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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리 병원에서 온 편지 ~스토리

킹루클린 2025. 3. 31. 23:17

 ~01. 프롤로그
한 통의 평범한 편지가 나를 이런 곳으로 이끌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반년 전. 나는 밀러의 마지막 편지를 받았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조사 파트너로서 밀러와는 줄곧 서신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의 글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편지에서 그녀는 우선 최근 조사 의뢰로 입원한 밸리 병원의 훌륭한 환경을 칭찬했다.
그러나 곧 말머리를 돌려 몇 가지 불안한 현상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했다.
병원 측의 과잉 친절, 은밀하게 방해받는 조사, 밤늦게 들리는 바쁜 발소리…….
그 편지를 끝으로 밀러의 소식은 끊겼다.

여러 차례 밸리 병원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건 어김없이 같은 대답이었다.
"확인 결과 입원 중인 환자 중 '밀러'라는 이름을 가진 분은 없습니다."
일이 심각하게 돌아간다고 느낀 나는 밸리 병원에 대해 몰래 조사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외래 진료, 의학 연구와 고급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의료기관이지만….
조사를 진행하면서 나는 이 병원 주변에서 노숙자 실종 사건이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입원한 일반인이 퇴원 후 홀연히 실종된 사례도 보고되었다.
탐정으로서의 감이 말하고 있다. 밀러는 심상치 않은 일에 휘말려 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돌파구를 확정한 후, 나는 큰돈을 들여 관련자를 매수해 완벽한 신분증을 위조하게 했다.
나는 오늘부터 '스트레스로 인해 요양이 필요한 함대 지휘관'으로서 밸리 병원에 입원한다.
그렇게 낡아빠진 차에 몸을 싣고 산속에 위치한 그곳으로 향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예상을 뛰어넘은 첫인상에 그만 숨을 삼켰다.
밸리 병원은 첩첩산중에 둘러싸여 있었고, 붉은 벽돌 건물은 햇빛을 받아 따스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주변에는 잘 가꾸어진 정원과 오래된 떡갈나무가 늘어서 있었고, 은은하게 꽃향기도 풍겼다.
시설 앞으로 향하자 간호사들이 이미 입구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프랭클린: 어서 와, 지휘관군. 기다렸어.

모가도르: 지휘과안……. 엄청 매혹적인 냄새…… 으헤헤…….
모가도르: 이따가 진찰할 때… 찬찬히 듬뿍 맛보게 해줘어…… 헤헤헤♡

보로실로프: 걱정 마. 우리 병원이 자랑하는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테니까, 여기서 멋진 시간 보낼 수 있을 거야.

스즈야: 무슨 고민이 있다면 언제라도 찾아 주세요.
스즈야: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정성껏 보살펴 드릴게요.

프랭클린: 후후. 일단 이 정도로 하자. 앞으로도 시간은 많으니까♪
프랭클린: 지휘관군. 우선은 입원 수속을 안내할게.
프랭클린: 보다시피 병원은 진료 센터, 입원동, 요양 센터, 물류 센터, 그리고 연구 센터의 다섯 개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어.
프랭클린: 낮에는 이 구역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 도움이 필요하면 각 구역의 담당 간호사가 안내할 거야.
프랭클린: 다만 해가 지면 의사의 지시에 따라 얌전히 병실에서 쉬도록 해.

지휘관: 그래… 알겠어.
지휘관: (조사하려면 밤이겠군…….)

프랭클린: 그럼 지휘관군, 따라 와. 접수처는 바로 앞이야.

이로서 나는 환자 신분으로 무사히 밸리 병원에 잠입할 수 있었다.
이제 조사를 시작할 때다.
밀러. 내 최고의 파트너.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데리고 돌아가겠어.



 ~02. 후진(嗅診) 너서리 콜
(철컥)

병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까지 병실 안을 배회하던 발자국 소리도 멀어져 갔다.

지휘관: (간호사들은 다 떠난 거 같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몸을 숨기고 있던 커튼이 갑자기 '샥'하고 힘차게 열렸다.

모가도르: 킁킁♥ 킁킁♥ ……역시 지휘관 냄새였어…….
모가도르: 아핫♥ 잡았다아~…….

허를 찔린 나는 모가도르에게 밀려 침대 위로 쓰러졌다. 저항하기도 전에 모가도르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내 위에 올라탔다.

모가도르: 환자부운……. 혼자 여기 숨어서 뭘 하려던 거야……? 헤헤♥

모가도르의 눈동자는 초점이 맞지 않았고 온몸은 뜨거웠으며, 힘은 유별나게 강했다. 명백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지휘관: (모가도르의 상태가 이상해…….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 검진을 예약했었는데……
모가도르: 하아…… 역시…… 모가도르의 예상이 맞았어…….

지휘관: 그러면…….

모가도르: 모가도르게 검진을 실시할게에…… 으헤헤헤헤♥

→ 길을 잃어서……
모가도르: 길을 잃어……? 어디 가려고 했는데?

지휘관: 검진 받으러 갈 거였는데…….

모가도르: 그럼 어디 안 가도 돼……. 모가도르가 검진해 줄 테니까아…… 아하핫♥


지휘관: 그런데 여기는 아무런 장비도 없잖아?

모가도르: 하아아♥ ……그런 건 필요 없어…. 모가도르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최신 검진 방법을 사용하니까아…….

모가도르는 몸을 숙이고 내 목덜미에 뜨거운 입김을 토했다.

모가도르: 킁킁……. 그 방법이란... 후진이라고 하는 거야…….
모가도르: 하아하아♥ 신선한 땀냄새…… 최고야아……. 후욱♥ 후욱♥
모가도르: 그런데 몸이 많이 뻣뻣하네……. 어디 다쳤어?

지휘관: 다친 데 없는데.

모가도르: 킁킁……. 거짓말 하지 마아……. 냄새는 속일 수 없으니까….
모가도르: 역시 전신을 검사해 봐야겠어……. 하아하아♥

모가도르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였다. 달뜬 눈동자에는 욕망과 열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모가도르: 옷, 방해돼……. 모가도르의 옷도 방해야…… 아핫♥ 그러면…….

모가도르는 살짝 거칠게 내 옷을 잡아당겼다.

지휘관: 모가도르……!

나는 모가도르의 손을 잡았지만 그녀는 요령 좋게 몸을 비틀어 내 손아귀를 벗어났다.

모가도르: 하아하아……. 표정이 굳었네……. 긴장했어? 아니면 부끄러워어…?
모가도르: 그럼 불을 끄면 안심이 될까……? 으헤헤헤♥

그녀가 말을 마치자 천장의 모든 조명이 갑자기 꺼졌다.

지휘관: ………….

모가도르: 스읍 하아♥ 스읍 하아♥…….

모가도르의 부드러운 몸이 나를 짓눌렀다. 뜨겁고 가쁜 호흡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모가도르: 이제 됐어……. 긴장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어…. 어둠 속이라면 아무도 못 볼 테니까아…….
모가도르: 건강 검진 계속할게…… 하아♥



 ~03. 두근두근 특별 진료
정갈한 병실. 간호사 프랭클린은 손에 들고 있는 진료부에서 문을 밀고 들어오는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프랭클린: 어머, 환자분. 내가 도울 일이라도 있어?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우선 프랭클린을 찬찬히 살폈다.
그녀는 평소처럼 여유로운 표정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피부에 희미하게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철컥)

그때 갑자기 병실 문이 닫히고 잠금장치가 채워졌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아마 이 문은 당분간 열리지 않을 것이다.

프랭클린: 지휘관군……. 혹시 손 다쳤어?


→ (끄덕인다)
프랭클린: 그럼 내가 치료해 줄게~

→ 별거 아니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프랭클린: 알아서?
프랭클린: 그럼 안 돼. 간호사인 내가 여기 있는데…….
프랭클린: 환자가 스스로 치료하게 하면 직무 태만이 되어 버리잖아?


프랭클린의 미소는 서서히 열기를 띠었다. 눈동자에는 주체할 수 없는 갈망의 빛이 배어 있었다.

프랭클린: 멍하니 서서 뭐해?
프랭클린: 자. 얼른 상처 보여줘.

프랭클린은 숨김없이 열정적인 시선으로 나를 훑어봤다. 볼의 붉은 기가 점점 더 뚜렷해졌다.

프랭클린: 그런데 지휘관군……. 여기 조금 덥지 않아?

프랭클린은 옷깃을 탁탁 치며 땀을 털었다.

프랭클린: 조급해하면… 아직 조급해하면 안 돼♡
프랭클린: 자, 손 이리 줘~ 프랭클린 간호사가 상처를 치료해 줄게~

프랭클린은 구급상자를 들고 내 앞에 쪼그려 앉더니 무릎에 몸을 기댔다. 천 너머로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능숙하게 상처를 치료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지만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그 미세한 반응을 알아차린 프랭클린은 손의 힘을 쭉 뺐다.

프랭클린: 아팠어?
프랭클린: 미안해.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서…. 힘 조절을 못했네.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광채가 깃들어 있었다.

프랭클린: 다음부터는 부드럽게…… 살살 치료해 줄게♡
프랭클린: 자… 다 됐다!

지휘관: 고마워.

프랭클린: 우리 사이에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
프랭클린: 그런데…….

프랭클린은 내 두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 다음 한 발짝 더 내딛어 나를 안았다.
달아오른 피부가 몸에 밀착됐다. 그녀의 향기와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뺨을 스쳤다.

프랭클린: 만약 정말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면…… 조금만 도와줄래?

시야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깨달았을 때 나는 이미 프랭클린에게 밀려 침대 위로 넘어져 있었다.
아까보다 땀이 더욱 많이 나는 것 같았다.

프랭클린: ……왠지 지휘관군하고 붙어 있으면 이 열기도 가라앉을 것 같거든…….
프랭클린: 저기, 좀 더 가까이…♡



 ~04. 한밤중의 임상 연습
심야. 병실 구석의 커튼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커튼을 걷었다.

워싱턴: 지휘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간호사 워싱턴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를 알아차리자 그녀의 눈동자에 일말의 기대감이 스쳤다.

워싱턴: 나하고 임상 연습하러 온 거야?

지휘관: ……임상 연습?

워싱턴: 그래. 임상 연습♪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워싱턴은 무방비한 나를 침대로 끌고 가 거리를 좁혔다.

워싱턴: 자, 빨리 연습 시작하자고! 꾸물대지 말고!
워싱턴: 우선은…… 심박수부터 잴 거야!

그렇게 말하며 워싱턴은 청진기를 들고 내게 내밀었다.
그러던 와중에 튜브가 그녀의 옷에 걸리고 말았다.

워싱턴: 앗―?!

갑자기 옷이 당겨지며 워싱턴은 자기도 모르게 작게 비명을 질렀다.
옷이 당겨지면서 안 그래도 타이트한 옷이 피부에 희미한 자국을 남겼다.


→ 괜찮아?
워싱턴: 괘, 괜찮아!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좀 놀랐을 뿐이야!

워싱턴은 침착한 척하며 튜브를 옷에서 떼어 내려고 했지만, 긴장한 탓인지 잘 풀리지 않았다.

→ 도와줄까?
워싱턴: 괜찮아! 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워싱턴은 큰소리치며 튜브를 떼어 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긴장한 탓인지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잠시 후, 희미한 홍조가 그녀의 하얀 피부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 도와준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청진기를 집어들었다.

워싱턴: 내가…… 아니, 됐다…….
워싱턴: 그렇게 돕고 싶다면 너한테 맡기겠어!

워싱턴은 손을 떼고 내게 주도권을 넘겼다.
이내 나는 그녀의 옷에 엉켜 있던 튜브를 떼어 냈다.

지휘관: 다 됐어.

워싱턴: ……고마워///

워싱턴은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목소리로 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워싱턴: 됐어! 방금은 그냥 사고였을 뿐이야. 얼른 계속 연습하자!
워싱턴: 환자는 환자답게 얌전히 누워 있으라고!

워싱턴은 성큼 다가와 나를 침대에 밀어 눕혔다.

워싱턴: 연습은…… 이제 시작이니까…….



 ~05. 미드나이트 케어
스즈야: 환자분…….
스즈야: 아니면 탐정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스즈야: 저에 대해서 조사하고 다니신 모양이네요?

침대에 나른하게 엎드린 스즈야는 입꼬리를 올려 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침대에 단단히 묶여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 ……난 이 병원의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야
스즈야: 진실, 인가요…….
스즈야: 그런 몰라도 되는 일에 시간을 들이기 보다는…….

→ 스즈야. 난 적이 아니야!
스즈야: 적? 아군? 후훗. 어느 쪽이 됐든 그걸 결정하는 건 탐정님이 아니에요.
스즈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나요?


스즈야는 손에 들고 있던 주사기를 입술로 천천히 가져갔다. 주사기 안의 붉은 액체가 흔들리며 위험한 광택을 발했다.
그녀는 바늘을 혀끝으로 가볍게 핥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내 무릎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스즈야: ……내용물이 뭔지 아시겠어요? 콕 하면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 …………
스즈야: 묵비권인가요?

→ ……치명적인 약?
스즈야: 아쉽지만 틀렸어요~


스즈야: 모르시겠다면 직접 해보는 게 어떨까요?

스즈야는 몸을 살짝 숙여 거리를 더욱 좁혔다. 눈동자의 빛도 더욱 커져 갔다.

스즈야: 몸이 많이 굳었네요?
스즈야: ……혹시 무서우세요? 후훗.

주사기가 가볍게 흔들리며 반사된 빛이 눈을 부시게 했다.
다음 순간 느껴진 것은 살갗을 뚫는 통증이 아니라 스즈야의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스즈야: 안심하세요. 탐정님께는 어떤 약도 사용하지 않을 거니까요.
스즈야: 당신을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은걸요.

스즈야는 주사기를 옆에 두고 내 몸 위로 올라탔다.
무릎에 그녀의 부드러운 볼이 닿았다. 그녀는 살짝 곤혹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스즈야: 하지만 이러면 오늘 퇴근을 할 수가 없는데….
스즈야: 왜냐면 '시술'까지가 제 업무니까요.

스즈야의 손이 거리낌없이 내 피부를 훑었다.
뜨거운 몸의 열기가 손끝을 통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방 안의 공기가 조금씩 달아올랐다.

스즈야: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렇다면 차라리…….

스즈야는 고개를 들고 매혹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스즈야: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짓도록 할까요?



 ~06. 온도 트랩
보로실로프: 으음…….

보로실로프는 병상 위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시선을 내 쪽으로 돌렸다.

지휘관: 일어났어?
지휘관: 아까 갑자기 쓰러졌길래 일단 여기로 데려왔어.
지휘관: 간단하게 검사해 봤는데 몸에 이상은 없는 거 같아. 다만…….

보로실로프: 으음…….

보로실로프는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내 말에는 개의치 않아 보였다.
창문을 통해 비치는 햇살이 그녀에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누가 봐도 평온한 오후의 모습이었다.

보로실로프: 후후후…….

지휘관: 어……!?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까이 가던 순간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보로실로프가 방금 전까지 의식을 잃었던 것은 나를 방심시키기 위한 연기였음을 깨달았다.

보로실로프: 미안해. 네가 너무 똑똑해서 말이지.
보로실로프: 이런 더러운 수라도 쓰지 않으면 당신을 구속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

→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보로실로프: 지금 그게 중요해?

→ 난 단지 협력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려 했을 뿐이야

보로실로프는 냉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내 말을 들어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보로실로프: 어쨌든 이제 넌 내 거야.

그러면서 보로실로프는 몸을 숙여 신속하게 내 옷깃을 풀어헤쳤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청진기가 들려 있었다.

지휘관: 보로실로프…… 대체 뭘 할 셈이야?

줄곧 담담하던 그녀의 눈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보로실로프: 간호사가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건 아주 많지.

그녀는 움직일 수 없는 나를 올려다보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보로실로프: 예를 들면…….

차가운 청진기가 가슴에 닿았다. 나는 무심코 몸서리를 쳤다.

보로실로프: 참아. 차가운 건 처음만이니까.

그녀의 눈동자는 깊고 격렬한 감정을 머금어 보는 이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보로실로프: 금방 따뜻해질 거야. 나도, 당신도.



 ~07. 취침 전의 소동
부드럽고 깨끗한 침대에 누워 있자니 밀려오는 피로감에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 영차.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대가 작게 흔들렸다.
나는 눈을 뜨고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봤다.

산타페: 냐하하……. 탐정님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산타페는 살금살금 침대에 기어오르던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녀는 마치 현장에서 잡힌 현행범처럼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휘관: 자려고 했는데 네가 깨운 거야.

산타페: 아… 미안 미안! 깨울 생각은 아니었어!
산타페: 사과의 뜻으로…… 내가 같이 자 줄게! 냐하하하!

지휘관: 사과고 뭐고 이미 내 침대에 있잖아…?

산타페: ……사, 사실 여기 너무 음산해서…… 혼자 자기 엄~~~~청 무섭단 말야!
산타페: 그래서 온 거야!
산타페: 탐정님 옆에 있으면 안심 되니까 분명 푹 잘 수 있을 거야!
산타페: 위대하고 전능한 탐정님~! 부디 산타페를 내쫓지 말아줘~!

지휘관: 뭐, 이미 기어들어 왔으니 어쩔 수 없지. 마음대로 해.

산타페: 만세~! 역시 탐정님이 최고야! 냐하하하!

허락을 받은 산타페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싹 가시고 대신 경쾌한 웃음이 번졌다.
그녀는 베개를 꼭 끌어안고 내 옆에 앉아 눈을 꿈뻑거리며 쳐다봤다.

지휘관: ……왜 그렇게 봐? 안 자?

산타페: 음후후~♪

산타페는 침대에 두 손을 짚고 소근소근 말을 꺼냈다.

산타페: 탐정님은 여러 소문들을 알고 있지?
산타페: 좀 들려 주면 안 돼? 그러니까…… 자장가 같은 느낌으로!
산타페: 에이~!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절대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쾅――!

병실 밖에서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산타페: 꺄악――! 탐정님 살려줘!!

산타페는 제자리에서 튀어올라 내 품에 달려들었다. 그녀는 내 옷깃을 꼭 움켜쥐고 매달렸다.

지휘관: 괜찮아. 별일 아닐 거야. …확인하고 올 테니까 너는 여기 가만히 있어.

산타페: 자, 잠깐만! 영화에서는 이럴 때 혼자 행동하면 절대 끝이 좋지 않았다구!

→ 내가 주인공이니까 괜찮아

산타페: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산타페: 응? 탐정님이 주인공이면… 남겨진 내가 더 위험하지 않아!?
산타페: 나, 나도 같이 갈래……!

산타페는 허겁지겁 일어나 내 팔을 꼭 껴안았다.

산타페: 됐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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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페: 휴우… 뭐야, 칠판이 벽에서 떨어진 것뿐이잖아~!

복도에 아무 일도 없음을 확인하고 산타페와 함께 병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경쾌하게 말하면서도 내 팔을 꼭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침대에 오르자 산타페는 다시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몸은 아직도 조금 떨리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겨우 진정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산타페: 으음…… 뭔가 지루해졌어~
산타페: 탐정님이 소문 얘기 안 해 줄 거면 대신 내가 해 줄게!
산타페: 준비됐어? 엄~~~청 길 거야~!

산타페는 나를 꼭 껴안은 채 가슴에 얼굴을 묻고 배시시 웃었다.

산타페: 준비 안 됐어도 괜찮아! 밤은 아직도 많~~~이 남았으니까! 냐하하하!



 ~08. 하늘에서의 포옹
나는 밀러가 유폐되어 있는 방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봤다.

???: 파트너――!!!

통통 튀는 귀여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고개를 들자 발목에 족쇄가 묶인 밀러가 거꾸로 매달린 채 내 눈앞에 떨어졌다.

밀러: 어때! 밀러 님 등장 완전 멋있지? 내가…… 어? 어어어어!

밀러의 우쭐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허공에 매달린 그녀의 몸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지휘관: 위험해! 얼른 내 어깨를 잡아!

밀러: 아하하하! 이런 것쯤 밀러 님에게는 일상다반사라구! 이미 익숙해졌지!
밀러: 그래도 파트너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잡아줄게!

밀러는 육구를 내 어깨에 꾹 눌러 자세를 고정시켰다.

지휘관: 족쇄를 풀 방법을 찾아야겠어.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열쇠나 쇠사슬을 절단할 수 있는 도구를 찾았다.
그 사이 밀러의 시선이 계속 내 얼굴을 향해 있는 것을 느꼈다.

지휘관: 왜 그래? 할 말이라도 있어?

밀러: 아니. 아무것도…….

밀러는 작게 중얼거리며 날카로운 발톱이 닿지 않게 조심조심 내 어깨를 끌어안고 다정하게 포옹했다.

밀러: 그냥 안아주고 싶어서…….

두 사람을 가르는 거리는 달콤한 온도 속에 살며시 녹아 사라졌다.
뒤이어 '찰칵'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발목에 묶여 있던 족쇄가 풀리는 소리였다.
떨어지는 밀러를 재빨리 받아 작은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지휘관: 푸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거야?

밀러: 응! 사슬을 더듬어 가다 보니 찾았어! 이 정도는 밀러 님한테는 식은 죽 먹기지!
밀러: 실은 파트너가 막 왔을 때 겨우 푼 거지만.
밀러: 역시 우리는 손발이 척척 맞는다니까!

지휘관: 그럼 진작에 말해주지.

밀러: 그치만 하늘에서 휙 내려오는 게 더 멋있잖아.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네가 밀러를 더 봐 줄 거 같아서!

밀러는 내게 뺨을 비볐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보송보송한 머리카락이 간지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깃털처럼 가벼운 키스가 내 뺨에 닿았다.

밀러: 파트너. 구하러 와줘서 고마워!



 ~09. 혈족의 계약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는 방문을 열었다.
방은 밝고 귀엽게 꾸며져 있었다. 곳곳에 인형들이 놓여 있어 병원의 다른 곳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인형 더미 한가운데서 '토끼' 한 마리가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포드: 시간 맞춰 왔네.


→ 약속이니까
소녀의 얼굴에 기쁜 빛이 나타났지만, 이내 올라간 입꼬리를 누르며 붉은 홍조만을 남겼다.

할포드: 얼른 앉아!

→ 파티라도 할 셈이야?
할포드: 그래. 얼른 앉아!


할포드의 재촉으로 나는 그녀 옆의 빈 소파에 앉았다.

할포드: 으흠. 너…… 그러니까…… 이쪽에 앉아도… 으음…….

내가 앉은 소파를 힐끗 바라본 할포드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표정으로 투덜거리다가 이내 화제를 돌렸다.

할포드: …그러니까…… 이 파티는 어떤 거 같아?
할포드: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이 옷과 이 인형들도…….
할포드: 귀여운 거에 둘러싸이면 마음이 편해지잖아……. 적어도 나는 그래……!
할포드: 그러니까 너도 여기서 푹 쉬었으면 좋겠어.
할포드: 손잡은 뒤로 계속 병원 일로 바빴으니까 분명 피곤하겠지?

지휘관: 일부러 파티까지 준비해 줘서 고마워. 감동받았어.
지휘관: 할포드도 바쁠 텐데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지 그랬어?

할포드: 너를 위한 파티인데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할포드: 그리고 모두에게 알렸다간 분명 다들 모일 테고…….
할포드: 그러면 너도 푹 쉬기는커녕 오히려 피로만 더 쌓일 테니까…….
할포드: ……그래도 네가 시끌벅적한 게 더 좋다면 지금이라도 모두를 부를 수도 있어.


→ 지금으로도 충분해
지휘관: 이리저리 신경 쓰느라 수고 많았어.

할포드: 나는 괜찮아. 영원한 힘을 자랑하는 혈족의 로드니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
할포드: 너도 나의 권속이 된다면 고생할 필요 없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고 할포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할포드: 뭐, 이 이야기는 그만 하자. 지금은 푹 쉬어.

→ 할포드만 있으면 충분해
지휘관: 할포드.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할포드: 어? 뭐야, 갑자기…….
할포드: 그래. 제대로 대접해 줄 테니까 지금은 푹 쉬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댔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졸음이 쏟아졌다.

할포드: 잘 거야?

지휘관: 응…. 살짝 졸려서.

할포드: 그럼…….

나는 내려앉는 눈꺼풀을 들어 할포드를 바라봤다. 그녀는 살짝 긴장한 듯 호랑이 인형을 끌어안은 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할포드: ……내가 무릎 베개 해 줄까? 조금은 편해질 거야…….

그 말을 시작으로 그녀는 겨우 용기를 낸 듯 말을 이어갔다.

할포드: 푹 쉬게 해주겠다고 선언한 이상 완벽해야지? 그치?
할포드: 자, 빨리 와. 로드가 부여한 특권을 누리도록 해!



 ~10. 천호의 향연
아카기: 어머. 와 주셨군요. 그럼 연회를 시작하죠.
아카기: 지휘관님. 밸리 병원의 이사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밝고 탁 트인 홀은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함께 이 병원을 장악한 아카기는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우아하게 기대어 나른하면서도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데 연회치고는 너무 조용했다.

지휘관: 우리밖에 없는 거야?

아카기: 네. 당연히 저희 둘뿐이죠~ 후후후.
아카기: 아니면…… 또 누가 왔으면 좋겠나요?

아카기는 달콤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독점욕이 깃들어 있었다.

아카기: 자, 이쪽으로 오세요. 오늘은 함께 밤을 새워 봐요~

아카기는 손을 들어 그 하얗고 유연한 손가락을 도발적으로 굽혀 내게 손짓했다.

아카기의 곁으로 가서 앉자, 그녀는 마시던 잔을 내밀었다. 안에는 맑은 미주가 반쯤 남아 있었다.

아카기: 뒷맛이 매끄럽고 아주 맛있답니다. 어떠신지요?
아카기: 식사 준비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요.

예쁜 유리잔 가장자리에는 아카기의 촉촉한 입술 자국이 남아 있었다.

→ 그녀의 입술 자국에 입을 맞춘다
나는 아카기에게 잔을 받고 입술 자국을 따라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아카기: 이사장님은 정말 대담하시네요…… 후후후.
아카기: 그럼 저도 좀 더 대담한 수를 써 볼까요…?

→ 잔을 돌려 마신다
나는 아카기에게 잔을 받고 위치를 바꿔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아카기: 이사장님도 참. 부끄러우신가요~? 후후후.
아카기: 그러시면 곤란하답니다. 왜냐면 지금부터는…… 후후후…….


아카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다리를 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내려 보니 아카기의 발목에 묶여 있는 붉은 끈이 내 종아리를 살짝 스치며 나부끼고 있었다.
이내 몸에 달린 액세서리들이 부딪히는 투명한 소리와 함께 아카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사뿐사뿐 내게 다가오더니 눈앞에서 천천히 몸을 숙여 똑바로 나를 바라봤다.
뒤에서 흔들리던 꼬리가 스르르 내 몸을 휘감고 거부할 새도 없이 나를 통째로 끌어당겼다.
은은한 주향과 아카기의 향기가 뒤섞여 따스한 숨결과 함께 나를 간지럽혔다.

아카기: 눈을 감으세요……. 둘만의 연회를 마음껏 즐겨 보아요♡



 ~11. 에필로그
프랭클린: 스토리 컴플리트 축하해~ '명탐정'군!

할포드: 우리 '혈족'의 영광을 부흥시키는 결말, 꽤 나쁘지 않았지?
할포드: 시나리오 담당으로서 스토리와 설정이 배우들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된 모습을 보니 너무 기뻐♪
할포드: 지휘관. 네가 최고의 공로자야. 자, 얼른 나와서 칭찬을 받도록 해!

그 한마디를 신호탄으로 보이지 않는 막이 내리고 무대에서 사라졌던 '배우'들이 차례로 다시 돌아왔다.

밀러: 지휘관, 기다리고 있었어! 어때? 밀러 님의 연기에 눈을 뗄 수가 없었지?
밀러: 무, 물론 다 같이 하는 리허설말고는 몰래 따로 연습한 적 없다구!

스트례미텔니: 나도 증언할게! 밀러가 새벽 3시에 거울을 보며 로프 사용법을 연구하고 있던 모습은 절대 못 봤어!

프랭클린: 그나저나 이런 이벤트는 처음인데, 모험만큼이나 스릴이 넘쳤어.
프랭클린: 기껏 준비한 구급 세트, 멀티 툴, 등산 로프, 방수 텐트가 등장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쉽지만…….

워싱턴: 아니, 그런 물건은 등장할 기회가 없는 게 좋잖아.

보로실로프: 크루저를 탔을 때 조난당했다면 도움이 됐을까? ……그런 전개가 없었던 건 좀 아쉽네.

할포드: 출항 부분이면 이미 엔딩 직전이었잖아!

모가도르: 하아……. 진짜 눈 깜짝할 사이에 엔딩이었어…….
모가도르: 지휘관과 함께한 시간도 적었고…… 유감이야….

할포드: 그래? …난 충분했다고 생각했는데.

모가도르: 뭘 모르네!
스즈야: 뭘 모르시네요.
보로실로프: 맞아.
아카기: 동감이에요.

할포드: ……어?
할포드: 이 할포드가 모른다고……?
할포드: 내가 각본 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