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이면 게임을 켜놓고 같이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줄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연출들이 간혹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챕터는 반드시 게임과 같이 보시는 걸 권장합니다.
겹쳐지는 사상의 환계 上
~01. 이매지너리 시티
조금 전까지 귓가에 울리던 경고음이 점차 떠들썩한 도시 소음으로 변해간다.
눈을 떠보니――
눈앞에 펼쳐진 것은 어느 도시의 풍경이었다.
숲처럼 늘어선 고층 건물, 얼굴이 "흐릿하게 표시된" 지나가는 행인들.
――낯선 곳에 던져진 것 같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보자.
「별바다」에 긴급사태가 발생해서, 헬레나와 대피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체…. 여긴 어디지?
헬레나는… 당연히 없겠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된 건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중간에 기억이 빠진 것 같다. 아니면 아직도 「리얼리티 렌즈」가 구축한 유사 환경에 있는 건가?
이 같은 풍경을 본 기억은 없지만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든다.
이전에 북방연합 해저에서 봤던 「빛의 도시」와 닮은 느낌이다.
도처에 있는 홀로그램, 오가는 차량, 사람들의 옷차림 모두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르다.
마치 SF 영화나 소설에서 묘사되는 미래 도시 같은 광경이다.
하지만 이 비현실적인 분위기 가운데,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이 강한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나는 미래로 온 건가?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된다.
다시 주변을 주의깊게 살펴봤다. 사람들의 흐릿한 얼굴, 건물에 달린 읽기 힘든 간판들. 이것들은 「리얼리티 렌즈」로 만들어낸 복제품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것들 모두 대피 전 「별바다」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과 관련이 있는 건가?
……당장은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통신기?: (딩동♪)
옷 주머니에서 진동과 벨소리가 들렸다.
손을 넣어 확인해 보니 직사각형 단말기처럼 생긴 것이 만져졌다.
이건…… 휴대용 통신기?
이런 게 언제 내 주머니에 들어 있었지?
애초에 지금 입고 있는 옷은 평소에 입던 옷도 아니었다.
…연구원들이나 입을 법한 하얀 가운이었다.
통신기?: (딩동♪)
통신기…… 스마트폰의 착신음이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일단은 전화를 받자.
→ 초록 버튼을 슬라이드한다
스마트폰에서 동료의 목소리가 들렸다.
→ 빨간 버튼을 슬라이드한다
……아니, 상식적으로 이건 거절 버튼이겠지.
초록 버튼을 슬라이드했다. 그러자――
멤피스: 선생님, 안녕. 멤피스야.
멤피스: 몇 번이나 걸었는데도 계속 안 받길래. 많이 바쁜가봐?
멤피스: 아무튼 지금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시점에서 안쥬 박사님과 요크타운은 무사히 도착했어.
멤피스: 원래 박사님은 선생님을 바로 대학으로 데려가려고 했었는데.
멤피스: 뭐, 일이 있어서… 비행기가 연착됐나봐.
멤피스: 시간이 촉박하다고 혼자 먼저 발표회를 준비하러 갔어.
멤피스: 대신 노샘프턴이 선생님을 픽업하러 갈 테니까 거기서 기다려.
멤피스: 그럼 약속했던 집합 장소에서 보자. 이만.
삑 하는 소리가 나고 메시지 재생이 종료되었다.
내가 아는 그 어느 모델보다도 가볍고, 외관도 심플해서 스타일리시한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멤피스는 나를 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거지?
「리얼리티 렌즈」는 사용자의 이미지나 기억, 혹은 정보를 바탕으로 유사 환경을 구축한다.
그러면 이건 누구의 상상인 거지? 안쥬 박사는 또 뭐고? 대학은?
그리고 왜 내가 상상하지도 않았는데 멤피스에게 메시지가 전달된 거지?
……일단은 노샘프턴을 만나볼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집합 장소란 어디를 말하는 거지….
거리를 조금 걷다 보니 랜드마크 같은 건물리 몇 채 보였다.
아무래도 이 도시는 유니온의 NY시티를 기반으로 한 것 같다.
홀로그램이 온통 도시를 감싸고 있어서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다.
여기는 미래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상상한 다른 NY 시티일까?
내가 아는 것 중에 가장 비슷한 건 「빛의 도시」가 고작이다. 그 이미지로는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구현되진 않을 텐데. 대체… 응?
어느새 옆에 차 한 대가 멈춰선 것을 깨달았다.
노샘프턴II: 안녕. 설마 선생님이 집합 장소 근처 주차장을 서성이고 있다니. 우리 어쩌면 서로 잘 맞을지도?
노샘프턴II: 미안. 오래 기다렸어?
내가 알던 모습과는 다르지만, 눈앞에 있는 소녀는 분명 노샘프턴이다.
멤피스에 이어서 노샘프턴까지…?
노샘프턴II: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내 안색을 보고 노샘프턴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가까이 다가왔다.
괜히 걱정 끼치고 싶지도 않고, 이 상황에서 의심받을 필요도 없다. 일단은 자연스럽게 가자.
→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해서
노샘프턴II: 아하하……. 그렇겠지. 선생님도 먼길을 왔으니 말야.
노샘프턴II: 조금만 참아. 일단 대학으로 가서 안쥬 박사님하고 합류해야지.
안쥬 박사……는 대학에 있는 거야?
노샘프턴II: 응. 멤피스가 그랬어. 비행기 도착이 늦어져서 먼저 대학 발표회에 가 있겠대.
노샘프턴II: 우리가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발표는 다 끝났겠지.
아무튼 출발하자.
노샘프턴II: 그래. 타. 내가 운전할게.
「여기는 함장이다. 선내의 모든 승조원에게 전한다.」
「지난 몇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우리가 마주한 것이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 현상이라고 믿는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 이 현상은 시간축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지금, 이것은 우리 앞에 다른 시대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우리는 전쟁을 앞두고 있다.」
「너희 모두가 태어나기도 전에 진 전쟁이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 이번에는 결말이 달라질 것이다.」
「기존의 과거는 다시 쓰여질 것이다.」
「――부디 행운이 있기를.」
~02. 투모로우 프렌드
창 밖의 경치가 급속히 뒤로 물러난다.
내가 아는 NY 시티의 경치와는 다르지만, 언뜻 보기에는 전혀 위화감이 없다.
광대한 존재감을 내뿜는 도시의 위용은 도저히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어쩌면 「리얼리티 렌즈」는 내 생각보다 훨씬 정교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진짜 시간을 뛰어넘었던지….
구경하는 동안 차는 대학 같은 시설의 부지로 들어가 주차장에 멈췄다.
노샘프턴II: 다 왔어. 선생님.
여기에 안쥬 박사가?
노샘프턴II: 아니, 조금 더 가야 돼. 이 앞의 상점가는 차가 다닐 수 없거든. 여기부터는 걸어가자.
차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봤다. 연구 시설에 흔히 있을 법한 투박한 건물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나 동일한 것 같다.
다만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묘한 설비들이 이 시설의 높은 수준을 말해주고 있었다.
→ 아무도 없네……?
노샘프턴II: 응. 안쥬 박사님의 첫 마디도 그거였어.
노샘프턴II: 오늘은 휴일이라서 그럴 거야. 아니면 요즘은 버추얼 엔터테인먼트가 유행해서 그럴지도?
노샘프턴II: 그치만 사람이 없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 주차장에 자리가 있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노샘프턴II: 아, 박사님 연락이다. 발표회는 다 끝났고 1층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대.
노샘프턴II: 우리도 빨리 이동하자. 넓어서 길 잃기 쉬우니까 너무 떨어지지 마.
대학 역사관 1층 입구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동료 함선들도 있었지만… 노샘프턴과 마찬가지로 기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 여어! 왔구나, 조수군!
→ 당신은……?
안쥬: 응? 요새는 “오랜만입니다.”를 그런 식으로 말하나?
→ 안쥬 박사?
안쥬: ……? 뭐야, 왜 그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안쥬: 아무튼 미안 미안! 공교롭게도 비행기가 늦어서 마중을 못 나갔네.
안쥬: 너도 그렇고 저기 선생이란 사람들도 죄다 고지식하기 짝이 없다니까~
안쥬: 뭐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정을 조정하긴 했지만 말야.
안쥬: 그치만 비행기가 늦은 건 불가항력이잖아? 내가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었다고 계속해서 주장하는 안쥬 박사였지만, 주변은 하나같이 미묘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진실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호넷II: 그치만 늦은 비행기 그거 박사님 전세기였잖아?
랭글리II: 우왓, 불난 집에 부채질을…….
안쥬: 어흠! 조수군한테는 말 안 하기로 약속했잖아?!
호넷II: 돌아갈 때도 그거 탈 거니까 들킬 수밖에 없는걸.
안쥬: 아, 진짜네…….
…………즉 늦은 건 전적으로 그녀 잘못이라는 건가.
→ 그냥 넘어가자
전세기라고 문제가 안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나도 따로 기다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늦어서 이곳이 NY시티임을 알게 되기도 했다.
안쥬: 그치 그치! 인생은 의외성의 연속이라니까! 역시 조수군은 말이 통하네!
호넷II: 선생님까지 지원사격 할 줄은 몰랐네…. 뭐, 이번엔 그렇다고 치자.
랭글리II: 그렇게 계속 응석을 받아주다 보면 점점 기어올라서 시간 개념이 루즈해질 거예요.
안쥬: 조수군이 괜찮다고 했잖아! 창조주님 특권으로 한 번 봐줘~!
랭글리II: 꺄악!? 아야야야! 갑자기 뺨을 꼬집지 마세요!
안쥬: 후우…. 오랜만이라 멋진 인사까지 준비했는데… 다 무쓸모가 됐네…. 훌쩍.
호넷II: 누구 때문인데…….
안쥬: 뭐시라?
호넷II: 당연히 연착된 전세기 탓이지~!
안쥬: 그치, 호넷!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니까!
안쥬: 허먼도 숨어 있지 말고 이제 나와서 조수군한테 인사해!
안쥬: 허먼은 너도 알고 있지?
물론 잘 알고 있다. 소중한 동료니까.
허먼II: 허, 허먼은 딱히 숨어 있던 거 아니다 뭐! ……조, 조수군. 안녕.
랭글리II: 선생님께서는 허먼이 아니라 안쥬 박사님의 조수예요. 허먼은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죠.
허먼II: 어!? 서, 선생님…….
호넷II: 그럼 랭글리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네? 랭글리도 가르치기도 하고 박사님을 돕기도 하잖아?
랭글리II: 저는 아니에요! 두 분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는걸요.
요크타운II: 선생님,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어?
………요크타운.
옛 기억이 물밀 듯이 솟아오른다.
마지막으로 병문안 갔을 때, 베이지색 커튼 아래 보였던 그녀의 희미한 미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 세계의 그녀는 아무래도 건강한 것 같다.
요크타운II: ……? 선생님? 괜찮아?
긴 여행 때문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 괜찮아. 오랜만이야, 요크타운
요크타운II: 응. 오랜만이네. 선생님.
안쥬: 인사는 그쯤하고. 슬슬 다음 일정으로 가자.
요크타운II: 다음 일정은… 박사님, 선생님과 가필드 장군님의 미팅이었나?
안쥬: 그건 “다음 중요한 일정”이지 “다음 일정”이 아냐.
안쥬: 이왕 모두가 모였으니 관광이나 좀 시켜주려고!
안쥬: 미팅은 내일로 미뤘으니까 오늘은 아무 일 없음!
안쥬: 그때까지는 완전 프리니까 대충 시간 때워도 오케이야!
호넷II: 만세~! ……역시 안쥬 박사님이야!
호넷II: 그래도 일단은 계획을 짜야겠지. 어디로 갈 건데?
안쥬: 잠깐만 생각 좀 해보고……. 아, 마침 점심때니까 전에 오스타 녀석이 소개해줬던 레스토랑에 가보자!
안쥬: 아직 영업하겠지…. 만약 있으면 거기서 밥 먹자!
안쥬: 그 다음엔 상점가도 가보고, 영화도 보는 걸로!
랭글리II: 네 네. 여전히 즉흥적이시군요…. 우선은 그 레스토랑으로 가죠.
랭글리II: 박사님. 가게 이름을 보내주시겠어요? 아직 영업 중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안쥬: 오케! “그라나트(Granate)”라는 가게야.
랭글리II: 그라나트…. 알겠습니다. 바로 알아볼게요.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한데…….
→ 멤피스는 어디 있어?
안쥬: 응? 걔가 말 안 했어? 또 정줄 놨나 보네.
안쥬: 멤피스는 내일 있을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어. 합류한다고 해도 엄청 늦을걸?
안쥬: 아-아 불쌍하게도~ 우린 모처럼 꿀 같은 휴가를 즐기고 있는데~
안쥬: 그래도 네가 기억해줘서 다행이네. 멤피스 선물도 잊지 말고 챙겨 가야지.
랭글리II: 박사님. 그라나트라는 가게는 아직 영업 중입니다.
안쥬: 다행이네! 다들 그리로 가자!
요크타운II: 허먼도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렴.
허먼II: 허, 허먼은 절대 미아 될 일 없거든!
~03. 예스터데이 투어
안쥬를 따라 일행은 느긋하게 가로수길을 나아갔다.
길에는 안쥬와 함선들, 그리고 나밖에 없었지만, 조잘대는 박사님 덕에 공허한 느낌은 안 들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예전에 이 대학에 다녔으며, 「오스타」라는 연구원과 사이가 좋았던 것 같다.
안쥬: ――뭐, 그렇게 된 거지.
안쥬: 오스타 녀석이 자동으로 출석 체크해 주는 스크립트를 짜줘서 다행히 학점 문제는 안 생겼어.
안쥬: 그 녀석은 늘 나보다 한 수 앞선다니까. …기르던 고양이도 걔가 말했던 대로
안쥬: 졸업할 때까지 가르쳤는데 결국 청소는 못 배웠어.
호넷II: ……고양이가? 청소? 진짜?
안쥬: ? 방금 말했잖아. 못 들었어?
노샘프턴II: 아니, 고양이가 청소하는 걸 배울 수 있어? 상식적으로?
안쥬: 그래? 그럼 교육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나….
안쥬: 그치만 메일 보내는 법은 배웠는걸….
랭글리II: 그 이야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안쥬: 좋지. 어느 날 오스타한테 “흠. 더는 캐묻지 않도록 하지.”라는 메일을 받았는데….
요크타운II: 박사님, 선생님. 저게 “그라나트”지?
안쥬: 응? 어디…… “그라나트 카페.”
안쥬: 응! 맞아 맞아! 다행이다 아직 있어서~
안쥬: 외관이 전보다 더 세련된 거 같은데? 안 갔던 동안 돈 좀 벌었나?
안쥬: 얘기는 들어가서 하자. 이곳을 방문해서 그라나트에 들리지 않는다는 건 언어도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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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들어가니, 예약되어 있던 개인실로 안내받았다.
안쥬: 예전에 등록해놨던 멤버십이 아직도 유효하다니~ 오래된 가게는 이게 좋다니까.
가게 내부는 전통의 멋과 세련된 모던풍이 묘하게 섞여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너무 호화롭지도, 소박하지도 않은 독특한 분위기다.
대학의 부속 시설이라기에는 좀 너무 격식이 높은 것 같기도 한데…….
→ 여기는 대체……?
안쥬: 응? 그냥 일반적인 고급 레스토랑인데? 아마도…….
안쥬: 그보다 메뉴판 못 봤어? 으으음…….
등받이에 뭔가 있나 찾으려던 안쥬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서비스 로봇: 어서 오십시오. 주문하시겠습니까?
안쥬: 예전에는 분명 여기 메뉴가 있었는데……. 메뉴판 어딨냐…… 우와악!?
서비스 로봇: 레스토랑 “그라나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모실 서빙 담당입니다. 메뉴는 이쪽을 보아 주십시오.
노샘프턴II: 웨이터 같은 모습이네…….
안쥬: 오래된 가게라고 얕봤어…….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진보한 거 아냐?
안쥬: 그래도 이 녀석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최근에 나온 4세대 에너지 큐브 구동 서비스 로봇 아냐?
서비스 로봇: 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서비스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안쥬: 딱히 칭찬한 건 아니었는데…… 뭐 됐다.
안쥬: 유니폼은 예전하고 똑같네.
안쥬: 전통을 지킬 것인지, 기술을 도입할 것인지. …여기 주인장은 나름 고민 좀 했나봐.
안쥬: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구만.
안쥬: 아무튼 예전에 먹던 대로, 해물 파에야하고 카푸치노.
서비스 로봇: 주문 확인했습니다. 그밖에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호넷II: 헤에. 추천 메뉴가 파에야인가 보네~
요크타운II: ……저기, 너무 본격적이지 않아? 겉보기에는 카페 같았는데.
안쥬: 그게 이 가게의 특징이야. 물론 평범한 카페 메뉴들도 있어.
허먼II: 자, 잘 모르겠어…….
안쥬: 아니, 오히려 카페인데 추천 메뉴가 파에야라는 게 이 집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일지도 모르지.
랭글리II: 안쥬 박사님이 이 가게를 왜 좋아하셨는지 알겠네요….
안쥬: 아니, 이거 하나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고.
안쥬: 이 가게를 추천해 준 건 오스타니까 말야.
안쥬: 아니 나도 처음에는 진짜 놀랐지. 저놈이 이렇게 힙한 가게를 안다고?
안쥬: 뭐, 나도 금방 빠졌지만.
안쥬: 다들 원하는 거 골라봐. 다른 메뉴도 꽤 맛있는 게 많아.
호넷II: 흐음…. 그럼 호넷 님은 하와이안 피자에 감자튀김 라지 사이즈!
호넷II: 허먼은 햄버거 세트?
허먼II: 어린애 취급하지 마! 허먼은… 응, 이거!
랭글리II: 블랙 커피에 슈바르츠발트 케이크……?
허먼II: 흥! 맞아!
랭글리II: 그럼 저는 햄버거 세트로 할게요….
노샘프턴II: 나는…… 치즈 파에야로 부탁해.
요크타운II: 햄 치즈 포테이토에 허브 티로 할까?
요크타운II: 선생님은 뭘로 할래?
안쥬랑 똑같이 해물 파에야를 골랐다.
안쥬: 역시 내 든든한 조수군! 뭘 좀 안다니까! 주문은 이걸로 끝이야.
서비스 로봇: 그럼 주문을 확인하겠습니다. 해물 파에야 2개, 치즈 파에야, 하와이안 피자, 햄버거 세트,
서비스 로봇: 감자튀김 라지 사이즈, 햄 치즈 포테이토, 슈바르츠발트 케이크, 허브 티.
서비스 로봇: 모두 맞으십니까?
안쥬: 응 응. 다 맞아~
~04. 메모리 오브 퓨처
주문한 음식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함선들은 모두 허먼이 발견한 신기한 아이스크림 머신을 보러 가버렸다.
자리에 남은 사람은 나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안쥬 박사뿐이었다.
(혹시 내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나…?)
→ 아이스크림 머신은…
안쥬: 아아. 옛날에는 수제였어. 그래도 메뉴는 다 똑같네.
안쥬: 난 아이스크림은 패스. 여기 거는 이상한 맛이 많아서 별로 추천하진 않아.
안쥬: 아무리 그래도 진짜 페퍼로니 맛을 주문하는 사람이 있어?
솔직히 페퍼로니 아이스크림은 어떨지 궁금하다.
안쥬: 진심이야? 분명 후회할 텐데.
안쥬: 애초에 애들이나 아이스크림 머신 같은 거에 꺅꺅대는 거지. 넌 내가 어린애로 보여?
안쥬: …아니지. 「지금」의 너에게는… 내가 어떻게 보여?
(역시 의심받고 있는 건가….)
안쥬: 아까부터 이상했어. 오늘의 너는 왠지 수상한 기운이 느껴진단 말야.
안쥬: 네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내가 피곤해서 그런가? 그것도 아니라면――
안쥬: 외계인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건가?
……외계인은 좀 너무 나간 거 같은데.
안쥬: 모르지? 불가능하지 않다면 일어날 수 있는 거야. 페퍼로니 맛을 좋아하는 외계인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
안쥬: 혹시 모르니 질문 몇 가지만 할게.
……진심인가? 아니면 그냥 놀리려는 건가?
안쥬: 놀리는 거 같아? …됐으니까 얌전히 들어!
아무래도 따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마치 등골에 전기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방금 그녀와의 대화, 그리고 이 공간에서 벌어진 일은 시뮬레이션도 아니고, 내 상상도 아니고, 마치……
무의식적으로 안쥬와의 이런 상호작용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안쥬: 첫 번째 질문. 나는 누구지?
안쥬 박사. 멘탈 큐브의 발견자이자 전문가. 「대양연방」의 멘탈 큐브 연구팀 리더….
안쥬: 아니, 그런 걸 묻는 게 아닌데. 부끄럽게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에 대한 정보가 술술 머릿속에 떠올랐다.
안쥬: 다음 질문. 내 연구 내용은?
멘탈 큐브 응용과 함선 육성 연구.
안쥬: 이 대학에 돌아온 목적은?
II형 의장을 이용한 함선의 전력 강화 실험 테스트.
안쥬: 그럼 다음…. 아까 얘기했던 장군은 누굴 말하는 거지?
유니온 해군 중장. Division13 및 큐브 전력화 연구의 책임자.
안쥬: 그럼 오스타 박사는?
당신의 대학 동기이자 에너지 큐브와 인공지능 분야의 1인자. 그리고 「안티 엑스」 계획의 책임자.
안쥬: 하하하, 진짜 다 맞혔네!
……이제 된 건가?
안쥬: 아니, 사실 질문 하나가 더 있긴 한데, 그건 지금 물어보면 안 될 거 같다는 직감적인 느낌이 들어.
안쥬: 지금은 안 물어보는 걸로 할게. 클리어 축하해.
안쥬: 외계인에게 조종당하는 게 아니라 그냥 피곤했나 보네.
그나저나 어떻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던 거지…?
「대양연방」, Division13…. 북방연합에서나 「별바다」에서 입수한 자료 중에서 분명히 본 기억은 있다.
하지만 전혀 의미나 연관성을 알 수 없었고, 왜 여기서 그 정보들이 한꺼번에 이어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기묘하면서도 말로 잘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마치 잊어버린 기억에 닿은 순간 갑자기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만 같았다.
대체 뭐지…?
호넷II: 아이스크림 가져왔어~!
요크타운II: 기다렸지? 안쥬 박사님, 선생님. 여기 두 사람 몫도 받아.
노샘프턴II: (진짜 할 거야……?)
허먼II: (요크타운 언니도 동의했잖아.)
랭글리II: (하아… 재밌을 것 같긴 하지만.)
허먼II: 자, 허먼이 고른 아이스크림이야♪
안쥬: 이 콘 색깔은……. 우왓, 아냐 이건….
호넷II: 흐흥~ 이 호넷 님이 설명해줄게.
호넷II: 노란 콘은 요구르트 비프 맛. 그리고 빨간 콘은…….
호넷II: ――페퍼로니 맛이야♪
안쥬: 빨간 거는 조수군한테 줘! 허먼! 빨리!
안쥬: 어!? 아, 응!
반응할 새도 없이 페퍼로니 맛 아이스크림이 내 손에 쥐어졌다.
안쥬: 음식을 남기면 안 되지? 끝까지 다 먹어야 돼!
~05. 그라나트 베케이션
「리얼리티 렌즈」 가상현실공간. 구성 요소: ??? 「그라나트」
안쥬: 후우…. 그리운 맛이었어….
안쥬: 여러 곳에서 파에야를 먹어봤지만, 역시 여기가 최고야.
노샘프턴II: 응. 치즈 파에야도 맛있었어.
요크타운II: 이 햄 치즈 포테이토도 맛있네. 외국 음식이라는데 다음에는 본고장으로 먹으러 가보고 싶을 정도야.
랭글리II: 현지 음식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경우로군요.
랭글리II: 소시지나 케이크 같은 다른 것들도 꽤 맛있어 보였어요.
안쥬: 응 응. 바스크 치즈 케이크도! 전에 한 번 저쪽 연구소에 방문했을 때 먹어봤는데 말야~
안쥬: 진짜 맛있었어~♪
안쥬: ……함선은 보통 외출할 기회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안쥬: 다음에 출장 갈 때 몇 명 정도 데려가 볼까? 조수군?
안쥬: 기념품 사 가는 것도 꽤 일손이 필요하다구. 인원수만큼 사려면 힘드니까.
노샘프턴II: 그 전세기를 사용하면 괜찮지 않을까……?
안쥬: 괜찮겠지? 리샤르도 종종 타고 다니니까.
요크타운II: 그런데 박사님. “그라나트”라는 건 꽃 이름이지?
요크타운II: 꽃말이 뭐였더라…. 이 가게에는 무슨 의미로 사용된 걸까?
안쥬: 응? 뭐 꽃말 같은 건 지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긴 하는데.
안쥬: 전에 들었었는데…. “행복에 대한 동경”, “기회를 놓치다”, 그리고…
안쥬: “원숙한 애정”이었나? 아마 이 꽃말을 쓰고 있는 거겠지.
안쥬: 오래되기도 했고, 주변의 다른 가게에 비하면 월등히 맛있고.
안쥬: 애초에 여기 말고 다른 데서 뭘 먹었는지 이젠 거의 기억도 안 나….
안쥬: 앗, 잠깐만 실례…… 응? 장군한테 전화가?
안쥬: 미안. 바로 올게.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안쥬 박사는 복잡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갔다.
남아 있는 동료들이 평온한 걸 보면 아마 별일 아닐 것이다.
동료들과 대화를 나눠 보자.
호넷II: 선생님의 근대 전쟁사 강의 다들 기억해?
요크타운II: 응. 교과서 내용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정말 쉽게 설명해줘서 많이 공부가 됐어.
노샘프턴II: 전술 강의도 인상 깊었지.
노샘프턴II: 고지식한 나라도 전투 중에 임기응변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까.
랭글리II: 너무 우쭐해 하시면 안 돼요, 선생님. 선생님도 아직 배우는 입장이시니까요.
허먼II: 어? 선생님도 공부해?
요크타운II: 그래.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일 뿐만 아니라 박사님의 연구를 돕기도 하니까.
요크타운II: 그 밖에도 여러 비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거지?
요크타운이 말을 넘겼지만 안쥬 박사와 얘기할 때와는 달리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적당히 넘기는 수밖에.
→ 긍정한다
요크타운II: 역시…. 비밀 프로젝트에 대해선 남에게 쉽게 알려주기 어렵겠지…. 미안해.
안쥬: 미안 미안. 기다렸지?
무슨 일이었지?
안쥬: 그게, 일정이 좀 변경됐어. 가필드 장군이 긴급 임무를 받아서 오늘 밤에는 떠나야 된대. 그래서 지금 당장 미팅을 해야 돼.
호넷II: 지금? 그치만 식사가 아직…….
안쥬: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긴급 임무라니까.
안쥬: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 사람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거 같아.
안쥬: 조수군은 모두하고 같이 있어. “아직 덜 깬” 너를 화가 잔뜩 난 장군 앞에 세울 수는 없으니까.
안쥬: 이번엔 나 혼자 갈게. 대신 얘네들을 부탁해.
안쥬: 이 카드도 받아. 쇼핑이든 영화든 데이트든 아무튼 계산은 다 이걸로 하면 돼.
안쥬: 내 것만 먼저 계산할게. 잘 놀다 와!
~06. 트리뷰트 스타
가게를 나와 동료들과 상점가를 걸었다.
처음에는 캠퍼스 안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상점가 일부가 번화가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요크타운II: 바쁘구나. 안쥬 박사님.
노샘프턴II: 항상 그렇지.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마치 바람 같아.
랭글리II: 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아니면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을 거예요….
호넷II: 그래 그래! 선생님하고 데이트 하는 거라 생각하고 재밌게 놀자고!
노샘프턴II: 호넷도 참…. 선생님은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노샘프턴이 건네준 단말기를 열고 관광 지도를 훑어봤다.
만약 정말 어디든 갈 수 있는 거라면 이 환경의 스케일은 분명 「별바다」의 최대 처리 자원을 능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데이터가 병합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게 대체 누구지?
아무튼 안쥬 박사가 돌아올 때까지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
→ 번화가로 가자
호넷II: 좋아! 찬성!
랭글리II: 모처럼이니 모두에게 줄 선물도 사 갈까요?
호넷II: 어차피 남의 돈이니까 양산함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잔뜩 사자.
랭글리II: 안 돼요. 흥청망청 쓰다간 당연히 혼날 테니까요.
호넷II: 그럼 데이트 코스를 제대로 정해놔야겠지?
랭글리II: 미리 말해두는데 함재기로 내려다 보는 건 금지예요.
호넷II: …어떻게 알았지!? 아니, 이게 아니고….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구.
허먼II: 번화가는 어디로 가면 나와?
노샘프턴II: 드론으로 알아보자. 내가 조종할게.
노샘프턴은 어디선가 작은 드론을 꺼내 날려보냈다.
기존에 알던 그 어느 모델과도 달랐다. 이 드론의 중심부에서는 희미하게 푸른 빛이 보였다.
→ 이건…….
노샘프턴II: 응. 최신제야.
노샘프턴II: 박사님이 빌려줬어. 이게 있으면 도시를 더 잘 볼 수 있다고.
호넷II: 나도 보여줘. …후우, 경치 좋네.
호넷II: 저기 재밌는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한번 가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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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가게.
노샘프턴II: 평소에는 못 보던 것들이 많네.
호넷II: 이거! 전에 상영했던 서부 영화 한정 특전이잖아! 설마 이런 데 있을 줄이야…!
허먼II: 고양이 귀 헤드폰, 귀엽다….
랭글리II: 다들 마음껏 즐기고 계시네요.
랭글리II: 요크타운. 그 메모는 뭔가요? 쇼핑 리스트?
요크타운II: 응. 엔터프라이즈하고 멤피스, 그리고 안쥬 박사님께도 선물을 사 드려야지.
요크타운II: 물론 선생님 것도….
호넷II: 응? 방금 뭐 재밌는 얘기가 들린 거 같은데!
호넷II: 흐응. 요크타운 언니가 선수를…. 선생님한테 선물 줄 거야?
호넷II: 그럼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선생님!
호넷II: 히히. 선생님 뭐 가지고 싶어? 같이 골라 보자!
요크타운II: 호넷! 정말……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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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넷II: 후우…… 잔뜩 샀네! 다음은… 저쪽으로 가볼까?
허먼II: 허먼은 펫 숍에 가고 싶어!
요크타운II: 그래. 그래도 쇼핑도 적당히 해야겠네.
그때 고층 빌딩에 있는 전광판에 어느 영화의 뮤직 비디오가 흘러나왔다.
리샤르의 목소리: 유니온 항모, 보놈 리샤르 주연! 영화 『파이널 카운트다운』 대호평 상영 중!
리샤르의 목소리: 꼭 영화관에서 봐줘! 정말 기쁠 거야!
광고: 『파이널 카운트다운』――대망의 해전 블록버스터 등장!
광고: 지금 티켓을 구입하시면 추첨을 통해 PH항 2박3일 투어 티켓을 증정…….
호넷II: 저건…… 보놈 리샤르잖아…!
노샘프턴II: 영화에 나오는구나…….
호넷II: 저번에 만났을 때는 비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그랬었는데, 대체 뭔가 했더니….
호넷II: 설마 영화였어?
호넷II: 쟤도 완전히 매스컴에 익숙해졌네~
요크타운II: 저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앞에 나서서 주목을 받는 만큼 압박도 심할 테니까.
요크타운II: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골라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렴. 쉽지 않을 거야.
요크타운II: 우리가 이렇게 관광을 즐기는 동안에도 저 아이는 열심히 일하고 있을지도 몰라.
호넷II: 힘들겠네. 보놈 리샤르…….
호넷II: 그래. 쟤 것도 하나 사 가자.
호넷II: 아, 마침 잘됐네. 노샘프턴, 사진 한 장 찍어줄래?
호넷II: 우리 모두하고 리샤르가 다 나오게.
호넷II: 우리가 자기 빼놓고 몰래 선생님하고 데이트 했다는 거 알면 분명 울컥하겠지?
호넷II: 그러니까 이렇게 너도 얼굴만 나오는 걸로 용서해달라고 해야지♪
호넷II: 선생님도 괜찮지? 좋아. 그럼 가운데는 선생님. 허먼하고 랭글리는 이쪽. 요크타운 언니는 선생님 옆에…….
노샘프턴II: 나는 여기 설게. 드론을 조종하면서 사진 찍는 건 좀 어렵지만…. 1, 2, 치즈――
노샘프턴II: 응. 잘 나왔어.
호넷II: 고마워 노샘프턴! 그거 일단 나한테 보내줄래? 걔한테도 바로 보내야지.
호넷II: 그리고 광고도 봤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쟤가 나오는 영화 보러 갈래?
호넷II: 선생님도 궁금하지?
북방연합, 그리고 로열의 연락에서 들었던 의문에 함선, 「보놈 리샤르」.
설마 여기서 보게 될 줄은…….
호넷II: 요크타운 언니. 미안한데 가서 표 좀 끊어줄래? 나는 기념품 발송이 끝나면 바로 갈게.
~07. 스텝 바이 스텝
2시간 뒤――
호넷II: 설마 리샤르가 주연을 맡다니……. 그래도 영화는 의외로 재밌었어.
랭글리II: 군함도, 군항도 전부 「연방」의 진품을 사용해 촬영했다네요.
노샘프턴II: 응. 저번 훈련에서 본 양산함도 있었어. 그 뒤에 영화 촬영에 끌려간 걸까?
허먼II: 그치만 마지막은 좀 별로였어. 뭔가 하려던 참에 금방 원래 시대로 돌아가다니.
랭글리II: 그건 장르 특성 때문이겠죠? 시간 여행은 가장 묘사가 어려운 장르니까요.
호넷II: 과거에 있었던 전쟁을 막으러 가는 거였지? 그런 걸 잘 포장하는 게 감독하고 각본가 일 아냐?
호넷II: “우리는 전쟁을 앞두고 있다. 너희 모두가 태어나기도 전에 진 전쟁이다.”――그래도 리샤르 대사는 멋졌어~
호넷II: 만약 엔터 언니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적은 사정권 안에 있다. 선공해서 섬멸한다.”라고 말했을걸?
호넷II: 과거에 개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 영화에선 다들 너무 주저했어.
랭글리II: 심정은 이해합니다. 저라면 개입하지 않고 역사의 입회인이 되는 길을 골랐을 거예요.
랭글리II: 과거가 바뀌면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알던 미래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고요.
랭글리II: 리스크가 너무 크니 순간의 감정이나 사건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어요.
호넷II: 요크타운 언니는 어때?
요크타운II: 아까부터 줄곧 생각했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
요크타운II: 과거를 바꾼다는 건 그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미래를 바꾸는 거야.
요크타운II: 그리고 우리는 이미 확정된 과거를 짊어지고 있으니까, 설령 다른 과거를 바꾼다고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요크타운II: 그리고 과거를 바꾸고 미래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쩌면 그 미래는 우리가 알던 시간이 아닐지도 몰라.
요크타운II: 자신의 행동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결과를 미치는… 이런 걸 나비 효과라고 하나?
요크타운II: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나쁜 미래를 야기할 수도 있어.
요크타운II: 과거를 바꿨지만 오히려 더 나쁘게 될 수도 있고, 그대로 두었는데 더 나아질 수도 있어.
요크타운II: ……너무 어려워서 나는 도저히 못 고를 것 같아.
호넷II: 하지만 누군가는 결단을 내려야지. 동료들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까.
요크타운II: 그래. 그때는 영화의 함장처럼 한 걸음씩 차근차근 결단을 내려야 하겠지.
요크타운II: 무엇을 취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적어도 후회 없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하지 않을까?
호넷II: 요크타운 언니……. 응. 언니답네.
호넷II: 우리 같은 경우는 선생님이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겠지? 선생님 생각은 어때?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거를 바꿀 거야?
호넷 말대로 만일의 경우 동료들의 운명에 결단을 내리는 것은 나 자신이다.
확정된 과거를 바꾸는 것보다는 미확정된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
하지만 영화처럼 과거로 타임 슬립을 하게 된다면――
→ 과거를 바꾼다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는데 그걸 놓칠 수는 없다.
호넷II: 그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보통은 그걸 고르겠지!
→ 그대로 둔다
아무리 비참한 과거라고 해도 그것이 「현재」를 만들었다.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반드시 좋은 결과가 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랭글리II: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미래에 끼칠 영향을 전망할 수 없다면,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아요.
→ 차근차근 현재를 나아간다
따져보면 타임 슬립한 시점에서 이미 과거에 분기가 생긴 것이다.
내가 무얼 하든 하지 않든, 그 과거로부터 이어질 미래는 이미 불확실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후회가 없도록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앞을 내다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요크타운II: 맞아. 중요한 건 지금의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거야.
요크타운II: 무엇이 옳은지 모른다면 지금 자신에게 옳은 일을 하는 게 최선이겠지.
허먼II: 요크타운 언니. 저쪽에 엄청 귀여운 가게 찾았어! 복슬복슬 인형이 엄청 많아!
허먼II: 아직 안 고른 선물도 있지? 허먼이 안내할 테니까 같이 가자!
요크타운II: 어머, 고마워 허먼. 선생님. 이번에는 허먼이 찾은 가게로 가볼까?
물론. 시간은 아직 많다.
~08. 체인징 태스크
저녁. 대학가.
호넷II: 하아아아……. 벌써 어두워졌네….
호넷II: 즐거운 시간은 항상 순식간에 지나간다니까.
노샘프턴II: 응. 슬슬 안쥬 박사님하고 약속한 시간이네.
랭글리II: 실컷 놀았고 사고 싶었던 것도 모두 샀네요. 아주 훌륭한 성과입니다.
노샘프턴II: 쇼핑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구나.
호넷II: 너무 많이 사버려서 의장 격납 공간에 몰래 넣는 나쁜 아이들 발견!
노샘프턴II: 의장을 완전히 전개한 것도 아니니까 이 정도는 문제 없어.
호넷II: 그런 얘기가 아니고…. 쇼핑했는데 손에 아무것도 안 들려 있으면 쇼핑했다는 증거? 분위기 같은 게 안 살잖아.
호넷II: 봐봐. 난 이렇게 들고 있는걸! 요크타운 언니도. 허먼도!
랭글리II: 그렇게나 들고 있으면 의장보다 더 눈에 띌걸요….
호넷II: 이런 게 바로 쇼핑이라는 느낌이니까 상관없어!
요크타운II: 어머, 먹을 것들은 어느 가방에 넣었더라….
허먼II: 요크타운 언니, 허먼이 들고 있어!
허먼II: 에헤헤. 언니한테 경단 줄게. …자! 아앙~!
호넷II: 아, 허먼 치사해. 나도 할래!
요크타운II: 호넷도 참…. 어린애도 아니고….
호넷II: 선생님도 하고 싶어하는 거 같은데? …그치?
안쥬: 아아~ 여기도 짐이 한 보따린데 누가 안 도와주려나~
호넷II: 아, 미안. 도와줄게. …응? 안쥬 박사님, 언제부터 있었어?
안쥬: 방금 막? 너희하고 거의 비슷하게 왔어.
멤피스: 나도 드디어 일에서 해방됐네.
안쥬: 그거 다 선물이지? 맛있는 거 없어? 나하고 멤피스한테도 먹여줘!
안쥬: 허먼, 호넷! 얼른 얼른 숨기지 말고 전부 자백하도록!
----
안쥬: 후우… 배가 빵빵하네…. 잘 먹었습니다!
박사와 장군의 미팅은 아무래도 잘 끝난 것 같다.
안쥬: 뭐 그럭저럭. 걔가 기분 나빴던 건 나 때문이 아니라 윗사람들한테 압박을 받아서 그런 모양이더라구.
안쥬: 장군쯤 되면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우리한테까지 영향이 없다고는 말 못하지만.
안쥬: 아무튼 상부의 압박 때문에 일정이 좀 바뀌었어.
안쥬: 특히 내일 잡혀 있었던 II형 의장의 전력 테스트가 말야.
멤피스: 내일 대항 훈련의 진행을 부탁할게. 리얼리티… 어흠. 그냥 훈련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해줘.
방금 뭐라고…?
→ 「리얼리티 렌즈」라고 하려고 했지?
멤피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선생님은 내일 레드 팀의 지휘관으로서 새 의장을 장비한 함선들을 이끌게 될 거야.
멤피스: 그리고 나는 적군으로서 OFS――연방의 양산함대를 이끌고 대항할 거고.
호넷II: 잠깐 잠깐! 대항 훈련 얘기 같은 건 들은 적 없는데…. 대체 무슨 소리야?
요크타운II: 처음 일정에서 조금 바뀐 것 같은데….
안쥬: 조금이 아니라 확 달라졌어.
안쥬: 원래는 의장 시운전에 성능 테스트, 실사격 훈련이었잖아? 근데 그게 실전 대항 훈련이 된 거야.
안쥬: 실전은 대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서 전투 시나리오도 생략해 버렸어.
안쥬: 그래서 아무것도 몰라. 어떤 양산함이 배치될지, 무엇이 난입할지, 어떤 「트러블」이 일어날지 하나도 몰라.
안쥬: 그리고 아마 훈련에는 특수한 작전 환경을 상정한 설정이 추가될 거야.
안쥬: 본격적인 훈련이니 만큼 최신형 병장도 나올 테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노샘프턴II: 여러모로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네….
노샘프턴II: 최신형 병장까지 투입하는 건 함선의 힘을 고평가해서 그런 걸까…?
랭글리II: 최신 II형 의장은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함선의 힘을 크게 끌어낼 수 있다고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랭글리II: 그 힘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가능한 한 빨리 벤치마크를 얻고 싶은 거겠죠.
호넷II: 나쁘지 않은데? 오랜만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훈련이잖아.
호넷II: 에식스급 호넷의 힘을 어디까지 발휘할 수 있을지는 나도 알고 싶으니까!
요크타운II: 그러네. 능력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 같구나.
요크타운II: 설명은 많이 들었지만,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역시 직접 싸워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겠지.
안쥬: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요크타운II: 하지만 박사님. 이 훈련에 선생님도 참여하는 거야?
안쥬: 그렇지 뭐. 일정이 갑작스레 바뀌었으니 인원 구성에도 좀 변동이 있는 거지.
안쥬: 우리 조수군보다 더 지휘관에 적합한 사람 있어? 없을걸?
호넷II: 알겠어. 아무튼 고마워, 안쥬 박사님!
안쥬: 흐흥. 그럼 열심히 하라고. 이번에 활약하면 다른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을 거야.
안쥬: 평가자들한테 좋은 인상을 남기면 여기 이 선생님하고도 더 오래 일할 수 있을 테니까~
노샘프턴II: 일을 더 받기 위해서 열심히 하라고? 이상한 말 같지만, 아무튼 좋아.
랭글리II: 네. 그리고 선생님께서 지휘를 맡아 주신다면 불만은 없습니다.
요크타운II: 잘됐네. 그럼 다들 이견은 없는 거 같으니까 이제부터는 선생님을 지휘관님이라고 부를까?
안쥬: 오 좋은데! 그럼 나도 조수군이 아니라 지휘관이라고 불러야지~
안쥬: 조수군도 괜찮지?
→ 문제 없다
역시 익숙한 호칭이 제일 와닿네.
안쥬: 훈련에 대한 건 나중에 찬찬히 확인해 보고, 1시간 뒤에 숙소로 이동할게.
호넷II: 우리 어디서 자? 캠퍼스에서?
안쥬: 아쉽지만 아냐. 낮이라면 얼마든지 속여 넘길 수 있지만, 밤은 내 관할 밖이야.
안쥬: 오늘 밤은 훈련해역 인근 기지에 묵을 거야.
호넷II: 역시나……. 뭐 훈련기지라도 상관없긴 하지만.
호넷II: 근데 거기 방은 전부 트윈룸이지?
허먼II: 그,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호넷II: 흐흥. 호넷 님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미리 다 조사를 해놨단 말씀!
노샘프턴II: 트윈룸이면…….
랭글리II: 즈, 즉 2인 1실이니까…….
호넷II: 응.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 다시 말해――
호넷II: 누가 지휘관하고 같은 방에서 잘 것인가!
호넷II: 자, 과연 누가 그 럭키 걸이 될까……?
허먼II: 왜, 왜 허먼을 보는 거야!?
호넷II: 싫어? 그럼 허먼은 아웃~
허먼II: 기다려! 허먼은 싫다고 한 적 없어!?
호넷: 그럼 다시 인♪
요크타운II: 호넷도 참…. 지휘관님이 곤란해 하고 있잖니…….
호넷II: 그치만 언니. 방 배정은 해야 되잖아?
호넷II: 흐흐흐. 지휘관을 너무 놀리는 것도 그러니까 역시 언니가 같은 방 쓸래?
요크타운II: 그, 그게……. 지휘관님만 괜찮다면……….
안쥬: 이놈들!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안쥬: 지휘관하고 나는 직원용 별도 건물에서 묵을 거야! 훈련 배치라든가 여러 가지 논의해야 할 것도 있고!
호넷II: 에엥―
안쥬: 불만이 있으면 윗선에 말하도록! 그게 아니면………호넷이 나 대신 일하려고?
호넷II: 그럴 리가 없잖아! 어쩔 수 없네! 방 배정은 우리끼리 해야지.
안쥬: 정리 끝! 출발까지 1시간 남았으니까 그 전에 잘 정해놔!
안쥬: 오, 저기 노점상들 있네? 옛날에는 자주 먹으러 다녔었는데 저렇게나 호화롭게 바뀌다니♪
안쥬: 너는 여기 와본 적 없지? 괜찮아! 내가 잘 구경시켜 줄 테니까!
안쥬 박사는 다짜고짜 나를 노점상 쪽으로 끌고 갔다. 아무래도 밤은 이제부터 시작인 모양이다――
~09. 커맨더 인 포지션
다음 날. 훈련해역.
지휘함에 탑승하여 함선들과 함께 마지막 출격 준비를 한다.
조금 전까지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도 멤피스가 보낸 정보로 확 바뀌었다.
적군은 단순 구형 군함뿐 아니라 최신 양산함, 전투용 드론, 무인 함재기까지 배치 중이었다.
편성이나 무장도 함선과의 전투에 특화하여 구성해놓은 것 같다.
랭글리II: 안쥬 박사님이 말씀하셨던 것보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본격적이군요.
랭글리II: 무장 구성 역시 모두 최첨단 장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랭글리II: 함선의 공습을 무력화할 수 있을 정도의 고성능 대공화기를 장비한 호위함과, 강력한 근접 방어 능력을 가진 초게함…….
랭글리II: 거기에 움직이는 표적을 추적할 수 있는 장거리 대함선 미사일과 레이더. 다수의 전자전용 재밍 디바이스…….
랭글리II: 어딜 봐도 훈련용 구성이 아닙니다. 외계인이라도 상대하려는 걸까요….
노샘프턴II: 함선의 전력은 차원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호넷II: 듣도 보도 못한 장비들인데? 대체 우리한테 어디까지 기대하는 거야.
허먼II: 존재하지 않는 무기까지 배치하다니…. 분명 허먼을 괴롭히려는 걸 거야!
랭글리II: 그에 비하면 이쪽은 함선 5척에 지휘함뿐…. 전력 차가 꽤 나네요.
호넷II: 항모 셋에 구축 하나, 중순 하나. 그리고 병장이 탑재되지 않은 지휘함….
호넷II: 그리고 저쪽에는 멤피스까지 있잖아! 예상 밖의 사태 발생에 대비한다던가 뭐라면서….
호넷II: 아아 이제 도통 모르겠어! 적군을 맡게 됐다는 걸 알았으면 우리한테 배치 정도는 살짝 알려줄 수도 있었던 거 아냐?
호넷II: 그러고 보면 멤피스 걔 어제부터 잠자코 있었지?
호넷II: 그치…. 괜히 그렇게 늦게 나타난 게 아니겠지……. 쳇.
호넷II: 안쥬 박사님도 같이 있었으니까, 아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거야….
요크타운II: 박사님은 우리와 지휘관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걸지도 몰라.
요크타운II: 그리고 멤피스는 II형 의장 교체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같은 편은 못 되었을 테고.
요크타운II: 이번 훈련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주역이야.
요크타운II: 적군이 강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은 우리 전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요크타운II: 「전진전선」에서 연구 중인 에너지 큐브 응용 무기의 성능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럴 테고.
요크타운II: 아무튼, 다들 자신감을 가지렴.
호넷II: 자신감은 항상 가지고 있었어. 이건 공정함의 문제잖아.
훈련 계획에 따른다고는 하지만, 이 전력 차는 확실히 공정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싸우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우선 호위함의 대공경계망은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선 양산함들을 정밀하게 통제해야 한다.
멤피스 혼자서 그것들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중간에 명령을 중계하는 지휘함이 존재할 것이다.
지휘함들을 파괴한다면 양산함 간의 연계도 끊어져 돌파하기 쉬워질 것이다.
그 틈을 타서 적진을 파고들어 최우선 목표인 지휘 계통을 무력화한다. 신속하게 침투하여 주요 목표물을 제거하는 것은 재래식 군함에 비해 함선이 가지는 가장 큰 이점 중 하나다.
호넷II: 그러니까 전력으로는 열세일 수도 있지만 전술적으로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개별 함선의 전력은 양산 병기를 능가한다. 그렇기에 함선들의 힘을 잘 집중시킬 수만 있다면 전황을 바꿀 수 있다.
적절한 지휘로 모두를 승리로 이끄는 것은, 나의 몫이다.
요크타운II: 지휘관님 말이 맞아. 냉정하게 상황을 살피다 보면 분명 승기가 보일 거야.
요크타운II: 과거의 전술이나 현대전에 대해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우리만이 구사할 수 있는――앞으로의 전쟁에 대해서도 지휘관님께 배워야지.
그렇게까지 말하니 조금 부끄럽다.
동료를 이끌고 세이렌과의 싸움에 투신해왔던 그 경험을 지금 다시 살릴 때다.
멤피스: 안녕. 그쪽 준비는 다 끝났어?
호넷II: 물론이야 멤피스. 두고 봐.
랭글리II: 지휘관님과 함께 싸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니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랭글리II: 멤피스야말로 조심하도록 하세요.
멤피스: 당연하지. 지휘관의 존재 여부가 얼마나 큰지는 나도 잘 알아.
멤피스: 이쪽도 준비 만전이야. 후후후. 시뮬레이션과는 다르다는 걸 알려주겠어.
요크타운II: 시뮬레이션? 지휘관님하고 모의 훈련이라도 했었니?
멤피스: 아, 아냐. 내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했다는 뜻이야.
멤피스: 오늘 훈련은 물론 처음이지만 사전에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 했었어.
호넷II: 뭐야, 그렇게까지 한다고?
허먼II: 허먼도 갑자기 긴장돼…….
노샘프턴II: 어찌됐든 신중하게 대응하자.
안쥬: 잡담은 끝났어?
호넷II: 안쥬 박사님?! 아침부터 어디 갔었던 거야?
안쥬: 그야 당연히 특등석을 찾고 있었지.
안쥬: 마지막으로 훈련의 승패 기준을 다시 설명해 줄게.
안쥬: 레드 팀의 기함은 요크타운. 블루 팀의 기함은 멤피스. 기함이 굉침당하거나 격파 판정이 난 쪽의 패배야.
안쥬: 다들 이해했지?
모두: 네――
안쥬: 좋아. 그럼 제II형 의장 전력 테스트 대항 훈련. 스타트!
~10. 퓨전 아마먼트
훈련해역. 얼마 후――
사전 협의대로 아군 함대는 세 부대로 나뉘어 행동 중이다.
노샘프턴과 호넷. 허먼과 요크타운. 그리고 내가 승함 중인 지휘함과 랭글리.
호넷II: 적 함재기 다수 접근! 분명 항모 타격대야! 멤피스가 주력함을 투입하고 있어!
노샘프턴II: 랭글리. 전황 업데이트 부탁해!
랭글리II: 알겠어요! 앞으로 2초…….
랭글리II: 전송했습니다! 적 항모함대 내 대공특화형 초계함 다수 확인! 조심하세요!
랭글리II: 지휘함 특정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립니다. 모두 끝날 때까지는 돌격하지 마세요!
호넷II: 로저!
랭글리II: 지휘관님. 호넷 쪽은 당분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랭글리II: 하지만 그다지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군요…. 역시 적의 전력이 압도적이에요.
랭글리II: 함재기와 일반 드론 외에도 수중 드론 및 잠항기까지 다수 전개 중입니다.
랭글리II: 확실히 개개의 전력은 저희 쪽이 압도적입니다만, 저쪽이 수적 우세로 밀고 들어온다면…….
(안쥬 박사는 전날 밤 나에게 II형 의장의 구조와 개선된 기능에 대한 자료가 정리된 보고서를 주었다.)
(그 중 대표적인 기능은 전반적인 전투력 향상, 재밍 대책, 내장된 전자전 능력이다.)
(물론 향상된 통신 및 정보 처리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전장에 있는 함선들이 서로 데이터 링크를 통해 직접 정보를 공유하고, 용골에서 더 많은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특수한 공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제작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멘탈 큐브가 사용되었으며, 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라고 안쥬 박사가 건네준 보고서에 쓰여 있었다…….)
정보 공유에 관해서는 우리가 우위에 있다. 유리한 부분은 확실하게 이용해야 한다.
랭글리II: 데이터 링크요? 네, 맞습니다. …새 의장의 최대 강점 중 하나입니다.
랭글리II: 향상된 정보 처리 능력으로 인해, 정찰로 얻은 데이터를 즉각적으로 분석하고 전장에 있는 동료들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랭글리II: 전원이 동시에 지휘관님의 지시를 바탕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랭글리II: 지휘관님이 가지고 계신 단말기에도 전장의 최신 정보가 반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신기에 의존하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군요.
함재기가 같은 정보를 받아 동시에 운용할 수 있게 되면, 동료 간 연계도 더욱 향상될 것이다.
랭글리II: 네! 지휘관님께서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준 II형 의장의 새로운 기능이기도 하죠.
랭글리II: 사실 훈련 시작 때부터 동료들의 정찰 장비의 제어를 일부 맡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동료들이 더 전투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찰 장비를 제어할 수 있다면… 혹시 함재기 제어권도 다른 동료와 공유할 수 있나?
랭글리II: 확인해 보겠습니다……. 된다. 가능합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랭글리II: 역시 지휘관님 곁에 있으니 많은 공부가 되네요. 후후후.
다들 내가 의장 개발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정작 내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
디바이스를 조작하여 요크타운과 통신 회선을 연결했다.
요크타운II: 지휘관님, 무슨 일이야?
그녀가 담당하는 전선은 공중보다는 수중 위협이 더 크다.
요크타운II: 지금까지는 잘 대처하고 있지만….
요크타운II: 그래도 적의 수가 너무 많아…. 내가 제공권을 다투는 동안 허먼은 대함전과 대잠전을 모두 수행해야 해.
요크타운II: 미안. 지금은 다른 동료를 지원할 여유는 없어…….
지원하라는 게 아니라 지원해주기 위해 연락한 거다.
공대공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정찰기의 제어권을 일부 랭글리에게 넘겨서 이쪽에서 적 지휘함을 특정하는 것으로 하자.
요크타운II: 제어권을 랭글리에게? 응, 이렇게 하면…… 됐다. 넘겨줬어.
허먼II: 요크타운 언니! 또 잠항기가 왔어!
요크타운II: 엄청난 수야…! 멤피스, 진심이구나….
조금만 더 버텨줘. 적의 약점을 찾아낼게.
요크타운II: 응! 지휘관님… 나, 열심히 할게!
랭글리에게 지시를 내려 제어 중인 정찰기를 모두 투입해 지휘함을 수색하게 했다.
포착되는 대로 모든 함이 집중 공격을 가해 격파한다. 그리고――
양산함의 연계가 흐트러진 사이에 주력함대를 섬멸해 승리한다.
랭글리II: 네!
~11. 스트라이크 위드 어드밴티지
―――!!!
랭글리II: 마킹 완료된 모든 지휘함의 격파에 성공했습니다! 적 진형이 크게 흐트러져 있습니다!
노샘프턴II: 대단해… 역시 지휘관이야….
요크타운II: 적이 약해져 있는 지금 단번에 추격하자.
공격 목표의 우선순위를 동료들에게 전달했다. 이제 믿고 추이를 기다릴 뿐이다.
허먼II: 요크타운 언니! 허먼, 열심히 했어!
요크타운II: 그래. 잘했구나. 허먼이 대잠 전투에서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세는 없었을 거야.
허먼II: 에헤헤헤♪
호넷II: 생각보다 쉽잖아! 양산함 따위 결국 이 정도――
요크타운II: 이 정도, 가 아니지.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호넷II: 알고 있어. 이제 더는 예전의 호넷 님이 아니니까.
데이터 링크를 통해 공유된 전황을 보았다. 적의 주력함대는 완전히 격파되었다.
하지만 멤피스 측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위험한 징후다. 그녀가 무언가 냄새를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적의 약점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적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약점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아군은 막강한 항공 전력을 가지고 있지만, 호위할 전력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아직까지는 적의 전력을 잘 쪼개서 대처하고 있긴 하지만….
적이 우리의 정찰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전력을 재편해 집중 공격을 가하면 도리어 위험해진다.
랭글리II: 전황을 업데이트 했습니다. 블루 팀 주력함대 격파 확인. 아군 함재기의 손상은 40%지만 함선의 손상은 없습니다.
랭글리II: 멤피스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네요…. 다음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적의 기습에 대비해서 일단 합류하자. 그 후 각 부대의 재편성을 실시한다.
허먼과 랭글리의 자리를 바꾸고, 전자전 설비를 기동한다.
요크타운 근처에 허먼의 위장 신호를 만들고, 동시에 지휘함 근처의 허먼의 신호는 차단한다.
II헝 의장의 카탈로그 스펙만 보면 가능하지만, 실전에서도 잘 될지는――
랭글리II: 문제 없습니다. 맡겨 주세요.
요크타운II: 지휘관님. 어쩔 생각이야…? 이러면 지휘함 주위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일 텐데…….
요크타운II: 혹시 지휘관님 스스로 미끼가 될 셈이야?!
리스크는 높지만 시도할 가치는 있다.
즉 요크타운이 속한 부대의 전력을 강화하고, 자신을 미끼로 적의 공세를 유도하는 것이다.
요크타운II: 알겠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함재기를 날릴 테니 조심해!
랭글리II: 바로 나오는군요. 적 함대의 예비 부대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호넷II: 예비 전력을 보내다니…. 멤피스 녀석, 이걸 노렸구만!
저 정도 전력이라면 접근하기 전에 아군 항모에게 갈가리 찢길 것이다. 그렇다면 공격의 진짜 노림수는――
~12. 엑서사이즈 빅토리
훈련해역. 종반.
동료들의 분투로 블루 팀 예비 전력의 공세를 막아냈지만, 수를 활용한 파상공세에 대응하느라 다들 분주한 모습이다.
한편 지휘함 갑판에서 초계를 맡고 있는 허먼은――
데이터 링크로 정보가 수시로 공유되는 디바이스를 들여다보며 안절부절거리고 있다.
허먼II: 다들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허먼만 쉬고 있고…….
허먼II: 부, 분명 지휘관의 배치에 문제가 있는 거야!
기분이 언짢은지 그녀는 내 옆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런 큰 소리에 깜짝 놀라 움찔했다.
허먼II: 어? 괘괘괘괘찮아!? 허, 허먼은 그냥 모두의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지 지휘관을 탓하는 건 아닌데….
허먼II: 언니들은 열심히 적을 쓰러트리고 있으니까, 허먼도…….
허먼II: ……!? 방금 음파 탐지기에 반응이!? 근처가 뭐가 있어!
허먼II: 반향의 크기를 보면…… 대형 잠수함… 아니, …전함급!?
허먼II: 조심해! 부상한다!
굉음과 함께 바닷속에서 은빛 거함이 부상했다.
예상대로 멤피스의 예비 함대는 양동이었다. 아마 진짜는 이 대형 잠수함일 것이다.
그런데 외형이… 북방연합에서 벨로루시야 일행과 다닐 때 탔었던 잠수함과 비슷한데…….
멤피스: 북방연합 게 아니라 「연방」이 개발한 심해 탐사용 대형 잠수함 「에피메테우스」야.
멤피스: 각종 센서와 정보 처리용 고성능 컴퓨터로 조사는 물론이고 전장의 정보를 모니터링할 수도 있고――
멤피스: 거대한 함체에 걸맞게 탑재한 다수의 방위용 병기로 지휘함쯤은 손쉽게 격파할 수 있어!
멤피스: 후후후. 놀라서 말도 안 나오니?
호넷II: 우리 쪽 탐지 심도보다 더 깊이 잠수해서 지휘관에게까지 접근한 거야?!
호넷II: 이거 치트 아니냐고!
멤피스: 투정은 마음껏 부려 호넷. 지금부터 함재기를 띄워도 늦었으니까.
허먼II: 미안해 지휘관…. 저런 게 접근하고 있었는데도 허먼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하지만 저쪽도 허먼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공격하면!
허먼II: 응! 허먼의 힘을 보여줄 테다――!
―――――!!
방위용 병기를 갖춘 거대 잠수함…. 웬만한 양산함과 비교하면 만만치 않은 상대지만, 결국 비전투용 양산함에 불과하다.
함선과 일대일로 싸우면 어느 쪽이 우위인지는 명백하다.
이거면 멤피스의 작전을 깨부술 수 있――
멤피스: 아직 멀었어, 지휘관!
멤피스: 아까 말했지? 이 함은 정보 처리용 고성능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고!
멤피스: 허먼이 여기 있다는 건 부상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어!
멤피스: 굳이 거리를 두고 부상한 건 허먼을 지휘함에서 떼어놓기 위해서였고, 진짜 목적은――이거야!
멤피스: 목표, 전방 지휘함 갑판!
멤피스: 긴급탈출포드. 멤피스, 베일아웃!
――――――!!
잠수함에서 무언가가 발사되어 일직선으로 이쪽으로 날아왔다……!
갑판에 직격한 소형 탈출포드에서 의장을 입은 멤피스가 나타났다.
멤피스: 체크메이트야, 지휘관.
멤피스: II형 의장의 기능을 활용해 나를 유인하는 작전은 훌륭했지만, 역시 내가 직접 올라탈 거라곤 예측 못했지?
멤피스: 후후후. 내 페이스에 따라오지 못했나봐?
물론 탈출포드를 이용한 강습은 예측하지 못했지만…….
→ 멤피스를 칭찬한다
멤피스: 고마워. 어떻게 하면 지휘관을 이길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과연 듬직하다. 하지만…….
멤피스: 지휘관만 쓰러트리면 다른 동료들 간의 연계도 끊어질 거야. 그러면 천천히 양산함을 재집결시켜서 해치우면…… 응?
멤피스: 잠깐만. 지휘관, 너 설마…….
“멤피스가 단신으로 지휘함에 강습하는 경우”――에 대한 대처 방법도 이미 마련해 놓았다.
지휘함을 목표로 아군의 모든 함재기에 의한 집중 공격을 개시한다.
요크타운II: 지휘관님. 아무거나 꽉 잡아!
―――――!!
아나운스: 블루 팀의 기함이 격파되었습니다. 훈련 종료. 레드 팀의 승리입니다.
멤피스: 당했다……. 역시 지휘관이네. 모든 수를 계산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지휘관한테 추월당하다니.
안쥬: 이야, 진짜 다행이다~ 관중석에 보기만 한 나도 손에 땀을 쥐는 전개였어~
안쥬: 멤피스 말대로 역시 지휘관이네! 다들 널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가.
안쥬: 모두 수고했어.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나은 테스트를 할 수 있었어. 나중에 포상도 확실히 챙겨줄게.
호넷II: 그래야지! 갑자기 대항 훈련 준비하느라 엄청 힘들었으니까!
안쥬: 하하하, 미안 미안! 음, 훈련 결과 분석과 평가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테니까 일단은 며칠 푹 쉬어.
안쥬: 내 전세기를 써도 되니까 어딘가로 짧게 휴가를 가는 건 어때? 지휘관도 괜찮지?
허먼II: 휴가……? 진짜!?
호넷II: 만세~! 고마워 지휘관! 안쥬 박사님!
안쥬: 아, 잠깐만. 갑자기 전화가…. 오스타? 미안해, 잠깐만 실례할게.
안쥬: “무슨 일이야? 갑자기?”
안쥬: “의장 테스트 결과? 당연히 대성공이지.”
안쥬: “이미 알고 있다고?”
안쥬: “뭐야 너도 참여했었어? 그래서 블루 팀이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스펙으로 나왔구만.”
안쥬: “……뭐?”
안쥬: “잘 알고 있네. …훈련 데이터가 나올 때까지는 나도 며칠 정도 시간이 좀 빌 것 같아.”
안쥬: “……호오, 괜찮은 제안인데? 나도 관심 있어.”
안쥬: “……지휘관은 뭐…, 설득해 볼게. 그럼 거기서 봐.”
요크타운II: 안쥬 박사님. 무슨 일이야?
안쥬: 별거 아냐. 아까 말했던 휴가 말인데. 실은 추천할 만한 행선지가 있거든.“
안쥬: 멋진 레저 명소야. 「사모스 섬」이라고 들어봤어?
~13. 링크드 렌즈
유니온 극비연구기지 「별바다」 X 구역 중앙제어실. 현실 공간.
TB: 오버플로 상태, 해제되었습니다. 「리얼리티 렌즈」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정상 가동 중.
TB: 긴급태세 지속 중. 타임 레코그나이저 가동률, 95%로 회복.
TB: 시간 경과 속도 인식, 2/3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멤피스: 다행이다…. 간발의 차였어…….
멤피스: 타임 레코그나이저 제어도 회복됐으니까 이제 지휘관 구출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겠어.
멤피스: 헬레나. 세이프티 록을 해제해줘,
헬레나: 응. 긴급 세이프티 록, 해제……. 됐다.
헬레나: TB. 지휘관의 접속 중단과 의식 회복을 부탁해.
TB: 오더를 확인했습니다. 긴급 사출 시퀀스 진행――
TB: 경고: 지휘관님의 의식과의 통신 복구에 실패했습니다.
TB: 경고: 가상 공간3에 지휘관님의 의식 존재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TB: 경고: 가상 공간을 관측할 수 없습니다.
TB: 지휘관님은 현재 앵커리지의 용골 정보로 구축된 가상 공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베스탈: 가상 공간에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까, 앵커리지의 꿈속에 없다고요…?
베스탈: 지휘관님은 지금, 「리얼리티 렌즈」 안에 없다는 말이에요?
베스탈: TB,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려줘요!
TB: 언어 프로그램으로의 정보 공개는 불가능합니다.
TB: 지휘관님의 육체는 「리얼리티 렌즈」 속에 존재합니다. 또한 의식도 「리얼리티 렌즈」와 정상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TB: 다만 의식 추적 및 가상 공간 관측은 불가능합니다.
TB: 지휘관님의 의식은 현재 TB가 관측할 수 없는 가상 공간 안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헬레나: 관측할 수 없는 가상 공간…? 「리얼리티 렌즈」 제어는 TB가 맡고 있잖아.
헬레나: 관측할 수 없다니… 그런…… 말도 안 돼….
TB: 정보 공개에 필요한 권한이 취득되어 있지 않습니다. 프로토콜에 따라 함선에게 해당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멤피스: 다들 침착해! …TB, 하나만 확인할게. 지휘관의 의식은 무사해?
TB: 오더를 확인했습니다. 지휘관님의 인격 의식 모니터링 정보를 확인 중입니다.
TB: 지휘관님은 현재도 「리얼리티 렌즈」와 접속 중입니다. 따라서 인격 의식은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판정됩니다.
멤피스: 이래선 아무것도 몰라…. 이렇게 하자.
멤피스: 지휘관의 몸은 아직 시설 안에 있고, 의식도 확실히 「리얼리티 렌즈」 안에 있어.
멤피스: 만약 우리가 「리얼리티 렌즈」를 정지한다면 안전 예방 차원에서 안에 있는 지휘관과의 연결이 자동으로 중단될 거야.
멤피스: 깨어나면 잠시 혼란스럽겠지만, 이 방법이라면 지휘관을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어.
멤피스: 가능하지, TB?
TB: 문제 없습니다.
멤피스: 그럼 부탁해. 「리얼리티 렌즈」를 멈추고 지휘관의 의식을 되찾자.
TB: 오더를 확인했습니다. 「리얼리티 렌즈」를 정지 중입니다.
TB: 정지 프로그램이 중단되었습니다. 제어 권한이 필요합니다.
베스탈: 「리얼리티 렌즈」의 제어 권한은 TB가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요?
TB: 「리얼리티 렌즈」 정지 프로그램의 제어 권한이 변경되었습니다. 현재 TB에게 해당 기능에 대한 권한은 없습니다.
TB: 정지 프로그램의 제어 권한을 부여하거나, 임시 인증 코드가 필요합니다.
멤피스: 제어 권한이… 변경되었다고? 우린 아무것도 안 했는데.
멤피스: 실험이 시작된 뒤 누군가가 몰래 권한 요구 사항을 변경한 걸까? 하지만 어떻게…?
베스탈: 멤피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에요.
베스탈: 우선은 새러토가에게 연결해서 인증 코드를 다시 요청해 봐요!
멤피스: 아, 으응. 그렇지…. 헬레나 회선을 연결해줘.
헬레나: …………………또, 도와주는 거야…?
멤피스: 헬레나? 괜찮아…?
헬레나: ……………………너라면 「별바다」를 해킹할 수 있겠지.
헬레나: ……………………나, 너를 믿어도 될까?
헬레나: ………「헬레나」를, 정말 믿어도 될까?
베스탈: 헬레나? 누구하고 연락하는 건가요?
헬레나: “47741 30130 30146”――긴급 제어 코드야.
헬레나: 그리고 지휘관을 구할 방법도 알았어.
멤피스: 뭐……?
헬레나: TB. 「탑」의 제어권을 이행해줘. 수신자는, 「헬레나」야.
TB: 오더를 확인했습니다. 권한 이행을 실시합니다.
TB: 이머전시 액세스 코드 확인. 권한 이행을 완료했습니다.
TB: 중앙 제어실의 좌표를 입력하십시오.
헬레나: ……0+0.0004i, 0+0.1374i, 0+0.0001i, 2464762576.
TB: 오더를 확인했습니다. 계속해서 좌표를 입력하십시오.
헬레나: 32.2117, 64.4257, -25.3486…….
TB: 가상 공간 추적 권한을 부여해 주십시오.
헬레나: 알겠어. 부탁해 …헬레나.
헬레나는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잠시 중얼거리고, 제어 장치를 조작해 코드를 입력했다.
TB: 오더를 확인했습니다. 가상 공간 추적을 실시합니다.
멤피스: ……헬레나, 뭘 한 거야?
멤피스: TB… 아니, 「별바다」에 이런 기능이 있는 줄 몰랐어.
베스탈: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방금 헬레나와 대화한 사람은 누구죠……?
헬레나: 으, 으응. ……말하자면 조금 복잡해져.
헬레나: 미안……. 지금은 지휘관 구출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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