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및 관련 글/대형·전초전 스토리

주홍빛 단장

킹루클린 2024. 8. 12. 20:27

 ~01. 꿈·기념일

 

로열, 스캐퍼 플로.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를 듣고 전투태세를 갖추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혹은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은 단지 기념일일 뿐이니까――

----

킹 조지 5세: 모두의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킹 조지 5세: ‘스캐퍼 플로 방어전’에서 희생된 동료들을 기리기 위해, 올해도 이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도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킹 조지 5세: 비록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 전투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를 고무시키고 있다.

킹 조지 5세: 그 전흔 역시 해저에서 조용히 그날의 격전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킹 조지 5세: 그날, 우리 로열, 철혈, 중앵 삼국은 함께 분투하여 세이렌의 침공을 막아내고 로열 본섬의 안녕을 지켜낼 수 있었다.

킹 조지 5세: 눈앞의 폐허는 바로 실패한 컴파일러의 마지막 발버둥이 만들어 낸 것이다.

킹 조지 5세: 이는 상처이자, 우리 삼국의 우호의 증거이기도 하다.

킹 조지 5세: 자, 우리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연단에서는 격앙된 연설이 계속되었다…….

----

 

로열. 스캐퍼 플로 관광 지구
호텔
얼마 후

스캐퍼 플로 관광 지구에서 가장 크고 격식 높은 호텔. 식전 후 매년 연회가 열리는 곳이다.
소문에 의하면 그 전투가 끝난 이후, 삼국의 전사들이 이곳에서 축하연을 벌였다고 한다.

뤼초: 후아아암……. 피곤하고 졸리고… 오늘도 엄청 힘들었어~

뤼초: 그러니까 실컷 먹고, 소비한 에너지를 보충하고, 그리고 기절하듯이 푹 자야지~

아마기: 후후후. 여전히 마이페이스시군요.

뤼초: 칭찬 고마워~

킹 조지 5세: 먼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킹 조지 5세: 특히 아마기 공은 매년 저 멀리 중앵 본섬에서 찾아와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로열을 대표하여 감사를 올리는 바다.

아마기: 별말씀을요.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저 자신도 답답한 소임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아마기: 그리고… 오랜 친구들도 만나 뵙고 싶고요.

워스파이트: 그래. 그럼… 오랜 친구에게 건배를…!

아마기&뤼초: 오랜 친구에게 건배를――

킹 조지 5세: 전황이 점점 나아지고 있어. 현재 우리는 세이렌에 대한 대규모 반격 작전을 준비 중이다. 그 때도 너희들의 힘을 빌려 주었으면 한다.

뤼초: 걱정 마~ 여기 오기 전에 프리드리히한테 얘기 들었어~ 작전이 시작되면 철혈 함대도 가세할 거야.

아마기: 중앵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그럼 이번에는 우리의 우정을 위해――

세 명: 우정을 위해――

----

 

로열 ???
아발론의 문

통신: ――――

모나크: 안 돼. 역시 외부와 연락을 취할 수 없어.

모나크: 뱅가드. 그 쪽은 어때?

뱅가드: 여기도야. 몇 번이고 재부팅해도 ‘출구 좌표를 특정할 수 없음. 통로를 구축할 수 없음’이라고 떠.

뱀파이어: 밖이랑 통신도 안 되고, 탈출도 못하고…. 완전히 여기 갇힌 거잖아!

글래스고: 바깥에서 이쪽하고 연락이 안 되는 걸 알면 구조대를 파견하지 않을까요…?

헌터(META): 그렇긴 하지만 이대로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는 건 성질에 안 맞아.

헌터(META): 그리고 ‘문’이 출구 좌표를 못 잡는 게 신경 쓰여…. 내부 상황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으니,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야.

헌터(META): 어쩌면 외부에서도 지금 아발론의 문을 열 수 없는 걸지도 몰라.

헌터(META): 최악의 경우, 우리를 관측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어….

글래스고: 저, 정말이요……!?

헌터(META): 그냥 추측이야. ……여기는 내가 만든 게 아니니까.

헌터(META): 그럴 가능성이 있다, 고 말하고 싶었을 뿐.

뱅가드: 여기에 대해서는 폐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시지만… 폐하께서는 지금 유럽에 계셔서, 여기서는 연락이 안 돼.

뱀파이어: 그럼 META 폐하는 어때?

뱀파이어(META): 거기도 안 돼. 어쩌면 ‘퀸즈 라이트호’가 또 신호가 안 터지는 곳으로 간 걸지도 몰라. ……딱히 드문 일은 아니지만.

글래스고: 그럼 저희는 어쩌죠……?

리나운(META): 한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리나운(META): ‘실험장β’ 외부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면, 이 ‘카멜롯’을 좀 더 먼 장소로로 보내서 실험장β를 관측해 보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뱅가드: 근데 폐하께서 자기 허락 없이는 절대로 가동하지 말라고 명하셨는데….

헌터(META): 하지만 가동하지 않고서 어떻게 폐하하고 연락하려고?

뱅가드: ……그건 그런데….

뱀파이어(META): 뭐어 이럴 때 뭔가 쓸 만한 수단이 있겠지. 일단 열심히 생각해 보자구.

뱅가드: ……음……. 폐하께서 전에 뭐라고 하셨던 거 같긴 한데…. “비상시 카멜롯을 한 번 가동할 권한을 부여한다”였나….

뱀파이어(META): 지금이 그 비상사태 아냐?

뱅가드: ……그렇지. 지금은 비상사태야!

뱅가드: 그럼 좌표를 주면 바로 카멜롯을 가동할게.

뱀파이어(META): ……….

헌터(META): ……….

리나운(META): ……….

뱅가드: ……하아. 아무도 좌표 설정법 몰라?

헌터(META): 나는 전투하고 추적 전문이라.

뱀파이어(META): 나는 오자마자 ‘로즈 블록’에서 방어 시설 정비만 계속해서 모르겠어.

뱀파이어(META): 리나운하고 리펄스는? 시간만 따지면 너희가 여기 제일 오래 있었잖아?

리펄스(META): 그렇긴 한데…. 봐, 나랑 언니가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여?

뱅가드: 큰일 났네…. 그동안 좌표 입력은 전부 폐하가 하셨고.

뱅가드: 좌표를 모르면 권한이 있다고 해도 움직이는 건 힘들어….

모나크: ……내가 하지.

모나크: 좌표 설정이라면 전에 한 번 해봤어. 그리고 어떻게 조작하는지도 알아.

뱅가드: 그때는 그냥 어쩌다 우연히 된 거잖아!

뱅가드: 그리고 폐하께서 그 이후로 문에 저장되어 있던 좌표를 모두 삭제하셨어.

리나운(META): 그렇다면 최종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겠군요. 힘으로 아발론의 외벽을 부수고…….

뱅가드: 스톱! 리나운, 스토오오옵!

리나운(META): ……으윽.

뱀파이어(META): 역시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겠네. 어쩌면 폐하께서 연락하시거나 구조대가 올지도 모르고.

뱅가드: 방법이 없네. …하아,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하던 일을 계속하자.



 ~02. 꿈·과거의 만가

 

흑철의 악장이 흐르는 가운데 추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리나운: 로열 네이비 H함대 소속 순양전함 리나운. 귀함의 요격을 명받았습니다!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세요!

리나운: 로열의 모든 주력함이 이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놓치지 않아요!

아크 로열: 예상대로 저항하기 시작했군…….

아크 로열: 놈이 순순히 잡혀 주진 않을 거야.

아크 로열: 먼저 속력을 떨어트려야 해!

아크 로열: 소드피시 818중대, 발진! 비스마르크를 사로잡아라!


―――!!!

비스마르크: 큭… 사각에서……!?

비스마르크: 회피를…… 큭, 늦었나……!
―――!!!

킹 조지 5세: 비스마르크. 이걸로 끝이다.

킹 조지 5세: 저항을 멈추어라. 폐하의 이름하에, 그대를 로열로 연행하여 아주르 레인에 대한 배신 행위에 심판을 내리겠다.
비스마르크: 전투 속행 능력을 잃었어. 작전은 실패다. ……여기까지인가.

테스터: 비스마르크: 꽤나 만신창이가 되었군. ‘그 힘’을 쓸 생각이 들었나?

비스마르크: 끼어들지 마. 이건 내 일이야.

테스터: 옵저버가 알려줬을 텐데. 네가 마음만 먹으면 이까짓 적쯤은 손쉽게 유린할 수 있어.

―――!!!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이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비스마르크는 이미 자신의 의사를 표명했어. 여기에 너희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아마기: 비스마르크 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부상은 괜찮으신가요?

비스마르크: 프리드리히, 그리고…… 너는?

아마기: 아마기입니다. 기억 안 나세요?

비스마르크: 중앵의…… 아카기의 언니…?

비스마르크: 네 뒤에 있는 검은 함대는 뭐지……?

아마기: 제가 이끄는 지원함대입니다. 철혈의 원군도 오고 있으니 로열은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할 겁니다.

아마기: 당신은 이제 ‘안전’합니다. 비스마르크.

비스마르크: ……안전……하다고?

안전. 비스마르크는 천천히 그 단어를 곱씹었다.

테스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나서 추론 결과가 바뀌었어. 아무래도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네. 어떻게 할 거야?

비스마르크: 나는…….

비스마르크의 시선은 의장 위에서 시커먼 빛을 발하고 있는 검은 큐브에 머물렀다.

비스마르크: 후후후후…….

아마기: 비스마르크 님? 갑자기 왜 웃으시는 거죠…?

비스마르크: 정해진 운명을 뒤집는 것――프리드리히. 이게 네 구조 계획인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글쎄? 네 생각은 어떠니?

비스마르크: 아니야.

비스마르크: 네 행동은 우리가 약속했던 것과 달라.

비스마르크: 너는 지금 철혈함대의 본부에 있고, 거기서 내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대로 상층부를 숙청하고 철혈을 인수했어야 해.

비스마르크: 그러니 지금 이건 현실이 아니야. 그렇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후후후――

아마기: 비스마르크 님…? 대체 무슨 말씀을…?

아마기: 여기는 틀림없는 현실입니다. 그것도 과거보다 더 나은 ‘현실’입니다.

아마기: 그냥 현실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비스마르크: 나의 길은 나의 것이야. 비록 그 과정 속에서 유감, 이별, 잘못이 있더라도…….

비스마르크: 올바른 과거 없이는 미래가 있을 수 없어.

비스마르크: 한번 일어난 일은 절대 없었던 일로 할 수 없어.

비스마르크: 분해도, 슬퍼도, 아무리 다시 하고 싶다고 해도, 바로잡고 싶다고 해도…….

비스마르크: 우리는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받아들여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

비스마르크는 주포에 집중하고, 손에 쥔 꺼림칙한 힘을 발동했다.
불길한 검은 빛이 포구에 모여, 이내 하나의 작은 ‘점’이 되었다.

아마기: 비스마르크 님, 멈추세요! 대체 지금… 뭘 하시려는 겁니까…!?

비스마르크: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어.

비스마르크: 과거와 마찬가지로…… 테스터. 이 힘으로 네 함대를 분쇄하겠다!
비스마르크: 그리고…… 내 마지막을 받아들이겠어!

작은 점에서 힘이 솟구쳤다. 무표정한 테스터, 이해할 수 없다는 아마기, 미소 짓는 프리드리히, 그리고 비스마르크 자신까지, 모두를 삼켰다――

----

 

게리온: ▁▂▃▄▅▆▇█████

비스마르크Zwei: ……여기가 현실이군.

비스마르크Zwei: 자, 너도 봤지? …과거를 받아들여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

비스마르크Zwei: 그래. 보다 나은 미래로.



 ~03. 성도

 

아이리스 성도의 대로.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중앵 함선들은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하쿠류: 이놈들아 비켜 비켜――!

 

하쿠류: 거기 비켜――!


스루가: 드디어 길이 열렸네요. 시나노 님, 얼른 가죠…!

시마카제: 휴우. 겨우 트인 곳으로 나왔네요….

시마카제: 그나저나 엄청 시끌벅적하네요~ 시나노 공. 오늘은 무슨 축제인가요?

시나노: …축제가 있다고…… 들은 적은 없다….

하쿠류: 하! 그냥 갑자기 시작한 걸 수도 있지! 즐기는 데 이유가 필요할까!

하쿠류: 우리도 저번에 갑자기 달맞이 하자고 모였잖아!
노시로: 하쿠류, 그 달맞이 말입니다만…….

시나노: 어흠. 이곳은 잡담을 나눌 장소가 아니다…. 하쿠류, 계속 길을 열어 주거라…. 거처로 돌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하쿠루: 아아! 맡겨달라고!

----

또 하나의 교차로를 지나자, 질서를 유지하는 아이리스의 두 기사가 나타났다.

르 트리옹팡: 질서 있게 행동해 주세요! 함께 저항 전쟁의 승리를 축하합시다!

르 말랭: 아이리스, 로열, 중앵의 우정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하쿠류: 아앙?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저항 전쟁이라고?

스루가: “아이리스, 로열, 중앵의 우정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스루가: 이 사람들, 뭔가 이상하네요….

시마카제: 네, 스루가 공! 이 사람들, 뭔가 이상합니다!

노시로: 시나노 님……. 역시 아이리스 성도도 ‘꿈’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시나노: 으음…. 예상하지 못하던 바는 아니다…….

시나노: 하지만 그 규모가…… 내 예상보다 훨씬 크구나…….

시나노: 아이리스의 기사를 만나러 가자……. 마침 볼일이 있으니…….

시나노: 아이리스의 기사 여러분……. 클레망소는 지금 어디에…?

르 트리옹팡: 어머, 중앵 분들이시군요! 퍼레이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함께 축하해요!

시나노: (말이 통하지 않는가…? 하면…….)

시나노: 이것을…….

시나노는 두 사람에게 지휘관에게 건네받은 브로치를 보여주었다.

시나노: 아이리스의 기사에게 부탁하마……. 클레망소를… 뵙고 싶은데….

르 말랭: 퍼레이드 메인 회장으로 가고 싶으세요? 안내해 드릴까요?

시나노: (말이 전달되지 않는구나…. 그러하면…….)

시나노: 아니…. 안내는, 괜찮다…….

르 트리옹팡: 알겠습니다. 기쁜 날이니 만큼 부디 여기저기 둘러보시면서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해질녘. 중앵 함선들은 겨우 아이리스 내 거처로 돌아왔다.
갖은 수를 썼지만 시나노는 결국 클레망소를 만나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온 시나노는 방에 틀어박힌 채 생각에 잠겼다.

시나노: ……아아. 거센 파도에 떠내려가는 작은 배와도 같은, 자신의 무력함에 탄식할 뿐…….

시나노: 나는 앞으로도 이와 같은 처사를, 몇 번이나 더 겪어야 하는지…….

시나노: 이것이 꿈이라면, 깨어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변하리라는 희망이 있겠으나…….

시나노: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무리 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구나…….

시나노: 꿈속에서도 떠내려가고, 현세에서도 떠내려가고……. 순간의 안정조차 얻지 못하고…….

시나노: 작은 배에 탄 채로 어찌 거센 파도에 맞설 것인가…….

시나노: …허나 도움을 구할 수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다…….

시나노: 위국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나 한 사람…….

시나노: 더 이상…… 도망갈 수는 없다…….


시나노는 눈을 감고, 와타츠미로 만들어진 부적을 꽉 쥐었다. 부적은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나노: 내가 꾸는 꿈의 근원, 힘의 본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시나노: 와타츠미… 중앵의 보물에서 나오는 힘…. ‘가지’를 비추는 꿈…….

시나노: 허나 나는 줄곧, 사실을 무시하고만 있었다…….

시나노: 야마토급의 용골을 가졌으면서, ‘와타츠미’가 없으면 힘을 발휘할 수도 없는 결함품이라는 것을…….

시나노: ………이제는 현실을 직시할 때다….

시나노: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시나노는 눈을 떴다. 손에 쥔 부적이 발하는 빛은 달빛에 견줄 정도였다.

시나노: 와타츠미는 무기이기도 하다…….

시나노: 인간은 총포에 의지하고, 함선은 의장에 의지하듯… 나에게도…….

시나노: 현세의 이변은 와타츠미와 관련이 있으며… 이는 꿈의 이변도 마찬가지…….

시나노: 사람을 유혹하는 환상으로부터 깨워준, 내가 직접 만든 이 부적이라면…….

시나노: 분명… 꿈을 조사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야…….

시나노: 와타츠미로 이어진 꿈의 세계로… 나를 인도해 줄 것이야…….

시나노: 현세에서 나의 말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꿈에서라도…….

시나노: 아이리스의 성도를 뒤덮은 환상을 없애고, 그대가 맡긴 사명을 완수하리라.

결의를 다진 시나노는 부적을 고쳐 잡고 일어섰다. 그 때――

똑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클레망소: 클레망소야: 온종일 나를 찾아다녔다면서~?

클레망소: 무슨 일 있어?

시나노: 클레망소……?!

시나노는 클레망소를 맞아들이고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시나노: 클레망소…… 그대는 꿈에서 눈을 떴나……?

클레망소: 그래. 보다시피.

시나노: 어찌…?

클레망소: 후후후. 꿈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말야.

클레망소: 유감이지만 나는 잘 알고 있거든.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세상은 결코 이렇게 아름다울 수만은 없어.

클레망소: 그래서 희생을 받아들이고 다시 올바른 선택을 했어. 그뿐이야.

시나노: 나도 현혹되었으니 만큼 환상의 무서움은 잘 알고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꿈을 스스로 깨트리는 것은 범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

시나노: ……아아. 지휘관. 그대는 두 가지 오산을 했구나….

클레망소: 어머, 무슨 오산?

시나노: 하나는… 이 브로치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는 것….

시나노는 자조하듯 브로치를 꺼내 클레망소에게 보였다.

시나노: 또 하나는… 유럽에 예상보다 자력으로 환상을 뿌리친 사람들이 많다는 것…….

클레망소: 후후후. 지휘관도 참 보기 드물게 실수를 했네.

클레망소: 내가 선물한 브로치를 또 다른 여자에게 건네다니~

클레망소: 브로치의 효과가 없어진 것도 당연하지.

클레망소: 아무튼 이렇게 만났으니 그 브로치는 내가 회수할게?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클레망소는 거의 반강제로 브로치를 도로 가져갔다.

클레망소: 유럽의 이변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에 착수했어.

클레망소: 적어도 지휘관의 판단은 옳았어. 나는 네 힘이 필요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꿈에서 깨워야 해.

클레망소: 시나노. 너는 타인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클레망소: 아직 늦지 않았으니 나를 따라와줘. 들어갔으면 하는 꿈이 하나 있거든.

 

 

 

 ~04. 꿈·허무한 위광

 

사디아 제국 수도의 어느 정원. 꽃이 만발한 길을 거니는 함선들이 있었다.

비토리오 베네토: 아마기가 직접 대표단을 이끌고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비토리오 베네토: 이번 세계박람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분명 중앵 파빌리온일 겁니다.

아마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아무리 그래도 주최 측보다 눈에 띄어서는 아니 되죠.

아마기: 그래도 두 번째로 돋보이는 파빌리온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겠습니다.

비토리오 베네토: 후후후. 그럼 살살 부탁드립니다.

아마기: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마기: 참.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만… 베네토 씨께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비토리오 베네토: 개인적인 부탁? 관광지 안내입니까? 아니면 레스토랑 예약…?

비토리오 베네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들어 드릴 테니 사양 말고 말씀해 주세요.

아마기: ……사실, 만나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아마기: 사디아가 이 시기에 세계박람회를 다시 개최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지요.

아마기: 이런 기발한 방안을 생각해 내신 분은 분명 큰 뜻을 품고 대국을 조감할 수 있는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계심에 틀림없습니다.

아마기: 그 훌륭하신 분을 한번 만나 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비토리오 베네토: 아, 마르코 폴로 말씀이시군요.

비토리오 베네토: (그러고 보면 마르코 폴로는 세계박람회 계획을 제안한 장본인임에도 줄곧 뒤에만 머물러 있었네요…….)

비토리오 베네토: (이대로는 불쌍하니까 그냥 놔두면 안 되겠죠….)

비토리오 베네토: 마르코 폴로라면 지금 로마에 있습니다. 일정은 제가 잡아 드리겠습니다.

아마기: 감사합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흥! 난 전혀 기대 안 되는데!

눈부신 빛과 함께 하늘이 갈라지고, 순백의 날개에 감싸인 옥좌가 모습을 드러냈다.
옥좌 아래로 수도 로마의 풍경이 빠르게 사라지고, 그 대신 끝없는 하얀 세계가 펼쳐졌다.
서서히 내려오는 옥좌에는 '그녀'가 앉아 있었다.

마르코 폴로: 그동안은 매일 도면을 그리느라 바빴지만 알찬 시간이었지!

마르코 폴로: 아무튼――넌 대체 뭐야?

마르코 폴로: 위광이 넘치는 나의 사디아 제국에 너 같은 더러운 존재를 들일 수는 없지!

■■■■: 마르코 ■■, 무■ ■ 하려■ ■죠? 

마르코 폴로: 흥. 이제 말도 제대로 못하네.

마르코 폴로: 그럼 사라져!

빛과 함께 아마기를 닮은 무언가는 검은 안개로 변해 사라졌다.
그러자 하얀 세계에 토리이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 시나노가 뛰쳐나왔다.

시나노: 마르코 폴로…… 잠시만… 행동에 주의하거라……!

시나노: 꿈에서 마구 뛰어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그대의 현재 상태는….

비토리오 베네토: 마르코 폴로…? 그리고 시나노 씨…?

시나노: 베네토……? 갑자기 꿈에 들어와서 미안하다…. 그런데, 환상에서 깨어난 건가…?

비토리오 베네토: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대체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비토리오 베네토: 마르코 폴로는 아직 혼수 상태일 텐데 어떻게 여기 있죠? 시나노 씨는 또 어떻게….

마르코 폴로: 보면 알잖아! 나 마르코 폴로는 긴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힘을 가지게 된 거야!

마르코 폴로: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위업을 실행하고 있지! 이제 막 시작한 참이지만!

마르코 폴로: 중앵의 시나노. 네가 나를 깨운 거지?

마르코 폴로: 믿음직한 친구야, 아주 좋아! 나중에 네 몫도 후하게 챙겨 줄게!

시나노: 내가 그대를 깨운 것은 맞지만… 이곳은 아직 꿈속이다. 그대가 느낀 힘도 나의 힘이야…….

마르코 폴로: '아직 꿈속'이라고…? 난 지금 깨어났는데도 그래도 꿈속에 있다는 거야…?

마르코 폴로: 그러고 보면 너 아까부터 계속 꿈 어쩌고 하고 있었지….

시나노: 그대의 정신은 아직 꿈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나는 다만 그것을 불렀을 뿐…….

마르코 폴로: 하아…. 어쩐지 눈을 뜨자마자 그런 이상한 걸 보더라니……. 사디아 제국이 또 누구한테 탈취당한 줄 알았잖아.

마르코 폴로: 좋아 좋아…… 아니, 좋지 않아!

마르코 폴로: 그럼 어떻게 하면 진짜로 깨어날 수 있는 거야!?

시나노: 그것은…… 나도 모른다…….

마르코 폴로: 뭐어~!

시나노: 나의 힘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한다…. 클레망소가 그대를 깨우라고 한 것은, 몇 가지 질문할 것이 있어서…….

마르코 폴로: 클레망소가 보냈다고! 흥! 난 걔랑 할 말 없어!

시나노: 허어……. 번거롭게 되었구나…….

마르코 폴로: ……….

시나노: ……….

마르코 폴로: ……언제까지 쳐다만 볼 거야? 시간 없다며? 빨리 물어 봐!

마르코 폴로: 난 걔랑 할 말 없다고 했지, 네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어!

시나노: ……허면…….

시나노: 일찍이 중앵의 사절이 사디아에 '와타츠미' 조각을 선물한 적이 있었나……?

마르코 폴로: 와타츠미 말이지…. 분명 네가 그때 함대를 이끌고 철혈의 부유섬 요새에서…….

마르코 폴로: 읍!?

시나노: 마르코 폴로……? 혹 짚이는 바라도……?

마르코 폴로: 아, 아무것도 아냐! 난 와타츠미 조각 같은 거 몰라!

시나노: 허면…… 중앵의 사절이 와타츠미 외에 그대에게 선물한 것이 있었나……?

마르코 폴로: 음… 있어. 전에 내가 골동품이나 예술품을 수집하러 다닐 때 중앵에서도 조금 받았었거든.

마르코 폴로: 모두 내 개인 창고에 있을 거야.

비토리오 베네토: 음? 당신 창고는 샅샅이 뒤졌지만 중앵에서 온 물건은 하나도 없었는데요?

마르코 폴로: 베네토 너어!? 내 개인 창고를 뒤져 봤다고!?

비토리오 베네토: 하아…. 당신이 얼마나 큰 사건을 일으켰는지 아직 자각이 없으세요?

마르코 폴로: …마, 맘대로 해! 조사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마르코 폴로: 다만 거기 있는 예술품들은 다 비싼 거니까! 조사할 때 조심해!

마르코 폴로: 또 물어볼 거 있어? 왠지 갑자기 엄청…… 졸리는데…….

마르코 폴로: 더… 없으면…… 나는…… Zzzzz

순식간에 마르코 폴로와 옥좌가 사라졌다.

비토리오 베네토: 마르코 폴로…!

비토리오 베네토: 시나노 씨…. 마르코 폴로가 왜 갑자기 사라진 거죠?

 

시나노: 내가 꿈에 가하는 힘이 다하여, 다시 잠에 들고 말았다…….

시나노: 마르코 폴로의 상황은 지극히 특수한 고로… 나도 더 이상은…….

비토리오 베네토: …아까의 질문을 하기 위해 잠시 동안만 깨운 건가요…? 그리고 와타츠미 조각은 또 뭐죠…?

시나노: 매우 복잡하니…… 추후 현세의 심판정 본부에서 얘기하자꾸나…….

비토리오 베네토: 알겠습니다. 그럼 깨어나서 봅시다.

 

 

 

 ~05. 현실·유니온
NY 기지는 대혼란에 빠져 있었다.
평소의 정연한 업무 환경은 추호도 보이지 않았고, 사무실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그 혼란의 중심에 있는 새러토가는 눈살을 찌푸리고 억지로 냉정을 유지한 채 질서를 되찾으려고, 혹은 적어도 현재 상황만이라도 파악하려 하고 있었다.

새러토가: 키리티마티 섬에 이스터 섬, 그리고 AF에 PH 기지까지 전부 이상이 발생했는데…….

새러토가: 샌디에이고 사령부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다 오해? 전달 실수?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새러토가: 말도 안 돼…! 태평양의 상황은 벌써 엉망인데… 아무 일도 없을 리가 없잖아!

새러토가: 으으… 샌디에이고 담당 함선이 인수인계 중만 아니었다면…. 미주리는 DC 특구로 회항 중이고, 요크타운도 이동 중이고…….

새러토가: 왜 하필 이런 때에…….

새러토가: 됐어! 새러토가가 직접 알아볼 거야!

통신: ――\

알렌 M 섬너: 새러토가. 주목할 만한 보고가 또 들어왔어!

새러토가: 또 태평양이야?

알렌 M 섬너: 아니. 이번엔 파나마 요새야.

새러토가: 파나마…!? 빨리 보여줘!

새러토가: 세이렌 전승 기념 축전 개최……?!

새러토가: 그쪽은 최근에 별다른 전투가 없었는데…. 알렌, 빨리 인트레피드한테 확인해줘!

알렌 M 섬너: 알겠어!

인디애나폴리스: 새러토가. 나도 보고할 게 있어.

새러토가: 어어, 미안해 인디. 지금은 비상사태니까 우선도가 최고인 게 아니면 나중에 보고해줄 수 있어?

인디애나폴리스: 응. 그래서 보고하는 거야. 유럽에서 왔어.

새러토가: ……유럽에서?

인디애나폴리스: 응.

새러토가: 지휘관이 지금 유럽에 있을 텐데……. 빨리 보여줘!

새러토가: 으아아아아…… 설마 유럽까지…….

새러토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들 꿈이라도 꾸는 거야??

새러토가: 혹시 세계박람회 때처럼 광범위 정신 공격인가……!?

새러토가: 지휘관은… 동황에? 응! 동황이 나아! 지금 유럽에 있으면 위험하니까!

통신: ――

새러토가: 또 뭔데?!

아일윈: 우왓! 아, 저기…….

새러토가: 미, 미안해 아일윈! 무슨 일 있어……?

아일윈: 네. DC 특구에서 드디어 답장이 왔어요.

새러토가: 다행이다! 아이오와가 뭐래?

아일윈: 그게… 답장한 건 아이오와가 아닌데….

새러토가: 아이오와가 아니라고? …난 분명 아이오와 앞으로 보냈는데. …아무튼 보여줘!

새러토가: ……“아이오와는 중앵 사절단을 접견 중이므로 당분간 다른 임무에 종사할 여력이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새러토가: 하아? 중앵 사절단은 닷새 전에 떠났잖아….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새러토가: 그리고 다른 임무에 종사할 여력이 없다니…. 지금 이거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다고!

새러토가: 으으…. 새러토가, 머리가 너무 아파…….

통신: ――

볼티모어: 새러토가…….

새러토가: 볼티모어? 이번엔 또 무슨 나쁜 소식이야?

볼티모어: ……‘별바다’와 연락이 끊겼어.

새러토가: ……뭐?

새러토가: 그, 그럴 리가……. 별바다는 절대 문제가 생길 수 없어…….

새러토가: 장소 자체가 극비고…. 방어 시스템도 최첨단이잖아…. 무기도, 함대도…….

새러토가: 그리고 언니의 의료 캡슐도 있는데…….

새러토가: 안 돼… 별바다만은……!

새러토가는 통신을 끊고 기밀 서류를 사물함에 집어넣은 뒤, 서둘러 기지 지하통로로 달려갔다.

----

 

NY 기지. 지하통로

‘거짓 신’ 사건 이후 현지에서 회수한 샘플에, 아이리스가 제공한 ‘도어 네트워크’ 정보를 바탕으로 별바다는 마침내 세이렌의 전송 장치에 대한 활용 연구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 성과가 바로 ‘별의 다리’. NY 기지와 별바다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도어 네트워크다.
희망을 잇는 이 다리는 기지 지하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새러토가: 별의 다리 조정은 이미 끝났을 거야. …거기만 지나면 별바다로 직행할 수 있어!

새러토가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포틀랜드: 어? 새러토가? 사령부에서 바쁠 텐데 무슨 일이야?

새러토가: 별의 다리 상태는 어때? 바로 기동할 수 있어?

포틀랜드: ?? ‘별의 다리’가 뭐야?

새러토가: 별바다하고 우리 기지를 잇는 전송 장치잖아!

포틀랜드: ‘별바다’는 또 뭐야? 새러토가, 너 오늘 이상해…….

새러토가: (……큭! 정신 공격의 영향이 NY 기지까지……!)

새러토가: (아직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새러토가: (별바다는 모든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열쇠야…. 반드시 가야만 해…!)

 

 

새러토가는 별의 다리가 있는 지하 시설에 도착했다.
하지만 눈앞은 텅 비어 있었다.

새러토가: 나까지 당해 버린 거야……?

새러토가: 아니…! 정신 공격으로 인식은 바꿀 수 있다고 해도, 현실까지 바꿔 버릴 수는 없어…!

새러토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느낄 수 없다고 해도… 별의 다리는 분명 여기 있고, 별바다도 그 앞에 있어!

새러토가: 존재하는 이상…… 반드시 찾아내고 말 거야!!

기억을 더듬어 새러토가는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조작을 계속했다.
얼핏 시스템이 작동하는 소리가 새러토가의 귀에 들린 것 같았다.

새러토가: 됐다! 이제 전송 장치 입구로만 들어가면――

별의 다리의 입구였던 곳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가 시야를 막았다.

새러토가: …겁이라도 줄 셈이야?

새러토가는 천천히 벼랑 끝으로 가, 눈을 감았다.

새러토가: ……전부 환상이야.

새러토가: 입구는 여기 있어. 여기만 지나면 별바다로 갈 수 있어. 별바다로 가면 언니를 만날 수 있어…!

새러토가: 그러니까…… 난 무섭지 않아!!

심연으로 뛰어내리려던 순간, 거대한 힘이 그녀를 막아 세웠다.

----

 

눈을 뜨자 번화한 거리가 보였다.
대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렉싱턴: 새러토가. 기다렸어.

렉싱턴: 드디어 왔구나. 오는 길은 괜찮았니?

새러토가: …….

새러토가: ……언…니…?



 ~06. 현실·폭풍
동황 주변 공역. 비행기는 안정적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구름 아래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시간을 보면 슬슬 착륙을 위해 하강하기 시작할 것이다.
동황 영역으로 진입한 이후부터는 계속 호위기가 붙어 있어 이렇다 할 문제는 없었지만…….
잔뜩 드리운 먹구름을 보고 있으면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휘관: 저 먹구름이 있는 곳이 그동안 동황을 괴롭힌 폭풍이지?

젠하이: 네. 규모가 너무도 커서 도무지 그 영향권을 피해 가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젠하이: 폭풍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하나의 폭풍은 아니고, 일련의 크고 작은 폭풍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젠하이: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연중 잦아들지 않기 때문에 통행 불가능한 장벽을 형성하고 있죠.

헬레나: 그래서 동황의 해안선이 계속 봉쇄되었던 거네.

헬레나: 이래서는 함대를 내보낼 수 없겠어.

젠하이: 바로 그렇습니다. 원해는 물론이고 근해도 항상 항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젠하이: 폭풍의 강도는 일정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활발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죠.

젠하이: 활발해지는 시기에는 폭풍의 영향 범위가 넒어집니다.

젠하이: 해안 지역은 매번 이런 천재지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 세이렌 함대도 출몰하기 때문에

젠하이: 저희가 폭풍을 조종하는 배후로 세이렌을 지목하는 이유입니다.

지휘관: 통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벽일 뿐만 아니라, 세이렌의 동황 침략을 위한 전초 기지일 가능성도 있는 건가…….

지휘관: 동황 함대가 다른 항로를 지원하지 못하는 것도 납득이 가는군.

젠하이: 유감스럽지만… 그렇습니다.

멤피스: 그런데 젠하이. 듣기로는 요새 폭풍 주변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던데.

젠하이: 어머. 소식이 빠르시네요.

젠하이: 남극 전투가 끝난 후 세이렌은 바로 각지의 병력을 재배치했습니다. 물론 폭풍 주변도 포함해서 말이죠.

젠하이: 다만… 각 해역의 세이렌 전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된 것과 달리 폭풍 주변의 세이렌은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젠하이: 오랫동안 휴면 상태였던 세이렌의 마리아나 요새군도 움직이기 시작해, 그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젠하이: 저희가 앞으로 펼칠 작전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멤피스: 그럼 동황은 드디어 폭풍 주변의 세이렌에게 반격할 생각인 거야?

젠하이: 네. 그동안 저희를 가둬둔 세이렌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야죠.

지휘관: 승산은 있어?

젠하이: 후후후. 지휘관님과 여러분께서 도와주신다면 100&입니다.

비행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자 구름에 가려졌던 아름다운 대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먼 육지 가장자리에서 빛의 장막이 하늘로 치솟았다.

멤피스: 젠하이, 저 빛의 장막은 뭐야? 세이렌이 공격한 거야!?

젠하이: 걱정 마세요. 저것은 폭풍이 근해에 미치는 영향을 막기 위해서 저희가 개발한 ‘병풍’ 시스템입니다.

젠하이: 오늘 폭풍은 약한 편이지만 지휘관님의 도착을 위해 특별히 가동했습니다.

젠하이 말대로 빛의 장막이 폭풍의 영향을 차단한 덕분에 비행기는 무사히 하강을 계속할 수 있었다.

지휘관: ‘병풍’…. 아이리스의 ‘신궁의 벽’과 비슷하네….

지휘관: 혹시 아이리스와 한 기술 교류의 산물인가?

젠하이: 그쪽이 궁금하신 거군요……. 저는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르지만….

젠하이: 나중에 있을 연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테니까, 그 중에 분명 지휘관님의 의문에 대답해 줄 사람이 있을 겁니다.

지휘관: …연회?

젠하이: “긴 여행으로 피곤하실 테니 우선 연회로 지휘관님의 피로를 풀어 드리죠. 본론은 나중에 꺼내도 괜찮습니다.”……라는 이셴의 다짐이 있었습니다.

멤피스: 동황식 접대의 관습이구나.

헬레나: 멤피스…… 잘 아는 거 같네.

멤피스: 그렇지 뭐♪

멤피스: 나 옛날에 외교 업무 맡은 적 있었잖아. 그때 여러 가지 조사했었거든.

젠하이: 슬슬 이셴의 차량이 공항에 도착했겠군요.

젠하이: 착륙 시에는 조금 흔들릴 수 있으니 다들 안전벨트를 꽉 매주세요.

 

 

 

~07. 어호의 결단

 

한때는 전쟁의 최전선이었던 태평양의 솔로몬 제도 기지.

하지만 세계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이 해역에서는 오랫동안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

제도에 더 이상 초연 냄새는 풍기지 않았고, 화창한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히에이: 이토록 평화로운 곳인데 저희 같은 대함대가 주둔하고 있다니.

 

키리시마: 바캉스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키리시마: 본섬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되다니, 아무래도 수상쩍은 냄새가 나.

 

하구로: 동감임다.

 

쇼카쿠: 미카사 대선배님과 무사시 님의 회의가 끝나자마자 발령이 떨어졌다고 들었어요.

 

쇼카쿠: 그런데 대선배님께서는 저희랑 같이 안 오셨네요. 히에이는 무슨 들은 말 없나요?

 

히에이: 이곳을 오기 전에 딱 한 번 뵀었는데, 솔로몬 제도의 이상 징후를 조사해 달라고만 부탁하셨습니다.

 

히에이: 솔직히 말하면, 대선배님의 기분이 그렇게 안 좋으셨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쇼카쿠: 우우. 이럴 줄 알았으면 즈이카쿠하고 같이 몰래 본섬에 남을 걸 그랬어요.

 

하루츠키: 쇼카쿠 씨가 안 오셨으면 나가토 님 곁에 항공모함이 하나도 없게 되는걸요.

 

시만토: 기왕 온 거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어떻게든 되겠지~

 

----

 

카와카제: 어호님. 모두 이번 발령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나가토: 알고 있다.

 

나가토: 조만간다음 행동 지침을 내릴 것이다.

 

나가토: 조급해 하지 말고 침착하게 기다리라고, 가서 전해 주어라.

 

카와카제: 알겠습니다.

 

 

나가토: ………….

 

충직한 종자가 떠나자 나가토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나가토: ……미카사 대선배는 그 날 무사시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가.

 

나가토: 이번 발령은 분명 대선배와 무사시가 결정한 것이겠지.

 

나가토: 나를 중앵 수뇌부에서 소외시키려는 음모라는 소문도 있지만.

 

나가토: 나는 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가토: 왜냐하면 본섬에서 멀리 떨어진 나의 곁에는 경호가 충분하지만, 대선배의 곁에는 거의 없으니.

 

나가토: 따라서 즈이카쿠가 본섬에 남겠다고 했을 때 나는 동의했다. 허나…….

 

나가토: 대선배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어두운 방에 정적이 다시 찾아왔다.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나가토: ……야마토의 경고, 그리고 대선배의 배치 명령.

 

나가토: 중앵 본섬에서 떠날 때 느꼈던 신목의 이변도이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나가토: 대선배도 무사시도, 다가오는 위기에 대비하려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가토: 허나 이곳 솔로몬 제도에는 신목이 없다.

 

나가토: 이변을 조사하라고 해도,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가토: 아니면나를 지키기 위해 굳이 이유를 붙여가며 멀리 떨어트려 놓은 것인가…….

 

나가토: …….

 

정좌한 소녀는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나가토: 그토록 오랜 세월을 빙빙 돌았지만, 결국 나는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구나…….

 

나가토: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건만, 여전히 타인이 깔아 둔 선로 위를 달리고 있어.

 

나가토: 이제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나가토: 어째서 나는 군말 없이 명령을 받아든 것인가.

 

나가토: 중앵에 위기가 닥친다면 모두와 함께 맞서 싸워야 할 터인데.

나가토: 내 의지가 약한 탓에 이렇게 혼자…….

콩고: 이번에는 달라요. 나가토 님.

콩고: 솔로몬 제도 발령은 나가토 님을 도망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내린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한 선택입니다.

콩고: 미카사 대선배께서 입에 올리시진 않았지만, 나가토 님도 직감적으로 이를 깨달았기 때문에 동의하신 게 아닌가요?

나가토: ……콩코더냐?

콩고: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콩고: 카와카제가 굳은 얼굴로 나오는 것을 보고 나가토 님이 조금 걱정되어서요.

콩고: 그래서… 행동 지침이라는 게 "당장 본섬으로 귀환하라"는 아니겠지요?

나가토: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나가토: 않거라. ……조금 얘기를 나누고 싶구나.

콩고는 가볍게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와 아랫자리에 앉았다.

나가토: ……콩고. 그대 말이 맞다.

나가토: 대선배가 돌아온 순간, 나는 표정을 보고 알았다.

나가토: 무사시를 설득하러 간 대선배가 갑자기 무사시와 협력하게 된 원인….

나가토: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중앵은 이미 위기에 처해 있다.

나가토: 즉각적인 결단이 필요한 데다가, 내가 남아 있든 없든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만큼 위기라고 할 수 있지.

나가토: 그렇다면 차라리 나를 멀리 보내고, 적시에 별동대로 치고 나가게 할 수 있지. 그리하면 역전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는 셈이다.

나가토: 무사시가 시나노를 유럽으로 보낸 것도 아마 같은 이유일 테지.

나가토: 안다. …나도 다 아네만….

나가토: 내게는… 정말로 별동대로서 역전의 불씨를 당길 힘이 있는 것인가….

콩고: 미카사 대선배는 나가토 님을 믿고 계십니다. 물론 저도 그렇고요.

나가토: ……후우…….

나가토는 심호흡을 하고 움켜쥐었던 옷자락을 풀었다.

나가토: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구나.

나가토: 대선배가 이곳에 이변이 있다고 하니 착실히 조사해 보도록 하자.

나가토: 그것이 끝나면, 중앵 본섬으로 돌아가…… 모두를 구하겠다!

'스토리 및 관련 글 > 대형·전초전 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익공상 下  (0) 2024.08.19
연익공상 上  (0) 2024.08.19
혁휘의 마르티리움 下  (0) 2024.05.27
혁휘의 마르티리움 中  (0) 2024.05.27
혁휘의 마르티리움 上  (0) 202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