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첫 장기 휴가
연합 합병으로 세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동시에 사람들도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마침내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당초 계획으로는 PH항으로 돌아가 새로운 함대 훈련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렉싱턴의 배려 덕분에 이 계획은 좌초되었다.
다방면에서 들어오는 끊임없는 압박 속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향후 계획을 변경해야만 했다.
PH항으로 향해야 했을 여정이 휴가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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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르 레인 소속
대양 ???
푸른 바다와 하늘, 새하얀 백사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지휘관: 상층부 직할 섬에 군사적 목적 외로 오는 건 처음이군.
요크타운II: 여기는 얼마 전에 막 리모델링을 시작했어.
요크타운II: 세계정세도 완화됐으니 계속 전시 체제에 머무를 수는 없겠지.
요크타운II: 너무 긴장하고만 있으면 언젠가 한계가 오지 않을까?
지휘관: 동감이야. 그래서 이렇게 휴가를 온 거고. 앞으로 3~4일은 푹 쉬면서…….
렉싱턴II: ……3~4일?
지휘관: 아니, 일이 아니라 주! 3~4주간은 푹 쉬자!
렉싱턴II: 후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멤피스: 얘들아. 빌라 점검 끝났어. 이제 들어가도 돼!
헬레나: 열쇠도 다 챙겨왔는데, 집무실 열쇠는, 으음…… 어느 거였더라…….
렉싱턴II: 열쇠는 내가 맡을까?
헬레나: ……부탁할게!
지휘관: 집무실 열쇠……?
렉싱턴II: 흐흥~♪
요크타운II: 그나저나 멤피스, 식재료 같은 건 다 준비되어 있니?
멤피스: 물론이지. 전부 마련해 뒀어.
멤피스: 화물기가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으니까, 오늘 치는 물론이도 내일부터도 매일 섬으로 보급품을 운반해 줄 거야.
요크타운II: 역시 일처리가 깔끔하네.
요크타운II: 그럼 지휘관님, 바로 빌라로 갈까?
지휘관: 그래. 출발하자.
이렇게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던 진정한 의미의 장기 휴가가 시작되었다.
모든 고민을 떨쳐버리고, 그저 좋은 시간과 아름다운 풍경에 잠기는――
'이렇게 휴가 첫날이 끝났다’
'오늘의 키워드는――’
렉싱턴II: '여유’
'휴가 이틀차가 끝났다’
'오늘의 키워드는――’
헬레나: '바닷바람’
'휴가 사흘차가 끝났다’
'오늘의 키워드는――’
요크타운II: '파티’
휴가 나흘차――
잠결에 눈을 뜨니 환한 학원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휘관: ……이젠 놀랍지도 않군.
지휘관: 역시 이렇게 순조로울 리가 없지…….
지휘관: 꿈에서 일을 하는 것도 일에 포함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지휘관: 음……. 한번 고민해 볼 가치는 있겠어.
~02. 등잔 밑이 어둡다
지휘관: (깨어 있을 때는 휴가고, 잠든 뒤에는 일인가…….)
지휘관: (받아들일 수밖에…….)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눈앞의 학원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현실의 시간 흐름은 학원 내부와는 관계가 없는지, 학원의 풍경은 언제나 화창한 봄이었다.
지휘관: (여긴 도대체 뭐야? ……왜 맨날 여기로 끌려오는 거지.)
지휘관: (처음에는 마담 M에게 끌려왔고, 다음은 레이디 E…….)
지휘관: (둘 다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대체 뭐 때문에…….)

레이디 E: 어머~ 오랜만이네?
→ 레이디 E!
레이디 E뿐만 아니라 '제로'와 판박이인 흰 옷을 입은 소녀도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내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휘관: 오랜만도 아닌 것 같은데. 실험장θ에서 본지 얼마 안 됐잖아?
레이디 E: 뭐, 그렇다고 치자.
레이디 E: 오늘은 교장 선생님을 만나러 왔어. 위험한 화학 실험을 중단시키고 싶은데, 책임자인 레이디 H와 연락이 닿질 않아서.
레이디 E: 그래서 교장 선생님께 찾아달라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됐네. 너도 같이 교장실에 갈래?
지휘관: 교장실…….
지금까지는 교사동의 정문 현관을 제외하고 모든 건물의 출입구가 잠겨 있었다.
하지만 방금 레이디 E는 나를 교장실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갈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 걸까?
지휘관: 그렇다면…….
제안을 받아들이려던 순간, 문득 흰 옷을 입은 소녀 쪽으로 시선이 이끌렸다.

??: …….
소녀는 아주 잠깐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시 얼굴을 인형에 묻었다.
지휘관: ……됐어. 장기 휴가 중이라 이번에는 사양할게.
레이디 E: 드문 일도 다 있네. 제안한 타이밍이 안 좋았나?
레이디 E: 그럼 나중에 봐. 휴가 잘 보내――
하얀 빛이 시야를 감쌌다. 이 학원에서 벗어나 침대로 돌아가는――그런 느낌이 들었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지휘관: 그러고 보면 학원에서 제로와 비슷한 소녀를 계속 만났었는데. 혹시 두 명인가……?

??: …….

??: …….
지휘관: ……사실 제로하고 그렇게 닮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제로가 떠올랐어….
지휘관: 아니…… 생각해 보면 제로와 닮은 아이가 한 명 더 있었지….

TB: …….

제로?: …….
지휘관: TB에서 제로…….

제로?: …….

옵저버 제로: …….
지휘관: 제로에서 옵저버 제로…….
지휘관: TB와 제로는 똑같이 생겼어. 제로라는 이름도 같고……. 제로는 옵저버 제로의 초기형…….
지휘관: 설마… 나는 TB와 옵저버 제로와의 연관성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건가…?
~03. 안개 속
이른 아침. 나는 사람들을 불러 긴급회의를 열었다.
멤피스: 지휘관, 무스 ㄴ일이야?
연락을 받은 멤피스와 헬레나 등이 속속 회의실로 들어왔다.
지휘관: 전부 모이면 얘기할 테니 일단 앉아서 기다려줘.
'별바다'에 있는 TB, 새러토가, 엔터프라이즈, 뉴저지가 차례대로 온라인 회의에 참석했다.
지휘관: TB, 있어?
TB: 연결되었습니다. 지휘관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지휘관: 일단 대기해. ……다들 TB를 봐줘. 누구랑 닮았다는 생각 안 들어?
새러토가: ……누구랑?
지휘관: 예를 들면…… 옵저버 제로라든가.
회의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새러토가: 지휘관……. 상층부조차도 옵저버 제로의 영상 자료를 입수하지는 못했으니까, 우린 그런 거 몰라…….
지휘관: 영상 자료가 없다니……. 하긴 그렇지…… 제로는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구나.
지휘관: 내가 지금까지 접촉했던 것도 기록이나 환상 속에서였어…….
지휘관: 렉싱턴. 되찾은 기억 중에 '제로'에 관한 부분은 없어?
렉싱턴II: 없어……. NY 시티에서 앵커리지까지 가는 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는걸……. 지휘관, 갑자기 왜 그래?
지휘관: 미안, 그랬었지……. 엔터프라이즈는 어때?
지휘관: 예전에 엔터프라이즈 META를 만났을 때 그녀의 기억에 관한 플래시백을 보지 않았어?
엔터프라이즈: 맞아. 그녀가 제로에게 화를 내고 있던 장면을 본 기억이 있어.
엔터프라이즈: 하지만…… 이상하군. 아무리 애를 써도 제로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엔터프라이즈: 제로를 떠올리려 해도 안개에 뒤덮인 것처럼 명확한 이미지가 없어.
지휘관: 명확하지 않다라……. 뉴저지는? 전에 기록 공간에 휘말렸을 때 제로를 봤어?
뉴저지: 아니, 나도 본 적 없어…….
지휘관: 즉…… 나와 엔터프라이즈를 제외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제로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건가.
지휘관: 그리고 엔터프라이즈도 제대로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지휘관: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거야. 그렇지?
엔터프라이즈: 맞아. 지휘관이 언급하지 않았다면 의식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지휘관: 상황은 일단 파악했어.
아마도 이것은 일종의 인식 간섭일 것이다.
만약 그녀들이 실제로 옵저버 제로를 봤다고 해도 기억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겠지.
게다가 제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더라도 TB와의 유사성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실제로 나 자신도 그랬으니까.
지휘관: 알겠어.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하자.
지휘관: 미안해. 두서없는 회의가 되어 버렸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라 앞으로도 계속 조사해 보고 싶어.
지휘관: (컴파일 필드에 있는 모두와 옵저버, NA 해역에 머물고 있는 잔불 일원들이라면 분명 제로를 본 적이 있을 거야.)
지휘관: (단서는 아직 있어…….)
왜인지 TB와 제로의 유사성을 의심한 순간, 진상을 규명하고 싶다는 충동이 샘솟았다.
렉싱턴은 걱정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회의실을 나섰다.
회의실에 혼자 남게 되자, 나는 사전에 약속했던 방식으로 요크타운 META에게 연락을 취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화했다.
빛이 사라지자 그리운 별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멤피스(META): 지휘관, 왔구나. 새 연락 방식이 제대로 작동해서 다행이야.
연락을 받고 나타난 것은 요크타운이 아니라 멤피스였다.
지휘관: 안녕, 멤피스. 그쪽은…… 요즘 어때?
멤피스(META): 으음……. 그냥 그래.
멤피스(META): 전에 헬레나가 부여해 준 서브 권한이 아직 유효해서, 통상적인 임무라면 '탑'을 이용해 수행할 수 있어.
멤피스(META): 사용할 수 없게 된 부분에 대해서는 다 같이 대안을 찾고 있는 중이야…….
멤피스(META): 아아…. 그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고……. 요크타운은 지금 중요한 관측 실험 중에 있어서 당분간은 움직일 수 없어.
멤피스(META): 곤란해 보이는데… 내가 좀 도와줄까?
지휘관: 그러면 컴파일 필드의 모든 구성원과 작동을 재개한 실험 기관을 소집해 줄 수 있어?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멤피스(META): ……'확인하고 싶은 거'?
지휘관: 모두에게 묻고 싶어. 옵저버 제로와 TB가…… 서로 닮았는지에 대해서.
~04. 징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멤피스, 베스탈, 옵저버, 컴파일러 그 누구도…….
옵저버 제로가 TB와 닮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시뮬레이션으로 '제로'의 모습을 구축했음에도 말이다.
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만약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면, TB를 본 순간 다들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컴파일 필드의 구성원이나 실험 기관조차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은 것 같았다.
지휘관: (……강력한 인식 간섭이야….)
지휘관: (별바다는 헬레나의 인도로 만들어졌어. '제로'의 시뮬레이션도, TB의 탄생도 그녀와 관계가 있나……?)
지휘관: (헬레나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 테지만…….)
지휘관: (………….)
지휘관: (역시 혼자서 해결할 수밖에 없겠어…….)
지휘관: (어쨌든 지금 주목해야 할 점은 '왜 모두가 인식하지 못하는가'가 아니야.)
지휘관: (왜 갑자기 '나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나'야.)
지휘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렇게 바뀐 거지……?)
사색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새 눈앞에 하늘과 꽃의 바다가 펼쳐진 풍경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요크타운이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요크타운(META): ……지휘관님, 어서 와.
오늘도 그녀는 아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내 시야에만 나타나는, 내 시선 속에만 존재하는 듯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다.
지휘관: 방금 멤피스 쪽하고 얘기하고 왔는데, 네 일은 괜찮은 거야?
요크타운(META): ……아니. 그냥 지휘관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손을 멈춘 것뿐이야.
요크타운(META): 그래도 마침 잘됐네…. 지휘관님의 도움이 필요해.
지휘관: ……응?
요크타운(META): 마르코 폴로에 관한 일이야…….
요크타운(META): 하이어로팬트와 연결 고리가 있는 건 당신뿐이니까, 이 일은 당신만이 대처할 수 있어.
지휘관: 마르코 폴로한테 또 무슨 문제가 생긴 거야……? 알았어.
요크타운(META): ……지휘관님, 날 따라와.
요크타운의 안내를 받아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을 지나 마침내 격리 구역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얇고 투명한 장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지휘관: 저건……?
나는 장벽 너머에 있는 회색 공간을 바라봤다.
요크타운(META): ……보는 대로야.
요크타운(META): ……원래 이곳은 평범한 휴식 공간이었어. 격리용 장벽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지.
요크타운(META): 하지만 어젯밤 갑자기 마르코 폴로가 주변을 변질시키기 시작해서 격리할 수밖에 없었어…….
요크타운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장벽 너머 공간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장벽 너머의 하늘도, 대지도, 전부 빛바랜 잿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회색 공간에도 명암은 있었고, 일부 순색에 가까운 부분도 존재했다.
그리고 당사자인 마르코 폴로는 순백의 중심에 조용히 떠 있었다.
요크타운(META): ……지휘관님. 저 공간은 무해하니까 공간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야.
요크타운(META): 다만…… 중요한 건 저 '목소리'야……. 들려?
요크타운이 장벽의 설정을 조정했는지, 희미하게 제창 소리가 들려왔다.
지휘관: 이 목소리는…… 그래. 알아들을 수 있어.
나는 귀를 기울이고 제창되는 말을 되뇌었다.
'검은 영역이 나타나고, 머지않아 종언이 다가오리라’
'풍요로운 땅은 쇠락할 것이요’
'견고한 성채는 무너져 내리고’
'우리는 빛 없는 백야를 걸으리라’
'우리는 매서운 바람 속을 걸으리라’
지휘관: şÚžłŇŃĎÖŁŹÖŐŃÉ˝ŤÖÁ(검은 영역이 나타나고, 머지않아 종언이 다가오리라)
요크타운(META): ……역시 지휘관님은 이 제창을 이해할 수 있구나.
요크타운(META): 하이어로팬트의 성향을 고려하면, 이건 무언가의 징조를 지휘관님께 전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지휘관: 쇠락해 가는 땅, 무너지는 성채, 빛 없는 백야, 매서운 바람…… 그리고 검은 영역.
지휘관: '검은 영역'이 대체 뭐야?
요크타운(META): ……나도 처음 듣는 말이야. 조사할 시간이 필요해.
지휘관: 돌아가면 엘리자베스 META에게도 물어볼게. 이 네 가지 키워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해줘.
지휘관: 만약 이것이 어떠한 징조라면, 다음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요크타운(META): 바로 조사를 시작할게.
지휘관: 그럼 나중에 봐, 요크타운.
요크타운(META): 응. 다음에 또 만나, 지휘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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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라지자 나는 빌라의 회의실로 돌아와 있었다.
지휘관: 그럼 관계 부처들에 연락해서 징조에 관한 조사를 시작해 볼까…… 응?
그때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어렵사리 요크타운을 만났는데…… 물어보는 걸 깜빡했네…….
~05. 운석
징조와 그 해석을 보고서로 정리하여 상층부 등 관계 각처에 보낸 후, 나는 별도로 엘리자베스 META에게 보낼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 쓰기도 전에 다른 온라인 회의에 초대를 받았다.
지휘관: 주최자는 클레망소. 참가자는 비스마르크와 소유즈……?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초대를 수락했다.
클레망소: 보고서는 잘 받았어. 네가 봤다는 징조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거지?
지휘관: 맞아. 혹시 짐작 가는 정보라도 있어?
클레망소, 비스마르크, 소비에츠키 소유즈, 세 사람 모두 답변하려고 동시에 입을 열었으나, 결국 클레망소가 말을 이었다.
클레망소: 며칠 전 극지 벙커를 탐사하던 중에 두 건의 이상 현상이 확인되었어.
클레망소: 첫 번째로 그나이제나우 META가 북극에서 환상을 목격했어.
클레망소: 그녀가 보았다는 광경은 징조에 나와 있었던 '황폐한 대지'와 '무너진 성채'에 부합해.
클레망소: 두 번째로 키로프 META가 남극의 빙하 밑에서 마찬가지로 환상을 목격했어.
클레망소: 그녀가 본 것은 건물의 폐허였는데, 그 폐허의 광경은 '빛 없는 백야'와 '매서운 바람'과 일치해.
클레망소: 환상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 두 사건은 거의 같은 시간에 발생했어.
지휘관: 남극과 북극의 조사 현장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게다가 모든 징조하고 일치해.
지휘관: (설마 극지 벙커 계획을 진행하면 무언가 위험이 닥친다는 뜻인가……?)
타워가 보여준 '아름다운 세[계'에서는 극지 벙커 계획은 전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세계에서는 온갖 외부 요인의 간섭을 배제했기에 모든 것이 잘 풀릴 수 있었다.
지휘관: (극지 벙커 계획에 외부 간섭이 생긴다는 거야?)
지휘관: (하이어로팬트의 징조는 이걸 경고했던 건가……?)
나는 잠시 생각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지휘관: 잠재적인 위협이 제거될 때까지 극지 벙커 계획은 일시 중단하자.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지휘관 동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즉시 합의에 도달했다.
지휘관: 그리고 두 환상 속 장소에 대해서인데, 현실 세계에서 해당하는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
클레망소: 적어도 성에 대해서는 이미 판명되었어.
클레망소: 심판정은 최근 심판의 개념 상징인 '검은 태양'을 개량했거든. 그걸 사용해서 그나이제나우 META가 본 환상을 재현해 봤어.
클레망소: 그 결과, 철혈 영내의 레겐스부르크시 근교에 있는 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
지휘관: 레겐스부르크시 근교라……. 키로프 META가 본 건물의 폐허는?
클레망소: 그건 말인데…….
소비에츠키 소유즈: 지휘관 동지. 키로프 META는 떠났습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사적인 용무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운다. 끝나면 돌아오겠다."라는 메시지만 남긴 채…….
소비에츠키 소유즈: 그녀가 언제, 어떻게 떠났고, 어디로 향했는지는 불명입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 저희는 단지 그녀가 이전에 보았다는 환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지휘관: 키로프 META가 없다면 검은 태양을 통한 위치 특정도 불가능하겠군. ……상황은 알겠어.
지휘관: (키로프는 환상을 본 후 다른 실험장으로 향한 건가…….)
지휘관: (설마 이 징조와 연관된 곳은 실험장β가 아닌 건가? ……아니면 실험장β뿐만 아니라 복수의 실험장이……?)
지휘관: (그렇다면 이건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하이어로팬트가 스스로 뭔가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어…….)
지휘관: (아비터는 저마다 독자적으로 주도하는 실험장을 가지고 있어. 즉 하이어로팬트도 예외는 아닐 거야.)
지휘관: (이전 실험장θ에서는 스타가 월경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지…….)
지휘관: (하이어로팬트는……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지휘관: 이 단서는 일단 미뤄두자. 그나저나 성을 조사하면서 또 알아낸 건 없어?
클레망소: 조사는 계속 진행 중이지만 새로운 발견은 없었어. 원래 정확한 결론을 얻은 후에 네게 연락할 생각이었거든.
지휘관: 설마 휴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준 거야…?
지휘관: 이 일은 하이어로팬트가 연관되어 있으니까 일부 단서는 아마 나만이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나도 조사에 참가해야 해.
지휘관: 휴가는…….
지휘관: 렉싱턴에겐 미안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밖에 없겠네.
~06. 준비
심판정 전용기. 객실
며칠 뒤.
휴가를 중단한 후, 나느 곧바로 아이리스 성도로 날아가 리슐리외와 짧은 회담을 가졌다.
그 후 심판정 전용기에 올라 클레망소 일행과 함께 철혈의 레겐스부르크시로 향했다.
클레망소: 함께 행동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
지휘관: 직접 나설 만한 사태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까.
클레망소: 후후. 그것도 그렇네.
클레망소: 왜 심판정 전용기로 갈아타야 하는지 궁금하지?
지휘관: 확실히 궁금하긴 한데.
클레망소: 이 전용기, 기체 크기에 비해 객실 공간이 좀 좁다는 느낌 안 들어?
지휘관: ……기내에 뭘 채워 넣은 거야?
클레망소: 넉넉한 보급품, 필요한 무기와 보안 시스템, 그리고――소형화환 제2세대 '검은 태양'이야.
지휘관: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번엔 그냥 조사하러 가는 거 맞지? 철혈을 기습하는 게 아니라……?
클레망소: 당연하지. 어디까지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거니까.
지휘관: ……이번 조사에 무슨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클레망소: 저번에 마르코 폴로와 하이어로팬트가 얽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벌써 잊었어?
지휘관: 잊을 리가 있나……. 그때는 하이어로팬트를 이해하지 못해서, 단순히 선의를 가진 정보 전달이었는데도 통제 불가능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지.
지휘관: 하지만 네가 이렇게까지 준비한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니잖아?
클레망소: 역시 지휘관에겐 숨길 수가 없네…….
클레망소: 최근 며칠 동안 성의 환상을 세부적인 부분까지 반복해서 확인해 봤어.
클레망소: 확인을 거듭할수록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 말로는 조금 설명하기 어렵지만…….
클레망소: 우선 환상 주변의 지형적 특징이 이 세계와 맞지 않아. 현재의 레겐스부르크시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느낌이야…….
지휘관: 과거의 레겐스부르크시라……. 그 밖에 또 발견한 거 있어?
클레망소: 하늘의 모습도 이상해.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는 듯한, 불쾌한 시선이 느껴졌어.
지휘관: ……환상은 이곳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실험장을 가리키고 있는 건가…?
클레망소: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다른 세계와의 중첩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지휘관: 그건 확실히 불안한 징조긴 하네…….
클레망소: 물론 내가 괜히 놀라서 과도하게 준비한 걸 수도 있지만.
지휘관: ……그러길 바라야지.
지휘관: 그나저나 검은 태양을 제2세대로 개량했다고 했지.
지휘관: 애초에 그 기술은 원래 어디서 입수한 거야?
클레망소: 검은 태양은 두 가지 기술을 결합했어. 하나는 마르코 폴로에서 유래됐고, 다른 하나는 세이렌 실험장의 '개념 상징' 연구 성과야.
지휘관: 즉 하이어로팬트와 실험 기관인가……. 그렇다면 확실히 완전한 미지의 기술이라고 할 수는 없겠군.
클레망소: 한번 시험해 볼래?
클레망소: 지휘관도 지금까지 다양한 환상을 보거나, 복잡한 환상 속에 들어가기도 했잖아?
클레망소: 검은 태양 기술을 쓰면 더욱 깊이 연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지휘관: 됐어. 이런 일에 엮이면 난 항상 뭔가 다른 결과가 나오니까…….
지휘관: 안전하다고 거듭 검증한 물건이라도 내가 실제로 쓰면 꼭 문제에 휘말린단 말이지…….
지휘관: 별바다나 천역 아마하라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했어…….
지휘관: 그래도 좋은 용도가 생각났어.
지휘관: 그 장치를 마르코 폴로에게 쓸 수 있을까?
지휘관: 그녀의 의식이 포착한 광경을 시각화할 수 있다면, 이 징조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은데.
클레망소: 좋은 생각이네……. 기억해 둘게. 다음에 같이 시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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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비행기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철혈의 프린츠 오이겐, Z2, 마인츠가 다가왔다.
프린츠 오이겐: 철혈에 온 걸 환영해~
지휘관: 기다리게 했군.
→ 비스마르크는 안 왔어?
프린츠 오이겐: 응. 비스마르크는 회의 때문에 소유즈에게 끌려갔어. 뭔가 군비에 관한 내용인 것 같았는데.
프린츠 오이겐: 그래서 내가 임시 대역으로…… 아니지, 이 중요한 임무를 인계받게 됐지♪
지휘관: ……이 타이밍에 전투 준비라고? 무얼 상대로?
프린츠 오이겐: 글쎄? 지휘관이 나중에 전화로 물어 보든가?
→ 레겐스부르크는 안 왔어?
프린츠 오이겐: 아하하하! 그 말이 듣고 싶었어. 그래서 일부러 못 오게 해 놨지♪
프린츠 오이겐: 고마워♪
프린츠 오이겐: 그럼 출발할까? 성채 유적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 차로 금방 갈 수 있어.
클레망소: 전용기 이송 준비는 됐어?
프린츠 오이겐: 물론이지. 우리가 출발한 뒤에 트레일러가 전용기를 조사 캠프까지 견인할 거야.
지휘관: ……이번엔 전용기가 계속 함께하는 거야?
클레망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야. 그럼 지휘관, 출발할까?
~07. 하모니
신성총련제국
브란덴부르크시
궁전 의사당
브란덴부르크시. 신성총련제국의 수도이자 심장부.
과거 이 의사당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했으며, 수많은 명령이 이곳에서 발하여 제국 구석구석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오늘, 넓은 의사당의 좌석은 겨우 3분의 1밖에 채워지지 않았고, 가장 높은 곳의 왕좌조차도 비어 있었다.
침묵 속에서 마치 칼날이 떨어질 것만 같은 살벌한 분위기가 의사당을 메웠다.
잠시 후, 왕좌와 가장 가까운 일곱 좌석 중 하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퀼른(META): 어제 마인츠 대주교의 군대가 북방 국경 전투에서 전멸했습니다.
쾰른(META): 이로 인해 마인츠 대주교는 순국하셨습니다.
고독한 목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쾰른(META): '성인맹약서'의 규정에 따라, 제국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경우 선제후의 계승 제도는 함선의 우선 순위를 따릅니다.
쾰른(META): 따라서 현 레겐스부르크 대주교가 차기 마인츠 대주교의 후임으로서 선제후의 권한을 행사할 것을 제안합니다.
홀 안은 침묵에 잠겼다. 그러나 곧 조금씩 논쟁이 일기 시작하며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하지만 이 건은 특별한 이의 없이 통과되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아래쪽에서 걸어와 쾰른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레겐스부르크(META): 사태가 급박하니 인사는 생략하겠어.
레겐스부르크(META): 마인츠 대주교의 일이 어제 있었던 유일한 나쁜 소식은 아니야…….
레겐스부르크(META): 나는 북서쪽 변방의 압박이 급증한 원인을 찾아냈어. 그건 바로 알비온이 검은 영역에 완전히 뒤덮여 버렸기 때문이야.
침묵하던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알비온이 함락되었다고? 로열 3도의 맹우들은 어떻게 된 거지?“
"생존자를 실은 선단이 칼레에 도착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매우 극소수라고 그랬어.“
"먼저는 카말 연맹, 그 다음은 알비온 연맹…….“
"우리의 동맹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어!“
"아이리스 교국의 상황도 심각한 듯해. 파리는 이미 함락된 모양이야…….“
"로마에 이어 파리까지…… 그래서?“
"우리도 행동을 개시해야 돼!“
"우리 자신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단 말이다! 현실을 직시해!“
"――무슨 현실?“
맑고 투명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곱 의자에서 나온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소란스럽던 홀 안을 단숨에 제압하는 힘이 있었다.
쾨니히스부르크(META): 방금 무슨 현실이라고 했죠?
쾨니히스부르크(META): 확실히 마인츠 대주교께서 희생되셨고, 카말 연맹도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제국의 북쪽 국경은 여전히 변경백 연맹의 수중에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쾨니히스부르크(META): 알비온 연맹이 멸망하고, 아이리스 교국도 수도를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리스 교국은 칼레에서 랭스까지 방어선을 구축해 지금 이 순간에도 분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쾨니히스부르크(META): 남쪽에서는 제국군이 제노바에서 피렌체, 베네치아에 이르는 일대에서 전황을 안정시키고 있습니다.
쾨니히스부르크(META): 그리고 동부 전선은…… 저 빈자리가 보이십니까? 보헤미아 국왕은 사흘 전, '악의의 그림자'의 공세를 또다시 분쇄했습니다. 설마 벌써 잊으셨나요?
반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쾨니히스부르크(META): 이제 아시겠죠? 현실은 절망적인 상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니 당황할 필요는 없어요!
쾨니히스부르크(META): 오늘 회의가 단순히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것이라면, 저는 퇴석하겠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돌아서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쾰른(META): 기다려 주세요, 쾨니히스베르크.
쾰른(META): 말씀하신 대로 저희는 간신히 정세를 안정시켰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안정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쾨니히스부르크(META):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공론이나 일삼을 때가 아니라 단결하여 행동해야 하지 않습니까?
쾰른(META):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체 누구의 이름 아래 행하는 것입니까?
쾰른(META): 우리는 신성총련제국, 로물루스의 정통 계승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관은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쾰른(META): 게다가 공석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쾨니히스부르크(META): 새로운 황제를 선출하자는 말씀이신가요?
쾨니히스부르크(META): 그건 불가능해요……. 교황을 잃은 지금, 대관식은 거행할 수 없습니다…….
쾰른(META): 네. 그게 바로 오늘 이 회의를 소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쾰른(META): 여러분께서는 '성인맹약서'에 기록된 고대의 의식을 기억하십니까?
쾰른(META): 어쨌든 우리는 오늘 결단을 내려야합니다――제국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이 시대를 구하기 위해.
논쟁은 다시 격렬해졌다. 쾨니히스베르크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쾰른을 향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쾰른(META): 그럼 여러분, 표결을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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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 레겐스부르크시
성채 유적
잠시 후
프린츠 오이겐의 안내로 우리는 무사히 레겐스부르크 교외의 성채 유적에 도착했다.
폐허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눈앞의 풍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휘관: (성벽의 돌담이 점점 새것처럼 변하고 있잖아?)
지
멤피스: 앗!? 다들 저기 봐, 잡초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헬레나: 돌담도 조금씩 복원되고 있는데……?
다들 즉각 이변을 눈치챘다.
프린츠 오이겐: 그동안 계속 조사할 때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지휘관이 오니까 단서가 알아서 나타나네… 후훗.
Z2: ……일단 철수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오래된 돌덩이에서 잇따라 빛이 솟아나오더니, 유적의 밝기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환해졌다.
클레망소: ……좋지 않아. 모두 날 따라와!
클레망소: 알제리, 라 갈리소니에르. 너희는 지휘관을 호위하면서 비행기로 가!
해치가 닫히는 순간, 세계는 새하얀 빛에 뒤덮였다――
'검은 영역이 나타나고, 머지않아 종언이 다가오리라’
'풍요로운 땅은 쇠락할 것이요’
'견고한 성채는 무너져 내리고’
'우리는 빛 없는 백야를 걸으리라’
'우리는 매서운 바람 속을 걸으리라’
'검은 영역이 나타나고, 머지않아 종언이 다가오리라’
'이 신성한 땅에서’
'이 신성한 각인 앞에서’
'――함께 등림자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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