 분명 배후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을 거야.
지휘관: 아마 유니온 상층부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결과적으로 대규모 함대를 꾸리게 됐지.
지휘관: 그리고 ‘헬레나’는 내게 정보를 흘렸어. 헬레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지휘관: 아니나 다를까, 소식을 접한 나는 철혈과 북방연합을 포함한 타 진영에 다시 정보를 흘려서 남극으로 함대를 집결시켰지.
지휘관: 그런데 의장에 문제가 있던 소유즈가 직접 북방연합 함대를 이끌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겠지.
지휘관: 계속 남극에 있었던 파먀티 메르쿠리야 META는 소유즈에게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어.
지휘관: 그녀는 남극으로 가는 함대를 막기는커녕 일부러 자신을 노출시키며 함께 행동했어.
지휘관: 그러면서 계속 소유즈를 설득하려고 시도했고, 실패로 끝나자 결국 드로이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지…….
지휘관: …소유즈도 참 대단해.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만큼의 정보를 이끌어 내다니.
지휘관: 아무튼 이제 소유즈와 연락하면서 정보를 공유하면 자연스레 전체 상황을 알게 되겠지.
지휘관: 그러고 보면 ‘헬레나’도 돕겠다고 했었지.
지휘관: 그 아이가 계속 나를 관측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좀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면 든든하네.
지휘관: 고마워, ‘헬레나’.
지휘관: 그럼…….
통신: ――
멤피스: 지휘관. 소유즈와 연락은 됐지? 이제 어떻게 하면 돼?
지휘관: 그래. 상황은 매우 명확해.
지휘관: 우선 클레망소에게 심판정 건물을 임시 지휘 본부로 쓰고 싶다고 연락해줘.
지휘관: 그리고 비스마르크에게도 긴급하게 의논할 건이 있다고 전해줘.
지휘관: 그런 다음 너희도 바로 심판정 건물로 넘어와. 나는 뒤처리 좀 하고 갈게.
멤피스: 뭐…? 잠깐만, 심판정…… 어?
지휘관: 잘못 들은 거 아냐. 우선은 내가 말한 대로 해줘. 심판정에 도착하면 다 설명해 줄게.
멤피스: …응. 알겠어!
멤피스: 바로 처리할게. 그럼…!
지휘관: 자…….
지휘관: 다음은 새러토가에게 연락할 차례군….
~20. 프로즌 엔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새러토가의 개인 채널로 전화를 걸었다.
통신: ――――
새러토가: ――네에~ 새러토가야♪
지휘관: 새러토가, 지금 괜찮아?
새러토가: ……어? 아! 지, 지휘관……. 무슨 일이야? 갑자기…?
새러토가: 저기, 새러토가. 지금 좀 바쁜데….
지휘관: ‘프로즌 엔젤’ 작전 때문에?
새러토가: ……윽.
새러토가: 역시 지휘관은 속일 수 없구나…….
새러토가: …어떻게 알았어?
새러토가: 그리고 지금 남극 전역에는 재밍이 걸려 있을 텐데 어떻게….
새러토가: 아, 미안…… 못 들은 걸로 해줘…….
새러토가: 지휘관이니까 무슨 수가 있었겠지…. 남극 상황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을 테고….
지휘관: 응. 네가 드로이드하고 싸우고 있다는 것도 알아.
새러토가: ………….
지휘관: 싸우는 중에 미안하지만, 중요한 이야기야.
지휘관: 특수 광물과 큐브의 관계, 세이렌의 음모……. 새러토가라면 모를 리가 없겠지.
새러토가: ……으, 으응…….
지휘관: 그래서 더욱 네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어.
지휘관: 의장과 공명할 수 있는 광물이라는 명백한 함정을 네가 정말 몰랐을까?
지휘관: 그리고 저번에 ‘별바다’에서 네가 안전 규칙을 무시하고 컨스텔레이션에게 허가해줬던 실험도….
지휘관: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결정들…… 내가 아는 새러토가답지 않아.
지휘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려 줄 수 있어?
새러토가: …지휘관은 아직 유럽에 있지……?
새러토가: 다행이다…. 그럼 지휘관은 안전하구나….
새러토가: …지휘관 말이 맞아. 출발하기 전부터 이번 작전은 함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새러토가: 그래서 가능한 한 온갖 병력을 끌어모아서 대규모 함대를 편성한 거야.
새러토가: 그 특수 광물이 멘탈 큐브와 아무 관련 없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어.
새러토가: 그래도… 만에 하나 정말로 효과가 있다면…?
새러토가: ……지휘관도 알잖아?렉싱턴 언니가 쓰러지고 나서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 치료할 방법조차 찾아내지 못했잖아.
새러토가: 세이렌… 어쩌면 그 뒤에 숨어 있는 누군가한테는 식은 죽 먹기일지도 모르는데….
새러토가: 그래서 어떻게든 찾아보려고 했어…. 렉싱턴 언니를 구할 방법을….
새러토가: 저쪽에서 먼저 미끼를 던졌으니까 한번 물어보자는 마음으로….
새러토가: 어차피 상황이 더 나빠지진 않을 테니까…….
지휘관: 렉싱턴은 새러토가의 언니만이 아냐.
지휘관: 내가 군사학원에 다닐 때 많은 걸 가르쳐 주기도 했고, 유니온에 부임했을 때도 줄곧 곁에서 나를 지원해줬어.
지휘관: 단순한 부하가 아니라, 내게도 정말 소중한 동료야.
지휘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렉싱턴을 구하겠다고…. 새러토가와 했던 약속은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지휘관: 그러니까 날 믿어줘. 그리고… 이제 혼자서 끌어안는 건 그만둬.
새러토가: …….
새러토가: 그래도…… 별로 시간이 없어…….
지휘관: 렉싱턴의 상태는 매우 안정적이야. 믿어줘. 반드시 치료법을 찾을 테니까.
새러토가: 하지만 ‘태양’이………. 아니, 아무것도 아냐.
새러토가: 아무튼 지휘관! 지금 엄~청 도움이 필요해!
새러토가: 현재 남극에 나타난 드로이드의 숫자는 프로즌 엔젤 함대의 대응 한계를 넘었어!
새러토가: 수업 때 배웠던 ‘남극 조약’ 기억하지?
새러토가: 원격 지휘도 지휘지만 지금은 그 조약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휘관: ……그래. 믿어줘서 고마워.
새러토가: 에헤헤… 난 항상 지휘관을 믿고 있는걸!
새러토가: 좋아~ 그럼 유니온 함대의 지휘권을 공식적으로 지휘관에게 넘길게~
새러토가: 지휘관. 마음 가는 대로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줘♪
~21. 회담
아이리스. 심판정 본부
임시 지휘 본부
잠시 후
예상대로 클레망소는 심판정 건물을 빌려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동의했다.
새러토가와 통신을 마치고 지휘 본부에 도착하자 이미 모든 지휘 계통 설정이 끝난 상태였다.
멤피스: 지휘관 말대로 새러토가 함대와 소유즈 함대의 퇴각로를 재설정했어.
멤피스: 과학 연구소의 인력 대피도 동시에 진행 중이야. 현재까지는 모두 순로조워.
지휘관: 좋아. 일단은 한숨 돌릴 수 있겠군.
짝짝짝――
클레망소: 몸은 유럽에 있는데도 수천 킬로 떨어진 곳에서 승리를 거두다니.
클레망소: 역시 우리 지휘관이야. 후후. 나중에 평화가 찾아오면 정치인 해도 되겠는데?
지휘관: 너무 치켜세우지 마. 아직 진형을 바로 세운 정도밖에 안 되니까.
지휘관: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남극으로 날아가고 싶은데…….
지휘관: 아무튼 비스마르크하고 연락할 준비는 됐어?
클레망소: 그래. 요청하신 대로 비밀 회선을 준비했어. 그걸 전해주러 온 거야.
클레망소: 밀실에 설치해 뒀으니까 아무도 대화 내용을 듣지 못할 거야.
지휘관: 클레망소 너도 포함해서, 겠지?
클레망소: 후후후. 글쎄♪
클레망소: 비스마르크는 이미 대기 중인데, 신경 쓰이면 시간을 바꾸자고 할까?
지휘관: 물론 아니지. 안내해줘.
클레망소: 그래. 이쪽으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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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정 본부. 밀실
비스마르크: 만나서 반가워, 지휘관.
비스마르크: 일찍이 프리드리히가 지휘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고 건의한 적이 있었지.
비스마르크: 아쉽게도 적절한 기회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비스마르크: 설마 우리의 첫 공식적인 대화가 이런 자리에서 이루어질 줄은 몰랐네.
비스마르크: 아무튼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은 남극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과 관련이 있겠지?
지휘관: 음? 클레망소가 아무 말도 안 했어?
비스마르크: 아아. 클레망소는 단지 남극 대륙에 대한 정보 공유와 협조를 바란다는 말뿐이었어.
비스마르크: 구체적인 내용은 지휘관과 직접 논의하라면서 물러섰지.
지휘관: 클레망소답군.
지휘관: 그럼, 현재 남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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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 남극에서 특수 광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지휘관이 의도적으로 나와 소유즈에게 흘린 거라고?
비스마르크: 클레망소는 진작에 네 편이었던 건가?
→ 맞아(씨익)
→ 그, 그렇지……?
→ …………
비스마르크: 뭐가 됐든 대단한 솜씨군
비스마르크: 프리드리히가 평소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있었어. 후후후.
지휘관: 아쉽게도 드로이드가 나타나리라는 예상까지는 못했지만 말야.
지휘관: 저대로 방치하면 세계박람회 때보다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지휘관: 다행히 상대는 한번 싸워 본 적이야. 그리고 이전 경험에 미루어보면 ‘중첩’도 아직 시작되지 않았어.
지휘관: 파먀티 메르쿠리야 META는 마르코 폴로처럼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하지도 않았고, 인적이 드문 남극 대륙인 만큼 개념적으로 공고하지도 않을 거야.
지휘관: 우리가 일치단결한다면 아직 승리할 기회는 있어.
비스마르크: 단결인가….
지휘관: 그래. 우리가 남극에 투사할 수 있는 전력은 매우 제한적이야. 이번 사건을 해결하려면 각 진영이 편견을 버리고 단결해야 해.
지휘관: 그러니 남극에 있는 철혈 함대를 앞으로 있을 전투에 합류시켜줘.
지휘관: …물론 다른 예비 전력이 있다면 그것도 포함해서. 비스마르크라면 분명 준비해 놨을 거라 믿어.
비스마르크: 남극에 재밍이 발생한 걸 감지하고 나서 나도 나름대로 준비를 하긴 했지…….
비스마르크: …그럼 이렇게 하자.
비스마르크: 앞으로 있을 모든 전투에서 철혈 함대의 지휘권을 네게 이양하겠어.
비스마르크: 이러면 얽매이는 일 없이 네가 생각한 최선의 계획을 펼칠 수 있겠지?
지휘관: ……철혈 함대를 내가 직접 지휘하라고?
지휘관: 네가 그런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어. …고마워.
비스마르크: 천만에. 이제 네가 내리는 명령은 전선의 모든 철혈 함선에게 전달될 거야.
비스마르크: 네가 원하는 대로 다뤄줘.
지휘관: 그래. 소중히 다룰게.
비스마르크: ……고마워.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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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정 본부. 복도
클레망소: 어머.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클레망소: 표정을 보니 대화가 잘 풀렸나봐?
클레망소: 설마 비스마르크에게 그런 일까지 시켰을 줄이야♪
→ 역시 다 들었잖아…….
클레망소: 글쎄? 들었나?
→ 클레망소!
클레망소: 후후.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클레망소: 농담은 이만 하고…. 네가 비스마르크와 얘기하는 동안 로열 함대와도 연락이 닿았어.
클레망소: 그 애들도 드로이드의 출현을 알아차린 모양인데,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나봐.
클레망소: 혹시 저번 사건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걸까~?
클레망소: 아무튼 그 아이들도 잊지 말아줘? 지휘관님♪
클레망소: “로열 함대. 나는 아주르 레인의 지휘관이다.”
클레망소: “남극 조약에 따라 남극 전역에서 내 권한은 무제한이다.”
클레망소: “귀 함대의 전술 지휘권을 지금 즉시 이쪽으로 이양하라. 그쪽은 거부할 권리가 없다.”
클레망소: 라고, 내가 대신 전해줄까?
지휘관: 아니, 그냥 내가 보낼 테니까 넌 신경 쓰지 마…….
클레망소: 어머, 아쉽네~♪
~22. 변수
심판정 본부
임시 지휘 본부
잠시 후
‘헬레나’의 도움으로 남극 대륙의 재밍은 거의 무력화됐다.
안정적인 통신 회선이 새로 구축되었고, 지휘 체계를 통해 전 함대의 위치와 전력, 상황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각 진영의 함대들은 하나로 뭉쳐 ‘아주르 레인’ 연합 함대로서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새러토가는 태평양 전역에 있던 유니온 함대 1대도 차출해 왔다.
‘우연히’ 남극해 인근에서 임무 수행 중이었다고 그러긴 했는데…….
지휘관: (역시 새러 선생님… 인망 하나는 탁월하다니까…….)
지휘관: (엔터프라이즈 함대의 병력까지 빼오다니….)
지휘관: (좋아, 그럼……)
지휘관: 우선 과학 연구소 인력 철수부터 끝내야 하는데….
지휘관: 유니온하고 로열 연구소는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미 철수가 끝난 상태야.
지휘관: 철혈은 당초 계획대로 북방연합 연구소로 이동 중이고, 합류가 끝나면 철수를 진행할 거야.
지휘관: 각 철수 팀 및 호위 전력은 철수가 완료될 때까지 작전에는 참가하지 않기로 했고.
지휘관: 각종 보고에 따르면 지난번 하이어로팬트의 강림을 이끌었던 ‘신의 고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
지휘관: 드로이드가 ‘신의 흔적’을 살포 중인 것은 확인됐지만, 지난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 속도가 느려.
지휘관: 아무래도 내 추측이 맞은 것 같군….
지휘관: 파먀티 메르쿠리야 META는 마르코 폴로처럼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기는커녕 그냥 자기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 같아.
지휘관: 그렇다면 쐐기가 될 그녀 자신만 무력화한다면 이번 사태를 끝낼 수 있을 거야.
지휘관: 일단 ‘중첩’만 멈추면 나머지 드로이드나 무인 병기들은 천천히 처리해도 돼.
지휘관: 다행히 파먀티 메르쿠리야 META는 소유즈 함대만을 집착하면서 계속 뒤쫓고 있어.
지휘관: 좋은 의미에서 주변 상황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지.
지휘관: 덕분에 지정 구역으로 유도해서 섬멸할 수 있을 가능성이 생겼어.
지휘관: 소유즈 함대는 지금 ‘융설 구역’에서 지정 구역으로 철수하고 있어.
지휘관: 유니온 함대는 공중 지원을 준비 중이고.
지휘관: 파먀티 메르쿠리야 META를 어떻게 잘 부추길 수만 있다면 작전은 효과적으로 진행될 거야.
지휘관: 소유즈의 말에 따르면 아무래도 정서가 불안정한 것 같으니까.
지휘관: 지정 구역의 매복 전력은… 철혈 함대는 브륀힐데, 힌덴부르크, 펠릭스 슐츠 3척.
지휘관: 유니온에서는 새러토가가 주력 함대를 이끌고 향하고 있고.
지휘관: 인원은 전함 워싱턴, 노스캐롤라이나, 콜로라도, 메릴랜드, 웨스트버지니아. 항공모함 새러토가, 레인저, 인디펜던스.
지휘관: 그리고 순양함과 구축함 수십 척….
지휘관: 그 밖에도 임플래커블이 이끄는 로열 함대와 프린츠 하인리히의 철혈의 증원 함대.
지휘관: 그리고 ‘우연히 인근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던’ 벙커힐의 예비 함대를 포함하면…….
지휘관: 결전을 치르더라도 승산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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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대륙. 빙원
새러토가: 소유즈, 들려? 그쪽 상황은 어때?
소비에츠키 소유즈: 피해는 예상 범위 안입니다. 곧 지정 구역에 도착합니다.
새러토가: 공중 지원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버텨줘!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통상적인 함재기의 공습으로는 드로이드에 가하는 피해가 상당히 제한적일 것입니다.
새러토가: 흐흥~♪ 누가 함재기만 데려왔대?
새러토가: 이번에 특별히 좋은 걸 준비했거든! 나중에 보여줄게!
브륀힐데: 소유즈. 철혈 함대도 준비를 마쳤다. 이제 너희만 지정 구역에 도착하면 돼.
프린츠 하인리히: 증원 함대도 엔진을 부릉부릉 울리면서 가고 있어!
프린츠 하인리히: 아이젠 군! 더 빠르게!
벙커힐: ……유니온 태평양 함대 소속 벙커힐이다. 현재 지정 구역으로 이동 중이다.
임플래커블: 로열 남극 함대도 앞으로 3시간이면 도착해. 함께 싸울 수 있어서 영광이야.
잉그러햄: 여기는 잉그러햄. 유니온과 로열의 철수 작업이 거의 끝났어. 호위 함대도 곧 작전에 참가할 거야.
탈린: 북방연합과 철혈의 철수는 아직 진행 중이야. 뭐, 최대한 서두를게.
소비에츠키 소유즈: 상황 보고 감사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정 구역에 도착한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폴타바: 지휘관은 유럽에 앉아서도 이렇게 대함대를 동원할 수 있구나.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저도 여기까지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그래야 우리가 눈여겨본 지휘관 동지이지 않겠습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파먀티 메르쿠리야 META는 제가 유도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시대로 움직여 주십시오.
~23. 은계의 광채
밤은 깊었고,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눈부신 오로라 속에서 추격전은 마침내 끝을 맞이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흐응. 갑자기 왜 멈췄나 했더니 역시 매복이 있었구나~
프린츠 하인리히: 아이젠 군, 쟤가 나쁜 놈이야! 얼른 해치우러 가자!
펠릭스 슐츠: 흥. 왠지 위험한 냄새가 나는 녀석이네.
힌덴부르크: 우리가 할 말은 아니지만, …뭐 됐나.
워싱턴: 남극에선 화려하게 해주셨더군! 이제 그 대가를 치를 때다!
클리블랜드: 해상의 기사로서 더 이상은 날뛰게 두지 않겠어!
임플래커블: 그만 포기하고 얌전히 오라를 받는다면 설교 정도로 끝날 수도 있는데?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흐응…. 미끼에 이끌린 쥐들이 서로 연합하다니.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옵저버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텐데 말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뭐 본체와 연결이 끊긴 옵저버야 이 정도밖에 안 되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본체’와 연결이 끊겼다고요?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뭐야, 아직도 몰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머리를 좀 써서 생각해 봐~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옵저버가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었으면 컴파일러가 그렇게 쉽게 가게 내버려 뒀겠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게다가 자기 본체를 위험에 빠트리기까지 하고.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역시 너희 ‘가지’의 옵저버는 이상하다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이유는 모르겠지만 본체와의 접속을 장기간 끊은 것 같아.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래서 업데이트도 안 되고, 자연 연산 시스템에 접근할 수도 없고, 라플라스의 악마도 사용할 수 없지.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로컬 기능만 사용할 수 있는 옵저버가 무슨 쓸모가 있겠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무능 그 자체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래서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거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자신의 본체 주변에서 발생한 위협에도 대처하지 못할 만큼 약해진 겁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맞아♪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진짜 웃긴 건 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지!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럴 리가 없잖아! 아하하하♪
소비에츠키 소유즈: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은 당신에게는 통용될 수 없겠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옵저버만 없애고 조용히 떠나는 것은 어떻습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당연히 안 되지~ 쿠우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러고 보면 3가지 목적 중 아직 남은 2가지를 듣지 못했네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한 번 막아냈던 일이니 두 번은 통하지 않을 겁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의 계획은 반드시 실패할 거예요.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여기까지 왔는데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이지?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하하하! 할 수 있으면 해봐!
~24. ‘서광’을 향해
――――!!
폭발과 함께 드로이드가 또 한 기 파괴되었다.
전투 시작 30분 후. 전황은 이미 아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오그네보이: 너무 약해요!
오그네보이: 저희 화력에 완전히 밀려버렸어요!
스비레피: 그만큼 우리가 강하다는 거지!
오그네보이: 하지만 나름 적의 대장인데 이렇게 약해도 되는 건가요?
스비레피: 예전에 지중해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봐.
오그네보이: 아! 그때는 심판정의 화살에 픽 하고 쓰러졌죠~!
오그네보이: ……역시 이번에는 임팩트가 약하네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상해요…. 포탄이 계속 명중하는 건 그녀가 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평범하게 생각하면 자멸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크론시타트의 보고서에서 이런 전술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자신의 손상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럼으로써 상대의 정신을 좀먹는 ‘보놈 리샤르’라고 자칭하는 존재――)
소비에츠키 소유즈: (설마 이번에도…….)
소비에츠키 소유즈: ‘파먀티 메르쿠리야’. …당신은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겁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과거를 되돌아보는 건 좋습니다. 추억에 잠기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이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신은 살아남았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렇다면 스러져 간 동료들의 소망을 짊어지고 계속 싸워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동료들이 과연 지금 당신의 모습을 바랐을까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은 동료들… 아니, 당신 자신의 과거를 짓밟고 있습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하하하! 집착? 쿠우가 집착하는 걸로 보여?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니야―! 내가 이러는 이유는, 이게 바로 죽은 동료들의 소망이기 때문이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하하하하――――!!!!
통신기를 통해 소녀의 목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무언가가 퍼졌다.
오그네보이: 으아아아아…. 목소리가…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아요!
스비레피: 왠지 좀 추워지지 않았어?!
폴타바: 소유즈! 적의 부상이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아!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렇게는 안 돼요…!
――――!!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소녀에게 소유즈는 포격을 가했다.
하지만 포탄은 목표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뚝 물속으로 떨어졌다.
포탄이 떨어진 지점을 중심으로 바다가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 남다른 빙결 속도에 함선들의 행동은 봉쇄되고 말았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역시 그랬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일부러 공격을 맞아준 거였어요….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하하. 그래야만 비로소 ‘본질’에 닿을 수 있거든.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본질에 닿으면 비로소 진짜 과거를 알게될 거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오, 그래 이거! ‘전진전선’에 관한 거. 예전에 그 녀석이 아주 조금 알려줬을 뿐이지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지금은 마치…… 내가 직접 겪었던 일처럼 느껴져.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후후후… 조각에서 보이네……. 오호라, 과연~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 벙커는 단순한 시설이 아니었구나~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전진전선’으로부터 회수한 자료를 복원해 만든 장치도 그 안에…… 맞지?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래서 그 장소에 벙커를 짓기로 한 거지? 그치, 소유즈~?
소비에츠키 소유즈: ………….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하하하! 진짜 웃겨!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내가 집착하고 있다고? 너희도 만만치 않아!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서광 계획’이야말로 가장 큰 집착이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걸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야! ……‘서광 계획’이야말로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불행해진다고!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쿠우가 가르쳐 줄까? 이 계획에 관련된 사람이 마지막에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알아?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관심 없다고 해도 가르쳐 줄 거지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계획의 입안자는~ 실험 장치 검증 시에 데리고 있던 함대와 함께 통째로 행방불명!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래서 계획은 동결되고, 점차 다른 계획의 부속품이 되어버렸지!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결국 그 계획이 실행됐을 때, 모든 함대. 그리고 마지막 해군 대장까지 모두 희생되고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마지막 빛이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싸워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래서 다들 살 수 있는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면서, 모두 죽을 때까지 싸웠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이게 바로 ‘서광 계획’이야! 이게 바로 계승된 ‘집착’이라고!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너희도 설마 이렇게 되고 싶어서 그래?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멋대로 희생하고, 살아남은 사람에게 모든 걸 지우려고?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안티 엑스처럼, ‘잔불’처럼……. 죽은 자의 소망을 짊어지고 영원히 고통받게 하려고?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걔네들 지금 어떻게 됐게? 너희도 알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이런 비극만을 낳는 순환은 진작에 그만뒀어야 했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도망갈 방법이 있는데 도망가지 말라고 하는 건 이상하잖아?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도 세이렌의 실험장에서 왔으니, 세이렌의 지배를 받았을 때 저항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세이렌의 지배를 받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세이렌의 지배를 받는 길을 택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역시 저는, 그런 길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니야 소유즈. 안티 엑스도 제각기 차이가 있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우리도 사람은 모두 똑같다고 말하지는 않잖아? 안티 엑스도 마찬가지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멍청하고 명령에 따르는 것밖에 모르는 하층 단말은 물론 해치워야 하지만, 아비터는 달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비터들은 아무튼 재밌고… ‘그 녀석’은 특히 더 재밌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쿠우는 놈들의 부하가 아니야. 어디까지나 협력 관계일 뿐.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면서 함께 답을 찾고 있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 답이 ‘도망’입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자진해서 자살하는 것보단 훨씬 나아!
소비에츠키 소유즈: 우리는 자살할 생각도, 멸망의 길을 걸을 생각도 없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미지의 바다를 개척하고 미지의 항로를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고귀한 정신이며, 인류가 여기까지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비록 좌초되거나 풍랑에 휩쓸려도, 그 쓰라린 경험은 교훈으로서 훗날의 초석이 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서광 계획’은 결국 실패했지만, 우리는 그것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계획을 보완하여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비록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우리의 시체를 넘어 언젠가는 이룩할 후손이 나타나리라 믿고 계속 노력하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직도 그런 억지를…….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운명도, 미래도, 윤회는 언젠가 끝나.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너희들의 미래는 이미 결정됐어. 나는 다 봤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그 미래에는 아름다운 일이라곤 조금도, 이만큼도, 하나도 없어!
파먀티 메르쿠리야(META): 아름다운 날은 과거 속에만 존재하는 거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뇨.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손으로 개척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것을 당신이 결정할 자격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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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시각. 심판정 본부 암호화 채널.
지휘관: ……‘헬레나’.
지휘관: 방금 들었던 ‘서광 계획’의 내용이… 정말 사실이야?
헬레나(META): ……그건 그녀가 본 기억. 단지 하나의 현실에 지나지 않아.
헬레나(META): ‘현실’은 반드시 ‘진실’이라고 할 수 없어.
헬레나(META): “믿어 의심치 않는 현실만이 진실이 된다”…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야.
지휘관: “믿어 의심치 않는 현실만이 진실이 된다”…….
헬레나(META): 지금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헬레나(META): 얼른 돌아가서 지휘에 전념해. 지금은 마음 놓을 때가 아냐.
지휘관: 마지막으로 하나만. 바다를 얼린 저 힘 말인데….
지휘관: 너도 전에 ‘탑’의 힘을 이용해서 전장의 환경을 바꾼 적이 있었지?
헬레나(META): ……그래. ‘탑’의 힘을 사용하면 순식간에 바다를 얼릴 수도 있어.
헬레나(META): 하지만 파먀티는 어디까지나 표면만 살짝 얼렸을 뿐이야.
헬레나(META): 즉 단순한 눈속임이라는 거지.
헬레나(META): 애초에 저 아이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강하지 않아. 단지 허세를 부리고 있을 뿐이지.
헬레나(META): 이 상황은 네가 모은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어.
헬레나(META): 자, 망설이지 말고 계속 싸워.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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