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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탑의 장미 下

킹루클린 2025. 5. 24. 23:21

 ~25. 전쟁 준비

 

장미탑이 빛을 발하던 순간 나는 컴파일러가 구축한 지휘 사령부에 도착했다.
모니터에 나와 있는 가용 전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지휘관: 생산 라인이 200여 개에… II형 양산형 함대가 172부대……?!

컴파일러: 글로리어스 덕분.
컴파일러: 그녀는 지난 100년 동안 자신의 설비를 충분히 활용하지는 못했지만, 유지 보수만은 충실히 했어.
컴파일러: 장미탑에 축적된 정찰 데이터 덕분에, 이곳의 컴파일러와 오미터가 비축했던 예비 자원과 계획을 발견했어.
컴파일러: 6시간 내에 100개 이상의 생산 라인을 추가로 가동할 수 있고, 70개 이상의 II형 표준 양산형 혼성함대를 재건 및 추가 가능해.

불과 몇 시간만에 컴파일러는 이미 전쟁 준비를 마쳤다.

지휘관: 내가 본 건 폐허뿐이었는데…… 네가 볼 때는 그게 다 자원이었구나.
지휘관: 안티 엑스의 자원 이용 효율은 정말… 대단하네.
지휘관: 생산 가능한 건 II형까지야? 부유함대는?

컴파일러: 유감이지만 이사회의 표준형 부유 전함 생산은 허가되지 않았어.

지휘관: 그럼 가장 전력이 높은 양산형은?

컴파일러: V형 표준 양산형.

지휘관: IV형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V형까지 있었구나….

컴파일러: 모델이 높을수록 공정이 복잡해지고 필요 자원과 생산 시간도 증가해.
컴파일러: 일반 실험장에서는 III형으로 충분. IV형은 예비용. V형은 비실험적 요소가 일으킨 극한 상황 대처용.
컴파일러: 단기간에 병력을 조달할 수 있었던 건, 과거 비축된 자원을 소모했기 때문.
컴파일러: 본체의 지원이 없는 이상 지속적인 생산 능력은 낙관할 수 없음. 전장에서 정밀 제어도 한계가 있어.
컴파일러: 그래서 II형 표준 양산형을 대량 생산하여 버림 패로 삼고, '시간 끌기'라는 전략적 목표에 전념하기로 했어.

지휘관: 과연. 질보다 양을 우선시한 거구나……. 좋아.

 

목표는 시간을 버는 것이지만, 모든 전력을 장미탑 사수에 투입할 수는 없다.
복수의 전역이라는 종심이 존재하고 적에게 통일된 지휘 계통이 없는 이상, 우선은 각 전역에서 적을 요격해 저지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곳 지리에 정통한 글로리어스 META에게는 장미탑 내부에서 전장을 총괄하도록 지시했으며, 엘리자베스, 벨파스트, 뱅가드와 함께 제1전역에 배치했다.
제2, 3, 6전역은 컴파일러의 세이렌 함대와, 세이렌과의 공투에 능한 리나운, 리펄스 META가 담당한다.
그리고 나와 미스 D도 컴파일러에게 협력한다.
제4전역 방어는 라이언 함대가 맡는다. 메세케테트의 기동성을 살려 전략적 우위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제5전역은 면적이 넓기 때문에 퀸즈 라이트호를 보유한 엘리자베스 META에게 맡겼다.
동시에 컴파일러는 주변 모든 전역과 해역의 세이렌 시설을 가동하여 광범위한 교란을 실시한다.

컴파일러: 글로리어스 META에게서 개전 신호를 수신.
컴파일러: 요구대로 지휘관에게 제2전역 내 1/3의 세이렌 함대 지휘권을 이양했어.
컴파일러: 지휘 유닛 내 조작 권한도 개방 완료.
컴파일러: 장미탑 철수가 결정될 때까지 이곳에 머물며 전장을 지휘한다. 맞지?

지휘관: 맞아.

컴파일러: 그럼, 전투 개시.



 ~26. 제2종 의태물
――――――!

전투는 황혼에서 심야까지, 그리고 새벽까지 이어졌다.
동료들은 각 전역에서 온갖 수단을 다해 외부의 짐승들의 힘을 소모시켜 갔지만, 활동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좋은 소식은 하룻밤의 전투를 거치면서 거의 모든 적이 장미탑을 공격 목표로 삼았고, 보름달의 봉오리 주변의 잔해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장미탑 주변 전역에 잔해가 계속 쌓이는 바람에 언제 의태물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었다.
곧 날이 밝는다. 라이언과 엘리자베스 META는 이미 제1전역으로 철수해 새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컴파일러도 대부분의 자원을 그쪽으로 옮겼다.
나와 미스 D도 컴파일러와 함께 장미탑으로 귀환하기로 했다.

미스 D: 으아아아아, 조수조수조수!!
미스 D: 큰일 났어! 큰일 났어!!
미스 D: '제2종 의태물'가 나타났어! 끝이다! 이제 끝이야아아아아!

지휘관 제2종 의태물?

 

사령부 모니터를 통해 나는 잔해 속에서 의태물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했다.
외부의 짐승을 구성하는 하얀 물질과 검은 금속이 녹아내리듯 하천과 섞이면서 대지를 혼돈의 바다로 바꾸어 갔다.
그 안에는 잔해에 의해 재구성된 무수한 개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곳곳에서도 아직 미성숙한 개체들이 신음하며 기어다니고 있었다.

지휘관: ……앞서 본 의태물과는 확실히 다른데. '제2종'이 뭐야?
지휘관: 제1종은? 제3종, 4종도 있는 거야……?
지휘관: 애초에 분류하는 기준은 뭐지?

미스 D: 그렇게 한번에 물어보면 나도 몰라―!
미스 D: 그보다 조수! 빨리 도망쳐! 저 놈들한테 닿으면 끝장이야!

공교롭게도 의태물 무리는 컴파일러의 사령부와 가까운 곳에 나타났다.

지휘관: (진지를 이용한 방어가 역효과를 냈군…….)

리나운(META): 이대로 있으면 포위당합니다. 서둘러 장미탑으로 철수하죠.

지휘관: 리나운, 리펄스. 저 의태물들이 왜 '제2종'으로 불리는지 알아?

리펄스(META):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건데……. 나도 몰라!

리나운(META): 저도 모릅니다…. 저희는 크기에 따라 의태물과 의태수를 구별하고, 전투력으로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리나운(META): '제X종'이라는 분류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지휘관: 미스 D의 기억 상실과 관련이 있는 걸까….

미스 D: 조수! 빨―리―도―망―쳐―!!

지휘관: 그래그래. 컴파일러, 철수 계획을 실행해.

컴파일러: 명령 확인. 걱정 마. 하늘에 아직 부착 구역은 출현하지 않았으니까 공중 엄호도 충분히 받을 수 있어.
컴파일러: 기지 자폭 카운트다운 설정. 출발하자.

----

쾅―――!

철수 경로에는 의태물이 없어서 다행히 우회할 필요는 없었다.
후방을 맡은 II형 양산형 함대는 전혀 의태물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장애물 역할은 해주었다.
더불어 META 리나운과 리펄스가 전방의 짐승들을 깔끔하게 처리해준 덕분에 철수는 매끄럽게 이루어졌다.

지휘관: (엑스의 의태물은 전에 마르티리움에서 본 것과 같아. 파괴되면 부착 구역이 형성되고, 거기서 다시 태어나…….)
지휘관: (그런데 이번에 부착 구역에서 태어난 건 의태물뿐만이 아니라 외부의 짐승도 포함되어 있어……. 대체 왜?)
지휘관: (외부의 짐승은 의태물보다 훨씬 약해. 그 잔해도 100% 의태물이 되는 건 아냐…….)
지휘관: (……부착 구역에서 외부의 짐승이 태어날수록 적의 전력은 계속 떨어지는 거 아닌가…?)

헬레나(META): ……지휘관……들려…….

지휘관: ……헬레나? 좌표 특정은 끝났어?

헬레나(META): ……매지션……함정을 꾸몄어…….

지휘관: ……통신이 방해받고 있어서 잘 안 들려…!

헬레나(META): ……들어…….
헬레나(META): ……이번엔 도우러 갈 수 없어…….
헬레나(META): ……계속 보고 있어…….
헬레나(META): ……하고 싶은 대로 해…….
헬레나(META): ……구하고 싶으면 구하고……구하기 싫으면 도망쳐…….
헬레나(META): ……무슨 일이 일어나도……내가 있으니까…….
헬레나(META): …….

지휘관: ……헬레나? 헬레나!
지휘관: 젠장, 통신이 끊겼어……!

----

쾅――――――!

그렌빌(META): 지휘관, 수고했어! 여기는 우리한테 맡겨!

글로리어스(META): 배리어에 통로를 열었습니다. 그대로 장미탑 안으로 들어오세요.

제1전역―장미탑 방어선에 접근하자 나는 하늘을 달리는 퀸즈 라이트호를 봤다.
전략적 이동은 무사히 완료되었다. 이제부터는 요격이 아니라 사수 단계다.

지휘관: (제1전역 방어선은 아직 여지가 있어. 여차하면 장미탑 바로 아래까지 후퇴하면 돼.)
지휘관: (하지만 그 다음은……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어.)
지휘관: (채리엇, 제시간에 와줘…!)



 ~27. 위기일발

 

실험장SQ-4577486
로열. 장미탑
어느 곳

쾅――――!

의태물의 전투력은 외부의 짐승을 훨씬 웃돌았다.
불과 세 시간만에 제1전역 방어선 곳곳이 함락되었다. 글로리어스 META는 모든 외곽 진지를 포기하고 전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퀸즈 라이트호, 마음대로 세이렌 함대를 꺼낼 수 있는 컴파일러 외에 이제 최후의 보루는 장미탑의 배리어뿐이었다.
배리어 밖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고, 탑 내부에서도 끊임없는 폭발음이 들렸다.
그러던 중 엘리자베스가 나를 불렀다.

퀸 엘리자베스: 하인. 상황이 좋지 않아.
퀸 엘리자베스: 방어선은 곧 무너질 거야. 하지만 채리엇이 올 기미는 전혀 안 보여.
퀸 엘리자베스: 슬슬 진지하게 철수 계획을 고려해야 돼.
퀸 엘리자베스: 퀸즈 라이트호와 스텔스 모드인 카멜롯을 이용하면 전원을 안전하게 탈출시킬 수 있어.
퀸 엘리자베스: 라이언 일행이 따라온다면 그것도 좋고, 글로리어스 META도 데려갈 수 있어.
퀸 엘리자베스: 아무튼 빨리 결정해야 돼. 장미탑의 배리어가 깨지면 무사히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지휘관: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6시간… 아니, 어쩌면 조금 더 버틸 수도 있을….

퀸 엘리자베스: META 함대는 방어전에 능숙하지 않아. 컴파일러도 이런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퀸 엘리자베스: 1분 더 싸울 때마다 그만큼 위험도 더 커져.
퀸 엘리자베스: 우리는 이미 할 만큼 했어. 안티 엑스 따위를 믿어서 뭐해?
퀸 엘리자베스: 놈들은 자신의 계획에만 관심이 있어. 최종적으로 엑스를 이길 수만 있다면 어떠한 희생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퀸 엘리자베스: 자기 자신도, 우리도, 너도.
퀸 엘리자베스: '구원'이라는 명목으로 살육을 행하는 살인 기계와도 같아.
퀸 엘리자베스: 네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안티 엑스와 연결되어 있는 건 알아. 어쩌면 그들 중 일부와는 사이좋게 지내고 있겠지.
퀸 엘리자베스: 하지만 잘 생각해 봐. 그것도 포함해서 전부 놈들의 계획의 일부라면 어떻게 할 거야?
퀸 엘리자베스: 그 계획이 폐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라도 있어?
퀸 엘리자베스: 우리 세계와 라이언의 세계는 이미 안전해졌어. …네가 특히 신경 썼던 두 개의 세계로 이어지는 봉오리도 엘리자베스 META가 파괴했고.
퀸 엘리자베스: …물론 다른 세계를 저버린다는 건 잔혹한 일이야.
퀸 엘리자베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어.
퀸 엘리자베스: 우리가 살아남아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
퀸 엘리자베스: 만약 여기서 무의미하게 죽는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람들은 어떻게 해?
퀸 엘리자베스: 세이렌에 의해서, 엑스에 의해서, 자기 자신에 의해서, 혹은 어떤 모르는 존재에 의해서… 세계의 파멸은 매 순간마다 일어나.
퀸 엘리자베스: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이든, 아니면 볼 수 없는 곳이든 말야.
퀸 엘리자베스: 우리는 신도 아니고, 구세주도 아니잖아.

지휘관: 하지만 비록 결과를 바꾸지 못하더라도 노력은 구원이 될 수 있어.
지휘관: 파멸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해서 눈앞의 비극을 눈감아서는 안 돼.
지휘관: 세이렌의 방식은 틀렸어. 그래서 다른 길을 걸으려고 하는 거야. 우리는 냉혹해지면 안 돼.

퀸 엘리자베스: 맞아. 그래서 나도 계속 동맹을 찾았고, 너도 더 많은 실험장을 도우려고 노력한 거잖아.
퀸 엘리자베스: 이런 일은 차근차근 하는 거야. 갑자기 한번에 좋아질 수는 없어.
퀸 엘리자베스: 오늘 멸망한 세계의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자신의 무력함을 뉘우치며,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건 좋아.
퀸 엘리자베스: 하지만 지금…… 지금 우리에게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는 거야.
퀸 엘리자베스: "상황이 악화되면 바로 철수한다", 전에 네가 했던 말이잖아.

지휘관: ……네 말이 맞아.
지휘관: 하지만… 아직 시간은 있어. 방어선도 아직 버티고 있고. 지금은 철수를 결정할 시간이 아니야.

지휘관: 하아……. 그럴 줄 알았어.

지휘관: 엘리자베스 META가 설득하라고 보낸 거야?

퀸 엘리자베스. 나 반, 걔 반이야. ……6시간. 그 이상은 안 돼.

지휘관: 그래. 그때가 되면 결단을 내릴게.

퀸 엘리자베스: 이야기는 이상이야. 전장으로 돌아갈게.
퀸 엘리자베스: 아, 그리고 하나만 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먼저 탈출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
퀸 엘리자베스: "여왕의 명령에 따르라"라는 말도 안 통하는 아이들이니까 어떻게 달랠지 잘 생각해 봐.

엘리자베스가 떠나자마자 라이언이 훌쩍 찾아왔다.

지휘관: (……역시나.)

라이언: 지휘관, 찾고 있었다!
라이언: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비터인지 뭔지는 과연 오는 건가?

지휘관: 채리엇은 분명 올 거야. 다만 언제일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라이언: 그 말은 전에도 들었어. 벌써 꼬박 이틀째 싸우고 있다. 이제는 한계야.

지휘관: 너희가 맞서고 있는 의태물, 즉 엑스는 머지않은 미래에 상대하게 될 적이야.
지휘관: 힘든 건 알지만, 이 싸움은 미래를 위한 귀중한 경험이 될 거야.

라이언: 그래. 하지만 그 경험도 살아 돌아가야 의미가 있는 법이지. 만약 여기서 모두 쓰러진다면 누가 이 싸움의 교훈을 전할 수 있을까?

지휘관: (……으음. 왠지 당장 떠나겠다는 기색은 아닌 것 같은데…?)

라이언: 나는 아직 이뤄야 할 위업이 많이 남아 있다. 나와 동료들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여기서 무의미한 모험은 할 수 없어!

지휘관: (………….)

→ (과연…….)
→ (더 버텨야 하는 이유를 알려 달라는 건가.)

지휘관: 사실 나는 이미 엘리자베스와 6시간 후에 철수하기로 약속했어.
지휘관: 그리고 채리엇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세이렌과 아비터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할 방법은 있어.
지휘관: 컴파일러는 몰라도 고래에 타고 있는 미스 D 봤지? 그 고래는 아비터와 적지 않은 관련이 있어.

라이언: …6시간이군.
라이언: 좋다. 우선은 메세케테트로 돌아가지. 나중에 보자고!

지휘관: ………….
지휘관: (엘리자베스와 라이언 모두 철수하기로 마음을 먹었어.)
지휘관: (아무리 아비터라고 해도 여러 세계에 걸친 사태에는 그렇게 빨리 움직을 수 없나.)
지휘관: (6시간 뒤에 채리엇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 세계를 떠날 수밖에 없어.)
지휘관: (루메이의 세계와 사르데냐 동맹의 세계로 이어지는 봉오리는 파괴했어…….)
지휘관: (글로리어스도 포함해 전원 무사히 탈출한다면 작전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지휘관: (하지만 글로리어스는… 혼자서 줄곧 이 세계를 지켰는데…….)
지휘관: (과연 떠나려고 할까……?)
지휘관: (일단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어.)



 ~28. 글로리어스의 선택

 

장미탑이 요격 모드로 전환된 후, 글로리어스 META는 지휘통제실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함재기가 통행할 수 있을 정도의 외부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어서 그녀의 함재기 운용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글로리어스(META): 지휘관님. 철수에 대해 말씀하러 오신 거죠?

지휘관: 알고 있었어?

글로리어스(META): 엘리자베스 님과 라이언 님이 지휘관님을 찾았고, 그 후 당신께서 저를 찾아오셨으니 즉 그런 것이겠죠.
글로리어스(META): 세이렌은 각 실험장에 번호를 매긴다고 들었습니다.
글로리어스(META): 당신의 세계――실험장β는 어떤 곳인가요?

지휘관: 음… 뭐라 말하기 애매한 질문이네.
지휘관: 정해진 운명을 극복하고, 활기와 희망,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세계야.

글로리어스(META): 정해진 운명을 극복하고… 활기와 희망,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세계…….
글로리어스(META): 아름답네요……. 그곳의 로열에는 엘리자베스 님과 같은 분도 계시니 당연히 찬란하게 빛나고 있겠지요.
글로리어스(META): 제가 속한 이 세계…… 이곳의 번호를 알고 계십니까?

지휘관: 실험장SQ-4577486이야.

글로리어스(META): 실험장SQ-4577486…….
글로리어스(META): 여기도 한때는 활기와 희망,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세계였습니다…….
글로리어스(META): 지휘관님. 당신이 고향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저도 제 고향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 …………
→ 글로리어스……

글로리어스(META): 당신은 많은 META를 보셨겠죠.
글로리어스(META): 자신의 처지에 체념한 사람도 있을 테고, 새로이 기댈 곳을 찾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글로리어스(META): 저는 그녀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축복합니다.
글로리어스(META): 하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글로리어스(META): 지휘관님도 사실은 이 세계를 포기하고 싶지 않으시죠?
글로리어스(META): 그게 아니라면 다른 분들을 설득하면서까지 싸우려고 하지는 않으셨겠죠.
글로리어스(META): 다만 상황이 이러하니 전력을 다해도 소용없다고 판단해서 철수를 생각하고 계신 것이고요.

지휘관: ……유감이지만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한 판단이었어. 너희의 목숨을 가지고 이런 모험은 할 수 없어.

글로리어스(META):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 장미탑을 백 년간 지탱한 것은 이성이 아닙니다…….
글로리어스(META): 당신은 틀렸습니다, 지휘관님. 지금 당신께서 보고 계신 것은 장미탑의 진짜 한계가 아닙니다.
글로리어스(META): 우리의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어느새 귀족 소녀는 홀 중앙에 서서 쥐고 있던 검을 번쩍 들었다.
저 검은…… 엘리자베스의 보물 창고에서 본 적이 있었다.

지휘관: 그건…… '자비의 검'?

글로리어스(META): 저는 로열의 마지막 '영광'. 지금 그 마지막 영광을 꽃피울 것입니다.
글로리어스(META): 탑 밑에 잠든 영령이여, 탑에 갖힌 죄수여――
글로리어스(META): 깨어나라――
글로리어스(META): 영광스러운 마지막 싸움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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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닫혀 있던 작전 홀이 바깥으로 무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무수한 방 안에 무수한 조각들이 반짝였다.
전쟁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엘리자베스의 야망을 보았다.

 

퀸 엘리자베스: 탑을 쌓을 거야! 로열을 지킬 수 있는 높은 탑. 이름하여 '장미탑'이야!

지휘관: (……장미탑이 탄생한 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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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장미탑 아래는 영웅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킹 조지 5세: 우리는 계속 싸우리라. 완전한 승리를 거두거나, 혹은 마지막 한 방울의 피가 흐를 때까지.
킹 조지 5세: ……편히 쉬게. 후드 공.

지휘관: (……후드의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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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계속 거행되었다. 모든 조문객이 무덤에 묻힐 때까지.
장미탑 아래, 마지막 장례식은 숨막히는 고독으로 가득했다.

글로리어스: 이제, 저만 남았어요…….
글로리어스: 하지만… 제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쓰러질 수 없어요…….
글로리어스: 결코…… 쓰러질 수 없습니다…….
글로리어스: 저는 글로리어스……. 로열의 영광을 짊어진 자…….
글로리어스: 제가 있는 한, 로열의 영광은 스러지지 않습니다…….
글로리어스: 아아…… 알겠어요…….

 

글로리어스(META): 장미탑이여…. 제가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글로리어스(META): 그리고… 함께 로열을 지킵시다――

지휘관: (……글로리어스가 장미탑이고, 장미탑이 바로 글로리어스야…….)

 

무한히 펼쳐진 공간에 서서히 빛과 그림자가 모여들었다.
빛과 그림자의 얼굴에는 익숙한 것도, 낯선 것도, 생기가 가득한 것도, 생기가 없는 것도 있었다.
반짝이며 떠다니는 그것들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는 촛불과도 같았다.
빛과 그림자가 나타날 때마다 장미탑은 더욱 찬란해졌다.
배리어는 더욱 견고해져, 주변으로 파멸적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빛을 받은 의태물은 부착 구역과 함께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고, 장미탑 주변은 일시적으로 고요한 무인 지대가 되었다.
더 먼 곳에서는 바다가 넘실거렸고, 거센 상승 조류가 로열 섬 주변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침몰했을 로열과 그 동맹국 양산함의 잔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추진력이 남아 있는 자는 적을 향해 필사적으로 돌진했고, 포탄이 남아 있는 자는 적에게 포격을 날렸다.
동력만이 남아 있는 자는 적과 함께 장렬하게 자폭했다.
한낱 '잔해'조차도 파도를 타고 육지로 올라가 몸싸움이라도 하듯 적에게 부딪쳤다.
외부의 짐승의 사체도, 의태물의 부착 구역도, 상승 조류의 충격으로 붕괴되고 희석되어 갔다.
원리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이 로열 네이비의 신념이 초래한 기적임은 알 수 있었다.
심상이 결집한 기적.
장미탑이 공격할 때마다 빛과 그림자는 조금씩 사라졌다.
의태물은 결국 끝없는 상승 조류에서 재생하여, 잔해들을 양식으로 삼아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엑스의 군단은 열세에 빠졌다.



 ~29. 피할 수 없는 결단
빛과 그림자가 나타나고, 나는 일시적으로 상공에서 전장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의식은 지휘통제실 문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 안에서 어떤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글로리어스 META를 방해하지 않고, 엘리자베스와 라이언을 찾아가 장미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한 뒤 컴파일러를 불러 전력을 재배치했다.
현재 엘리자베스 META는 퀸즈 라이트호를 회수했고, 컴파일러의 보디도 장미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여전히 곳곳에서 신출귀몰하게 나타나는 세이렌 함대를 제외하고, 전투는 빛나는 장미탑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는 장미탑의 공격이 함대와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의태물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은 장미탑뿐이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추스르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트라팔가: 클레오파트라…… 트리니다드…… 갤런트…….
트라팔가: 다행이군요. 총독님, 전원 무사히 철수 완료했습니다.

라이언: 후…… 이제야 안심할 수 있겠군.
라이언: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싸움이었어……. 그렇지 않나, 트라팔가?
라이언: 너는 이 원정이 시작되기 전에 이런 상황을 예상했었나?

트라팔가: 아뇨……. 싸움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검이나 포탄의 범주라고 생각했습니다.
트라팔가: 설마 이런 형용할 수 없는 이형의 존재를 상대하게 될 줄이야…….

라이언: 그래. 장미탑과 이쪽의 로열이 보여준 결속력도 놀라웠다.
라이언: 반면 우리는 어떤가? 해가 지지 않는 제국……. 확실히 우리의 영역에는 언제나 태양이 빛나고 있다. 힘으로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는 없다…….
라이언: 허나 신념은?
라이언: 제각기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우리 제국은, 이런 신념을 가질 수 있나?
라이언: 결속을 잃은 우리는… 앞으로 이런 위협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트라팔가: 네……. 그녀들에 비하면… 저희는 너무나도 형편없습니다.

라이언: 엘리자베스가 제공한 자료는 봤겠지?
라이언: 우리 제국이 이런 구도가 된 것은, 세이렌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결과다…….
라이언: 세이렌을 이긴 것도, 그로 인한 기술 혁신도, 모두 세이렌이 계획한 것에 불과해…….
라이언: 어쨌든…… 우리는 그때 남극 대륙의 빙하 밑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라이언: 놈들은 지금도 분명 심해 어딘가에서 우리를 주시하며 다음 실험을 꾸미고 있겠지…….
라이언: 그러나 제국은 아무것도 모른 채 거짓된 평화 속에서 천천히 썩어가고 있어.

트라팔가: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라이언: 그래. 움직여야 해. ……세이렌이라는 독을 뿌리 뽑고 제국을 진정으로 단결시켜야 해…….
라이언: 그리고 진정한 적을 맞을 준비를 해야지.
라이언: 함께 노력하자. 트라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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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탑의 공격은 점차 잦아들었고, 상승 조류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이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퀸 엘리자베스(META): 마지막 기적도…… 슬슬 막을 내릴 때야.
퀸 엘리자베스(META): 6시간이라고 약속했었는데, 지금 12시간이 지났는데도 결국 오지 않았어.
퀸 엘리자베스(META): 지휘관, 철수하자.

지휘관: ……그럴 수밖에 없겠네.
지휘관: 글로리어스는…… 같이 탈출하는 건가?

퀸 엘리자베스(META): 이전이라면 가능했지만…….
퀸 엘리자베스(META): 이제는 불가능해. 그 아이는 장미탑이라는 개념과 완전히 뒤섞여서 분리할 수 없어.

지휘관: 개념이 섞였다……? 그럼 개념을 분리하면…….
지휘관: 미스 D의 고래를 사용하면 어때?

퀸 엘리자베스(META): 너 쓸 줄 알아?

지휘관: …시도해 봐야지.

퀸 엘리자베스(META): 설령 잘 된다고 해도 글로리어스가 얌전히 따라올 것 같아?

지휘관: 그것도…… 시도해 봐야지.
지휘관: 다른 세계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철수하기로 결심한 건…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했기 때문이야.
지휘관: 하지만 글로리어스는 달라. 내 눈앞에서 죽음을 택하는 걸 그냥 놔둘 수는 없어. 그녀를 설득하는 일은……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퀸 엘리자베스(META): 하아……. 아무리 너라도 그건 힘들 거야.
퀸 엘리자베스(META): 하지만 '퀸 엘리자베스'라면, 어쩌면…….
퀸 엘리자베스(META): 어쩔 수 없네. 이 일은 내가 맡을게. 넌 그동안 고래의 힘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잘 연구해 봐.

지휘관: 그래. 부탁해.

퀸 엘리자베스(META): 기꺼이.
퀸 엘리자베스(META): 만약 구할 수 있다면…… 나도 그 아이가 시들어 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퀸 엘리자베스(META): 이제 가. 나는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30. 서로의 기적
엘리자베스 META와 헤어진 뒤, 나는 고래를 타고 어슬렁거리던 미스 D를 찾았다.
고래의 힘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라면, 그동안 고래와 미스 D는 모두 특수한 공간에 들어간 뒤 이상 현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마르티리움에서도 그랬고, 보름달의 봉오리에 가까워졌을 때도 그랬다.
글로리어스 META가 있는 이곳도 현재 특수한 공간이다. 미스 D를 데리고 가면 분명 무슨 일이 생기겠지.

엘리자베스와 라이언에게 철수 준비를 하라고 연락한 뒤, 컴파일러와도 연락했다.
장미탑의 공세가 약해지면서 의태물 군세가 다시 접근했다. 컴파일러는 수리를 마친 양산형 군단을 다시 전투에 투입시킨 상황이었다.
자폭하지 말고 반드시 자신의 보디를 유지한 채 엘리자베스와 함께 철수하라고 단단히 일러둔 뒤, 나는 미스 D를 데리고 지휘통제실 앞으로 향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시 무한히 펼쳐진 공간으로 돌아왔다.
빛과 그림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대부분의 구역도 어두운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귀족 소녀는 검을 품에 안고 화려한 옥좌 옆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글로리어스(META): ……콜록콜록…, 지휘관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연락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글로리어스(META): 장미탑의 공세는 곧 그칠 겁니다……. 이제 철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글로리어스 META는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일어섰다.

글로리어스(META): 여러분께서는 동맹의 의무를 충분히 다하셨습니다.
글로리어스(META):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분과 함께 싸울 수 있어 영광입니다.

지휘관: 너는 어떻게 할 셈이야?

글로리어스(META): ……그 이상은 말씀하지 마세요.
글로리어스(META): 말씀드렸지만 저는 장미탑을 떠날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글로리어스(META): 만약… 로열의 영광이 오늘 사라질 운명이라면, 저는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글로리어스(META): 저는 이미…… 최선을 다했습니다.
글로리어스(META): 이제부터는…… 후후, 여러분께서 떠나고 나면 성대한 불꽃놀이라도 할까요.
글로리어스(META): …장미탑이 사명을 완수한 것을 기념하고, 여러분의 철수 작전을 엄호할 수도 있으니까요.

지휘관: ……아직이야. 글로리어스, 조금만 더 기다려줘.

글로리어스(META):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요?

지휘관: 미스 D, 이 공간에 들어온 뒤로 뭔가 특별한 느낌은 없었어?

미스 D: 음…… 없어!
미스 D: 근데……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지휘관: ……고래 쪽부터 해 볼까….

미스 D: 고래는 건강해! 조수! 그치만 너무 세게 치지는 마!

지휘관: (큭……. 전혀 반응이 없잖아.)

글로리어스(META): …무얼… 하시는 겁니까?

지휘관: 널 구할 방법을 찾고 있어.

글로리어스(META): ……지휘관님.
글로리어스(META): 저는 이 땅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지휘관: 안 돼. 난 동의할 수 없어.
지휘관: (……오스타가 설계한 거니까 뭔가 이상한 기동 단어를 외쳐야 한다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미스 D: 조수! 그만 때려! 그만하라니까―! ……아으!

글로리어스(META): ……왜 이렇게까지…?

지휘관: 이 자리에서 하나하나 설명할 수도 있겠지. 그럼 너는 조목조목 반박할 테고.
지휘관: 너는 너무나 많은 것을 경험했고, 또 짊어졌어.
지휘관: 나는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말로 설득하진 않을 거야.
지휘관: 다만 나는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휘관: 눈앞에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지휘관: 억지라고 생각해도 좋아.
지휘관: 하지만 구할 거야. 그뿐이다.

어느새 거대한 고래가 밑에서 나타났다가 훌쩍 날아올랐다.

→ ……어?
→ ……기동했어?
→ ……뭐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쩌면 한순간일지도 모른다.
의식이 돌아오자 여전히 제자리였다. 하지만 공간 전체의 분위기는 왠지 달라진 것 같았다.

글로리어스(META): ……뭐, 뭘 하신 겁니까?!
글로리어스(META): ……장미탑의 존재가… 왜 느껴지지 않는 건가요?!

 

퀸 엘리자베스: 그럼 잘 된 거 아냐?

 

무한히 펼쳐진 공간이 순식간에 붕괴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어느 화려한 홀에 있었다.
안쪽 옥좌에는 여왕이 단정히 앉아,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글로리어스(META): ……폐하?

퀸 엘리자베스: 네가 싸우는 모습은 다 봤어.
퀸 엘리자베스: 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봤어.

글로리어스(META): 폐, 폐하께서 어떻게……?

퀸 엘리자베스: 네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에, 보답으로 너를 위해 기적을 일으킨 것뿐이야. 공평하지?
퀸 엘리자베스: 여기 있는 모두도, 그리고 밖에 있는 모두도 너희의 싸움을 다 지켜봤어.
퀸 엘리자베스: 정말 강했어. 탁월한 기술력에 전투 능력…….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퀸 엘리자베스: 수고했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대표해서, 달려온 맹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게.
퀸 엘리자베스: 나의 감사를 모두에게 전해줘. 지휘관.

그녀는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그러는 동시에 여왕의 모습이 살짝 흐려졌다.

퀸 엘리자베스: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글로리어스(META): 폐하…….

귀족 소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가다듬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글로리어스(META): 보고드립니다. 일전에 보낸 구조 요청에 마침내 회신을 받았습니다. 동맹 여러분께서 함대를 이끌고 지원을 와 주셨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응. 그래.
퀸 엘리자베스: 글로리어스.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구나. 수고 많았어.
퀸 엘리자베스: 이제부터 새 임무를 하달할게.
퀸 엘리자베스: 살아. 살아서 우리 모두가 도달해야 했던 더 나은 미래를 지켜봐.

글로리어스(META): 알겠습니다……… 폐하.

퀸 엘리자베스: 맹우여. 우리 글로리어스를 잘 부탁해.

지휘관: 지휘관의 이름을 걸고 약속할게. 엘리자베스 폐하.

퀸 엘리자베스: 그럼 이제 장미탑은 내가 맡을게. 마지막까지 지키는 건 왕의 의무니까.
퀸 엘리자베스: 너희도 볼일이 끝났으면 얼른 떠나.
퀸 엘리자베스: 그리고 또 다른 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도와주겠어? 함께 이 로열을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자!

멀리서 엘리자베스 META의 의지가 소리 없이 응답하는 것을 느꼈다.
여왕의 모습은 다시 선명해졌고, 사라져 가던 빛과 그림자들도 다소 밝아졌다.
그 후의 일은 굳이 지켜보지 않았다.
여왕에게는 여왕의 의무가 있듯이, 내게도 나만의 의무가 있다.
모두를 무사히 데리고 돌아간다. 그것이 내 의무다.



 ~31. 대단원

 

미스 D, 글로리어스 META와 함께 장미탑을 나섰을 때, 다른 동료들은 이미 떠날 채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엘리자베스 META는 열차 조종실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고, 컴파일러는 열차 후방에 전력을 배치하고 있었다. 라이언은 메세케테트를 통째로 맨 끝 칸에 집어넣었다.
장미탑의 배리어가 열리는 순간, 퀸즈 라이트호는 하늘로 솟아올라 똑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 세계에 작별을 고할 때가 찾아왔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차창 밖으로 전장의 전모가 펼쳐졌다.
곳곳에서 타오르는 전화, 만신창이가 된 대지, 극에 달한 피처럼 붉게 물든 장미탑.
장미탑은 그 영혼에서 마지막 힘을 짜내어 모든 것을 새빨갛게 불태웠다.

글로리어스(META): 그야말로 만개한 장미.
글로리어스(META): 처음부터 이 날을 상정하고 설계하셨던 거군요…….
글로리어스(META): ……정말 아름답습니다. 폐하.

지휘관: ……….

장미탑이 무너지고, 세계는 종말을 맞았다.
다음은 보름달의 봉오리와 연결된 수많은 세계…….

지휘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어. ……그럼에도 실패로 끝나는구나…….)

――――――!

그때 하늘과 땅 사이에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퀸즈 라이트호의 엔진도 잠시 멈췄다.
무언가 낯익은 감각에 지금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별의 짐승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직후 발생한 일은 그런 의심마저 날려버릴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통신: ――――――

 

아비터 채리엇VII: 안티 엑스 중재 기관, 아비터 채리엇VII. 지금부터 본 실험장의 사후 처리를 인계합니다.
아비터 채리엇VII: 데스, 어디에요? 도우러 왔어요!

순식간에 하늘에는 무수한 부유 플랫폼이 나타났다.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그것들은 작은 것은 수 미터, 큰 것은 직경이 수 킬로미터에 달했다.
각종 전투 기구가 플랫폼에서 우수수 쏟아지며 지표면을 강철의 급류로 물들였다.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각 플랫폼의 정밀 사격으로 의태물과 의태수는 순식간에 분쇄되어 부착 구역의 일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부착 구역은 지표면에 솟구치는 강철의 급류로 인해 더욱 세밀하고 정형적으로 분리되었다.
이내 사르데냐 동맹 전투 때 봤던 메카아비트레이터 '채리엇'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몸체에는 부착 구역에 대응할 수 있는 특수한 병장이 탑재되어 있었다.
잘게 분리된 부착 구역은 메카아비트레이터의 공격으로 인해 하나둘씩 무해한 티끌로 변했다.

 

보름달의 봉오리 역시 채리엇 군단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봉오리들이 차례로 두 동강 나면서 폭발하는 굉음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지휘관: (……이게 아비터가 안티 엑스의 주력을 이끌고 싸우는 모습인가.)
지휘관: (압도적이네. 적이었다면 의지가 꺾일 정도로… 압도적이야.)

절망적이었던 전황은 채리엇이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지금까지의 악전고투는 무엇이었나 할 정도로 이형의 적은 안티 엑스의 군세에 짓밟혀 산산조각이 났다.

지휘관: (……아니, 신경 쓰지 말자.)
지휘관: (저쪽은 저쪽대로, 이쪽은 이쪽대로 싸우는 방법이 있어.)
지휘관: (글로리어스가 백 년에 걸쳐 분투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원하러 올 수 있었어.)
지휘관: (마찬가지로 지난 며칠 간 필사적으로 시간을 끈 덕분에 안티 엑스 군단이 지원하러 올 수 있었고.)
지휘관: (전부 이어져 있어. 하나라도 빠졌다면 성립되지 않았을 거야.)
지휘관: (다행히… 채리엇은 제시간에 도착했어.)
지휘관: (이 세계는 멸망하겠지만, 가는 길에 모든 침략자를 길동무로 삼게 되겠지.)
지휘관: (보름달의 봉오리로 연결된 세계들도, 이것으로 모두 구원받았어….)

안티 엑스에 대한 또 다른 추측도 들어맞았다.
채리엇은 모든 전력을 엑스에게만 집중했다. 장미탑과 퀸즈 라이트호는 그녀의 공격 대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처음의 충격 이후, 열차 안의 분위기도 점점 완화되었다.

라이언: 믿을 수 없군……. 이것이 안티 엑스 군단…… 이것이 아비터인가.
라이언: 내려가서 대화를 시도하면 어떨까?

클레오파트라: 진정하세요, 총독님! 컴파일러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시잖아요!

트라팔가: 상대가 손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진해서 찾아가는 것은 무모합니다.

트리니다드: 동감이야.

갤런트: 나도! 지금 다가가면 설령 상대에게 적의가 없어도 유탄에 날아가고 말 거야!
갤런트: 이게 "동트기 전이 제일 어둡다"라는 거라구!

라이언: ……그래그래. 그냥 말해 본 것뿐이야.
라이언: 어흠. 그나저나 글로리어스. 내 총독령에는 마침 항공모함 한 척이 부족하거든.
라이언: 부디 내 함대로 들어와 나일 총독령으로 함께 돌아갔으면 하는데, 어떤가?

글로리어스(META):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휘관님과 함께 실험장β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라이언: 진심으로 권유하는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 줄 수는 없나?

글로리어스(META): ……마음만으로도 기쁩니다.

라이언: 흐음…….

퀸 엘리자베스: 그 정도만 해. 아직 위기가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니까.
퀸 엘리자베스: 벌써 도착했어. 배 꺼내고 열차에서 내릴 준비해. 휴식은 돌아가서 취해도 늦지 않으니까.

라이언: 벌써 도착했나? 흔쾌히 태워줘서 정말 감사한다.
라이언: 그럼 두 명의 엘리자베스 각하, 그리고 지휘관. 언젠가 내 총독령에서 여러분을 대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지. 그럼 이만.

트라팔가: 맹우 여러분.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엑스에 관해서 정보 통제하는 거 잊지 마!

라이언: 물론이지! 작별이다!

클레오파트라: 벨파스트 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벨파스트: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클레오파트라 님.

라이언 일행을 배웅한 뒤, 열차는 스텔스 모드가 된 카멜롯으로 곧장 향했다.
며칠 동안 여러 번의 파란과 위기를 겪으며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그래도 글로리어스 META를 구할 수 있었고, 수많은 세계를 멸망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또한 동료 전원과 함께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이제야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작전은 무사 성공했노라고.

높은 탑의 장미 END



 ~32. 대단원의 대가

 

퀸즈 라이트호
카멜롯
귀환 도중

퀸 엘리자베스(META): 큭……콜록콜록….
퀸 엘리자베스(META): 콜록… 콜록…….

피가 화려하게 장식된 좌석을 붉게 물들였다. 이어서 융단에도 천천히 스며들었다.

퀸 엘리자베스: 너 괜찮아!? 왜 그렇게 다친 거야……!
퀸 엘리자베스: 정신 차려. 네가 쓰러지면…… 누굴 불러야 할지 모르겠잖아!

퀸 엘리자베스(META): 으으…… 괜찮아. 죽진 않으니까…….
퀸 엘리자베스(META): 이번에는… 실수했어……. 쉬어야 해…….
퀸 엘리자베스(META): 큭… 콜록콜록…….
퀸 엘리자베스(META): 잠시 조용히…… 휴식을…….
퀸 엘리자베스(META): 엘리자베스, 들어줘……. 내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반드시 비밀로 해…….
퀸 엘리자베스(META): 특히 헬레나 META가 절대 알면 안 돼…….
퀸 엘리자베스(META): 당연히 지휘관도……. 중요한 일이야…… 알겠지?

퀸 엘리자베스: 알겠어. 걱정 마.

퀸 엘리자베스(META): 좋아……. 다른 애들한테는 "나는 이제 괜찮다"고 전해줘…….
퀸 엘리자베스(META): 조금, 쉬어야겠어…….

----

 

??? ???

호쇼(META): '검시' 종료.
호쇼(META): 실험장β……. 정말로 종잡을 수 없는 곳이군요.
호쇼(META): 주목하고 있는 세력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호쇼(META): 그래도…… 서로 엉켜 있는 덕분에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호쇼(META): 이제부터는…… 우선 안전하게 몸을 숨길 곳을 찾아야겠어요.
호쇼(META): 그 다음…… 이곳의 야마토와 접촉해 볼까요.



 ~33. 월경 실험

 

실험장SQ-4577486
잠시 후

눈부신 빛 속에서 장미탑과 주변 몇 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것이 완전히 소멸되었다.
물론 곁에서 관찰하던 채리엇에게 이 정도 충격은 산들바람 정도에 불과했다.

아비터 채리엇VII: ……너무나 멋진 로컬 폐회로였는데. 아깝네요.
아비터 채리엇VII: 하아…… 여기에도 없고…….
아비터 채리엇VII: 데스~ 구석구석까지 다 뒤졌는데 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

아비터 엠프레스III: 소용없어. 데스는 이미 떠났으니까.

아비터 채리엇VII: 네? 떠났다고요?

아비터 엠프레스III: 여기 문제는 네가 깔끔하게 해결했잖아? 그러면 더 이상 여기 남을 이유 따위는 없지.

아비터 채리엇VII: …그렇다고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는 건 너무하잖아요?

아비터 엠프레스III: 데스에게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지 않을까?
아비터 엠프레스III: 불평은 그쯤 해. 너한테도 떠날 기회를 줄게.

아비터 채리엇VII: 무슨 뜻이죠?

아비터 엠프레스III: 나중에 러버스가 뒤처리를 하러 올 거야. 너는 정리가 끝나면 이 좌표로 가. 가서 문의 중요 임무를 지원해.

아비터 채리엇VII: 에엑……. 그 일이 왜 저한테 돌아와요? 허밋 3인방은요?

아비터 엠프레스III: 그 아이들도 나중에 배치될 거야.

아비터 채리엇VII: 허밋…… 스트렝스…… 템퍼런스…… 문…… 그리고 나…….
아비터 채리엇VII: 또 누가 있나요?

아비터 엠프레스III: 있는데, 가 보면 알아.

아비터 채리엇VII: 이건…… 제로의 명령인가요?

아비터 엠프레스III: 글쎄. '월경 실험'이 이제 제3단계에 접어들었어.

아비터 채리엇VII: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아비터 엠프레스III: 아주 좋아.

아비터 채리엇VII: ……엠프레스. 이번에는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나요?

아비터 엠프레스III: 3단계에 접어든 것 자체가 이미 돌파한 거나 마찬가지야.
아비터 엠프레스III: 그 뒤의 일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야.

아비터 채리엇VII: ……네.



 ~34. 준비 완료

 

해가 지지 않는 제국. 나일 총독부
알렉산드리아

'기적 재현-알렉산드리아의 등대'의 불빛 속에서 전화를 견뎌낸 메세케테트가 무사히 수면에 착수했다.

라이언: 아아, 나일 강 삼각주여! 우리가 돌아왔다!
라이언: 후우…. 공기마저 이리도 신선하구나.

트라팔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항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트라팔가: 뭐랄까…… 나쁘지 않네요.

갤런트: 휙휙~! 사지에서 살아남았어. 경사로세 경사로다~

트리니다드: 피곤해애. 컨디션을 회복하려면 제대로 쉬어야겠어…….

클레오파트라: 아아…… 큰일이에요, 총독님!
클레오파트라: 대량의 축전이 도착했습니다! 게다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라이언: 다들 행동이 빠르군…….
라이언: 개중에는 내가 무사히 돌아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녀석들도 있겠지.
라이언: 친한 상대는 내가 직접 답장할 테니 남겨 놓도록. 나머지는 의례적으로 답장해도 좋아.
라이언: 아, 그리고…… 밸리언트의 축전은 따로 빼줘.
라이언: 오세아니아와 솔로몬 제도의 총독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최근에는 남극 대륙에 새 총독부를 차려 그곳의 총독이 되려고 하는 것 같으니까…….
라이언: 밸리언트의 제안이 계기가 되어 이 라이언이 '깜짝 선물'을 받게 되었으니, 제대로 답례를 해야겠지.
라이언: 남극 대륙 침공 인선을 이참에 정해 보도록 할까…….
라이언: 후후후후후…….



 ~35. 잔불의 변화

 

??? ???
신 잔불 본부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본부 시설에서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는 타카오 META와 함께 향후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타카오(META): 폐기된 이 실험장은 은밀하긴 하지만, 리셋 프로그램이 실행된 만큼 가용 자원이 매우 제한적이다.
타카오(META): 아직 초기 단계의 실험장을 구하는 것은 어떤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본부 외에도 인력과 자원의 융통 또는 미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점은 분명 필요하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하지만 아직 대량 자산의 점검도, 흩어진 인원의 합류도 끝나지 않았어. 지금은 눈에 띄는 행동을 피하고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단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네가 말한 실험장도 좋지만, 행동하려면 어디까지나 은밀하고 철처하게 해야 해.

타카오(META): ……그렇지. 그럼 우리 본진은 한동안 수수한 상태로 남게 되는 건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눈에 띄지 않으니까 이곳을 고른 거야. 수수하게 내버려 두렴.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우리는 쾌적한 집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큰 녀석'을 고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거잖니?

타카오(META): 으음……. 적어도 시설 주변의 녹화는 잘 되어 있으니.
타카오(META): 다른 볼일이 없으면 먼저 실례하마.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타카오. 엔터프라이즈와 에식스는 여전히 소식이 없니?

타카오(META): 아직. 아마도 그 비콘이 가져온 '단서'를 추적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리더가 이토록 오랫동안 소식 불명이라니…. 불안하네.

타카오(META): 그대는 아직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 조만간 익숙해질 거야.

통신: ――――

네바다(META): 타카오, 프리드리히…. 히류가 소식을 보냈어.

타카오(META): 별일이군. 뭐라고 말했지?

네바다(META): 헬레나가…… 그 '헬레나'가 우리와 대화하고 싶어한다고 하더군.

타카오(META): ……어이가 없군.
타카오(META): 지금 그녀가 어떤 존재이든 이미 우리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지?

네바다(META): 그럼 히류 보고 거절하라고 할까?

타카오(META): ………아니. 궁금하긴 하군.

네바다(META): 그럼 결국 어떻게 할 건데?

타카오(META): 알겠다고 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그 일은 대답을 조금 미루자.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엔터프라이즈와 연락이 닿으면 먼저 그녀의 의견을 물어 보렴.

타카오(META): 그런가? 내키지는 않지만 그러면 문제는 없겠지.
타카오(META): 그나저나… 헬레나는 실험장β와 관계가 좋아 보여서 소인은 그대가 바로 승낙을 권유할 줄 알았다.
타카오(META): 그대는 오히려 반대라는 건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헬레나가 실험장β와 사이가 좋아? 설마.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깊은 생각은 독이란다. 특히 일방적인 말만 듣고 정보를 도출하는 것은 옳지 않아.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잔불을 바꾸는 첫걸음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조금 더 기다리자.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곧 어느 곳에서 변화의 소식을 얻을 수 있을 거야.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그리고 해명은 이렇게 하렴. 우리는 대화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엔터프라이즈의 의견을 듣고 결정을 내리고 싶을 뿐이라고.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그래…. 정말로 엔터프라이즈와 하루 빨리 연락이 닿았으면 좋으련만…….



 ~36. 타워는 나쁘지 않아

??? ???

 

아비터 매지션I: 어때. 만족스러웠어?

아비터 타워XVI: 음. 서스펜스와 스릴, 의표를 찌르는 설계가 꽤 괜찮았어.
아비터 타워XVI: 전개도 화려했고.
아비터 타워XVI: 82점. 보통.
아비터 타워XVI: 이렇게까지 하면서 '데스 사이즈'를 발동시킨 건 문 쪽의 문제를 해결하지 위해서지?

아비터 매지션I: 실험을 3단계로 진행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야. 어때? 관심 있어?

아비터 타워XVI: 관심 없어. 아비터의 실험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아비터 타워XVI: 하물며 '월경 실험'인데.
아비터 타워XVI: 월경 실험에 대한 내 태도는 너도 알고 있지?

아비터 매지션I: 이 실험들은 제로가 심판자님의 뜻을 이어받아 정한 거야.

아비터 타워XVI: '이어받았다"고?
아비터 타워XVI: 그럼 '탑'에는 왜 관련 기록이 없는 건데?

아비터 매지션I: 탑에 대해서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잖아.
아비터 매지션I: 이미 결론이 난 문제니까 더 이상 논쟁할 생각은 없어.

아비터 타워XVI: 나도――
아비터 타워XVI: 잠깐만. 분위기가 이상하네. 말하기가 좀 어색한걸.

아비터 타워XVI: ……후우. 이제 됐어.

아비터 매지션I: ………….

아비터 타워XVI: 이번 시나리오도 꽤 괜찮았고, 네가 바빠지면 더 이상 날 방해하지도 못할 테니까 특별히 협력할게.
아비터 타워XVI: '특별 교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줄게. 나말고는 아무도 감시하지 못할 거야.

아비터 매지션I: ……네 탑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켰는지는 알아?

아비터 타워XVI: 내가 시킨 것도 아닌데 뭐. 원망하려면 그 사람을 원망해.
아비터 타워XVI: 내가 탑의 수리 비용을 너한테 청구한 것도 아니잖아?

아비터 매지션I: 그럼 수리비를 줄 테니까 탑의 가동을 잠시 중단해 줄래?

아비터 타워XVI: 안 돼. 친칠라가 더 좋아.
아비터 타워XVI: 너는 왜 그 애들한테 집착하는 거야?

아비터 매지션I: 네 탑 때문이야. 다른 해충을 처리하려 할 때 방해만 됐거든.

아비터 타워XVI: 그래.

아비터 매지션I: 아무래도 합의는 못하겠네.

아비터 타워XVI: 관객으로서 기다리고 있다는 점은 일치하는데?

아비터 매지션I: ……나는 내 실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 너는?
아비터 매지션I: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아비터 타워XVI: 자택 경비, 애완동물 사육, 드라마 구독?

아비터 매지션I: 잘 있어.


아비터 타워XVI: 여전히 농담도 안 통한다니까.
아비터 타워XVI: 실험에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견학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어, 바보야.
아비터 타워XVI: 저쪽 것도 보고 이쪽 것도 봐야지.
아비터 타워XVI: 회색 병아리가 몰래 숨어들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아비터 타워XVI: 후후후. 그럼 아무한테도 안 알려 줄 거야.
아비터 타워XVI: 앞으로 재밌어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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