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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인기 투표 특별 스토리 + 아타고

킹루클린 2023. 12. 10. 18:35

● 뉴저지

 ~01. 완벽한 계획

뉴저지: 안녀~~~엉 허니~!

 

어깨를 두드림과 동시에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그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돌릴 필요도 없었다.

 

뉴저지: 약속 시간보다 한참 전이잖아.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뉴저지: !

 

뉴저지: 알겠다. 오늘 데이트가 너무 기대돼서 그런 거구나? 허니?

 

뉴저지: 으흠! 엄청 귀엽고 엄청 똑똑하고 엄청 강력한 최대 최강 슈퍼 블랙 드래곤이자 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푹 빠진 사랑스러운 뉴저지 양과 데이트를 하게 됐으니 그럴 만도 하지!

 

슈퍼 블랙 드래곤?

 

뉴저지: !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 아무튼 이 중에 적어도 하나 이상은 맞잖아? 그치?

 

뉴저지: 아무튼 농담이었으니까 넘어가자! 그러면――

 

사실 엄청 기대하고 있었어

사실 정말 정~말 기대하고 있었어!

 

뉴저지: , 정말? 흐흐응…….

 

뉴저지: 허니가 먼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공격하면 얼굴 빨개지잖아!

 

뉴저지: 으흠! 아무튼 오늘 데이트 계획은 완벽하게 준비했으니까!

 

뉴저지: 허니는 긴장 풀고 내 리드에만 따르면 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게 해줄게!

 

뉴저지: 첫 번째로 갈 곳은극장이야!

 

 

→ 아침부터 영화 보는 거야?

뉴저지: 그치만 엄청 좋은 영화가 상영 중이거든! 허니도 분명 좋아할 거야!

 

→ 그거 괜찮네!

뉴저지: 예이~ 벌써부터 기운이 넘치네 허니~! 그런 자세 참 보기 좋아!

 

 

뉴저지: , 깜빡할 뻔했다.

 

뉴저지: , 손잡아! 후후~ 깍지 안 끼면 데이트 느낌이 안 나잖아~

 

뉴저지: 좋아 그럼극장으로 출발!

 

----

 

뉴저지 말대로 극장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으로 상점가, 수족관 등등.

 

뉴저지가 자기 리드에만 따르면 된다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하루 종일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코스와 이벤트를 계획했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내 해가 지기 시작했다――

 

뉴저지: 허니. 여기가 마지막으로 들릴 데야~

 

뉴저지: 타이콘데로가도 인정한 소규모 버거 가게!

 

뉴저지: 맛있고 양도 많고 랜덤 상품도 있어!

 

뉴저지: 하루 종일 실컷 놀아서 배고프지? 얼른 들어가――

 

닫힌 문 앞으로 다가가자 갑자기 뉴저지의 말과 발소리가 멎었다.

 

뉴저지: “사정이 있어 오늘 하루 쉽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정상 영업 합니다~”?

 

뉴저지: 말도 안 돼?!

 

뉴저지: 다 좋았는데마지막에 망쳤어.

 

내내 자신감에 차있던 뉴저지였지만 지금은 실망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뉴저지: 미안해 허니. 미리 알아봐서 더 철저하게 준비했어야 하는데.

 

지휘관: 모든 걸 다 예상할 수는 없잖아. 가끔은 이런 일도 있는 거지.

 

지휘관: 너무 낙담하지 마. 다른 좋은 곳 알아보면 되지.

 

뉴저지: 후후. 허니는 참 다정하다니까. 그럼 나도 기운 차려야지!

 

뉴저지: , 맞다! 예비 계획으로 꼽아뒀던 데가 한 군데 있어!

 

뉴저지: 가자 허니~! 지금쯤이면 로열 아일즈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을 거야! 가서 이쁜 데 앉자!

 

----

 

저녁 식사 후 뉴저지는 갑자기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뉴저지: 이번 일로 얻은 교훈은.

 

지휘관: (데이트를 위해서 노트까지 준비한 거야?)

 

나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저지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오려낸 사진과 지도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지도에는 다양한 원과 선이 그려져 있었고, 언뜻 중대 공세’, ‘전면적 전진같은 단어까지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완성된 본격적인 작전 계획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게다가 여백에 다양한 포스트잇까지 붙어 있다. 타이콘데로가가 추가한 건가?

 

아니진지하게 필기하는 뉴저지를 보면 저것도 뉴저지가 붙인 건가?

 

뉴저지: ~! 여자의 다이어리를 그렇게 훔쳐보면 안 되지?!

 

뉴저지: 여자라면 누구나 비밀이 있다구! 아무리 정중하게 부탁해도 안 보여줄 거야!

 

뉴저지: 근데 혹시……봤어?

 

 

→ 전술 전투 지도를 본 거 같아

뉴저지: 후훗~ 비슷하긴 한데 나라면 전술 데이트 지도라고 부를 거야~

 

→ 포스트잇 몇 개만 봤어

뉴저지: 후후~ 나와 크루들의 협업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지~

 

 

뉴저지: 그 정도만 봤다면 다행이네. 일정까지는 못 봤으니 계획은 아직 진행 중인 걸로~

 

뉴저지: 사실 저녁 식사 때 허니한테 줄 깜짝 선물을 준비했거든.

 

뉴저지: 버거 가게는 못 갔지만 여기서 해도 괜찮겠지.

 

뉴저지: 허니, 눈 감아 봐. 그리고 앙~ 해봐!

 

뉴저지: 그렇게 있기! 눈 뜨면 안 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은은한 향기가 코에 와 닿았다.

 

부드러운 무언가가 입술에 닿았다. 과일의 달콤한 과즙이 이 사이로 피어났다.

 

뉴저지: 후후. 이제 눈 떠도 돼 허니~!

 

뉴저지: 깜짝 선물 배송 완료~ 방금 준 사탕은 유니온에서 직송한 특산품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아카시네 가게에서는 구할 수가 없으니까.

 

뉴저지: 그래서, 어때?

 

뉴저지: 맘에 들면 다행이네~ 그리고 이 사탕에는 피로를 풀고 기분도 좋게 해주는 특별한 성분도 들어 있어!

 

뉴저지: , 그럼 이제 데이트의 마지막 일정인 저녁 액티비티를 즐길 준비는 되셨을까?

 

지휘관: 잠깐만저녁 액티비티?

 

뉴저지: ! 자고로 데이트란 하루 종일 빈틈없이 꽉 차있어야 알차게 보냈다고 할 수 있지! 그러니 밤에도 일정이 있어!

 

뉴저지: 시간 다 됐겠다. 관람차 타러 가자 허니!

 

뉴저지: 정상에서 보는 경치가 진짜 아름답대!

 

내가 반응할 기회도 주지 않고, 아니 어쩌면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뉴저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고 식당을 뛰쳐나갔다.

 

미리 계산을 해놨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 잉루이

 ~02. 붓에 사랑을 담아

지휘관: 벼루, , 선지에 먹. 다 있는 거 같네.

 

예전에 잉루이에게 시간 나면 서예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잉루이는 웃으면서 언제 날을 잡아서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약속한 날이다.

 

잉루이: 지휘관님. 좋은 아침입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건넨 잉루이는 내가 마련한 책상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잉루이: 어머? 문방사보를 미리 준비하셨군요. ……후후. 지휘관님께서도 미리 공부를 해오신 모양이네요.

 

잉루이: 처음에는 그냥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관심이 있으셨군요.

 

지휘관: 언젠가는 서예도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

 

잉루이: 손으로 직접 쓴 글이 인쇄된 글보다는 아무래도 더 감정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잉루이: 그럼 먹부터 갈겠습니다. 지휘관님.

 

잉루이는 벼루에 물을 조금 부은 다음, 손을 뻗어 내 손등을 감싸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잉루이: 먹을 가는 데에도 요령이 필요하답니다.

 

잉루이: 먹은 수직으로 같은 방향으로 갈아야 하며, 벼루의 가장자리가 아닌 중심을 사용해야 손실을 줄이고 거품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잉루이의 안내에 따라 내 손에 들린 먹은 벼루와 부딪히며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잉루이: 지휘관님. 앞으로 고민거리가 있다면 먹을 갈아 보세요.

 

잉루이: 먹이 갈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근심걱정도 사라진답니다…….

 

잉루이: 비밀이지만 지휘관님께만 특별히 알려드리는 거예요. 후후.

 

잉루이: . 이 정도면 충분히 쓸 수 있겠네요. 먹 가는 법을 잘 알고 계시네요.

 

지휘관: 아마 좋은 선생님이 있어서 그러겠지?

 

잉루이는 내 아부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 다음 그녀는 붓을 들어 갓 갈아낸 먹물에 담갔다.

 

잉루이: 지휘관님께서는 이제 막 시작하셨으니 붓을 쥐는 자세와 손놀림부터 천천히 배우셔야 해요.

 

잉루이: 그래도 붓을 쥐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까, 제가 먼저 몇 가지 자세를 보여드릴 테니 그 중에서 편한 자세를 고르시면 되세요.

 

잉루이는 붓을 들어 내가 펼쳐놓은 선지에 천하태평이라는 네 글자를 썼다.

 

내 학습 속도를 고려해서인지 잉루이는 한 획 한 획을 매우 천천히 그었다.

 

천하태평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큰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새삼 느껴졌다.

 

잉루이: 앞으로는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사람이 무력으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지 않는 미래가 왔으면 좋겠어요.

 

잉루이: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화기애애하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기를…….

 

고개를 숙인 잉루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조금 침울해진 것 같아서 위로해주려고 했을 즈음――

 

잉루이: 바쁜 업무에서 벗어나 매일 지휘관님과 함께 서예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세상이 평화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

 

지휘관: 멋진 생각이네.

 

잉루이: 지휘관님. 반응이 너무 싱거우시지 않아요?

 

잉루이: 이럴 때 조금 더 설레고 감동받지 않으면 저 섭섭하답니다?

 

어떻게 말해야 잉루이의 맘에 들지 몰라서 그냥 방금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고 해명했다.

 

잉루이: 후후. 차오호처럼 이렇게 쉽게 속아넘어가실 줄은 몰랐네요. 그냥 장난친 거예요~

 

잉루이: 하지만, 세상이 평화롭길 바라는 마음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답니다.

 

잉루이: 혹 지휘관님께서는 동황의 어느 전설…… 아니, 속설에 대해 알고 계세요?

 

잉루이: 글을 쓰는 사람이 진정으로 붓과 먹에 마음을 담는다면, 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후세 사람들은 그 속에서 천 년 전의 정경을 엿볼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충분히 강하다면?

 

잉루이: 물론입니다. 자필로 쓴 글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감성이죠.

 

서예 실력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어

 

잉루이: 어느 정도 관련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붓을 놀릴 때의 마음가짐입니다.

 

잉루이: 그럼 잉루이가 질문을 드릴게요. 지휘관님께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가요?

 

지휘관: (마음이라……. 굳이 말하자면 세상의 평화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걸까.)

 

지휘관: 아직 붓 솜씨가 미흡하겠지만 비웃지 말아줘.

 

잉루이: 물론이죠.

 

잉루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자를 단숨에 적어내려갔다.

 

잉루이: ‘천장지구……. , 지휘관님.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역주) 天長地久: 하늘과 땅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다.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랄 때도 쓰는 말인데 그래서 잉루이가 오해한 듯)

 

지휘관: ? ‘천하태평이라는 잉루이의 소원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잉루이: ……그런 뜻이었군요. 제가 오해한 것 같네요.

 

지휘관: 오해? ……?

 

잉루이: 아아, 그러고 보니 지휘관님. 서예 실력은 확실히 더 연마하셔야 할 것 같아요.

 

잉루이는 내 질문을 완전히 무시하고 빙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잉루이: 다음 시간에는 ()’ 자를 어떻게 쓰는지 연습해 볼게요!

 

 

 

● 체셔

 ~03. 유리와 체셔 고양이

체셔의 권유로 수족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체셔: 서방님, 저기 봐봐! 물고기들이 사람을 하나도 안 무서워해!

 

체셔 말대로 유리 너머로 큰 물고기가 몇 마리 헤엄쳐 다가왔다.

 

유리에 찰싹 달라붙은 체셔를 향해 거품을 꼬르륵 내뱉고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체셔: 고양이 귀라서 놀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완전 괜찮아 보여!

 

지휘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 같네.

 

체셔: ! 그럼 아무 걱정 없이 서방님하고 수족관 데이트 할 수 있겠다!

 

 

수족관 내부는 의외로 넓었다.

 

둘러보며 걷다 보니 관상어 코너에 도착했다.

 

체셔: 아까 물고기들보다 컬러풀해 보이네?

 

꽤 흥미가 생겼는지 체셔는 이쪽은 내버려둔 채 계속 수조를 바라보며 걸었다.

 

그녀를 따라가다 보니――

 

물고기들이 따라오고 있네?

믈고기들이 체셔를 잡아먹으려고 해!

 

체셔: 진짜다! 아까부터 체셔 뒤를 따라오고 있어!

 

체셔: 정말! 이 고양이 귀 카츄샤가 보이지 않는 거냥?

 

체셔: 고양이 귀 카츄샤를 쓰고 있는 사람은 착한 사람! 착한 사람을 먹으면 안 되지!

 

어째서인지 체셔는 진지하게 물고기들에게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체셔: 서방님이 먼저 체셔를 놀렸잖아

 

체셔의 손가락이 유리창을 더듬었다. 물고기들도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체셔: 와아~~~!

 

체셔: 이러면…… 에헤헤

 

체셔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여서 물고기들과 함께 원 같은 모양을 그렸다.

 

체셔: 서방님체셔가 뭘 그렸는지 맞춰봐~

 

하트인가?

 

체셔: 에헤헤~ 서방님한테는 너무 쉬웠냥

 

체셔: ! 이러면 물고기들도 체셔가 서방님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아주겠지

 

체셔: 서방님도 해봐! 이 아이들 엄청 얌전해!

 

체셔에게 이끌려 똑같이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더듬었다.

 

하지만 체셔처럼은 되지 않았다. 물고기들이 생각대로 움직여 주질 않는다.

 

체셔: 서방님도 하트 그리고 싶은 거지? 체셔는 다 알아.

 

체셔: 그럼 체셔도 같이~ 물고기들한테 그리게 하자

 

체셔는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체셔의 움직임에 맞춰 나도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윽고――

 

체셔: 손가락 닿았다에헤헤~ 서방님 체셔하고 손잡고 싶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체셔는 나를 다른 코너로 끌고 갔다.

 

체셔: ? 저건 뭐야? 서방님, 봐봐!

 

체셔: 투명한 물고기야! 예쁘다아

 

안내판에는 글라스 캣 피시라고 나와 있었다.

 

체셔: 글라스 캣 피시?

 

체셔: 글라스는 몸이 투명해서 그런 걸까냥?

 

체셔: 그러면 캣 부분은 저 삐죽삐죽한 수염이 고양이처럼 보여서?

 

체셔: 그렇구냥~ 보면 볼수록 닮은 거 같아!

 

체셔: 당신은 아쿠아리움의 물고기체셔는 모항의 물고기?

 

체셔: 너도 체셔도 똑같네

 

체셔: 고양이 같은데 고양이가 아냐고양이가 아닌데 고양이 같애

 

체셔: 서방님을 정말 좋아하는 동료인걸

 

이번에는 기묘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물고기도 맘에 들었어?

 

체셔: ! 글라스 캣 피시도 서방님을 좋아하니까!

 

체셔: 저기 안내판에 나와 있지? 글라스 캣 피시는 외로움을 아주 잘 타는 물고기래.

 

체셔: 그러니까 체셔는 계속 서방님과 함께야

 

지휘관: ……으응? 뭔가 얘기가 도중에 바뀐 거 같은데?

 

체셔: 그치만 서방님 물고기만 보고 체셔는 하나도 신경 써주지 않는걸!

 

체셔: ! 저쪽에도 예쁜 물고기가 많이 있어! 서방님, 저쪽으로 가자!

 

사소한 장난이 끝나고 그대로 체셔에게 다음 장소로 이끌려 갔다.

 

 

 

● 시나노

 ~04. 샛별을 초저녁 꿈에 더하여

검은 바다와 검은 하늘.

 

뺨을 스치는 바닷바람도, 귀에 들리는 파도 소리도 없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세계.

 

출구를 찾아 고요한 모래사장을 걷기 시작했다――

 

 

시나노: 드디어그대를…….

 

낯익은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자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시나노: 그대는다시금 우연히 나의 꿈으로 빠져든 모양이구나.

 

시나노: 다만 그대와 만난 장소가 이런 곳이라니조금은 유감이어라.

 

이건 악몽인가?

 

시나노: 아니. 이곳은 악몽이 아니다.

 

시나노: 내가 꾼 파편 중에서 이러한 세계는 악몽에도 미치지 못함이니.

 

시나노: 그대가 빠져든 꿈은현재달콤한 영원을 제공하는 은신처 같다.

 

지휘관: 악몽만 아니면 돼.

 

아무튼 모래사장에 엎어진다

시나노의 옆에 앉는다

 

시나노: 아아. 여전하구나…….

 

시나노: 내가 말한 달콤한 영원에는관심이 없는 건가?

 

시나노는 속삭이며 가볍게 몸을 맞대어 왔다.

 

꿈속의 오감은 가짜임을 알면서도, 시나노의 은은한 향기가 콧속을 자극했다.

 

시나노: 시간이 흐르지 않는 꿈.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무엇 하나 변하지 않는다.

 

시나노: 그대와 만나지 않았다면나는 무간의 어둠에 삼켜져 영원히 혼자 방황했을 터…….

 

시나노: 그대는…… 무서운가……?

 

 

→ 시나노야말로 무서워?

시나노: 무섭지 않다……. 단지…….

 

→ 시나노가 있으니 무섭지 않아

시나노: 나를 믿어주니 고맙구나……. 단지…….

 

 

시나노: 만물이 변하지 않는다면나도 그대도, 지금 이대로 영원히.

 

지휘관: 그건 곤란한데.

 

시나노: 우리에 갇힌 것처럼, 난감하구나…….

 

시나노: 허나 이 우리를 낙원으로 간주할 수도 있음이니…….

 

시나노: 그대가 함께라면조금 더 여기서 세월을 거듭해도좋겠구나.

 

지휘관: 만약 내가 여기 없었다면 시나노는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시나노: 그렇다. 이어진 파편이 부서질 때까지, 계속 보았겠지――

 

지휘관: 그래…….

 

시나노: 하지만, 우리와 영원도 이 꿈의 진실이 아니다. 오직 그대와 낙락하는 한때의 허언…….

 

시나노: 그대 덕분에 나는 조금씩이지만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시나노: 설령 꿈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없더라도꿈의 세계에 거듭 빠져들면 다소의 요령도 터득할 수 있겠거니…….

 

시나노: 가령――

 

시나노는 칠흑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어느 한 구석을 가리켰다.

 

그림을 그리듯 손가락으로 하늘을 덧그리자 하나, …… 무수한 별빛이 어둠을 걷어내고 청명한 밤하늘이 얼굴을 내비쳤다.

 

지휘관: 이건꿈을 바꾼 거야?

 

지휘관: 혹시 그런 거라면…….

 

시나노: “조금 더 일찍 사용하지……. 그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알고 있다.

 

시나노: 하지만 지금 행동의 의미는 다름이라.

 

시나노: 이곳에 있는 것이 나뿐이었다면이렇게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할 수 있었을 테지…….

 

시나노: 그대가 있는 이상이 동천(洞天)도 나만이 꾸는 꿈이 아니니…….

 

시나노: 이 밤하늘도, 나만의 것이 아니니라…….

 

시나노: 그대가 시나노에게 있어서어둠을 쫓는 별빛과 같이, 사랑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향기가, 바람이, 은빛 머리칼이 뺨에 닿았다.

 

꿈속에서는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동천이 넓다 해도 맞붙은 두 사람에게는 작아 보였다. 먼 밤하늘의 빛조차도 손이 닿을 것처럼 느껴졌다.

 

아련하게 어두운 바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

 

시간의 모래를 어루만지는 조수는 무엇도 가져오지 않고, 가져가지도 않는다.

 

별과 바다, 현세와 꿈, 모든 것이――곁에 있는 당신과――하나가 될 때까지.

 

 

 

● 노시로

 ~05. 얼음 녹은 뒤, 벚꽃 바람

꽃의 수명은 짧다. 봄이 되면 모항의 꽃놀이 명소는 어딜 가나 북새통이다.

 

올해도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 날까지 즐기려고 했는데.

 

노시로의 강권으로 빙 돌아 뒷산의 어느 조용한 장소로 향하게 되었다.

 

노시로: 여기 같네요.

 

지휘관: 같다고?

 

노시로: ……. 저도 여기 와보는 건 처음입니다.

 

노시로: 전에 어쩌다 시나노 씨에게 들은 곳인데, 언젠가 당신과 꽃구경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담아두고 있었어요.

 

노시로: 조금 멀리 돌아왔지만 이렇게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다니 데려온 보람이…….

 

노시로: ……으흠. 죄송합니다. 제 입장만 생각해서.

 

꽃구경하기 좋은 장소네

조용한 분위기라 맘에 들었어

 

노시로: 다행이네요. 꽃구경은 조용한 곳에서 하는 게 제일이니까요.

 

노시로: 솔직히 제 마음대로 갑자기 일정을 바꿔버리면 당신이 난처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노시로: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입니다.

 

평소의 노시로라면 장소 변경도 진작에 계획을 세우고 사전 답사도 했을 테지만.

 

얘기를 듣자 하니 아무래도 이번엔 아니었던 것 같다.

 

노시로: . 당신 말대로 이번엔 저답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노시로: 그냥, 이번만큼은 계획이라든가 논리적이라든가 그런 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

 

바람이 부는 가운데 노시로는 흩날리는 머리를 바로 고쳤다.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바라보는 그녀.

 

벚꽃 비의 풍경도, 노시로의 웃는 얼굴도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다.

 

노시로: . 머리에 꽃잎이 붙었네요.

 

노시로: 가만히 계세요. 떼어드릴 테니까.

 

그녀의 손가락이 살짝 머리에 닿았다. 숨이 겹친 그 순간 마치 꽃잎조차 그녀의 향기를 머금은 것처럼 느껴졌다.

 

노시로: 이렇게나 예쁜데 금방 져버리는군요.

 

가는 손가락으로 꽃잎을 잡고, 노시로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찰칵.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에 나도 모르게 사진으로 담아 버렸다.

 

노시로: ……?

 

지휘관: 금방 져버려도 이렇게 사진에 담으면 추억으로 남길 수 있으니까.

 

노시로: 그렇네요…….

 

노시로: 그럼 이번에는 제가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일들도 꼭 함께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노시로는 가져온 도시락과 식기를 돗자리에 정성스럽게 놓기 시작했다.

 

노시로: ……아차. 젓가락을 한 짝밖에…….

 

지휘관: 역시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아서 역효과가 난 거야?

 

노시로: 네에. 저답지 않은 행동이었으니까요.

 

부끄러움에 뺨을 붉힌 노시로의 난처한 표정도――찰칵.

 

노시로: ?! , 이런 건 안 찍어도 돼요.

 

지휘관: 미안 미안.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라 그만.

 

지휘관: 그런데 난감하네. 젓가락이 한 짝밖에 없다면.

 

노시로: , 딱히 상관없는데요?

 

노시로: 당신만 괜찮다면이렇게저어…….

 

연분홍색 세상 속에서 노시로와 한가로이 꽃놀이를 즐겼다.

 

 

 

●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06. 데이트 나이트 콘서트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의 초대로 근사한 음악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음악회는 끝났지만 아직도 음악의 여운이 남아 있어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힘들 정도였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공연은 어땠니, 아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후후. 대답을 기대하기엔 아직도 음악에 한껏 취한 것 같구나.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더는 물어볼 필요도 없겠어.

 

지휘관: 음악은 종종 사람을 그렇게 만들곤 하지. 초대해줘서 고마워.

 

지휘관: 그런데좀 놀랐어. 나하고 같이 관객석에 앉다니. 당연히 무대에 서서 지휘하거나 할 줄 알았는데.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그래. 보통은 내가 공연을 하곤 하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하지만 이번에는 네 곁에 앉아 함께 다정하게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그래서 평범한 청중이 되기로 한 거란다, 아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무척이나 즐거운 공연이었지만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구나.

 

아쉬운 점?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그래. 한 가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내가 공연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는구나.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내 음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음악에 푹 빠져 있는 너를 보고 있자니 조금 질투가 나서 말이야. 후후.

 

지휘관: 가끔은 청중의 입장에서 무대를 즐기는 것도 괜찮지 않아?

 

지휘관: 그러니까, 나는 프리드리히 너와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그래도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아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후후. 네 말이 맞단다. 무탈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야.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사실 몇 번이고 무대에 올라가서 지휘봉을 잡고 싶었어. 단지 네가 나에게 도취된 표정을 보고 싶었거든.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다행히도 네가 내 팔을 잡고 있었잖니. 그래서 자제할 수 있었단다.

 

나는 그제야 프리드리히의 아름다운 피부에 빨간 자국이 생긴 것을 알아차렸다.

 

 

→ 미안, 나도 모르게…. 이렇게 꽉 움켜쥐고 있었을 줄은 몰랐어…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사과할 필요 없단다, 아가. 다 이해하니까.

 

→ 미안해…. 네가 나를 떠날까봐 나도 모르게 꽉 붙잡고 있었나봐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구나. 하지만 다 안단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자기도 모르게 음악에 깊이 심취해서 그랬던 것이겠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보호가 필요한 무구하고 연약한 아기처럼네가 내게 매달리는 것이 어찌나 가슴을 울리던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절실하게 나를 갈구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이나 기뻤단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후후. 부끄럽니?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걱정하지 말렴 아가. 오늘 있었던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니. 네 모습은 오직 나만이 간직하고 있을 거란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그러니 앞으로도 나를 의지해 주겠니?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와 있을 때는 좀 더 어리광 부려도 괜찮단다.

 

프리드리히의 부드러운 시선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돌아갈 때까지 아껴두려고 했었던 선물을 지금 주기로 결정했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이건…… 지휘봉? 우리들의 이름이 새겨진.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오늘을 위해 주문 제작한 거니?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후후.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구나.

 

지휘관: 기대하고 있을게.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나도 너에게 들려줄 날을 기대하고 있을게. 우리 아가. 약속 하나 해도 되겠니?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다음에는 꼭.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네가 선물해준 지휘봉으로 공연을 할게.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그리고네가 황홀해하고 넋을 잃을 법한 가장 멋진 음악만을 네게 들려주겠어.

 

그녀는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 역시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와 고리를 맺었다. 이것으로 약속은 정해졌다.

 

그 순간 음악의 여운이 다시금 되살아나면서 프리드리히가 무대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음악의 세계에 또 다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후후. 보아하니 다음 일정은 조금 미룰 수밖에 없겠구나.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이 멋진 순간을 마음껏 즐기렴. 내 사랑하는 아가.

 

 

 

● 프린츠 오이겐

 ~07. 그녀의 숨결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중 우연히 프린츠 오이겐이 의무실에 몰래 들어가는 걸 발견했다.

 

지휘관: (어디 아픈 건가? 남한테 들키기 싫어서 그러나?)

 

지휘관: (혹시 모르니 따라가서 상황을 확인해 보자.)

 

----

 

프린츠 오이겐: 어머, 여긴 웬일이야? 어디 아파?

 

프린츠 오이겐: 괜찮다고? 그냥 내가 여기서 뭐하나 싶어서 따라온 거라고?

 

프린츠 오이겐: 후후. 둔감하기는. 사람이 의무실에 왜 오겠어?

 

프린츠 오이겐: 그래도 뭐, 덕분에 여기서 뭘 하면 좋을지 생각났어.

 

프린츠 오이겐: 지휘관~ 오늘 하루도 숨 돌릴 틈 없이 바빴지?

 

프린츠 오이겐: 기왕 온 거니까 이 기회에 진찰 한번 받아보는 건 어때?

 

프린츠 오이겐: 아니면날 두고 떠날 셈이야?

 

오이겐은 아니라는 대답은 추호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이겐은 의무실 문을 잠그고 문틀에 기댔다. 그녀는 여기서 도망가진 않겠지?”라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 진찰에 응한다

프린츠 오이겐: 아하하…. 자신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진정 현명하다고들 하지. 지휘관도 그 정도는 잘 알고 있나 보네~

 

→ 마음속으론 거절하고 싶지만 응한다

프린츠 오이겐: 당연히 그래야지~

 

 

프린츠 오이겐: 최선을 다해 협조해줘 지휘관. 혹시 알아? 나중에 뭐라도 떨어질지~

 

프린츠 오이겐: 그럼어디부터 시작할까~

 

오이겐은 건강검진 양식이 끼워져 있는 클립보드를 능숙한 손짓으로 들었다.

 

프린츠 오이겐: 신장, 체중, 신체 측정은 전하고 동일하니까 일단 생략할게.

 

→ …전하고

동일?

 

프린츠 오이겐: 사소한 걸로 호들갑 떨지 마 지휘관. 네 몸 상태가 어떤지 아는 건 당연하잖아? 그리고누군가가 네 몸에 대해 이렇게 세밀하게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아?

 

지휘관: ……….

 

프린츠 오이겐: 좋아. 그럼 감각 테스트를 해보자~

 

지휘관: 감각 테스트?

 

프린츠 오이겐: 네 오감이 제대로 기능하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

 

프린츠 오이겐: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프린츠 오이겐: 그럼 위에서부터 시작할게.

 

프린츠 오이겐: 첫 번째 질문. 지휘관. 나 평소하고 뭐 다른 점 없어?

 

지휘관: ?

 

프린츠 오이겐: “?”가 아니지. 지금 시력 기능 테스트 중이라구.

 

프린츠 오이겐: 그래서, 나 뭐 다른 점 없어?

 

 

→ 함정 질문이네. 평소하고 다른 점은 하나도 없어!

프린츠 오이겐: 후훗. 틀렸어~

 

프린츠 오이겐: 정답은… 전보다 더 상쾌하게 웃고 있습니다~

 

→ 음… 오늘따라 미소가 더 상쾌하네?

프린츠 오이겐: 후훗. 틀렸어~

 

프린츠 오이겐: 정답은… 평소하고 다를 게 없답니다~ 좀 더 환하게 웃고 있진 하지만~

 

 

지휘관: 뭐라고 말했든 틀렸다고 할 거였잖아.

 

프린츠 오이겐: 그치만 놀릴 때 네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수가 없는걸~

 

프린츠 오이겐: , 장난은 이 정도로 하고. 합격으로 간주할게.

 

프린츠 오이겐: 다음은 청력 검사야. 눈 감으세요~

 

눈을 감기 전에 오이겐이 소리굽쇠를 집어드는 게 보였다.

 

지휘관: (이번에는 진짜 검사인가 보네. 좋아.)

 

하지만 귀에 와 닿는 것은 소리굽쇠의 진동이 아니라 소녀의 따뜻한 숨결이었다.

 

프린츠 오이겐: Ich liebe dich...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매혹적이어서 마치 환청을 듣는 듯했다.

 

프린츠 오이겐: 이제 눈 떠도 돼, 지휘관. 보다시피 소리굽쇠는 그냥 소품이었어~

 

프린츠 오이겐: 후훗. 지휘관. 청력에 이상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방금 들은 내용을 다시 한 번 말해줄래?

 

프린츠 오이겐: ? 놀라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프린츠 오이겐: 후훗아하하하.

 

오이겐은 웃고 있었지만 어쩐지 주위에서 불만의 오라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프린츠 오이겐: 그러고 보니 틸레가 너더러 때때로 선택적 난청을 앓는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지.

 

프린츠 오이겐: 하필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인 걸까?

 

프린츠 오이겐: 어머나, 조심히 다뤄야겠네~ 나중에 혹시라도 중요한 명령을 놓치면 큰일 날 테니까 말야~

 

어쩐지 갑자기 의무실 온도가 뚝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프린츠 오이겐: 걱정 마, 지휘관. 진찰 기록에 네 사소한 문제까지 하나하나 진실되고 철저하게 기록할 테니까.

 

프린츠 오이겐: 그럼 후각, 미각, 촉각 검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할게.

 

프린츠 오이겐: 마음 단단히 먹어. 지휘관~

 

 

 

에기르(https://arca.live/b/manjuugame/94622451)

 ~08. 비 내리는 장면을 바라보는 두 눈동자

퇴근 후 문득 생각이 나 야외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본래 야경을 즐기기 좋은 장소였던 테라스는 지금 이 순간 단점만 도드라졌다.

등불이 켜진 밤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와 폭우가 쏟아질 것만 같았으니까.

 

??? : 지휘관? 왜 이런 날씨에 밖에 있는 거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시야 사각지대에 있던 에기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휘관 : 그냥 끌려서?

 

에기르 : 정말 성의 없는 대답이네. 한 잔 할래? 여기 술은 정말 맛있거든.

 

 

→ 미성년자는 음주 금지야!

에기르 : …뭐? 농담이지?

 

→ 술을 마시면 사고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 역시 마시지 않는게 좋겠어.

에기르 : 개인적인 시간에도 이렇게 엄격하게 구는 거야? 정말이지, 자기 관리 최고봉이라니까.

 

→그럼 한 잔 할까.

에기르 : 마음에 드는 대답인 걸!?

 

 

에기르 : 사실 나도 장난친 거야. ''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특별히 제조된 맥아맛 음료라고.

 

그녀는 호박색 액체가 담긴 유리잔을 내 앞에 들고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지휘관 : 그러고보니에기르는 왜 혼자 여기 있는 거지?

 

에기르 : 바다의 난폭함을 감상하기 위한 적당한 장소를 찾고 싶었거든. 흐음지휘관처럼 나도 그냥 끌려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기르 : 비를 피해야하니까 안으로 들어갈래? 괜히 감기걸리면 업무에 지장이 갈 테니까.

 

에기르 : 왜 날 쳐다보는 거야?

 

에기르는 감기에 걸리면 어떡하려고?

 

에기르 : , 황량한 바다의 신은 이런 작은 빗방울에 지지 않아.

 

에기르 : 게다가 빗물에 몸과 마음의 피곤함을 씻어내는 것도 기대돼.

 

만약 괜찮다면, 에기르와 함께 비를 맞을게.

 

에기르 : 나랑 같이, 너 바보야!?

 

에기르 : 아무리 내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고해도 이런 무모한 행동은 삼가해줘!

 

에기르 : ……알겠어, 나도 안으로 들어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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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를 사이에 두고 가게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에기르 : 가끔 이렇게 비를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에기르가 창 너머 빗물을 몰고 온 강풍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세상을 가리켰다.

 

에기르 : 지금의 바다는 위험해보이지만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아?

 

그녀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은 채 황금빛 눈망울로 먼 해수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입술 사이로 애매한 말을 흘렸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그녀의 뺨을 타고 가녀린 목을 따라 더 깊은 곳으로 흘러내렸다.

 

에기르 : 지휘관 ?

 

황금빛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쳐졌다.

 

에기르 : 흐흐흐, 그 멍청한 표정은 뭐야? 설마 나한테 반한 거야?

 

 

→ 맞아

에기르 : 에?! 저,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에기르 : …흥.

 

→ 에기르의 말처럼 반한 것 같아.

에기르 : 에?! 저,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에기르 : …흥.

 

→ 달빛이 정말 아릅답네.

에기르 : 달빛...? 이렇게 짙은 먹구름에 대체 달빛이 어딨다는 거야…

 

에기르 : 서, 설마 또 사쿠라 엠파이어의 무슨 고전같은 거야!?

 

에기르 : 너, 너... 흥!

 

 

그녀는 부끄러워 안전부절 못하는 듯 자리에서 여러 번 자세를 바궜다.

 

지휘관 : 이럴 때 에기르의 반응은 정말 재밌네.

 

에기르 : , 조용히 안하면 입을 물어뜯어버릴 줄 알아!

 

지휘관 : ㅡㅡ

 

뭔가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시야에 에기르가 가까워졌다.

은은한 맥아향과 함께 입술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하지만 곧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지휘관 : 으아, 아파

 

에기르 : , 내가 경고했지? 자업자득이라고!

 

에기르 : 바다의 신이 너에게 주는벌이야.

 

그녀가 잔을 들자, 황금빛 눈동자는 호박색 액체에 의해 부드럽게 빛났다.

커튼 밖,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아타고(https://arca.live/b/azurlane/98687678)

 ~09. 쿠키 타임
모항·지휘실

아타고: 지휘관, 직접 만든 쿠키를 먹어봐~ 갓 구워진 거야.

여느 때와 같이 분주한 오후, 갑자기 아타고는 보온백을 들고 지휘실을 찾아왔다.

아타고: 누나가 지휘관만을 위해 손수 만든 거니까~ 꼭 먹어줬으면 좋겠어!

→ 아직 일하는 중⋯⋯

아타고: 누나는 적당한 때에 온 것 같은데, 점심시간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인걸~

아타고: 지휘관은 머리 쓰는 일이 매일 많으니까, 쿠키로 당분 보충이 좀 필요할 것 같아~

아타고가 보온백을 열자, 구운 쿠키와 크림이 섞인 달콤한 냄새가 지휘실을 가득 채웠다.

아타고: 응~ 지휘관, 누나가 정성 들여 만든 크림 쿠키를 먼저 먹어봐~

아타고: 자, 입 벌리고, 아――――

아타고: 에이~ 누나가 치과 의사도 아니고, 드릴 넣는 것도 아니니깐~ 빨리 입을 벌려, 아~

과자를 입에 물고 나니, 달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거기에 더해, 아타고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입술에 흔적을 남겼다.

아타고: 맛이 어때? 행복의 맛이 느껴지지 않니?

→ 식감도 맛도 다 좋아⋯⋯
→ 행복해⋯⋯

아타고: 후훗, 마음에 들었나보네~ 그럼 좀 더 먹어봐! 누나가 엄청 다양하게 만들어놨거든~

아타고: 다음으로는 이 길쭉한 초콜릿 핑거 쿠키를 먹어보면 어떨까~

아타고: 먼저 반죽을 막대 모양으로 만들고, 오븐에 넣어서 구운 뒤, 녹인 초콜릿과 사랑의 마법에 담그면 완성~

아타고: 듣고 있으니까 맛있을 것 같지? 자, 아~

초콜릿이 묻은 핑거 쿠키가 입에 들어가자마자, 살살 녹기 시작했다⋯⋯ 초콜릿의 맛이 매우 진하다.

아타고: 부드럽게 먹지 않아도 돼, 이로 건드려도 혀를 씹진 않아.

한 입 깨물어 먹으면, 초콜릿의 달콤함과 구운 비스킷의 진한 맛이 묘한 조화를 만들어낸다.

아타고: 어때? 초콜릿 맛 쿠키는 마지막에 구워낸 거라서 향이 가장 가득할거야.

아타고: 다음으로 먹어볼 건 우유맛이야~

아타고가 직접 만들어 입으로 전해주는 쿠키를 맛보며, 일에 대한 생각은 잠시 잊혀졌다.

아타고: 단 것을 먹고 나니 지휘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는걸, 효과가 엄청난데?

아타고: 누나도 한 번 먹어볼게~

아타고가 갑자기 쿠키 반대쪽 끝을 깨물어, 볼이 서로 밀착되었다――

아타고: 맛있네, 지휘관~

아타고: 어, 턱부터 귀 밑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데?

아타고: 후훗~ 누나가 이렇게 계속 쳐다보는게 부끄러워?

아타고: 그럼 누나 사양하지 않을게~

아타고: 아앙~

아타고와 눈을 마주치면서, 아타고는 계속 과자를 깨물고, 거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뚝――

과자가 끊어졌다⋯⋯

아타고: 앗, 입술에 조금 힘이 들어갔나⋯⋯

아타고: 근데 누나 알아챘어, 지휘관도 즐기고 있다는 걸~ 그러면⋯⋯

아타고: 아직 딸기와 바나나 맛이 남았는데, 다음에는 무엇을 먹어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