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개성’이란……?
모항. 집무실.
나는 스크린 너머로 TB와 마주보고 있었다.
지휘관: 어흠…. TB. 얼마 전에 물어봤던 거 말인데. 결국 답은 찾았어?
TB: 분석 모듈 동기화-‘개성’이라는 개념이 내포하는 정보를 해석할 수 없습니다.
TB: 지휘관님. 자료와 데이터 프로파일링을 실시하였으나, 감정 인식에 대한 답을 도출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 전 TB가 ‘개성이 부족하다’라는 참으로 어려운 상담을 해왔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일단 몇 가지 자료를 건넸지만…….
지휘관: 단순히 정보 입력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건가….
TB: 검색 중-‘개성’은 일반적으로 개체의 유일무이한 특성. 또는 타인과 다른 사고 회로로 해석됩니다.
TB: 단순 텍스트로 서술은 가능하지만, ‘개성’이라는 개념의 근원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휘관: 근원이라….
문득 대담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휘관: 조금 이상한 질문일수도 있는데….
지휘관: TB는 그러니까… ‘어린 시절’ 일을 기억하니?
TB: 보조 전자 아이덴티티 인터페이스는 일반적으로 ‘어린이’로 정의되는 시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TB: 분석 모듈 동기화-지휘관님은 ‘유년기’와 ‘개성’ 간의 관계성을 지적했습니다.
지휘관: 그래. TB는 어린 시절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해.
TB: 정보 통합 및 분석을 실시합니다.
지휘관: 분석할 필요 없어. 방금 얘기를 듣고 TB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걸 말해줘.
TB: 오더를 확인했습니다. 분석을 중지합니다.
TB: 연관성이 존재할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결론은 논리적 근거가 없으며, 현재의 담화 주제에 따라 도출된 합리적 추론에 불과합니다.
지휘관: 지금은 그걸로 충분해.
TB: 지휘관님은 답을 알아내셨습니까?
지휘관: 아마도. 하지만 아직은 가르쳐 줄 수 없어. TB. 앞으로 몇 달 동안은 맡은 업무를 중단해줘.
지휘관: 너만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 있어.
지휘관: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는 아직 말할 수 없지만… 준비가 다 끝나면 부를게.
TB: 오더를 확인했습니다. 특수 대기 모드로 진입합니다. 추후 오더가 있을시 재기동합니다.
지휘관: (뭐… 아카시한테 물자만 두둑이 지원해 주면 어떻게든 해주겠지….)
~02. 사전 준비는 확실히
아카시의 공방에 왔다.
아카시: 지휘관. 무슨 일이냥?
지휘관: 실은….
→ 사정을 설명한다
아카시: 흠흠. 그렇구냥.
아카시: TB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다고냥.
아카시: 하지만 TB는 실체가 없는 인공지능이라 우리처럼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냥.
아카시: 그러니까 반대로 생각해서 가상의 마을을 만들어 거기서 TB를 생활하게 하면――
아카시: ‘성장’을 체험하면서 조금씩 ‘개성’이 자라날 수도 있지 않을까냥….
→ 실현 가능해?
아카시: 안 되는 건 아닌데냐….
아카시: 그냥….
아카시: 지휘관이 좀 준비해줘야 하는 게 있다냥.
지휘관: 어떤 건데…?
아카시: 9,999,999,999,999물자가 필요하다냐!
지휘관: 그, 그렇게나 많이!?
아카시: 냥?
아카시: 이래봬도 단골 고객 한정 특별 가격이다냥?
지휘관: 그럼 원래 가격은 대체….
스스로 우문을 입에 담았다고 생각한 직후, 아카시는 히죽거리면 내 귀에 대고 어떤 숫자를 말했다.
지휘관: …….
지휘관: ………….
지휘관: 아까 가격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대로 가자!
아카시: 쿨거래 좋다냐 역시 지휘관이다냥!
아카시: 매번 고맙다냐~
아카시: 한 달 후에 검수하러 오라냥.
지휘관: 한 달은 너무 길지 않아?
아카시: 냥? 이게 얼마나 복잡하고 정밀한 작업인데, 원래는 한 달이라도 빠듯하다냥.
지휘관: 그럼 아카시 대신 다 빈치에게 부탁해 봐야겠다~
아카시: 노, 농담이다냐! 20일, 아니 10일이면 충분하다냐!
아카시: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어라냥!
~03. 타임 투 트라이얼
10일 뒤――
아카시: 지휘관.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냥?
아카시: 짜잔! TB를 위한 버추얼 타운의 완공일이다냐!
아카시: 이거 받아냥.
지휘관: 이건….
아카시: 이게 바로 아카시 공방이 새롭게 개발한 몰입형 인터페이스다냐!
아카시: 이걸 착용하면 정말로 손에 잡힐 듯한 체험을 실감할 수 있다냐!
아카시: TB는 실체가 없는 인공지능이지만, 이것만 있으면――
아카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냐!
지휘관: 대단한데? 전부 아카시 혼자서 만든 거야? 고생했어.
아카시: 아카시 혼자 만든 게 아니다냐! 모항의 모두가 도와줬다냥.
아카시: 우냥! 그보다 지휘관, 얼른 체험해 봐랴냐!
아카시: 곧 TB하고 만나게 될 거다냐~
지휘관: 자, 잠깐만 아카시….
아카시는 내 머리에 이상한 장치를 씌웠다. 순간 눈부신 빛이 어른거렸다――
~04. 어서 와
점점 눈앞의 광경이 선명해졌다.
지휘관: 여기는… 거실인가?
가구와 생활용품들이 아기자기하고 가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다.
지휘관: 그러고 보니 곧 TB하고 만나게 될 거라고 했지….
지휘관: 뭐 맞이할 준비라도 해야 되나?
→ 방을 정리한다
지휘관: 좋아. 방을 정리하자.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잘 정돈되어 있어 추가로 손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지휘관: 역시 앉아서 기다릴까.
→ 앉아서 기다린다
지휘관: …….
어쩐지 묘하게 긴장된다.
지휘관: 후우….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시계를 확인했다.
지휘관: TB가 언제 오는지를 물어봤어야 했는데….
고민하던 와중 똑똑, 하고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지휘관: …….
지휘관: ……….
TB에게 세부 계획을 설명했을 때 일단 그녀의 승낙을 얻었었다.
이 공간에서 TB는 가장 기초적인 인식 기능 외에는 일시 차단되어 외부의 기억 영역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이는 TB에게 ‘성장’의 과정을 확실히 체험시키기 위해서다.
말 그대로 ‘어린’ TB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살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이내 책임감으로 대체되었다.
그래. TB와 약속한 이상 그녀의 고민을 꼭 해결해 줘야지.
지휘관: 어서 와. TB.
~05. 새로운 생활 上
TB: …….
TB: …………?
TB는 동그란 눈동자를 굴리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모항 사람들의 시선에는 익숙하지만, 어린 TB가 바라보자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지휘관: 저기… 내가 누군지 기억하니?
TB: …….
TB: 지, 히간…?
지휘관: 혹시….
지휘관: 지휘관, 이라고 부른 거니?
질문을 지시로 착각한 듯 TB는 내 말을 복창했다.
TB: 지…휘…관?
아직 발성은 서투르지만 놀라운 언어 습득력이다.
하지만… 이 모습의 TB한테 지휘관이라고 불리는 건 좀 낯간지럽다.
이 기회에 호칭을 바꿔 봐도 좋을 것 같다.
역주) 여기서 TB가 지휘관을 부르는 호칭을 정할 수 있습니다. 이후로 TB 육성 관련 글에서는 ‘아빠’로 지칭합니다.
~06. 새로운 생활 下
호칭도 정했고. 다음은….
TB는 여전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휘관: 계속 서 있으려니 힘들지? 소파에 앉을까?
TB: ……?
TB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TB의 손을 끌어 소파까지 안내했다.
지휘관: 여기 앉아서 좀 쉴까?
TB: ……응.
안아서 소파에 앉히려고 했지만, TB는 그보다 빨리 그 작은 손발로 열심히 기어올라갔다.
지휘관: 뭐랄까, 꽤 신선한 광경이네.
TB: ……?
지휘관: 아무것도 아냐. TB. 오늘부터 여기서 사는 거야.
TB는 턱을 소파 등받이에 얹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휘관: ……안 듣고 있나.
이렇게 TB와의 가상 세계 생활이 시작되었다――
~07. 따뜻한 사랑
지휘관: 식재료 밑 손질은 대충 끝났고….
가상 공간임에도 식기와 식재료의 촉감, 심지어 음식 향기까지 그대로 난다.
지휘관: 이게 돈의 힘인가….
이 장치를 만들기 위해 아카시에게 들인 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 때, 옷자락이 살짝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휘관: TB?
지휘관: 배고프니? 밥 거의 다 됐어.
TB는 아무 반응 없이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지휘관: 저기, 왜 그래?
TB: …….
지휘관: ……?
TB는 팔을 벌렸다. 안아달라는 것 같았다.
지휘관: TB. 혹시 같이 요리하고 싶어서 그래?
TB: 응…….
어린 아이를 부엌에 들이는 건 너무 위험하다. 그래도 ‘성장’을 위해서라면…….
어린이용 의자를 가져다가 TB가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단단히 고정시켰다.
TB: 동그래―
아직 썰지 않은 감자를 들어올리며 TB는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TB: 네모로 잘라서… 까만 거하고 같이 보글보글…. 맛있어….
나는 TB가 표현하고자 하는 말을 열심히 이해하려고 애썼다.
TB: 딱딱해서… 먹는 거, 힘들어.
지휘관: 혹시 고기감자조림 말하는 거니…?
그러고 보니 전에 고기감자조림을 만들었을 때 실패해서 태운 적이 있었는데… 그게 맛있었나?
TB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 어떻게 만드는지 볼래? 아니면 같이 할까?
TB: 같이 할래…!
표정도 톤도 변하지 않았지만 왠지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어린이용 조리 기구 세트를 꺼내 칼을 TB에게 건넸다.
지휘관: 자를 때는 조심해야 돼.
지휘관: (그나저나 이 방에는 없는 게 없네. 아카시 아니랄까봐 빈틈이 없군.)
그렇게 어린 TB의 협조로 무사히 고기감자조림이 완성되었다.
숟가락을 들어 평소처럼 TB에게 밥을 먹이려 했는데….
TB는 음식을 무시하고 어린이용 식기를 들어 더듬거리며 내 움직임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지휘관: 많이 컸구나….
지휘관: 아니 아니, 뭘 했다고 감회가 솟는 거야….
TB의 성장에 감회를 느끼는 사이 그녀는 다시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TB: 아――
TB는 포크로 브로콜리를 찍어 내 입가에 가져다 댔다.
지휘관: ……?
TB: 입…… 벌려.
여전히 표정은 없지만 TB는 매우 기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렇게 먹여주는 행위를 흉내 내는 것 자체가 TB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이해하는 단서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TB: 아――
내가 가만히 있자 TB는 다시 소리를 내어 나를 재촉했다.
지휘관: 아――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입을 벌려 브로콜리를 먹었다.
그 후 TB와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다.
~08. 포근한 꿈속에서
밤이 깊었다.
그럼에도 TB는 아직 졸리지 않은 것 같다.
TB: 코오…… 아직 괜찮아.
습득한 말이 늘어나면서 TB는 점점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휘관: 잠 안 자면 키 안 크는데….
지휘관: 오. 이렇게 된 거 재우기에 도전해 보자.
보통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거지만…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서야.
그런데… 어떻게 재워야 하지…?
→ 노래를 부른다
자장가를 불러 보자.
→ 책을 읽어준다
그림책을 읽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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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를 성공적으로 재운 후, 잠깐 단말기를 벗고 모항 업무를 몇 가지 처리했다.
지휘관: 역시 마음에 걸리네. 잠깐 얼굴 좀 보고 오자.
잠결에 몸을 뒤척여서 그런지 이불이 침대에서 반쯤 떨어져 있었다.
TB: Zzzzz…….
TB는 인형을 꼭 끌어안고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휘관: (…그나저나 TB가 계속 안고 있는 저 인형은 대체 무슨 인형이지?)
→ 해파리일지도 몰라
얼핏 보면 해파리 같기도 한데 자세히 보면…….
아니, 도저히 해파리는 아닌 것 같다.
→ 테루테루보즈인가?
근데 테루테루보즈에 귀가 있었나?
게다가 생긴 게…… 테루테루보즈라기엔 좀 미묘한데….
지휘관: (뭐 됐다…. 귀여우니까.)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살며시 TB에게 덮어줬다.
TB는 아무것도 모르고 곤히 잠든 것 같았다.
달빛이 얇은 커튼을 통해 들어와 눈앞에 있는 낯익은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TB: ……Zzzz……으응…….
TB가 무언가 소리를 흘렸다. 잠꼬대 같기도 하고, 단순한 숨결 같기도 했다.
지휘관: (……너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니?)
~09. 새로운 체험
지금까지는 내가 다 씻겨줬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할 수 있겠지.
지휘관: TB. 혼자서 해볼래?
TB: …응.
나는 TB의 앞머리를 머리핀으로 고정시키고 그녀를 의자 위에 세웠다.
제대로 된 거울을 보는 건 처음인지 TB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TB: TB가 두 명…….
지휘관: 거울 속 모습을 말하는 거야? 응. TB가 두 명이네.
TB: 좀…… 달라.
지휘관: 정말이네~ 거울 속 TB는 진짜 TB하고 반대로 움직이고 있어.
지휘관: (나도 모르게 말투가…….)
신기하게도 어린아이와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말투가 유치해진다.
그런데 TB는 이런 모습이 되었는데도 유난히 얌전하다.
상식과 인지가 아직 부족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뭐가 있는지…….
깊게 생각해도 별 수 없다. 눈앞의 그녀와 함께 성장하면 되니까.
지휘관: 좋아, 다 됐다.
TB: …….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10. 파란 ‘물’
조금씩 평소 생활에 익숙해지자, 나는 TB가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여러 곳에 데려가기로 했다.
지휘관: 이 나이 또래 애들이 주로 놀러가는 곳은….
지휘관: …생각해봐도 답이 안 나오네. 음… 그럴 땐 수족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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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와 함께 수족관을 거닐었다.
TB: …….
TB는 수조를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휘관: (미묘한 반응이네…. 좋아하는 거야, 싫어하는 거야?)
TB: 움직여….
TB는 수조로 다가가 고개를 들고,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해양 생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지휘관: 맘에 드니?
TB: 응. …따뜻해.
지휘관: (대답이 좀 어긋난 거 같은데……. 뭐, TB는 아직 어린애니까 아이의 시선으로 눈높이를 내려 보자.)
지휘관: 따뜻해? 물고기들이?
TB: 아니……. 파란 물.
지휘관: 파란 물? 아.
바다를 말하는 거구나.
비록 가상 세계 속 바다라고 해도 친근감을 느끼는 걸까?
지휘관: 이건 바닷물이야.
지휘관: 바닷물이 맘에 드니? 나중에 TB가 좀 더 크면 같이 바다에 놀러 가자.
TB: 응…….
TB는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하긴… 현재 그녀의 인지 능력으로는 이것들을 이해하는 데 아직 어려울지도 모른다.
지휘관: 저쪽으로 가볼까? 더 큰 물고기도 있어.
TB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TB와 수족관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슬슬 돌아가자.
~11. 색다른 일상
오늘은 TB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날이다.
TB: TB, 말 잘 들을게…….
TB는 예전과 비교하면 더 완전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말이 길어져서인지 그녀의 기복 없는 어조가 더욱 기묘하게 느껴졌다.
지휘관: (이런 어조로 말하는 어린이라니 좀 어색하네…….)
지휘관: (그래도 이것도 TB가 ‘개성’을 찾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TB: 응……?
TB: 소리가…….
학교 종소리가 울렸다.
지휘관: 시간이 됐구나. TB, 안녕.
TB: 안녕……?
TB는 내 동작을 따라하며 손을 흔들었다.
지휘관: 다 끝나면 데리러 올게.
따스한 봄바람. 벚꽃 잎이 하늘을 날며 TB의 주위를 맴돌았다.
TB가 학교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뒤에서 그녀를 배웅했다.
~12. 귀여움의 정의……?
TB의 첫 등교 이후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지휘관: (이 학교는 참관 수업 때 공연을 한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지휘관: (TB도 무슨 공연을 하는 건가…?)
지휘관: …지금 생각해 봤자 소용 없지. 일단 TB를 데리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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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갓길. TB는 가끔씩 나를 올려다봤다.
지휘관: 오늘은 뭐했어?
쪼그려 앉아 TB와 눈높이를 맞췄다.
TB: …….
TB: 참관 수업 때, 공연한대.
지휘관: 정말? TB도 하니?
TB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정말이네.)
TB: 선생님이 공연 때 입을 옷이 필요하대….
TB: 목―적, 방―향―성, 모르겠어.
지휘관: 아무튼 귀여운 느낌이면 되려나? 공연이니까.
지휘관: (적당히 대답했는데 괜찮으려나…?)
지휘관: (아동 심리학 좀 공부해 놓을걸.)
TB: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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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TB에게 어울릴 것 같은 귀여운 옷들을 옷장에서 몇 벌 꺼내 보았다.
TB: 이거…… 귀여워?
지휘관: 응. 당연하지.
TB는 거울을 빤히 들여다봤다. 아무래도 이 원피스가 맘에 든 것 같았다.
지휘관: TB… 키가 좀 컸구나?
TB: 키 컸어? 응……. TB, 더 커졌어.
대답하면서도 TB의 눈은 전신 거울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TB는 아직 뚜렷한 감정 표현을 보이지는 않지만…… 이래봬도 꽤 알기 쉬워졌다.
앞으로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정말 기대된다.
~13. 다음 단계로
나는 단말기를 벗고 가상 공간에서 모항 집무실로 돌아왔다.
평소에는 TB가 나를 도와주는 입장이지만, 가상 공간에서는 내가 TB의 성장을 돕고 있으니 희한한 기분이었다.
(똑똑)
집무실 문이 열리며 낯익은 녹색 형체가 들어왔다.
지휘관: 아카시? 이 시간에 웬 일이야?
아카시: 흐흥. 지휘관한테 말하는 걸 깜빡한 설정이 있다냐.
아카시: 가상 공간은 일정 기간마다 거주자의 행동 데이터에 근거하여 업데이트 된다냐.
아카시: 그러니까, 단말기가 새 버전이 되면 안에 있는 TB도 성장한다냐.
아카시의 말을 듣고 단말기를 확인하니 정말로 업데이트 진척도를 나타내는 게이지가 있었다.
지휘관: 성장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 그래도 이런 중요한 설정은 더 빨리 알려주지….
아카시: 아무튼 TB는 무사히 업데이트 됐다냐.
아카시: 다음에 만나면 성장한 TB를 볼 수 있을 거다냥.
아카시: 그럼… 흠흠. 알려줘야 할 설정은 다 알려준 거 같다냐. 그럼 다음에 봐냥!
아카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휘관: 발도 참 빠르기도 하지….
TB의 ‘성장’… 대체 어떤 느낌일까?
애초에 나는 TB를 어떻게 보고 있었지…?
평범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아니면….
거기까지 생각해 봤지만 나는 어떠한 답도 내놓지 못했다.
좀 더 그녀와 함께 지내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휘관: 슬슬 업데이트 끝났겠지? 좋아, TB를 만나러 가자.
갱신이 완료됐다는 효과음을 확인하고, TB가 있는 가상 공간에 다시 뛰어들었다――
~14. TB와의 새로운 교류 방법
시스템 업데이트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다.
업데이트 전 TB가 인간으로 쳤을 때 3~4세 정도라면 지금은 7~8세 정도일 것이다.
‘성장’은 여러 의미에서 TB에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TB: 출발 시간이에요. 교통 상황과 날씨를 고려하면 지각할 가능성은 10% 정도네요.
지휘관: 이성적인 아이가 되었구나…. 좀 더 응석 부려도 괜찮은데.
TB: ‘착한 아이’는 이렇다고 생각해요.
TB: 운동회는 1시간 뒤니까 슬슬 출발해야 돼요.
지휘관: …….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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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도착하자마자 TB는 스스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운동장 트랙 옆에 깔린 매트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지휘관: TB. 물이랑 수건 여기 놔둘게.
TB: 네. 벌써 가시는 거예요?
TB는 스트레칭을 하면서 내게 질문했다.
지휘관: 학부모 좌석은 저쪽이더라. 저기서 응원할게.
TB: …….
어쩐지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지휘관: 여기 있는 게 규칙 위반이 아니라면 여기서 응원할게.
TB: 응. 그럼 TB도 좋은 성적 받아올게요.
기분 탓인지 그동안 별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던 TB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솔직하지 못한 아이도 그 나름대로 귀엽구나…….
~15. ‘잘못된’ 지식
오늘 하루도――
지휘관: 500!
TB: 800이요.
지휘관: 648.
TB: 999요!
지휘관: ……왜 점점 높아지는데?
TB: 이런 ‘흥정’이라는 행위로 돈을 버는 거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지휘관: 아니, TB는 수학여행 용돈을 바라는 거잖아? 거기서 왜 흥정 논리가 나오는데…?
TB: ……흥.
입을 꾹 다문 TB는 화가 난 듯 볼을 부풀리며 생각에 잠겼다.
TB: ……용돈 좀 더 줄 수 있냥? 조금만이라도 괜찮다냐~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TB의 모습은 보호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근데 이 익숙한 말투는…….
TB: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는 이런 말투로 말하면 된다고냐~
그렇게 말하며 TB는 내 옷자락을 잡았다.
TB: 용돈냐앙…….
지휘관: 그래그래. 용돈 조르기 작전은 네 승리다….
TB: TB가 이겼다냥~
…….
정말이지……. 나중에 아카시한테 따져야겠어.
애들 수업에 이런 걸 가르치다니!
~16. 불꽃놀이와 약속
TB와 축제 거리를 돌았다.
지휘관: 또 키가 컸나 보구나.
TB: 성장기라 당연한 거라고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지휘관: 아니, 맞긴 한데….
TB: ……?
지휘관: (보호자가 아이의 성장을 칭찬하면 보통은 기뻐하지 않나…?)
밤하늘에 불꽃이 터졌다. 유카타 차림의 TB는 몸을 살짝 돌려 나를 바라봤다.
TB: TB는 지금 정말 행복해요.
그녀의 얼굴에는 분명 ‘미소’라고 할 수 있는 표정이 나타났다.
TB: 오늘은 재미있는 일도 많이 하고, 불꽃놀이도 봐서 정말 좋았어요.
나이에 걸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이 계획이 부분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TB: 매일 매일이 불꽃놀이였으면 좋겠어요.
TB: 그러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요.
다시 어린애 같은 말을 하는 바람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졌다.
지휘관: TB. 학교에 안 가면 착한 아이가 될 수 없어.
TB: 그래요…….
혹시 실망했나…?
TB: 그럼 나중에 또 불꽃놀이 보러 올 수 있나요?
지휘관: 물론이지.
TB: 약속해요.
TB와 다음 여름에 또 불꽃놀이를 보러 오기로 약속했다.
~17. 첫 번째 요리
TB가 학교에서 여는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간식은 이거면 됐고… 도시락은 어떡하지?
TB: 도시락?
TB: TB도 만들어 볼래요.
지휘관: 위험하니까 안 돼.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부엌에는 칼도 있고 불도 있다. 안심할 수 없다.
TB: 전에는 도와주게 했으면서.
지휘관: 그건….
TB를 막을 이유가 사라지고 말았다.
지휘관: 그, 그럼 달걀프라이부터 해보자….
40분 후――
TB: 저기…… 왜 TB가 달걀프라이를 만들면 항상 타는 거예요?
TB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손에 쥔 팬을 마구 흔들었다. 아직 완전히 익지 않은 노른자는 그대로 터져버렸다.
TB: 배운 대로 잘 하고 있는데…….
지휘관: 기름 온도가 너무 높아. 그리고 프라이를 뒤집는 타이밍도 너무 빨라.
접시에 담긴 실패한 달걀프라이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만드는 법도 차근차근 가르쳐줬고 다치지 않도록 대책도 세웠다.
그럼에도 TB는 프라이팬에서 튀어나오는 불길이나 기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위험 감지 능력이 잘 자라고 있는 건지 좀 걱정이다.
지휘관: 하아…….
음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TB의 실패작들을 모두 먹어 치웠다.
나도 TB도 당분간은 달걀은 쳐다보고 싶지 않다….
~18. 공부 고민
TB는 지금 진학 시험을 앞두고 있다.
지휘관: (혹시 모르니… 요즘 공부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어보자.)
TB의 허락을 맡고 방으로 들어갔다.
TB: 음…….
TB: 어디서부터 복습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TB: 책을 많이 읽어도 금방 잊어버려요.
TB: 선생님이 성적이 너무 치우쳤다고 그러셨어요. 과목마다 차이가 심하다고.
책상 위에 있는 시험지의 점수를 보고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TB: 웃을 일이 아니에요…….
TB는 투덜거렸다.
지휘관: 성적이 편중된 TB라니 좀 믿기지가 않아서.
못하는 게 없었던 그 내비게이터 TB가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는 학생이 되어버리다니.
지휘관: 미안.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네.
지휘관: 그럼 같이 복습해 볼까?
~19. 시스템 업데이트
가상 공간의 데이터가 순조롭게 축적되면서 슬슬 업데이트 시기가 찾아왔다.
지휘관: 아무리 아카시라도 중요한 설정을 말해주는 걸 또 깜빡하진 않았겠지….
아카시: 정답이다냐~ 역시 지휘관이냥!
아카시: 이제 계획의 가장 중요한 단계다냐. 즉 TB가 앞으로 얻게 될 ‘개성’에 관한 얘기다냥.
아카시: 업데이트가 끝나면 드디어 성장해서 개성을 얻은 TB를 보게 될 거다냐.
지휘관: 너무 빠르지 않아…? 뭔가 좀 더 거쳐야 할 단계가 있을 거 같은데….
아카시: 그런 단계는 벌써 밟았다냐!
아카시: 냥. 그리고 하나 더. ……‘개성’은 TB의 장래의 직업에 영향을 준다냐.
지휘관: 직업?
지휘관: 잠깐만. 내가 준 계획서에 그런 내용은 없었는데…?
아카시: 현실성을 따지면 이 정도가 딱 좋다냐. 이해해줘라냥.
아카시: 설정 설명은 이걸로 정말 끝이다냐. 지휘관, 힘내라냥.
아카시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휘관: 하아… 말은 들었어도 실감이 안 나네….
지휘관: 응? 업데이트가 끝났구만….
지휘관: 돌아가서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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