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신뢰의 시작
TB: …….
……TB가 이 모습으로 버추얼 타운에 온지도 꽤 지났다.
TB: ……….
지휘관: (항상 말없이 인형을 안고 다니는데…….)
지휘관: TB. 그 인형이 뭔지 가르쳐 줄래?
TB: ……인형?
‘인형’이란 개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단어를 바꾸자.
지휘관: 맨날 손에 들고 다니는 그건 뭐야?
TB: ……이거……친해. 껴안으면… 졸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들었다.
지휘관: (어린아이와의 소통은 힘들구나…….)
TB: 엄청…… 아빠 느낌이 나…….
지휘관: 응? 닮았다는 거야?
TB: 안 닮았어……, 그래도, 둘 다 포근해.
그러면서 TB는 인형의 ‘귀’를 내 손에 쥐여 줬다.
TB: 포근해…… 포근…….
TB는 무슨 에너지에 영향이라도 받은 듯 바로 하품을 했다….
TB: ……후아암…….
지휘관: (흐음. 마음을 안심시키는 용도 비슷한 건가…….)
지휘관: (저거하고 같다는 건 그래도 TB가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다행이다.)
~02. 소원의 힘
TB: ……♪
지휘관: TB?
TB: ……불렀어…….
외부와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TB의 논리적 사고와 언어 능력이 많이 향상되었다.
이제는 비교적 유창한 말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TB: ? ……TB 찾았어? ……왜?
지휘관: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요즘 일정 중에 혹시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없니?
TB: ……‘어렵다’가 무슨 뜻이야……?
지휘관: 그러니까 TB가 힘들다거나 하기 싫은 게 있냐는 뜻이야.
TB: 없어…….
지휘관: 그럼 방금 TB 노래 연습했지? 노래 부르는 건 안 힘드니?
TB: 노래 말고….
TB: 다른 거도 했어…….
지휘관: 다른 것도 연습하고 있다는 뜻이니?
TB: 응.
TB: 그치만, 안 힘들어…….
TB: 연습하면…… 만점해.
TB: 아빠도 TB도…… 만점해.
혹시 ‘만족’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TB가 가상 공간에 왔을 때 메모리 로그를 차단하긴 했지만…
‘개성’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서 지금 TB의 ‘소원’이 되었다.
지휘관: TB. 무리는 하지 마렴?
TB: 응.
TB: 아빠가 있으면…… 안 그래…….
~03. 당신의 이야기
TB: 이야기, 듣고 싶어.
요즘 TB는 그림책 속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보통은 자기 전에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지휘관: 아직 코 잘 시간 아닌데?
TB: 듣고 싶어…….
지휘관: (먼저 조르다니 별일이네. 뭐 들어 주자.)
요즘 자주 읽어주는 그림책을 몇 권 가지고 왔지만 TB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TB: 모르는 이야기, 듣고 싶어…….
TB: 이 책, 다 알아.
지휘관: 새로운 이야기가 듣고 싶니?
TB: 응. 새로운 이야기. 듣고 싶어!
지휘관: (곤란하네.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
→ 전투 이야기
지휘관: (전투에 관한 얘기를 들려줘 볼까!)
TB: ……그거 말고.
지휘관: (깔끔하게 거절당했다!)
지휘관: (역시 다른 걸로 하는 게 좋겠네.)
→ TB에 관한 이야기
지휘관: (그럼 TB를 모티브로 삼아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어디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TB: ……?
지휘관: (그래. TB가 ‘개성’을 찾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들려줘야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TB도 서서히 꿈나라로 떠났다.
TB: TB는…… 내비게이터처럼…….
TB: ……용감하게….
TB는 반쯤 꿈속에서 중얼거리고 있다.
지휘관: 넌 이미 용감해.
TB: ……후우……Zzz…….
~04. 감정의 가치
TB: …….
지휘관: TB. 왜 그래?
TB: ………….
TB가 기운이 없어 보인다.
TB: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잘 안 됐어요.
TB: 이게 뜻대로 안 된다는 건가요?
지휘관: 음. 일정 중에 잘 안 된 게 있었니?
TB: 네.
지휘관: 그건 TB가 성장했다는 증거야. 오늘 밤은 맛있는 거 먹으면서 축하해야겠네!
TB: 왜요?
TB: 잘 못했는데 왜 축하해요?
지휘관: TB가 마침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지휘관: 분노도 슬픔도 모두 감정이야.
지휘관: TB. 학교에서 혹시 감정이 옅다는 말을 종종 듣지 않았니?
TB: ……네. 선생님도 항상 감정이 없다고 그러셨어요.
지휘관: 그러니까 오늘은 TB가 슬프다는 감정을 잘 보여줬으니 당연히 축하해야지.
TB: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 핑계대는 거 같아요.
지휘관: 그럴 리가.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감정을 가지고 그것을 표현한다. ‘개성’을 찾아가는 길에서 TB는 비로소 큰 한 걸음을 내딛었다.
지휘관: 이따 같이 나가서 맛있는 거 사올까?
TB: ……응.
~05. 좋아하는 이야기
지금까지 TB의 희망에 따라 여러 가지 일정을 시험해 봤다.
지휘관: TB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TB: 희망 리스트에 있는 건 사실 전부 ‘좋아’해요.
소리도 없이 어느새 TB가 눈앞에 나타났다.
지휘관: 그럼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 알려줄 수 있어?
TB: 이유요? 그게 옳다고 생각하니까요.
지휘관: ‘좋아하는 것’과 ‘옳은 것’을 혼동하면 안 되는데….
지휘관: 좀 나쁜 예를 들자면… ‘좋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TB: ……복잡하네요.
지휘관: 좋아. TB.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봐.
TB: 그리고요?
지휘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TB: …….
TB: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지휘관: 음. TB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구나.
TB: ……아뇨. 조금 달라요.
TB: 자기 전에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요.
TB: 포근하고… 안심되니까요.
지휘관: (그 점은 어렸을 때하고 똑같네.)
지휘관: TB가 좋다고 하니까 오늘 밤은 자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줄게!
TB: 네.
TB: ……앞으로도 계속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06. 각자의 마음-쿨
TB: ……자기 자신은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죠?
갑자기 TB가 놀라운 발언을 했다.
지휘관: 어?
TB: ……아무리 일이 바빠도 제가 하고 싶다고 하면 바로 데려다 주잖아요.
TB: ……항상 제 소원을 들어주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으니 안전한 대답으로 가자.
지휘관: 하지만 TB의 보호자로서 당연한 일인걸.
TB: ……그럼 적어도 가끔은 제가 아빠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게 해주세요.
지휘관: 과연. 그래서 기분이 나빴던 거였구나….
TB: ……기분 안 나빠요. 그리고 그냥 물어본 거예요.
TB: ……소원이 없다면 됐어요.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TB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지휘관: 아. 잠깐만 TB. ……사실 소원이 하나 있어.
TB: ……뭔데요?
지휘관: 커서는 자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없었지?
지휘관: 어릴 때는 그렇게 들려달라고 졸랐었는데…….
TB: ……아니, 그렇게 과장되게 조르진 않았거든요.
TB: ……아무튼 잠자기 전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게 아빠의 소원이라고요?
지휘관: 응.
TB: ……딱히 상관 없지만요.
TB: ……. 그럼 이야기… 기대하고 있을게요.
TB: ……스토리텔링 수준이 퇴보했으면 가차없이 지적할 테니까요.
~07. 각자의 마음-상냥함
TB: 저기… 드릴 말씀이 있어요…….
지휘관: 응?
TB: 아. 심각한 건 아니구요. 그냥… 아빠의 소원은 뭔지 궁금해서요.
TB: 그동안 계속 제 소원을 들어주셨으니까, 저기…….
TB: 저도 아빠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어요……!
TB는 거절당할까봐 두려운 듯 간곡하게 말했다.
지휘관: 하지만 TB의 보호자로서 당연한 일인걸.
지휘관: 너무 신경 쓰지 마렴.
TB: 안 돼요……! 소원을 알려주지 않으면 TB는…….
TB: TB는…… 가출할 거예요!
소녀는 잠시 생각한 뒤 자기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않는 ‘협박’을 내뱉었다.
지휘관: 가, 가출? 내가 잘못 들은 거지?
TB: 잘못 들은 거 아니에요……! 아빠가 소원을 말해주지 않는다면… 지, 지금 당장 가출할 거예요!
지휘관: 알겠어 알겠어. 그럼 생각해 볼게….
TB: 어떤 소원이든 꼭 들어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커서는 자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없었지?
지휘관: 어릴 때는 그렇게 들려달라고 졸랐었는데…….
TB: 네? 그 얘기는 갑자기 왜……?
지휘관: 그게 바로 내 소원이야. 자기 전에 TB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TB: ……후훗.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TB: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요.
TB: 참고로 그건… 제 소원이기도 하니까요.
~08. 각자의 마음-활발
TB: 저기……. 아빠는 TB한테 너무 무른 거 아니에요?
눈앞의 소녀는 팔짱을 끼고 뾰로통한 모습으로 나를 응시했다.
지휘관: 어?
TB: 제가 뭐 하고 싶다고 하면 바로 데려다 주고…….
TB: 어려운 요구라도 고민 끝에 어떻게든 해주잖아요. 이게 무른 게 아니고 뭐예요?
지휘관: 그건 TB의 보호자로서 당연한 일인걸.
지휘관: 그리고 무른 거하고는 좀 다르지. 난 그냥 TB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을 뿐이야.
TB: 아! 맞다 그거!
TB: 지금까지는 아빠가 계속 TB의 소원을 들어줬지만 이제는 슬슬 바꿔봐도 괜찮지 않아요?
지휘관: 설마 TB가 내 보호자가…!
TB: 누가 아빠 보호자를 해요!
TB: 아, 물론 그게 아빠 소원이라면 해줄 수도 있어요~
지휘관: 아. 그래도 그건 아니지.
TB: 그래요~? 진짜 소원을 말하지 않으면 아빠 소원이 그게 아니라는 증거도 없잖아요?
지휘관: 유도신문은 아직 멀었구나.
TB: 치잇. 들켰네….
지휘관: 그렇게 거창하게 나올 필요 없어. 내 소원은 매우 심플하니까.
지휘관: TB한테 다시 한 번 자기 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지휘관: TB가 크고 나서는 들려준 적이 없었지?
TB: 뭐야, 그게 소원이에요?
TB: 들려주는 건 좋아요! 단 이야기 내용은 TB가 정할 거예요!
TB: 모험과 싸움 이야기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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