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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계유회 上

킹루클린 2024. 3. 4. 19:47

 ~01. 원양 항해
북방연합
흑해연안기지
오전

폴타바: 소유즈. 물자 준비 끝났어.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신속하군요. 수고하셨습니다, 폴타바.

소비에츠카야 벨로루시야: ‘신속’이라……. 결국 보급 수송기와 동행하기로 한 거야?

크론시타트: 맞아. 흑해에서 소코트라 섬으로 가는 루트는 하늘이 더 안전하고, 정기 수송편도 있으니까 상층부의 눈을 속이기에는 딱 좋아.

크론시타트: 소코트라 섬에 도착하면 소유즈는 곧바로 특수 잠수함으로 갈아타고,

크론시타트: 목표 지점까지 해저로 이동할 거야.

키로프: 남극해에 동원할 수 있는 잠수함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군.

키로프: 그럼 이대로 남극까지 직행하는 건가? 포트루이스에서의 보급도 해저에서 실시하나?

크론시타트: 걱정하지 마. 항만 시설에 숨겨진 비밀 잠수함 부두에서 보급이 이루어질 거야.

크론시타트: 필요한 보급품도 포트루이스에 보급 수송을 간다는 이유로 조달했지.

소비에츠카야 로시야: 이로서 작전의 은밀성은 최대한 보장되는 것이겠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일정은 크론시타트가 직접 세웠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소비에츠카야 로시야: 하지만 그 계획도 어디까지나 항행까지만이겠지. 남극에 도착한 이후에는?

소비에츠카야 로시야: 은밀함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호위 전력을 이렇게까지 줄여도 되는 건가? 상황을 고려하면 만전의 전력을 준비하는 편이 나을 텐데….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번 목적은 어디까지나 의장과 공명하는 특수 광물을 조사하러 가는 것이지, 전투가 아닙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남극의 정세는 상당히 안정되어 있으며, 세이렌의 습격 횟수는 진영 간 충돌 횟수보다도 적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리고 ‘아주르 레인’ 재결성이라는 의제가 협상 테이블에 오른 만큼, 각 진영은 이 시점에서 충돌은 지양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현지에는 탈린과 양산함 함대가 있고, 폴타바까지 함께하니 이번 작전의 전력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여러분은 각자의 임무에 전념해 주세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로시야, 벨로루시야, 키로프. 제가 귀환할 때까지 북방연합 함대의 지휘를 부탁드립니다.

키로프: 아아. 걱정 마.

소비에츠키 소유즈: 보로실로프. 아이리스에서의 회담은 아브로라 씨, 파먀티 씨와 협의해서 잘 진행해 주십시오.

소비에츠키 소유즈: 북방연합 대표로서 만일의 경우 결단을 내릴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잘 부탁드립니다.

보로실로프: 응. 작은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할 테지만, 큰 문제는 본토로 보내서 키로프와 함께 처리할게.

아브로라: 현재 상황을 보면 회의장 쪽에서는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지휘관 동지의 동향도 주의 부탁드립니다.

크론시타트: 아이리스 심판정이 감시 중인 성도에서 공작을 펼치는 건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해볼게.

파먀티 메르쿠리야: 정 안 되겠으면 쿠우한테 맡겨! ‘히든카드’가 있거든!

소비에츠키 소유즈: 히든카드……?

파먀티 메르쿠리야: 응! 쿠우가 지휘관한테 가서 먹고 자고 뒹굴뒹굴하면서 놀다 오면 되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후후후. 대단한 수를 생각해 내셨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럼…… 저는 슬슬 출발하겠습니다.

소비에츠카야 로시야: 행운을 빌어, 언니.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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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성도
아주르 레인 임시 시설
잠시 후

멤피스: 지휘관. 클레망소한테 연락이 왔어. ‘북극 토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지휘관: ‘북극 토끼’라면… 소유즈?

지휘관: 직접 움직일 줄은 몰랐네. 의장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

지휘관: 유니온은? ‘프로즌 엔젤’ 쪽은 어때?

멤피스: 응. 새러토가 쪽은 아직 PH항에서 집결 중이야.

멤피스: 서로 다른 전역과 본토 방어함대에서 차출한 병력들이라 그런지 항구가 무척 소란이네.

멤피스: 병참 문제도 있으니까 출발까지는 아마 4일 정도 더 걸릴 거야.

헬레나: 철혈하고 로열도 움직였어.

헬레나: 비스마르크의 부유섬 요새에서 함대가 출발했어. …목적지는 모르겠지만.

헬레나: 그리고 로열의 남극 함대도 시드니 사령부를 떠났어. …역시 목적지는 알 수 없어.

헬레나: 그래도 아마 둘 다 남극 대륙으로 향하고 있을 거야.

헬레나: …거리로 보면 로열 함대가 가장 먼저 도착할 것 같아.

지휘관: 로열이 제일 가까우니까. 우리하고 동시에 정보를 포착한 게 틀림없어.

지휘관: ……그렇다면 이제 모든 진영이 특수 광물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지휘관: 유니온이 자원을 독점하게 해서 각 진영을 분열시키려는 세이렌의 음모는 깨졌다고 봐도…….

지휘관: 아니, 뭔가 좀 이상해.

헬레나: ……지휘관?

지휘관: 북방연합도, 철혈도, 로열도 소식을 접하고는 모두 상황을 확인할 소규모 함대를 파견하는 것으로 끝났어.

지휘관: 그런데 새러토가만 대규모 함대를 집결시켰어.

지휘관: 렉싱턴 때문이라면 권한을 총동원해 함대를 급파해도 모자랄 판에 서서히 함대를 모아서 출발하는 방법을 택하다니.

지휘관: 가장 먼저 정보를 포착했다는 선발 우위를 빼앗길 수도 있는 판인데 왜 그랬을까?

멤피스: 그러네…. 설마 새러토가는 아무도 모르는 정보를 갖고 있는 걸까?

지휘관: 어쩌면 남극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안전하지 않을지도 몰라.

지휘관: 현장에 직접 가볼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지휘관: 멤피스, 헬레나. 각 진영의 동향을 계속 확인해줘.

지휘관: ……나도 여차할 때를 대비해 ‘비장의 수’를 준비할 테니까.



“나는 한 시대의 영화와 파멸을 모두 봤어.”
“나는 나선 속에서 하나의 법칙을 찾아냈어.”
“미래는 언제나 앞에 있고, 과거는 언제나 뒤에 있어.”
“미래에는 언제나 어둠이 있고, 과거에는 언제나 빛이 있어.”
“그럼 왜 굳이 앞으로 나아가야 해?”

“미래를 과거로 바꾸자.”
“어둠을 버리고 빛을 고르자.”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안일한 과거로 돌아가자.”
“‘낙원’으로 돌아가자――”
“――그게 좋지 않아?”





 ~02. 남극해
남극해 수중
북방연합 특수 잠수함 ‘칼린카’
며칠 뒤

폴타바: 소유즈. 남극해에 들어왔어.

폴타바: 그런데 우리에게는 남극해의 수중 환경에 관한 데이터가 별로 없어.

폴타바: 여기는 인적도 드문 곳이니 슬슬 부상해도 괜찮지 않을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아무리 은밀하게 행동해도 연구소에 도착하면 아마 노출되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미 충분히 거리를 벌렸으니 안전에 주의하면서 부상하도록 하세요.

폴타바: 알겠어. 좋아, 부상하자.

오그네보이: 와아♪ 드디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겠네요!

스비레피: 그냥 빙산들이잖아? 우리 북방연합에서도 질리도록 볼 수 있는 건데.

스비레피: 이 정도로 들뜨지 마. 어린애도 아니고…….

오그네보이: 그치만 여기는 남극이라구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대륙인걸요!

오그네보이: 두근두근, 콩닥콩닥♪ 스비레피도 같이! 두근두근!

스비레피: 흐흐흐흔들지 마! 알겠으니까 놔줘!

오그네보이: 에헤헤. 미안해요오♪

스비레피: 뭐, 처음 와보는 곳이니까 두근거리는 것도 이해는 해.

스비레피: 게다가 계속 잠수함 안에만 있었으니까 신선한 공기도 한번 쐬고 싶고…….

폴타바: 후후후♥ 다들 꽉 잡으렴. 얼마 안 남았어.

폴타바: 부상 개시!

함교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순백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오그네보이: 이게 남극해구나……. 아직 대륙에 도착한 것도 아닌데 온통 새하얘요……!

오그네보이: 예뻐요… 멋져요!

스비레피: ……그러니까 몇 번을 말해? 우리가 있는 북극하고 별반 다르지도 않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게 말이지… 사실 달라!

파먀티 메르쿠리야: 북극의 거대한 빙하도 여기서는 새 발의 피!

파먀티 메르쿠리야: 남극점에 가까워질수록 더 굉장해진다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 봐봐. 새하얀 대륙! 얼음으로 뒤덮인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파먀티 메르쿠리야: 남극 대륙은… 북방연합 영토의 절반보다도 크거든!

스비레피: 음, 확실히 크네…. 그럼 유니온보다도 더 크다는 거야?!

파먀티 메르쿠리야: 맞아♪ 게다가 이렇게 대륙 전체가 두꺼운 얼음하고 눈으로 덮여 있어.

파먀티 메르쿠리야: 인적이 있는 곳이라고 해봤자 각 진영이 세운 과학 연구소뿐!

파먀티 메르쿠리야: 문명에서 동떨어진 미지로 가득한 대륙에 발을 내딛는다고 생각하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 엄청 두근거리지 않아?

스비레피: 어쩐지 좀 의욕이 생겼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새하얀 대륙…….)

소비에츠키 소유즈: 조금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네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아, 맞다. 소유즈는 ‘거짓 신’ 사건에 휘말렸었지.

파먀티 메르쿠리야: 흑해 기지에서 박람회장까지 온통 하얗게 물들고……. 정말 큰일이었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랬었죠.

파먀티 메르쿠리야: 싸우는 동안 의장에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었네~

소비에츠키 소유즈: 유지 보수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혹사를 했기 때문에, 이번 광물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런데… 이 위화감은 대체?)

파먀티 메르쿠리야: 괜찮아 괜찮아! 분명 어떻게든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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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남극해를 나아갔다.
동력과 쇄빙 능력을 강화한 잠수함은 충각으로 유빙을 가르며 길을 만들었다.
구축함들의 설렘은 연이어 들리는 쇄빙 소리에 점점 사라져갔다.

오그네보이: ……새하얀 세상…. 오래 있으니까 무서워요… 하나도 안 예뻐요…….

스비레피: 아까는 예뻐 죽겠다고 들떴던 주제에!

오그네보이: 으으…… 계속 하얘요…… 백설탕처럼…….

스비레피: 그래그래. 귀엽게 표현하려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지루한 게 사라지진 않아.

스비레피: 소유즈. 하나 물어봐도 돼?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저도 지루해서 머리를 좀 굴려야 되겠네요.

스비레피: 왜 남극은 아무도 점거하지 않은 거야?

스비레피: 추운 건 북방연합도 똑같지만, 그래도 다들 북극해 쪽에는 항로를 만들거나 기지를 세웠잖아.

소비에츠키 소유즈: ……좋은 질문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설명하면 길어지니까 조금 편안한 곳에서 이야기할까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뭐야 뭐야? 소유즈 선생님의 수업 시간? 그럼 쿠우 마실 것 좀 가져올게~!



 ~03. 남극 조약
자동 항행하는 잠수함을 두고 함선들은 선내 식당에 모였다.

오그네보이: 주스 감사합니다~


스비레피: 왜 주스야……?

파먀티 메르쿠리야: 작전 중에는 술 마시면 안 되지~♪

폴타바: 그래. 아직은 주변을 경계할 때야. 술통은 쇠사슬로 묶어버려야지.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래서 스비레피의 질문에 대한 설명은? 소유즈 선생님 부탁드려요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음…. 이 문제는 몇 단계에 걸쳐서 설명해야 합니다.

잔에 담긴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소유즈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몇 년 전 ‘아주르 레인’이 아직 분열되지 않았을 때, 남극 대륙의 귀속을 놓고 각 진영에서 한차례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오랜 회의를 걸쳐 각 진영은 합의를 보았고, 그렇게 체결된 것이 ‘남극 조약’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조약이 발효된 이후 남극 대륙에 대한 주권 성명과 요구는 모두 동결한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남극 대륙은 어느 소속도 아닌 ‘아주르 레인’이 직접 관리한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각 진영은 ‘아주르 레인’의 허가가 있지 않은 한, 남극 대륙에 과학 연구소, 혹은 대세이렌 군사 거점을 건설할 수 없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남극 대륙의 지휘권은 ‘아주르 레인’이 관할하며, 각 해역의 대세이렌 작전 지역과 동격, 혹은 그 위로 간주한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레드 액시즈가 성립된 이후에도 남극 대륙에 관한 아주르 레인의 권한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남극 대륙 및 그 해역에서, ‘아주르 레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각 진영의 정부와 사령부보다 높은 지휘권을 가집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또한 남극 전역의 모든 군사력을 자유로이 동원할 수 있으며, 모든 군사 행동에 간섭할 수 있습니다.

스비레피: 모든 군사 행동……. 그게 세이렌을 상대로 한 전쟁이 아닐지라도….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스비레피: 그럼 지휘관 동지의 권력은 남극에서는 무제한이라는 거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무제한이라기엔 과장이 심하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지휘관 동지의 권력은 확실히 커집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휘관 동지는 ‘아주르 레인’의 지휘관이니까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남극 대륙에서는 전쟁은커녕 세이렌과의 대규모 충돌조차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남극 조약’도 지난 대전의 흐름을 이어받은 것일 뿐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시는 세이렌의 침공으로 각 진영은 근해를 방어하기도 벅찼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남극 대륙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나도 손을 댈 수 없지만 다른 진영도 손을 댈 수 없다――그런 편리한 조약은 그다지 많지 않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대전 후… 레드 액시즈가 설립된 이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남극 조약은 레드 액시즈에게는 아무런 구속력을 갖지 못했고, 철혈이 가장 먼저 남극 장악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들은 세이렌 기술을 리버스 엔지니어링 하여 남극에 군사 기지를 건설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층부의 승인 아래 유니온도 남극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상주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북방연합, 로열, 아이리스도 비슷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레드 액시즈와의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이리스는 패배하고 분열되어 남극 대륙을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로열은 전력을 축소하고 군사 기지 건설을 취소하였으며, 함대를 시드니 사령부로 철수시켰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북방연합도… 연구 기지만을 남겨두고 북극해에서의 세력 유지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 후 철혈과 유니온 사이에 산발적인 교전이 몇 차례 있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무튼 그 시기에 이곳은 전략적인 가치가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시다시피 아주르 레인과 레드 액시즈는 정전 협정을 맺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각 진영이 현재 아이리스에서 ‘연합 합병’에 대해 협상하는 중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만약 합병이 이루어지면 레드 액시즈 측 진영은 아주르 레인이 분열되기 전에 서명하고 발효된 조약과 협정에 재가입해야 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것에는 당연히 ‘남극 조약’도 포함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번 협상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적어도 모두가 화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한 남극 대륙의 판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현재 남극에 과학 연구소를 보유한 진영은 유니온, 로열, 북방연합, 철혈 4곳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 중 군사 기지까지 갖춘 진영은 유니온과 철혈 2곳…….

파먀티 메르쿠리야: 응응! 참고로 우리 북방연합의 과학 연구소는 철혈의 협력으로 지어진 거야!


스비레피: ……뭐? 처음 들었어!

폴타바: 나도 지금 처음 알았네….

소비에츠키 소유즈: ……맞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철혈의 기술 제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는 사람은 매우 적지만, 그렇다고 기밀 정보는 아닙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우리 북방연합과 철혈은 이미 세이렌이 구상한, 진영 간 반목을 조장하는 ‘대본’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와 프리드리히는 세이렌이 구축한 이 구도를 타파하기로 결의했고, 일련의 협력도 그 무렵에 이루어졌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남극 과학 연구소 건설은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세이렌과의 싸움은 언젠가 끝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 세계에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미래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인간의 문명과 사회를 철저히 전쟁만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소비에츠키 소유즈: 전쟁이 끝난 다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것이…… 과학 연구소의 존재 의의입니다.

폴타바: 다들 생각이 많았구나…….

스비레피: 아, 그러니까 이런 거지?

스비레피: 남극은 사람이 없으니까 세이렌도 쳐들어오지 않아.

스비레피: 세이렌이 쳐들어오지 않으니까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더 줄어들어.

스비레피: 그러니까 다들 적당히 놔두자고 협의한 게 남극 조약,

스비레피: 그런데도 다들 몰래 뭐라도 해보려고 한 게 과학 연구소…인 거지?

파먀티 메르쿠리야: 뭐, 그렇지♪

스비레피: 흐흥, 역시 나야~

파먀티 메르쿠리야: 남극에 사람은 없지만 귀여운 동물은 많다구?

파먀티 메르쿠리야: 이번에는 쿠우 선생님 시간~ 자! 남극 대륙에는 어떤 동물이 살고 있을까?

오그네보이: 저요! 펭귄이 살아요!

오그네보이: 통통하고 귀여운 펭귄! 엄청 귀여워요!


오그네보이: 이제 땅에 닿으면 펭귄을 볼 수 있나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마도 그럴 겁니다. 저희 과학 연구소는 펭귄 서식지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까요.

오그네보이: 와아~ 에헤헤……. 응? 스비레피, 왜 그래요? 무서운 표정으로….

스비레피: 펭귄은 통통하고 지방이 많지? 바비큐로 만들면 맛있을 거 같은데….

스비레피: 그리고 알도 낳으니까 오믈렛으로 써도 좋을 거 같고…….

오그네보이: ……흐엥? 이렇게 귀여운 펭귄을…… 너무 불쌍해요-!

스비레피: 귀여운데 맛있어……. 후후, 히히히.

파먀티 메르쿠리야: 네, 거기까지~~!

파먀티 메르쿠리야: 남극 조약에는 남극 대륙의 동물은 날짐승이든 들짐승이든 모두 보호받는다고 명확하게 나와 있어!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러니까 먹으면 안 돼! 절~~~대로 안 돼!


스비레피: 체엣. 북극에는 사냥꾼 있잖아.

오그네보이: 후우……… 다행이에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식료품은 충분합니다. 작전 기간 중 소비분 말고도 과학 연구소에 따로 보급할 분량까지 가지고 있으니까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굶을 일은 없을 테니 귀여운 펭귄은 구경하기만 하세요. 스비레피.

스비레피: 아, 알겠어…….

파먀티 메르쿠리야: 헤헹~ 쿠우 알겠다!


파먀티 메르쿠리야: 남극까지 왔는데 별미를 못 먹어서 서운한 거지!

스비레피: 오! 맞아, 그런 느낌!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럼 쿠우가 어드바이스 하나 해줄게! 날아다니는 거하고 뛰어다니는 건 못 먹지만….

파먀티 메르쿠리야: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들은 먹을 수 있어!

파먀티 메르쿠리야: 예를 들면 크릴새우 같은 거! 꽤 맛있다구!

파먀티 메르쿠리야: 참고로 펭귄 고기는 옛날 사람의 기록에 따르면 닭고기하고 별로 다르지 않대.

파먀티 메르쿠리야: 꼭 궁금하면 쿠우가 로스트 치킨 만들어 줄 테니 그걸로 참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덤으로 크릴 누들도! 이것도 높으신 분들 연회에 자주 나오는 메뉴라고 했으니까 맛은 보증할 수 있어!

파먀티 메르쿠리야: 뭐, 당시에는 크릴새우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스비레피: 흐음…. 맛있을 거 같진 않지만 궁금하긴 하네.

스비레피: 어? 근데 파먀티 씨 요리할 줄 알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가끔 해~ 추억의 맛을 떠올릴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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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

탈린: 여기는 북방연합 과학 연구소 ‘미르누이(Мирный)’.

탈린: ‘칼린카’호 식별 신호 확인 완료……. 남극에 온 걸 환영해.

소비에츠키 소유즈: 오랜만입니다, 탈린 동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북방연합으로부터 위로의 인사와 보급품을 가지고 왔습니다.

탈린: 그래그래. 오늘은 팔에 힘주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야겠네.

탈린: 설마 소유즈가 직접 올 줄은 몰랐어. 깜짝 놀랐다구.

탈린: 그리고… 됐다. 해역의 최신 데이터를 보냈어. 연구소까지 항로는 보는 대로야.

탈린: 빙산 피하면서 조심히 와. 항구에서 보자.



 ~04. 연구소 ‘미르누이’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하얀 대륙의 경치가 선명하게 보였다.
녹아내리는 물줄기 속에 또렷한 형태의 빙산이 있었고, 하얀 빙원 위 검은 점들――연구 시설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스비레피: 여기가 바로 남극 대륙 과학 연구소 ‘미르누이’구나…….

스비레피: 생각보다 훨씬 눈에 잘 띄네.

파먀티 메르쿠리야: 눈에 잘 띄어야 비행기나 배로 위치를 파악하기 쉽거든.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래서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들킬 수 있는지 고민한 거지.

파먀티 메르쿠리야: 적의 공격보다 더 큰 위협은 극한 환경이니까.

스비레피: 흐음. 의료선이 눈에 확 들어오는 표식을 달고 다니는 거하고 비슷한 건가.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거하곤 좀 다를걸.

스비레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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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네보이: 여러분~! 탈린이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오그네보이: 탈린~!

스비레피: 선실에서 소리쳐봤자 저쪽에 들리겠냐고!

 

오그네보이: 그러네요~!

폴타바: 자 자, 진정해. 슬슬 기슭에 닿을 거니까.

폴타바: 밖은 추우니까 방한 대책 확실히 하고 내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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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소 ‘미르누이’. 하역 부두.

파먀티 메르쿠리야: 하나, 두울, 세엣~

파먀티 메르쿠리야: 남극에 무사히 도착~!

폴타바: 흑해 기지에서 대략 만 천 킬로미터인가? 꽤 긴 여행이었어.

폴타바: 다행히 운이 따라줘서 위험한 일은 없었지만.

스비레피: 으으……으으으………. 엣취!!!!

스비레피: 바람이 미쳤어……. 완전 추워!!!

오그네보이: 그럴 줄 알았어요 스비레피! 자, 이거 걸치세요~

스비레피: 응? ……뭐야 이 컬러풀한 옷은….

오그네보이: 귀여운 액세서리를 이~만큼 달았답니다. 귀엽죠~


스비레피: 오히려 무서워!!

오그네보이: 네에~? 이렇게 귀여운데요~!

오그네보이: 그럼 오그네보이가 꼭 안아줄게요! 껴안고 있으면 덜 추워요!

스비레피: 이 옷부터 어디로 치워봐! 이런 걸 걸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한이 든다고!

스비레피: (딸깍딸깍) ……이제 됐어. 의장을 가동해서 난방을 켰으니까.

탈린: 그렇게나 긴 여정이었는데도 다들 기운이 넘치는구나.

탈린: 아무튼 동지 여러분. 북방연합 과학 연구소 ‘미르누이’에 온 걸 환영해. 내가 여기 책임자인 탈린이야.

탈린: 화물 하역은 부두의 자동화 설비에 맡기면 돼.

탈린: 덜덜 떠는 애도 있으니까 얼른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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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누이. 휴게실.

창문 너머로 극지의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난방 기운이 돌자 점점 훈기가 돌기 시작했다.

스비레피: 후우……. 살겠다…….

스비레피: 안팎이 완전 다른 세계 같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밖은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는데 우리는 편하게 앉아서 따끈한 차나 마시고 있다니.

파먀티 메르쿠리야: 무슨 종말의 피난처 같지 않아?

스비레피: ……듣고 보니 좀 그렇긴 하네.

파먀티 메르쿠리야: 흐흥. ‘좀 그래’가 아니라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 대자연의 힘은 강해!


파먀티 메르쿠리야: 아무리 함선이라도 이 연구소 밖으로 갑자기 내던져지면 순식간에 쓰러질 거야.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러니까~ 여기가 우리의 마지막 피난처지.

스비레피: 파먀티 씨, 오늘은 왠지 말이 많다고 할까……. 좀 이상한데?

오그네보이: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요! 역시 파먀티 씨예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소유즈는 이제부터 탈린하고 할 중요한 얘기가 있지?

파먀티 메르쿠리야: 애들도 살아난 거 같으니까 쿠우가 책임지고 연구소를 안내해줘도 돼?

스비레피: 어린애 아냐!


오그네보이: 저는 어린애 같다고 생각해요~!

스비레피: 아니라니까!

파먀티 메르쿠리야: 쿠우가 미안해! 아무튼 가자~

오그네보이: 와아! 기지 탐험이다~!

스비레피: 시설 구조를 파악해서 위협을 배제하는 거지!


스비레피: 이래서 어린애는……… 잠깐,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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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타바: 가버렸네.

소비에츠키 소유즈: 오늘 ‘파먀티 메르쿠리야’는…… 조금 이상하네요.

폴타바: 이상해…?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저희가 알고 있는 파먀티 씨하고 외모나 언동은 똑같은 것 같은데….

폴타바: 어머. 나는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탈린: 음. 어쩌면 남극권 환경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

탈린: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는 점은 북방연합하고 별로 다르지 않지만, 여기는 더 심한 광풍까지 부니까.

탈린: 통신도 보급도 여의치 않아서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기도 해.

소비에츠키 소유즈: 환경의 영향, 입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무튼 저희도 본론으로 들어가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탈린. 남극 대륙의 상황을 보고해 주세요. 그리고 ‘특수 광물’에 관한 것도.

탈린: 응. 너희가 오는 동안 남극에 변화가 있었던 건 사실이야.

탈린: 특수 광물이 발견된 구역에서 눈이 녹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탈린: 현재는 해당 구역을 ‘융설 구역’이라고 칭하고 있어.

탈린: 그리고 융설 구역 몇 군데에서 특수 광물의 샘플도 채집했는데.

탈린: 모든 샘플이 의장과 공명 반응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탈린: 사격 정확도 향상, 장전 속도 상승 등 관측한 모든 효과가 유용한 결과만을 보였어. 여기 상세 보고서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

탈린: 물론 유니온도 움직였고, 그쪽도 광물의 존재를 발견한 것 같아.

탈린: 다만 이상한 게 유니온 함선 수가 생각보다 훨씬 많아.

탈린: 어제도 적지 않은 규모의 함대가 유니온 기지에 도착했어.

탈린: 유니온은 남극에서 전역 레벨의 작전 행동을 준비하는 것 같아.

폴타바: ……전역 레벨의 작전…?

폴타바: 그동안 남극 대륙에서 세이렌이 출몰했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어.

폴타바: 유니온은 대체 누굴 상대로 그런 작전 행동을 준비하는 걸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유니온은 저희도 모르는 정보를 포착했을지도 모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보아하니 광물 채굴은 어렵게 되었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탈린. 유니온 측과 충돌한 적이 있습니까?

탈린: 당연히 없어. 융설 구역에서 조금 얘기나 나눴을 뿐이야. 평화적으로.

탈린: 저쪽도 현재까지는 별 움직임 없이 연구소에 머물러 있어.

탈린: 무슨 일을 꾸미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밀리에 진행하려는 것 같아.

소비에츠키 소유즈: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놓고 은밀 행동을 꾀한다는 건 무리가 있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철혈은 어떻습니까? 저희 쪽 정보에 따르면 최초로 광물을 발견한 진영은 철혈이었을 텐데….

소비에츠키 소유즈: 무슨 행동이라도 있었습니까?

탈린: 아니. 융설 구역에서 철혈 함대를 만난 적은 없어.

탈린: 하지만 철혈 연구소의 위치는 우리나 유니온보다 융설 구역에 훨씬 가까워.

탈린: 어쩌면 한참 전에 조사를 마쳤을지도 몰라.

탈린: 아. 확실한 건 철혈은 아직 추가 병력을 파견하진 않았어.

탈린: ……겉보기에는 말이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파견하지 않았다……고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알겠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샘플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탈린: 물론이지. 채집한 샘플은 모두 실험 구역에 보관해 놨어. 따라와.



 ~05. 공명
‘미르누이’. 실험 구역.

은은한 조명 아래 옅은 푸른빛을 내는 광물 유리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게 채집한 ‘샘플’입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보고서에서 언급했던 것과 크기가 많이 다르군요. 어째서죠?

탈린: 그게… 처음에 채집했을 때는 작은 조각들뿐이었는데.

탈린: 실험해 보니 특정 조건에서 이 광물들이 서로 융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

탈린: 그리고 그렇게 커질수록 의장과의 공명 반응도 더 강해지고.

탈린: 여기 있는 건 몇 차례의 융합 과정을 거치면서 얻은 최종 산물이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신기한 성질이군요. 더 가까이에서 봐도 될까요?

탈린: 소유즈. 그………. 알았어.

탈린: 공명 현상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나하고 폴타바는 밖에서 기다릴게.

탈린: 원격으로 유리벽을 열 테니까 원하는 만큼 보고 만져봐.

탈린: 일단 안전하다는 건 확인했으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렇게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탈린과 폴타바가 방에서 나가고 잠시 후 광석을 덮고 있던 유리벽이 내려갔다.
소유즈는 천천히 다가가 샘플을 관찰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마치 천연 광석 같네요. …하지만 불순물 하나 없이 깨끗해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얼음 같이 차가운 느낌도 있지만…. 이 푸른빛, 혹시 멘탈 큐브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요…?)

머릿속에서 정보를 짜내어 생각을 확장시켰다.
하지만……

소비에츠키 소유즈: (보고와 달리 제 의장과는 공명하지 않는군요.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도….)

소비에츠키 소유즈: (역시 제 큐브에는 남들과 다른 결함이 존재하는 걸까요….)

소유즈는 잠시 주저했다가 이내 결심을 굳혔다.
하나, 둘, 셋…….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광물에 다가갔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직접 만져볼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해보죠.)

소유즈는 오른손을 뻗어 결정의 표면을 살짝 만졌다. 그러자――

새하얀 공간 끝에 문 하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문?

소비에츠키 소유즈: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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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쥬): 호오~ 통신 품질 좋네. 감시하는 눈까지 속이다니.

??(안쥬): 오스타 녀석. 대단한 솔루션인데…….

???(소피아): 전세기까지 들고나온 안쥬도 대단하지만요.

??(안쥬): 아하하. 물건은 쓰라고 있는 거잖아?

????(콜레트): 하아……. 나 진짜 출장 가야돼? 내 일도 바쁜데.

??(안쥬): 어쨌든 한번은 가야 되잖아? 나하고 같이 가면 전세기도 탈 수 있으니까 편하다고!

??(안쥬): 오시스 상업 연합대우보다야 훨씬 낫잖아?

??(안쥬): 그리고 조수군이 오스타한테 끌려가 버려서 새 조수가 꼭 필요하다니까!

????(콜레트): 하아아아아아아……….

???(소피아): 자. 아무튼 탔으니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답니다.

???(소피아): 신호 구역을 벗어나기 전까지 한 2시간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소피아):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죠. ‘창조주’ 양.

??(안쥬): ‘창조주’가 뭐야. …오스타 흉내 내지 마!

???(소피아): 어머, 그런가요? 애초에 이 단어는 지난번 회의에서 누가 스스로 사용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소피아): 분명 ‘개념’의 삽입과 고착 얘기였는데, 이미지의 개념은 한동안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안쥬): 으아아악……!

???(소피아): 기억나셨나요?

??(안쥬): 그냥 생각난 걸 말했을 뿐이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그 때도 말했었잖아!

??(안쥬): 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거야?

??(안쥬): 그래그래. 아무튼 화제를 돌려서… 최우선 문제인 소비에츠키 소유즈로 돌아가자.

??(안쥬): ‘이름’은 존재하지만, 최종적으로 완공된 적은 없는 배에 대해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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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츠키 소유즈: 방금은 대체……….

소비에츠키 소유즈: 윽!? ……으으으…!!

광물에 닿은 손끝에서 갑자기 힘이 솟구쳤다.
마치 자신을 광물 속으로 빨아들이려는 것 같았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위험해.

소비에츠키 소유즈: ……큭……손을 떼야만 하는데……!

소유즈는 의장을 전개하고 결정이 뿜어내는 힘과 맞서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몇 초, 몇 분, 혹은 몇 시간이 지났을까.
온몸을 관통하는 피로가 소유즈의 시간 감각을 어그러트렸다.
…광물은 겨우 힘을 소진한 것 같았다.
눈부신 푸른빛이 사라지고, 융합된 광물은 산산이 부서졌다. 방은 다시 은은한 조명 빛으로 가득 찼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아……하아…….

소비에츠키 소유즈: 드디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끝난 건가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탈린의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은 없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런……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다니…….

소비에츠키 소유즈: ……응?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 의장은…?!

귓가에 들리는 굉음은 거대한 ‘의장’에서 나오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강철의 거구가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포악한 그 존재감에 소유즈는 자신도 모르게 전율을 느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나의… 소비에츠키 소유즈의…… 새로운 의장….

소비에츠키 소유즈: 말도 안 돼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 출력과 성능은… 현재의 최신형 의장을 능가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특수 광물의 영향일 가능성도 있지만… 광물 자체는 소실되지 않았어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큐브처럼 질량과 에너지를 변환하여 구현하는 물질이 아니라면… 아까의 힘만으로 이 의장을 만들었다는 겁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니, ‘만든’ 것이 아니에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 힘은 제 의장을…… 그대로 재구성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래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군요. 오히려 새 의장으로부터 온몸을 흐르는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큐브에 있던 ‘결함’이 메워진 느낌이에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완전성이 보완된 걸까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어째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지, 아까 떠오른 광경은 무엇인지, 왜 광물을 만지는 순간에 나타났는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후우…. 아무것도 모르겠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 사람들은 저를…… ‘소비에츠키 소유즈’라는 이름을 확실히 언급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마 저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밖에는 아직 모르겠네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좀 더 정보가 필요합니다.

통신: ――

탈린: 소유즈. 갑자기 미안해.

소비에츠키 소유즈: 괜찮습니다. 제 테스트도 막 끝났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무슨 일 있습니까?

탈린: 응. 소유즈가 테스트 하는 동안 철혈 기지에서 연락이 왔어.

탈린: “정체불명의 적성 세력이 철혈 함대를 공격하고 있다” 라고.

탈린: …그러니까 우리도 경계 레벨을 높이라는 전언이었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정체불명의 적…. 역시 유니온 함대는 헛되이 준비한 것이 아니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철혈에 상세한 피습 내역을 확인하세요. 그리고 유니온에게도 이 소식을 전달하세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적성 세력에 대해 짐작 가는 바가 있느냐”라고 물어 보세요.

오그네보이: 나, 남극에 정말로 적이 나타난 건가요!?

스비레피: 그러니까 기지 순찰도 필요하다고 내가 말했잖아!

폴타바: 뭔가 찾은 거라도 있어?

파먀티 메르쿠리야: 딱히 아무것도 없어.

폴타바: 그럼 됐어. 우선은 경계 레벨을 높이고 추가 정보가 들어올 때까지 대기하――

파먀티 메르쿠리야: 아, 잠깐만. 철혈 기지가 있는 곳은 ‘융설 구역’ 바로 옆 맞지?

파먀티 메르쿠리야: 우리는 원래 샘플을 채집하러 온 거니까 내친김에 도와주면 되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여기서 팔짱 끼고 앉아 있는 건 너무 수동적이지 않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곤란할 때는 피차일반이라고 하잖아~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남극 대륙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면, 저희는 국면이 완전히 바뀌기 전에 당초의 목표를 완수해야만 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탈린은 연구소에 남아서 방어와 정보 수집을 맡아 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철혈 기지로 동행합니다.

탈린: 알겠어. 극지방이라 환경이 열악하니까 조심해.



 ~06. 아침 안개 속의 행군
남극 대륙
빙원 어느 곳
잠시 후

폴타바: 소유즈. 잠깐만… 얘기 좀 하자.

폴타바: 우리 연구소가 철혈의 도움으로 지어진 건 맞지만,

폴타바: 그렇다고 이렇게 당장, 그것도 네가 직접 갈 것까진 없잖아?

폴타바: 철혈은 남극에 군사 기지까지 세운 유이한 진영이니 만일의 사태에 스스로를 지킬 준비는 되어 있을 거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당신 말도 맞습니다, 폴타바.

소비에츠키 소유즈: 철혈 함대는 저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낸 연락도 구원을 요청하는 내용이 아니었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저는 이것이 주변 정찰을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철혈은 무슨 의도와 전력으로 이 남극에 진출했는가….

소비에츠키 소유즈: 철혈과 우리의 협력은 모두 프리드리히가 함대를 이끌던 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비스마르크가 복귀한 지금, 철혈은 과연 우리와의 협력을 이어갈 마음이 있을까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확인할 사항이 꽤 많고, 이는 정기 회담 등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러니 지금은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조약과 협력의 존재를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물론 그들을 습격한 적의 정체를 조사해서 남극의 상황을 파악하려는 목적도 유효합니다만.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치 그치~

스비레피: 어쨌든 손해는 안 본다는 얘기잖아? 역시 소유즈야!

오그네보이: 여러분! 저기 건물들 좀 보세요! 저게 철혈의 남극 기지 맞죠?

오그네보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철혈의 검은 시설군이 마치 비늘 조각마냥 빙원을 덮고 있었다.

폴타바: 우리 과학 연구소에 비하면 확실히 군사 요새급 규모네…….

스비레피: 너무 과한 거 아냐?

스비레피: 이렇게 황량하고 인적도 없는 곳에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소비에츠키 소유즈: 단순한 과학 연구, 혹은 세이렌 침공을 대비한 방어 시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쉽네요. 프리드리히가 아직 이 세계에 있었다면…….)

파먀티 메르쿠리야: 흐흥…. 소유즈, 궁금해?

파먀티 메르쿠리야: 남극 대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 당신 방금…….

소비에츠키 소유즈: ……뭐라고 하셨습니까? 파먀티……

소비에츠키 소유즈: ……메르쿠리야…….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주변의 풍경이 확 달라졌다.
동료들의 모습은 사라졌고, 그 대신 강철의 건물들이 하나둘씩 솟아올랐다.
빙하 자체를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강철 도시.
동시에 소유즈는 지금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이 얼어붙은 육지가 아니라 금속 바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금속 바닥은 하얀 눈밭 사이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빙원이… 통째로 요새화 되고 있어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니. 오히려 이게 바로 이 대륙의 ‘본래 모습’일까요…?)

문득 든 생각에 소유즈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건…… 말도 안 돼요…….)

 

급변하는 눈앞의 광경은 소유즈가 생각할 틈도 주지 않았다.
대지가 타오르고 건물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오로라 아래에서 과거의 웅장하고 장엄했던 도시가 무너지고 있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게 바로 남극의 본질? 진실…? 혹은…… 미래?)

소유즈의 머릿속에 또 다시 문득 어느 생각이 스쳤다.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래. 이게 바로 내 이야기. 이 대륙의 하나의 가능성이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후우.

소비에츠키 소유즈: (주변이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동료들도 아무 반응 없고……. 환상…이었을까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

소비에츠키 소유즈: 파먀티. 당신의 이야기란 대체 뭐죠?

파먀티 메르쿠리야: '이야기'? 무슨 말이야?

파먀티 메르쿠리야: 쿠우는 오그네보이하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뭐 잘못 들은 거 아냐?

소비에츠키 소유즈: 잘못 들었다고요……?

폴타바: 소유즈, 괜찮아? 환청이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환청뿐만 아니라 환각도…… 보았습니다.

폴타바: 환각…? 설마 아까 특수 광물을 만졌을 때의 영향이 아직 가시지 않은 건가?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럴지도 몰라! 그런 파격적인 방식으로 의장이 재구성 됐으니까 몸에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오그네보이: 정말 괜찮으세요? 조금 쉴까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괜찮습니다. 철혈 기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계속 전진하죠.



 ~07. 융설 구역
적의 습격 때문인지 철혈의 방어 시설은 경계 태세에 돌입해 있었다.
탈린의 사전 연락 덕분에 소유즈 일행은 신원을 확인받고 무사히 시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남극 대륙
철혈 군사 기지
잠시 후

쾨니히스베르크: 남극 기지 책임자인 쾨니히스베르크입니다.

쾨니히스베르크: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리고 북방연합 여러분의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천만의 말씀입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쾨니히스베르크: 여러분께서 이변을 깨닫고 친히 지원하러 와주셨으니 저도 숨기지 않겠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 현재 기지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오그네보이: (어? 아까는 분명 정찰하러 가는 거라고…….)

스비레피: (쉿――! 그냥 오해하게 놔둬!)

쾨니히스베르크: 통신으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융설 구역으로 향했던 조사대와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 마지막 교신은 "어떤 적성 개체와 교전 중"이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 그 후 재밍으로 인해 추가적인 정보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 마찬가지로 비스마르크해의 보급 기지와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쾨니히스베르크: 계속되는 문제 때문에 지금은 도저히 손님을 대접할 여유가 없네요.

쾨니히스베르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북방연합의 소비에츠키 소유즈…… 님.

쾨니히스베르크: 게다가 이렇게 첨단 의장으로 교체까지 하시다니….

쾨니히스베르크: ……후후훗. 융설 구역의 특수 광물을 확인하러 오신 거죠?

쾨니히스베르크: 북방연합의 소식은 정말 빠르네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저희는 분명 당신들이 심판정으로 보내는 소식을 받고서야 알게 됐는데…….)

소비에츠키 소유즈: 특수 광물도 그렇지만 동시에 발생한 '융설 구역'을 조사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광활한 빙원에 갑자기 융설 구역이라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뒤이어 특수한 광물과 정체불명의 적성 개체가 차례로 나타났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는 세이렌의 소행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여쭙겠습니다만, 철혈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계획입니까?

쾨니히스베르크: 우선 수색대의 정보가 도착하면 이를 확인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할 예정입니다.

쾨니히스베르크: 북방연합은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희는 융설 구역으로 가서 현장 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광물과 적이 모두 융설 구역과 관련이 있으니…

소비에츠키 소유즈: 현장을 직접 조사하면 사태의 빠른 해결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쾨니히스베르크: 용기 있는 행동이시군요.

쾨니히스베르크: 아직 외부와의 통신이 회복되지 않아서 적에 대해 공유해드릴 정보는 없습니다만….

쾨니히스베르크: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부디 안전에 주의하세요.

쾨니히스베르크: 저희도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 공유하겠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감사합니다, 쾨니히스베르크. 저희도 소득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남극 대륙은 외딴 곳에 위치해 있고, 각 진영이 투입할 수 있는 전력 역시 제한적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만에 하나 위기가 닥친다면 전 진영이 협력하여 대처해야할 것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희가 정리한 정보를 철혈과 북방연합의 공동 명의로 타 진영에 공유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휘관 동지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쾨니히스베르크: 네. 동의합니다.

쾨니히스베르크: 여기서 지휘관의 이름을 꺼내시는군요…. 후후후. 확실히 그렇다면 모두가 납득하겠지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또한 긴급 상황 시 탈출 방안도 제안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북방연합은 현재 이곳의 모든 인원을 수용 가능한 대형 특수 잠수함 한 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만약 조사 후 남극의 상황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면, 이 철혈 기지를 거점으로 전 병력을 합쳐 적의 섬멸을 도모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통제 불가능한 위험한 상황인 경우, 북방연합의 과학 연구소로 합류하여 잠수함을 이용해 탈출하십시오.

쾨니히스베르크: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소유즈.

쾨니히스베르크: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기지의 방어 시스템은 거의 무인화 되어 있어서 남아 있는 함선 전력은 저 하나뿐입니다.

쾨니히스베르크: 아군의 증원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기지를 사수하는 것은 상책이 아니죠.

쾨니히스베르크: 당신의 제안에 동의합니다.

쾨니히스베르크: 상황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곳에 남아 전투를 준비하겠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 만일 상황이 통제 불가능한 경우에는 바로 '미르누이'로 향하겠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감사합니다. 저도 탈린에게 연락해서 사전 준비를 요청하겠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럼 저희는 슬슬 '융설 구역'으로 가보겠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잘 다녀오세요. 후후훗.



 ~08. 융설의 진상
남극 대륙
융설 구역으로 향하는 도중
잠시 후

파먀티 메르쿠리야: …………푸흡.

파먀티 메르쿠리야: 푸하하~ 철혈도 영 눈치가 없네~

파먀티 메르쿠리야: 우리는 이미 특수 광물로 의장을 재구성했는데, 단순한 강화라고만 생각하다니!

파먀티 메르쿠리야: 이 장비가 광석 조사용이라고 우겨도 믿겠는걸!

폴타바: 반응을 보면 유니온이 남극에 대규모 함대를 파견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아.

폴타바: 이것도 재밍의 영향인 건지, 아니면 쾨니히스베르크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건지….

폴타바: 광석을 제일 먼저 발견한 건 철혈일 텐데, 맨날 이런 식으로 한 박자 느리다니까.

폴타바: ……그나저나 유니온이 가지고 있는 독점 정보는 대체 뭘까…?

폴타바: 소유즈. 너는 역시 알고 있지?

폴타바: 융설 구역에 대해 우리에게 아직 말하지 않은 정보가 있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폴타바: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의장을 움직이면서 이 융설 구역까지 와야 할 이유가 없는걸.

폴타바: 그러니까 숨기는 게 있다면 그만 설명해줘.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당신의 추측이 맞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우선 유니온은 그 무언가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부터 밝히겠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사실은 도착하면 알려드릴 생각이었지만…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미 짐작하시기도 했고, 목표 지점까지도 얼마 안 남았으니… 지금부터 설명드려도 괜찮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융설 구역 지하에는 저와 프리드리히가 협력하여 건설한 비밀 시설이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표층으로부터 1,000m 아래까지 들어간, 어떤 재난이 발생해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종말의 벙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 이름은 '현자의 고리'라고 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것과 특수 광물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 구역에서 얼음이 녹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현자의 고리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폴타바: 흐응…….

폴타바: 융설 구역이 사실 북방연합의 시설 때문에 만들어진 거라고? 진짜라면 충격적인 사실이네.

폴타바: 그런데 철혈과의 합작이었다면 쾨니히스베르크는 왜 몰랐었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제가 말하기 전까지는 폴타바도 몰랐었죠? 그뿐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비밀 시설이라는 성격상 북방연합과 철혈 내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는 정보입니다.

스비레피: ……융설 구역의 진실이 그런 거였을 줄이야….

파먀티 메르쿠리야: 아쉽게도 많은 미스터리 사건의 진실이란 종종 이렇게 평범한 법이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뇨. 이 일은 그렇게 단순히 치부할 일이 아닙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현자의 고리는 현재 휴면 상태여야 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시설을 가동하고 설계를 수정하지 않는 한, 시설의 방열로는 결코 얼음을 녹일 수 없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게다가 적성 개체와 특수 광물 역시 건조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만일 각 진영이 조사를 진행하다 벙커의 존재를 알아차린다면, 분명 이 모든 일을 북방연합의 소행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 일의 배후가 누구인지, 목적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09. 등산
남극 대륙
'융설 구역'
잠시 후

오그네보이: 스비레피! 여러분! 물소리가 들려요~!

스비레피: 강인가? …아니, 이거 폭포야!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네!?

스비레피: 여기가 정말 남극이 맞는 거야??

폴타바: 얼음이 녹은 덕에 원래 산의 모습이 드러났네.

소비에츠키 소유즈: 탈린의 말대로 정말 '융설'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표층부터 녹기 시작해서 내부에 지하 하천이 생긴 것을 보면…… 시설의 방열 때문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조심하세요. 이곳의 빙판은 불안정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발밑을 주의하면서 산으로 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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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네보이: 아까까진 설원 대탐험이었는데 어느새 등산이 돼버렸네요…….

스비레피: 하아… 하아아아…….

스비레피: 함선이… 등산을 하는 게 맞는 거야!?

오그네보이: 스비레피! 저쪽에서 빛나는 거 혹시 특수 광물 아닐까요!?

칠흑 같은 바위산 속에서 푸른색의 광물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폴타바: 푸른빛을 내는 광물…. 실험 구역에 있던 샘플하고 동일해. 조금 작긴 하지만.

스비레피: 광물 주변에 있는 얼음은 안 녹았어. …혹시 이거 주변 온도를 낮추는 효과도 있나?

오그네보이: 와아! 냉장고로 써도 좋을 거 같아요!

오그네보이: 아이스크림하고 같은 상자에 넣으면 언제든지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겠네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잔뜩 채굴해서 냉동고에 넣어두면 전기세도 아낄 수 있겠네♪

폴타바: ……왜 다들 냉장고 생각만 하는 건데? 의장과 공명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잖아?

폴타바: 소유즈의 의장을 봐봐. 제대로 연구해서 새로운 의장을 만들 수만 있다면…….

스비레피: 후후, 후후후후…. 두근거리는걸!

스비레피: 나도 이거 만지면 의장이 변하는 건가?

소비에츠키 소유즈: 스비레피, 잠ㄲ――

소유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비레피는 주먹만한 광물을 손에 쥐었다.

오그네보이: 어, 어때요 스비레피! (두근두근)

스비레피: ……………차가워――! (꽁꽁)

스비레피: 아무 일도 없잖아? ……별로 이상한 느낌도 없고.

폴타바: 탈린도 그랬었잖아? 단순히 만지는 것만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파먀티 메르쿠리야: 크기가 작아서 그런가? 아니면 다른 조건이 있나? ……쿠우는 잘 모르겠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현재로서는 답을 내릴 수 없으니 일단 이곳의 광물들은 놔두도록 하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나저나 빙설이 녹는 속도가 제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군요.

소비에츠키: 빨리 '현자의 고리'로 들어가 조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스비레피: 그 벙커는 지하 깊숙이 있는 거 아니었어? 우린 왜 등산을 하고 있는 거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반이 안정되어 있고, 빙원에서 랜드마크로 삼기 쉬운 산 쪽이 입구를 설치하기에 좋습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치만 얼음이 녹으면서 지형이 많이 변했잖아? 입구가 어딘지 아직 기억하고 있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뇨. 모르겠습니다.

파먀티 메르쿠리야: 뭐어? 그럼 산을 하나씩 뒤져 볼 셈이었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물론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벙커 입구에는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식별 장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여러분은 주변에 의심스러운 개체는 없는지 경계해 주십시오.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금부터 입구를 찾아보겠습니다.



 ~10. 현자의 고리
잠시 후. 소유즈는 벙커 입구를 찾는 데 성공했다.
소유즈를 따라 입구에 다다르기까지 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남극 대륙
융설 구역
벙커 '현자의 고리' 입구

금속 기어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철문이 양으로 천천히 열렸다.
안쪽에는 탱크가 달릴 만한 넓은 복도도, 미로 같은 복잡한 구조도, 심지어 눈이 휘둥그레질 첨단 장비도 없었다.
그저 먼지가 잔뜩 쌓인 평범한 사무실이 보일 뿐이었다.

스비레피: 우와… 수수해…….

스비레피: 이게 종말의 벙커라니 어이가 없네.

스비레피: 그냥 평범한 군용 시설하고 다를 게 없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쿠우는 알아! 일부러 이렇게 꾸며 놓은 거지!

파먀티 메르쿠리야: 혹시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조사하는 일이 생겨도 그냥 북방연합의 일반적인 거점이라고 생각하게끔 하려고!

파먀티 메르쿠리야: 즉 이것도 위장의 일환! 진짜 시설 입구는 분명 다른 곳에 있겠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렇습니다. 이 방은 어디까지나 위장에 불과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진짜 입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책장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안쪽에 있는 진짜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긴 통로를 지나며 방폭 문을 몇 차례 통과한 후에야 함선들은 지하 시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바른 층에서 내려야만 벙커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그네보이: 올바른 층? …다른 층에서 내리면 어떻게 되나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오그네보이가 알 필요는 없습니다.

스비레피: 이거 좀… 너무 과한 거 아냐?

스비레피: 안 그래도 아무도 안 찾는 오지인데 이렇게 겹겹이 위장할 필요까지 있어? 아무도 못 뚫을 걸?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그 아무개가 성공적으로 돌파했을 뿐 아니라 시설을 가동하기까지 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까부터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까?

오그네보이: 진짜예요! 어쩐지 포근한 게 과학 연구소에 있을 때하고 똑같아요!

스비레피: 그러고 보니 진짜 안 춥네. …너무 자연스러워서 눈치도 못 챘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실온이 이렇게 일정하다는 건, 이곳의 난방은 우리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가동되고 있었다는 뜻입닌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단지 시설의 난방을 가동한 것만으로 외부의 빙설이 녹지는 않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생활 구역 외의 시설도 가동시켰다……라고 보는 게 맞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벙커에 들어간 후에는 가급적 제 명령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우선은 1층의 보안실로 가겠습니다.

모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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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 보였던 엘리베이터는 의외로 조용하고 빠르게 일행을 벙커 내부로 안내했다.

오그네보이: 엄~~~~~~~청 빨랐어요!

스비레피: 케케묵은 벙커나 사일로를 생각했는데 좀 다르네.

폴타바: 아무리 실용성을 고려해 지었다고 해도 내부 디자인은 건축가의 취향이 들어가는 법이지.

폴타바: 당시치고는 최신 기술이었을 거야. 케케묵은 건 어디까지나 겉모습만이니까.

스비레피: 그런가…? 아무튼 우리 지금 지하 1,000m에 도착한 거야?

파먀티 메르쿠리야: 아니. 이 정도면 대략 20층 정도 깊이네.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되나봐.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벙커의 핵심 시설로 들어가려면 아직 몇 개의 중간층을 지나야 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보안 구역을 여러 번 지나고 엘리베이터 몇 대를 갈아타야 도달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금 내린 곳이 바로 그 첫 번째 중간층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우선은 보안실에서 필요한 정보를 구해 오겠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대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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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즈가 돌아오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폴타바: 오래 걸렸네? 뭐 문제라도 있었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뇨.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보안 장비에 신경 쓰이는 기록이 몇 가지 남아 있긴 했는데….

소비에츠키 소유즈: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기록에 따르면 벙커는 '융설 구역'이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생활 구역 외에도 생산 구역 한 곳이 가동되었지만, 거기서 무엇이 만들어졌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리고 시설의 통제 시스템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스캐닝을 하고 있고, 따라서 데이터 로그는 많이 축적되었지만….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는… 역시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CCTV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고, 경보 시스템 역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침입자는 아마도 이 벙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시설을 가동할 수 있는 높은 접근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흔적까지 지울 수 있는 존재…….

폴타바: ……침입자는 우리 쪽 비밀 정보 요원이라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는데?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럴 리는 없습니다. 기록 삭제 권한은 저 말고는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폴타바: 그럼 해킹인가…?

폴타바: 방해되는 얼음을 녹여서 스캔한 다음 우리 벙커를 사용해서 특수 광물의 광맥이라도 찾고 있었다는 걸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가능성은 있습니다. 아무튼 증거를 수집하러 가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우선적으로 조사해야 할 곳은 두 군데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던 생산 구역. 그리고 스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 센터.

소비에츠키 소유즈: 모두 여기보다 깊은 곳에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나씩 신중하게 조사해 보도록 하죠.



 ~11. 광물의 진상
일행은 벙커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소유즈가 말했던 대로 몇 번의 보안 구역을 통과하고 몇 대의 엘리베이터를 갈아탔다.
심지어 트램을 이용해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복잡한 환승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첫 번째 목적지인 생산 구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스비레피: 으으, 현기증 날 거 같아…….

스비레피: 구역 간 다중 보안 검색에 엘리베이터 환승까지는 이해해도 트램은 너무 과하지 않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러니까 사일로가 아니라고 했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직하 기지였으면 엘리베이터 한 대로 최하층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럼 보안이 무용지물이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이 구조는 헷갈리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기도 해! 지금 입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고, 어떻게 나가야 되는지 잘 모르겠지?

스비레피: 그러고 보면…. 하나도 모르겠어….

오그네보이: 오그네보이… 너무 답답해요…….

오그네보이: 이렇게 지하에 오래 있는 건 처음이에요……. 파란 하늘이 그리워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하 공동에 도착하면 기분이 다소 나아질 겁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 벙커의 중심부는 그곳이니까요.

오그네보이: ……지하 공동이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응! 사실 옛날부터 남극의 빙하 밑에는 거대한 바다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었단다~

오그네보이: 네? 지하에…… 바다가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파먀티의 말이 맞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예전부터 지질학계에서는 남극의 빙하 밑에 바다가 있을 것이라는 이론이 논의되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희도 벙커 건설을 위해 실제로 얼음을 파헤칠 때까지는 반신반의했었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무튼 맨 밑의 '고리' 구역까지 가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우선은… 생산 구역에서 만들어진 것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바로 앞이 제조 라인입니다. 계속 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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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가 열리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일행을 덮쳤다.

스비레피: 엣취!? …왜, 왜 이렇게 추워!?

스비레피: 여, 여기는 난방 안 돼?

폴타바: …이쪽 구역은 냉방이 켜져 있네. 이 정도 깊이면은 그렇게까지 춥진 않을 텐데, 지상의 온도에 맞추고 있는 걸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벙커 내의 생산 환경에 맞춰 온도가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냉방이 돌아가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래도…… 우선은 냉방을 끄고 조명을 켜 주세요.

온기가 느껴지는 불빛이 켜지고, 어둠 속에 가려진 광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생산 구역 'HL-17-36 제조 라인'.
벙커에 있는 수백 개의 제조 라인 중 하나로, 북방연합 '제믈랴 설계국'의 표준 공장과 비슷한 규모를 자랑한다.
원래는 빙원 작전에 사용되는 육상 운반·승용 기자재 등의 군용품을 생산하기 위한 라인이지만――
이 라인에서 생산되어 끊임없이 벙커 상부로 운반되고 있는 것들은 도저히 그런 물건으로 보이지 않았다.

폴타바: 이게 대체 뭐야……!?

폴타바: 천연 얼음과 흙, 모래를 사용해서…….

폴타바: 푸른 광물… 우리가 찾고 있던 특수 광물을 만들고 있잖아!?

스비레피: 하나도 모르겠어!

스비레피: 그러니까 '융설 구역'에서 발견된 광물은 사실 우리 벙커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스비레피: 그것도… 얼음하고 돌만으로??

스비레피: 이런 걸로 어떻게 광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야!?

스비레피: 게다가 소유즈를 보면 확실히 효과까지 있었잖아?!

오그네보이: 연금술이나 마법 같은 건 아니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제조 라인 시스템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경되어 있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다만 기록은 이미 삭제되었습니다.

폴타바: 삭제됐다고…? 언제?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희가 들어온 직후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온도 변화가 트리거가 되어 생산 정지 및 기록 말소가 행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유감이지만 광물 샘플 말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겠군요….

소유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조 라인의 굉음이 뚝 그쳤다.

폴타바: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이건 감쪽같이 당했네.

폴타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걸.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특수 광물은 천연 얼음과 암석을 재료로 삼고,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만들어져 지상으로 운반되고 있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던 건지, 광물은 왜 공명 현상을 일으키는지……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겠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제 데이터 센터로 갑시다. 우리가 찾는 답이 거기 있었으면 좋겠네요.



 ~12. 현자의 걸작

 

엘리베이터는 감속하면서 천천히 올바른 층에 멈췄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멈춘 곳은 환승을 하기 위한 중간 통로였다.
무기질의 복도. 차이가 있다면 벽마다 페인트로 그러져 있는 통로 번호 정도였다.
하지만 고정관념이 고정관념인 것은 예상치 못한 사실에 깨지기 때문이다.
이번 통로는 이전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오그네보이: 어라? 여기 통로는 반짝이는 벽지가 붙어 있네요?

스비레피: 카펫에 샹들리에에 엄청 비싸 보이는 가구들도 있어…….

폴타바: 흐응. 다들 가치가 높아 보이는 것들이네.

폴타바: 소유즈. 여기는 혹시 벙커의 예술품 보관 구역이야?

소비에츠키 소유즈: 예술품 보관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역이 있기는 합니다만….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곳은 아닙니다. 하물며 예술품을 그대로 전시해 놓을 리도 없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설령 예술품을 옮겼더라도 이곳으로 옮기진 않았을 것입니다.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다양한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다. 마치 화랑 같았다.

파먀티 메르쿠리야: 어쩔래, 소유즈? 어차피 이 복도 지나가야 되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가는 김에 그림 구경이나 할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그럼 조금만 둘러보도록 하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복도에 있는 가구들은 북방연합 설립 전 로마노프 왕조 중후반의 물건들로 보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벽에 걸린 그림들은 비싸 보이긴 해도, 어느 시대의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없네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어쩌면 벙커에 침입한 존재가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렇다면… 이 그림들로 그 자의 성격을 파악해 볼 수도 있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럼, 가봅시다.

일행은 화랑 안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구역인 ‘일출’에는 네 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 『결정적인 순간』
“참전국들이 정전 협정에 서명하는 모습을 그린 유화입니다.”
“협정이 체결된 열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폴타바: 정전 협정……. 어느 시대를 그린 건지 모르겠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러시아 제국 시대 같긴 합니다만….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그림에 묘사된 내용은 제 기억과는 다르군요.

→ 『‘제국의 별’ 호』
“고속 열차 ‘제국의 별’이 승강장에 정차 했을 때의 모습을 그린 유화입니다.”
“잘 알려진 고전 사진의 구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보고 있으면 그 찬란한 순간이 떠오릅니다.”

스비레피: 잘 알려진 사진…?

스비레피: 모르겠는데…. 오그네보이는 알겠어?

오그네보이: 전혀 모르겠어요!

오그네보이: 애초에 북방연합에 ‘제국의 별’이라는 이름의 고속 열차는 없잖아요?

→ 『새로운 연맹,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세계 연맹의 형성을 그린 유화입니다.”
“수십 개의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금빛 쌍두 수리가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스비레피: …………뭔가 좀 꺼림칙한 그림이네….

→ 『승리의 기념』
“전승 기념관의 로비를 그린 유화입니다.”
“로비에는 옵저버의 의장을 포함한 다양한 전시품이 놓여 있습니다.”

폴타바: 이게 옵저버의 의장이구나. 나도 실물을 본 적은 없어….

폴타바: 이 박물관이 기념하는 건 세이렌 전쟁의 승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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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화랑을 나아갔다.
두 번째 구역인 ‘석양’에도 역시 네 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 『절름발이 거인』
“마을 주민들이 명절을 맞아 장을 보는 모습을 그린 유화입니다.”
“빵집 앞에는 이미 줄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보드카와 호밀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그네보이: 어쩐지 익숙한 풍경이에요.

폴타바: 그러네. 예전에는 항로가 막혀 있어서 물자가 많이 부족했는데, 2년 전쯤부터 항로가 뚫리면서 상황이 나아졌어.

폴타바: 식량 공급도 점차 안정되고 있고, 이런 광경은 이제 보기 힘들지.

→ 『경계를 요함』
“법정의 모습을 그린 유화입니다.”
“재판을 받는 사람은 군함을 이끌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진하려던 해군 장교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군함을 이끌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진이라니……. 재판 결과는 뻔한 일이로군요.

폴타바: 여전히 듣도 보도 못한 사건이야. 대체 뭘 그린 거지?

폴타바: 게다가 함선이 아니라 배라니……. 도저히 시기를 짐작할 수가 없네.

→ 『고립된 거인』
“사이키델릭한 화풍으로 덧그려진 추상화입니다.”
“난잡한 선으로 그려진 거인은 정연한 선으로 그려진 군중들과 확연한 대비를 보이고 있습니다.”

폴타바: 추상화라…….

폴타바: 흐음. 이런 느낌인가.

→ 『고요한 크리스마스 이브』
“어둠 속에서 어느 건물의 깃발이 천천히 하강하는 모습을 간단한 선으로 묘사한 그림입니다.”
“어린이가 그린 그림이라 세부 묘사는 부족하지만,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스비레피: ……뭐야 이건? 아동화까지 전시하는 거야?

오그네보이: 잘은 모르겠지만 보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불편해져요….

스비레피: 나도! 왠지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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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화랑을 나아갔다.
마지막 구역인 ‘유토피아’에도 여전히 네 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 『위대한 도시』
“끝없는 제국의 성곽이 그려진 긴 그림책입니다.”
“인파 속에서 당신은 낯익은 얼굴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빙빙 돌아다니다 보니 당신과 그 동료들은 모두 이곳에 모였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처럼.”

→ 『이상의 본심』
“역사적인 조약이 체결된 순간을 묘사한 긴 그림책입니다.”
“가로로 긴 그림에는 조인에 참가한 모든 구성원들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펄럭이는 깃발 속에 금빛 쌍두 수리와 거대한 하얀 곰이 보입니다.”
“그림 맨 위에는 ‘이로부터 영원한 평화를 누리자’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 『끝나지 않는 연회』
“천 리나 되는 연회의 장면을 그린 그림책입니다.”
“끝나지 않는 연회란 없다, 라는 옛말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당신이라면 연회를 영원히 계속하는 것은 쉬운 일일 것입니다.”

→ 『평범한 수업』
“학교의 수업 풍경을 그린 낙서입니다.”
“당신은 이 수업의 선생님이 ‘세이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극히 당연합니다. 세이렌과의 공존이 이루어졌으니 그녀들을 스승으로 모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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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타바: 이 작품들은 모두 이상적인 풍경을 묘사하고 있어. ‘유토피아’라는 테마에 걸맞게끔.

오그네보이: 저희가 열심히 노력하는 목표이기도 하죠!

스비레피: 음… 근데 중간중간 세이렌하고 공존하는 장면도 들어 있던데, 그건 우리 목표가 아니잖아?

파먀티 메르쿠리야: 소유즈 생각은 어때?

소비에츠키 소유즈: 화가들의 아이디어는 높이 평가할 만하고, 그림의 가치도 예술품으로 보존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다만 내용 중 일부는 경계해야 할 것도 있고, 또 황당무계한 것도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어디까지나 예술이기 때문에 너무 엄격하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파먀티 메르쿠리야: 그 밖에는?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 밖에……?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 이 그림을 걸어둔 ‘누군가’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솔직히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직은 정보가 부족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데이터 센터로 서두르도록 하죠.

파먀티 메르쿠리야: ……잠깐만, 소유즈――

파먀티 메르쿠리야: ……흥. 그래! 계속 가자고!



 ~13. 빙하의 밑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일행은 지체 없이 달려나갔다.
빙하 밑에 존재하는 거대한 바다의 매력은 누구도 당해낼 수 없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머리 위에는 얼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기한 풍경이었다.
무기질의 시설에서 해방된 일행은 너 나 할 것 없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오그네보이: 귀여워요… 아니, 아름다워요!

스비레피: 아름답기도 한데 이상한 풍경이네. 여긴 남극 대륙 지하인데.

스비레피: 왜 산하고 바다가 있는 거지…. 그리고 지평선에 보이는 안개 같은 것도…. 역시 이상해!

소비에츠키 소유즈: 정확히는 지하가 아니라 얼음 밑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곳이 바로 남극이 얼음 밑에 숨겨두고 있던 진실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넓은 대지와, 그리고 바다….

오그네보이: 저기 안개? 너머에는 뭐가 있나요?

스비레피: ‘바다’ 밑도 궁금해! 수심은 어느 정도야? 생물도 살아?

스비레피: 무서운 심해 괴물 같은 거는 없어? 실러캔스나?

소비에츠키 소유즈: 잘…… 모르겠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벙커는 건설된 뒤로 줄곧 휴면 상태여서 주변 환경 조사도 굳이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그 침입자는 철저히 조사한 모양이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기록이 삭제되지만 않았다면 뭔가를 얻을 수 있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무튼 이곳은 ‘고리 구역’이고 데이터 센터는 바로 앞 건물에 있습니다. 서두릅시다.

스비레피: 아하하! 드디어 바다를 달릴 수 있구나!

스비레피: 얼음 밑의 바다를 누비는 건 어떤 기분일지 기대되는데!



 ~14. SOS
지자의 고리. 고리 구역
데이터 센터
잠시 후

소비에츠키 소유즈: 후우. 다행히 일부 데이터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폴타바: 잘됐네. 뭐 찾은 거 있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융설 구역’과 ‘광물’ 제조에 관한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우선 광물은 HL-17-36라인에서 생산되어 지표면으로 운반된 것이 확실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리고 어느 정도 수량이 지표면에 도달한 상태에서 벙커의 방열 시스템은 지표면을 향했고, 그 열기로 쌓여 있는 눈과 얼음을 녹였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마치 눈으로 덮여 있던 광물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말입니다.

폴타바: 이런 복잡한 과정을 자연 현상처럼 꾸미다니.

폴타바: 대체 목적이 뭘까?

소비에츠키 소유즈: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광물을 미끼로 각 진영을 다투게 하거나, 아니면 이 벙커를 폭로함으로써 새로운 혼란을 일으키려는 계획이었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리고 스캔에 관한 정보도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벙커에 침입한 사람은 광물 생산에 앞서 이 ‘얼음 바다’에 무인 잠항기를 대량으로 띄운 것 같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마 얼음 바다를 조사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아직 스캔 데이터가 꽤 남아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보시다시피 잠항기들은 처음에는 정기적으로 모니터링 데이터를 보냈습니다만….

소비에츠키 소유즈: 어느 시점부터 잠항기와의 접속이 점점 끊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현재 이 얼음 바다에 작동 중인 잠항기는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폴타바: 뭔가에 습격당한 걸까…?

폴타바: 그런데 이 바다가 이런 구조로 형성된 건 수백만 년 전이잖아…….

스비레피: 설마 정말로 심해 괴물이…….

파먀티 메르쿠리야: 크앙―!

스비레피&오그네보이: 으아아아아!

오그네보이: 깜짝 놀랐잖아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두 사람이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그만!

스비레피: 누, 누가 귀여워!

파먀티 메르쿠리야: 아하하 너무 화내지 마! 사과의 뜻으로 쿠우가 안아줄까?

오그네보이: 좋아요~

스비레피: 난 싫어!

파먀티 메르쿠리야: 아하하하하♪

파먀티 메르쿠리야의 장난으로 긴장된 분위기가 풀렸다.
한편 주변을 수색하던 폴타바는 태블릿 하나를 발견했다.

폴타바: 사용한 흔적이 있는 태블릿을 발견했어. 책상에 그냥 놓여 있던데.

소비에츠키 소유즈: 태블릿…? 침입자가 사용했던 것일 수도 있겠군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예상대로 태블릿은 잠겨 있었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소유즈는 자신의 접근 권한을 이용하여 태블릿의 잠금을 풀었다.
그러자――

주변 환경이 순식간에 변했다.
특수 광물을 만졌을 때도 겪은 일이라 그런지 소유즈는 의외로 침착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광석과의 공명이 끝난 뒤로 계속 묘한 환상을 봐와서 그런지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 ‘탑’을 보기 전까지는.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건…… 세이렌의 ‘본체’…?!

수평선 너머로 하늘 높이 솟은 검붉은 탑이 있었다.
그 정상에서는 이따금씩 빛의 반점이 나타나 주변을 맴돌다가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컴파일러 제거 작전 이후, 세이렌 본체에 관한 정보는 지휘관을 통해 확보했었다.
따라서 소유즈는 자신이 세이렌의 본체가 위치한 곳에 있다고 확신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눈앞의 광경이었다.

 

문어 모양 의장의 촉수가 소유즈를 에워쌌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가녀린 소녀가 소유즈를 향해 팔을 뻗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옵저버……?!

소유즈는 저항하려고 했지만, 사방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움직일 수 없어…. 어째서 의장이 말을 듣지 않지……?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게…… 옵저버의 재밍……인가….

소비에츠키 소유즈: 위험해……. 촉수가……휘감겨서…… 의식이……….

의식이 어둠 속으로 떨어지기 전, 소유즈는 옵저버의 얼굴을 쳐다봤다.
무수한 촉수의 그늘에 가려진 그 얼굴은――괴로워 보였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괴로워하고 있다고……??

태블릿에 나와 있는 핏빛 SOS 글씨가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SOS’……. 옵저버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빛이 돌아왔다.
눈앞에 있는 폴타바는 태블릿을 건넸다.
환상 속에서의 시간은 현실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았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돌아왔군요.

파먀티 메르쿠리야: 돌아와?

파먀티 메르쿠리야: 어디서?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무것도 아닙니다.

폴타바: 소유즈. 안색이 안 좋아. 또 환각이라도 봤어?

소비에츠키 소유즈: 네. ……그래도, 괜찮습니다. 조금만 쉬면…….

소유즈는 동료의 부축을 받아 의자에 앉았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일전에 프리드리히와 협력할 때도 속내를 전부 밝히진 않았지만)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무래도 속내를 숨긴 건 저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방금 본 것은 아마 옵저버의 ‘본체’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옵저버의 본체는 확실히 남극해 밑에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이 일련의 사건은 모두 옵저버가 꾸민 계획이겠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그 목적은 뭐죠? …구조 요청?)

소비에츠키 소유즈: (…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옵저버가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남극으로 온 진영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고, 그 중에서도 유니온만 유일하게 대규모 함대를 파견했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옵저버는 처음부터 유니온을 데려올 속셈이었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먼저 도착한 것은 북방연합이었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여기까지는 앞뒤가 맞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하지만… 특수 광물과 융설 구역은 옵저버가 준비한 미끼라고 해도… 얼음 바다를 스캔한 이유는 뭐죠?)

소비에츠키 소유즈: (얼음 바다는 자신의 본체가 있는 곳인데, 왜 다시 스캔을 해야만 했을까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스캔을 실시한 인물은 따로 있었군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스캔 시각은 광물 제조 라인이 가동된 시각보다 빨랐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옵저버 말고 다른 누군가가 이 ‘현자의 고리’를 이용한 거였어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리고 그 누군가는… 옵저버를 궁지에 몰아넣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옵저버는 이런 엉성하고 무모한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안 돼. 이번 사건의 배후가 누구든 간에 이미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닙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얼른 이곳에서 탈출해야 해요…!

소비에츠키 소유즈: 폴타바…!

폴타바: 소유즈?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

소비에츠키 소유즈: 융설 구역, 특수 광물… 모든 것이 함정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금 당장 철수합니다. 벙커를… 아니, 남극을 빠져나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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