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달밤의 바람?
초승달이 하늘 높이 걸렸을 무렵. 솔숲 속 노천 온천에는 김이 자욱했다.
이 기분 좋은 밤에 찾아온 방문객은――
트리에스테: 꽤 뜨겁네……. 미안, 지휘관. 나는 잠깐 일어날게. 너무 오래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좀 현기증이 날 거 같아서….
트리에스테: 지휘관은 괜찮아? 이렇게 뜨거운데…?
→ 딱 좋은 온도다
트리에스테: 그래…. 지휘관은 뜨거운 온천에 익숙하구나….
트리에스테: 어흠. …나한테는 좀 힘든 거 같아. 어쩐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어서….
→ 조금 뜨겁네
트리에스테: 역시… 그렇지? 트렌토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니까, 나만 뜨거운 건가 해서.
트리에스테: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아….
트렌토: 어머 어머. 트리에스테? 달아오른 건 뜨거운 물 때문이니? 아니면 지휘관님이 계셔서…?
트리에스테: 정말, 트렌토…!
트렌토: 후후후♪
트리에스테: 저기, 지휘관.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나처럼 잠깐 찬 공기를 쐬도 괜찮아.
트리에스테: 후우… 바람이 시원하네……. 몸은 식어 가는데 온천의 온기가 발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느낌… 정말 기분 좋다….
트리에스테: 나, 항상 지휘관에게 엄하기만 하고, 이렇게 솔직하게 본심을 전할 기회는 좀처럼 없으니까…….
트리에스테: 지휘관이 우리를 얼마나 아껴주는지는 잘 알고 있어.
트리에스테: 그리고 나도, 사실은 지휘관을…….
트리에스테: …앗. 나도 참, 무슨 말을……. 아, 아무것도 아니야!
트리에스테: 후우…… 아무튼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자….
~02. 크롤리크, 녹아
그로즈니: 이렇게 뜨거운 거, 처음이야…….
그로즈니: 뜨거워……. 그로즈니, 더는 무리…….
그로즈니: 지휘관 동지. 물…… 차가운 물, 빨리이…….
그로즈니: 응……꿀꺽꿀꺽…….
그로즈니: …웁―……푸하―! 살 거 같다. 응, 잠깐 부활….
그로즈니: 그치만 조금 지나면 다시 뜨거워질 거야……. 뜨거운 게 계속 와서 녹아버릴 거 같아…….
그로즈니: …근데 지휘관 동지는 여기 왜 왔어?
→ 그로즈니가 녹아버릴까봐 걱정돼서
그로즈니: 사우나가 뜨겁긴 해도 그로즈니는 안 녹는데?
그로즈니: 북방연합 사람들은 추위엔 강하지만 더위에는 약해.
그로즈니: 그렇게 걱정되면 그로즈니 옆으로 와. 영차… 자리 비웠어.
→ 그로즈니와 같이 사우나 들어가고 싶어서
그로즈니: 그랬구나……. 영차. 지휘관 동지 자리 비웠어. 그로즈니 옆에 앉아도 돼.
그로즈니: 사우나, 북방연합 동료들이 혈액 순환이 잘 되니까 몸에 좋다고 그랬는데….
그로즈니: 들어와 보니 "녹아버릴 거 같아"라는 말밖에 안 나와….
그로즈니: 그로즈니가 Снеговик(눈사람)이었다면 지금쯤 물이 돼서 밑으로 다 흘렀을 거야…… 꿀꺽.
그로즈니 옆에 앉아서 사우나를 제대로 즐기는 법을 알려줬다.
그로즈니: 안에서 조금 있다가 다시 나가서 냉탕에 풍덩~하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들어가는 거야…?
그로즈니: 역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응. 얼음 넣은 산소콜라도 보충하고… 꿀꺽꿀꺽.
그로즈니: 사우나에 음식을 반입하면 안 돼? 으, 음료도 아웃???
그로즈니: 싫어 싫어! 무리야! 이렇게 뜨거운 방에서 마실 것도 없으면 그로즈니 진짜 녹아버려!
그로즈니: 지, 지휘관 동지. 한 컵만 더, 얼음 들어간 걸로…!
그로즈니: 응! 딱 한 컵만! 다 마시면 밖에 나가서 쉴래!
그로즈니: …푸하―! 어쩐지 점점 기분 좋아지기 시작했어…….
~03. 설원이 아닌 온천
온천 구석. 나무가 우거진 조용한 곳을 찾았다.
아련하게 퍼지는 김, 그리고 물소리를 따라가보니――
쿠르스크: 갈아입었나. 일단 여기 앉아라.
쿠르스크: 너를 위한 자리다. 후후. 찾아낼 줄 알고 있었어. 사냥꾼의 직감으로 말야.
쿠르스크: 사냥감은 나일까? 아니면 너일까……?
사냥감이냐 사냥꾼이냐를 떠나서 일단 쿠르스크와 함께 숨겨진 탕을 즐기기로 했다.
쿠르스크: 따뜻한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니……. 어쩐지 신선하군.
→ 들어와 보니 어때?
쿠르스크: 글쎄. 이렇게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진 않군.
쿠르스크: 너도 알다시피 동료라고 해도 무리지어 다니는 건 질색이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은 거고.
쿠르스크: 고독한 늑대란, 말 그대로 혼자 사냥하고 쉴 때도 혼자 쉬어야 하는 법이지.
쿠르스크: ……동료가 싫다는 뜻이 아니야.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뿐이다. ――너는 예외지만.
쿠르스크: 설원의 늑대라도 매일 몰아치는 폭풍에 지쳐 아늑한 보금자리에 틀어박히고 싶을 때가 있겠지.
쿠르스크: 그게 바로 여기다. 지금 이 아늑함이 온천 때문인지, 아니면 네가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쿠르스크: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에게 길들여진 걸지도 모르겠군.
쿠르스크: 사냥꾼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감각과 송곳니를 갈고 닦아야 해.
쿠르스크: …하지만 네가 곁에 있으니 지금은 관두고 잠시 숨을 돌리도록 하지.
쿠르스크: 조금만 더 있겠나? 이 여유로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즐기고 싶다.
쿠르스크: 다름 아닌 너와 함께――
~04. 천사의 휴식
눈 내린 산길을 걷던 도중, 노천 온천에서 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궁금해서 다가가 보니 익숙한 소녀의 기도 소리가 울렸다.
조프르: "……고단한 여정 끝에 쌓인 피로를 어루만지시는 아이리스의 거룩한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조프르: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시는 아이리스의 거룩한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조프르: …….
조프르: 허락 없이 들어온 것도 모자라 잠자코 남의 뒤에 서 있는 것은 그다지 매너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휘관님.
조프르: 설마 제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관음'이라는 대죄를 저지르신 것은 아니겠지요?
→ 아무것도 못 봤다
조프르: 지휘관님의 시선을 느낀 것 같았지만, 제 착각일 가능성도 있겠지요.
조프르: ……죄를 증명할 근거가 없으니 지금은 당신의 말을 믿겠습니다.
→ 아이리스의 인도로 인해 몸이 멋대로……
조프르: ……아이리스께서는 결코 그 같은 일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조프르: 터무니없는 변명이지만, 자비로우신 아이리스의 이름 하에…… 이번 한 번만은 용서하겠습니다.
조프르: 만약 눈을 구경하며 온천을 즐기러 오신 것이라면, 들어 오셔도 괜찮습니다.
조프르: ……네. 함께 온천에 들어가자고 권유하는 것입니다.
목소리 톤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어쩐지 조프르의 얼굴이 약간 붉게 물든 것 같다.
조프르: 지휘관님, 어떠십니까?
조프르: 이 온천이, 미약하게나마 당신의 몸과 마음의 치유가 되었습니까?
물의 열기가 팔에서 다리, 몸 구석구석까지 따스한 기운을 전해주었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모두 풀리는 것 같다.
조프르: 지휘관님께서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쌓인 피로를 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프르: 입욕이 끝나면 마사지를 해드리겠습니다. …네. 혈액 순환을 개선하기 위해서입니다.
조프르: 후후후…. 모처럼의 휴가이니 만큼 제대로 즐겨야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께서 말씀하신 '아이리스의 인도'를 어기는 셈이 될 테니까요――
~05. 눈 구경 데이트
안개가 자욱한 노천 온천. 그 옆의 정원석에 앉아 눈이 녹는 것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소녀가 있었다.
보로실로프: 왔구나. 약속대로네, 지휘관 동지.
→ 오래 기다렸어?
보로실로프: 아니, 괜찮아. 나도 방금 갈아입었어.
보로실로프: 어때? 내가 고른… '온천 데이트' 스폿이야. 지휘관은 항상 피곤해 보이니까, 여기서 몸을 좀 쉬었으면 어떨까 해서.
보로실로프: 괜찮은 장소지? 물도 너무 뜨겁지 않고, 주변 경치도 아름답고.
보로실로프: 나는 맘에 들었어.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 눈이 떨어져 녹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니까.
보로실로프: 그러니까……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지 말고. 자, 같이 들어가자?
보로실로프와 함께 노천 온천을 즐겼다.
물의 열기와 어깨에 기댄 그녀에게서 전해지는 온기로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보로실로프: 지휘관 동지, 괜찮아? 너무 오래 있었나?
보로실로프: 물이 너무 뜨거워서 그래? 왠지 얼굴이 빨개 보여.
변명할 새도 없이 그녀는 몸을 기대며 걱정스럽게 나를 들여다보았다.
→ 역시 물 온도가 좀 높을지도…
보로실로프: 그, 그렇구나……. 나도 조금 열이 오른 것 같아.
보로실로프: 분명 온천 때문일 거야…… 후우….
보로실로프: (작게) 지휘관과 이렇게 단둘이 있을 기회는 별로 없어……. 확실히 잡아야 해.
→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체온 때문인지 점점 주변이 달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보로실로프: 여, 역시 너무 오래 있었나…….
→ 완전 팔팔해!
보로실로프: 그, 그래? 생각했던 것보다……. 아, 아니. 나야말로 갑자기 미안해….
보로실로프: 아무튼 즐기고 있다니 기쁘네.
보로실로프: 후우… 그러고 보면 눈 구경 온천은 탕을 나와서도 즐길 수 있지? 숲이나 거리나 모두 경치가 아름다우니까.
보로실로프: 사실은…, 지휘관 동지와 좀 더 같이 있고 싶어. 모처럼의 기회니까… 거절하지 말아줘.
보로실로프는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녀의 손에서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보로실로프: (작게) '온천 데이트'의 다음 일정도…… 계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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